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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4/30 09:07
SNS의 풍경 하나는 ‘이슈 산책자’라 일컬을 수 있는 사람들이다. 이 사람들은 언제나 화제가 되거나 많은 사람이 관심을 두는 사회적 이슈에 관해 이야기한다. 그 이슈의 원인이 되는 구조나 시스템의 본질을 천착하진 않는다. 제 삶에 대한 실천적 성찰로 연결하지도 않는다. 그저 ‘다음 이슈’로 옮겨간다. 그들의 비판은 언제나 이럴 수가 있는가, 저럴 수가 있는가 따위 ‘개탄’에 머문다. 개탄은 우리가 진지한 의미에서 비판이라 말하는 것, 즉 논란과 오해와 불편함을 수반하는 인간 행위와는 다른 것이다. 끝없는 개탄을 통해 그들은 자신을 ‘깨어 있는 사회의식을 가진 사람’으로 SNS 상에 진열한다. 이슈 산책자는 또 다른 셀카 중독자들인 셈이다.
2020/04/20 09:53
이상적 사회상이 있어야 정치인이다. 정치인은 이상적 사회상이라는 장기적이고 근본적인 전망 하에서 현실적 실현 가능성을 좇는 존재이다. 하다못해 박정희도 집단주의적 고도자본주의라는 제 나름의 이상적 사회상(그게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이 있었다. 오늘 정치인 중에 이상적 사회상을 가진 사람을 찾을 수 없다. 그들은 단지 현재 사회의 안정(민주당 계열) 혹은 과거 사회로 회귀(미통당 계열)를 좇는다. 이상적 사회상이 없는 정치인은 인민 삶과 공공성을 구실로 사적 이해 추구에 몰두하기 마련이다. 정치는 모호한 미사여구(인간적인, 꿈이 있는, 화합하는 같은)와 지지자들의 지속적 우민화를 조건으로 하는 포퓰리즘으로 채워진다.
2020/04/18 13:15
심리학자들은 SNS 셀카(셀피) 올리기가 관계에서 좌절이나 컴플렉스를 보상받으려는 행위라 말한다. 동의한다. 좋아요 클릭을 기다리는 셀카 속 웃음은 울음이기도 하다. 늘 셀카를 올리는 사람은 늘 울고 있다. 단 그 좌절과 컴플렉스는 개인의 상황뿐 아니라, 앞서 말한 후기자본주의가 선사하는 보편적 외로움과 우울과 깊은 관련이 있다. SNS는 지극히 후기자본주의적 도구이다.
2020/04/18 12:10
자본주의는 인간의 사회적 관계를 상품 간의 사회적 관계로 만드는 속성을 갖는다. 우리가 살아가는 후기 자본주의 사회는 그런 속성이 완성 단계에 이른 물신사회이다. 외로움과 우울은 삶의 기본값이다. 역시 자본주의의 속성인 독점의 극단화로, 소수 부자는 여느 사람들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풍요롭고 편리한 삶을 누린다. 그러나 외로움과 우울을 피할 순 없다. 원인은 상품 구매력이 아닌 인간의 사회적 관계가 상품 간의 사회적 관계라는 사실에 있다. 삶을 더 많은 상품으로 구성할 수 있다면 외로움과 우울도 더 많이 가져야 한다.
2020/04/17 11:11
혁명은 현재 사회를 무너트리고 새로운 사회를 ‘건설 construction’ 하는 일로만 이해되어왔다. 그렇게 건설된 건 고작 새로운 정부이거나 새로운 지배 시스템이다. 혁명은 건설이자 ‘이행 transition’이다. 투쟁하는 자유인은 미래에 속한 사람이며 또한 새로운 사회의 담지자다. 투쟁하는 자유인의 삶과 생활양식에 선취된 새로운 사회의 조각들이 현재 사회에 균열을 만들며 새로운 사회로 이행해간다. 누군가 새로운 사회가 정말 가능한가 물을 때, 투쟁하는 자유인은 먼저 묻는다. ‘내 안에 새로운 사회가 있는가?’
2020/04/16 11:40
이번 선거는 시민의 정치의식이나 물신성 같은 일반적 요인 외에, 매우 특별한 요인이 있었다. 코로나19이다. 코로나19 사태에서 비교적 안전한, 동경해 마지않던 유럽보다 안전한 상황이 만들어진 게 민주당 승리에 결정적 기여를 했다. 바꿔 말하면, 세월호 사건으로 인민의 안전조차 지키지 못하는 세력이라 낙인찍힌 미통당에게 치명적인 선거였다.
신체를 가진, 별 수 없는 존재인 인간에게 안전은 가장 기본적인 욕구이다. 안전이라는 주제가 언제나 부각하진 않는다. 지금처럼 안전이 심각하게 위협받을 때, 다른 모든 사회적 주제들을 잠식한다. 대개의 사람은 다양한 의미나 장기적인 전망을 갖는 선택(주로 소수정당과 관련한)에서 발을 빼 현재 안전에 가장 도움이 된다고 판단되는 한 선택에 집중한다. 이번 선거에선 문재인과 민주당이었다.
그들을 코로나19 사태에서 더 낫게 행동하도록 만들어준 건 세월호다. 세월호 사건은 어떤 정권이든 어떤 정치세력이든 안전을 가장 중요한, 인민을 위해서뿐 아니라 자신을 위해 사수해야 하는 주제로 만들었다. 그렇게 한국 사회는 세월호 이전과 이후로 나뉘었다. 304명 세월호 희생자들 덕에, 우리가 좀 더 안전한 사회에서 살고 있음을 기억한다.
2020/04/15 21:45
인민은 자유주의 정치 세력에 속고 있는 것도 의식 수준이 낮은 것도 아니다. 인민은 최선의 합리적 선택을 하고 있다. 문제의 본질은 그 합리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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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노트 - 74
자유주의 정치는 그 자체로 물신성의 정치적 표현이다. 물신성과 자유주의 정치는 비례관계에 있다. 자유주의 정치가 강한 사회일수록 물신성이 강한 사회라는 뜻이다. 두 자유주의 정치세력, 즉 자유주의 세력과 자유방임 시장주의를 기반으로 한 보수적 자유주의(보수주의) 세력이 정치를 장악하다시피 한 미국과 한국이 대표적이다. 이들 사회에서 자유주의 세력이 ‘가짜 진보’임을 폭로하는 일은 상황에 그 다지 큰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인민은 ‘자유주의 정치 범주’ 만이 합리적이라 여기기 때문이다.(74.1) 두 자유주의 세력은 지배계급의 두 축으로서 적대적 공생관계를 이루며 노동계급과 대립하고, 또한 자유주의를 넘어서는 급진적인 정치세력이나 운동과 대립한다.(74.2)
74.1) 인민은 속고 있는 게 아니라 합리적 선택을 하고 있다. 한국에서 자유주의 세력에 진보적 사회 변화를 기대하는 ‘비판적 지지’는 30여 년간 지속되어왔다. 어긋난 기대와 당연한 실망의 무한 반복은 언제나 보수주의 세력의 집권을 막아야 한다는 논리로 강변된다. 비판적 지지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인민이 자유주의 세력에 속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강도 높은 물신성에 포획되어 있는 인민은 물신성의 정치적 표현인 자유주의 정치 범주를 넘어서려 하지 않는다. 그 범주만이 현실적 의미를 갖는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2004년 17대 총선거에서 민주노동당이 10석(정당 득표율 13.1 퍼센트)을 얻고 성공적 의회 진출을 이룬 일은 뿌리 깊은 반공주의의 희석과 함께 자유주의를 넘어선 정치에 대한 인민의 열망을 반영하는 사건이었다. 급속한 물신화는 그 모든 것을 집어삼킨다. ‘비판적 지지’가 되살아나고 좌파 정당이나 급진적 사회운동은 꾸준히 위축되어왔다.
74.2) 최근 미국 젊은 세대에서 사회주의 바람은 미국 사회가 한국과 달리 이 구조를 빠져나가고 있음을 알려준다. 이 책 112에서 더 살펴본다.
2020/04/14 22:51
미통당은 보수가 아닐뿐더러 신념을 가진 극우도 아닌 그저 해소가 소명인 집단이다. 양 진영 위성정당들도 자유민주주의(부르주아 민주주의) 하한선마저 훼손한 집단이니 투표의 대상이긴 어렵다. 후보 개인의 덕성과는 별개다. 그 외엔 제 소신껏 투표하고 모든 소신은 존중받아 마땅하다. 고심 끝에 어느 당에도 투표하지 않는 소신 또한 존중받아야 한다. 사회의 미래를 생각할 때 가장 근사한 건 ‘지향이나 공약은 마음에 들지만 세가 작아 망설여지는’ 당에 투표하는 것이다. 지난 30여 년 한국 정치가 인민의 삶을 거스를 수 있었던 건 그 근사함을 소홀히 했기 때문이다. ‘민주당만 빼고’는 ‘민주당을 넘어서’로 정정되어야 한다.
2020/04/04 12:33
혁명노트는 며칠 전 3쇄에 들어갔다. 사유보다는 위로를 찾는 사회에서/시기에, 불편한 구석이 많은 책을 읽어주신 분들께 깊이 감사드린다. ‘물신성’ 개념이 쉽게 들어오지 않는다는 의견이 있어 문장을 조금 추가했다. 1, 2쇄를 가진 분은 참고해주시길 빈다. 오디오주석은 다음 주 첫 회를 올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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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57, 12행
“...천부적 속성처럼 보인다.” 뒤에 추가.
“가치는 화폐로(가격으로) 표현된다. 가치가 상품이 가진 천부적 속성처럼 보인다는 건 결국 가격이 상품이 가진 천부적 속성처럼 보인다는 뜻이다. 상품은 그것에 들어 있는 실제 내용들, 즉 노동과 사회적 관계 때문에 얼마짜리라 여겨지는 게 아니라, 단지 얼마짜리이기 때문에 그에 합당한 내용을 가진 거라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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