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5'에 해당되는 글 14건

  1. 2017/05/22 강용주에게 자유를
  2. 2017/05/20 좌우 분간
  3. 2017/05/17 토론이 필요하다
  4. 2017/05/11 시민의 기본
  5. 2017/05/10 최선의 정치를 해내길
  6. 2017/05/09 그들의 태도
  7. 2017/05/07 피로파괴
  8. 2017/05/06 새로운 파시스트들
  9. 2017/05/05 모두에게 좋은 대통령
  10. 2017/05/05 괴물 유시민
  11. 2017/05/04 지난 일
  12. 2017/05/03 연기
  13. 2017/05/03 예수와 문재인
  14. 2017/05/01 노동해방
2017/05/22 09:33
1980년 광주의 마지막 날, 고3인 강용주는 어머니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도청 사수파의 전사가 된다. 살아남은 그는 항쟁 당시 헌신적으로 부상자를 치료하던 의료인들을 기억하며 의대에 입학한다. 민주화운동에도 열중하던 그는 2학년 때 전두환 정권이 조작한 ‘구미유학생간첩단’ 사건에 연루되어 투옥된다. 그는 전향서(준법서약서) 쓰기를 거부함으로써 '최연소 비전향 장기수’가 된다. 간첩이어서가 아니라, 인간의 양심을 포기하라는 폭력에 굴복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1999년 14년 만에 출소한 그는 복학했고 2008년 전문의 자격을 얻는다. 조작간첩사건 희생자들의 재심 소송에 연대하며 국가 폭력과 고문 피해자들의 치유를 돕는 광주 트라우마센터의 첫 원장을 맡는다.

그를 만난 사람들은 그가 오랜 투옥 생활을 통해 얻은 깊은 사유와 성찰은 물론 여느 사람들보다 오히려 더 자유롭고 낭만적인 인간이라는 데 놀란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이마에 낙인이 찍힌 채 사실상 투옥 중이다. 그는 이른바 '보안관찰 처분' 상태다. 3개월에 한번씩, 누구를 만났고 어디를 갔고 생활비는 어디서 벌었는지 신고해야 한다. 10일 이상 주거지를 떠나거나 외국여행을 하게 되면 동행을 포함 낱낱이 신고해야 한다. 그밖에도 관할경찰서장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모든 내용을 신고해야 한다. 강용주는 그에 응하지 않았고 기소되어 재판 중이다.

현재 지구상에서 최소한의 민주주의 절차가 작동하는 나라 가운데 형을 마친 정치범이나 사상범에게 이런 족쇄를 채우는 나라는 없다. 나는 그 족쇄를 푸는 일이 최초의 제대로 된 우파 정부로서 문재인 정부가 꼭 해야 할 일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동시에 그가 '대통령의 시혜'로 자유로워지는 건 그에 대한 우리의 무례일 수 있다 생각한다. 우리는 극한의 폭력과 배제 속에서 끝내 인간의 위엄을 포기하지 않은 한 인간에게 표시하는 마땅한 존경으로 그에게 자유를 선사해야 한다. 그것은 또한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비로소 야만의 시대에서 구해내는 방법이기도 하다.

#강용주에게_자유를
2017/05/22 09:33 2017/05/22 09:33
2017/05/20 07:51
지난 열흘 여 문재인 정권의 행보는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극우파와 사이비 우파만 설쳐대던 나라에서 문재인 정권은 제대로 된 우파가 갖는 미덕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 우파라면 저 정도는 해주어야 하는 것이다. 행보가 성공적으로 지속되길 빌며 함께 기억할 것 두가지를 적어본다.

첫째. 문재인 정권의 행보는 전적으로 '기존 체제의 정상화'라는 우파의 역할 영역에 있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세월호에서 숨진 기간제 교사의 순직 인정은 우파 정권이 당연히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본질은 기간제 교사 제도 자체다. 이걸 건드리는 건 체제의 정상화가 아니라 변혁의 영역, 즉 좌파의 역할 영역에 속한다. 광주항쟁의 정신을 촛불광장과 잇는 대통령의 연설은 훌륭한 것이었다. 그러나 거기엔 빠진 게 있다. 광주항쟁엔 수습파의 정신과 항쟁파의 정신이 있다. 후자의 비현실적이고 승산없는 전투와 마지막 새벽의 절멸엔 근본적인 변혁 의지와 이상주의가 담겨 있다. 그것은 오늘 평화로운 촛불광장보다는 그 광장이 미처 담아내지 못한, 혹은 눈감은 변방의 싸움들에 이어져 있다.

둘째. 문재인 정권이 더욱 환호 받을 수 있는 이유는 기존 상황이 지나치게 비정상적이었기 때문이다. 어느 정권에서나 먹고사는 데 문제가 없는 '강남 좌파'에겐 이 정도만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그러나 머지 않아 다수 인민의 삶과 관련한 좀더 본질적인 문제들과 대면하게 될 것이고 비판도 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문재인 정권에게 좌파적 기대를 하는 게 오해이듯 좌파적 기준으로 비판하는 것도 오류다. 돌이켜 보면 노무현 정권은 정권 스스로나, 그 정권에 환호하다 실망으로 돌아선 상당수의 사람들이나 '진보 정권'이라는 좌우 역할 영역이 모호한 정체성 기준을 갖고 있었던 게 혼란과 실패의 한 원인이었다. 부풀려서도 뒤집어씌워서도 안된다.

전적인 환호는 전적인 실망으로 귀결되기 쉽다. 한국 시민들의 고질적 습성이기도 하다. 제대로 된 우파 정권의 미덕은 그대로 인정하되, 우파의 역할 영역을 넘어선, 새로운 좌파의 성장으로만 가능한 변화가 절실하다는 사실 또한 인정하는 '좌우 분간'이 필요하다.
2017/05/20 07:51 2017/05/20 07:51
2017/05/17 18:17
‘문빠’라 불리는 일부 문지지자들의 과한 행태는 일단 일반적인 빠 현상, 즉 '자기애를 사회적으로 저명한 대상에 투사'하는 현상에서 벗어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다. 나도 그런 논지의 글을 쓰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 그들을 보면 그렇게만 치부하기엔 어려운 면이 있다. 그들이 ‘행동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대략 세가지로 보인다. 1)노무현 정권이 초기부터 좌파의 무분별한 흔들기로 곤란에 처했다 2)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에 조중동뿐 아니라 ‘한경오’라 불리는 진보 언론의 책임이 크다 3)이번 선거에서도 한경오는 문재인 후보를 반대했다 등이다.

만일 이게 명백한 객관적 사실이라면 그들의 행동이 과한가 아닌가 논란은 매우 한가로운 것이다. 오히려 다소 과하게 여겨지더라도 그들의 행동은 상당 부분 사회적 정당성을 가질 수 있다. ‘노무현은 잃었지만 문재인은 지켜내겠다’는 말은 ‘민주주의와 정의를 지켜내겠다’는 의미와 그리 다르지 않게 되는 것이다. 문제는 그들이 철석같이 믿는 사실들이 정말 사실인가 하는 점이다. 내 견해부터 말한다면, 사실과 상당히 거리가 멀다.

1)노무현 정권 초기에 좌파 진영에선 오히려 노무현이라는 인물이 주는 호감 때문에, 좌파가 자유주의 정권에 기대할 수 있는 범주를 넘어서는 낭만적 기대가 만연했다. 실망과 비판은 오히려 보다 보다 못해 시작되었다고 하는 게 좀더 정확한 서술이다. 2)이를테면 한겨레엔 ‘국민의 가슴에 못을 박았다’는 극단적 제목의 사설이 실린 적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노 대통령이 부인과 형이 돈을 받았음을 인정하는 순간에 나온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고졸 학력으로 판사, 변호사, 국회의원에 이어 대통령까지 이른 인물이다. 한국의 엘리트 사회가 어떤 곳인지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그 수십년의 과정에서 그가 겪어야 했을 모멸과 곤란이 어땠을까 정도는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즉 노무현이라는 사람은 검찰에 가서 , 혹은 적들에게 모욕을 당했다고 인생을 포기할 만큼 유약한 사람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누구보다 단단히 자신을 지켜주었어야 할 사람들이 그의 존립을 무너트렸을 때 더 큰 절망과 허무에 빠질 수밖에 없는 유형의 사람이 아니었을까. 3) 한겨레 경향 오마이뉴스가 문재인을 반대하고 안철수 편을 들었다는 견해는 그 언론들의 이념 성향이나 정치적 행보를 장기간 보아온 사람이라면 매우 황당한 이야기다. 개별 사안에 따라 그런 해석이 있을 수는 있지만 김의겸 기자의 청와대 대변인 내정 해프닝에서 보듯 전체로는 논란의 여지가 많다. 논란의 여지 없이 분명한 건, 그 언론들이 힘을 모아 홍준표를 반대했다는 사실이다.

내 견해에 동의하는 사람도 있을테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물론 문재인 지지자의 상당수는 동의하기 어려울 것이다. 견해가 다른 건 자연스러우며 내 견해에 심각한 오류가 있을 수도 있다. 노무현과 노무현 정권의 공과에 대한 제대로 된 사회적 토론과 연구는 아직 진행된 바조차 없다. 아직은 다른, 심지어 상반된 견해들이 공존하는 상황이다. ‘문빠’라 불리는 사람들이 되새겨야 할 게 바로 그것이다. 그들은 현재로선 여러 견해 가운데 하나에 불과한 견해를 명백하고 완전한 사실로 전제하고 행동하고 있다. 앞서 말했듯 그들의 행동이 과한가 는 오히려 두번째 문제다. 그들이 믿는 이야기들이 얼마나 사실인가에 따라 과할 수도 있고 전혀 과하지 않을 수도 있다.

사회적 토론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 시점에서 지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진지하고 열린 사회적 토론을 차단한 사람들, 한 견해를 명백하고 완전한 사실인 것처럼 꾸며 대중을 선동한 지식인들이 있다는 사실이다. 유시민과 조기숙은 그 불거진 사례다. 그들은 노무현 대통령의 비극적 죽음을 슬퍼하는 사람들에게 ‘저놈들이 노짱을 죽였다!’고 선동해왔고 이제 '저놈들이 이번엔 문재인마저 죽이려 한다!’고 선동한다. 민주주의의 적은 문빠가 아니라 바로 그들이다. 특히 그들이 그런 짓을 하는 실제 이유가 노무현 정권의 주요한 구성원으로서 제 과오와 책임을 은폐하는 것과 관련되어 있다는 점에서 엄중한 사회적 비판이 필요하다.
2017/05/17 18:17 2017/05/17 18:17
2017/05/11 09:26
'내가 지지한 후보의 당선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러나 그가 당선되어 대통령직을 수행하기 시작했으니 나는 권력을 견제하는 냉정한 비판자로 돌아가겠다.' 이게 성숙한 민주 시민의 기본이며, 내가 지지한 대통령을 위해서도 최선의 태도이다.
2017/05/11 09:26 2017/05/11 09:26
2017/05/10 11:16
문재인 지지자들이 있는 놈이 더하다는 욕까지 불사하며 표를 동냥해 낸 심상정 지지자들이나, 처참한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음으로써 홍가놈의 표를 헐어낸 유승민에게 감사해야 한다는 말에 동의한다. 그러나 그 모든 것보다 중요한 건 문재인 당선의 결정적 이유는 문재인이나 민주당에게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이다. 문재인을 당선시킨 건, 파국적 상황에서 어쨌거나 이 상황은 빠져나가야 한다는 대중의 강렬한 염원이었다. 지금 문재인을 찍지 않은 사람들 가운데 문재인이 좋은 선택이 아니었음이 증명되길 비는 사람도 거의 없다. 다들 문재인 정권이 가능한 한 최선의 정치를 해내길 빈다. 문재인과 그 지지자들은 합당한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적어도 노무현 정권의 실패가 좌파의 훼방 때문이었으며 문재인 정부도 그게 걱정이라는 따위 유시민식 공갈은 접기 바란다. 굳이 사실 관계를 복기하자면, 노무현 정권 초기에 좌파 진영은 오히려 노무현 정권에 대한 비현실적 기대의 분위기가 있었다. 비판은 보다 보다 못해 시작되었고, 실망과 비판은 대중에게서 좀더 심각했다. 문재인은 친구의 비극적 실패를 가장 가까이서 목도한 사람이니 생각이 많을 것이다. 거듭 말하지만, 다들 문재인 정권이 가능한 한 최선의 정치를 해내길 빌고 있다.
2017/05/10 11:16 2017/05/10 11:16
2017/05/09 23:00
고래 단톡방이 휴일에 가동되는 일은 없는데 오늘은 예외다. 독자팀에서 정의당이 적어도 10퍼센트는 나올 줄 알았는데 실망이라고 하니 편집팀에서 이길 것 같지만 기분은 좋지 않다고 대꾸한다. '이길 것 같'다는 건 내기 이야기다. 그들은 며칠 전 심상정과 유승민의 득표율을 맞추는 내기를 시작했다. 아마 그들은 이번 선거가 사실 당선자는 정해져 있기에 양당제를 넘어선 전체 정치 지형이 어떻게 되는가 좀더 의미가 크다고 본 것 같다. 심상정과 유승민의 득표율은 그 지표일 것이다. 나는 그들의 각별한 식견을 존중한다. 그리고 동시에 그들의 태도가 매우 다행스럽다. 이번 선거 통에 지나치게 많은 사람들이 제 바닥을 드러내고 말았다. 특히 민주주의를 외치는 사람들의 비민주성과 폭력성은 이후 심각한 사회적 멍에가 될 수도 있다. 여하튼 오늘 밤은 여기까지.
2017/05/09 23:00 2017/05/09 23:00
2017/05/07 12:11
피로파괴(fatigue fracture)라는 게 있다. 금속에 반복된 스트레스가 가해지면 피로가 누적되고 결국 부서져버리는 현상이다. 피로파괴는 다리를 붕괴시키고 비행기 천정을 날려버리며 달리는 자전거 프레임을 동강내기도 한다. 반복된 스트레스는 말 그대로 '쇠도 못버티는' 것이다. 하물며 사람이야. 물론 사람은 쇠와 달리 부서지기 전에 도망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인간적 부서짐을 의미한다. 인생이란 누군가의 파괴 요인이 되는 일의 연속이며, 우리는 종종 그 사실을 잊는다.
2017/05/07 12:11 2017/05/07 12:11
2017/05/06 11:36
민주주의를 진전시킨다는 건 우리만 옳다 믿는 사람들이 지배하던 세상을 옳은 것은 하나가 아니라 생각하는 사람들의 세상으로 바꾸어가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만 옳다고 생각하는 극우 정권을 우리만 옳다고 생각하는 자유주의 정권으로 교체하는 걸 민주주의의 진전이라 맹신하는 사람들이 준동하고 있다. 오늘 민주주의의 적이자 새로운 파시스트들.
2017/05/06 11:36 2017/05/06 11:36
2017/05/05 11:02
모두에게 좋은 대통령 같은 건 없다. 어떤 사람들에게 좋은 대통령이 나에겐 나쁜 대통령이고 나에게 나쁜 대통령이 어떤 사람들에겐 좋은 대통령이 된다. 결국 나에게, 내 삶의 현실에 내가 속한 계급에 좋은 대통령을 뽑는 게 중요하다. 아쉽게도 그런 후보가 없다면 가장 근접한 후보에 투표해서 장기적 전망을 만들거나, 고민 끝에 선거를 거부하는 것도 진지한 정치적 선택이다. 나에게 나쁜 후보를 남의 말에 현혹되거나 속아서 투표하는 것만 아니라면 모든 모든 선택은 존중받는 게 민주주의다. 그런 맥락에서 386 기득권세력과 최소한의 상식을 외치는 중산층 인텔리들이 문재인에 올인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헬조선이라고 말은 하지만 어느 정권이 되든 먹고사는 데 문제가 없는, 극우 집권만 아니면 충분한 그들에게 문재인은 차악도 차선도 아닌 최선의 대통령이다. 다만 그들이 문재인이 모두에게 좋은 대통령이라고 강변하진 않길 바란다. 그것은 거짓말이며 꽤나 불쾌한 유형의 무지이다.
2017/05/05 11:02 2017/05/05 11:02
2017/05/05 08:40
페이스북에서 아래 글을 읽었다. 사람이란 처지와 위치에 따라 생각과 말이 달라지는 동물이지만, 그 차이가 지나치게 클 때 그의 인격을 의심하게 된다. '괴물'이라는 표현이 적절한가를 떠나 유시민이 그 불거진 사례라는 데는 동감한다. 전에 이런 말이 있었다. '유시민을 좋아하지 않는 데 필요한 건 기억력뿐이다.'

***

썰전에서 유시민이 하는 말이 트럼프가 '한미FTA 재협상하자' 하면 하고 아니다 싶으면 폐기하면 된다고 한다. 그거 없이도 잘 살아왔는데 까짓거 폐기하면 된다고.

욕나온다. 그런 마음으로 사람들이 목숨끊고 자살하고 몸에 불태우면서 한미FTA 반대 외칠때 그런 사람들 뚜드려 패가면서 추진했냐?

참여정부 시절 '비정규직 입법' 때도 2년뒤에 정규직 안되는 일 절대 없다고 노조는 데모할 시간에 경제학 공부나 하라고 떠들었던 놈이 유시민이다. 그런데 지금은 '노동이 당당한 나라'를 주장하는 당의 얼굴간판으로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서 열 올리면서 비판한다. 허 참.

본인이 했던 일에 대해서 일말의 반성도 없이 고통받았던 사람들은 안중에도 없이 입장 바뀌기에 여반장을 보이는 저런 괴물이 이 나라에서 베스트셀러 인문작가이고 간혹 사람들이 '저분이 다시 정치에 나와야 한다', '올바른 장관급이다' 하고 있다.

인간이 인간인 이유는 다른게 없다. 양심이 있고, 반성을 할 수 있어서다. 60억 인류 중에 간혹 가다 유시민같은 괴물이 있는다고 문제는 없다. 다만 저런 괴물이 추종받는 사회는 인간의 사회가 아닐 것이다.

방송에 나와 저딴 소리를 지껄이는 걸 힘없이 봐야 한다니. 허세욱 열사에게 한없이 미안할 따름이다.


2017/05/05 08:40 2017/05/05 08:40
2017/05/04 14:48
15년 전 쓴 글. 만일 우리가 그 즈음부터라도 비판적지지나 사표론을 넘어서는 용기를 가졌다면 지금은 전혀 다른 현실을 맞았을 것이다. 물론 다 지난 일이다. 그러나 우리는 지난 일에서 배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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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이념대로 찍어라

10여년 전, 재야 출신 국회의원의 보좌관 노릇을 하던 선배는"나중에 노무현이 대통령 선거에 나가면 발 벗고 뛸 거"라 말했다. 노무현은 처음부터 보기 좋았던 모양이다. 세월이 흘러 노무현은 대통령 선거에 나왔고, 이변이라 불릴 만큼 약진하고 있다. 노무현의 개혁 이미지는 대개 인정할 만한 사실이다. 그는 조선일보와 국가보안법에 공개 반대하고 지역주의에 당당히 맞선 유일한 정치인이다. 이른바 '비판적 지지'(어차피 당선 가능성이 없는 진보 후보를 찍어 죽은 표를 만드느니 좀더 나은 보수후보에게 표를 몰아주어 진보의 미래를 도모한다는)의 두번째 대상으로 그가 거론되는 건 그런 점에서 당연해 보인다.

'비판적 지지'의 첫번째 대상은 김대중이었다. 밝히자면, 나도 지난 대통령선거에서 그렇게 했다. 비판적 지지론이 아닌 진보 독자 후보론을 주장하던 진영에 더 가까웠지만, 그래서 다들 내가 그렇게 했을 거라 생각하지 않았지만, 나는 망설임 끝에 그렇게 했다. 진보진영의 적지 않은 사람들이 조직적으로 혹은 개인적으로 그렇게 했다. 드디어 김대중은 대통령이 되었고 그에게 표를 몰아준 진보주의자들은 그의 개혁성에, 그의 개혁성을 통해 도모될 진보의 미래에 기대했다.

기대가 의구심으로 의구심이 다시 지루한 실망으로 바뀌는 데는 단지 몇 달이 필요했다. 나는 그 즈음 내가 어리석었음을 깨달았다. 김대중에 대한 실망의 원인은 김대중에게 있는 게 아니라 그에게 실망하는 진보주의자들에게 있었다. 어리석게도 진보주의자들은 보수주의자인 김대중이 진보적이기를 기대했다. 실망에 찬 그들은 말하기를 김대중이 변했다고 했다. 그러나 변한 건 아무 것도 없었다. 김대중은 예나 지금이나 보수주의자이며 그의 정치는 예나 지금이나 그의 이념에 충실하다. 김대중에 대한 진보주의자들의 기대는 그가 한국사회 보수영역의 마이너로서 한국사회 보수영역의 메이저인 파시스트들에게서 오랫동안 견제 받는 모습을 통해 생긴 판타지였다.

김대중에 대한 실망을 노무현으로 보상하려는 심정이야 인간적으로 이해 안가는 바 아니나, 정치적으로 가련하기만 하다. 노무현이 김대중보다 인격적으로 신뢰가 가는가. 나 역시 그래 보이지만, 개인의 인격이 정치를 좌우할 수 있다는 가설은 텔레비전 궁중사극에서나 가능할 것이다. 노무현의 판타지에 젖은 사람들은 오늘 김대중을 잠시 접고 옛 김대중을 떠올려볼 필요가 있다. 그는 한 때 오늘 노무현과는 비교가 안될 판타지를 가진, '선생'이라 불리는 정치인이었다. 노무현에게 남은 질문은 하나다. 노무현은 (개혁적) 보수주의자인가 진보주의자인가. 지역주의에 당당히 맞선 노무현은 신자유주의에도 당당히 맞서는가, 노무현은 하층계급의 싸움에 연대하는가.

김대중의 정치는 바보가 아닌 사람들로 하여금 이른바 나쁜 보수와좋은 보수의 차이가 생각보다 크지 않다는 것(특히 오늘처럼 극단적 파시즘이 이면으로 물러난 상황에선 더욱 더)을 충분히 깨닫게 할 만했다. 좋은 보수후보에 표를 몰아주어 진보의 미래를 도모한다는 노회한 전략은 한국 정치에서 진보의 지분(득표율, 혹은 국회의원 수로 계량할 수 있는)이 하다못해 '김종필의 당' 만큼이 되어, 캐스팅보트 노릇이라도 가능해진 다음에나 생각할 일이다. 진보주의자, 혹은 진보정당의 국회의원이 단 한명도 없는 세계 유일의 나라에서 진보주의자가 할 일은 오로지 '털끝 만큼이라도 진보의 지분을 늘이는 것'이다.

(중립적으로 말하자면) 모든 사람이 제 이념대로 순정하게 찍는 것, 그래서 한국정치의 이념적 스펙트럼을 한국인들의 이념적 스펙트럼과 동기화 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그것만이 한국인들이 제 처지에 가장 적절한 정치를 맞을 유일한 방법이다. 네 이념대로 찍어라. 한국사회가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럽다면 가장 반동적인 보수후보를 찍어라. 한국사회의 표면적 악취라도 우선 덜고 싶다면 가장 개혁적인 보수 후보를 찍어라. 그러나 한국사회의 보다 근본적인 변화를 진지하게 바란다면 (당선 가능성을 절대 기준으로 한 이런저런 되지 못한 정치평론일랑 걷어치우고) 그저 가장 진보적인 후보를 찍어라. 진보에 외상은 없다, 네 이념대로 찍어라.(씨네21 2002/04/03)





2017/05/04 14:48 2017/05/04 14:48
2017/05/03 08:55
불교 사상의 핵심은 연기론(緣起論), 우주만물이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연기론은 불교의 범주를 넘어 여하한 종교의 신앙에도 기본적 사고틀이 된다. 연기적이지 않은 신앙은 제아무리 크고 휘황해도 해방이나 구원과는 무관한 미신일 뿐이다. 신앙을 갖는다는 건 먼저 나와 온 우주만물이 한 몸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것은 내 존재가 우주만물의 미미한 일부일 뿐이라는 절대 겸손이자, 내 신념에 우주만물의 힘이 개입한다는 절대 용기이다.
2017/05/03 08:55 2017/05/03 08:55
2017/05/03 07:34
예수 믿는다는 사람들이 홍준표를 지지하는 건 말도 안되지만, 그걸 비난하며 문재인을 지지하는 것 역시 말이 안된다. 예수는 로마 제국주의와 헤롯 괴뢰정권 그리고 성전귀족인 사두가이파에게 당연히 적대적이었지만 당시의 개혁세력인 바리사이파엔 좀더 심각하게 적대적이었다. 하느님나라의 구현, 세계의 근본적 변화에 드러난 악보다 은폐된 악인 그들이 오히려 더 결정적 걸림돌이었기 때문이다. 불꽃 튀는 격돌이었다. 예수는 그들에게 '독사의 새끼들'이라는 극언을 서슴치 않고 바리사이들 역시 일찌감치 예수를 제거하기로 결심한다. 예수 믿는 사람이라면, 예수의 말과 행적이 적힌 복음서를 한번이라도 제대로 읽은 사람이라면 이번 선거의 기만성과 한계에 깊이 낙심할 수밖에 없다. 적어도 그들은 심상정을 찍으면서도 제 신앙적 양심에 가책을 느낄 만큼 급진적이다.
2017/05/03 07:34 2017/05/03 07:34
2017/05/01 15:45
노동해방은 단지 노동 계급의 권력 장악, 생산수단의 사회화를 뜻하지 않는다. 노동해방은 자본의 가치관으로 장악된 세상을 노동의 가치관으로 바꾸어내는 것이다. 대개의 사람들이 남보다 더 많이 갖고 남보다 앞서는 걸 성공이라 여기는 세상이, 조금 덜 갖더라도 조금 더디 가더라도 함께 가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더 많은 세상으로 바뀌는 게 노동해방이다. 그게 아니라면 노동 계급의 권력 장악, 생산수단의 사회화는 단지 어제의 피억압 계급의 일부가 새로운 지배계급이 되는, 권력의 교환에 봉사할 뿐이다. 동유럽 사회주의와 북유럽 사민주의의 상반된 결과는 그런 사실들을 보여준다. 전자의 사회는 노동 계급의 권력 장악, 생산수단의 사회화를 이루었지만 가치관의 변화는 오히려 후자의 사회에서 좀더 진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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