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4'에 해당되는 글 21건

  1. 2013/04/30 비판력, 포용력
  2. 2013/04/29 선생질, 꼰대
  3. 2013/04/29 정복자 펠레
  4. 2013/04/26 홍채
  5. 2013/04/26 벌랏
  6. 2013/04/19 실수
  7. 2013/04/18 고래 생각
  8. 2013/04/16 달의 인력이 작을 때
  9. 2013/04/16 왜 아이들은 독재시절 아이들보다 행복하지 않을까
  10. 2013/04/16 나쁜 놈 (1)
  11. 2013/04/15 (3)
  12. 2013/04/15 곡진하다
  13. 2013/04/15 고전적
  14. 2013/04/10 기계들 (15)
  15. 2013/04/10 돛과 닻
  16. 2013/04/09 최악의 그늘 (5)
  17. 2013/04/08 교활
  18. 2013/04/06 뒤집힌 상 (16)
  19. 2013/04/05 거품의 거품 (12)
  20. 2013/04/05 '흠이 없는 사람' (1)
2013/04/30 11:52
비판력이 있는 사람은 포용력이,
포용력이 있는 사람은 비판력이 모자라기 쉽다는 것을
늘 스스로 되새겨야 한다.
2013/04/30 11:52 2013/04/30 11:52
2013/04/29 20:46
사람이란 선생 대접을 받으면 작든 크든
분별없는 선생질로 들어서기 마련이다.
선생 대접 받을수록 더 숙이고 공부하지 않으면
꼴사나운 꼰대가 되는 것 말곤 길이 없다.

2013/04/29 20:46 2013/04/29 20:46
2013/04/29 13:40
정복자 펠레. 89년이던가 서울영상집단 동료들과 처음 봤다. 그 시절 우리가 구해 본 영화들이 대개 그렇듯 여러번 복사해서 화면은 뿌옇고, 자막은 없었거나 있었어도 일어였을 게다. '민중 속으로'를 외치던 우리에게 거부감을 주는 ‘정복자’라는 말과 축구선수 이름으로 이루어진 제목이 호감을 주진 않았지만, 근사한 영화였다. 내가 워낙에 아이의 시각으로 세상을 그린 영화나 소설을 좋아하기도 하고. 며칠 전 불현듯 다시 보고싶어져서 토렌트를 뒤졌다. 늙은 아비와 함께 새로운 땅에 도착하는 첫 장면은 여전히 먹먹하고 아비를 떠나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마지막 장면도 변함없이 장엄하다. 펠레 아빠가 올센 부인에게 프로포즈하는 장면의 정취는 전엔 눈에 안 들어왔었다. “그냥 우리 삽시다”라며 뭉게고 들어가는 정차식의 의뭉한 목소리도 떠오르고. 정복자 펠레는 4부작 소설이고 영화는 그중 1부의 내용이다. 2부 이후에서 떠난 펠레는 노동운동을 하고 사회주의자로 성장한다. 원작자 마르텐 안데르센 넥쇠는 ‘덴마크의 고리끼’라 불린 사회주의자 작가다. 완역이 되었다면 좋을 텐데 1부만 번역되어 있는 게 아쉽다.

2013/04/29 13:40 2013/04/29 13:40
2013/04/26 20:00
홍채의학 전문가 박성일 선생이 내 홍채를 보고 해준 이야기

"강한 이미지와는 달리 내면은 부드럽습니다. 사람과의 관계를 중요시하구요."
"간이 좋아서 술은 좀 드셔도 됩니다만 폐가 안 좋으니 담배는 안 됩니다."

듣고 한 생각.

'그저 꼴대로 거스르지 말고 살면 되겠구나.'
'술은 그래서였고 담배는 그래서 끊었구나.'

2013/04/26 20:00 2013/04/26 20:00
2013/04/26 19:46
L1030853

대전에서 청주가다 홀리듯 이끌려 들어간 마을 벌랏..
산벗꽃 날리는 숲길.
2013/04/26 19:46 2013/04/26 19:46
2013/04/19 17:55
만일 누군가에게서 "나를 위해 기도해달라"는 말을 듣는다면. 그것은 전혀 다른 두 가지 중 하나일 것이다. 내 욕망이 현실이 되도록 응원해달라. 혹은 나와 사랑으로 영적으로 연대해 달라. 워낙 전자가 만연한 시절이기에 후자의 가능성에 더 촉수를 세울 필요가 있다. 전자를 무시하는 건 대수롭지 않은 일이지만, 후자를 무시하는 건 인간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실수이니.
2013/04/19 17:55 2013/04/19 17:55
2013/04/18 13:27
고래엔 아이들 관련한 행사나 프로그램에 대한 아이디어나 구상이 참 많다. 넘쳐난다고 해도 좋다. 그러나 되도록 아이들 관련한 행사나 프로그램을 하지 않는 걸 원칙으로 하고 있다. 그 이유는 안 그래도 놀 시간이 없는 아이들의 놀 시간을 한번 더 빼앗는 일이 될까 봐서다. 아이들의 놀 시간을 빼앗아도 좋을 만큼 훌륭하고 좋은 아이들 행사나 프로그램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게 고래의 생각이다.

2013/04/18 13:27 2013/04/18 13:27
2013/04/16 12:32
"일단 좋은 나무를 발견하면 벌채하기 위해 나무가 가장 건조해지는 때를 기다려야 한다. 보통 나무의 수액이 땅으로 되돌아가는 가을의 끝무렵으로 달이 수평선에 낮게 떠 있고 지구에서 가장 멀어진 때다. 달의 인력이 나무의 수액도 끌어당기기 때문에 지구에서 멀어져 달의 인력이 작을 때를 골라야 한다."

2013/04/16 12:32 2013/04/16 12:32
2013/04/16 07:59
지난 대선에서 진보적인 시민들은 ‘누가 대통령이 되어야 하는가’를 두고 의견이 갈렸다. 문재인씨를 지지하는 사람이 많았지만, 막판까지 안철수씨를 지지하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누가 대통령이 되면 안 되는가’에 대해선 거의 완전한 의견일치를 보였다. 박근혜씨다. 진보적인 시민들이 박근혜씨를 그토록 반대한 건 그가 단지 보수 후보인 걸 넘어 ‘독재자의 딸(이자 정치적 아들)’이기 때문이다. 특히 청년 시절 목숨 걸고 독재와 싸운 사람들이 독재자의 딸이 대통령이 되는 걸 인생의 모욕으로 여기는 건 이해가 가는 일이기도 했다.

그런데 하나 이상한 일이 있었다. 독재자의 딸을 그토록 반대하는 진보적인 시민의 아이들이 독재자의 시절 아이들보다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아이들은 독재자의 시절보다 잘 먹는다. 학교에서 체벌과 억압적 교육도 그 시절에 비해 많이 가셨다. 그러나 한 인간으로서의 삶, 아이의 일상에서 자유와 인권은 독재자의 시절보다 못하거나 억압적이다. 아이의 행복과 조화로운 성장에 가장 결정적이라는 ‘놀기’의 면에서라면 독재자 시절보다 못한 걸 넘어 비참한 지경이다. 독재자의 시절에도 아이들을 오후 내내 뛰어놀았지만 이제 아이들은 뛰어놀기는커녕 오후 내내 혹은 밤늦도록 컨베이어 벨트 위의 부품처럼 학원을 돌며 시들어간다.

참 이상한 일 아닌가. 독재가 물러난 지 30여 년이고 대통령을 ‘쥐’라고 욕해도 잡혀가지 않는 세상이 되었으며 많은 부모들이 그토록 독재자의 딸을 반대하는데, 아이들은 독재자의 시절보다 행복해 보이지 않으니 말이다. 역시 이명박과 박근혜 때문인가. 이명박과 박근혜의 군대와 경찰이 전국의 초등학교 교문을 지키고 있다가 하교하는 아이들을 학원으로 실어 나르기라도 하는가. 바로 시민들이 제 아이들을 으르고 달래며 그러고 있지 않은가. 그들 중의 누구도 아이들이 이렇게 살아도 좋다고 말하지 않지만 하나같이 ‘현실이 어쩔 수 없다’고 말하지 않는가. 그들이 말하는 ‘현실’은 무엇인가. 독재자의 딸이 대통령이 되는 현실에 반대하다 결국 멘붕에 빠지기까지 한 그들이 그토록 무기력한 현실은 무엇인가.

두 현실을 요약하면 권위주의와 신자유주의라 할 수 있을 게다. 권위주의는 민주화 이전 반세기 동안의 극우독재가 남긴 것이다. 새누리당, 조·중·동을 비롯한 이른바 ‘수구 기득권 세력’이 그 주인공이며, 그들은 여전히 가능만 하다면 언론의 자유, 표현의 자유 같은 절차적 민주주의의 기본조차 되돌리거나 거스르고 싶어 한다. 신자유주의는 민주화 이후 특히 구제금융 사태 이후 한국 자본주의가 전 지구적 흐름에 편입하면서 본격화했다. 신자유주의를 통해 삼성이나 현대자동차 같은 몇몇 대기업은 국제적인 기업이 되었지만 대다수 시민의 삶은 불안정해졌다. 양극화, 정리해고, 비정규노동, 청년실업, 세계 최고의 자살률과 최저의 출산율이 그 내용들이다.

아이들의 삶과 관련해서 권위주의는 체벌이나 억압적 교육의 잔재들로 남아 있다. 신자유주의는 교육을 사람이 아니라 상품(인적 자원) 생산과정으로 만들어, 독재자의 시절에도 오후 내내 뛰어놀던 아이들을 학원을 돌며 시들게 만들었다. 정권으로 보자면 권위주의는 이명박, 박근혜 정권이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는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정권 모두가 해당한다. 시민은 그에 대응한다. 이명박, 박근혜 정권을 지지한 보수적인 시민은 권위주의와 신자유주의를 모두 받아들인다. 김대중, 노무현 정권을 지지한 진보적인 시민은 권위주의는 반대하되 신자유주의는 ‘어쩔 수 없는 현실’로 받아들인다.

독재자의 딸을 반대하는 진보적인 시민의 아이들이 독재자 시절 아이들보다 행복하지 않아 보이는 건 결국 그래서다. 진보적인 시민들은 체벌이나 억압적 교육 같은 권위주의 교육엔 단호히 반대하지만, 아이가 학원을 돌며 시들어가는 신자유주의 교육 상황은 ‘어쩔 수 없는 현실’로 받아들인다. 그들의 모습은 체벌과 억압적 교육을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 말하던 독재자 시절 시민과 수십년의 시차를 두고 빼닮았다.

미궁을 빠져나갈 열쇠 또한 그 빼닮음에 있다. 권위주의 교육은 어떻게 아이들에게서 물러났던가. 세상의 흐름에 따라 스스로 성찰하고 반성하며 물러났던가. 일부 운동권의 몽상으로 여겨지던 권위주의 반대운동(민주화운동)에 시민이 참여하면서 권위주의도 권위주의 교육도 물러나지 않았던가. 신자유주의 교육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일부 비현실적 좌파의 몽상으로 여겨지는 신자유주의 반대운동에 시민이 참여할 때 비로소 물러나기 시작할 것이다.

그렇다, 막막한 이야기다. 신자유주의라는 초유의 괴물 앞에서 누군들 막막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반세기에 걸친 독재와의 싸움은 덜 막막했던가. 사람이 만들어낸 것이라면 사람의 힘으로 물리칠 수 있다. 손잡고 힘을 모은다면 말이다. 다 떠나서, 우린 자문할 수 있다. 오늘 독재자의 딸을 반대하는 우리가 적어도 독재자의 시절 시민보다는 나아야 할 게 아닌가. 우리 아이들이 독재자의 시절 아이들보다는 행복해야 할 게 아닌가. 우리가 그조차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 접고 살아간다면 우리가 외치는 진보는 우리가 지키려는 민주주의는 대체 무엇인가.(경향신문)

2013/04/16 07:59 2013/04/16 07:59
2013/04/16 06:15

제일 나쁜 놈만 생각하다 보면 그 다음 나쁜 놈을 편들기 쉽다. 둘 다 나쁜 놈인데 한 놈은 나쁜 놈 한 놈은 좋은 놈이 되는 것이다.

2013/04/16 06:15 2013/04/16 06:15
2013/04/15 07:53
고래가그랬어 페이스북 페이지가 생겼다. 현선(편집팀장)과 서림(디자인팀장)이 이렇게 적어놓았다. "하나뿐인 어린이 교양지 고래가그랬어입니다. '좋아요'를 꾹 누르시면 매달 고래가 들려주는 재미난 이야기를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여부가 있겠는가. 즉시 꾹 눌렀다.
2013/04/15 07:53 2013/04/15 07:53
2013/04/15 07:34
곡진(曲盡)하다. '매우 정성스럽다'는 뜻인데, 좋은 말이고 요즘 같은 세상에선 더욱 좋은 말이다.

2013/04/15 07:34 2013/04/15 07:34
2013/04/15 07:30
폭압의 시절에 좌파는 좀더 현란했어야 했다. 그러나 이 현혹의 시절을 돌파하려면 좌파는 좀더 고전적이어야 한다.
2013/04/15 07:30 2013/04/15 07:30
2013/04/10 06:17
L1030831

짧은 외출이 아니라면 어딜 가든 가지고 가는 기계들. 싱크패드, 블랙베리, WD 외장하드. 외장하드엔 음악이 들어있고 데이터용으로 같은 게 하나 더 있다. 


2013/04/10 06:17 2013/04/10 06:17
2013/04/10 05:37
자전거를 탈 때 바람이 뒤에서 불면 몸은 돛이 되고 앞에서 불면 몸은 닻이 된다. 자전거를 탈 때만은 아니다. 몸은 언제나 우리의 돛이자 닻이다.
2013/04/10 05:37 2013/04/10 05:37
2013/04/09 06:05
진보적 시민들이 최선보다 차악을 선택하는 현상은 진보의 현실적 모색이라 설명되곤 하지만 실은 최악의 그늘 아래 자신을 숨기려는 것이다.
2013/04/09 06:05 2013/04/09 06:05
2013/04/08 23:59
내 문제를 상대에게 떠넘기는 가장 교활한 방법은 내 문제를 '우리의 문제'로 삼는 것이다. 이 방법이 가장 교활한 이유는 상대는 물론 나마저 속일 수 있기 때문이다.

2013/04/08 23:59 2013/04/08 23:59
2013/04/06 16:31
옆 차가 출발하는 순간 내가 탄 차가 뒤로 물러나는 착각과 같은 ‘뒤집힌 상’의 상태는 우리 삶의 관계 속에서 빈번하다. 내가 상대를 힘들게 하면서 상대가 나를 힘들게 한다고 생각한다거나, 내가 떠나놓고는 상대가 떠났다고 원망한다거나. 어이없는 일이지만, 우리 삶이 늘 그렇다. 우린 언제나 보이는 걸 보는 게 아니라 보고 싶은 걸 본다.

2013/04/06 16:31 2013/04/06 16: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