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1/30 13:44

사회진보연대에서 '민주노총 정치방침에 관한 10문 10답 소책자'를 만들었다. 통합진보당에 대한 배타적 지지를 비롯 다가올 총선과 대선에서 민주노총의 선택에 대한 책자이지만 전반적인 정치적 상황을 되새겨 보는데도 요긴하다. 말하자면 '진보적인 사람들을 위한 총선 대선 10문 10답'이라고 할 수도 있는 소책자다.(심지어 10문 중 하나는 안철수에 관한 내용이기도) 물론 의견이나 결론은 얼마든 이 책자와 다를 수 있다. 그러나 이 책자에 적힌 내용조차 되새기지 않은 상태에서 의견이나 결론은 내 것이 아닐 수 있다. 지배체제의 술수와 잔머리가 광속으로 진화하고 있는데 최소한의 학습도 없이 현실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다는 생각은 이치에 맞지 않다. 이 소책자를 정독하고 되새기는 데 필요한 시간은 나꼼수 한편 듣는 시간과 비슷하지만 그 유익은 나꼼수와는 다르다.

민주노총 정치방침 10문 10답 다운로드

2012/01/30 13:44 2012/01/30 13:44
2012/01/24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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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춘 형이 보내준 연하장. 그는 근래 글씨 쓰는 재미에 들렸는데 나는 그의 글씨가 참 좋다. ‘풍찬노숙하며 전투를 치르는 반군대장의 글씨’다. 자본주의 문명 자체에 대한 회의와 고뇌를 거듭하는 그가 나에게 운수대통의 글을 써주었다는 게 나는 한편으로 아프고 또 그래서 더욱 고맙다. 東번西쩍 南불北끈하며 입신양명하라는 게 아니라 東번西쩍 南불北끈하며 이놈의 세상 함께 균열을 내보자는 말씀이려니..

2012/01/24 00:02 2012/01/24 00:02
2012/01/22 22:43

스튜디오 라이브는 참 근사하다. 상투적으로 표현하면 ‘스튜디오의 음질과 라이브의 현장감을 결합한’. 애비로드에서 블랙 키스 라이브 같은 건 정말 끝내준다. 네이버에서도 온스테이지라는 이름으로 스튜디오 라이브를 진행하고 있는데 지난달엔 김두수 형도 했다. 들꽃과 보헤미안. 온갖 거짓 예언자들이 거짓 미소로 거짓 천국을 설파하는 어수선한 나날, 내 속의 정갈함을 추슬러 보시길. 김두수는 라이브고 내일은 설이다.

2012/01/22 22:43 2012/01/22 22:43
2012/01/19 23:34

문래역 근처 골목의 허름한 건물 한 층은 언제나 밤늦도록 불이 환하다. 지난 10년 동안 비정규직 노동 문제에서 가장 활발하고 의미있는 활동을 해온 불안정노동철폐연대 사무실이다. 1998년 정리해고와 파견법이 도입되면서 본격화한 비정규직 노동 문제는 이제 가장 보편적인 노동문제이자 정직하게 일하며 살아가는 대다수의 삶에 가장 중요한 문제가 되었다. 그러나 그 문제는 여전히 특정한 사람들의 문제로 여겨지며, 그 문제를 둘러싼 자본과 정부의 거짓과 기만은 하루가 다르게 진화한다. 김혜진과 동료들은 밤낮없이 바쁘다.


김규항 = 비정규 노동운동을 하게 된 계기는.

김혜진 = 노동운동을 한 지는 20년쯤 되었는데 원래부터 대공장 쪽보다는 변두리 쪽의 중소 영세사업장에 관심이 있었다. IMF(외환위기)가 터져 굉장히 많은 중소 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이 비정규직이 되면서 자연스럽게 비정규 운동에 집중하게 되었다.
 
김규항 = 전태일 열사가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외치며 죽어간 게 박정희 군사독재가 한창이던 1970년인데, 정리해고와 파견제법이 생기면서 법에 의해 비정규 노동자의 권리가 인정되지 않게 된 건 민주화 정권인 김대중 정권에서였다. 노동자들에게 역사의 시계는 거꾸로 돌아간 셈이다.
 
김혜진 = 그런 점에서 비정규직 문제는 비정규직이라고 하는 특정한 고용 형태를 가진 노동자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 전반적으로 노동권이 무너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임을 되새기고 싶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확대되면 정규직 노동자들도 그만큼 고용에 대한 불안감으로 기업의 통제에 순응하게 되고 노동권 전반이 하락하는 결과를 낳는다. 비정규직은 특정한 사회적 약자의 문제도 아니다. 이미 노동자의 절반을 넘어섰고 연구직이나 대학의 비정규 교수들 같은 엘리트라고 하는 곳에서부터 청소노동자에 이르기까지 전 영역에 다양하게 퍼져 있는 고용 형태다.

김규항 = 지배계급은 언제나 피지배계급을 분리해서 지배하려 한다. 서로 위계를 만들고 반목하게 만들면 지배하기가 손쉬워지기 때문이다. 군사독재 세력이 경상도와 전라도 지역 차별을 통해 인민들을 매우 효과적으로 분리지배해온 역사가 있다. 비정규직은 자본독재시대의 분리지배 전략인 셈인데.
 
김혜진 =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분리뿐 아니라 비정규직 내부에서도 분리가 심하다. 직무별로 워낙 고용 형태가 다양하고 임금체계가 다르니까 이 직무의 노동자와 저 직무의 노동자가 마치 서로 완전하게 다른 노동자인 것처럼 여겨지는 구조다. 단시간 노동자도 있고 용역도 있고 파견도 있고 호출도 있고 기간제도 있고, 그런 식으로 비정규직을 굉장히 다양한 형태로 만들어 노동자들을 최대한 갈기갈기 찢어 놓는다.
 
김규항 = 정말 꼬리에 꼬리를 무는 문제다. 대공장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단결을 이야기하자면 대공장 비정규직보다 더 힘든 조건에 놓여 있는 2차 하청, 3차 하청 비정규 노동자들은 배제되기도 하고.
 
김혜진 = 그래서 우리의 고민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단결뿐 아니라 전체 노동자들이 공동의 가치를 가지고 공동의 적과 투쟁하는 데 있다. 혼자 살아남으려다 함께 무너져 내리는 게 아니라 함께 우리의 권리를 찾는 것. 법에 규정되어 있다 아니다, 누가 누가 차별받고 있다가 아니라 인간의 보편적 권리, 노동하는 자들의 보편적 권리를 드러내는 방식으로 이야기하고 조직해야 한다.
 
김규항 = 당연히 그래야 하지만 노동자들이 갈기갈기 찢어져 제 앞가림에 매달리는 상황에선 지나친 원칙론으로 여겨지기 십상이다.
 
김혜진 = ‘밑에서부터 조직하여 발언하게 한다’는 우리의 전략은 사실 어려움이 많다. 정규직에 동정과 시혜를 기대하는 방향으로 했으면 오히려 훨씬 더 분위기 좋게 잘 만들어졌을 무언가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조직하고 투쟁함으로써 대립과 갈등으로 드러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 과정을 거칠 수밖에 없다. 대립과 갈등을 두려워하지 말고 끊임없이 부딪치며 나아가는 게 중요하다.
 
김규항 = 그런 대립과 갈등이 분리지배의 결과라는 점에서도 반드시 넘어서야 하는 어려움이다. 막막해 보이지만 이미 그런 어려움을 넘어선 사례도 종종 나타나고 있지 않은가. 정규직 노동자들이 자기 잔업 특근 포기하고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함께 투쟁한 현대자동차 전주공장 사례라든가.

김혜진 = 그렇게 된 원인을 분석하면서 인상적이었던 건 투쟁에 대한 대의가 살아있다는 점이었다. 대의원들은 그간의 활동에서 노동자들의 깊은 신뢰를 확보하고 있었는데 인상적이었던 건 ‘이렇게 하면 우리 임금이 올라간다’ ‘이렇게 하면 뭐가 더 좋아진다’를 넘어 ‘이렇게 하는 것이 올바른 것이다’ ‘이렇게 해야 우리가 함께 산다’고 지속적으로 말해온 것이었다.
 
김규항 = 대의가 살아있다는 건 우리가 인간임을 잊지 않는 것이다.

김혜진 = 정규직 노동자들에겐 두 가지 마음이 있다. 하나는 불안하니까 비정규직을 안전판으로 삼고 싶은 마음이고, 또 하나는 인간이 이렇게 살면 안된다, 함께 살아야 된다는 마음이다. 우리의 운동은 그 두 마음 사이에서 출발한다. 더 잘 먹고 잘살아야 된다, 임금과 노동 조건이 좋아야 된다는 좁은 방식으로만 노동자들을 조직하고 활동해왔다면 그런 순간에 노동자들을 제대로 조직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또 다른 현실이 가능하다는 것, 우리가 함께 살 수 있고 변화할 수 있고 희망이 있고 공동으로 대응할 수 있음을 잊지 않아야 한다.

김규항 = 노동운동을 넘어 인간의 모든 해방투쟁에 해당하는 이야기다.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게 단지 경제의 문제가 아니라 자기존중을 얻는 것, 연대의 기쁨을 누리는 것이라는 것. 그런 점에선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도 마찬가지 아닌가.
 
김혜진 = 항상 놀라는 게 그거다. 내 경우 투쟁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왜 투쟁하게 되었는지 꼭 물어본다. 열악한 상황에 있으니 필시 임금과 노동 조건 때문일 거라 생각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자존심이 상해서이거나 정말 이렇게 사는 건 아닌 것 같아서가 대부분이다. 투쟁이라는 게 인간으로서의 내 삶에 대한 고민, 이제는 굴종하지 않겠다는 자기 표현인 것이다. 임금과 노동 조건보다 더 중요한 건 누구나 마음 깊은 곳에는 인간다움에 대한 욕망이 있다는 사실이다.
 
김규항 =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동정과 시혜의 관점 역시 넘어서야 할 벽이다.
 
김혜진 = 홍익대 청소노동자들 싸움 때 그런 생각이 많이 들었다. 굉장히 많은 사람이 연대했는데 극단적 상황에 있는 사람들에 대한 연대의 마음도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어떤 시혜적 마음이 병존했다. 그런데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정규직화 투쟁쯤 되면 그런 시혜의 마음이 작동하기보다는 불편한 마음으로 반전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귀족 노동자가 되려 한다는 식으로.
 
김규항 = 시혜적 마음은 그 자체론 아름다운 것이지만 나와 현격한 거리가 있는, 내가 동정심을 베풀 수 있는 불쌍한 대상에 한정해서 나타나는 것이다.
 
김혜진 = 지금 같은 극단적인 경쟁사회에서 현대자동차 정규직이 된다는 건 신분 상승이다. 이 사람들이 그 투쟁을 통해 나보다 훨씬 더 높은 신분에 간다는 건 어떤 사람들에게는 견딜 수 없는 일이 되는 것이다. 비정규직 투쟁에 대한 연대를 사회적으로 요청할 때 ‘이 사람들이 이렇게 처절하게 투쟁하니까 도와주세요’ ‘이 사람들이 이렇게 어려우니까 도와주세요’라고 이야기하는 게 당장의 효과는 있다 해도 지양해야 한다.

김규항 = 재능교육 노동자들이 참 존경스럽다. 자신들만 생각했다면 이미 몇 번의 타결 기회가 있었지만 특수고용 노동자 전체의 대의에 입각해서 전원 복직을 내걸고 1500일째 비타협적으로 거리에서 싸우고 있다. 가장 곤란한 처지에 있지만 오늘 우리 사회에서 가장 기품있게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김혜진 = 하루이틀 보는 일이 아닌데도 투쟁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깊은 존경심을 갖게 된다. 비정규직은 법으로 노동권이 부정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이길 가능성이 없다. 그런데 싸운다. 왜 싸우는가, 이게 옳으니까 싸운다는 거다. 내가 부당하다고 생각하니까 싸운다는 거다. 기륭전자 노동자들이 7년 싸웠다. 많은 사람이 7년 싸워서 이기면 도대체 누가 싸우려 하겠냐고 말한다. 그러나 그들에겐 이기고 지고를 넘어 싸우는 행위 자체가 주는 의미가 있었다. 법적으로도 질 수밖에 없고, 제도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자본과의 관계에서도 힘이 없지만 내가 옳으니까 싸운다면서 버티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모른다.
 
김규항 = 사회운동에서 현실성을 갖는 건 매우 중요하지만 현실성이 운동의 전부가 되어버리면, 대의에 입각한 비현실적인 투쟁이 아예 사라져버리면 운동 자체가 무너지게 된다. 운동이 무너지면 현실이 무너지게 된다. 우리 사회에 희망을 심어준 사람들은 지난 10여년 동안 소외와 몰이해 속에서 자본의 공세에 맞서 싸워온 비정규직 노동자들이다.

김혜진 = 그런 사실이 사회적으로 제대로 이해되고 있지 않는 데는 언론의 책임도 크다.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 요청해서 정보나 자료를 주면 ‘이 분들 임금이 이렇게 높아요?’ ‘좀 더 임금 낮은 분들 없어요?’란 반응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뭔가 자극적이고 극단에 있는 사람들, 머리를 조아리는 불쌍한 사람들을 기삿거리라고 생각하니까. 그러다보니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이해가 낮아져서 ‘무기계약직’처럼 가장 첨단의 비정규 노동 형태가 정부나 자본의 선전 그대로 아름다운 정규직화의 사례로 기사화되기도 한다.

김규항 = 조·중·동이 아니라면, 경향이나 한겨레라면 노력이 필요하다. 고만고만한 정치인들의 동정은 현미경처럼 다루면서 시민들의 보편적인 삶을 좌우하는 문제에 그런 식이라면 말이 되는가. 물론 비정규직 문제가 워낙 복잡하긴 하다. 비정규직은 기간제, 간접고용, 특수고용으로 나뉘지만 그런 모든 게 노동자들을 더욱 무력하게 만들려는 자본의 전략이다 보니 계속 세분화하고 시시각각 더 특수한 경우가 만들어진다. 주류사회의 최고 전문역량이 총동원되는 것인데 그에 대응하는 활동이 쉬운 일은 아니지 싶다.

김혜진 = 비정규직 문제가 김대중 정권 이래 정부가 직접 통제에 나서다 보니 단순한 노사관계가 아니라 온갖 법률적 문제로 전환되어 버렸다. 상근을 시작한 활동가들이 처음 1년 정도는 관련 용어들을 파악하는 것도 힘들어할 정도다. 대응이 쉽지 않고, 불안정노동철폐연대는 법률위원회와 정책위원회를 두고 있다. 법률위원회는 매달 워크숍을 연다. 변호사들, 노무사들, 노동법학자들, 활동가들이 모여서 판례를 검토하고 비정규직법과 관련한 주요 쟁점도 검토하는데 이번에 100차 워크숍을 연다.
 
김규항 = 불안정노동철폐연대가 파견철폐공대위로 시작해서 출범한 지 10년이 되었다. 특별한 계획이 있는가.
 
김혜진 = 가을에 비정규노동자 정치대회를 열려고 한다. 정치대회라면 대선 관련인가 오해할 사람도 있겠지만 진짜 정치대회를 하려는 것이다. 투쟁하는 비정규 노동자들과 비정규 노동자 문제를 고민하는 사람들이 모두 모여서 돌아가며 발언도 하고 가장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과제들을 놓고 함께 이야기도 하는, 지난 10년을 돌아보고 앞으로의 10년을 생각하는 자리를 마련하려 한다.
 
김규항 = 양대 선거도 있고, 그 방향이나 내용이 옳은가 그른가를 떠나, 어쨌거나 대중의 변화에 대한 열망이 뜨겁다. 현장 분위기는 어떤가.
 
김혜진 = 진짜 사람들이 극단에 와 있구나 하는 느낌을 많이 받는다. 중소 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실태 조사 같은 걸 해보면 전에 없이 적극적이다. 활동가들도 힘을 많이 받는다.
 
김규항 =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사람은 극단적 상황이 되면 오히려 변화에 대한 희망을 포기하거나 스스로 왜곡되는 경우도 많은데.
 
김혜진 = 여러 이유가 있는데 그 중 하나는 이명박의 공이 아닌가 싶다. 이명박을 욕하고 거부하는 분위기가 거대한 벽이나 권력에 대한 두려움으로부터 노동자들을 움직이게 하는 면이 있다. 물론 그런 에너지가 단지 이 정권이 저 정권으로 바뀌는 차원으로 왜곡되어 드러나고 있어서 1987년 민주화 투쟁 이후에 노동자 대투쟁이 벌어진 것 같은 국면이 열리긴 어렵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변화에 대한 열망과 정말로 변화가 될까 하는 고민이 활발하게 부딪치고 있다는 건 희망이 아닐까. 앞으로의 10년이 중요하다. (경향신문)

 

2012/01/19 23:34 2012/01/19 23:34
2012/01/04 1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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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중시인 송경동씨가 최근 펴낸 산문집 말미엔 김진숙씨가 크레인에서 내려오던 날 모든 스포트라이트가 묵묵히 일한 활동가들이 아니라 정치인과 유명인들을 비추는 풍경이 적혀 있다. 제도정치가 아니라 운동정치가 사회변화를 주도해온 한국 사회에는 이름이 드러나지 않은 헌신적인 활동가들이 참 많다. 그들이 바로 지배체제의 폭압으로부터 정직하게 일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버텨낸다. 이종회 진보네트워크센터 대표는 지난 35년 동안 활동가로 살아왔다.


김규항=2008년 미국발 공황 이후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에 대한 저항의 물결이 거세다.

이종회=신자유주의 세계화 반대운동은 1999년 WTO(세계무역기구) 각료회의를 저지한 ‘시애틀 전투’와 이라크 전쟁 반전 투쟁이 물려 최고조에 이르렀다가 한풀 꺾이는 모습이었다. 2008년 공황으로 다양한 흐름들이 생겨나고 있다. 유럽에서 노동자의 임금을 인하하고 연금과 같은 복지를 삭감하려는 정책에 반대하는 급진주의적인 흐름이 살아나고, 아랍에서도 민주주의와 생존권을 요구하는 저항이 거세고, 미국의 월가 싸움이 있고.

김규항=미국에서의 반자본주의 구호는 고목나무에 핀 꽃처럼 보인다. 미국의 좌파는 우리 식으로 말하면 ‘비판적 지지’와 ‘선거연합’을 통해 대부분 민주당으로 흡수되어 버린 상태 아닌가. 한·미 FTA(자유무역협정)를 둘러싸고 우리에게도 그런 변화의 자극이 있는 것 같다.

이종회=미국의 변화는 그만큼 자본주의의 모순이 극에 이르렀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자본 운동의 국제무역과 관련해 본다면 2차 세계대전 이후 GATT(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에서 시작해 1994년 우루과이라운드가 합의되면서 WTO 체제로 가는데, 이게 참가국가(153개국) 만장일치 체제라 합의가 어려워지면서 FTA가 힘을 얻기 시작한다. WTO나 FTA에서 일반 공산품은 핵심이 아니다. 일상적인 식량, 서비스 부문, 즉 공공정책, 복지, 의료, 교육, 교통, 통신 등에다 지적재산권 같은 것들에 대한 교역, 즉 수탈이 그 핵심이라 할 수 있다.

김규항=삼성이 한·미 FTA의 기획자 노릇을 하고 의료민영화 계획에 투자해온 것도 바로 그런 맥락인 셈이다. 한·미 FTA는 보수가 아니라 자유주의 세력이 기틀을 만들고 주도해왔는데.

이종회=김대중이 ASEAN(동남아국가연합)+3으로 갔다면 노무현은 미국과의 FTA를 중심으로 동시다발적인 FTA로 가면서 자본의 진로를 열어주었다. 한편 시민운동은 주주자본주의를 대중화하는 데 기여함으로써 그런 흐름을 지원했다.

김규항=그럼에도 그들은 진보세력으로 미화되곤 한다. 그들은 이명박과 적대적이지만 이명박의 가장 큰 수혜자다.

이종회=이명박이 나쁜 놈인 건 분명하다. 그러나 이명박 경제정책이 노무현과 다른 건 하나도 없다. 4대강 이야기하지만 노무현은 새만금, 부안 핵폐기장을 마무리했다. 제주도 해군기지도 용산도 노무현이 시작했다. 이명박이 폭압적이라고 하지만 노무현은 평택 대추리에 군대를 투입했고 한·미 FTA 반대 시위를 하는 농민 두 분이 사망할 만큼 저항에 관한 한 폭압적이었다. 연금·복지와 관련된 체계를 시장화한 것도 유시민이었고 자본시장 통합법도 노무현이 만들어서 이명박에게 선물한 거다. 분명한 차이라면 북한과의 관계일 텐데 그것도 양면이 있다. 남한은 한·미 FTA에서 개성공단 생산 상품에 ‘Made in Korea’를 붙이고 싶어 한다. 햇볕정책은 평화를 내걸고 있지만 북한을 남한 자본시장에 하위 배치하는 데만 중심을 둔다면 문제다.

김규항=그런 맥락에서 이명박 정권은 더 열심히 햇볕정책을 해야 하는데 워낙 막돼먹은 극우 습성 때문에 북한과 틀어져버렸다. 자본의 하수인이 자본 운동을 훼방하는 코미디랄까. 어쨌거나 김대중·노무현 같은 자유주의 정치세력이나 이명박 같은 보수 정치세력이나 사회경제의 면에선 다를 바 없음을 들춰내기에 불편한 배경은 있는 것 같다. 워낙 극우 독재기간이 길고 수구라 불리는 그 잔재 세력이 엄존한다.

이종회=유럽 사람들은 1차 세계대전, 2차 세계대전 같은 전쟁이 자본주의가 세계적인 공황을 극복하는 방법이었음을 어지간히 안다. 예를 들면 영국 BBC에서 공황 이후 여론 조사를 한 걸 보면 대안체제로 사회주의를 거론한 사람이 60%를 넘는다. 그런데 한국에서의 전쟁은 이념 전쟁이었다. 그 왜곡된 상처와 잔재가 우리에게 내면화·구조화되어서 내려오고 있고 국가보안법이라든지 억압체계를 형성하고 있다.

김규항=진보라는 사람들 상당수가 이명박 정권교체에 올인하는 모습은 결국 우리가 국가보안법에 반대한다면서 실은 국가보안법 체제에 스스로 사로잡혀 있음을 드러낸다.

이종회=2008년 공황 직후에 WTO 전 사무총장 파스칼 라미가 G20(주요 20개국) 정상회의를 앞두고 ‘보호무역으로 가면 전쟁 난다’고 했다. 사실 공황은 자본 스스로 해결 방법이 없다. 결국은 사회주의를 얘기해야 한다. 그럼으로써 지금의 경제적 고통을 넘어서고 전쟁의 참화를 막을 수 있다.

김규항=마르크스는 자본주의의 과잉투자, 과잉축적 속성이 이윤율 저하를 부르고 결국 공황으로 터진다고 했는데 2008년 상황도 그대로다. 주류경제학은 공황 직전까지 예측조차 못하는 철저하게 무능한 모습을 보였는데 한국에선 주류경제학에서 벗어나는 이야기만 꺼내면 매우 비현실적인 좌파 꼴통으로 치부된다.

이종회=반MB전선에서 ‘나꼼수’에 열광하고 문재인이나 안철수 대통령을 기대하는 대중들이 사회주의 쪽 이야기에 거부감을 갖는 건 아쉬운 일이지만 이해가 간다. 문제는 지식인, 학자들이다. 사회주의 이야기에 꼴통 좌파라는 식으로 대중들의 거부감을 부추기는 말만 할 게 아니라 사회주의가 아니면 어떤 대안이 있는지 진지한 논의를 해야 한다.

김규항=진보를 자처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청년 시절에 풍찬노숙하며 운동했지만 김대중·노무현 정권 때 중산층으로 자리잡은 사람들이라 이명박 정권만 교체하면 정말 세상이 바뀌는 사람들이다. 그들의 주장은 진지한 견해라기보다는 그런 욕망에 기초한 경우가 많다. 그런 몰지각한 사람들은 차치하고 장하준처럼 케인스주의의 복원이나 유럽식 복지사회를 고민하는 경우는 어떻게 보나.

이종회=지금 미국을 비롯해 전 세계에서 통화정책을 비롯해 케인스주의 정책을 다 써봐도 백약이 무효인 게 확인되고 있다. 복지 이야기는 지난 지자체 선거에서 위력을 보인 무상급식이 씨앗이 되었는데 생존권의 또 다른 표현으로 제기된 게 정책처럼 되어버렸다. 복지는 분배의 문제처럼 보이지만 실은 생산체계와 연계된 문제다. 현재 자본주의는 공공부문과 복지부문을 시장화하지 않고는 살아남지 못할 정도의 위기상황이어서 이를 없애가면서 형성된 신자유주의이고 그래서 유럽도 복지가 무너지고 있는 판인데 한국이 복지사회로 간다는 건 이치에 안 맞는 이야기다.

김규항=세계적으로 청년들의 저항이 거센 건 공황 이후 선진국에서도 30~40%에 이르는 실업률과 관련이 있다. 그러나 높은 실업률은 노동운동의 연대나 투쟁력을 위축시키는 점도 있지 않은가. 우리의 경우 핵심은 역시 비정규 문제인데.

이종회=찰리 채플린 영화를 보면 공황 시대에 실업자들이 배급을 타려고 줄 서 있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 이면엔 AFL-CIO(미국노동총연맹 산업별조합회의)를 체제내화시키려는 전략이 있었다. 한국 사회도 김대중이 IMF(국제통화기금) 위기 관리체제를 근거로 정리해고와 파견제를 도입하고, 노무현이 비정규직 법안을 통과시키면서 노동자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분리가 된다. 기존에 민주 노동운동의 구심이었던 정규직 노동자들은 비정규직이 되거나 해고될까봐 잔뜩 겁을 먹게 되었다. 비정규직은 생존 자체에 매달려야 하고 학생들은 학생운동이고 뭐고 학교 들어가면 취업 준비에 매달리고.

김규항=근래 민주노총의 모습을 봐도 그렇고, 정규직 남성 대공장 노동자들이 구심이 되는 노동운동에 대한 냉정한 판단이 필요한 때가 아닌가.

이종회=계급운동이 새로 서는 노동운동, 불안정 노동자들의 정치적 조직화가 숙제다. 기존의 정규직은 생산 수단에 안정적으로 결합되어 있는 형태라 군대적 편제에 따른 총파업 등의 정규전이었다면, 비정규직·실업을 포함한 불안정 노동의 조직 방식이나 투쟁 방식은 비정규전이고 게릴라전일 수밖에 없다. 그 정확한 형태와 방식은 좀 더 고민이 필요한 상태다. 촛불, 희망버스에 대한 성찰적 연구도 필요하고.

김규항=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일부가 유시민과 통합진보당을 만들었다. 여러 의견들이 있는데 진중권 같은 사람은 통합을 거부한 사람들을 ‘좌익소아병’이라고 하기도 한다.

이종회=노동자가 노동자의 삶을 대변하지 않는 자유주의 정치에 의존하지 않고 정치세력화하려고 만든 게 민주노동당이다. 10여년이 지난 지금 ‘반MB’라는 몰개념적 정치공학으로 그 오랜 노력이 물거품이 될 지경에 처해 있고 진보신당 정도가 그 깃발을 부여잡고 있다. 그런 안타까움에 낯선 사람이 자본의 논리에 의해 죽음을 넘나드는 사람들의 피눈물을 느끼지 못하는 건 오히려 당연한 일 아닐까.

김규항=선생은 진보신당보다 급진적인 사회주의자인데 이념적 지향으로서 사회주의인가, 현실적 대안으로서 사회주의인가.

이종회=둘 다이고 현실적으로는 후자다. 2008년 공황은 자본주의의 일시적 위기가 아니라 바닥을 드러낸 사건이다. 대안도 해결책도 없이 환율정책, FTA와 같은 특정한 지역의 극단적인 시장확장 정책 등으로 파산 위기에 몰린 거대기업들을 구제하기 위한 정책들만 난무하면서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다. 1%의 부자들은 오히려 더 부자가 되고 청년실업, 정리해고, 비정규직이 상시적인 형태가 되었다. 이윤을 위한 무차별한 생태계의 파괴로 후세의 생존까지 위협하고 있다. 그래서 미국과 유럽, 아랍 등지에서 99%가 거리에 나서게 되고 ‘고장난 자본주의’ ‘자본주의 이제 그만’ ‘문제는 자본주의다’라고 하는 구호들이 제기되고 있다. 이대로 가면 자본은 1, 2차 세계대전이 그랬듯 전쟁으로 문제를 해결할 가능성도 높다. 인류와 지구의 위기 속에서 사회주의는 매우 현실적인 대안으로 제기된다.

김규항=‘닥치고 정권 교체’에 대한 이의 제기가 오히려 노동자와 서민의 고통을 외면하고 교조적 이상만 좇는 행위라 여겨진다. 한국 사회는 마치 최면에라도 빠진 듯하다.

이종회=신자유주의적인 자본축적 전략의 폐기 없는 대안, 그리고 이미 시효가 지난 케인스주의를 기반으로 한 대안은 단지 집권을 위한 술수일 뿐이다. 정권이 바뀌면 정치적 보수주의는 개선되겠지만 사회경제적 변화는 없을 것이고 모순이 깊어지면서 노동자와 서민의 고통은 더 심화될 수밖에 없다는 건 피할 수 없는 사실이다.

김규항=국가보안법 이야기도 했지만 사회주의를 말하자면 역시 현실 사회주의의 상처가 큰 벽이다. 현실 사회주의가 사회주의였다고 생각하나.

이종회=냉정하게 말해서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가장 큰 문제는 현실 사회주의가 자본주의와 경쟁하면서 스스로 사회주의의 이상으로부터 멀어져 간 것이다. 생산력을 모든 것의 우위에 두고 인민 대중을 그 동원 체계로 배치하는 억압적 관료체제가 되면서 사회주의적 가치관이 모조리 사라져 버렸다.

김규항=‘자유로운 생산자연합’이라는 사회주의의 본색은 현실 사회주의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프롤레타리아독재에 대한 오해나 오용도 심각한데.

이종회=현실 사회주의에서 프롤레타리아독재는 당 관료들의 독재로 왜곡되었고 오늘 대개 그렇게들 알고 있지만 실은 노동자 민주주의의 개념이다. 자본주의의 잔재를 척결하고 자유로운 생산자연합을 건설하기 위한 민주주의의 전면화인 것이다. 토론을 통하여 의견을 모아나가는 과정은 사실 효율성과는 거리가 있다. 그러나 인내심과 존중심을 필요로 하는 그런 지난한 과정이야말로 노동자 민주주의다.

김규항=1980년대엔 청년 사회주의자들이 많았다. 현실 사회주의가 무너지고 민주화가 되면서 대부분 체제 안으로 들어갔는데 선생은 오히려 사회진보연대, 비정규직 철폐연대, 진보넷, 참세상 등을 꾸리며 운동진영의 살림꾼으로 살아왔다. 떠나지 않은 비결은.

이종회=지키고 싶은 가치가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은 존재조건이 가치를 규정하는 속성이 있다. 대중성을 위해서, 현실성을 위해서, 여러 명분과 핑계들이 있지만 떠나면 내 의지와 무관하게 가치를 재구성하게 된다. 그걸 피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김규항=그 가치는 뭔가.

이종회=없는 자들. 그리고 인간에 대한 의리. 사회주의자는 눈물이 많다고 했던가. 35년 동안 수많은 동료들이 떠나갔고 배신감도 들었지만 후회는 없다. 경제적 문제라든가 불편한 점이 있지만 그 가치를 포기했다면 나는 불편해진 게 아니라 불행해졌을 것이다. (경향신문)


2012/01/04 18:39 2012/01/04 18:39
2012/01/03 17:10
예수전


누구든 환영합니다.ㅎ

2012/01/03 17:10 2012/01/03 17:10
2012/01/02 17:33
참세상이 편집위원회를 새로 꾸리면서 두달에 한번씩 정세좌담회를 하기로 했다. 그 첫번째 기사. 나는 근래 한국사회의 변화를 '거대한 자유주의화'라 보고 안철수 박원순 등에 의한 정치판의 재편과 나꼼수 열풍 같은 것도 그 반영이라 생각한다. 좌파의 일은 그런 거대한 흐름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면서, 차분하게 제 할 일을 하고 대안을 만들어가는 것일 게다.
2012/01/02 17:33 2012/01/02 17: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