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경험 속에서, 가장 인간적인 사람은 '마음이 따뜻한 사람'도 '사랑이 넘치는 사람'도 아닌 '제대로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2016/05'에 해당되는 글 11건
- 2016/05/30 생각
- 2016/05/29 상념과 회한에 젖는 순간
- 2016/05/26 여혐 사건
- 2016/05/20 사회 변화는 경향성의 변화다
- 2016/05/17 광주의 정신, 민주주의의 정신
- 2016/05/13 청년 문제
- 2016/05/11 구독 잔치
- 2016/05/06 고래 150호
- 2016/05/05 볼멘소리
- 2016/05/02 모범
- 2016/05/01 우리는 나아가고 있다
2016/05/30 22:26
2016/05/29 10:08
상념과 회한에 젖는 순간
또 하루 멀어져 간다
내뿜은 담배 연기처럼
작기만한 내 기억속에
무얼 채워 살고 있는지
점점 더 멀어져 간다
머물러 있는 청춘인 줄 알았는데
비어가는 내 가슴속엔
더 아무것도 찾을 수 없네
계절은 다시 돌아오지만
떠나간 내 사랑은 어디에
내가 떠나 보낸 것도 아닌데
내가 떠나온 것도 아닌데
조금씩 잊혀져 간다
머물러 있는 사랑인 줄 알았는데
또 하루 멀어져 간다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
**
김광석이 94년에 발표한 '서른 즈음에'는 말 그대로 30대 정서를 기막히게 그린 노래로 여겨졌다. 김광석 또래인 우리가 그랬을 뿐 아니라 윗세대들도 '그래, 서른 즈음에 저랬지' 했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살고 나이를 먹어가며 느끼고 지나가는 정서적 고개, 상념과 회한에 젖는 순간이 있는 법이니까. 그런데 만일 지금 서른살 먹은 사람이 이걸 부른다면 어떨까. 스스로도 도무지 공감이 안되고 남보기에도 '어울리지 않는 궁상'으로만 여겨질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30대 정서' 따윈 사라진 지 오래다. 오늘 아침, 김광석이 공연에서 이 노래를 부르고 관객에게 한 이야기를 읽었다. 사라진 건 30대 정서만이 아님을 새삼 깨닫는다. 나쁜 사회는 사람의 삶에서 계속 뭔가를 빼앗아간다. 빼앗긴 사람들은 더 나쁜 사회의 원료가 된다. 그런데, '상념과 회한에 젖는 순간'마저 빼앗아가는 사회가 있었던가.
**
누구나 스스로의 나이에 대한 무게는
스스로 감당해 내면서 지냅니다
10대 때에는 거울처럼 지내지요
선생님 부모님 그리고 친구들
자꾸 비추어보고
자꾸 흉내내고
그러다 20대쯤 되면
주관적이든 일반적이든 객관적이든
나름대로 가능성도 있고
나름대로 기대도 있고
뭔가 스스로를 찾기 위해
좌충우돌 부대끼면서 지냅니다
자신감은 있어서 일은 막 벌이는데
마무리를 못해서 다치기도 하고
그래도 자존심은 있어서
유리처럼 지내지요
자극이 오면 튕겨내버리든가
스스로 깨어지든가
그러면서 아픔 같은 것들이 자꾸 생겨나게 되고
또 비슷한 일들이 일어나면
더 아프기 싫어서 조금씩 비켜나가죠
일정부분 포기하고
일정부분 인정하고
그렇게 지내다보면
나이에 'ㄴ'이 붙습니다
서른이지요
그때쯤 되면
스스로의 한계도 인정해야 하고
주변에 일어나는 일들도
그렇게 재미있거나 신기하거나 하지도 않습니다
그런 답답함
재미없음
그 즈음에
그 나이 즈음에
모두들 비슷한 느낌들을 가지고 있더군요.
2016/05/26 07:15
의사는 강남역 사건을 '여혐 사건이 아니다’ 말할 수 있다. 경찰도 ‘여혐 사건이 아니다’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사회는 '여혐 사건이다' 말할 수 있다, 아니 말하는 게 맞다. 사회는 진단이나 수사가 아니라 사회적 의미를 말한다.
2016/05/20 13:42
2000년 초, 한 노동운동 단체에서 일련의 성추행/성폭행 사건으로 소란스러웠다. 송년회 술자리에서 1차만 마치고 일어나려던 여자 후배에게 더 놀자며 손을 붙들었던 남자 활동가가 중앙위에 성추행으로 제소되었다. 그는 징계 처분과 성평등 교육 명령을 받았다. 그는 조직의 결정을 따르면서도 짐짓 억울해했다. 제딴엔 호의에서였고 '고작 손을 잡았을 뿐’이니 말이다. 또 하나는 만취한 남녀 활동가가 모텔에서 함께 잤는데 다음날 여자 활동가가 남자를 성폭행으로 제소한 사건이었다. 그는 조직에서 제명되었고 결국 운동을 떠났다. 그런데 그 일에 대해 정황상 성폭행이라 보긴 어렵지 않은가, 의문을 제기하는 몇몇 남자 활동가들이 2차 가해로 제소되었다. 그 중 하나는 결국 운동을 그만 두었다.
일련의 일들을 겪으며 큰 변화가 일어났다. 남자 활동가들은 술자리뿐 아니라 어디서든 여성에게 신체접촉하는 걸 주의하게 되었다. 같이 자는 걸 섹스를 허락하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생각도 바꾸게 되었다. 그러나 그런 변화가 다 순조롭게, 자발적으로 일어난 건 아니다. 이를테면 남자 선배 활동가가 여성과 신체 접촉에 주의를 하게 된 건 처음에는 성추행이라는 걸 인정해서가 아니라 ‘자칫하면 큰 일 난다'는 경계심에서였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그런 행동이 익숙해지고 조금씩 생각이 진전되면서 '여성 쪽에선 성추행 맞구나'라고 각성하게 되었다.
변화는 다른 단체에도 전파되고, 또다른 단체에서도 비슷한 상황과 변화가 일어나면서 결국 전체 노동운동, 진보운동 진영의 변화로 이어졌다. 성폭행 사건이 일어났을 때, 운동의 대의를 앞세워 혹은 조직 보위의 이름으로 피해자의 침묵을 강요하는 야만적 상황도 쉽게 찾아보기 어려워졌다.(그런 의미에서 2008년 민주노총 성폭력/전교조 은폐 사건은 매우 악질적인 경우다.)
사회 변화는 다 그런 과정을 거친다. 특히 변화가 본격화하는 시기엔 낱개로 살펴 봤을 땐 억울하거나 무리한 상황이 일어나기도 한다. 오랜 시간 동안 묻혀 왔던 피해자들의 분노가 폭발하면서 최선의 이성적인 상황을 벗어나는 경우가 생겨나기도 한다. 물론 그런 일들이 변화의 대의 앞아서 무시되어선 안된다. 그건 운동의 대의와 조직 보위 명분으로 성추행/성폭행 피해자를 억압하는 것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회 변화의 과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어날 수밖에 없는 상황들을 미리 생각하고 현명하게 대처하는 건 보다 성숙한 태도다.
사회 변화는 ‘경향성’의 변화다. 어떤 사회 변화도 100퍼센트의 변화는 없다. 이를테면 세월호 사건 이후 '아이들이 안전한 사회'를 만들자는 이야기가 많아졌는데, 아이들이 100퍼센트 안전한 사회란 존재하지 않는다. 아무리 아이들이 안전한 사회도 아이들이 몸을 움직여 살아가는 한 사고는 있기 마련이다. '아이들이 안전한 사회'란 한 아이도 사고를 당하지 않는 사회가 아니라, 아이들이 예외적인 상황이 아니라면 사고를 당할 가능성이 매우 적고, 혹시 사고 상황에 처하더라도 최선의 조처를 기대할 수 있는 사회다. '노동자가 행복한 세상'도 '여성이 안전한 사회'도 마찬가지다.
강남역 사건으로 여험 논의가 본격화했다. 성추행, 성폭행 체험을 털어놓는 여성이 줄을 잇는다. 그런 상황에 대하여 '모든 남자가 그런 건 아니다'라 항변하거나, '여험이 사건의 주 원인이 아니다' 논평하는 건 핀트를 벗어난 이야기다. 여험을 말하는 사람들은 이 사건에 여험 외엔 다른 원인이 없다고 주장하는 것도, 모든 남자가 한명도 빠짐없이 그렇다는 걸 증명하려는 것도 아니다. 현재로선 남자 일반이 그런 경향성을 갖는다는 사실과 그런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여성이 갖는 일반적 위험을 말하는 것이다. 그런 사회는 변화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그런 남자에 해당하진 않더라도 충분히 존중할 수 있다. 그리고 내가 그런 남자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생각에 허점은 없는지 살펴보는 학습 기회로 삼을 수 있다. 그럴 때 비로소 우리는 강남역 사건의 피해자 여성을 추모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2016/05/17 21:58
(2005년 5월 18일 연세대 강연문. 해마다 이맘때면꺼내 읽곤 한다. 지난 시간을 되새기며 함께 읽어주시길.)
얼굴은 본적이 없지만 이따금 이메일을 교환하는 사람들이 몇 있습니다. 그 중 한 사람이 얼마 전에 광주항쟁에 대해 잘 모르니 알 수 있는 책이나 사이트를 소개해달라고 했습니다. 저는 좀 의외였습니다. 그는 요즘치곤 꽤 반듯한 사회의식을 갖고 있는 대학생인데 어떻게 광주를 모를까 싶었던 것이지요.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럴 법도 했습니다. 지금 대학생이면 1980년엔 태어나지도 않았거나 어린아이였으니 말입니다. 당시 고3이었고 청년 시절 내내 광주를 품고 살았던 저희 세대와는 다를 수밖에 없지요.
그러나 저와 비슷한 세대이면서 광주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사람도 많이 있습니다. “사태”라고 할 때는 “사태”인 줄 알고 “항쟁”이라고 하니 “항쟁”인 줄 아는 그런 사람들이지요. 그런 사람들을 우리는 ‘무식하다’고 합니다. 유식하다 무식하다는 제도교육 학력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사회의 한 성원으로서 알아야 할 최소한의 것을 알지 못하는 사람, 그래서 자기 눈으로 세상을 볼 줄 모르는 사람, 그런 사람이 바로 무식한 사람입니다. 한국 사회는 갈수록 그런 무식한 사람들로 가득 차고 있습니다.
하여튼 광주는 25년이 되었고 다른 모든 사건들과 마찬가지로 현실 속의 사건이 아니라 역사 속의 사건이 되어갑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광주항쟁에 대해 잘 모르는 것도 이해합니다. 하지만 당부하고 싶은 건 광주항쟁에 대해 따로 공부를 하라는 겁니다. 광주항쟁을 제대로 모르면서 한국 사회와 역사에 대해 말한다는 건 어불성설입니다. 학술적인 책을 사볼 것까진 없고 여러분들 아마도 매일 인터넷에 들어갈 테니 시간을 조금만 헐어서 광주항쟁 관련한 사이트를 찾아보기 바랍니다. 기본적인 것들을 파악할 수 있는 곳은 5.18기념재단도 있고 여럿 있습니다.
광주항쟁이 갖는 역사적 의미는 아주 많습니다. 그러나 제 생각에 가장 중요한 것은 광주항쟁을 통해 이른바 ‘민주주의’의 뜻이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광주 전의 민주화 운동은 반독재 운동, 즉 선거나 개인의 자유 같은 민주주의의 절차를 회복하려는 운동이었습니다. 좀 딱딱하게 말하면 부르주아 민주주의 운동이었지요. 그러나 광주 이후의 민주화운동은 좀 더 근본적이고 진정한 민주주의를 이루려는 운동으로 바뀝니다.
그 동기는 미국입니다. 광주가 계엄군이 일시 퇴각하고 해방된 상태이던 80년 5월 24일 미국 항공모함 코럴씨 호가 부산항에 들어왔다는 소식에 시민들은 자유의 나라 미국이 우리를 구하러 오는가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실제론 신군부의 쿠데타나 계엄군의 작전은 미국의 암묵적인 승인 아래 진행되고 있었죠.
광주를 거치면서 한국의 사회운동은 미국에 대한 자각이 생기는데 이건 미국이라는 일개 나라에 대한 자각을 넘어 미국식 민주주의, 이른바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자각으로 발전합니다. 80년 5월 22일부터 닷새 동안의 해방 광주의 모습은 바로 그 진정한 민주주의가 어떤 것인지, 그런 세상이 어떻게 가능한지 우리에게 보여주었습니다.
광주를 진압한 군사 파시즘은 더 강력한 공포정치에 들어갔지만 그럴수록 저항은 되살아났습니다. 80년대 중반이 채 되기 전에 한국의 사회운동은 절차적 민주주의를 좇는 부분이 남아있었지만 그 성원의 대부분은 진정한 민주주의를 좇는 변혁적인 성격을 갖게 됩니다.
87년 6월 29일 대통령 당선자 노태우가 민주화와 직선제 개헌을 수용하다는 선언을 함으로써 한국에서 절차적 민주주의가 이루어지기 시작합니다. 노태우 정권과 김영삼 정권을 거쳐 절차적 민주주의는 계속 정착이 되어 갑니다. 그런데 그와 동시에 희한한 일이 벌어집니다. 80년대에 변혁운동을 했던 운동세력의 상당수가 변신하는 것이지요. 진정한 민주주의니 변혁이니 하는 건 다 지나간 일이라는 선언을 하는 것입니다.
여기엔 두 가지 요인이 있습니다. 그들 대부분은 현실 사회주의에 대한 정확한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 현실 사회주의에 대한 동경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현실사회주의가 80년대 말 무너지자 그들도 함께 무너지게 되었지요.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요인은 그들이 그들 자신을 속이기로 한 것입니다.
절망감에 빠진 많은 청년들이 사회운동을 포기하고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런 사람을 욕할 수는 없습니다. 처음부터 운동 안 했던 사람에 비하면 백배 훌륭한 사람들이지요. 모든 사람이 활동가로 살 수는 없는 것이니 현실적인 삶을 살면서도 얼마든 운동을 지지하고 후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조용히 일상으로 돌아가는 게 아니라 자신의 이력을 사용해서 주류사회에 진출하기 시작했습니다.
가장 불거지는 경우는 이른바 ‘386정치인들’입니다. 학생 시절의 신념은 슬그머니 뒤로 버리고 그 운동을 통해 얻은 제 명망을 사용해서 제도 정치권에 들어갔습니다. 세상이 달라졌다느니 패러다임이 바뀌었다느니 이런저런 핑계를 대지만 다 개소리고 그들은 결국 국회의원 배지를 달기 위해 운동을 했던 것입니다. 기분 나쁘게 들리겠지만 10년 쯤 지나면 이 자리에서도 역시 그런 사람이 나올 것입니다.
또 하나는 운동의 종목을 바꾼 사람들입니다. 바로 90년대 중반 이후 급성장한 시민운동입니다. 활동가라면 한눈에도 체제의 바깥에 있는 사람들, 영등포나 구로동에 구질구질한 사무실에서 구질구질한 옷차림으로 왔다갔다 하는 사람들이었는데 이젠 시내 한 복판에 번듯한 사무실에 넥타이를 맨 활동가들이 나타났습니다. 운동의 주제는 근본적인 것에서 시민의 일상과 관련한 것들, 다시 말해서 체제를 넘어서는 게 아니라 체제 안의 문제들을 위주로 했고 시위나 싸움보다는 텔레비전이나 신문 같은 미디어를 이용하는 방식으로 빠른 시간 안에 대중의 각광을 받습니다. 그리고 이런 흐름은 안티조선운동을 비롯한 언론개혁운동, 정치개혁운동들과 결합하고 확산되면서 결국 정권을 만들어냅니다.
저는 그런 개혁운동들이 갖는 의미를 부인하지 않습니다. 저 자신도 안티조선 운동의 초기에 매우 적극적으로 가담했고 제가 만들었던 아웃사이더라는 잡지는 일종의 좌우 합작이었지만 공동의 적은 조선일보라고 밝히고 있지요. 저는 개혁운동의 진보운동의 일부라는 사실과 기존의 진보운동이 놓치고 있던 부분을 잡아냈다는 사실을 존중합니다.
그러나 저는 동시에 그 운동이 갖는 반동성에 주목하는 것입니다. 그 운동이 여전히 좀 더 근본적인 변화를 좇는 진보운동을 철지난 운동, 관념적이고 비현실적인 행태로 몰아붙이는 부분에 대해 주목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의도하든 안 하든 개혁운동이 ‘오늘의 진보운동’을 자처하는 한 필연적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개혁운동이 진보를 자처하면 한국사회는 보수 대 진보의 구도가 아니라 극우보수 대 개혁보수의 구도가 되고 진보는 아예 무대에서 밀려나버리는 것입니다.
개혁이 세상을 바꾼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개혁은 세상을 바꾸는 게 아니라 겉으로 드러나는 야만과 폭력성을 제거하여'합리화'하는 운동입니다. 세상이 바뀐다고 하는 것은 나쁜 신문이 곤경에 처하고 비리 정치인이 잡혀 들어간다고 되는 게 아니라 세상의 구조 자체가 바뀌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제도 언론이나 정치란 바로 세상의 구조를 기반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왜곡이나 비리가 줄어든다고 해서 세상이 바뀌는 것은 아닙니다. 세상이 바뀐다는 건 바로 그 언론이나 정치의 뿌리를 바꾸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경제의 문제이고 계급적 문제입니다. 그 부분에서 한국사회는 민주화와 개혁이 진행될수록 오히려 더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빈부격차가 심해지고 양극화되고 있다는 건 이젠 한나라당 의원들도 인정하는 일입니다. 노동자들의 생활이 나아졌다고 하지만 그 절반은 비정규노동자고 그 비율은 늘어가는 중입니다. 농업은 국가에서 공식적으로 포기한 지 오래지요. 그런 문제들은 개혁운동에서 배제되고 촛불시위에서도 배제됩니다.
이런데도 여전히 언론개혁이나 정치개혁이 세상을 바꾼다고 생각한다면 초인적으로 순진한 사람이거나 어리석은 사람이라고밖에 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들은 아마 이 학교 안에서는 가장 급진적인 의식을 가진 사람들에 속할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근래 맑스주의가 어떻고 좌파가 어떻고 말하는 학생들 가운데 상당수가 자기도 모르게 개혁운동의 최면에 빠져 있는 것을 종종 보게 됩니다.
한국사회는 여전히 파시즘 상태에 있습니다. 새로운 파시즘, 군사파시즘이 아니라 자본의 파시즘이지요. 군사파시즘은 억압과 폭력으로 우리를 다스리지만 자본의 파시즘은 우리에게 자본의 욕망을 심어서 스스로 복종하게 만듭니다. 현재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자본의 매우 충성스런 백성들입니다. 얼마 전 고대에서 일어났던 일과 그와 관련한 반응들은 바로 그 사실을 드러냅니다.
어떤 사람은 고대나 고대학생들의 태도가 “밥그릇 때문”이라고 하더군요. 인터넷 신문에 보니까 그 발언을 두고 “직격탄을 날렸다”고 적혀 있던데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밥그릇 때문”이라는 말은 속으론 인정하지 않지만 먹고사는 문제 때문에 어쩔 수없이 인정한다는 뜻인데 제가 보기엔 그게 아니라 그들은 진짜로 진심으로 이건희를 인정하고 존경합니다. 그들은 이건희와 다른 건 이건희보다 돈이 없다는 것뿐입니다.
노동자 착취와 정경유착과 온갖 비리로 부자가 된 아버지를 둔 덕에 부자가 되어선 다시 온갖 편법을 동원해서 재산을 제 자식에게 상속하는 사람이 한국이 자랑하는 기업인입니까? 노조조차 만들 수 없는, 노동자들의 위치추적을 하고 협박을 하는 회사가 세계적인 첨단 기업입니까? 지금 한국 사람들이얼마나 어려운 시절을 보내는지 뻔히 알면서 프랑스의 스키장을 통째로 빌려서 스키를 타는 인간이 과연 철학을 가진 인간입니까? 그런 인간에게 이 나라의 대표적인 명문대학이라는 곳에서 명예 철학 박사학위를 주려고 작전을 벌이고 그나마 정신이 제대로 박힌 학생들이 현실을 깨우쳐주었는데도 총장은 엎드려 용서를 빌고 보직교수들은 사퇴서를 내고 수천명의 학생들은 총학생회를 탄핵하는 서명을 하고, 이게 대체 정신병원입니까 대학입니까?
그러나 바로 그 모습이 바로 우리의 모습 한국인들의 모습입니다.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이건희라는 파렴치한 인간을 진심으로 존경합니다. 한국인들에게 더 이상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진지한 고민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삼성이라는 회사에 다니는 사람들은 “먹고사는 게 원수라 저런 놈 밑에서 일한다”고 부끄러워해도 신통치 않을 판에, 그런 파렴치한 인간을 왕처럼 떠받들며 노조조차 없는 회사에서 ‘삼성맨’의 자부심에 젖어 삽니다. 참으로 무지한 그러나 돈은 많은 주인 아래서 배불리 먹여준다는 걸 자랑으로 삼는 머슴들이지요. 그리고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그런 삼성맨을 부러워합니다. 대학생들은 삼성맨이 못되어서 안달이 나고 그들의 아버지들은 이건희처럼 살수 없다는 것을 인생의 한으로 생각합니다.
이런 상태, 모든 사람이 자본의 권력에 자발적으로 사로잡혀 있는 사회는 아무런 희망이 없습니다. 탄압받고 억압받아도 정신만은 해방되어 있던 시절보다 스스로 정신을 내어준 시절은 더욱 끔찍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시절보다 나은 음식을 먹고 자가용과 휴대폰을 갖게 되었다는 이유만으로 더 잘 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본의 욕망이 인간을 억압하는 걸 넘어 우리 스스로 자본의 욕망에 젖어서 인간성 자체를 파괴하고 변화시키고 있습니다.
이렇게 살면서 우리가 아이들에게 뭘 가르칠 수 있을까요? 실제로 오늘 부모들은 아이에게 아무것도 가르치지 않습니다. 오로지 경쟁에서 동무를 누르고 이길 것만을 가르치고 사랑이나 존경조차도 돈을 주고 살 수 있는 것이라고 가르치지요. 아이들이 그렇게 자라서 엘리트가 된다 한들 진정한 행복을 느낄 수 있을까요? 돈으로 안락을 살 수 있지만 돈으로 행복을 살 수는 없습니다. 돈으로 박사학위를 얻을 수는 있지만 그 박사학위는 내가 아니라 돈에게 수여된 것입니다.
이건희가 돈이 없다면 누가 그를 존경할까요? 모든 사람이 그의 돈을 존경하는 것입니다. 이건희 씨는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입니다. 여러분 생각을 해보세요. 아무리 돈이 많다고 프랑스에 가서 스키장을 통째로 빌려서 울타리 밖에선 다 보고 있는데 혼자 스키를 타는 사람이 과연 자의식을 가진 인간일까요? 여러분 같으면 쪽팔려서 그렇게 하겠습니까? 정신이 완전히 파탄 난 사람이나 할 수 있는 일이지요. 그런데 이건희라는 사람은 그렇게 합니다. 대체 얼마나 추켜올렸으면 사람이 그 지경이 되었을까요?
오늘은 5.18입니다. 여러분이 저를 부른 이유도 오늘이 5.18이기 때문입니다. 아까 사회자의 진행에 따라 묵념도 했지만 5월에 죽어간 사람들, 사람답게 사는 게 무엇인지 보여준 사람들이 지금 우리를 지켜보고 있습니다. 광주는 처음엔 엘리트 지식인들, 대학생들이 주도했지만 마지막에 가선 그런 사람들은 대부분 떠납니다. 계엄군과 협상을 해서 더 이상의 희생을 줄여야 한다, 헛되게 죽지 말고 힘을 기르자, 이런저런 합리적인 이유를 주장하던 수습파들은 떠나고 무릎 꿇느니 차라리 죽겠다는 항쟁파만 남습니다. 그 순간부터 시민군이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습니다. 그 순간부터 광주 인민의 군대라고 해야 맞습니다. 항쟁파의 대부분은 평소에 인간 취급 못 받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느껴본 인간으로서 품위가 목숨보다 귀하게 느껴졌던 것입니다. 어차피 인간 취급 못 받고 사는 세상, 하루를 살더라도 인간처럼 살자. 결국 그들만이 인간의 품위를 간직했습니다.
지나간 일, 자신의 삶과 직접 관련을 갖지 않는 역사 속의 사건에 대해 올바른 입장을 취하는 건 아주 쉬운 일입니다. 저는 얼마 전에 아주 진보적이라는 역사학자 한 분이 대학생 시절의 추억까지 끌어대면서 유시민 씨를 두둔하고 나서는 걸 보고 놀란 적이 있습니다. 체 게바라나 김산을 흠모하는 건 쉬운 일이지만 현실 속에서 체 게바라나 김산이 되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체 게바라나 김산을 흠모한다면 그렇게 살지는 못해도 그렇게 사는 사람들, 현실 속의 체 게바라나 김산을 존경할 줄은 알아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체 게바라나 김산을 흠모하는 우리는 현실 속의 체 게베라나 김산엔 관심이 없거나 그들을 비웃곤 하지요. “어리석고 비현실적이며 관념적인 사람들”이라고 말입니다.
우리는 광주에서 끝까지 싸웠던 사람들을 훌륭하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내가 그 상황에 있다면 어떻게 했을까 가만히 생각해보십시오. 얼마나 많은 고뇌가 있었을까요. 얼마나 외로웠을까요. 다시는 만난 수 없는 늙은 어머니, 처음으로 입을 맞춘 날의 두근거림이 그대로 남은 애인, 제 목숨보다 귀한 새끼와 영원히 만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일제시대의 독립군들처럼 죽고 나서 존경과 명예가 남는 것도 아니고 오로지 폭도요 빨갱이로 남는 것입니다. 남은 가족이나 사랑하는 사람들이 자신으로 인해 언제까지 어떤 고통을 겪을지도 알 수 없습니다. 과연 그런 상황에서 우리는 끝까지 총을 들 수 있을까요? 그런데 그들은 그렇게 했습니다. 그게 바로 광주의 정신입니다.
여러분들 매일 밤 인터넷에서 활동하지요? 지금 이 나라의 젊은 사람들 대부분이 하루 일과를 마치고 저녁 먹고 나서 인터넷 세상에 들어가 다들 사회평론가로 활동합니다. 바야흐로 온 국민이 사회평론가인 시절이지요. 그러나 마치 세상을 다 안다는 얼굴이지만 그 대부분은 개혁이라는 체제의 손바닥 안에서 놀고 있을 뿐입니다. 체제는 그들에게 “세상을 바꾸는 네티즌”이라고 부추기고 그들은 다시 “세상을 바꾸는 네티즌들”로서 활동합니다. 오로지 체제가 제공하는 이슈에 매일 밤 메뚜기 떼처럼 몰려다니며 좀 더 근본적인 사회적 모순들을 은폐하는 데 동원되지요.
이야기를 마무리하겠습니다. 여러분, 광주의 정신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당장 실현가능한 문제에만 매몰되지 말고 우리가 인간임을 진정으로 증명할 수 있는 문제를 소중하게 생각하기 바랍니다. 지금 당장 아니 설사 내 생애에 이루어지기 어려운 일이라 해도 그것이 옳고 그렇게 되어야 한다면 그 일에 대한 신념을 버려선 안 됩니다. 중세의 암흑 속에서 근대라는 세상이 올 거라고 누가 상상했겠습니까? 그러나 그 신념을 버리지 않은 아주 적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당대의 사람들에게서 어떤 소리를 들었을지 생각해 보십시오.
바로 “어리석고 비현실적이며 관념적인 사람들”이라고 했겠지요. 그러나 바로 그 “비현실적이며 관념적인 사람들”이 깨지고 또 깨지면서 결국 중세는 무너집니다. 우리의 암흑도 그렇게 무너질 것입니다. 그게 바로 광주의 정신, 진정한 민주주의의 정신입니다.
2016/05/13 11:29
이른바 '청년 문제'를 말할 때 주의할 것은 세대 문제가 아니라 계급 문제라는 사실이다. 지금이 모든 청년에게 헬조선은 아니며, 모든 중년이 꿀세대 청년이었던 것도 아니다. 헬조선이라는 말 앞에서 조용히 웃는 소수의 청년이 있고, 꿀세대라는 말 앞에서 늘 고달팠던 제 삶을 반추하는 상당수 중년이 있다. 청년 문제는 계급문제, 즉 '현재의 노동계급' 혹은 '노동계급의 현재' 문제다.
2016/05/11 21:12
2016/05/06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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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가그랬어 150호가 나왔다. 감회에 젖는 대신 고래 표지에 적힌 두가지 말을 천천히 읽어본다. '하나뿐인 어린이 교양지' '생각하는 힘, 함께하는 마음'. 150호 표지엔 다들 모여 축하 케이크를 만들며 노는 그림을 실었다. 개중엔 매우 못마땅한 얼굴을 한 사람도 있다. 중심에 있진 않지만 중요한 존재다. 이견 존중은 한국 어른들이 잘 못하는 것 중 하나고, 그래서 언제나 고래 만들기의 빠트릴 수 없는 요소가 된다. 여하튼 고래 150호가 나왔다. 독자들께, 특히 고래를 구독하기 어려운 10만명 아이들의 동무가 되어준 고래이모 삼촌들께 깊이 고개숙여 인사드린다. ^^
2016/05/05 13:05
아이는 놀아야 한다, 못놀면 병든 사람이 된다(물론 이건 내 말이 아니라 오늘 전세계의 공신력 있는 교육학자, 아동심리학자, 실천가들이 입을 모아 하는 말이다)고 말하면 꽤 많은 부모들이 '학원 안가고 놀게 해줘도 결국 게임이나 인터넷만 한다'고 볼멘소리를 한다. 아이가 놀려면 세가지가 필요하다. 놀 시간, 놀 공간, 놀이. 세가지 다 무너진 상태인데 그 중 하나만 준다고 해서 놀 수 있는 건 아니다.
또다른 볼멘소리는 '다들 학원에 가니 함께 놀 아이가 없다'는 말이다. 그러나 놀이엔 함께 하는 센 놀이만 있는 게 아니다. 혼자 조용히 하는 놀이도 있다. 아이의 영적 성장은 오히려 혼자 놀 때, 먼산 보고 누가 봐도 아무 의미없는 시간을 보낼 때 이루어진다. 아이들은 혼자 노는 법을 잃었다. 혼자 있으면 불안해만 한다.
놀이를 무너트리고 앗아간 건 누구인가. 너나없는 어른들이다. 아이의 행복을 위해 아이의 삶을 공부 하나로 효율화하느라 그리 되었다. 그러니 볼멘소리만 할 게 아니라 결자해지해야 한다. 내 아이 남의 아이를 넘어 '우리 아이들' 일로 여기고 연대하는 것이다. 무너진 과정이 있었다면 다시 세우는 과정도 있는 법이다. 막막하고, 쉽지 않은 일이지만 우회로는 없다.
2016/05/02 15:09
제대로 된 공산주의자라면 공산당에서 제명 한번은 당하는 법이고 제대로 된 기독교인이라면 교회에서 출교 한번은 당하는 법이며 제대로 된 학생이라면 학교에서 퇴학 한번은 당하는 법이다. 모범보다 못난 건 없다.
2016/05/01 13:27
2012년 5월, 고래가그랬어는 경향신문의 도움을 받아 '아이를 살리는 7가지 약속'이라는 캠페인을 시작했다. '4. 아이와 노동자가 행복해야 좋은 세상입니다.'는 그 중에서도 특별한 것이었다.
아이의 미래와 관련하여 분명한 것 하나는 대개의 아이는 노동자로 살아가게 된다는 것이다. 생산직이든 사무직이든, 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대기업이든 중소기업이든. 그래서 아이의 삶과 노동자의 삶은 연동될 수밖에 없다.
아이들의 얼굴에 웃음이 있는 사회는 노동자들이 비교적 인간적 삶을 누리는 사회이기도 하다. 노동자의 삶이 불안정하고 고통스러운 사회치고 아이들의 얼굴에 웃음이 있는 사회는 없다. 노동자의 싸움에 연대하는 일은 내 아이의 삶에 연대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항목은 신문에 실릴 때 '남의 아이 행복이 내 아이 행복이다'라는 다소 모호한 말로 바뀌었다. 교육 캠페인에 노동자라는 말이 들어갈 때 독자의 거부감이 예상되니 순화할 필요가 있다는 경향 측 요청이 있었다. 조중동도 아닌 경향이 그런다는 게 매우 애석했지만, 캠페인의 출발 시점에는 현실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에 수용했다. 물론 기사 외에 모든 활동에선 본디 내용을 유지한다는 조건이었다.
요 며칠 페북에서 아이들의 노동 의식이 많이 왜곡되었다는 경향신문 카드뉴스가 많이 공유되는 걸 본다. 4년 동안 우리는 적어도 그만큼은 앞으로 나아간 것이다. 절망과 우울 속에도 우리는 조금씩 나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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