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9'에 해당되는 글 17건

  1. 2012/09/28 감사
  2. 2012/09/26 놀이가 밥이다
  3. 2012/09/25 박근혜의 진정성?
  4. 2012/09/24 올드독의 새김
  5. 2012/09/17 철폐연대 10주년
  6. 2012/09/17 혁명과 영성, 수다와 짜증
  7. 2012/09/15 이미경의 점방 그림 (1)
  8. 2012/09/14 이념의 에누리
  9. 2012/09/14 7약속 페이스북 (11)
  10. 2012/09/12 좌판 22 - 레나타수이사이드
  11. 2012/09/12 고래가그랬어 106호
  12. 2012/09/10 최정우 이냐시오
  13. 2012/09/08 느린 산책
  14. 2012/09/07 자신의 현장
  15. 2012/09/06 세 현인
  16. 2012/09/06 예수전 날짜 바뀜
  17. 2012/09/05 왜 잠잠하냐
2012/09/28 15:59
이번 추석에도 고래엔 실명으로 혹은 익명으로 보내온 선물들이 많았다.
고루 나눠먹거나 나눠가졌다.(오늘 퇴근할 때도 고구마 한 아름씩ㅎ)

감사드린다.

2012/09/28 15:59 2012/09/28 15:59
2012/09/26 16:05
놀이운동가 편해문의 새 책 아이들은 놀이가 밥이다에 쓴 현병호(민들레 발행인)와 나의 추천사.

아이들을 놀려야 한다는 건 근본주의자들이나 하는 세상 물정 모르는 소리라 치부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아이들의 미래를, 삶을 염려한다면 무엇보다 몸을 마음껏 놀릴 기회를 줘야 한다. 아이들 세계에는 좌우가 없다. 나뉘지 않은 온전한 세계에서 아이들은 산다. 놀이의 세계에도 좌우가 없다. 산 자와 죽은 자가 있을 뿐이다. 그리고 아이들은 놀이 속에서 삶과 죽음의 경계를 수시로 넘나든다. 경계 넘나들기, 삶의 온전함을 체험하기, 아이들이 진정으로 성숙하기를 바란다면 놀이의 세계를 제대로 경험할 수 있도록 배려할 일이다. (현병호)

옛 사람들은 아이 키우는 일을 ‘자식 농사’라 했다. 농사가 그렇듯 아이 키우는 일엔 때와 절기에 맞추어 꼭 해야 할 일들이 있고 그걸 무시하면 아이는 망가진다는 뜻이다. 그 가운데에서도 가장 중요한 건 ‘놀이’다. 아이는 제대로 놀아야 건강하고 조화로운 사람으로 자란다. 편해문의 말대로 놀이는 아이들의 밥이다. 편해문은 아이가 쌀밥을 굶는다면 정색을 하면서도 놀이밥을 굶는 일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 말하는 사람들을 위해 이 책을 썼다. 편해문의 필치는 매우 사려 깊지만 안타까움에 절절하다. 나는 그에게서 사는 내내 ‘이 아이들을 어찌할 것인가’ 말하던 이오덕과 권정생의 모습을 본다. (김규항)

2012/09/26 16:05 2012/09/26 16:05
2012/09/25 16:15
"왜 저러는 걸까요?"

‘박근혜 사과의 전정성’ 논란을 보고 있노라면 개콘 '불편한 진실' 코너의 대사가 떠오른다. 박근혜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진정성이 있다고 주장하고, 반대하는 사람들은 진정성이 없다고 주장한다. 고래 사무실에서 받아보는 경향신문도 진정성 없음을 부각하려는 논조에 곁들여 ‘오전엔 사과하고 오후엔 말춤 추는’ 박근혜 사진을 실었다. 정리하자면, 이 논란은 박근혜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박근혜를 옹호한다는 사실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박근혜를 반대한다는 사실을 재확인하는 소동인 것이다. 그리고 그 모든 사람들은 이미 진실을 알고 있다. 진정성이 있다고 주장하는 쪽이든 없다고 주장하는 쪽이든 내심의 진정성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내심의 진정성이 없으면 아무런 가치가 없는 걸까? 우리는 이 일이 개인과 개인 간의 연애의 문제가 아니라 유력한 대통령 후보의 정치적 문제라는 사실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이런 경우에 중요한 건 내심의 진정성이 아니라 사회적 진정성이다. 박근혜가 사과를 하며 속으론 이를 갈았다 해도 그 사과에 향후 박근혜의 활동이 제한된다면 사과는 사회적 진정성이 있다. 그러나 내심은 진정하더라도(앞서 말했듯 누구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지만) 향후 활동에서 무시된다면 사회적 진정성은 없다. 박근혜의 사과는 박근혜가 한 것인가? 아니다, 사회성원들이 받아낸 것이다. 사과의 사회적 진정성이 지켜지는 것 역시 사회성원들에 달려있다. 앞으로 사회 분위기가 요상하게 흘러서(가장 큰 가능성은 이른바 민주후보들이 당선되었을 때인데, 그들의 정치는 사회경제적 차원에서 현재와 근본적으로 달라질 게 없을 것이고, 그로 인한 실망과 분노는 극우적 경향으로 분출할 수도 있다) 박정희 향수가 만연된다면 이 사과는 당연히 없던 게 될 것이다. 물론 그 역시 박근혜가 하는 게 아니라 사회성원들이 '해내는' 것이다. 이번 박근혜의 사과에 대해 지각있는 사람들이 할 일은 진정성 논란이 아니라 바로 그것이다. 사회성원들이 박근혜의 사과를 받아냈다는 것, 다시 말해서 한국인의 평균 사회의식이 ‘박정희 독재 비판’까진 왔다는 것. 그리고 앞으로 그 사과가 가질 사회적 진정성이나 가치 역시 사회성원들의 몫이라는 것.
2012/09/25 16:15 2012/09/25 16:15
2012/09/24 01:51
올드독
올드독의 '용산 두개의 문' 이야기에서 따온 그림. 흘려읽기 쉬운 이야기인데 새겨 읽어주니 고마울 따름이다. 중략 부분을 포함한 원문은 이렇다.

김규항 = 사람들, 특히 진보적인 중간층 인텔리들은 어떤 특별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소비’하기도 해요. 권정생 선생 타계 후 ‘우리 곁에 살다간 성자’라는 말이 한창 유행했었잖아요. 그 말엔 저 사람은 성자고 나는 사람이니 저 사람처럼 살지 않겠다는 뜻과 그래도 나는 저런 사람을 존중하고 의미를 이해하는 교양을 가진 사람이라는 뜻이 함께 담겨 있죠. 그건 실은 개인적 풍경이 아니라 불온하고 위험한 사람이 갖는 불온성과 위험성을 중화시키는 체제의 작업이기도 합니다. 지금 당신은 원했든 안했든 저명인사가 되어가는 상황인데요.

송경동 = 나로선 굉장히 위험한 상태라고 본다. 예를 들면 내가 ‘현장에 있는 유일한 시인’ ‘노동운동과 결합하는 유일한 시인’이라는 말을 개인적으로 듣는 게 기분 좋아지는 순간, 아마 내가 썩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진짜 저명해져야 되는 사람들이 있다. 용산 싸움을 예로 들면 60여명이 망루에 올라갔는데 거기에는 자기 지역이 아닌데도 올라간 수많은 전철연의 철거민이 있었다. 그 새벽 망루에 올라갔던 평범한 사람들, 그 순간 인간적 연대와 유대가 무엇인지를 보여준 사람들. 저명해야 할 사람들은 바로 그들이다.
2012/09/24 01:51 2012/09/24 01:51
2012/09/17 14:13
“좋던데요. 내공이 느껴졌어요.” 철폐연대(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10주년 정치대회에 다녀온 상평(고래 교육연구소 연구팀장)이 말했다. 상평은 근래 노동운동 쪽에서 열린 정치토론회에 몇 번 참여하며 조금은 실망했던 모양이다. 내 생각에, 아니 많은 사람들이 말하듯, 철폐연대는 사상 면에서 그리고 실천 면에서 오늘 가장 존중할 만한 노동운동단체다. 아이를 살리는 7가지 약속엔 “아이와 노동자가 행복해야 좋은 세상”이라는 말이 있다. 우리 아이들은 대부분 노동자로 살아가게 된다. 오늘 노동자들이 얼마나 행복한가는 아이들의 미래 행복의 지표다. 그래서 가장 좋은 노동운동단체는 가장 좋은 어린이교육단체이기도 하다. 고래이모, 삼촌인 분이 혹시 추가로 의미 있는 후원을 생각한다면 철폐연대를 추천한다.


2012/09/17 14:13 2012/09/17 14:13
2012/09/17 11:30
간혹 영성을 마인드컨트롤이나 자기최면 같은 ‘정신승리’라 오해하는 사람(은 대략 두 가지다. 진짜 오해하는 사람, 오해의 시늉으로 논지를 뒤틀려는 사람. ㅎ)을 본다. 영성이란 나와 사회와 우주만물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사유하는 데서 시작된다. 사회 변화에 대해 말하자면, 사회 변화가 나를 결정하는 것도 내 변화가 사화변화를 결정하는 것도 아닌, 사회변화와 나의 변화와 하나인 것이다. 예수전에 “기도하지 않는 혁명가가 만들 새로운 세상은 위험하며, 혁명을 도외시하는 영성가가 얻을 건 제 심리적 평온뿐”이라고 적었다. 그러나 최근 우리 사회의 문제는 영성을 도외시한 혁명도, 혁명을 도외시한 영성도 아닌, 혁명과 영성의 자리를 수다와 짜증이 대체해버린다는 것이다. 그래서 위험한 세상도 심리적 평온도 얻기 어렵게 되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2012/09/17 11:30 2012/09/17 11:30
2012/09/15 15:06
wolsanria 이미경의 점방(구멍가게) 그림은 미술잡지 같은 데서 몇번 본 기억이 있다. 인상이 남았던 모양이다. 마침 집 근처에서 진시를 하기에 그제 단, 건과 다녀왔다. 점방과, 넉넉히 잡은 풍경과 나무. 점방들은 하나같이 풍경과 나무에 안겨있다. 풍경과 나무가 점방에 안겨있는 걸지도. 김단은 (붓이 아니라) 전부 가는 펜으로 그렸다는 걸 제 눈으로 확인하곤 매우 흥미로워했다. 20일까지 한다는데 혼자 한번 더 가볼 생각이다. 헤이리 아트팩토리
2012/09/15 15:06 2012/09/15 15:06
2012/09/14 23:30
미국의 급진적 학자가 쓴 신간을 재미있게 읽고 책장을 덮으려는 순간 꺼림칙해졌다. 말미에 붙은 옮긴이의 말에 ‘저자의 얼굴에 진중권이 겹친다’고 적혀있기 때문이다. 진중권을 상찬한 게 잘못되었다는 게 아니라, 이 책의 노선과 진중권의 노선은 거의 적대적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부시 류를 욕하며 오바마 류를 옹호하거나 사민주의를 최선이라 주장하는 게 아니라, 자본주의 극복과 사회주의 이행이 유일한 해결책이라 주장한다. 그런데 알다시피 진중권은 그런 경향을 모조리 ‘닭짓’이라 말하는 사람 아닌가. 이 책에 동의하는가 진중권에 동의하는가를 넘어 이런 왜곡은 심각한 사회적 해악이 있다. 사실, 근래 우리 사회엔 이런 식의 왜곡이 너무나 깊고 광범위하며, 그게 수많은 사람들의 정의에 대한 순수한 열정을 '소란스럽지만 쓸모없는 것'으로 만들고 있다.

지난 역사 속의 급진성이나 다른 사회의 급진성을 옹호하기는 쉽다. 그러나 내가 살아가는 현실 속의 급진성을 옹호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체제는 역사 속의 급진성과 다른 사회의 급진성이 현실 속의 급진성이 되는 걸 막기 위해 갖은 노력을 한다. 그 노력은 박제된 역사의식과 현실의식에 사로잡힌, 동시에 진보연/좌파연 하려는 치기에 사로잡힌 인텔리들과 결합하여 ‘이념의 에누리’ 현상을 만들어낸다. 일제 시절의 사회주의 독립운동가를 상찬하는 역사학자가 유시민을 상찬하고, 미국의 급진주의자를 상찬하는 사람이 진중권을 상찬하는 것이다. 현실 속의 급진성은 그렇게 역사 속의 급진성이나 다른 사회의 급진성을 상찬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공격되고 배제된다. 체제로선 가장 편리하고 안전한 ‘이념 정화시스템’이다.

우리는 흔히 역사의식과 현실의식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제대로 된 역사의식과 살아있는 현실의식이 없을 때, 우리의 역사적 지식과 외국이론에 대한 지식은 그 양만큼 강력한 사회적 흉기가 된다.

2012/09/14 23:30 2012/09/14 23:30
2012/09/14 13:53
아이를 살리는 7가지 약속

친구가 되어주세요.ㅎ

2012/09/14 13:53 2012/09/14 13:53
2012/09/12 12:18
좌파22_레나타수이사이드_



2012/09/12 12:18 2012/09/12 12:18
2012/09/12 02:07
106_표지_g
고래 106호 표지 그림은 허지영 작가의 ''짝사랑해본 적 있나요?'
짝사랑의 아픔을 음악으로 달래는 남자 초딩. 아픔을 함께하는 고양이와 까마귀. ㅎ

2012/09/12 02:07 2012/09/12 02:07
2012/09/10 13:41
람혼(최정우)이 어제 세례를 받았단다. 세례명은 이냐시오. 어떤 사람이 교회(특히 개신교 교회)의 정규 신자가 되었다고 하면 아쉬움이나 걱정이 앞서는 편인데, 이 사람은 내심 반가웠다. 유물론적 탐구심을 가진 사람이 종교를 만나면 매우 극단적인 결과를 낳는다. 유물론적 탐구심을 간직한 채 종교를 만나면 그 '붉음'이 더욱 깊고 조화로워지지만, 종교를 만나 유물론적 탐구심을 버리는 경우는 대개 종교를 만난 게 아니라 종교체제에 빠진 것이다. 사실, 사람의 삶에서 종교체제에 빠지는 것처럼 나쁜 것도 드물다.

2012/09/10 13:41 2012/09/10 13:41
2012/09/08 20:12
L1030582
가끔 혼자 공릉천에 가서 철새를 보곤 한다. 버드워칭이랄 것까진 없고 일종의 느린 산책인데 오늘은 김건이 함께 했다. 그의 고양이도.
2012/09/08 20:12 2012/09/08 20:12
2012/09/07 18:01
고래정치학교 1기를 평가하고 2기를 계획하는 회의에서 한 말.

우리는 고래정치학교의 취지를 자유주의 운동에 포위된 시민들(시민의 정체성은 분명하나 노동자로서 정체성은 약한)과 노동 현장 활동가 사이의 가교를 만드는 것이라 정리한 바 있다. 1기는 매우 의미 있는 성과도 있었지만 대개의 인문/사회 강좌 프로그램처럼 지적 자극을 좇거나 독서 취향의 변화에 머무는 모습도 있었다. 2기 강사진은 현장 활동가를 좀 더 보강하는 게 좋다고 본다. 단, 환기할 건 ‘현장은 어디인가’ 하는 문제다. 고전적인 현장, 즉 공장 노동자를 둘러싼, 혹은 투쟁 상황을 기반으로 하는 현장만 현장으로 보는 관점을 넘어서야 한다. 그런 관점은 현장을 협소화하고 대상화함으로써 시민들로 하여금 자신은 현장에 있지 않다는 착각을 만들어낸다. 그들이 노동하는 곳 역시 현장이라는 사실을 잊게 함으로써 결국 실재하는 현장 대부분이 은폐되는 것이다. 또한 그런 관점에서 현장과 비현장의 구분은 결국 경제투쟁의 맥락 안에 머물 수밖에 없다. 좀 나은 임금과 고용 안정성이 있는 곳은 현장이 아닌 것이다. 이를테면 대기업 정규직인, 우리에게 우호적인 사람들이 종종 말한다. ‘내가 지향하는 이념과 내가 일하는 곳의 괴리 때문에 괴로워요.’ 현장을 지향하는 데 자신은 현장에 있지 않다는 이야기다. 실은 그는 현장에 있을 뿐 아니라, 진정한 의미에서 가장 험악한 현장에 있다. 좀 나은 임금과 고용 안정성이라는 미끼에 현장이라는 사실조차 잊어버린, 완벽하게 억압된 현장. 고래정치학교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다수는 중간계급 사무직 노동자들이다. 그들이 고래정치학교에서 처음으로 현장 활동가를 조우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현장을, 자신이 현장에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면 좋을 것이다.

2012/09/07 18:01 2012/09/07 18:01
2012/09/06 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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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선물 받은 탄자니아 목각 '세 현인'.
나지막이 말하는 듯하다.

"말은 더할 나위 없이 무성한데 세상은 꿈쩍도 않는다면..
말수를 줄이고 좀 더 현명해지려 노력할 때가 아닐까요."

2012/09/06 13:02 2012/09/06 13:02
2012/09/06 12:49
(공지. 예수전 11기의 시작 날짜가 9월 12일에서 19일로 바뀌었습니다.)

2012/09/06 12:49 2012/09/06 12:49
2012/09/05 16:25
근래 ‘왜 잠잠하냐’고 묻는 이들이 있어서 적는다. 현안을 넘어서 좀 더 근본적인 이야기를 해야 할 필요를 느끼고 있다. 현안을 통해 사회의 근본적인 이야기를 하는 방법도 있다. 그러나 근래 한국의 경향은 현안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현안만 이야기하는 것이고, 그래서 결국 아무것도 이야기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잠시 현안에 끼어들지 않기로 했다. (현안을 둘러싼 논의에 미주알고주알 끼어드는 건 지적 파탄의 지름길이라 믿는 편인데 트위터 하는 동안엔 도리없이 얼마간 그랬다. 요망한 트위터! ㅎ)  팸플릿 정도의 책을 쓰기로 하고 현재 목차 작업 중이다. 해서 잠잠함은 좀 더 지속될 듯한데 두 사건에 대해서만은 어떤 식으로든 견해를 밝힐 생각이다. 통진당 사건과 공지영 사건. 나는 두 사건을 좀 심각하게 본다. 모든 논의가 자주파와 공지영의 ‘행태’에만 집중하면서 두 사건에 담긴 정치적 본질은 생략/은폐되고, 결국 일정한 사회적 퇴행이 있었다. 물론 그 퇴행은 지금 우리가 겪는 거대한 퇴행의 일부다.

2012/09/05 16:25 2012/09/05 1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