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2'에 해당되는 글 15건

  1. 2020/02/26 성인답게
  2. 2020/02/23 소전서림
  3. 2020/02/21 정통 마르크스주의에 기댄?
  4. 2020/02/20 2쇄 수정
  5. 2020/02/15 <혁명노트> 발간
  6. 2020/02/15 분별력
  7. 2020/02/14 사랑싸움
  8. 2020/02/14 요점노트
  9. 2020/02/13 무이념
  10. 2020/02/11 상이라는 것
  11. 2020/02/10 신파의 세계
  12. 2020/02/08 당파성과 집단성
  13. 2020/02/06 <혁명노트>의 노트 1 - 매트릭스는 한 겹이 아니다
  14. 2020/02/03 이심전심
  15. 2020/02/02 올리브 키터리지
2020/02/26 23:10
공포와 불안을 혐오와 비방으로 위안받으려는 태도도 나쁘지만,  입방정과 호들갑 역시 모두에게 백해무익할 뿐이다. 전문적 식견을 가지지 않았다면 말을 줄이는 게 최선이고 몸을 던져 헌신하고 있지 않다면 나서지 않는 게 최선이다. 때론 성인답게 행동하려 노력하는 것만으로도 훌륭한 상황이 있다.
2020/02/26 23:10 2020/02/26 23:10
2020/02/23 17:14
유명 문인 50명과 자연스레 접촉..

벽에는 영국 현대미술의 대가로 꼽히는 프랜시스 베이컨의 ‘판화’ 등 유명 작품들이..

리움 미술관을 설계한 마리오 보타 사무소에서 '경험을 쌓은’ 스위스 건축가 다비데 마쿨로가 건물을 설계..

‘까다로운 재벌가 주택 설계를 많이 한' 원오원 아키텍츠 최욱 건축가가 인테리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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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염병 창궐의 무거움 속에 나름 웃음을 선사하는 기사다. 기자는 이곳의 홍보 포인트를 충실하게 옮겨적을 뿐이지만, 자연스럽게 비꼬고 조롱하는 기사가 되었다.(작은 따옴표는 내가 친 것)

한국 자본주의의 특징 하나는 ‘교양있는 부르주아’가 형성된 적이 없다는 점일 게다. 한국 부르주아들은 단지 경제 부르주아, 즉 졸부들이다. 그들은 예술이나 인문학 이전에 부르주아 사상, 즉 자신들의 사상인 자유주의의 미덕들을 좌파의 빨갱이의 견해라 여길 만큼 무지하다. 그래서 그들을 위한 교양 치장 산업이 나름 성업을 이룬다. 서양고전음악이나 미술을 둘러싼 일정한 풍경들이 있고, 부르주아들은 대중과 실제로는 없는 변별을 얻기 위해 그것들에 끼거나 구매한다. 작가나 인문학자라는 사람들의 소규모 강연 역시 그 산업의 일부다. 그 언저리에 꾸려진 이 공간의 고객들과 '자연스레 접촉할 유명 문인 50명'에게 문학이란 무엇일까?

2020/02/23 17:14 2020/02/23 17:14
2020/02/21 13:16
그리 길지 않은 기사의 절반 가량을 ‘아재들의 옛이야기’로 할애한 이유가 궁금하지만, 그 또한 기자의 고유 권한이라 믿는다. 기사에 감사드린다. 기사 중에 ‘정통 마르크스주의에 기댄 사회분석’이라는 표현은 이 책과 무관하므로 독자를 위해 짧게 적어본다.

널리 알려진 대로, 마르크스는 이미 생전에 이른바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오독에 질려 “나는 적어도 마르크스주의자는 아니다”라고 토로한 바 있다. <혁명노트>가 마르크스와 관련한 뭔가에 기대고 있다면 그것은 마르크스주의가 아니라 마르크스, 특히 <자본>의 마르크스이다. 정통 마르크스주의에도, 신좌파나 포스트 마르크스주의에도 비판적인 책이라는 뜻이다.

<혁명노트>의 주요한 논거를 이루는 ‘물신성’(물신숭배, 물신주의)은 정통 마르크스주의에선 아예 삭제된 개념이다. 이를테면 소련공산당 중앙위원회 부설 마르크스레닌주의연구소가 공동 저술한 <마르크스 전기>는 기초자료의 방대함과 문헌적 엄밀성으로 널리 인정받지만, '물신성'에 관해서는 한 구절도 찾아볼 수 없다.

20세기 중반 스탈린주의에 반발해 성립한 신좌파에게서 물신성은 초기 마르크스의 ‘소외’나 ‘이데올로기’와 구분되지 않았고 여전히 그렇다. 그들과 대립한 알튀세르 전통에서 물신성은 ‘헤겔주의의 해로운 흔적’이라 일찌감치 규정된다. 현재 물신성은 ‘상품에 달라붙어 있는’이라는 <자본>에서 의미를 떠나, 사회 현상을 치밀하게 분석하는 수고를 피하면서 멋을 부리려는 사람들이 여기저기 갖다 붙이는 클리셰이기도 하다.

2020/02/21 13:16 2020/02/21 13:16
2020/02/20 13:54
<혁명노트>는 어제 2쇄 제작에 들어갔습니다. 감사드립니다. 오탈자 몇 개를 수정했으니, 1쇄를 읽는 분들은 참고해주시길 빕니다. (쪽 번호가 아닌 글 번호입니다.)

57.2 - 4행
자신의 자리로 > 자신의 다리로

74 - 5행
(보수적 자유주의) > 보수적 자유주의(보수주의)

88.1 - 1행
george > georg

95 - 1행
철학자이 > 철학자들이
2020/02/20 13:54 2020/02/20 13:54
2020/02/15 15:36
서점에도 다 입고된 듯하니, <혁명노트> 발간을 정중하게 알립니다.

구체적인 내용 설명이나 소개는 줄입니다. 다만 이 책은 여러 의미에서 ‘혁명’에 대한 상투적 관념들(집단, 함성, 남성 공장노동자, 급격함, 폭력성, 지도자, 선전 선동, 포퓰리즘, 복무하는 예술 등등)과는 거리가 멉니다. 이 책에서 혁명은 복원되지 않고 재구성됩니다.

저 개인에게도 이 책 집필 작업은 기존의 생각을 비판하고 가로막힌 문제들을 해명하고 넘어서는 과정이었습니다.

또한 이 책은 '신자유주의'라는 이름으로 악마화되는 현재 자본주의가 결코 특별한 상태가 아니라, 자본주의 본래 모습을 가장 잘 드러낸 상태라는 관점을 갖습니다. 한국 사회에 대한 국지적 시의적 분석보다는, 자본주의 시스템의 본질과 구조, 역사적이고 세계적인 상황을 살핌으로써 지금 한국 사회를 자연스럽게 드러내는 방식을 취합니다.

책은 번호가 붙은 119개의 글과 해설로 구성됩니다. 해설은 종종 해설을 넘어 또 다른 본문이기도 하니, 꼭 함께 읽길 권합니다. 손에 쥐어지는 책을 염두에 두고 작업했고, 결과적으로 작지만 내용이 꽤 방대하고 문장과 서술은 함축적인 책이 되었습니다. 천천히 책과 대화하며 읽기에 적당할 것입니다.

머리말이 없습니다. 평소 ‘긴 머리말은 무능한 본문을 폭로할 뿐’이라 믿기도 하지만, 이 책은 이상하리만큼 뭘 써도 군더더기라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대신 뒤표지에 실린 글이 본문 첫 문장과 연결됩니다. ‘자본주의는 과연 계급 사회인가?’

3월에 렉처 퍼포먼스를 열 계획입니다. ‘이틀 정도로 압축’ ‘시간과 공간의 예술적 구성’이라는 기본 틀을 놓고 권병준 작가, 양지윤 큐레이터와 논의하고 있습니다. 결과가 좋으면 거듭할 수도 있을 겁니다. 다시 알리겠습니다.

귀한 시간을 할애하여 초고를 읽고 의견을 주신 권병준, 김윤진, 김희원, 박근홍, 박보영, 박승, 박우현, 안현선, 양지윤, 전영웅, 조대연, 조이엄, 탁민혁, 편해문 님께 감사드립니다. 경제학 부분의 감수를 도와주신 김성구, 양준호 선생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2020/02/15 15:36 2020/02/15 15:36
2020/02/15 08:52
비판적인 칼럼을 쓴 사람을 고발하고, 장사가 안 되어 수심에 빠진 사람에게 마음 편하겠다고 말하는 패거리를, 진지하게 비분강개까지 하며 비판하는 건 한편으론 싱거운 일이다. 그들이 그런 철학과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여태 몰랐다는, 그들의 철학과 세계관에 기대를 버리지 않았다는 의미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정치에 이념이 정치인에게 철학과 세계관이 전무한 사회에서, 시민이 정치인들에게 할 수 있는 유일한 합리적 기대는 ‘성인으로서 분별력’일 것이다. 훌륭한 말과 행동은 않더라도 제 말과 행동이 어떤 반응이나 결과를 가져올지 예측은 할 줄 알길, 시민의 삶에 도움을 주진 못하더라도 괜스레 속을 뒤집진 않길 바라는 것이다.

자한당 패거리가 시민들 눈 밖에 난 결정적 원인도 그게 어렵다는 사실을 거듭 확인했기 때문이다. 그에 이어 민주당 패거리가 열심히 확인 중이다. 앞장선 건 역시 조국이었다. 그의 이중적 행태나 파렴치함이야 일군의 386이 공유하는 면모지만, 법무부장관으로서 제 집을 압수수색 중인 검찰수사관에게 전화를 하거나 여론에 밀려 사표가 수리되자마자 복직신청을 하는 건 그의 철없는 아이보다 못한 분별력을 드러냈다.

이념이 없는 정치, 철학과 세계관이 없는 정치인들은 시민의 삶을 곤경에 몰아넣는다. 성인으로서 분별력조차 없는 정치인들은 시민의 마음을 찢고 사회를 박살낸다. 그러나 그런 정치인들이 활개 칠 수 있는 비결 또한 그들에게 여전히 미련을 두는 시민의 분별력이다. 분별력이 절실하다.
2020/02/15 08:52 2020/02/15 08:52
2020/02/14 23:14
비판적 지지로라도 민주당을 찍은 일이 없는 나는 민주당만 빼고라는 구호와 그걸 고발한 민주당에 대한 비판이 매우 통렬하면서도 일종의 사랑싸움처럼 느껴진다. 연인들은 이따금 널 안 볼 거라 말한다. 그들이 결국 다시 보는 이유는 그래도 나은 선택이라 믿기 때문이다. 연인들은 다른 선택을 결심하거나, 당분간 아무도 선택 않기로 결심할 때 정말 결별한다. 나는 궁금하다. 민주당만 빼고라 외치는 당신은 결심이 섰는가.
2020/02/14 23:14 2020/02/14 23:14
2020/02/14 11:23
호의적라는 점과 별개로, 성실한 정독과 내용 이해에서 <혁명노트>가 어떤 책인지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되는 기사라 여겨진다. 박지훈 기자께 감사드린다. 몇가지 인상적인 표현들이 있는데 이런 건 특히 재미있다. "혁명노트에는 10개 챕터에 걸쳐 짤막한 글 총 119개가 담겨 있다. 제목을 비튼다면 지식인 김규항의 치열한 공부 흔적이 담긴 ‘요점노트’로 봐도 무방하다." 요점노트라.. ^^

2020/02/14 11:23 2020/02/14 11:23
2020/02/13 08:34
정치의 기본은 이념이다. 어떤 사회 시스템을 지향하는가, 어느 계급/계층을 기반으로 하는가 같은 이념 위에 정책, 조직, 전략 등이 꾸려진다. 한국 정치의 특징은 ‘무이념’이다. 지향하는 사회시스템은 인간적인 사회, 따뜻한 사회, 아름다운 사회, 꿈꿀 수 있는 사회 등 감성어로만 표현된다. 지향하는 사회 시스템이 없거나 저도 모른다는 의미다. 기반이 되는 계급은 하나같이 ‘서민과 중산층’이다. 표는 중간이하 계급(돈은 적지만 수는 매우 많은)에서 두루 얻되, 손은 상위계급(수는 적지만 돈은 매우 많은)과 잡겠다는 의미다. 정치에 이념이 없으니 인물만 남는다. 그러나 역시 이념이 없으니 시간을 들여 전문성을 쌓기보다 연예산업에서처럼 영입과 공천이 이루어진다. 정치인은 쇼와 이미지 관리 말곤 할 줄 아는 게 없다. 배웠다는 시민들은 평소 정치가 민생을 외면한다고 욕하다가, 선거 때가 되면 제 삶과 무관하다며(즉 민생을 외면한다며) 투표 안 하려는 사람들의 무지를 꾸짖다가, 다시 정치가 민생을 외면한다고 욕하는 평소로 돌아가길 반복한다.
2020/02/13 08:34 2020/02/13 08:34
2020/02/11 10:38
기생충이 칸느나 오스카에서 상을 받을 만한 영화라 생각한다. 얼마 전 기생충을 비판하는 글에서 ‘깔끔하게 잘 만든 영화’이며 ‘피시한 서구인들에게 맞춤한 영화’라고 적었는데, 그게 그런 상을 받을 조건이다. 피시한 서구인들로서 미국 영화아카데미 회원들은 지난해 <로마>를 무시한 덕에 받아야 했던 비난을 벌충하고 싶기도 했을 것이다. 사실 이미 오래전부터 봉준호가 그런 상을 받을 거라 생각한 사람들이 적지 않았고, 나 역시 그중 하나이다.

다만 나는 ‘상’이라는 건 문화산업의 영예일 순 있으되 예술의 영예는 아니라고 생각한다.(이 말은 나는 영화가 문화산업 생산물이자 동시에 예술이라고 생각한다는 의미이며, 같은 맥락에서 봉준호가 문화산업 생산자이자 예술가/작가라고 생각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또한 나는 문화산업이고 예술이고를 떠나, 성인이라면 ‘상’이라는 것 앞에서 잠시 멈칫거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바로 그런 이유에서, ‘상’이라는 것에 대해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의 축하를 진심으로 축하한다. 내 일처럼, 혹은 다이내믹 코리아의 일원답게 국가와 민족의 이름으로 기뻐하는 사람들도 축하한다.

2020/02/11 10:38 2020/02/11 10:38
2020/02/10 13:03
개운함, 감동, 눈물이 없다면 우리 삶은 메마른 모래알과 같을 것이다. 그러나 불편한 사유, 위엄 있는 분노, 실천과 투쟁이 있어야 할 자리를 개운함, 감동, 눈물이 채울 때 삶은 신파에 접어든다. 자신의 주인이려고도 세계와 맞서려고도 않는, 자기 연민과 위로의 갈망으로 축조된 신파의 세계.
2020/02/10 13:03 2020/02/10 13:03
2020/02/08 08:08
당파성과 집단성(연대로 집단을 이루는 일)은 저항하는 비주류에게 해방의 무기이다. 그러나 비주류가 시간을 거쳐 주류가 되었을 때 당파성과 집단성을 스스로 해소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당파성과 집단성은 해방의 무기에서 권력과 기득권의 도구로 전환한다. 구석구석 온갖 벌레와 기생충이 들끓게 된다. 역사에서 끊임없이 반복되는 일이며, 현 정권과 86 자유주의 세력이 생생히 보여주는 일이기도 하다. 악순환을 끊어내는 유일한 힘은 사유하길 포기하지 않는 개인들이다. ‘그래도 보수보단 낫지’ 따위 말은 하지 않는 개인 말이다. 진보와 정의를 말하기 전에 내가 그런 개인인지부터 물어야 한다.
2020/02/08 08:08 2020/02/08 08:08
2020/02/06 15:23
질문해 보자. ‘계급’은 대체 어디로 사라진 걸까? 불과 얼마 전만 해도 문제는 보수 진보가 아니라 계급이라는 이야기가, 계급이라는 말에 질색하던 사람들까지도 들불처럼 번졌는데 말이다. 어느새 이야기는 계급이 아니라 계급 안에서 ‘윤리’, 특히 상위 20퍼센트 자유주의 세력 안에서 윤리 이야기로 뒤바뀌었다. 그새 한국 사회의 계급 모순이 말끔히 해결되기라도 한 걸까?

지난 20여 년 한국 사회에서 노동이나 계급 문제에 기인한 모든 사회적 분노나 문제의식은 거대한 자력에 이끌리듯 ‘좋은 자유주의’ ‘상식적인 자유주의’라는 목표로 귀결해왔다. 그러나 이번엔 전혀 다르지 않은가? ‘조국 사태’를 통해 모든 책임을 보수 세력에게 전가하며 진보와 정의를 말하던 86 자유주의 세력이 보수와 경쟁하는 기득권 세력이며 지배계급의 한 축이라는 사실이 명백하게 드러난 다음이니 말이다.

자유주의적 상식과 윤리를 회복하는 노력이 갖는 의미를 폄훼할 이유는 없다. 진중권이 말하듯 지금 한국 사회는 그런 당연한 노력조차도 거부하는 사람들이 많은, 기괴한 매트릭스 상태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노력이 우리가 참으로 어렵게 확인하게 된 계급 문제와 대면을 사라지게 만든다면, 그 노력이야말로 매트릭스의 실체인 셈이다. 매트릭스는 한 겹이 아니다.

우리를 매트릭스로, 매트릭스의 매트릭스로 이끄는 마술적 힘은 무엇인가? <혁명노트>의 중요한 주제 중 하나이다.


(<혁명노트>는 특이하게도 머리말이 없습니다. 다짜고짜 본문으로 들어가야 하는 독자를 위해, 책에 대한 이해를 도울 만한 이야기를 ‘혁명노트의 노트’라는 제목으로 몇 차례 적어보려 합니다. 책은 다음주 초면 서점에서 구할 수 있다고 합니다.)
2020/02/06 15:23 2020/02/06 15:23
2020/02/03 17:24
새 필자를 섭외할 때 가장 먼저 고래를 아는지부터 확인하게 된다. 알더라도 실제로 본 적은 없다면 최근호 몇 부를 보내드린 후 구체적인 의논을 시작한다. 지금도 책 이야기, 인물/사상, 경제/노동의 주제로 세 분께 연락을 드리려는 참이다. 그중 한 분인 이승윤 선생의 페이스북(Sophia Lee) 글. 반갑기 그지없다. 이심전심 ^^

“북커버 챌린지에 김은실 교수님(Eunshil Kim)께서 저를 지명해주셨네요. 감사합니다.
제 인생의 책들은 대부분 동화책이라 저는 책 추천은 잘 못하는데 북커버는 일곱개로 끝내기는 어려울 만큼 멋진 어린이 월간 잡지가 있습니다. [고래가그랬어]. 한번에 모두 소개해봅니다.
개인적으로는 [고래가 그랬어]에 수록된 아이들의 동시를 읽는 것과, 수록된 토론거리와 재미난 주제(페미니즘, 기후변화, 민주주의, 자본주의, 인권 등)에 대해 딸아이와 (주로 밥먹으며) 대화해보는 것은 너무 즐거운 일이었습니다. 좋아하는 만화 따라 그리기도 물론.”


2020/02/03 17:24 2020/02/03 17:24
2020/02/02 10:25
장편소설을 좀처럼 못 읽는 이유와 시즌이 여러 개인 드라마를 좀처럼 못 보는 이유가 같다. 읽(보)다 보면 결국 ‘이렇게까지 길 이유는 없다’는 생각이 들고 만다. 흥미를 유지하게 하면서 끝없이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작가나 감독의 기술(타고났다고밖에 말할 수 없는)에 감탄하기도 하지만, 그것에 이끌려 다니는 건 기분 좋은 일은 아니다. 내가 생각하기에, 내가 소설이나 드라마를 읽(보)는 일은 작가나 감독의 인간 탐구를 읽(보)는 일에 가깝다. 긴 만큼 탐구의 밀도를 유지하거나 동어반복에 빠지지 않기란 어려운 일일 것이다. 소설은 단편이나 단편집을 위주로 읽고 드라마는 대체로 시즌 한 개인 걸 우선해서 본다. <올리브 키터리지>를 선뜻 본 것도 4편짜리라서였다. 첫화를 보며 이런 대본은 누가 쓰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 보고 찾아보니 동명의 단편집이 원작이다. 이북을 구입했다.
2020/02/02 10:25 2020/02/02 1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