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9'에 해당되는 글 10건

  1. 2017/09/30 추석 선물로 고래를
  2. 2017/09/29 예능의 길
  3. 2017/09/26 본성
  4. 2017/09/25 좋은 책 2
  5. 2017/09/25 좋은 책
  6. 2017/09/18 양아치들
  7. 2017/09/18 역설
  8. 2017/09/12 어른 문제
  9. 2017/09/11 속초 북토크
  10. 2017/09/06 위선
2017/09/30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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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30 09:17 2017/09/30 09:17
2017/09/29 10:04
썰전이나 알쓸신잡 같은 예능화한 자유주의 시사교양 프로그램이 갖는 미덕이 있다. 예컨대 극우적 사고에 영향을 받던 사람이 그런 프로그램을 보고 상식적인 사고를 회복하는 경우를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이미 그 정도 의식은 충분히 가진 사람들이, 즉 좀더 진전된 사유와 사회적 상상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늘상 그런 프로그램을 빠트리지 않고 또 그 미덕을 상찬하는 데 머무는 현상은 매우 애석한 일이다. 알다시피 문화 산업을 통한 우민화는 민주주의 절차를 수반하는 후기 자본주의 체제의 핵심적 지배 전략이다. 그러나 그 대상은 사회 형편에 따라 생생하게 변화한다. 체제 위협의 가능성을 품은, 체제가 가장 각별히 다스릴 필요가 있는 ‘주요 대중’이 그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미국의 예능 프로그램들이 노골적으로 배제된 하층 계급 인민의 의식을 고정하는 임무를 수행해왔다면, 근래 한국의 시사교양 예능 프로그램들은 진보 경향 인텔리 계층의 의식을 자유주의에 고정하고 지속적으로 하향 평준화하는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하고 있다.
2017/09/29 10:04 2017/09/29 10:04
2017/09/26 13:12
인간이 이기적 본성을 가진다는 주장과 이타적 본성을 가진다는 주장은 여전히 갈등 중이지만, 인간이 두 본성을 동시에 가진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문제의 핵심은 이기적 본성을 더 드러나게 하는 경향의 사회와 이타적 본성을 더 드러나게 하는 경향의 사회가 있다는 사실이다.
2017/09/26 13:12 2017/09/26 13:12
2017/09/25 14:37
좋은 책의 또 다른 특징은 생각을 떠올리게 하여 맹렬하게 이어지게  만든 구절과 떠올려진 생각이 내용상으로는 직접 연결이 안 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마치 울퉁불퉁한 곳(우리의 정신처럼)에 부딪힌 공처럼 좋은 책은 방향을 예측할 수 없는 고유한 지적 충돌을 만들어낸다.
2017/09/25 14:37 2017/09/25 14:37
2017/09/25 09:33
직접 배우거나 얻을 게 많은 책은 평범한 책이다. 좋은 책은 끝없이 생각을 하게 만드는 책이다. 좋은 책은 나를 지적 계보로 품는 게 아니라 내 지적 해방을 돕는다.
2017/09/25 09:33 2017/09/25 09:33
2017/09/18 13:24
이른바 지식인 노릇의 가장 주요한 일은 비판인데, 비판의 대상에 지인이 결부되어 있는 경우 마음이 쓰이는 게 인지상정이다. 그러나 그걸 뛰어넘는 건 지성의 기초다. 정히 어렵다면 그깟 지식인 노릇 안 하면 된다. 대다수가 그렇듯 별스럽지 않은 일을 하며 묵묵히 살아가는 게 백 배 더 훌륭하다. 비판에 대한 태도도 마찬가지다. 어떤 비판이 제출되고 내가 평소에 피력해온 내용과 일치하지만 대상이 지인일 때 선뜻 동조하기 쉽지 않다. 그러나 역시 그걸 뛰어넘는 건 지성의 기초다. 근래 한국 지식인 사회는 지성의 기초가 사라진 상태라 할 수 있다. 비판이 나타나면 지식인이라는 자들이 그 내용에 반응하는 게 아니라 양아치처럼 패거리를 짓고, ’사적 해석’(개인 감정이 있어 씹는 거라는 따위)과 뒷담화나 일삼는다. 수십년 나이 차이에도 깍듯이 존대하며 논쟁을 완수한 조선 선비들이 있고 토론장에서 원수처럼 싸우는데 사적으론 죽고 못사는 벗인 이전 시대 지식인들이 있다. 포스트 모던을 경과했다는 지식인들이 유교 정신과 도구적 근대성에 갇힌 지식인들보다 자의식 없는 행태를 보이는 건 슬픈 코미디다.
2017/09/18 13:24 2017/09/18 13:24
2017/09/18 10:25
한 국립기관에서 프로젝트를 진행한 친구가 그 기관이 얼마나 비합리적이고 엉망으로 돌아가는지, 그래서 선의로 뭔가 해보려는 사람들이 얼마나 고생하고 피해를 입는지 토로했다. 충분한 공감을 표시했다. 그리고 덧붙였다. '역설적이게도 그런 상태야말로 그 기관이 유지되는 주요한 힘이다. 만일 그런 모든 문제들이 합리화하고 제대로 돌아간다면 거기에서 일하는 사람들 중 상당수는 일할 이유가 사라지고 나아가 그 기관이 존재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처하게 될 테니.’ 물론 그 국립기관에만 해당하는 이야기는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없어도 되는 곳에서 안 해도 되는 일을 하며 살아간다.
2017/09/18 10:25 2017/09/18 10:25
2017/09/12 09:40
같은 인간인데 굳이 아이와 어른으로 가르는 이유는, 아이는 성장 과정에 있고 어른은 그걸 도울 의무가 책임이 있다는 뜻이다. 아이들이 미쳐 돌아갈 때 어른들이 가장 먼저 할 일은 우리가 어떻게 했기에(살았기에) 아이들이 저리 되었을까 함께 질문하는 것이다. 그런데 법을 고쳐서 어른과 똑같이 처벌을 하자니. 한국에서 교육이 사라진 지, 어른이 아이에게 인간과 인생에 대해 가르치길 일절 중단하고 오로지 아이의 교환가치에만 몰두한 지 벌써 20여 년이다. 아이들이 모조리 좀비로 변하지 않은 걸 오히려 감사할 일이다. 세상에 아이들 문제, 청소년 문제 같은 건 없다. 어른 문제가 있을 뿐.
2017/09/12 09:40 2017/09/12 09:40
2017/09/11 17:23
속초의 서점 '완벽한 날들'에서 북토크를 한다.
아래는 주최 측의 공지 내용.

일시 9월 22일 금요일 7시 30분
참가비 1만원(음료포함)
신청 01087212309
장소 완벽한날들
2017/09/11 17:23 2017/09/11 17:23
2017/09/06 11:26
성 문제에 있어서 한국보다 위선적인 사회는 없다. 위선적이어서 기괴하고 또 가련할 만치 무능하다. 그는 그러니까 성이라는 주제에 몰두했다기보다는 이 사회의 위선에 몰두했다고 평가하는 편이 좀더 적절할 것이다. 운동권 학생들에 대한 그의 냉소도 같은 맥락이었을 게다. 예민한 감수성을 가진 그에게 ‘저항하는 청년’이란 현재 기득권 세력을 악마화하며 다음 세상의 기득권을 향해 달려가는 자들이기도 했을테니. 보다시피, 그들은 그의 예측을 훌쩍 뛰어넘어 경제 자본은 물론 사회, 문화, 상징 자본까지 고루 갖춘 끝판 기득권 세력으로 살아간다. 결국 그는 그런 좌우도 상하도 없는 위선 속에서 서서히 목 졸려 죽어간 셈이다. 지금 소셜미디어에 범람하는 그의 곤경과 고난에 대한 개탄과 분노는 그 위선의 성찰일까, 세척일까. 뭐가 됐든, 마음 깊이 그의 영면을 빈다. 참 고생 많으셨다.
2017/09/06 11:26 2017/09/06 1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