이건희 씨가 죽고 그에 대한 논평들이 많다. 좌파연/진보연하며 알뜰히 시장 이득을 챙기는 쪽보다 일관성을 가진 시장주의자를 오히려 존중하는 편이라서인지, 내 타임라인에는 그를 상찬하는 글도 눈에 띈다. 인상적인 건 비판하는 사람들은 윤리적 서술이 많고, 상찬하는 사람들은 사회적 서술이 많다는 점이다.
전자에게 개인 이건희는 매우 탐욕스럽고 잔혹하며 양심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인간이다. 이 경우 그가 만들어낸 사회적 문제들은 그의 끔찍한 인격에 기인하는 셈이다. 후자에게 이건희의 개인 인격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듯하다. 이런 경향은 확실히 달라진 면이 있다. 나는 전자의 사람들도 윤리적 차원을 벗어나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이건희 씨가 사회적으로 나쁜 짓을 많이 했고 개인적으로도 나쁜 인간일 수 있다. 그러나 그가 설사 그렇게까지 나쁜 인간은 아니더라도 달라질 건 없다. 단지 공적인 차원과 사적인 차원을 구분하자는 말은 아니다. 그가 자본가였음을 기억하자는 말이다. 자본가는 자본의 무한정한 축적운동을 수행하는 인간, 즉 ‘인격화한 자본’이다. 자본가로서 이건희의 행동은 그의 개인 인격과는 다른 차원이다.
이건희 씨는 인격화한 자본으로서 특별한 성취를 이룬 사람이다. 그에 대한 평가는 그것에 대한 것이어야 한다. 즉 평가의 기준은 모호하고 종종 감상적이기 쉬운 윤리가 아니라 평가하는 사람의 세계관과 철학이어야 한다.
(굳이 덧붙이자면 한 인간으로서 그보다 더 비참하게 삶을 마감하기도 어렵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존엄사'가 무엇인지 안다. 그는 존엄사에 반하는 죽음을, 그것도 몇해에 걸쳐 맞아야 했다. 그 특별한 비참 역시 인격화한 자본으로서 특별한 성취 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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