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1'에 해당되는 글 11건

  1. 2019/11/30 투쟁
  2. 2019/11/28 수많은 노예제
  3. 2019/11/18 신앙
  4. 2019/11/17 개혁과 혁명 3
  5. 2019/11/16 개혁과 혁명 2
  6. 2019/11/16 개혁과 혁명
  7. 2019/11/14 인스타
  8. 2019/11/14 기상천외한 코뮤니즘 실험
  9. 2019/11/09 부모의 자격
  10. 2019/11/06 신자유주의만 말하기
  11. 2019/11/03 가짜뉴스, 진영논리, 시민 기레기
2019/11/30 12:35
(앞 글에 이어서)

그러나 ‘인간 해방이 단지 법적 차원만 의미하지 않는다’는 말에는 인간 해방의 법적/사회적 차원이 전제되어 있다. 인간은 신체와 사회관계를 통해서 실존하기에, 인간 해방은 단지 정신적 차원은 아니다. 인간해방은 시쳇말로 ‘정신 승리’가 아니다. 투쟁하는 노예는 (정신적 차원에서) 이미 해방된 자유인이지만, (사회적 차원에서) 아직 노예다. 핵심은 ‘투쟁’이다. 투쟁이 인간해방의 두 차원을 잇는다. ‘더는 노예로 살지 않겠다’는 개인 내면의 결단과 ‘노예제가 존속하는 한 나는 노예다’라는 성찰을 하나로 만든다. 투쟁만이 당신이 자유인임을 알려준다.
2019/11/30 12:35 2019/11/30 12:35
2019/11/28 15:52
‘해방은 오로지 자기해방’이라는 말은 인간 해방이 단지 법적 차원만 의미하지 않는다는 말이기도 하다. 노예는 어떻게 해방되는가. 노예제가 철폐되어 법적 자유인이지만 친절한 주인을 그리워한다면 아직 노예일 뿐이다. 노예제 하에서도, 자유인이 되려 투쟁하는 노예는 이미 해방된 인간이다. 노예제 역시 법적 차원으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평등과 자유의 허울을 쓴 수많은 유형의 노예제가 존재한다. ‘이렇게 사는 게 맞는가’ 늘 자문하면서도 ‘현실이 어쩔 수 없지’ 체념할 수밖에 없게 한다면, 바로 그게 노예제다.
2019/11/28 15:52 2019/11/28 15:52
2019/11/18 23:54
신의 뜻을 온전히 따른다는 건, 신의 뜻을 잘못 이해했을 가능성을 잊지 않는 일이기도 하다. 진지한 신앙인은 신의 뜻을 단언하지 않는다. 신의 뜻을 질문하며 매일 나아간다.
2019/11/18 23:54 2019/11/18 23:54
2019/11/17 21:08
혁명에 대한 흔한 오해는 ‘급격하고 폭력적’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역사 속의, 지금까지 혁명은 그런 경우가 많긴 하다. 혁명이 필요한 상황을 한참 지나고서야 한꺼번에 터져 나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급격하고 폭력적인 혁명은 혁명의 한 형태일 뿐이다. 혁명의 본질은 ‘변혁, 즉 시스템의 근본적 변화’에 있다. 혁명은 점진적일 수 있으며, 폭력적이지 않을 수 있다. 또 그래야만 한다. 급격하고 폭력적인 혁명은 일거에 기존 시스템을 무너트리지만, 바로 그 힘은 권력으로 전환하면서 혁명 자신을 무너트리는 속성을 갖기 때문이다.(예를 들어 러시아혁명에서 ‘인민의 독재’는 매우 빠르게 ‘당 간부와 관료의 독재’로 바뀐다.) 혁명은 혁명 지도부가 아니라 자유로운 개인들의 삶 안에서 자라나야 한다.
2019/11/17 21:08 2019/11/17 21:08
2019/11/16 15:18
그러므로 개혁은 혁명을 차단하기 위한 지배 계급의 대응이다. 뒤집어 말하면, 개혁은 ‘혁명적 지향의 부산물’이다. 오로지 그렇다. 지배 계급 스스로 개혁을 자청하는 경우는 절대 없다. 이른바 ‘개혁 세력(혹은 개혁 정권)’은 혁명적 지향이 사그라드는 순간, 개혁이 그들 손에 내맡겨지는 순간, 개혁을 멈추고 온전한 지배 기득권 세력으로 돌아간다. 개혁적 변화를 원한다면 혁명을 궁리하고 실천해야만 한다. 그걸 못할 때 하는 매우 흔한 변명이자 자기 합리화가 ‘개혁 세력에 대한 실망과 배신감’이다.
2019/11/16 15:18 2019/11/16 15:18
2019/11/16 15:17
개혁과 혁명에 대한 흔한 오해는 개혁을 ‘현실적이고 바람직한 혁명’이라 여기는 것이다. 그러나 개혁과 혁명은 전혀 다르다. 개혁은 시스템의 안정을 위한 수정 보완 작업이며 혁명은 시스템의 근본적 변화다. 개혁의 주체는 지배 계급이고 혁명의 주체는 피지배계급이다. 개혁이 시스템의 안정화 작업인 만큼, 개혁에 대한 오해 역시 자연스럽게만 형성되지 않는다. 오히려 치밀하게 기획되고 적극 조장된다. 예컨대 지난 20년 동안 한국에서, 개혁에 대한 오해는 일군의 386이 지배 기득권 계급이 되어가는 자신을 ‘현실적이고 바람직한 혁명 세력’으로 포장하는 데 이용되어왔다.
2019/11/16 15:17 2019/11/16 15:17
2019/11/14 2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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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raeya2003
2019/11/14 21:19 2019/11/14 21:19
2019/11/14 2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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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14 20:52 2019/11/14 20:52
2019/11/09 11:06
고된 공부(전적으로 입시에 연결된)에 지친 일상을 ‘부모님이 내 안에 들어와 사는 것 같다’고 호소하는 아이들이 많다. 아이들은 직관적이다. 그들의 말은 이젠 고전이 된 <페다고지>에서 프레이리가 말한 ‘피억압자의 의식’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피억압자가 억압자의 폭력과 수탈에 무기력한 이유는 제 안에 억압자의 의식을 갖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억압자는 피억압자의 의식 안에 존재하며 피억압자를 지배한다. 한국 부모가 아이의 억압자라면, 그들이 아이에게서 폭력을 통해 수탈하는 건 무엇일까? ‘아이의 인생’이다. 많은 한국 부모는 그들 말을 빌면 ‘아이를 위해’ ‘아이 때문에’ 산다. 즉 그들은 제 인생을 사는 게 아니라, 아이의 인생으로 제 인생을 대체한다. 부모라면, 먼저 제 인생을 살 줄 알아야 한다. 왜 사는지, 인생의 의미는 무엇인지 답할 수 있어야 부모다.
2019/11/09 11:06 2019/11/09 11:06
2019/11/06 11:58
자유를 원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지만, 대부분의 인간은 자유를 두려워한다. 자유는 해방의 모험을 수반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유의 의미를 축소함으로써 안전을 도모한다. 지금 한국에서 생생하게 볼 수 있듯 우파/자유주의자는 자유를 가로막는 원인을 전근대적 습속, 파시즘의 잔재, 불공정한 시장 등으로 제한한다. 그 좌파 버전은 ‘신자유주의만 말하기’이다. 좌파에게 인간의 자유를 가로막는 근본 장벽은 자본주의인데, 신자유주의라는 자본주의의 최근 형태만을 강조함으로써 ‘자본주의 말하기’의 모험을 회피하는 것이다. 자본주의 역사에서 신자유주의는 결코 특별하지도 극단적이지도 않다. 이를테면 자본주의 역사에서 소득 불평등 경향이 그나마 완화한 경우는 케인스주의 30여 년 정도다. 신자유주의는 자본주의가 '자기 수정’ 능력을 갖춘 것처럼 한창 과시하다가 결국 실패하고 본연의 모습으로 회귀한 것일 뿐이다. 자본주의의 최근 형태로서 신자유주의 비판은 물론 필요하다. 그러나 신자유주의 비판으로 자본주의 비판을 대체하면 ‘신자유주의만 아니면 자본주의는 괜찮은 시스템’이라는 이야기가 된다는 건 기억하는 게 좋다.
2019/11/06 11:58 2019/11/06 11:58
2019/11/03 14:05
예전에 ‘가짜 뉴스’는 대부분 극우 진영에서 양산되었다. ‘안티조선’ 운동이 폭넓은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었던 이유도 그것이다. <조선일보>는 극우 논조를 가진 신문이기 이전에, ‘팩트’를 왜곡하고 조작하는 신문이었다. <한겨레>가 가장 많이 읽히는 신문은 아님에도 가장 신뢰받는 신문이었던 이유 역시 이념 이전에 ‘팩트 수호’에 엄격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근래 <한겨레>는 젊은 기자들의 공개 비판이 나오고, 급기야 ‘기획 기사’ 논란까지 일어남으로써 진영논리에 젖은 신문이라는 오명을 갖게 되었다. 가짜뉴스는 극우 진영(자칭 보수)은 물론 자유주의 진영(자칭 진보)에서 동시에 양산되고 있다. 한국에서 ‘진영논리’는 정치 진영이 제 논리를 갖고 또 그걸 사회적으로 관철하려 노력하는 활동을 뜻하지 않는다. 그런 정상적 진영논리라면 오히려 권장되어 마땅하다. 현재 한국에서 진영 논리란 자기 진영에 불리한 팩트는 감추려 들고 자기 진영에서 만들어진 가짜뉴스는 열심히 퍼트리는 ‘시민 기레기’ 운동을 뜻한다.
2019/11/03 14:05 2019/11/03 14: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