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3'에 해당되는 글 5건

  1. 2019/03/29 세월
  2. 2019/03/27 새 홈페이지
  3. 2019/03/25 망신스럽다
  4. 2019/03/17 <자본> 새 번역
  5. 2019/03/01 김정은
2019/03/29 12:08
4.16재단에서 여는 ‘세월호 5주기 추념전’ 강연 프로그램에 참여한다. 권병준 작가와 함께 한다. 작년 아르코 강연 때처럼 내 강연 중간에 그의 퍼포먼스가 들어가는 방식이 아니라, 둘을 함께 진행하려 한다. 제목은 ‘물신 세계에서 세월’(Sewol in the fetish world). 세월호를 말하기란.. 언제나 어렵다.

4월 11일(목) 오후 7시
통의동 보안여관 B2
2019/03/29 12:08 2019/03/29 12:08
2019/03/27 15:20
고래가그랬어 홈페이지가 너무 오래 되어서 불편이 많았는데요.
새로 만들었습니다.
아직 완전하진 않습니다. 뭐든 의견 주시면 꼼꼼히 반영하겠습니다.



(고그 페북 페이지에선 고그 머그컵을 드리는 행사도 합니다.)
2019/03/27 15:20 2019/03/27 15:20
2019/03/25 16:20
한국당 지지율을 거론하며 ‘아직 정신 못 차린’ 대중을 개탄하는 사람들을 위해 적는다. 근래 한국 정치 지형에서 한국당 지지율을 결정하는 가장 주요한 요인은 무엇인가. 대중이 인식하는 현 정권과 한국당의 차이다. 차이가 클수록 한국당 지지율은 낮아지고 작을수록 높아진다. 우리는 그 출발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대중은 촛불을 통해 그 차이를 비현실적 수준으로 벌려 놓았다. 현 정권은 그런 조건의 전적인 수혜자로 출발했고 꾸준히 차이를 줄여왔다. 한국당이 제 힘으로 차이를 줄였다는 근거는 눈에 띄지 않는다. 한국당 지지율을 거론하며 비판할 대상은 당연히 대중이 아니라 현 정권이다. 현 정권 지지자 중엔 과잉된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비판 자체를 터부시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비판은 지지의 가장 주요한 방식이다. 이러다가는 옛날로 돌아간다, 정신 차려라, 냉정하게 비판하는 건 지지자의 기본이다. 그게 대중의 호감을 조금이라도 더 얻는 방법이기도 하다. 이런 이야기는 대개 경제 상황을 기준으로 하곤 한다. 그러나 경제 정책을 포함하여 한 정권의 정체성이 가장 압축적으로 드러나는 건 오히려 문화다. 쉽게, 현 정권의 문화부 장관 선임을 보자. 첫 장관 도종환 씨는 문화에 대해 아무런 철학이 없는 인물이었고, 이번 장관 박양우 씨는 문화에 대해 최악의 철학을 가진 인물이다. 현 정권 지지지가 아님에도, 나는 이 상황이 몹시 망신스럽다. 한가롭게 대중이나 개탄할 때가 아니다.
2019/03/25 16:20 2019/03/25 16:20
2019/03/17 08:29
황선길 선생이 <자본>을 번역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이미 <파시즘의 대중 심리>(빌헬름 라이히)와 <노동자 평의회>(안톤 판네쿡), <자본의 축적>(로자 룩셈부르크) 등을 번역했다. 모두 현대 사회를 읽는 데 필수적인 책들이다. 일주일 전 <자본> 1권이 나왔다. 시스템이 정비되지 않아 서점에 깔리는데  한 주 이상 걸린다기에 출판사에 가서 구입했다. 며칠 훑어본 결과는 만족스럽다. ‘정확하고 읽기 쉬운’ 한국어판 <자본>이 나왔다는 건 역사적 의미를 갖는다. 번역자의 노고를 응원하며 <자본>이라는 책에 대해 몇자 적어본다.

칼 마르크스라는 이름은, 특히 현실 사회주의 덕에 많은 사람에게 부정적으로 남아 있다. 그러나 한낱 쇼핑몰과 다름 없는 타락한 교회에도 예수의 십자가는 걸려 있는 법이다. 모든 게 국유화되고, 노동과 생산이 중앙의 계획과 관료의 관리와 통제 아래 이루어지며, 개인의 자유가 없는 집단적 삶은 마르크스와는 전혀 무관하다. 마르크스에게 가장 중요한 고민은 오히려 ‘자유로운 개인’이었다. 그가 자본주의 극복에 일생을 바친 이유 역시 자본주의 하에서 자유로운 개인으로 살아가는 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하에서 인간은 피지배계급인 노동자든 지배계급인 자본가든 물신의 노예로 살아간다. 물신 현상은 지배 이데올로기의 허위의식이 아니라 ‘전면적 상품생산 사회’라는 경제 구조 자체에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마르크스가 이상적으로 생각한 사회 시스템은 공산당 독재가 아니라 ‘협동조합’이다. 단 협동조합은 전인민의 재산으로, 국가적 차원으로 확장되어야 하며, 그걸 위해서는 정치 권력의 획득이 필연적이라 봤다. 그렇지 않을 때 협동조합은 (오늘 우리 앞에 존재하는 수많은 협동조합들이 생생히 보여주듯) ‘중간 계급의 주식회사’에 머문다.
마르크스의 주저인 <자본>은 혁명론이나 다음 사회의 청사진을 담은 책이 아니다. <자본>은 자본주의 경제의 ‘구조와 원리’를 분석하고 해명하는 데 집중한다. 흔히 <자본>은 19세기 자본주의를 기반으로 쓴 책이라 현재 자본주의에는 들어맞지 않는다고들 한다. 실은 정반대다. <자본>이 해명해낸 자본주의 경제의 ‘구조와 원리’ 가운데 상당 부분은 19세기 자본주의에 들어맞지 않았다. 여전히 남아 있는 이전 사회의 잔재와 습속 같은 사회적 조건이 자본주의를 제약했기 때문이다. <자본>이 제대로 효용을 드러내는 건 오히려 현재다. <자본>의 통찰은 세계화, 금융화, 양극화, 경제위기는 물론 인공지능, 플랫폼 노동 같은 자본주의의 최근 주제들을 꿰뚫는다. 2008년 미국발 금융 위기 때 월가의 엘리트들에게서 <자본> 읽기가 성행하여 화제가 되었다. 하여튼 그곳에 세상에서 가장 머리가 좋은 놈들이 모여있다는 풍문은 사실임이 분명하다. <자본>은 자본주의를 극복하려는 사람들은 물론, (마르크스 본인은 전혀 바라지 않는 일이겠지만) 자본주의에서 성공을 위해 자본주의를 파악하려는 사람들에게도 결정적이다. 1950년대에 사르트르가 1990년대에 데리다가 거듭 말했듯 ‘마르크스는 우리와 동시대인’이다.
2019/03/17 08:29 2019/03/17 08:29
2019/03/01 08:01
‘김정은이 두번의 기회를 날렸다’ ‘트럼프에게 속았다’ 하는데 꼭 그렇진 않다. 김정은이 트럼프와 첫 회담을 벌이기 직전(불과 8개월 전이다) 국제 사회에서 북한의 위상과 이미지를 기억할 필요가 있다. 김정은은 북한을 미국에게서 대놓고 모욕당하는 국제 사회의 이면 국가에서 미국과 대등하게 담판을 벌이는 전면 국가로 바꾸어 놓았다. ‘결렬’은 실패가 아니라 그 대등함을 실제화했다는 점에서(전세계를 결과의 예측 불가능성에 끌어들였다는 점에서) 성공에 속한다. 어차피 김정은으로선 완전한 핵포기의 선행이 불가능하며, 트럼프도 그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안다. 그럼에도 두 사람이 회담을 지속하는 데는 그 자체가 주는 유익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에서 유익은 각자의 국가뿐 아니라 각자의 정치적 유익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모든 게 쇼이니 한반도 평화의 진전엔 소용없는 일인가? 역시 그렇진 않다. 이 모든 상황은 분명한 진전을 만들어낸다. 전세계가 8개월 전에 비해 한반도에서 전쟁 가능성이 줄었다고 생각하고 있고 그런 생각이 현실을 강제하는 힘이 있다.
2019/03/01 08:01 2019/03/01 08: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