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5'에 해당되는 글 13건

  1. 2020/05/30 하한선
  2. 2020/05/28 독서
  3. 2020/05/26 고래동무 인터뷰
  4. 2020/05/24 십년
  5. 2020/05/21 악랄
  6. 2020/05/21 비판
  7. 2020/05/18 1980, 2005, 2020
  8. 2020/05/13 신파, 진영논리
  9. 2020/05/12 현명하게
  10. 2020/05/11 얕고 감상적인
  11. 2020/05/10 상처
  12. 2020/05/06 나쁜 개, 착한 개
  13. 2020/05/05 고그 한 달 보기
2020/05/30 13:46
정의연(정대협)과 나눔의집의 회계나 재정에 문제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지는 꽤 오래 되었다. 그럼에도 모든 발언을 운동의 이념이나 활동방식에 한정한 이유는 하나다. 설마 그렇기야 하겠는가, 하는 마음. 바꿔 말하면, 부디 사실이 아니길, 비판할 걸 비판하고 토론할 걸 토론할 수 있길 바랐던 것 같다. 모든 일엔 넘어선 안 될 하한선이 있는 법이며, 게다가 이건 경제적 주체가 아니라 적어도 ‘사회운동’에 관한 이야기 아닌가. 사태가 이 지경까지 되었는데도 ‘친일 반대’ 주문만 외우는 사람들. 너무나 지당해서 하나마나한 소리나 늘어놓으며 중립적 안전지역에 머무는 자칭 지식인들. 이명박, 박근혜 기간 내내 ‘최소한의 상식!’을 외친 사람들이 상식의 하한선을 매일 경신하고 있다.
2020/05/30 13:46 2020/05/30 13:46
2020/05/28 11:44
독서는 저자의 생각을 듣는 일이 아니다. 저자의 생각을 재료로 혹은 동기로 내 생각을 꾸려가는 일이다. 그래서 독서는 기본적으로 난독이며, 한권의 책을 읽는 데 걸리는 적정한 시간은 우리가 그렇게 믿는 시간의 몇 배일 수밖에 없다.
2020/05/28 11:44 2020/05/28 11:44
2020/05/26 15:49
고래 발행인으로 일하면서 가장 흐뭇한 순간 하나는, 어릴 적 고래를 본 어린이가 성인이 되어 고래동무 후원자가 될 때이다. 이지연 고래이모는 창간 독자였고 중학생 때까지 구독했다.

*

17년 전 창간 독자였고, 이제 막 고래동무 후원을 시작한 이지연 님을 만났습니다.

고그: 고그는 어떻게 구독하게 되셨고, 첫인상은 어땠나요?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봤어요. 어느 날 갑자기 집에 만화 잡지가 생겨서 좋아했던 기억이 나네요. 그뒤로 중학교에 들어갈 때까지 계속 구독해서 즐겨 읽었습니다.
 
고그: 고그를 보면서 좋았던 경험, 개인적인 추억이 있다면 나눠주세요.

아직도 창간호의 <태일이>가 기억납니다.ㅎ 전태일 열사와 그의 가족들에게 이입해서 빠져들듯 읽었습니다. 그리고 <피터 히스토리아>도 정말 좋아했어요! 만화 말고도 그때 당시 이슈였던 이라크전 반대 운동이나 제국주의, 자본주의와 한미 FTA에 대한 글들도 많았는데 (창간호에는 세계인권선언이 부록으로 있었던 기억이 희미하게 납니다.) 상관없이 다 읽었던 게 생각나네요. 그땐 몰랐지만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고래가그랬어에 실린 작품과 글들이 제 지금 가치관을 정립하는 데 큰 영향을 준 것 같습니다.
제가 시골에서 나고 자라 주변에 놀 것이 많이 없었는데, 고그에는 같이 그림을 그려보는 만화도 있었고, 밖에 나가 식물들을 관찰하는 꼭지도 있어 어린 시절에도 밖에 나가 혼자 재밌게 놀 수 있었습니다.
 
고그: 고래동무를 결심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대학교 때문에 서울에서 자취를 시작했고, 지금은 취직해서 직장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예전에도 알고 있긴 했지만 정말 많은 사람이 기본적인 인권 개념이나 배려, 최소한의 공동체 의식도 가지지 않고 다른 이들에게 상처를 주면서 살고 있더라고요. 제가 특히 걱정되었던 건 불합리한 사회 구조를 비판하지 않고 개인의 노력 여부만 중시하는 청년, 청소년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계급과 구조를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가장 외롭고 고된 건 사회적 약자들일 겁니다. 여성/퀴어/지방 출신/비정규직/장애인/노인/청소년 등 교차된 소수자성을 가지고 있는 이들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끊임없이 육체와 정신의 건강을 위협받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비싼 월세를 내기 위해 식비를 줄이는 사람들이 더 유리한 위치에서 자신과 경쟁하는 이들을 보며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때마다 이게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는 걸 알아줬으면 하는 마음에서 고래동무 후원을 시작했습니다. 고래가그랬어는 공교육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계급과 인권, 구조와 공동체 담론을 쉽고 재미있게 다루는 교양 잡지입니다. 이런 몇 안 되는 콘텐츠를 오랫동안 만드는 단체를 응원해줘야 한다고 생각해서 취직하자마자 후원을 결심했습니다. 앞에서도 말했듯 저 자신도 고그에 진 빚이 있으니까요.ㅎ 큰 금액은 아니지만 도움이 조금이나마 되었으면 합니다.
 
고그: 이지연 동무가 꿈꾸는 세상은 어떤 모습인가요?

어려운 질문이라 한참을 고민했네요.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고그: 고그를 구독하는 친구들에게 한 마디?

고그 재밌게 읽고 씩씩하게 같이 살아요. 저도 노력해볼 테니까요.ㅎ 감사합니다.
 
*
 
미래를 향한 속 깊은 연대.
2020/05/26 15:49 2020/05/26 15:49
2020/05/24 16:04
며칠 전 친구가 인생에서 매우 중요한, 그러나 얼마간의 위험과 불안정을 수반하는 결정을 했다. 사실 좀 놀랐다. 그는 대화할 때 쾌감을 느낄 만큼 명민한 사람이지만, 메타노이아(삶의 방향 전환)를 실행하는 유형으로 보이진 않았기 때문이다. 그가 말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십년 뒤에 바보가 될 것 같았어.’ 지지와 공감을 표시하며 내가 말했다. ‘더 슬픈 건 십년 뒤에 자신이 바보라는 사실을 모른다는 걸 거야.’

흔히 타인에 대한 사랑을 숭고하다 말한다. 부정할 건 없지만 그런 말에선 어딘가 위선과 비굴의 냄새가 난다. 가장 숭고한 사랑은 자신에 대한 사랑이다. 자신을 사랑하는 일은, 자신이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되려 노력하는 일이다. 그 노력은 이념이나 정의, PC 같은 걸로 덮이지 않는, 삶의 실제와 일상의 세부에 작용한다. 정말 아름다운 사람이 되고, 타인에게 아름다움의 영향을 주는 것이다.

근래 우리는 민주주의와 진보와 민족과 정의를 말하는 괴물들을 종종 목격한다.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더 이상 사랑할 수 없는 자신을 사랑하지 않을 줄 모르는 괴물들 말이다. 친구의 표현을 빌면 그들이 괴물이 되기로 선택한 건 적어도 십년 전이다.
2020/05/24 16:04 2020/05/24 16:04
2020/05/21 16:07
재난은 평등하지 않다. 재난은 가난한 사람일수록 더 어렵게 만든다. 코로나 19 사태에서 한국은 의료노동자의 헌신을 기반으로 방역에 성공적인 편이었지만, 복지나 지원 정책들은 느리고 적기만 해서 소위 선진국 수준과는 거리가 멀다. 방역과 관련한 정부의 자화자찬은 마치 목숨만 보전하면 고마운 줄 알라고 말하는 듯하다. 거듭 말하지만, 재난은 가난한 사람일수록 더 어렵게 만든다. 그러므로 재난을 이용하여 부자의 숙원을 해결해주려 드는 것보다 더 사악한 일은 없을 것이다.  문재인 뉴딜은 대체로 그런 방향에 서 있다. 특히 비대면 치료 필요성이니 뭐니 들먹이며 이명박이나 박근혜도 결국 못했던 의료 민영화(삼성의 오랜 숙원 사업인)의 물꼬를 터주려는 수작은 악랄하디 악랄하다.
2020/05/21 16:07 2020/05/21 16:07
2020/05/21 09:11
<자유론>에서 밀이 갈파했듯 민주주의 사회에서 내 의견의 정당성은 비판을 수용함으로써 만들어진다. 사회운동은 더욱더 그렇다. 사회운동이 길을 잃지 않으려면 시민 사회의 비판과 토론을 활짝 열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정의연은 최악의 사례라 할 만하다.

정의연(과 나눔의집)에 대한 진지한 비판은 최근 불거진 운영(회계와 재정)뿐 아니라 운동(이념과 운동 방식)의 측면에서 오랫동안 있었다. 물론 그런 비판에 대한 의견은 각자의 몫이다. 문제는 비판이 수용되거나 제대로 된 사회적 토론이 이루어진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정의연은 자신을 성역화하는 방식으로 비판에 대응했다. 모든 비판은 일제 부역(친일) 행위이자 위안부 피해자를 모욕하는 행위로 몰아갔다. 소녀상은 그 우상으로 사용되었다. 그런 운동이 안으로 곪지 않는다면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이용수 선생의 문제 제기를 계기로 정의연에 대한 회의와 분노가 팽배해진 지금, 정의연의 성역화와 비판의 배척이라는 반민주주의적이며 야만적인 상황이 장기적으로 가능했던 원인을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좀 더 나아져야 하고 이런 상황을 반복하지 않아야 한다.

대개의 시민이 소녀상만 바라보며 그 상황을 받아들였다. 특히 비판이 임무인 지식인과 학자들이 대부분 그 상황에 동조하거나 침묵했다. 정의연은 해결해야 할 역사를 주제로 활동해왔다. 이제 정의연의 활동과 그에 대한 시민 사회의 대응이 해결해야 할 역사의 한 주제로 추가되었다.
2020/05/21 09:11 2020/05/21 09:11
2020/05/18 10:34

광주항쟁 40주년

다시 꺼내 읽어 본다.




2020/05/18 10:34 2020/05/18 10:34
2020/05/13 13:15
싸잡아 하는 비판에 대한 최선의 대응은 싸잡아 옹호가 아니다. 분별있는 비판 그리고 그에 근거한 토론이다. 비판의 자리를 신파로, 토론의 자리를 진영 논리로 채우려는 자들을 경계할 것.
2020/05/13 13:15 2020/05/13 13:15
2020/05/12 22:02
극우 세력이 정의연 사태를 시민운동 전반의 문제로 몰고가는 데는 배경이 있다. 한국 시민운동은 90년대 이후 기존 민중운동 세력 일부가 체제내화하는 방식으로 형성된다. 현 정권의 주요 구성원과 지자체장 가운데 시민운동 이력 없는 사람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시민운동, 특히 그 주류는 리버럴 정치세력과 이념적으로 동조해왔다. 극우 세력은 시민운동을 체제 비판 운동(리버럴과 자신들에 공히 선을 긋는 운동)이 아니라 리버럴 정치세력의 요소 혹은 외곽 조직으로 본다. 바로 그런 사실들 때문에, 정의연 사태에 대한 시민들의 비판을 시민운동 전반에 대한 폄훼처럼 여기는 태도는 현명하지 않다. 억울한 심정을 모르지 않지만, 그럴수록 더 정당한 태도를 가져야 한다. 시민은 시민운동을 비판할 권리가 있으며, 시민운동에 대한 지지와 비판을 동시에 수행할 능력이 있음을 믿어야 한다. 그렇지 않을 때 시민운동 전반에 대한 불신이 늘고 결국 극우세력의 의도에 밀려들게 된다.
2020/05/12 22:02 2020/05/12 22:02
2020/05/11 09:56
“우리는 위안부들이 위안부가 되어야만 했던 다양한 사연과 삶의 배경을 그 자체로 이해하고 존중하려 하지 않는다. 우리는 그들이 우리가 원하는 위안부상에 얼마나 부합하는가에 좀 더 집중한다. ‘순결한 조선 처녀’라 여겨지면 존중심을 보이지만, 그렇지 않은 구석이 있다면 외면하거나 아예 눈감아 버린다. ‘위안부는 모두 강제로 끌려간 소녀였다’는 우리의 강변은 ‘위안부는 모두 자발적 매춘부였다’는 일본 우익의 강변과 쌍을 이루어왔다.

정대협이나 나눔의집 문제를 단지 금전 비리나 ‘앵벌이’ 사건으로만 봐선 안 된다. 그들이 그런 행각을 지속할 수 있었던 비결은 많은 사람의 (특히 일본 문제에서 더 불거지는) 얕고 감상적인 역사의식이었다. 이번 선거에서도 ‘한일전’ 따위 구호가 나오고 상당히 통했다는 사실은 그 뿌리가 얼마나 깊은지 보여준다. 그걸 이용하는 도둑들이 설치고 독버섯이 피어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일본군 위안부는 민족 모순보다는 ‘가부장제하에서 빈곤 여성’이라는 보편적 모순에 더 닿아 있다. 2016년 한창 <제국의 위안부> 문제로 시끄러울 때 쓴 글. 이나영 선생이 반론을 썼고 신문사에서 재반론을 요청했으나 결국 응하진 않았다. 그는 추운 날씨에 수요집회에서 몇 시간 앉아있어 봤느냐는 식의 말을 했는데, 그걸 ‘반론’으로 여기는 건 그를 존중하지 않는 일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2020/05/11 09:56 2020/05/11 09:56
2020/05/10 19:28
내 주변엔 좌파가 많고 리버럴은 그보다 많고, 적지만 자유시장주의자도 있다. 조국 지지나 조국 수호에 동의한 사람은 거의 없다. 대부분 비판적이거나, 매우 비판적이었다. 마음이 안 좋은 건 그 소란 통에 상처받은 사람들 때문이다. 그들에게 서툰 위로를 하려들 생각은 없다. 다만 그들이 상처받을 이유가 없다는 사실만은 말해주고 싶다.
동무라 믿은 사람들이 조국 지지와 조국 수호를 외치는 풍경은 당신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그러나 당신은 상황을 거꾸로 보고 있다. ‘저 사람들이 어떻게 조국을 지지할 수 있는가’라는 생각 말이다. 그 사람들이 조국을 지지한 게 아니다. 그 사람들을 조국이 대변/대표할 뿐이다. 민주화 이후 체제 내화 하여 진보 코스프레로 기득권을 추구한 끝에 결국 기존 기득권 세력(수구 기득권 세력)을 압도하는 지배 기득권 세력이  된 사람들 말이다.
그들은 당신을 배신하거나 상처 준 적 없다. 당신이 지나치게 오랫동안 그들을 동무라 오해했을 뿐이다. 번민하지 않아도 된다. 이제 그들의 진실한 동무는 삼성일 순 있으되 적어도 당신은 아니다. 훌훌 털고 당신의 길을 가길 빈다.
2020/05/10 19:28 2020/05/10 19:28
2020/05/06 08:46
법과 사회 관습을 깡그리 무시하는 망나니를 우리는 개 같은 인간이라 말한다. 그럼 법과 사회 관습에 철저한 사람은 인간 같은 인간일까? 역시 개 같은 인간이다. 착한 개. 인간답게 산다는 건 나쁜 개로도 착한 개로도 살지 않는 것, 제 철학으로 제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2020/05/06 08:46 2020/05/06 08:46
2020/05/05 10:35
'모든 어린이가 코로나19 시기를 건강히 이겨내길 기원합니다.'
 
고래가그랬어 한 달 보기.
맘껏 보고, 널리 알려주세요~.

2020/05/05 10:35 2020/05/05 10: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