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7'에 해당되는 글 31건

  1. 2013/07/31 좋은 배우
  2. 2013/07/31 있는 놈
  3. 2013/07/30 소소한 직관
  4. 2013/07/29 철학의 복원
  5. 2013/07/29 위험의 범주
  6. 2013/07/28 The modern San Franciscan
  7. 2013/07/26 고래고래
  8. 2013/07/25 딱딱
  9. 2013/07/25 멈춰 서기
  10. 2013/07/25 놀이시~작
  11. 2013/07/23 그의 이야기
  12. 2013/07/21 식견과 철학
  13. 2013/07/18 소세키
  14. 2013/07/17 완벽한 어린 시절
  15. 2013/07/16 여고시절
  16. 2013/07/11 동병상련
  17. 2013/07/10 고래가그랬어 116호
  18. 2013/07/10 기쁜 소식
  19. 2013/07/10 괴물
  20. 2013/07/09 현실적인 것과 비현실적인 것
2013/07/31 20:08
‘토니 소프라노스가 좋아하는’ 영화 ‘공공의 적’(1931)을 이따금 꺼내본다. 제임스 갠돌피니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다시 꺼내봤다.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볼 때마다 참 사랑스러운 영화라는 걸 확인한다. 그래서 언제나 서너번에 나누어 아껴가며 본다. 갠돌피니는 그 육중한 외모로 모든 게 밋밋해진 아저씨는 물론, 아이 같은 천진함과 광기어린 잔혹함을 동시에 멀쩡히 담아내는, 대체하기 어려운 연기력을 가진 배우였다. 죽었다고 생각하니 ‘소프라노스’에서 리클라이너에 기대고 누워 귀엽다고밖에 할 수 없는 얼굴로 제임스 캐그니를 보며 킬킬거리던 그와 ‘웰컴 투 마이 하트’(2010)에서 크리스틴 스튜어트와 나란히 앉아 대화하던 그가 떠오른다. 대체 그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삶과 인간사에 대해 얼마나 많은 느낌을 주었을까. 좋은 배우란 인간의 세상에 참 좋은 걸 주는 존재들이다.
2013/07/31 20:08 2013/07/31 20:08
2013/07/31 12:36
"있는 놈이 더하다"라는 말은 실은 거꾸로 된 말이다.
더하니까 있는 것, 이다.

2013/07/31 12:36 2013/07/31 12:36
2013/07/30 01:40
"이렇게 생각하자 겐조는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는 좀처럼 울지 않는 성격이면서도 정말 눈물이 나게 하는 사람, 정말 눈물이 나게 하는 일이 왜 자신에게는 없을까 생각하는 유형의 사람이었다."

"다루기 쉬운 사람이다. 실제로 본인이 다루기 쉬운 점이 많다고 자각하면서도 겐조는 남에게 이렇게 여겨지는 것에는 화가 났다."

소세키의 문장엔 이런 식의 소소한 직관들이 많다.
감동이 아니라 호감이 느껴지는 직관이랄까.

2013/07/30 01:40 2013/07/30 01:40
2013/07/29 18:27
“아이들이 왜 그렇게 죽음을 선택하는 걸까요.” 화기애애하던 질의응답 시간이 일순 찬물을 끼얹은 듯 했다. “아시다시피 아이들이 밥을 굶어서 그러는 건 아닙니다. 아이들은 왜 살아야 하는지 알 수 없어서 그런 선택을 합니다. 우리가 더 이상 철학을 가르치지 않기 때문입니다.” 나는 조심스럽게 그리고 천천히 말을 이어갔다.

사람이 철학을 갖는다는 게 뭘까. 인간과 세계에 대해, 삶의 본질에 대해 사유하길 멈추지 않으며 나름의 관점과 태도를 갖는 것일 게다. 그리고 현실이 우리를 곤란하게 만들더라도 그 관점과 태도에 기대어 사람 꼴을 잃지 않으려 노력하는 것일 게다. 그렇게 볼 때 옛사람들은, 아니 불과 몇십년 전만 해도 사람들은 다들 삶의 철학자였다. 철학교사였다. 그들은 아이에게 늘 예사로 말하곤 했다. “혼자만 잘살면 뭐해 함께 살아야지.” “돈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야.” “일도 좋지만 놀 줄도 알아야지.” “동무에게 양보할 줄 알아야 해.” “미물도 함부로 해치는 게 아니다.” “사람이 너무 탐욕 부리면 죄받는다.” 등등.

별스러울 게 없어 보이면서도 참 정연한 철학들이었다. 그리고 참 무서운 가르침들이었다. 아이가 어른이 될 때까지 셀 수 없이 반복되는 그 가르침이 사람 꼴의 하한선을 만들어냈다. 아이들은 사람임을 되새길 줄 알며, 이기적 욕망을 공동의 가치로 견제할 줄 알며, 소박하고 정직한 삶이 부귀영화를 누리는 삶보다 못하지 않음을 아는 사람들로 자라났다. 그런 사람들이 이웃과 마을을 이루고 정이 흐르는  세상을 만들었다.

물론 인간과 세계에 대한 그들의 생각이 다 훌륭하진 않았다. 윗사람에 대한 무작정한 순종을 강조하거나 여자는 남자의 보조적 존재라는 따위 생각은 얼마나 모자란 것인가. 그래서 우리는 그것들을 인간의 자유롭고 주체적인 삶을 억압하는 전근대적 습속이라 지목했고 열심히 내다 버리지 않았던가. 그런데 왜 우리의 삶은 이렇게 자유롭지도 주체적이지도 않을까. 예전엔 어지간히 탐욕을 부리며 살아가는 사람조차도 아이에게 가르치던 삶의 철학을 왜 우리는 진보를 자처하는 사람조차도 가르치길 두려워할까.

자본주의가 도착했기 때문이다. ‘최대의 사람이 최대의 행복을 추구한다’는 공리주의의 기치 아래 모든 사람이 각자의 행복을 추구하는, 저와 제 새끼의 행복을 추구하느라 늘 불안하고 늘 피 터지는 세상에 진입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철학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우리가 더 이상 삶의 철학자도 철학교사도 아니게 되었기 때문이다. 민주화가 되면 살기 좋아질 줄로만 알던 우리가, 민주화와 함께 도착한 본격적인 자본주의에 의해 영문도 모른 체 내몰리면서 철학을 지켜내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사정이 어떻든 ‘밥을 굶어도 사람이 그러면 안 되지’라는 철학이 사라짐으로써 우리의 삶은 밥을 굶을 때보다 더 초라해졌다.

삶의 철학자들이 사라진 자리는 “현실이 어쩔 수 없다”는 시대의 정언명령이 들어섰다. 그리고 엉뚱하게도 철학 책과 철학 강좌가 넘쳐나기 시작했다. 그 책과 강좌들은 우리가 불편을 무릅쓰고 삶과 세계와 대면하는 일을 외국철학자의 이름이나 개념을 외우는 일로 대신하게 해준다. 간혹 그걸 넘어서는 ‘이게 다 자본주의 탓’이라는 식의 이야기가 나오기도 하지만 “현실이 어쩔 수 없다”는 정언명령 앞에선 어김없이 멈춘다.  멈추지 않는다면, 다시 말해서 그 철학 책과 철학 강좌가 철학으로 기능하기 시작한다면 더는 팔리지 않기 때문이다. 철학 책과 철학 강좌는 ‘철학 공부’가 아니라 ‘철학 청소’를 소임으로 하게 되었다.

옛 사람들은 철학 책이나 강좌 없이도 철학을 공부할 수 있었다. 그들의 부모가 이웃들이 모두 삶의 철학자들이었으니. 그들과 눈을 맞추며 대화하고 살아가는 것 자체가 철학공부였으니. 마을 사람들은 움직이는 철학 책들이며 마을은 살아 숨쉬는 철학도서관이자 철학학교였으니. 오늘 아이들에게도 부모와 이웃과 마을이 있다. 그러나 그들은 철학교사도 철학도서관도 학교도 아니다. 그들이 가르치는 건 인간의 성장이 아니라 성공에 관한 것들이다.

아이들은 사람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인생의 의미에 대해 아무 것도 배우지 못한 채 자라난다. 아이들도 기계가 아니라 사람인지라 제 삶과 세계에 대한 답답함과 막막함에 질문이라도 할라치면 우리는 한목소리로 그들의 입을 막는다. “현실이 어쩔 수 없다!” 그 아이들 중 몇몇은 답답함과 막막함에 기진하여 스러져간다. 그 아이들에게 우리가 정색을 하고 ‘생명은 소중한 거야’라고 말할 수 있을까. 말한들 울림이 있을까.

우리가 먼저 할 일은 철학의 복원이다. 우리가 삶의 철학자가 되고 철학교사가 되고 손잡고 철학도서관과 철학학교를 이루는 것이다. “현실이 어쩔 수 없다”는 말은 어른이 아이에게 할 수 있는 가장 부끄러운 말임을 인정하는 것이다. 현실이 어렵더라도 사람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인생의 의미에 대해 사유하길 멈추어선 안 된다고 아이들에게 말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우리에겐 그럴 의무가 있다. 기억하겠지만, 우리가 그 아이들을 세상에 나오게 했다. (경향신문, 혁명은 안단테로)

2013/07/29 18:27 2013/07/29 18:27
2013/07/29 11:11
일주일 전 차도에서 자전거도로로 오르다 낙차했다. 진입 순간 턱 높이에 비해 진입각을 작게 잡았다는 걸 알았지만 이미 앞바퀴가 튀어오르고 내 몸은 자전거와 함께 중력을 배반하는 중이었다. 잛은 유영 후 오른쪽으로 떨어졌다. 머리통이 바닥에 공처럼 튀었지만 헬멧 덕에 다치진 않았다. 사지에 당연한 타박상과 찰과상을 입었는데 습윤 밴드를  착실히 갈아붙이고 있다. 여전히 왼쪽 어깨는 힘을 쓰기 어렵고 오른쪽 다리는 조금씩 절고 있다. 재미있는 건 자전거를 타는 데는 별 불편이 없다는 것이다. 자전거는 페달을 원으로 돌리며 나아가기 때문에 걷거나 뛰는 것보다 관절에 무리를 덜 준다고, 무릎이 안 좋은 사람들에게 말하곤 했는데 스스로 임상 증명한 셈이다. 대략 두 해에 한번 꼴로 기억에 남는 수준의 부상을 당하는 것 같다. 그러나 그건 자전거 때문은 아니다. 나 대문이다. 내가 위험의 범주를 선택하기 때문이다. 자전거가 아니라 삶의 그 무어라도 위험의 범주를 선택하면 위험을 만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위험한 범주를 선택하는 이유는 안전한 범주에서와는 다른 걸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삶의 범주가 달라지는 것이다. 물론 나는 오토바이를 타던 어린 시절만큼 위험한 범주를 선택하고 있진 않다. 그 시절에 비하면 꽤나 몸을 챙기고 사린다. 그러나 안전의 범주 안에서 살아갈 생각은 없다. 나는 위험의 범주가 삶의 추가 선택이 아니라 본디 요소라 생각한다. 사람은 조금은 위험하게 살아가도록 만들어졌다고 말이다.

2013/07/29 11:11 2013/07/29 11:11
2013/07/28 21:11
MikeGiantModernSF 2

마이크 자이언트 'The modern San Franciscan'

이 '표본 여성'의 몸과 삶의 방식은 물론
자전거의 부품 설명들도 전문적이며 재미있다.



2013/07/28 21:11 2013/07/28 21:11
2013/07/26 00:31
9월부터 요기가갤러리에서 달에 한번 작은 공연을 하기로 했다. 나와 조이엄(게이트플라워즈의 기타리스트 염승식)이 하우스밴드 겸 진행을 맡고 게스트를 모셔 이야기도 나누고 함께 연주도 하는 형식이다. 구상한 지는 꽤 되었는데 이래저래 미루어져 오다 지난번 임의진 공연 때 왔던 이강택이 ‘이렇게도 노는구만!’ 즐거워하는 걸 보고, 요만한 공간에서 요만한 분위기면 되겠구나 마음을 정했다. 이야기보다는 음악 위주로 갈 생각이다. 이야기 손님의 경우에도 이야기는 되도록 짧게 하고 그의 애창곡을 들어보고 관객과 함께 부른다든가 하는 식으로 가면 더 즐겁지 않을까. 내 경우에도 지금까진 까혼을 ‘연주한다기보다는 반주하는’ 태도를 지켜왔는데 이 공연에선 '연주할' 생각이다. 50여명 정도 들면 적당한 공간이니 고래이모와 삼촌들(과 그들의 친구들)이 주요한 관객이 되지 싶다. 공연 제목도 일단 ‘고래고래’로 붙여놓았다.
2013/07/26 00:31 2013/07/26 00:31
2013/07/25 23:28
윤병주가 키스 리처드의 앨범에서 스티브 조던을 처음 듣고 반해서 시그니처 드럼까지 샀었다는 이야기를 읽고 부러 찾아들었다. 내가 선호하는 드럼 소리다. 현란한 필인보다는 담백한 베이스에 팽팽하게 튜닝한 스네어가 대쪽처럼 딱딱 떨어지는 소리. ‘정확한 박자’라는 말로는 부족한, 아니 그와는 다른 차원의 소리다. 한국에도 예전에 비하면 잘 치는 드러머들이 수없이 많아졌지만 그런 소리를 내는 드러머는 여전히 만나기 쉽지 않은 것 같다.

2013/07/25 23:28 2013/07/25 23:28
2013/07/25 11:28
가던 길 가는 것보다 멈춰서는 게 더 어렵다.
그러나 멈춰 설 줄 모른다면 제대로 갈 수 없다.

2013/07/25 11:28 2013/07/25 11:28
2013/07/25 11:25
내일부터 시작하는 놀이시~작 전.

놀이운동가 편해문도
그간 찍어온 놀이 사진으로 참여한다.
(포스터에 사용된 사진도 그의 것.)

어제 저녁, 전시장에 한창 사진을 걸고 있던 그가
"사진이 벽에 걸어야 사진이네요." 하며 웃었다.

하긴 그렇다
원고가 아직 책은 아니듯.
2013/07/25 11:25 2013/07/25 11:25
2013/07/23 15:33
인터뷰는 대사, 즉 인터뷰어의 질문과 인터뷰이의 답변을 위주로 하는 방식도 있고 인터뷰어의 이야기를 위주로 하면서 인터뷰이의 대사를 필요한 곳에 ‘인용하는’ 방식도 있다. 근래 들어 후자 쪽이 많아 보인다. 아무래도 독자의 정서를 관리하기가 용이해서일 게다. 그러나 나는 그 방식이 아무래도 찜찜하다. 인터뷰란 ‘그에게서 듣는 그의 이야기’이지 ‘그를 만난 나의 감상기’ 혹은 '그를 소재로 한 에세이'는 아니기 때문이다.
2013/07/23 15:33 2013/07/23 15:33
2013/07/21 00:58
"현실을 넘어설 힘은
문제가 어디에서부터 오는가를 꿰뚫어보는 식견과
삶이란 무엇인가를 사유하는 철학에서 나옵니다."

희망버스에서 한 말.
2013/07/21 00:58 2013/07/21 00:58
2013/07/18 16:52
왜 소세키를 읽어본 적이 없을까 생각해보니 '하루키가 소세키의 현대판'이라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이야기가 근거가 있든 없든 하루키를 도무지 좋아하지 않는 나로선 하루키를 닮은 작가를 읽을 마음이 생기지 않을 수밖에. 그런데 며칠 전 친구의 소세키 이야기를 듣고 소세키의 소설 두권을 주문했다. 지적 소통이 괴멸한 세상에서 나에게 '그가 읽었다니 읽고 싶어지는' 사람이 아직 있어 다행이다.
2013/07/18 16:52 2013/07/18 16:52
2013/07/17 17:12
(좌판 원고 정리하다가 판화가 이윤엽의 말에 한참 머물렀다.)

김규항 = 선생 그림에선 어린 시절을 건강하게 보낸 사람만이 갖는 기운이 느껴진다는 사람들이 있어요. 어땠나요.

이윤엽 = 정말 끝내줬죠. 저를 키워준 팔할은 우리 동네에 있던 저수지와 냇가, 그리고 동무들이었어요. 늘 거기에서 그들과 놀았죠.

김규항 = 가난했나요.

이윤엽 = 엄청 가난했어요. 아버지는 실직자였는데 이따금 일용직 일 가시고 어머니는 닥치는 대로 일했어요. 저희 집만 가난한 게 아니라 그 동네가 ‘하꼬방 동네’였어요. 수원 시내에서 밀려난 사람들, 근처 삼성전자의 ‘공돌이 공순이들’이 방 한 칸씩 다닥다닥 붙어사는 동네였거든요. 그러나 제 어린 시절은 완벽했어요. 마음껏 놀았으니까. 요즘 애들 정말 어떻게 사는 건지 모르겠어요. 가난해도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낼 수 있다는 걸 부모들이 잊은 것 같아요.

2013/07/17 17:12 2013/07/17 17:12
2013/07/16 11:42
몇주 전. 꽤들 기분 좋게 취해서 노래방까지 갔는데 한 친구가 ‘여고시절’을 다섯 번이나 불렀다. ‘당다라당~ 당당당 당다라당~ 당당당’ 하는 낡고 낡은 기타 전주가 다섯번째 거듭되자 ‘그만 좀 해’ 항의가 일고 마이크를 뺐으려는 시도까지 있었지만 그는 마이크를 꼭 움켜쥔 채 눈을 감고 기어이 다섯 번을 부르는 것이었다. 노래방 주인이 서비스 시간을 좀더 주었다면 그는 여섯번 아니 일곱번을 불렀을 게 틀림없다. 다음날 안부를 주고받다 조금은 핀잔하듯 왜 그랬는지 물었다. “내가 중학교 때 집 나갔잖아. 당시 나에게 여고생들은 정말 나에겐 너무나 끌리지만 범접할 수 없는 신분이랄까.. 그런 존재였어.” 부끄러웠다. 나는 그가 중학교 때 가출했고 신문배달 등으로 청소년기를 보냈으며 나중에야 검정고시를 통해 대학에 갔다는 걸 알고 있었는데.
2013/07/16 11:42 2013/07/16 11:42
2013/07/11 11:15
20130710111620948333
한국 교육 문제에 용빼는 재주가 있다면 거짓말이겠지만
나 역시 두 아이를 키우고 교육해온 아비이니
동병상련의 정으로 생각을 나누는 시간이 되면 좋겠다.
2013/07/11 11:15 2013/07/11 11:15
2013/07/10 19:10
116_표1_800
표지 그림은 유창창 작가의
'잘있어요~나쁜친구들아~~'

2013/07/10 19:10 2013/07/10 19:10
2013/07/10 18:56
고래 만드는 사람들에게 기쁜 소식은
뭐니뭐니 해도
아이가 고래를 기다린다는 전갈이다.ㅎ

방금 받은 메일.

"언제나 아이들의 눈높이에 바른 길을 열어주신
고래가 그랬어 가족들께 감사드립니다.
얼마전 아들이 "아빠! 왜 고래가 그랬어 책이 안와?" 하더군요.
정기구독 기간이 끝난 줄도 모르고 있었나 봅니다.
정기구독이 끝난 다음호 부터 보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아들이 하도 기다리고 궁금해 해서 부탁드립니다."

2013/07/10 18:56 2013/07/10 18:56
2013/07/10 07:31
누구나 조금씩 괴물이지만
괴물이 되어도 좋을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2013/07/10 07:31 2013/07/10 07:31
2013/07/09 09:51
“학교 가는 거랑 방학 때랑 똑같은 거 같아. 방학 때도 오전에 학원가고 공부하고 해야 해.” “솔직히 말하면 방학 때보다 학교 가는 게 나은 거 같아. 학교에서는 여유롭게 친구들이랑 이야기 나눌 수도 있는데 방학 때는 그런 게 어려우니까.” “있으나마나야. 방학이라고 맘대로 놀 수 있는 것도 아니고.”(고래가그랬어 116호 ‘고래토론’에서)

방학을 앞둔 4학년 아이들의 토론이다. ‘신나는 방학’이라는 고전적 표현이 나오지 않을 거라는 건 짐작했지만 ‘있으나마나한 방학’이라는 이야기까지 나오니 마음이 답답했다. 만일 이런 상황이 동네에서 딱 한 집의 일이라고 가정을 해보자. 30년 전처럼 말이다. 그럼 동네 사람들이 그 집 부모를 어떻게 생각했을까. ‘미쳤다’ ‘애를 잡는다’고 손가락질했을 것이다. 그런데 왜 안 그럴까. 이유는 단순하다. 온 동네가 다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다른 아무런 이유도 없다. 지금 아이들이 30년 전 아이들과 달리 방학이 있으나마나해도 무방한 체질을 가진 것도 아니다. 아이들은 어느 시대 어느 사회든 다르지 않다. 그저 온 동네가 다하는 일이기 때문에 손가락질할 사람도 없는 것이다.

손가락질은 오히려 그런 대열에 끼지 않은 부모들이 받는다. 그 과정을 살펴보면 이렇다. 아이가 초등학교 저학년일 때는 학과 성적에만 몰두하지 않으려는 부모들이 꽤 된다. 특히 진보적인 경향의 부모들은 그런 경우가 훨씬 많다. 다양한 체험과 공부를 중시하며 아이를 데리고 들로 산으로 다니느라 학교에 빠지는 일도 잦다. 그러나 고학년이 되면 부모들의 얼굴에 그림자가 드리우며 하나둘씩 빠져나간다. ‘현실이 어쩔 수 없다.’ 적이 민망한 얼굴로 말하며 말이다. 그러나 그 수는 곧 역전된다. 다수가 된 빠져나간 부모들은 몇 안되는 남은 부모들을 ‘비현실적’이라고 손가락질한다. ‘비현실적이다’ ‘아직도 저러고 있다니’ ‘아이를 희생시킨다’ 등등.

그 ‘현실’은 결국 대학입시다. 그런데 이게 좀 묘한 현실이다. 30년 전처럼 대학 진학률이 20퍼센트가 채 못 되던 시절엔 대학을 나왔다는 건 꽤 ‘현실적’ 변별력이 있었다. 그러나 이젠 대학에 가지 않는 아이를 찾아보기 어렵다. 대학을 막 졸업한 청년이 만나는 일반적인 현실은 비정규직과 아르바이트다. 그런데 고작 이걸 위해 엄마는 30, 40대를 다 바치고 아빠는 사교육비를 대느라 등골이 휘며 아이는 제대로 놀지도 못하고 10대의 낭만도 누리지 못한 채 시들어가는 게 현실적인 걸까. 아이가 아이답게 자라도록 도우면서 일찌감치 아이 적성에 맞게 소박하지만 자존감을 지키며 먹고살아갈 길을 준비하는 게 더 현실적일까. 그러나 다들 말한다. ‘대학을 나와도 안 되는데 대학도 안 나오면 어떡하나.’ 대체 이게 무슨 말인가.

이쯤 되면 우리는 ‘현실적’이라는 게 무엇이며 ‘비현실적’이라는 게 무엇인지 되새겨볼 만하다. 오늘 ‘현실적’이라는 말은 현실이 주는 불안감에 짓눌려 현실에 눈을 감은 다수가 자신을 설명하는 말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비현실적’이라는 말은 그 다수가 현실을 여전히 직시하려는 소수에게 느끼는 불편함을 지레 공격적으로 드러내는 말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건 아이들 교육에서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진보적인 부모들 이야기를 했으니 그들의 정치 의식을 예로 들어보자. 지난 20년 이상 진보적인 시민들은 대선 시기가 되면 노동이나 계급적 의제를 중시하는 진보정치의 독자성이 중요하다는 견해와 일단 최악을 막기 위해 차악에 연대해야 한다는 견해로 팽팽하게 대립했다. 그리고 정치적 견해는 전자이면서 고심 끝에 후자의 선택을 하는 사람들은 적이 민망한 얼굴로 ‘현실이 어쩔 수 없다’라고 말하곤 했다. 그러나 지난 대선에선 그런 선택이 절대다수가 되면서 더욱 위기에 빠진 진보정치의 독자성을 지키려는 사람들은 ‘비현실적’이며 ‘낡고 교조적’인 사람이라 손가락질 받았다.

몇 년 사이에 우리 사회는 노동과 계급적 의제를 무시해도 좋은 사회가 되었는가. 오히려 더 강조해도 모자랄 사회가 되지 않았던가. 노동과 계급적 의제가 정치에서 소거될수록 평범한 사람들의 삶은 나락으로 떨어진다는 것, 그게 우리의 현실이다. 초등학교 아이들이 방학이 있으나마나라고 말할 지경인 교육이 지속되면 우리 사회는 공멸한다는 것, 그게 바로 우리의 현실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현실을 직시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라, 그 현실에 눈을 감는 것은 ‘현실적’이라 일컬어진다.

이런 극단적 혼미함 속에서 현명함을 회복하는 좋은 방법은 역사에서 배우는 것이다. 역사에서 ‘비현실적’이라는 말은 대개 지금 우리와는 달리 주로 현실의 기득권 세력이 이상주의자들을 공격하는 말이었고 이상주의자들은 그걸 명예롭게 생각하곤 했다. 비현실적인 것, 지금과 다른 현실이야말로 그들의 소망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의 비현실적 소망들은 하나씩 엄연한 현실이 됐다. 지금 우리가 너무나 당연하게 여기는 자유니 평등이니 민주주의 절차니 하는 것들이 다 그렇게 이루어졌다.

그러나 우리는 역사 속에서 현실을 직시하는 태도가 ‘비현실적’이라고 손가락질 당하는 경우도 있었다는 걸 알고 있다. 파시즘에 사로잡힌 세상처럼 말이다. 우리는 또한 그런 세상의 희망은 오히려 ‘비현실적’이라 손가락질 받는 사람들에게 남아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경향신문-혁명은 안단테로)

2013/07/09 09:51 2013/07/09 09: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