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10'에 해당되는 글 20건
- 2011/10/31 한미 FTA, 국익, 노빠 (1)
- 2011/10/31 하늘 02
- 2011/10/30 하늘 01
- 2011/10/29 비판과 냉소
- 2011/10/28 함께 되새기는 3가지 질문
- 2011/10/27 냉소를 넘어
- 2011/10/26 부정적인 태도
- 2011/10/26 김여진과 대화
- 2011/10/24 투표 단상
- 2011/10/24 1500일
- 2011/10/20 안달
- 2011/10/20 작은 이적
- 2011/10/20 쓰디쓴
- 2011/10/19 김규항의 좌판 3 - 기차길옆작은학교 '큰이모' 김중미
- 2011/10/13 고래의 하한선
- 2011/10/11 걸리버소극장 공연
- 2011/10/10 반이명박 매트릭스
- 2011/10/06 김규항의 좌판 2 - 문정현 신부
- 2011/10/03 쉬는 시간
- 2011/10/01 지금 행복해야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걸렸을 때 비로소 사람의 인격이 드러나듯, 요즘처럼 제도정치의 광풍이 휘몰아칠 때 비로소 사람의 지성이 드러난다. 나경원 시장을 막기 위해 박원순을 찍는 거야 어쩔 수 없는 일이라 해도 박원순에 휘둘리거나 안달할 건 없다. 민주화 이후, 그 안달이 우리를 얼마나 우습게 만들었는지 우리를 얼마나 힘들게 했는지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야당 지도부에 있는 분들이 손학규, 김진표, 천정배, 정동영 이분들이 참여정부가 FTA 체결했을 때 다 찬성했어요. 자기들이 체결한 법안을 우리가 동의해주려고 국회에서 비준하는 것뿐이에요. 그런데 비준을 하려고 하니까 정작 체결한 당사자들이 나서서 반대를 하니 기가 막힌 노릇 아닙니까?”
쓰디쓴 진실을 홍준표 따위에게서 들어야 하다니.


4일 광주 걸리버소극장 공연. 단란한 분위기에서 다들 즐거웠다. 제대로 된 블루스 기타를 코 앞에서 들을 수 있었던 건 관객들에게 특별한 체험이었을 것이다. 나는, 무대 위에서 노래하는 일이 조금씩 편안해지고 있다. 새 곡을 써야 하는데 자꾸만 미루어진다. '마감'이 없으니.ㅎ
공연실황 한곡. '괜찮아'(노래 윤병주)
‘이명박을 반대하는 사람이 이명박을 반대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이명박을 반대한다는 사실을 종일 반복해서 확인하는 일’은 사회에 어떤 것일까? 적어도 운동은 아닐 것이다. 운동이란 이미 그 운동의 내용에 동의하는 사람들끼리 운동의 내용을 반복해서 확인하는 카타르시스가 아니라,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을 설득하고 세를 넓혀 세상을 변화시키는 일이니 말이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반이명박 운동의 주요한 흐름은 그런 ‘집단적 카타르시스’의 면모를 보인 지 오래다. 반이명박 운동은 사회 변화를 위한 운동이 아니라 그 운동에 앞장선, 그 운동으로 ‘고객’을 확보하는 사람들을 위한 운동이 되고 있다.
그 운동에 앞장선 사람들은 입버릇처럼 말한다. 이명박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 그들은 자신이 얼마나 이명박 덕을 보고 사는지 말하지 않는다. 이명박 이후 그들이 정의롭고 진보적이고 인간적인 사람 행세하기가 얼마나 수월해졌는지 말하지 않는다. 노무현 정권 때만 해도 수구세력을 욕하는 것만으로 진보 행세를 하긴 어려웠다. 수구세력이 ‘좌빨’로 대우한 노무현 정권도 노동자 인민의 관점에서는 진보를 가장한 신자유주의 세력이라는 비판이 상존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진보개혁’세력이라는 비루한 조어로 자신을 표현하곤 했는데 이젠 당당하게 ‘진보세력’이라, 자신들의 재집권을 ‘진보집권’이라 말한다. 다 ‘각하’ 덕이다.
운동의 실천은 또 얼마나 수월해졌는가. 그 운동의 이름난 논객이나 평론가들의 실천이란 이명박 패거리들이 매일같이, 아니 하루에도 수십개씩 안정적으로 공급해주는 소재들 가운데 가장 자극적인 것 몇개를 골라 ‘이랬다네요’ ‘기가 막히네요’(진중권 류) ‘○○도 아니고 씨바’(김어준 류) 따위 짜증과 비아냥의 코멘트를 다는 게 전부다. 코흘리개도 할 수 있는 그 즉자적 코멘트는 이명박에게 짜증이 날 대로 난 많은 시민들에게 ‘의미있는 진보적 담론’으로 받아들여진다. 물론 그 의미는 사회적 의미가 아니라 짜증이 날 대로 난 사람들의 심정을 잘 집어낸다는 의미겠지만. 과연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그런 즉자적 짜증과 비아냥으로 충분히 파악하고 변화시킬 수 있을 만큼 간단한가?
우리는 이명박 정권은 지배체제의 전부가 아니라 추악함이 불거진 체제의 일부임을 안다. 물론 운동이 언제나 체제의 모든 부분과 고르게 싸워야 하는 건 아니다. 불거진 일부, 더 많은 대중들이 분노하고 교감할 수 있는 일부를 간판으로 삼는 건 체제와 싸우는 좋은 방법이다. 그러나 오늘 반이명박 운동은 그 일부를 체제의 전부로 삼는, 그 일부만 사라지면 세상이 변화할 것처럼 과장하는, 그 일부에 체제에 대한 모든 분노와 에너지를 쏟아 넣어 소모하는 ‘반이명박 매트릭스’의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이쯤 되면 그 운동은 세상을 변화시키는 운동이 아니라 체제를 수호하고 세상을 수호하는 운동이라 할 만하다.
‘이명박 반대’는 진보가 아니라 ‘인간의 기본’일 뿐이다. 이명박 패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 저급함은 두뇌와 심장이 작동하는 사람이라면 수용할 수 없는 종류의 것이다. 인간의 기본이 진보로 승격된 사회, 짜증과 비아냥이 진보적 담론이자 실천인 사회, 체제를 꿰뚫어보는 냉철한 지성도 체제 속의 삶에 대한 진지한 성찰도 사라져버린 사회는 퇴행할 수밖에 없다. 안철수 같은 ‘착한 자본가’가 사회의 유일한 희망으로 여겨지는 모습은 퇴행의 한 귀결이다.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우리는 끝없이 자신을 추락시켜 우리의 진보와 정의와 인간성의 하한선을 ‘동반하락’시키는 이명박이라는 물귀신 앞에서 냉철한 지성과 진지한 성찰을 되살려내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럴 때 비로소 짜증과 비아냥도 풍자와 골계가 된다. (한겨레)

1970년대 이후 40여년을 한결같이 억압받고 고통받는 사람들과 함께 해온, 한국 사회운동의 산증인이자 가장 열정적인 현역 활동가인 문정현 신부. 어떤 사람의 판단을 무작정 따르는 건 위험한 일이다. 그러나 경험이나 식견에서 그리고 진정성 면에서 이분 정도면 경우가 다르다. 이분이 아니라고 하는 건 아닐 가능성이 높다. '길 위의 신부' 문정현이 우리에게 들려주는 '불편한 이야기들'.
김규항(이하 김)=부모님께서 늘 순교자 정신을 가르치셨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문정현(이하 문)=활동하다가 사제들 중에 구속이 되었을 때 그 부모님들이 사제의 동료들을 원망하고 감옥간 아들 원망하고 하는 걸 보면서 우리 부모님이 다르다는 걸 새삼 절감했어요. 그분들은 도리어 “흔들리지 말라고 대건 순교자처럼 의연하라”고 응원하시곤 했거든요.
김규항=어릴 적 일상에서 늘 그렇게 가르치셨는지요.
문정현=‘정직하고 부끄럽지 않게 살아야 한다’ ‘가난한 이웃을 생각해야 한다’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가르치셨죠. 먹을 게 넉넉지 않은 형편이었는데도 더 못한 이웃에 쌀을 갖다주라고 ‘솥뚜껑 열고 넣어놓고 오라’고 방법까지 알려주며 시키셨어요. 돌이켜보면 그런 가르침들이 저라는 사람의 형성에 결정적 역할을 했어요. 고등학교부터 신학교 생활을 했지만 제 공부의 절반은 부모님의 가르침입니다. 일흔이 넘었지만 그분들이 그리워요.
김규항=신부님의 부모님은 좀더 특별한 경우지만, 그래도 전에는 여느 부모들도 아이에게 인간의 기본 꼴을 만드는 교육은 했던 것 같아요. 공부 잘하라고 하면서도 공부가 다는 아니라고 가르치고 지나치게 욕심 부리면 죄받는다고 동무에게 양보할 줄 알아야 사람이라고 가르치고. 이젠 좌파 부모도 그렇게 가르치길 두려워합니다.
문정현=사람을 키우는 건지 서커스단의 동물로 훈련을 시키는 건지 알 수가 없어요. 아이들을 이렇게 키워서 인간성이 형성될 리 만무하죠. 우리 사회의 미래가 정말이지 너무나 걱정이에요. 그 생각만 하면 앞이 캄캄합니다.
김규항=신자유주의 이야기를 많이들 하지만 그 가장 큰 재앙은 교육의 목표가 ‘어떤 사람이 되는가’에서 ‘얼마짜리가 되는가’로 바뀌어버린 것이라 생각합니다. 예수는 ‘하느님과 마몬을 동시에 섬길 순 없다’고 말했는데요.
문정현=그런 변화는 우리 사제들에게까지도 스며들었어요. 70년대까지만 해도 사제들이 가난하게 지냈거든요. 민주화운동 한다고 전주에서 서울 오갈 때 여비가 없어서 애를 먹곤 했어요. 80년대 지나면서부터 윤택해지더라구요. 그리고 많은 게 변해버렸죠. 모두가 더 잘살기를 바라는 한 우리 사회엔 미래가 없어요. ‘더불어 가난한 사회’만이 살길입니다.
김규항=명동성당에서 농성하실 때 형편이 좋지 않아 보였습니다.
문정현=용산에서 나와 4대강 단식농성을 하러 들어갔었는데 명동성당이 민주화의 성지, 약자의 피신처라는 건 다 옛날이야기라는 걸 절감했어요. 교구청 관리국장이라는 사람이 ‘영업방해’라는 언사를 사용하질 않나. 명동성당이 아니라 명동주식회사구나 싶더군요. 추기경은 서품 5년 선배고 본당신부는 5년 후배인데 아무리 생각이 다르더라도 천막도 없이 노숙하며 단식농성하는 사람한테 이럴 순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농성 후에 군산에 돌아왔다가 다시 명동성당에 들어갔거든요. 그 즈음부터 서각(주 -)을 시작했죠. 오전에 기도하고 묵상하며 말씀을 새겼다가 오후에 그걸 팠어요. 그러던 어느 날 내 분노가 나에게 화살이 되어 돌아오더군요. ‘내가 저 사람들 원망할 수 있는가, 나는 저 사람들 욕할 만큼 제대로 사는가, 저 사람들 욕하기 앞서서 나부터 제대로 살아보이자’ 그 뒤론 마음이 평화로워졌습니다.
김규항=그런 성찰과 용서의 영성이 예수를 따르는 사람들을 여느 활동가들과 다르게 만들어주는 지점이지 싶습니다. 그리고 강정으로 오셨죠.
문정현=강정이 자꾸 떠올랐어요. 용산에 있을 때부터 요청이 있기도 했고 명동에서 나오게 되니 자연스럽게 오게 되더군요. 처음엔 혼자 왔는데 얼굴을 못 들겠어요. 미안하기도 하고 착잡하기도 하고. 하룻밤 자고 돌아가서 괴로워하다가 평화바람 식구 중 둘이 “같이 갑시다. 뭘 할 수 있을지 가서 봅시다.”하기에 따라 나선 게 와서 살게 되었죠. 강동균 마을회장 얼굴을 보며 살았어요. 저 얼굴이 마을 사람의 얼굴이라는 마음으로요. 마을 사람 이상도 이하도 아닌 마을 사람으로 살자는 마음으로 살고 있어요.
김규항=평화상단도 신부님이 만드신 거죠.
문정현=와서 보니까 돈이 너무 없어요. ‘평화상단’이라는 이름으로 재정 사업을 시작했죠. 젖갈도 팔고 한라봉이나 야생초 효소도 팔고.
김규항=강정 싸움은 특이한 데가 있습니다. 해군기지가 들어선다고 해서 평택 대추리처럼 집도 뺏기고 땅도 뺏기고 하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그런데도 마을 사람들이 결사적으로 저항하는 모습은 요즘 같은 시류에선 보기 드문 모습인데요.
문정현=왜 이 사람들이 이렇게 결사적으로 싸우는 걸까. 저는 구럼비에 와보고 금세 알 수 있었어요. 구럼비와 그 앞바다엔 어떤 거역할 수 없는 기운이 있어요.
김규항=저 역시 처음 구럼비에 왔을 때 그런 느낌이 들었습니다.
문정현=사람을 한없이 품어요. 말로 설명하긴 힘든 그러나 누구나 잠시 머물기만 해도 이건 해쳐선 안 된다는 걸 알 수 있어요.
김규항=그런 가치가 설득력을 갖기 힘든 세상입니다.
문정현=안타까운 일이죠.
김규항=그러나 그런 가치를 접고라도 강정 해군기지의 진행과정 자체가 문제가 많지 않습니까.
문정현=헤아릴 수 없는 탈법과 부정으로 점철되어 있어요. 그걸 하나라도 제대로 따지면 공사는 즉각 중단되는 게 옳아요. 기사를 보셨겠지만 9월6일엔 이곳에서 선사시대부터 조선 유물까지 주르륵 나왔잖아요. 문화재청에서 녹색 표시를 했는데 녹색은 그 어떤 공사나 개발도 못하는 곳이거든요. 헌법보다 위라고 합니다. 유네스코가 지정한 ‘생물권 보전지역’이기도 하죠.그걸 다 무시하고 구럼비를 파괴하고 있어요.
김규항=정말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궁금해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문정현=이기고 지고는 저에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김규항=예수는 십자가에 처형당했는데 ‘십자가의 승리’라고 말하는 건 그 실패가 수많은 사람들에게 용기와 사랑으로 살아남았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사회적 싸움에서 이겼다 졌다 하는 건 긴 역사의 맥락에서 보면 무망한 일인 경우도 많죠. 이겼지만 결국 진 싸움도 있고 졌지만 이긴 싸움도 있고.
문정현=물론 당장으로야 지는 것보다 이기면 좋겠지만 이렇게 압살당하다시피 하는 사람들을 보고 어떻게 지나갈 수 있습니까. 저에겐 이기고 지고보다 그게 더 중요해요. 나중 문제는 나중에 생각하면 되고 지금은 주민들을 도와 열심히 싸우는 게 제 일이라 생각합니다.
김규항=이 역시 시장주의 세상의 반영이겠지만 요즘은 사회운동도 ‘당장의 현실적 가능성’이 없어 보이는 건 아예 생각조차 안하려고 하는 경향이 많습니다. 70년대부터 활동해온 사회운동의 산 증인이자 현역으로서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문정현=오래 전 목숨 걸고 싸웠던 사람들 가운데 남은 사람이 거의 없어요. 남았다고 해도 제대로 남은 경우가 거의 없다고 할까요. 김대중 노무현 정권을 거치면서 더 그렇게 되어버렸죠. ‘현실적 가능성’이라는 게 늘 운동의 덫이죠.
김규항=현실은 오로지 비현실적인 상상력으로만 바뀌는 법이니 ‘현실적 가능성’에만 집착하는 건 이미 운동이 아닌 셈입니다.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과도 인연이 깊으신데요.
문정현=개인적으로는 좋아하는 분들이었지만 대통령으로선 전혀 준비가 안 된 사람들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IMF 때 김대중 씨가 국민들에게 허리띠 졸라매고 갑시다, 우리 힘으로 일어서봅시다 하길 기대했는데 그렇게 안하더라구요. 있는 놈들한테 문 활짝 열어줘 버리고 무릎을 꿇더라구요. 그게 신자유주의의 시작이고 결국 이런 세상이 되어버렸죠. 노무현 씨는 허망해서 달리 말할 게 없어요. 이명박은 그 시절을 토대로 집권하고 살고 있죠.
김규항=두 분에게 투표는 하셨습니까.
문정현=하지 않았습니다. ‘비판적 지지’는 김영삼 때부터 나온 이야기인데, 좀 더 현실적인 선택이라고들 했는데 그게 우리에게 얼마나 큰 상처가 되고 뒷걸음질인지 저는 충분히 깨달았어요. 비판적 지지는 한번으로 족했어요.
김규항=지금도 이명박 정권 교체를 위한 비판적 지지 바람이 거셉니다. 20여년 째죠. 한번으로 족했다고 하셨지만 그렇게라도 희망의 끈을 찾아보려는 대중을 탓하긴 어렵지 않습니까.
문정현=대중들이 당장 눈앞의 상황에 휩쓸리고 그걸 좀더 현실적인 선택이라 여기는 건 어쩔 수 없다고 해도 저 자신은 래디컬의 하한선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제 경험으로는 대중들에게 그런 바람에 부추기고 앞장서는 사람들은 언제나 ‘기득권’ 때문에 그런 행동을 하는 겁니다. 저 역시 두 정권 때 이런저런 유혹이 많았어요.
김규항=기득권이 단지 돈이나 직접적인 이권만이 아니라 문화권력 차원까지 포함한다고 할 때 두 정권을 거치면서 옛 민주화 운동과 관련한 사업들도 관변이 되고 체제 내의 일이 되었습니다. 신부님께서 그런 데 관여했다면 하고많은 민주인사들처럼 되었을까요.
문정현=그걸로 저는 끝났을 겁니다. 제가 래디컬의 하한선을 지키는 이유는 하나예요. 예수 때문입니다. 예수가 가난한 이웃, 고통 받는 이웃들과 함께 하라고 가르쳤고 내가 동의했는데 민주화 운동이든 반이명박 운동이든 무슨 이름을 달았건 이웃과 함께하는 삶을 거스른다면 저와 구분지을 수밖에 없는 거죠.
김규항=천상 ‘길 위의 신부’일 수밖에 없다는 말씀이군요.(웃음) 참 잘 어울리는 이름인데 누가 지었는가요.
문정현=2002년엔가 MBC에서 저를 한달간 따라다니며 프로그램을 찍었거든요. 그걸 제목을 붙이는데 작가도 아니고 도와주는 젊은 친구가 편집 화면을 보다가 “길 위의 신부구만” 했대요. 저에게도 그 이름이 딱 마음에 박히더라고요. 그 후 제 스스로 그 이름을 쓰기 시작했어요. 출연료라고 받은 돈으로 프로그램 제작진들 몽땅 밥을 샀죠.(웃음)
김규항=물론 애정어린 농담이겠지만, 신부님의 삶이나 행동은 성격이나 기질의 당연한 귀결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더군요.
문정현=혈액형도 O형이고 체질도 태양이니 그럴지도 몰라요.(웃음) 어디서 무슨 사건이 벌어지면 가만있질 못해요. 현장에 안가면 못살겠는 거예요. 같이 참여해야 하고 같이 얻어터져야 하고. 그러나 그 기반은 역시 신앙이죠. 10·26 때 잡혀 들어가서 언제 끌려가 죽을지 모르는 판에 그런 기도가 나오더군요. ‘지금 죽어도 좋으나 비굴하지 않게 죽게 해주십시오.’ 예수의 삶의 흔적, 예수와의 인격적인 만남의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김규항=제 경우에 진보운동과 관련하여 예수의 삶에서 가장 큰 공부가 된 것 중에 하나가 바리새인들과의 갈등과 반목이었습니다. 지금의 수구 보수세력에 해당하는 사두개나 지배계급과의 갈등이야 당시 의식있는 사람에겐 당연한 것이지만 바리새인은 이스라엘 사회의 변화를 위해 현실적인 노력을 했던, 지금으로 말하면 개혁세력이나 시민운동 세력에 해당하는 사람들이지 않습니까.
문정현=바리새인? 우리 주변에 쌓이고 쌓였어요. 우리를 아예 둘러싸고 있다고 하는 게 정확할 겁니다. 심지어 제가 그토록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교황청에서조차 깊은 우려와 관심을 동시에 갖는 정의구현사제단에도 그런 경향들이 존재해요. 많은 경우에 우리 편이기도 하지만 래디컬의 하한선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 그들이 바리새인들이고 우리의 싸움에 초를 치는 사람들이죠. 선명해야 합니다. 선명성이라는 건 복잡할 게 하나도 없어요. 고통받고 내몰리는 사람들의 이웃이 되는 거죠. 누가 내 이웃인가만 분명히 하면 됩니다.
김규항=신부님이 사회운동에 참여하기 시작한 70년대 초반은 군사독재와 싸웠지만 이젠 자본독재의 세상이 되었습니다.
문정현=그걸 잊으면 정의를 버리고 이웃을 외면하게 됩니다.
김규항=신부님은 평화운동가입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엔 평화에 대한 오해나 왜곡된 의식이 많은 것 같습니다. 평화라고 하면 무작정 조용하고 온화하기만 한 어떤 것으로 말이죠. 평화란 흐트러지고 깨진 세상의 본디 조화를 회복하는 노력이니 때론 소란스러울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문정현=이라크 파병에 즈음해서 전국 유랑을 두 번 했는데 저는 그때 평화가 뭔지 몸으로 정리할 수 있었어요. 2004년 5월에 평택 평화대축제 연설에서 그걸 말했었죠. “공장에서 쫓겨난 노동자가 원직 복직하는 것이 평화, 두꺼비 맹꽁이 도롱뇽이 서식처를 잃지 않는 것이 평화, 장애인도 가고 싶은 곳을 갈 수 있는 것이 평화, 이 땅을 일궈온 농민들이 더 이상 빼앗기지 않는 것이 평화, 성매매 성폭력 성차별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세상이 평화, 군대와 전쟁이 없는 세상 신나게 노래 부르는 것이 평화, 배고픔이 없는 세상 서러움이 없는 세상 쫓겨나지 않는 세상 군림하지 않는 세상이 평화입니다.”
김규항=말씀 다시한번 되새깁니다. 강정에서 평화는 무엇입니까.
문정현=있는 그대로 놔두는 게 평화입니다. 그러나 저절로 오는 평화는 없습니다.(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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