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7/27 22:10
한 인간의 인격을 온전히 판단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을 보면, 그 단순함에 놀라게 된다. 인간은 자신을 속일 수 있는 유일한 동물이다. 그런데 어떻게 다른 인간의 인격을 판단할 수 있겠는가.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혹은 가까운 사이일수록 오히려 더 불가능한 일이다. ‘그럴 사람이 아니다.’ 같은 말은 심경을 표현하는 말일 순 있되 공적 견해일 순 없다. 인간은 누구나 ‘그럴 수 있는 사람’이다. 그 사실이야말로 인간 도덕성의 출발점이다. 인간이 다른 인간에 대해 판단할 수 있는 건 그의 인격이 아니라 사회적 행위, 다른 인간과 관계에서 그의 행위다.
2020/07/16 10:26
지난 글에서 ‘미투 혁명’이라는 표현에 의문을 표시하는 분들이 있는데, 미투는 혁명은 없고 혁명이라는 수사만 넘치는 근래 세계에서 거의 유일한 혁명이라 할 수 있다. 미투는 혁명의 본질적 요소들, 즉 정상성의 변화, 동의하지 않는 자의 견인, 피억압자의 자기해방 등을 모두 보여준다.
“성공한 혁명의 대표적 사례는 오히려 ‘미투 혁명’이다. 미투는 한 개의 정부를 무너트리지도 새로운 국가를 세우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 모든 단위를 아우르는 근본적 변화를 만들어냈다. 혁명은 비정상적인 것의 정상화가 아니라 ‘정상성’ 자체의 변화다. 사회 성원은 변화에 대한 동의 여부와 무관하게 변화한 사회에 견인된다. 미투 이후에도 미투가 말하는 성폭력 정의에 동의하지 않는 남성은 많다. 그러나 그들 역시 성폭력의 새로운 정의를 무시할 수 없다. 사회는 미투 이전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여성들에게 이미 ‘돌이킬 수 없는 하한선’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미투 혁명은 진행 중이며 ‘피억압자의 자기해방’으로서 혁명이 뭔지 보여주고 있다.” <혁명노트> 102
2020/07/13 13:37
사회 현상을 제대로 분석하지 않고 세대 문제로 퉁쳐버리는 유행에 비판적인 편이지만, 세대는 사회 현상을 분석하는 주요한 틀 중 하나이다. 한 세대는 역사적, 사회적 상황을 공유함으로써 개인의 의지나 선택과 무관하게 의식이나 행동에서 일정한 습속을 갖게 된다.
오래전 나는 내 윗세대의 절대다수가 공유하는 극우 반공주의적 사고나 집단주의 정서는 사회적 토론 같은 합리적 방법으로 개선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유일하고 분명한 해결책은 그 세대가 죽어 사라지는, 새로운 세대들이 늘어나는 거라고 생각했다.
근래 미투혁명 흐름 속에서 나는 내 세대, 이른바 386 역시 그렇게 되었음을 깨달았다. 내 세대는 목숨을 걸고 성찰하지 않는 한, 죽어 사라지는 게 사회에 이로운 사람들이 되었다. 안희정, 오거돈 때 꽤 조심하는 듯하던 사람들조차 박원순 씨 죽음 앞에서 기어코 제 실체를 드러내고 만다. 공사 구분 없는 신파적 감상, 얕은 지식으로 나열한 터무니없는 요설들..
내 세대는 오랫동안 윗세대의 악취에 시달렸다. 그 덕에 제 악취는 좀처럼 알아차리지 못한다. 윗세대가 그렇게 된 주요한 원인은 전쟁과 극우 파시즘이라는 외적 조건이었다. 그들은 역사적 사회적 피해자들이기도 하다. 내 세대는 지난 30여 년 동안 민주화운동 이력과 스러져간 옛 동무들을 팔아 지배계급의 일원이 되는 일에, 사유재산을 늘리는 일에 몰두했다. 내 세대의 악취는 스스로 썩어 만들어졌다.
2020년 한국은 도처에 진동하는 386의 악취로 숨쉬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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