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7'에 해당되는 글 5건

  1. 2019/07/28 허상의 민족주의
  2. 2019/07/26 평화
  3. 2019/07/24 사유하는 개인들
  4. 2019/07/21 당신의 전쟁
  5. 2019/07/07 자의식
2019/07/28 11:39
인정하고 싶든 않든 민족은 실재하며 허상이 아니다. 허상은 ‘민족적 이해’다. 계급과 계층 간에 이해가 서로 적대하거나 다른 사회에서 ‘민족 전체의 공통 이해’ 같은 건 성립하지 않는다. 민족은 지배계급이 인민을 동원하고 착취하는 가장 효율적인 도구가 되기도 하고, 인민의 자기 해방에 기여하는 무기가 되기도 한다. (전자의 예로 분단 이후 극우 정권이 표방해왔고 현재 유사 리버럴 정권이 계승한 반일 민족주의를, 후자의 예로 일제 식민지 시기 사회주의 독립운동에서 항일 민족주의를 들 수 있겠다.) 문제의 핵심은 민족은 분명히 존재하되 ‘계급의 체’로 걸러진 상태로만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계급의 체’로 걸러지지 않은 허상의 민족주의, 일본인 전체의 이해나 한국인 전체의 이해를 말하는 민족주의는 언제나 동원과 착취의(혹은 자발적 동원과 착취의) 도구이다.
2019/07/28 11:39 2019/07/28 11:39
2019/07/26 12:56
이럴 때일수록 보통의 한국인과 보통의 일본인은 오히려 더 많이 만나고 더 많이 서로 도와야 한다. 전범 기업의 제품이나 독점적 대기업(일본뿐 아니라)의 제품을 불매하는 일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일이다. 그게 양측 지배 계급과 정치꾼들이 더 크게 엉뚱한 짓을 벌이고 그에 인민을 동원하는 일을 억지하고 평화의 길로 견인하는 최선의 방법이다. 일본 여행 계획을 취소하고, 일본 연주자의 공연을 거부하고, 일본인이 하는 식당이나 술집에 발길을 끊고, 일본 관광객에게 적대감을 표시하는 일은, 매우 애석한 말이지만 ’자발적 동원’의 길이다. 우리 대부분에게 가장 훌륭한 건 언제나 ‘승전’이 아니라 ‘평화’다.
2019/07/26 12:56 2019/07/26 12:56
2019/07/24 21:49
민주화운동은 국가주의와 전체주의가 억압한 개인의 가치를 되살리는 운동이었다. 박정희를 비롯한 독재자들은 언제나 사회가 북한의 침략 위협으로 전시 상태에 있음을 강조하며, 따르면 애국이고 이견을 표시하면 이적으로 몰았다.

민주화운동(과 노동운동)을 하다 죽거나 다친 사람들이 많다. 잘 드러나지 않고 있을 뿐, 빈곤과 어려움 속에서 살아가게 된 사람들도 적지 않다. 그러나 그 모든 사람의 노력과 희생을 제 훈장으로 삼아 권력과 부를 축적한 사람들도 있다. 현 정권과 여당의 핵심 성원은 대부분 그에 속하는 사람들이다.

물론 그들이 민주화운동의 정신을 이어 권력과 부를 사회가 좀 더 나은 쪽으로 변화하는 일에 사용한다면 굳이 그들을 윤리적으로 비난할 건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모든 상황과 조건을 활용하여 오로지 더 많은 권력과 부를 축적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이번 일본과 상황에서 그들이 보이는 ‘이해하기 어려운 오버’는 바로 그 사실을 또렷하게 증명한다.

그들이 현재 상황이 워낙 긴급해서 그러는 걸까? 만일 그게 다라면 그들은 민주화운동 세력으로서 제 이념적 ’상한선’을 넘진 않았을 것이다. 즉 ‘애국이 아니면 이적’이라는 말까지 들먹이며 국가주의와 전체주의적 선동을 하진 않을 것이다. 굳이 그래야만 현재 상황에 최선의 대처를 할 수 있는 것도 물론 아니다. 진실은 그 반대이다.

그들에게 현재 상황은 그들이 열망해 마지않는 것을 매우 효과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 것이다. 그건 크게 두 가지라 할 수 있다. 하나는 민주화 이후 한국 사회의 기득권과 부를 놓고 오랜 경쟁 관계에 있는 극우 세력을 완전히 꺾고 지배 체제를 독점하는 것이다. ‘국가주의’와 ‘애국/이적’ 논리는 분단 이후 지난 70여년 간 이어져 온 극우 세력의 가장 주요한 정치적 사회적 자산이다. 바로 그걸 빼앗아옴으로써 그들을 완전히 무력화할 수 있다.

또 하나는 ‘전시 상황’임을 내세워 노동 부문을 비롯하여 그들이 정권 초기에 인민의 환심을 사기 위해 내놓았던, 그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정책들을 거두어들임으로써 지배력을 확고히 하는 것이다(요 며칠 뉴스들은 이 작업이 매우 즉각적으로 진행되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물론 이 모든 일은 그들의 애국 선동이 얼마나 여론의 호응을 받는가에 달려 있다. 특히 ’국가주의 및 전체주의’ 카드는 호응이 충분하면 더할 나위 없이 효과적이지만, 호응이 적을 경우(대표적으로, 진보 시민들 상당수가 ‘이건 과하다’라 반발할 경우) 오히려 돌이키기 어려운 정치적 치명상을 입을 수 있는 모험이다. 적어도 현재까지는 ‘대성공’으로 보인다.

그러나 격정과 혼란 속에서 애국 선동에 잠시 호응한 사람들 가운데서도 일부는 결국 냉정한 이성을 회복할 것이다. 민주화운동의 정신을 간직한 사람들, 이 파렴치한 광기 속에서조차  ‘스스로 사유하는 개인들’에게 존경의 인사를 드린다.
2019/07/24 21:49 2019/07/24 21:49
2019/07/21 09:56
국가 간의 갈등이나 전쟁이 각 국가에 속하는 모든 사람에게 동일한 이해관계를 가지려면, 그 모든 사람이 동일한 이해관계에 있다는 전제가 필요하다. 계급이나 계층이 없는 건 물론 억압도 빈부격차도 없어야 한다. 물론 그런 국가는 실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국가 간의 갈등이나 전쟁이란 기본적으로 각 국가의 지배계급끼리의 이해관계에 기반한 갈등이며 전쟁이다. 여기에서 이해관계란 국가 간의 갈등이나 전쟁을 통해 국가 내의 저항이나 반대 세력을 다스리는 일을 주요하게 포함한다.

국가 간의 갈등이나 전쟁이란 언제나 벌이는 놈과 치르는 놈이 따로 있다. 지배계급이 제 이해관계에 기반하여 벌이는 갈등과 전쟁을 실제로 수행하고 총알받이가 되는 건 언제나 다수 인민이다. 지배계급은 ‘애국심’을 고취하여, 즉 제 이해관계를 국가 내의 모든 성원의 공통의 이해관계인 양 선동하여 인민을 동원한다. 이견은 모조리 이적이며 매국이다.

한국에서 반세기 이상 이 더러운 애국 선동을 도맡아온 건 극우세력이었지만, 이제 자유주의 세력이 주도하기 시작했다. 조국의 ‘애국과 매국’ 발언에 그가 예전에 사회주의운동을 한 일까지 들먹이며 비난할 건 없다. 전향한 지 오래고 줄곧 시스템 안에서만 그것도 중앙을 향해서만 활동해왔다. 그의 발언은 그의 현재 이념, ‘개인의 존중’이라는 자유주의의 기본조차 팽개치는 자기 모독의 개소리일 뿐이다.

당신이 사랑할 대상은 국가가 아니라 당신 자신이다. 어떤 애국 선동도 어떤 전쟁도 절대 반대하며 당신 자신과 이웃의, 상대국가 이웃들의 평화로운 삶을 요구해야 한다. 그리고 일본과 전쟁이 아니라 당신의 전쟁, 극우 세력과 자유주의 세력이 적대적 공생 관계를 이루며 90% 인민의 부와 권리를 수탈하는 현재의 전쟁에 집중해야 한다.
2019/07/21 09:56 2019/07/21 09:56
2019/07/07 10:08
10대 시절부터 품은 의문은 왜 한국 지식인의 글엔 자의식이 없을까 였다. 다들 구름 위에라도 앉은 듯 자신은 쏙 빼놓고 인간과 사회를 비평하는 모습은 기이하고 우스꽝스러웠다. 여전히 중장년 남성 지식인의 글에서 흔한 관습이다. 근래 소셜미디어, 특히 페이스북에서 나는 반대의 의문을 갖게 된다. 자의식 과잉을 넘어, 스스로 깊이 생각하고 객관성을 좇는 기본적인 과정마저 생략한 글이 지나치게 많다. 남들(페친은 친구가 아니다) 앞에서 매우 감상적인 어조로 구구절절 사연을 늘어놓으면, 팩트가 왜곡되고 누군가의 인격이 침해되는가와 아랑곳없이 값싼 위로와 용서가 줄줄이 달린다. 위로와 용서는 이전 혹은 이후 자신에 대한 위로와 용서와 교환된다. 우울증 아닌 사람을 찾기 어려운 가련한 사회이지만, 이런 뻔한 짓엔 가담하지 않는 게 좋겠다.
2019/07/07 10:08 2019/07/07 1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