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5'에 해당되는 글 16건

  1. 2018/05/27 바쁜 대통령
  2. 2018/05/26 대단한 북한
  3. 2018/05/25 상인 트럼프
  4. 2018/05/23 초등학생을 안 좋아합니다
  5. 2018/05/21 착취인가 약탈인가
  6. 2018/05/19 비폭력주의
  7. 2018/05/19 평화
  8. 2018/05/18 고정희
  9. 2018/05/16 미투 운동이 뭐예요?
  10. 2018/05/09 기둥이 없다
  11. 2018/05/08 혁명
  12. 2018/05/05 내가 해봐서 아는데
  13. 2018/05/03 평화
  14. 2018/05/03 진행 중인 역사
  15. 2018/05/02 슬립 화면
  16. 2018/05/02 이행
2018/05/27 11:22
타임라인이 두가지 주제로 가득하다. 하나는 2차 남북정상회담, 또 하나는 민주당이 주도한 최저임금 산입 범위 개정이다. 전자는 여전히 과정 중에 있는 일이지만 후자는 이미 결론이 났다. 이번 개정의 요점은 최저 임금 계산에 상여금과 복리후생비의 일부를 넣게 함으로써, 최저임금이 올라도 실제 임금은 오르지 않거나 오히려 줄게 만든 것이다. 현재 법으론 기본급과 직무수당 월 138만원에 상여금 50만원 복리후생비 20만원을 받는 노동자는 최저임금제 위반이다. 올해 최저임금은 157만원인데 최저 임금을 기본급과 직무수당으로만 계산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개정된 법으론 최저임금을 넘게 된다. 최저임금의 25%(39만2500원)를 초과한 상여금과 7%(10만9900원)를 초과한 복리후생비를 최저 임금 계산에 넣기 때문이다. 138만원+10만7500원+9만100원=157만7600원. 덧붙여 기업이 상여금 지급 시기를 변경할 때 과반수 노조나 노동자 중 과반수의 동의를 받아야 하던 걸 과반수의 ‘의견 청취’만 하면 되도록 함으로써 최저임금 개정을 한층 실효성 있게 했다. 한반도 평화에 노동존중 세상에, 문재인은 정말 바쁜 대통령이다. 건강이 염려된다.
2018/05/27 11:22 2018/05/27 11:22
2018/05/26 22:24
하고 많은 NL 출신도 아니고 북한은 사회주의 사회와 거리가 멀다는 생각도 여전하지만, 갈수록 드는 생각은 참 대단한 체제라는 것이다. 반공주의자들이 말하듯 인민의 눈과 귀를 막고 세뇌하고 억압하는 방식만으로 70여 년을 건재할 순 없다. 사회가 아니라 거대한 종교 집단이라는 설명 역시 마찬가지다. 어떤 식으로든 문제가 생겨나고 결국 무너지게 되어 있다. 지배 체제에 대한 인민의 존경과 신뢰가 상당 수준 지속되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이다. 우리가 북한을 잘 모른다, 라고 할 때 핵심은 결국 그것 아닐까.
2018/05/26 22:24 2018/05/26 22:24
2018/05/25 11:20
트럼프는 제 방식대로 가고 있을 뿐이다. 그가 북한 문제와 관련하여 ‘그 답지 않은’ 행보를 보여온 것도 ‘그답게’ 또 한번 뒤튼 것도, 실은 그의 방식을 벗어나지 않는다. 그는 명분이나 대의를 앞세우는 이념형 정치인이 아니라 배팅과 흥정을 노골화하는 상인형 정치인이다. 그의 모든 행동에 일희일비하진 않아도 될 것이다. 그러나 트럼프가, 아니 트럼프와 김정은이 매우 특별한 협상 방식을 구사하는 인물들로 보이는 보다 결정적 원인은 ‘역사적 상황’이기 때문이다. 역사적 상황에서 협상 방식은 당연히 통상적 외교적 협상의 범주를 벗어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결과를 누구도 쉽게 예측할 수도 없다. 분명한 건, 이 역사적 상황의 실체는 당연히 그들과 그들로 대변되는 양측 지배계급의 치밀한 이해관계 계산과 절충의 산물이라는 점이다. 그들이 협상을 시작했다는 건 이미 그 부분이 상당 부분 진척되었음을 의미한다. 미국과 북한은 전쟁을 피한다, 북한 핵문제를 해결한다, 북한의 체제 지속을 모색한다, 같은 것들이다. 물론 아직은 유효한 상태다.

첨언하자면, 지금 여실히 확인되듯 이 역사적 상황의 주체는 미국과 북한이다. 자립적 국가를 만들지 않은 건 남한 스스로의 선택이었고, 좋든 싫든 당장 돌이킬 순 없다. 역사엔 ‘오랜 책임’이 따른다.
2018/05/25 11:20 2018/05/25 11:20
2018/05/23 22:44
‘아이들을 너무 좋아하시나 봐요.’ 어린이 교양지 발행인이랍시고 이따금 덕담을 듣는다. 나는 말한다. ‘초등학생을 별로 안 좋아합니다. 특히 초등학교 고학년 남자는 중학생 남자와 함께 인간의 가장 아름답지 않은 상태라 생각합니다.’ 웃으며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에 상대는 (적어도 내가 보기엔) 즉각적이고 심각한 충격이나 상처를 받진 않는다. 나는 더 말한다. ‘그들을 좋아하지 않지만 가장 돕고 싶은 게 그들입니다.’ 상대는 이제야 뭔가 알 것 같다는 얼굴이 되고 대화는 그쯤에서 마무리된다. 해본 적은 없는, 다음 내 말은 아마도 이렇다. ‘좋아한다는 건 좋아하는 감정보다는 그에게 필요한 게 뭔지 자꾸 생각하게 되는 일인 것 같습니다.’
2018/05/23 22:44 2018/05/23 22:44
2018/05/21 20:06
사회 문제를 윤리나 인격의 차원으로 가져가면 그 구조와 본질을 벗어나기 쉽다. 우리가 ‘자본주의는 비인간적인 시스템이다’라고 말할 때, 그건 ‘탐욕스러운’ ‘갑질 폭력’ 따위로 표현되는 자본주의의 룰조차 지키지 않는 부류뿐 아니라, 자본주의 자체를 두고 하는 말이다. 자본가가 다 탐욕스럽고 난폭한 사람은 아니다. 노동자가 다 선량하고 인간적인 사람은 아니 듯 말이다. 그러나 자본가는 제 인격과 무관하게 무한 이윤과 성장 추구라는 자본의 속성을 따를 수밖에 없다. 만일 그렇지 않을 때 경쟁에서 뒤처지고 파산 위협에 직면한다. 자본가는 ‘인격화한 자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과도한 이윤 추구는 자본가의 지극히 정상적 행동이며, 그 주요한 기반은 노동자로부터 잉여가치 착취다.(여기에서 ‘착취’는 감정적인 단어가 아니다. 노동자가 자본가로부터 착취당한다는 말은 노동자가 임금을 받고 자신을 위해서뿐 아니라 자본가를 위해서도 노동하는 것을 말한다. 그렇지 않다면 자본가는 뭐하러 노동자를 고용하겠는가?) 주류 미디어는 종종 이윤과 성장을 추구하면서도 인간미를 가진 자본가를 내세운다. 그는 착취에 감정까지 동원하는 좀더 교활한 자본가라 할 수 있다. 앞서 말한 자본주의의 룰조차 지키지 않는 부류는 착취를 넘어 약탈을 자행하는 자본가다. 약탈에 분노하는 건 당연하지만 문제의 본질은 착취, 즉 자본주의의 정상성에 있음을 잊을 필요는 없다.
2018/05/21 20:06 2018/05/21 20:06
2018/05/19 12:47
예수나 간디, 킹 같은 비폭력주의자들이 하나같이 폭력에 희생당한 첫번째 이유는 그들이 폭력의 현장에 있었기 때문이다. 비폭력주의는 오로지 폭력의 현장에서만 성립되며 구현된다. 두번째 이유는 그들의 비폭력이 지배체제와 기성질서를 위협했기 때문이다. 비폭력주의의 목적은 비폭력이 아니다. 비폭력주의는 비폭력이 폭력보다 더 강력한 투쟁 수단이라 믿는 운동이다.
2018/05/19 12:47 2018/05/19 12:47
2018/05/19 11:12
평화는 평화로운 상태와 다르다. 평화를 좇는 행동은 오히려 나의 평화로운 상태를 포기하는 일에서 시작된다. 평화가 파괴된, 폭력이 난무하는 현장에 다가서는 일이기 때문이다. 지적이고 위엄 있는 행동이지만 두렵고 위험한 일이다. 요컨대 평화는 일년 내내 안전한 토론회장이나 예배당 같은 곳에 둘러앉아 ‘모든 폭력은 나쁘다’ 논평하는 평화주의자들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2018/05/19 11:12 2018/05/19 11:12
2018/05/18 14:26
다시 5.18. 저녁에 할 종교청년 평화학교 강의를 위해 전에 쓴 것들을 뒤적이다 불현듯 고정희가 생각났다. 고정희, 고정희 시인, 고정희 선배. 그의 '밥과 자본주의' 연작에서 한편을 읽는다.

*

새 시대 주기도문

권력의 꼭대기에 앉아 계신 우리 자본님
가진자의 힘을 악랄하게 하옵시매
지상에서 자본이 힘있는 것같이
개인의 삶에서도 막강해지이다
나날에 필요한 먹이사슬을 주옵시매
나보다 힘없는 자가 내 먹이가 되고
내가 나보다 힘있는 자의 먹이가 된 것같이
보다 강한 나라의 축재를 복돋으사
다만 정의나 평화에서 멀어지게 하소서
지배와 권력과 행복의 근본이 영원히 자본의 식민통치에 있사옵니다(상향~)

고정희(1948~1991)
2018/05/18 14:26 2018/05/18 14:26
2018/05/16 17:28
몇달 전 고래가그랬어에 연재된 <여성 혐오가 뭐예요?> 시리즈를 pdf로 만들어 나누었는데 유용하게 사용했다는 분들이 많았다. 최근 연재한 <미투 운동이 뭐예요?> 시리즈도 pdf로 만들었다. 아이와 함께 읽고 토론도 하시길 빈다. 페미니즘엔 여러 경향과 노선들이 있다. 그러나 아이들은 그런 경향과 노선을 불문한 페미니즘의 보편적이고 기본적인 개념들부터 익힐 필요가 있다는 게 고래의 생각이다. 기본 개념조차 갖추지 못한 채 성인이 되어버린 사람들이 얼마나 심각한 문제를 만들어내는지, 근래 우리는 생생하게 목격하고 체험하고 있다.



2018/05/16 17:28 2018/05/16 17:28
2018/05/09 16:32
4개의 기둥에 노동은 없다. 실제로 노동 현실은 그대로이거나 이전 속도대로 나빠지고 있다. 노동 현실이 중요한 건 협의의 의미에서 노동 현실을 넘어, 임금 받고 살아가는 다수의 삶으로 본 경제 현실이기 때문이다.(통상 ‘경제 현실’은 자본과 지배계급의 삶으로 본 경제 현실을 말한다.) 그런데 지지율이 이른바 자유 민주주의 정치의 정상 범주를 훌쩍 넘어서는 현상은 뭘 말하는 걸까. 오늘 대개의 한국인들이 실제 세계가 아니라 정치 극장의 관객으로 살아간다는 뜻이다. 이번 영화는 지난 영화들보다 훨씬 더 잘 만든 작품이라는 뜻이다. 누구도 비난할 순 없다. 현실이 막막하면 영화를 살아갈 수도 있지 않은가. 다만 영화가 현실을 대체할 수 없을 뿐.

2018/05/09 16:32 2018/05/09 16:32
2018/05/08 16:23
혁명이 불가능한 이유는 사람들이 모이는 능력을 잃어서가 아니라 혼자 생각하는 능력을 잃었기 때문이다. 혁명은 집단의 함성이 아니라 고독의 고요에 기인한다. 혁명은 삶의 사상가들이 짓는 다른 세계다.
2018/05/08 16:23 2018/05/08 16:23
2018/05/05 21:02
맑스 탄생 200주년. 이미 한달 동안 세미나에서 맑스에 대해 정색하고 말한 터라, 다만 한담 거리 하나.

한국 자유주의자들의 특징은 대다수가 한때 좌파였다는 건데, 관련한 코믹한 모습들이 많다. 그중 하나가 맑스를 말할 때 어김없이 드러나는 자격지심과 치기다. 그들이 맑스의 이론이나 사상을 구체적 논거를 갖고 비판하거나 평가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들은 그저 '내가 해봐서 아는데'만 반복한다. 그러니까 그들은 자신이 예전에 맑스를 신봉했지만 이젠 부정한다는 사실을 근거로, 맑스의 오류와 비현실성을 완벽히 논증한다. 사연 없는 인생이 있겠냐만, 적어도 인류의 역사와 사회 문화 전분야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 한 사상가를 제 사적 행적을 근거로 재단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을 제정신이라고 보긴 어렵다. 결국 그들이 알려주는 유일한 사실은 그들 자신에 대한 것이다. 맑스를 신봉하던 예전이나 부정하는 지금이나 맑스를 잘 모른다는 것. 모르는 건 모른다고 말하는 게 가장 좋다.
2018/05/05 21:02 2018/05/05 21:02
2018/05/03 12:53
평화에 대한 흔한 오해 중 하나는 평화가 신념이나 태도로 결정된다는 생각이다. 그런 생각은 세상이 평화를 염원하는 선한 세력과 평화를 파괴하려는 악한 세력으로 나뉘어져 있다고 가정한다. 그러나 평화를 파괴하려는 악한 세력 같은 건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는다. 모두가 가능한 한 평화를 원한다. 평화가 파괴되는 유일한 경로는, 지배계급의 이해관계가 충돌할 때다. 이해관계의 충돌없이 평화를 깨트리는 지배계급은 없고, 이해 관계가 충돌할 때조차 신념과 태도로 평화를 고수하는 지배계급도 없다. 소수의 지배계급이 존재하는 한 제아무리 평화에 대한 염원이 넘쳐흘러도 평화는 결국 파괴되기 마련이다. 평화를 얻는 유일한 방법은 염원이 아니라 투쟁, 다수 인민이 지배하는 사회를 만들어가는 투쟁이다.
2018/05/03 12:53 2018/05/03 12:53
2018/05/03 09:40
종교개혁을 타락한 카톨릭 교회에 대한 개혁운동으로만 기억하면, 부르주아 계급이 귀족의 세상을 접수해가는 장구한 전쟁의 신호탄이자 첫 승리라는 역사를 잊게 된다. 종교개혁은 신분은 신의 뜻임을 가르치던 교회에 사유재산과 경쟁이라는 자본주의 교리를 심었다. 미국 남북전쟁을 링컨의 위대한 휴머니즘으로만 기억하면, 상공업 위주 청교도가 중심이던 북부와 노예 농장을 하던 귀족 출신 남부의 이해 충돌이라는 역사를 잊게 된다. 노예 해방, 즉 자유로운 노동자의 공급은 미국 자본주의의 필연적 요구였다. 남북 정상회담에서 감동을 느끼는 건 인지상정이다. 그러나 이 상황을 민족과 평화 회복의 의미로만 본다면, 극우에서 리버럴로 정치 개편에 이은 남한 지배계급의 경제 재편 전략이라는 역사를 잊게 된다.

역사는 지난 시사이며 시사는 진행 중인 역사다. 역사는 시사의 눈으로 시사는 역사의 눈으로 봐야 한다.
2018/05/03 09:40 2018/05/03 09:40
2018/05/02 11:58
얼마 전 이북기계를 바꾸었다. 작동도 부드럽고 화면이 커서 pdf 문서 읽기가 편해졌다. 문제는 슬립화면이 영 눈에 거슬렸다는 것. 웹에서 이것저것 찾아보다가(이런 것에 과도하게 집착하는 편이다) 새로 만들었다. De omnibus dubitandum. 모든 것을 의심하라. 맑스의 좌우명이던 데카르트의 말. 서체는 깔끔하게 팔라티노로.
2018/05/02 11:58 2018/05/02 11:58
2018/05/02 11:18
내일은 <혁명노트, 메타노이아> 세미나의 마지막 회다. 노예, 물신, 반공에 이어 이행을 주제로 한다. 해방이 아니라 이행(transition)인 이유는 해방이란 선언되는 순간부터 소멸되는 속성을 갖기 때문이다. 진정한 의미에서 해방은 '이행의 지속'이다. 돕과 스위지, 브레너 이행논쟁 등을 통해 생산양식의 변화가 진행되는 과정을 살펴보고, ’자본 : 노동’(잉여가치론), ‘자본 : (전체)인간’(물신숭배론)으로 구축된 이중 억압의 시스템을 벗어나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짚어본다. 물론 단일한 결론보다는 이후 각자의 삶에서 지속될 사유의 단초를 만들어보는 게 목표다.

부산 복순도가에서 보내온 맛있는 손막걸리도 함께 나누며 편안히 진행할 생각이다. 내일 저녁 7시 대안공간 루프.

문의 gallery.loop.seoul@gmail.com
2018/05/02 11:18 2018/05/02 1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