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강연 길. 아직 한여름도 아닌데 좀 심한가, 싶었지만 '이 난세에 바지 길이 따위야' 하며 출발했다. 이러고 다닌 지 몇해 되었다. 어느 강연회에선 사회자가 나를 소개하며 "저희 행사가 5년 째인데 반바지 입고 오신 강사는 처음이십니다." 해서, 함께 웃기도 했다. 반바지는 편하고 쾌적하다. 뇌에도 반바지 같은 게 있으면 좋으련만.
'2016/06'에 해당되는 글 17건
2016/06/30 13:53
2016/06/29 09:14
자음과모음이 저리 양아치 짓을 거듭하면서도 건재할 수 있는 가장 큰 힘은, 여전히 그곳에서 책을 내는 저자와 여전히 그곳의 책을 사는 독자다. 그들은 제 행동이 비열한 양아치에 대한 연대이며, 양아치와 싸우는 사람들에 대한 공격이라는 걸 모르는 걸까. 궁금하다. 그들은 책이 뭐라고 생각하는 걸까.
2016/06/29 09:09
한국한. 뒤집어도 한국한이라 이름을 잊기 어려운 그는, 같은 5학년이지만 세 살 더 많았고 덩치는 고등학생에 이미 골초였다. 한국한은 이따금 발작이라도 하듯 동네 아이 하나를 골라 이유 없이 때리곤 했다. 결국 나도 그 대상이 되었고 맞서려 한 탓에 매를 벌었다. 하필이면 집 앞 골목에서 한참을 맞고 있는데 그가 움찔했다. 골목 어귀에 어머니가 나타난 것이다. 한국한과 나와 구경하던 아이들이 정지화면처럼 굳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코피를 흘리며 땅바닥에 짓눌려 있는 나를 흘끔 보더니 지나쳐 집으로 들어갔다. 아이들은 얼이 빠진 얼굴로 흩어졌다.
동네엔 부잣집이 있었다. 주인이 무슨 공장 사장이랬는데 담이 어른 키를 훌쩍 넘겼고 자가용도 있었다. 그 집에 한 학년 아래 쌍둥이가 살았다. 아이들에게 온갖 못된 짓을 하고 다녔지만 아이들은 물론 동네 어른 누구도 감히 말을 못했다. 어느 날 하교하는 녀석들을 막아섰다. 내 딴엔 말로 주의를 줄 요량이었는데 둘이 달려드는 바람에 싸움이 되었다. 저녁 무렵 그들 어머니가 그들을 양손에 하나씩 끌고 찾아왔다. “곱게 키운 자식들인데 얼굴을 이 꼴로….” 그는 어머니를 세워놓고 고함을 질러댔다.
“아이들 싸움에 어른이 끼어드는 것보다는 저희들끼리 해결하도록 해보는 게….” 어머니의 말은 화를 더 돋울 뿐이었다. “집도 없이 단칸 셋방 사는 주제에….” 한참이 지나서야 그들이 돌아가고, 어머니는 별말 없이 하던 일을 하는데 나는 어머니에게 미안해 견딜 수가 없었다. “잘못했어요.” 어머니는 나를 바라보며 되물었다. “뭘 잘못했다는 거지?”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나는 그 일들을, 어머니의 행동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시간이 한참 지나서야 조금씩 이해할 수 있었다. 어머니는 나에게 ‘가치’를 가르치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해했든 못했든 가르침은 나에게 새겨졌고, 그 덕에 나는 삶의 많은 국면에서 나를 지켜낼 수 있었다. 나는 사람이 어떤 가치를 사수하며 살아야 한다고 말하려는 게 아니다. 나를 포함하여, 대개의 사람은 가치와 그걸 거스르는 현실적 편익 사이를 비틀거리며 살아간다. 가치는 그 일반적 인생에서 덜 비틀거릴 수 있도록, 적어도 넘어지진 않도록 도와준다.
세상이 좋은 지도자에 의해 좋아진다는 믿음은 미신이다. 세상은 평범한 사람의 삶에서 작은 가치들이 쌓일 때 조금씩 좋아진다. ‘사람이 그러면 안되지’ ‘조금 불편을 겪더라도 쪽팔리게 살 순 없지’ 하는 생각들이다. 세상은 나쁜 지배자에 의해 나빠지는 것도 아니다. 세상은 평범한 사람들의 삶에서 작은 가치들이 무너져내림으로써 조금씩 나빠진다. ‘세상이 다 그런 거지’ ‘잘못된 거지만 현실이 어쩔 수 없지’ 하는 생각들이다. 좋은 지도자, 나쁜 지배자는 그런 상황의 반영일 뿐 결코 원인은 아니다.
3년 전까지 몇 해 동안 교육 강연에서 대학입시의 비현실성에 대해 열심히 떠들고 다녔다. 진보적 성향의 중산층 인텔리들은 제 교육관과 현실 사이에서 갈등했다. 그들은 아이 인생을 생각하면 어쩔 수 없이 현실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고, 나는 교육관 이전에 그런 생각이 실은 현실적이지 않음을 설득하려 했다. 대학 진학률과 취업의 상관관계만 봐도 전혀 계산이 안 나온다, 대학 입시만 생각하면 낭패 보기 십상이다, 그 비용과 노고의 절반만 투자하여 자립 교육을 모색하는 게 오히려 현실적이다. 그들은 내게 ‘좋은 말씀 잘 들었다’ 인사했지만 돌아서선 ‘현실이 어쩔 수 없지’ 되뇔 뿐이었다. 파국은 예상보다 빨리 왔다. 이른바 일류대 졸업생조차도 절반밖에 취업을 못하는 세상이 된 것이다.
부모들은 더 이상 ‘현실이 어쩔 수 없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들은 부인할 수 없는 현실 앞에서 공황 상태에 빠져 있다. 보수 부모도 가난한 부모도 아닌 그들이 조금씩 힘을 모아 교육을 바꾸려 했다면, 적어도 이 지경이 되진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20여년 동안 그들이 ‘현실’만 되뇌다 파탄 낸 현실보다 더 심각한 파탄은 교육에서 가치가 완전히 사라진 것이다. 아이들은 혹독하게 공부에 시달리지만, 공부가 무엇인지 공부를 왜 하는지 가르쳐주는 사람은 없다. 아이들은 오로지 대학입시를 위해 십대를 바치지만 대학이 무엇이며 왜 대학에 가는 건지 질문하거나 생각할 기회는 없다.
4차 산업혁명이니 인공지능이니, 세상이 완전히 바뀌고 있다고들 한다. 현재 교과 교육은 이미 쓸모없는 게 되었고, ‘취업 시대’도 끝나간다고 한다. 파탄 난 교육 상황에 대한 보상심리가 그런 이야기들을 좀 더 부풀리게 하는 면이 있지만, 큰 흐름에선 경청할 만한 이야기들이다. 그러나 그 이야기들 역시 중요한 게 빠져 있다. 사람은 현실 적응 능력으로만 살아가는 게 아니다. 사람에게 더 중요한 건 제 삶의 중심을 잡고 살아가는 것이다. 가치를 배우지 못한 사람은 남과의 비교 가치로만 살아간다. 인생을 우월감과 열등감을 중심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땅콩 회항이 어쩌니 갑질 폭력이 어쩌니, 부자의 자식들이 저지르는 패악질이 공분을 일으키곤 한다. 그러나 그들 대부분은 어쨌거나 최고 수준의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다. 그들의 문제는 가치를 배우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부자의 아이들이 가치를 배우지 못했을 때 나타나는 폭력보다, 부자가 아닌 부모의 아이들이 가치를 배우지 못했을 때 나타나는 비굴이 조금은 나은 걸까. (경향신문)
2016/06/26 17:20
2016/06/25 10:07
부자 노인들만 찬성한 게 아니라 가난한 청년들도 찬성했다. 주류 좌우, 즉 노동당과 보수당은 반대했지만 극좌와 극우는 찬성했다. 결국 브렉시트 투표는 세대로 나뉜 것도 이념으로 나뉜 것도 아닌, 기성의 좌우 질서와 그에 대한 극단적 불신의 구도로 표현되었다. 그러나 변혁적 급진성의 맥락을 보이고 있는 건 아니다. 이 유례없는 혼미야말로 오늘 세계의 상태와 대중의 정서를 가감없이 보여준다.
2016/06/23 11:34
2016/06/23 11:18
병장이 되고 얼마 안 되어 스무살부터 6년 사귀었던 여자와 헤어졌다. 그는 내가 제대 직전 결혼했다. 그는 나와 함께 다녔던 교회에서 결혼식을 했는데 성가대 청년들이 보이콧했던 모양이다. 군대에서 고생하는 애인을 배신한 나쁜 년, 이라는 이유였다. 결혼 소식은 들었지만 그런 일이 있었다는 건 몰랐다. 다음 해, 서울영상집단에서 한참 정신머리없이 활동할 무렵 그에게 연락했다. 교대를 졸업한 그는 영등포 어느 초등학교에서 일했다. 학교 부근 찻집에 나온 그는 배가 꽤 불러 있었다. 얼마간의 안부를 교환한 후 내가 말했다. "그런 일이 있었다는 걸 얼마 전에야 알았어요. 불편했겠지만 나는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편히 지냈으면 좋겠어요." 안 쓰던 존댓말이 나왔다. 그의 눈에 눈물이 비치는 듯했고, 나는 목례를 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날 꽤 걸었는데 나도 눈물이 조금 났었는지이제 기억나지 않는다. 몇달이 더 지나, 나는 친구로부터 그가 둘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했을 때는 이미 새로운 남자와 많이 진척된 상황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성가대를 보이콧한 청년들이 사실관계를 오해한 건 아니었던 것이다. 그날 나는 이게 소급하여 화가 날 일인지 아닌지 조금은 우스꽝스러운 고민에 빠졌고, 결국 아니라는 결론을 얻었다. 나를 걱정하고 옹호한 사람들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그들은 내 사랑(혹은 그의 사랑)에 관심을 가진 건 아니었다. 그들은 '나쁜 년 이야기'를 재료로 자신들의 윤리 의식을 표현했을 뿐이다. 사랑은 그들과 무관하게 있었고, 끝났다. 그 일을 통해 나는 사람들은 누군가의 사랑에 대해 언제나, 적어도 사랑이 아닌 것으로 말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사랑은 외로운 일이라는 것도.
2016/06/22 08:32
그놈의 6월이라서일까. 부쩍 민주화가 개인주의라도 제대로 정착시켰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하곤 한다. 개인주의는 말라붙고 부활한 집단주의와 이기주의만 좌우를 넘나든다. 개인주의의 출발점은 존중이다. 존중은 타인을 그 존재와 생김 자체로 인정하는 일이다. 존중이 없는 사회엔 존경과 무시의 이분법만 그득하다. 개인주의는 백명에게 백개의 삶의 방식이 있다는 믿음이다. 삶의 방식에 우열은 없다는 믿음이다.
2016/06/21 09:33
90년대 이후 한국 사회를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갔다'는 노무현 대통령의 말로 요약할 수 있다. 국가와 자본의 관계에서 힘의 균형이 자본으로 넘어갔다는 말이다. 개발 독재 기간 동안 국가의 관리와 집중 지원 아래 성장해온 자본(대기업/재벌)이 더는 국가에 조아리지 않는 수준이 되고, 민주화로 인한 자유주의 분위기, 때마침 불어닥친 신자유주의 등이 만들어낸 상황이다. 중요한 건 그 상황을 단순히 국가의 약화로 보지 않고 '국가의 역할 변화'로 보는 것이다. 자본에 대한 견제라는 측면에서 국가는 약화되었지만 자본의 활동을 옹호하는 측면에서 국가는 강화되었다. 현실이 매우 비관적이면서도 희망이 남아 있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국가의 역할은 언제나 유동적이며 다수의 연대와 노력으로 변화 가능한 영역이다. 박정희는 자신이 선택한 국가의 역할을 '하면 된다'는 구호로 구현했었다. 우리도 하면 된다.
2016/06/20 22:26
타인의 불행에 연민을 갖지 못하는 사람일수록 자신과 관련한 불행엔 오히려 더 예민한 태도를 보이는 경향이 있다. 이를테면 불행한 일을 당한 사람에게 잔인한 말로 상처를 주는 사람에게 당신에게 그런 일이 생긴다면 어떻겠냐 반문하면 재수없는 소리 말라며 길길이 날뛰는 것이다. 연민의 결핍은 흔히 생각하듯 감정과 정서의 문제가 아니라 사고능력의 문제다.
2016/06/14 20:16
전근대적 습속이 남은 공동체에서 이번 교사 집단 성폭행 사건과 같은 일이 일어나거나 묻힐 가능성이 더 많을 수 있다. 그러나 동시에 기억할 건 그런 공동체는 전국 어디에나 있다는 사실이다. 그걸 무시하는 순간 우리는 인종차별적 관점에 빠져들게 된다. 폐쇄된 섬의 특수성을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사회적 의미에서 섬은 바다에만 있는 게 아니다. 섬은 오히려 육지에, 도시에 더 많다.
2016/06/09 16:56
미국 민주당 대통령후보 경선이 결국 힐러리의 승리로 마감했다. 그러나 "샌더스 현상은 선거 결과와 무관하게 사회에 남아 리버럴을 견제하고 체제를 위협하며 다음 희망을 만들어갈 가능성이 있다." 샌더스 현상은 "버니 샌더스라는 인물의 영웅적 투쟁기가 아니다. 비현실적인 것을 선택함으로써 현실을 바꾸어가는 수많은 사람들의 용기와 행동이며, 샌더스는 그 반영 혹은 매개일 뿐이다." 샌더스에게, 수많은 샌더스들의 용기와 행동에 경의를 보낸다. 지난 2월에 쓴 글.
2016/06/09 16:50
관행慣行. 오래 해오던 대로 한다는, 한국 아재 정신을 대변하는 더러운 말. 불교에도 관행이라는 말이 있다. 관행觀行. 제 마음을 들여다보며 실천한다는 말. 관행慣行을 깨부수고 관행觀行하며 살자.
2016/06/06 23:46
역사 속 현인을 통틀어 여성을 시중들게 한 게 아니라 제자로 삼은 사람은 예수가 유일했다. 예수의 여성 제자들은 여러 면에서 남성 제자들을 압도했다. 최후까지 예수와 함께한 것도 여성 제자들이었다. 예수가 체포되자 남성 제자들은 모두 배신하거나 도망쳐버렸다. 그러나 여성 제자들은 정치적 반란범의 동조자로 몰려 죽을 위험에도 불구하고 예수가 십자가 위에서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 떠나지 않는다. 그것은 단지 그들이 더 충직했기 때문이 아니라, 예수의 생각을 더 잘 이해했기 때문이다.(남성 제자들이 배신하거나 도망친 주요한 이유 역시 예수의 생각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예수의 무덤에서 주검이 사라진 걸 발견한 것도 여성 제자들이었고, 부활한 예수가 처음 만난 사람들도 여성 제자들이다.
복음서에는 이런 사실들이 대체로 기록되어 있다. 제자가 아니라 ‘예수를 따르던 여자들’로 말이다. 막달라 마리아는 여성 제자 중에서도 가장 두드러진 인물이다. 도마복음을 비롯한 정경 밖 성서에는 마리아가 예수의 가장 신뢰하는 제자이자 가장 긴밀한 동지였음을 드러내는 대목, 남성 제자들이 그걸 시기하는 대목이 많다. 예수가 떠나고 예수를 기억하는 공동체가 가부장적 종교로 발전하면서, 베드로와 남성 제자들이 권력을 갖는 대신 여성 제자들은 철저히 제거된다. 남성 제자들이 눈엣가시이던 막달라 마리아를 제거하는 방법은 교활하면서도 손쉬웠다. 그가 ‘창녀 출신’이라는 이야기를 만들어낸 것이다. 성서 어디에도 근거가 없음에도 기독교 전통에서 마리아는 내내 창녀였다. 로마 가톨릭이 마리아를 ‘사도 중의 사도’라 인정한 건 1988년이다. 예수의 생모 마리아가 동정녀여야만 했던 이유와 최고의 제자 마리아가 창녀여야만 했던 이유는 전적으로 같다.
예수는 대중 앞에서 이야기할 때 언제나 ‘비유’ 형식을 사용했다. 비유의 소재는 모두 인민의 노동과 일상에서 가져왔다. 그래서 남의 노동 덕에 살아가는 유한계급과 책과 관념으로 지식을 쌓은 사람보다는 제 몸으로 노동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훨씬 더 쉽게 알아들을 수 있었다. 당시 팔레스타인 인민들은 대부분 글을 몰랐다. 예수의 언어 속에서 교육받은 사람과 받지 못한 사람으로 대변되는 계급 질서는 전복된다. 비유의 소재 가운데는 특히 가사노동과 살림에 관한 게 많았다. 예수의 언어 속에서 계급 질서는 한번 더 전복된다. 예수의 이야기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가난한 사람, 그중에서도 여성이었다.
우리는 예수를 일컬어 성평등 의식이 높은 사람이었다, 페미니스트 혹은 우머니스트였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예수 당시에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복음서에서 예수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모인 군중의 수를 표현하는 대목엔 ‘사람들 가운데 남자가 몇명’이라는 표현 대신 ‘사람이 몇명’이라는 표현이 빈번하다. 당시 사람들에게 여성은 인간이 아니라 인간(남성)을 섬기고 보조하는 ‘존재 없는 존재’였다. 여성이 남성과 다름없는 인간이라는 의식이 존재할 때, 예수의 행동이 이해의 영역으로 들어온다. 그런 사고 틀 자체가 없는 사람들에게 예수의 행동은 존중할 것도 비판할 것도 없는 그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일 뿐이었다.
여성 문제의 맥락에서 본다면, 우리는 인류 역사에서 예수를 이해할 수 있는 거의 첫 세대에 가깝다. 뒤집어 말하면 예수는 우리와 동세대의 사람이다. 그러나 우리 가운데 상당수는 여전히 예수 당시 사람들의 시간에 머문다. 우리는 분명히 모두 2016년을 살아간다. 그러나 우리는 결코 모두 2016년을 살아가지 않는다. 누군가는 1916년을 살아간다. 누군가는 서기 16년을 또 다른 누군가는 516년을 살아간다. 일부만이 2016년을 살아간다. 성폭행 피해자의 옷차림이나 귀가 시간을 문제 삼는 사람은 결코 2016년을 살아가지 않는다. 일본군 위안부를 말할 때 ‘순결한 소녀’ 이미지에 집착하는 사람은 결코 2016년을 살아가지 않는다.
물론 이건 여성 문제에 국한하지 않는다.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고를 ‘단지 안전사고일 뿐’이라 말하는 사람과 ‘19세/컵라면’ 서사에 빠져드는 사람과 사고의 근본 원인과 구조를 고민하며 그 구조 속의 자신을 성찰하는 사람은 결코 같은 시간을 살아가지 않는다. 세계의 고통은 바로 그런 차이에서 발생한다. 전혀 다른 시간을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이 뒤섞여 동일한 시간을 동일한 자격으로 살아간다고 전제하는 근대적 가설이, 무수한 충돌과 통증과 누적되는 피로감을 만들어낸다. 우리가 종종 세상이 거꾸로 돌아가는 듯한 절망감과 무력감에 빠져드는 건 버젓이 과거를 살아가는 유령들 덕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시간을 살아가고 있는지 늘 되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우리의 시간은 실은 여러 개이며 불균등하다. 적어도 그 일부에서 나는 과거의 유령일 수 있다. 나는 여성 문제의 맥락에서 2016년 즈음을, 노동 문제의 맥락에선 1816년을 살아갈 수 있다. 그 반대일 수도 있다. 그런 가능성을 인정하고 실존적 긴장을 유지해야 한다. 또한 시간을 앞서 살아가며 우리를 일깨우는 사람들을 놓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물론 그들은 대개의 우리에게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는 사람들로 여겨진다. (경향신문 - 혁명은 안단테로)
2016/06/05 20:05
2016/06/05 19:36
김수영이 시 <거대한 뿌리>에서 "전통은 아무리 더러운 전통이라도 좋다"고 노래한 건, 단지 전통이 '우리 것'이라서거나 '보존해야할 것'이라서가 아니다. 인간의 삶의 본질은 문화이며 문화를 만들고 이루는 근간은 전시대의 문화라는 사실을 말한 것이다. 전통이나 민속 문화에 대한 선호나 취향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이야기인 건 물론이다. 지방자치제가 신자유주의와 결합하면서 지역에 뿌리 둔 문화와 문화적 상황들이 시장주의 가치로 재편되어온 지 오래다. 지자체장이 문화적 양식이 조금이라도 있는 경우엔 그나마 억지가 되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엔 고대유적을 무차별 파괴하는 탈레반과 다를 바 없는 문화적 참상이 일어나곤 한다. 통영시는 5월 30일 소반장 인간문화재 추용호 장인 공방의 철거 집행에 들어갔다. 통영시는 ‘정히 철거할 수밖에 없다면 새공방을 마련해주거나 현재 공방 건물을 해체해 다른 곳에 옮겨달라’는 장인의 요청을, 오히려 철거를 집행할 수밖에 없는 이유로 든다. 그런 요청을 들어주라고 시장도 뽑고 세금으로 공무원 월급도 주는 건데 말이다. 모든 게 시장주의에 찌든 세상이지만, 문화엔 문화원리가 있음을 아예 잊을 때 우리는 누구나 탈레반이 된다.
석면이 들어간 스레트 지붕 때문에 환경관련 문제로 한나절이면 충분할 철거 작업이 한달 가량 지연되었다. 남은 3주 동안 반대 여론이 많아지면 상황은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천만다행이랄까. 그러나 이번엔 우리의 문화적 양식이 시험대에 놓인 셈이다.
2016/06/02 15:14
친구 노태맹이 새 시집 <벽암록을 읽다>를 보내왔다. 두 손으로 시집을 쥐고 처음 펼쳐진 90쪽과 91쪽에 실린 시를 읽는다. 문득 그의 시는 사상의 물길 위에 지어진 음률의 건축이라는 생각을 했다.
*
<흰 나비 도로를 가로지르고>
지하 주차장에 가득 찬
비발디의 <세상에 참 평화 없어라>에
차 문을 열다 잠시 감전된 듯 멈추다.
성서 공단을 지나고 하수처리장을 돌아,
작은 메타세쿼이아 숲가에 차를 세우고
부정맥으로 일렁거리는 내 안의 강물들을 진정시켜보다.
꽃 핀 자귀나무 위 공기들이
붉은 부채꼴 모양으로 둥글게 말렸다 닫히고
새떼들의 울음을 덮는 환한 나무그늘.
혹은 천천히 도로를 가로지르는 희 나비 한 마리...
하지만 우리 생은 이런 아름다운 내러티브가 아니지.
지나온 속도보다 더 빠른 속도로
붉은 구름들이 도로를 따라 가고
이 길 위에서의 내 전망이란
길바닥 붉은 살덩이가 눌러붙어 있는 계급론
나비 한 마리를 허공으로 날려버리는 공황론 같은 것.
술이 다 깰 때까지 참 평화는 오지 않을 것이고
그럼에도 생이란 내 차가 지나간 그 길 위
다시 천,천히, 도로를 가로지르는
한 마리 흰 나비 같은 것일 것인가, 어쩔 것인가.
댓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