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2'에 해당되는 글 7건

  1. 2018/12/27 두려움
  2. 2018/12/27 개혁은 혁명보다 어렵다?
  3. 2018/12/19 진행 중인 명작
  4. 2018/12/13 머슴들의 근심
  5. 2018/12/13 20년
  6. 2018/12/04 고그 15주년 구독행사
  7. 2018/12/03 인문학은 질문이다
2018/12/27 11:33
만일 아래의 이야기 - 개혁은 혁명적 지향으로만 이루어진다 - 가 썩 와닿지 않거나 거부감이 든다면, 상황을 국가나 거대 사회가 아니라 개인적 관계로 바꾸어 생각해보길 권한다. 다르지 않다. 심각한 수준에서 폭력적이고 이기적인 행동을 지속하는 배우자나 친구가 개혁(사과와 용서를 통한)으로 바뀌던가? 절대 바뀌지 않는다. 그는 개혁에 기생한다. 오로지 혁명(절연과 절교를 감수하는)으로만 바뀐다. 정말 관계가 끝날까 두려울 수 있다. 그러나 자신을 존중한다면 그런 관계는 되도록 빨리 끝내야 한다. 국가나 사회에서든 개인 관계에서든, 인간의 고통과 억압을 지속하는 힘은 언제나 ‘혁명에 대한 두려움’이다.
2018/12/27 11:33 2018/12/27 11:33
2018/12/27 10:25
흔히 개혁은 ‘혁명보다 현실적이고 현명한 사회변화‘ 쯤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역사를 조금만 살펴보면 알 수 있듯, 개혁이 이루어지는 유일한 경로는 ‘혁명적 지향에 대한 지배계급의 타협’이다. 지배계급은 구체적 위기의식 없인 절대 먼저 양보하거나 타협하지 않는다. 예컨대 오늘 한국인들이 선망하는 사민주의 복지사회는 젠체하는 사민주의자들이 말하듯 ‘사민주의 아이디어에 대한 전 사회적 양보와 타협’으로 만들어진 게 아니다. ‘혁명적 사회주의 운동의 공세에 대한 지배계급의 도리 없는 타협’(그래서 ‘계급 타협’이라 부른다)으로 만들어졌다. ‘개혁은 혁명보다 어렵다’는 말은 개혁이 혁명적 지향의 산물이라는 사실을 은폐한다는 점에서 교활하며, 개혁으로는 개혁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모른다는 점에서 어리석다. 진심으로 개혁을 원한다면 혁명을 시작하라. 혁명이 싫다면 개혁도 꿈꾸지 마라.
2018/12/27 10:25 2018/12/27 10:25
2018/12/19 15:39
요 며칠 고래가그랬어엔 출판사들로부터 김은성 작가 연락처를 묻는 전화가 많았다. 김영하 씨가 TV에서 그의 책 <내 어머니 이야기>에 대해 언급해서 책을 찾는 사람이 많은데 정작 책은 절판 상태라고 했다. <내 어머니 이야기>는 4부로 되어 있는데 2, 3, 4부를 고그 69호부터 110호까지 연재했다. 처음 연재 이야기가 나왔을 때 40대인 작가가 그리는 제 외할머니와 어머니의 3대에 걸친 여성사라 ‘어린이 잡지’에 맞는가 논의가 있었다. 그러나 오히려 그래서 좋다는 결론이 나왔고, 특히 예술성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고래가그랬어는 작가를 선정할 때 어린이 독자의 ‘미적 체험’을 중시하는 편이라, 예술적이고 작가적인 만화가 많이 실린다.) 단행본은 모두 새만화책에서 발간했다.

좋은 책이 늦게라도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읽히는 건 물론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애석한 건 이렇게 좋은 책을 제 힘으로 알아보는 사람이 적었다는 사실이다. 전에 <느낌표>라는 TV 프로그램의 책을 소개하는 코너를 기억할 것이다. 거기에 책이 소개되면 순식간에 수십만부가 팔려서 출판사와 작가들의 관심이 많았다. 책이 선정되었는데 거절된 경우가 딱 한 번 있다. 권정생의 <우리들의 하느님>이다. 그 책은 참 좋은 책이고, 나도 몇 권 사서 선물한 일이 있다. 그 책이 <느낌표>에 소개되어 더 많은 사람들이 읽을 때 생기는 분명한 유익이 있다. 그러나 선생은 해악이 더 많다고 판단한 것 같다. “책은 서점에서 한 권 한 권 짚어가며 고르는 것이고, 특히 아이들은 책을 고르는 일이 얼마나 행복한지 깨쳐야 하는데, 왜 TV에서 ‘이것 보십시오, 저것 보십시오’ 해서 그걸 막는가?”

선생이 우려한 문제는 더욱 심화되어 오늘 한국엔 제 취향과 안목으로 책을 고를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사라졌다. 이건 책에 한정된 문제가 아니라 지식과 교양 전반에 관한 일이다. TV의 ‘예능 교양’을 즐겨보고 거기 소개된 책을 사고 출연한 유명인의 말을 곱씹는 일과, 나의 지적 주체성을 가꾸는 일이 어떤 관련을 갖는지 살펴본다면 좋을 것이다. 서점에 나가 천천히 내 힘으로 책을 고르는 일을 시작해본다면 더욱 좋을 것이다. 처음엔 고른 결과가 좋지 않아 실망할 수도 있지만 그 실망들이 책을 고르는 능력을 키운다. 고그를 구독하고 있다면 아이와 함께 '진행 중인 명작’을 골라보는 것도 좋겠다.
2018/12/19 15:39 2018/12/19 15:39
2018/12/13 10:53
현재 한국에서 진보와 보수니 좌파와 우파니 하는 이야기들은 대체로 헛소리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한국 사회는 진보와 보수로도 좌파와 우파로도 나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는 ‘좌우 기득권 연합’(10)과 ‘나머지 인민’(90)으로 나뉘어 있다. 그리고 그 분할은 갈수록 고착화하고 세습화한다. 한국 사회는 내용 면에서 조선시대 신분제와 다를 바 없는 상태로 치닫고 있다. 그 가장 주요한 원인은 90의 인민이 10의 기득권 다툼을 제 일로 받아들여 머슴 노릇을 한다는 데 있다. ‘좌파가 세상을 점령했다’ 혹은 ‘극우정권이 다시 온다’ 같은 말들은 그 자체의 의미를 떠나 머슴들의 근심을 표현한다. 이른바 촛불 혁명은 보수 기득권세력의 패악질에 분노한 인민이 진보기득권 세력을 불러들이는 일로 귀결했다. 이 상황을 빠져나가는 유일한 길은 90의 인민이 좌우 기득권 연합의 머슴 노릇을 거부하고 제 삶의 싸움을 시작하는 것이다. 만일 한국 사회에 진보나 좌파라는 게 실제로 존재할 수 있다면, 오로지 그 싸움에 기여하는 일로서다.

2018/12/13 10:53 2018/12/13 10:53
2018/12/13 07:59
①평소 노동을 비롯한 온갖 사회 문제에 각별한 관심과 진보적 태도를 피력하다가 ②선거 때면 ‘극우 척결 우선’ ‘한국적 정치 상황’ ‘사회 변화의 점진성’ 등의 논리로 리버럴 정당의 집권에 온 힘을 다 쏟고는 ③리버럴 정권이 결국 본색을 드러내고 여론이 악화될라치면 개혁의지가 변질되었네, 초심을 잃었네 비난하며 ①로 돌아간다.
이 행태를 20년째 반복하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그들이 리버럴 집권에 집착하는 이유는 예의 ‘치우침 없는’ 정치적 소신 때문이다. 그러나 그 정치적 소신을 만들어내는 건 자취방을 전전하며 경찰에 쫓기던 시절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늘어난 은행 잔고와 부동산과 사회 문화 자본을 안정화하면서도 '진보 행세' 하려는 욕구다. 단지 그 욕구 때문에 그들은 대중과 급진 정치의 차단막이 됨으로써 이 사악한 자본의 제국의 수호에 기여한다. 또 한명의 젊은 하청 노동자의 죽음 앞에서 그들이 유체이탈적 개탄은 멈추고 그 사실을 되새기길 바란다. 20년이면 충분하지 않은가.
2018/12/13 07:59 2018/12/13 07:59
2018/12/04 16:08
1년 구독권으로 15개월,
2년 구독권으로 30개월 동안 구독할 수 있다

(구독기간이 많이 남은 독자도
미리 구독 연장할 수 있습니다.)

2018/12/04 16:08 2018/12/04 16:08
2018/12/03 11:10
인문학은 지식이 아니라 질문이다.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그리고 그와 관련한 끊임없는 질문이다. 우리가 책에서 얻을 수 있는 인문학적 지식은 그 질문들의 축적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습득이 나를 인문주의자로 살게 해주는 건 아니다. 남의 질문으로 내 질문을 대체할 순 없다. 인문학은 ‘고독한 질문’이며, 인문학적 지식은 다만 그 질문에 기여한다.
2018/12/03 11:10 2018/12/03 1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