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10'에 해당되는 글 20건

  1. 2011/10/31 한미 FTA, 국익, 노빠 (1)
  2. 2011/10/31 하늘 02
  3. 2011/10/30 하늘 01
  4. 2011/10/29 비판과 냉소
  5. 2011/10/28 함께 되새기는 3가지 질문
  6. 2011/10/27 냉소를 넘어
  7. 2011/10/26 부정적인 태도
  8. 2011/10/26 김여진과 대화
  9. 2011/10/24 투표 단상
  10. 2011/10/24 1500일
  11. 2011/10/20 안달
  12. 2011/10/20 작은 이적
  13. 2011/10/20 쓰디쓴
  14. 2011/10/19 김규항의 좌판 3 - 기차길옆작은학교 '큰이모' 김중미
  15. 2011/10/13 고래의 하한선
  16. 2011/10/11 걸리버소극장 공연
  17. 2011/10/10 반이명박 매트릭스
  18. 2011/10/06 김규항의 좌판 2 - 문정현 신부
  19. 2011/10/03 쉬는 시간
  20. 2011/10/01 지금 행복해야
2011/10/31 13:48
한미 FTA를 미국과 한국의 문제, 민족 문제나 국가 간의 문제로 보면 본질이 왜곡된다. 한미 FTA는 모든 미국인에게 좋고 모든 한국인에게 나쁜가? 한미 FTA는 대다수의 한국 노동자 인민에게 재앙이지만 국제 경쟁력을 가진 혹은 국제 수준의 부자들에겐 좋기만 하다. 쉽게 말해서 이건희한테는 좋고 우리 아버지한테는 나쁜 것이다. 한미 FTA는 '국적을 넘어선 계급 문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재임시 ‘국익’을 이유로 한미 FTA를 강행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좋은 사람’이었던 그가 ‘좋은 대통령’이 되지 못했던 건 그가 언제나 ‘국익’을 우선시했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당연히 국익을 우선해야지 무슨 소리냐고? 좋은 대통령은 국익이 아니라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의 이익을 우선해야 한다.

계급간의 모순이 존재하는 사회에서 국익, 즉 ‘사회 성원들 공통의 이익’은 실재론 존재하지 않는다. ‘계급의 이익’만이 존재한다. 이건희의 이익은 삼성전자 반도체 노동자들의 손해이며 정몽구의 이익은 현대차 비정규노동자들의 손해이며 조남호의 이익은 김진숙과 동료들의 손해이다. 국익이란 실은 '지배계급의 이익'의 듣기 좋은 표현이다.

브라질의 룰라가 ‘좋은 대통령’ 소리를 들을 수 있었던 건 그 이치를 알았기 때문이다. 그는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의 이익을 위해 국익을 관리했다. 충분치는 않았지만 적어도 그런 방향성을 가졌다. 반면에 노무현은 국익을 위해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을 관리했다. 그가 ‘국익을 위해’ 강행한 한미 FTA와 제국주의 파병과 새만금, 용산 개발 등은 모두 지배계급을 위한 것이었다.

노무현은 말년에 한미 FTA 강행을 후회했다고 한다. 뒤늦게나마 국익의 어리석음을 깨달았기 때문일 것이다. “노무현의 FTA와 이명박의 FTA는 다르다” 따위의 언사나 일삼는 이른바 노빠들이 그 뒤늦은 깨달음을 되새기길 기대한다. 개인 노무현에 대한 애정과 대통령 노무현에 대한 평가도 구분 못하는 사람들이 만날 이명박만 욕하는 건 정치의 풍경이 아니라 사교邪敎의 풍경에 가깝다.

2011/10/31 13:48 2011/10/31 13:48
2011/10/31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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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각..
2011/10/31 10:31 2011/10/31 10:31
2011/10/30 10:19



밤. 한강 둔치..
2011/10/30 10:19 2011/10/30 10:19
2011/10/29 12:47
비판과 냉소를 혼돈하는 이들이 많다.
냉소는 현실에 찌그러진 투덜거림에 불과하지만 비판은 현실을 넘어서기 위한 고뇌이자 힘찬 행동.

2011/10/29 12:47 2011/10/29 12:47
2011/10/28 14:35
1. 박원순의 아름다운 세상은 우리에게도 아름다울까? 사회 디자인 

2. 전 KBS 사장 정연주의 진보는 전 이랜드노조 위원장 김경욱에게도 진보일까? 정연주와 김경욱 

3. '이명박을 반대하는 사람이 이명박을 반대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이명박을 반대한다는 사실을 종일 반복해서 확인하는 일’은 운동일까? 반이명박 매트릭스 

2011/10/28 14:35 2011/10/28 14:35
2011/10/27 10:16
박원순이 시청 앞에서 1407일째 농성중인 유명자를 외면하는 건 그의 철학과 세계관에 비추어 자연스러운 일. 냉소를 넘어 그 자연스러움을 불편하게 만드는 것, 더는 외면할 수 없도록 만드는 게 우리의 일.

2011/10/27 10:16 2011/10/27 10:16
2011/10/26 08:55
"정치적 견해에 의해 투표거부하는 사람도 존중받아야 한다"고 했더니 '투표 거부하자' 로 오해하는 이들이 있다.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투표하는 게 바람직한 거야 굳이 강조할 필요조차 없는 이야기. 아침에 투표한 친구가 트위터에 "오늘은 누구는 안 된다는 맘으로 갔죠 ㅎ" 하기에 답했다. "그런 '부정적인 태도'가 중요 ㅎ" 긍정적인 태도로 투표할 수 있다면(그런 날을 만들자!) 금상첨화겠지만 그렇지 못할 땐 부정적인 태도로 할 수도 있다. 아이들 급식 문제 하나만으로도. 단, 부정적인 태도의 투표조차 부정적인 사람도 존중하면서.

2011/10/26 08:55 2011/10/26 08:55
2011/10/26 00:54
(어제 낮 김여진 씨와의 트윗 대화. 간단한 대화지만 앞뒤를 잘라 읽은 채 질문하는 이들도 있고 해서 붙여 실어본다.)

"김진숙 응원과 박원순 선거운동을 동시에 해내는 사람이 이해는 안가지만 욕하고 싶진 않아. 나경원은 막아야지. 하지만 스스로 불편해할 줄은 알아야지." 친구의 말. 끄덕끄덕.

@gyuhang  선거에 모든 걸 다 걸지 않아요. 불편하다고 꼭, 티내서 얻어질 것도 없구요. (전 티내는 게 어떤 목적에, 무슨 도움이 되는지 지 잘 모르겠어요) 현장의 목소리가 죽는다 안타깝다면, 티내는 것보단 현장을 끊임없이 알리고 "뭔가 하는 게" 낫지 않나요? 선거에서 지면 당장 한진, 등은 바로 힘들어지는 건 사실이구요. 불편, 안하고 둘 다 함께 하는데 최선을 다할 겁니다.

@yohjini  "티를 내"는 게 아니라 시민으로서 자유로운 정치적 표현이죠. 여진 씨가 불편하든 안하든 그 불편을 표현하든 안하든 여진 씨 권리이듯, 투표거부'를 포함한 다른 사람의 권리도 존중하길. '하나의 대오'는 민주주의가 아닙니다.

@gyuhang  "불편해 할 줄 알아야.." 라는 말에 좀 발끈 했습니다. 넘겨짚는 말 같기도 하고, 가르치는 말 같기도 해서.. 물론 개인의 선택은 존중합니다. 다만, "목적"이 분명하다면(이게 전제예요. 막연한 개인이 아니라) "방법"에 있어 얼마나 유용한지 잘 모르겠어서 어제 부터 자꾸 묻고 있던 참이에요.

@yohjini  다 상대적이지요. "김여진이 활동가를 가르치려 든다"는 사람들도 있답니다. 박원순 멘토단 중에 여진 씨와 강풀의 순수한 의도는 잘 압니다. 선거 후 진득하게 대화하지요. 애쓰시길.

2011/10/26 00:54 2011/10/26 00:54
2011/10/24 19:16
①'나경원과 박원순 모두 반노동적인 경향의 인물들이라 지지할 순 없지만 무상급식에 관한 견해 등 두 사람의 상대적 차이를 인정하며 박원순을 찍겠다'는 사람 ②'두 사람의 상대적 차이를 인정하지만 그 차이가 줄 유익보다 그 차이를 인정함으로서 생기는 장기적 폐해가 더 크다고 생각해서 투표를 거부하겠다'는 사람. 나는 둘 모두 존중한다. 그리고 그 둘에 속하는 사람들이 우리사회에서 가장 성숙한 식견을 가진, 희망적인 사람들이라 생각한다. 가장 볼썽사나운 사람들은 투표 거부에 대해 ‘투표는 시민의 미덕’이라는 코흘리개도 아는(대체 누가 그걸 모른단 말인가) 이야기로 훈계하려 드는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도 오세훈 급식투표는 앞장서서 거부하지 않았나. 경우가 다르다고? 다르긴 뭐가 다른가, 결국 같은 맥락이다. 현실 인식의 기준은 ‘오세훈’만 있는 게 아니다. 자신의 철학과 세계관에 비추어 찍을 후보가 없어서 투표를 거부하는 건 정치에 대한 냉소나 회피가 아니라 ‘적극적인 정치적 행동 가운데 하나'다. 그걸 무시하는 건 민주주의를 무시하는 것이며, 함부로 훈계하려 드는 건 무지한 태도다.
2011/10/24 19:16 2011/10/24 19:16
2011/10/24 12:31

고난과 폭력으로 점철된 재능교육 해고노동자들의 농성이 1500일이 되어간다. 재능교육 노동자들은 이른바 ‘특수고용’ 노동자들로서 사측과 정부에선 ‘노동자가 아니라 개인사업자’라 주장하는 경우다. 재능교육 싸움이 이토록 어려움을 겪는 이유는 무엇일까? 물론 재능자본과 그를 비호하는 이명박 정부 때문이다. 그러나 자본과 정부는 노동 문제에 절대 먼저 양보하거나 해결하려 들지 않는다는 점에서 결국 이 문제는 우리에게 달려 있다. 시민들이, 우리가 이 싸움에 연대할 때, 더 이상 남의 일로 생각하지 않고 내 일이자 내 아이의 미래와 직결된 일임을 분명히 할 때 재능자본과 이명박 정부를 압박할 수 있고 이길 수 있다. 방관은 자본과의 연대다. (100일 집중투쟁 선포식에서 유명자 지부장)
2011/10/24 12:31 2011/10/24 12:31
2011/10/20 14:11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걸렸을 때 비로소 사람의 인격이 드러나듯, 요즘처럼 제도정치의 광풍이 휘몰아칠 때 비로소 사람의 지성이 드러난다. 나경원 시장을 막기 위해 박원순을 찍는 거야 어쩔 수 없는 일이라 해도 박원순에 휘둘리거나 안달할 건 없다. 민주화 이후, 그 안달이 우리를 얼마나 우습게 만들었는지 우리를 얼마나 힘들게 했는지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2011/10/20 14:11 2011/10/20 14:11
2011/10/20 10:43
그제 강릉강연에서 한 교사가 조심스럽게 말을 붙여왔다. "고래동무 두구좌를 하고 있는데 세구좌로 늘이기는 좀 애매한 형편이라 1년 한정으로 한구좌를 더 하고싶은데 괜찮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는 연신 겸연쩍은 얼굴로 바쁠텐데 괜스레 일만 복잡하게 만드는 게 아닌지, 고래를 받아볼 아이들이 일년 지나 책이 안오면 어떨지, 걱정했다. 겸손하고 사려깊은 태도도 인상적이었지만,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것(한국남자스럽지 않게) 또한 인상적이었다. 강연하러 전국을 떠돌다보면 고래이모 삼촌들의 아기자기한 사연들을 만나곤 한다. 얼마 전 전남 곡성에 갔을 땐 어떤 분이 곡성역에 차를 갖고 나와있었다. 강연과 관련한 분인가 했더니 그곳 지역아동센터(공부방)장이었다. "몇해 전 고래가 저희 공부방에 처음 보내져왔을 때 고래에 전화를 했습니다. 무슨 서류와 자료를 보내야 하냐고요. 그랬더니 아무것도 필요없다고 하시더라구요. 그런 경험은 처음이었습니다. 아이들이 매달 고래를 얼마나 기다리는지 모릅니다. 고마운 마음에 나왔습니다." 나에겐 그 모든 사연들이 작은 이적이다. 고래동무는 오늘 날짜로 2936곳이다.

2011/10/20 10:43 2011/10/20 10:43
2011/10/20 10:00

야당 지도부에 있는 분들이 손학규, 김진표, 천정배, 정동영 이분들이 참여정부가 FTA 체결했을 때 다 찬성했어요. 자기들이 체결한 법안을 우리가 동의해주려고 국회에서 비준하는 것뿐이에요. 그런데 비준을 하려고 하니까 정작 체결한 당사자들이 나서서 반대를 하니 기가 막힌 노릇 아닙니까?”

쓰디쓴 진실을 홍준표 따위에게서 들어야 하다니.


2011/10/20 10:00 2011/10/20 10:00
2011/10/19 13:14
 

 김중미(48)는 1987년 빈민운동을 하기 위해 인천 동구 만석동에 들어갔다. 세상을 바꾸기 위해 노동 현장과 ‘민중의 삶’의 현장으로 투신했던 수많은 청년들처럼 말이다. 그로부터 25년, 대개의 청년들은 돌아와 중산층 시민으로 살아가거나 수구기득권 세력과 정권, 사회적 헤게모니를 두고 경쟁하는 또 하나의 기득권 세력이 되었다. 하지만 김중미는 여전히 그곳에 있다. 김중미씨는 누구보다 행복한 얼굴을 한 채 ‘어릴 적 꿈을 이루었다’고 말한다.(사진_기차길옆작은학교 유동훈)
김규항 = 1987년에 만석동에 들어왔으니 25년째다. 운동의 의미를 넘어 여기서 계속 살 만한 어떤 가치가 발생했다는 건데.
김중미 = 처음 들어올 생각을 할 때 빈민운동 쪽 선배가 그런 이야기를 했다. “네가 나중에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그 아이까지 빈민으로 만들 자신이 있으면 가라.” 당연히 “네”라고 했는데 그게 내내 화두가 되고 세월이 되었다.
김규항 = 1987년의 운동권은 곧 혁명이 다가올 것만 같은, 한창 긴박한 분위기였는데.
김중미 = 선배들이 거기서 그러고 있지 말고 서울로 올라오라고 여러 번 했는데 도저히 못 가겠더라. 1988년에 공부방을 시작했다. 굉장히 힘들었지만 어머니들이 믿어 주고 ‘쟤네들 뭐지’ 하며 신기해하면서 기대기도 하고 자신들의 삶을 나눠주고 하는 것들이 나를 붙들었다. 빈민운동을 하러 들어왔으니 처음엔 빨리 조직을 만들어야 하고 뭔가 가시화된 걸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도 있었다. 하지만 내가 제대로 된 운동권 출신이 아닌 건지 내가 위에 서서 주민을 조직하고 공부방을 열자마자 부모회를 만들고 하진 않았다. 아이들과 여름캠프 간다고 어머니들과 모이고 ‘성탄잔치 해요, 우리’ 하면서 모이고 하다 보니 어머니들도 덜 긴장했다. 그리고 같이 들어온 후배들도 가난하게 자란 과거가 있거나 뭔가 상처가 있는 친구들이 남게 되고, 별로 잘난 것도 특출난 것도 없는 사람들끼리 활동하다 보니 오래 가게 된 것 같다.
김규항 = 그 세월 동안 ‘절대빈곤’은 많이 가셨지만 가난의 의미, 가난에 대한 사람들의 태도는 많이 변했다. 옛날엔 가난한 축에 들면서도 이웃과 함께 건강하게 살아가는 사람들도 많았는데 이젠 가난한 사람은 스스로를 부끄럽게 여길 것을 강요당한다.
김중미 = 예전에는 가난한 동네가 굉장히 생명력이 있었다. 이 동네도 전과자들도 많고 마약하는 사람들까지 있어서 경찰차가 만날 상주할 정도였고 굶는 사람도 있었지만 사람들에게선 삶의 에너지가 있었다. 그런데 IMF를 기점으로 신자유주의가 본격화하면서 많이 변했다. 사람들의 삶의 방식은 도시빈민 지역도 그냥 중산층 시민들과 별로 다르지 않다. 소비하는 거다. 이 사회에서 내가 뒤처지지 않게 사는 방법은 남들이 가진 걸 갖는 것이니까. 그런데 이게 물 위에 켜놓은 양초처럼, 위는 화려하지만 밑은 뿌리도 없다. 다들 빚더미에 눌려 살아간다. 우리가 처음 왔을 때와는 전혀 다른 가난이다. 우리는 사라져버린 뿌리를 다시 심는 싸움을 하는 셈이다. 더 지루하고 더 지난한 과정일 수밖에 없고 그래서 더 가난한 사람들을 포기할 수 없다.
김규항 = 가난이라는 게 그 방향에 따라 의미가 전혀 다르지 않은가. 사회구조에 의한 가난은 부수어야 할 악이지만 ‘자발적 가난’이나 무소유 정신은 인간의 가장 품격 있는 태도인데, 이젠 돈 귀신이 들린 세상에서 어지간히 경제적으로 안정적인 사람들조차 가난에 대한 공포와 불안감에 쩔쩔매며 살아간다.
김중미 = 우리도 이제 오십을 바라보는 나이고 그런 상황 앞에서 막막할 때가 있다. 그렇지만 이걸 포기하면 내가 사람이기를 포기하는 것이고, 가난한 사람들이 사람답게 존재감을 갖고 사는 세상이 올 거라는 우리의 처음 희망도 버릴 수가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에겐 가난하기 때문에 지켜지는 게 있다. 함께할 수 있는 힘.
김규항 = 부자에겐 없는 힘이다. 공부방 아이들도 많은 변화가 보일 텐데.
김중미 = 가난한 아이들이 처한 상황이 부초다. 어떤 때는 정말 풀풀 날아다니는 것처럼 보인다. 예전에는 어머니들도 다 몸을 써서 살았던 분들이고 아이들도 그걸 보고 자랐기 때문에 가난에 대한 두려움도 없었고 오히려 공동체성이 살아있고 이랬는데 이젠 아이들의 성장이나 교육이 돈 있는 사람들과 없는 사람들로 딱 갈라져서 규정되어 버렸고 가난한 아이들의 뿌리를 앗아가 버렸다. 하지만 그런 무기력함 속에서도 아주 잠깐씩 반짝하는 순간들이 있다. 그 반짝이는 순간을 보는 것, 그 순간을 조금씩 늘려가는 것이 우리의 희망이다.
김규항 = 처음 공부방에서 지내던 아이들은 이제 서른, 마흔이 되었다. 당신들과 공부방이 없었다면 그들의 삶은 달랐을까.
김중미 = ‘우리가 뭘 했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서른다섯 된 친구가 ‘공부방 때문에 나쁜 짓을 할 수 없다’는 이야기는 하더라. 이젠 멀리 떠나 뭣도 없고 몸뚱이밖에 없는 놈들이 세상을 헤쳐 나가야 하는데, 결혼해서 애도 낳고 식구도 먹여 살려야 하는데, 멈칫하는 순간이 있다는 거다. 또 그 아내 되는 사람이 그러더라. 남편이 만석동에 오는 건 두 가지다. 뭔가 자랑할 게 있거나 좋아서 나누고 싶을 때, 아니면 너무 힘들 때다. ‘세상은 다 변하는데 여기만 안 변하는 것 같다’는 이야기를 가끔 한다.
김규항 = 이 인터뷰에 응하는 것도 전체 회의를 통해 결정했다고 들었는데 모든 문제들을 그렇게 결정하나.
김중미 = 매주 목요일 회의에서, 모이기 어려운 사람은 전화로라도 참여하여 결정한다. 사실 생각들이 비슷해서 큰 의견 차이는 없는 편이다. 이를테면 희망버스 문제라 할 때, 다들 타야 한다고 생각하는 거다. 의견이 부딪히는 거의 유일한 경우는 공연 준비할 때다.
김규항 = 창작 작업이니 당연하다. 매해 열리는 기찻길 옆 작은학교 공연은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지만 근래에는 인형극 공연으로 더 유명하다. 내용도 좋고 기량도 빼어난 편인데.
김중미 = 본격적으로 시작한 건 2000년 즈음인데, 처음에는 그냥 아이들하고 노는 거였다. 연극 같은 건 쑥스러워 하니까 인형을 내세워서 하게 되면 애들이 좀 더 자기 이야기를 수월하게 하고, 노래라든가 춤이나 다양한 걸 섞어서 정말 버라이어티하게 보여줄 수 있었다. 인형을 만들고 조작하고 무대에 올리기까지 여러 사람이 협동해야 하는 작업이라는 것도 우리와 맞았다. 춘천 인형극제에서 상도 받고 거기에서 전문 인형극단과 견주어도 주제나 기술이나 뒤지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되면서 아이들이 자부심도 갖게 되었다. 우리 눈에 ‘이 녀석은 딱 이게 맞아’ 이런 애들도 생기고 아이들이 자기들이 갖고 있는 가치를 나눌 수 있는 게 참 좋다.
김규항 = 아이들이 같이 창작하고 공연도 많이 하러 다니는데 삶의 치유효과 같은 게 있지 않을까.
김중미 = 새로운 작품을 시작할 때마다 아이들이 몸이 반응하고 일어나는 걸 본다. 연습하려면 힘들고 함께하면서 갈등도 있고 투덜거리지만 천천히 일어난다. 아이들이 그런 에너지를 일상 속에서 지속하는 건 쉽지 않지만 공연을 할 때마다 ‘이런 거였지’ 하고 몸을 일으켜서 멋지게 공연을 끝낸다. 그게 거듭되면서 아이들의 성장에 거름 역할을 하면 좋겠다.
김규항 = 한국 교육은 아이들이 대학입시를 통해 아이가 얼마짜리 인간인가를 평가하는 19년 동안의 과정이 되었다. 그러다보니 부자들이 고도로 발전한 사교육을 통해 자기 아이들의 성적을 비정상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려서 전처럼 가난한 집 아이가 열심히 공부한다고 따라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그런 경쟁에서 가난한 아이들은 절망적인 상황인데.
김중미 = 안타까운 건 가난한 아이들이 사회로 나가기 전에는 그걸 모른다는 거다. 어떻게 보면 현실을 직시하지 않으려는 심리도 있고. 요즘은 소비를 통해 자신의 가치를 표현하는 시절이니 아이들도 내가 공부를 못해도 우리집이 가난해도 노스페이스 점퍼 24만원짜리를 입고 있으면 다른 사람과 똑같아진다고 생각을 한다. 자기의 열등감이나 자괴감은 너무나 깊은 곳에 꾹꾹 눌려 있기 때문에 예전에는 공부 못하고 뭣도 없는 놈들이 깡이라도 있고 영차 하고 부딪쳐 보려는 거라도 있었는데 이젠 없다. 그걸 우리는 잔인하게 일깨워주는 입장이 되어야 한다.
김규항 = 워낙에 불공정한 현실이 압도적인 상황이다보니 ‘긍정의 힘’이니 뭐니 하는 식의 거짓 희망으로 사회구조에 의해 짓눌리고 배제되는 사람들을 최면에 빠뜨리는 이야기들도 많다. 현실을 일깨워주는 건 고통스러운 일이지만 현실을 살아가는 힘을 만들어주는 유일한 방법이다.
김중미 = 아이들이 그런 최면에 사로잡혀 살아가길 바라지 않는데 학교에서도 어디에서도 해주지 않는다. 그렇게 현실을 직면하게 하는 거랑, 어차피 가난한 부모에게 의지하지 않고 혼자 살아야 하니까 혼자 사는 방법을 이야기해주는 거랑. 나는 아이들이 열등감이나 자괴감을 자각하고 살면 참 좋겠다. 그러면 뭔가 오기라도 있을 텐데, 우리 사회는 그 오기마저 못 갖게 하고 그렇게 계속 마취시킨다.
김규항 = 사악한 사회다. 공부방 이모·삼촌들이 살아가는 모습이나 방식도 아이들에겐 참고가 될 텐데.
김중미 = 아이들이 우리 사는 걸 봐왔으니 우리 이야기도 한다. “이모·삼촌들이 ‘찌질하게’ 살지만 함께 살면 이렇게도 갈 수 있어.” 그러면 “난 ‘찌질하게’ 살고 싶지 않아요” 하고 야무지게 이야기하는 아이들도 있다. 후배 아이가 서울의 어느 교육 공간에 참여도 하고 그러는데 그쪽 선생들이 그러더란다. ‘여기 수업 말고도 훌륭한 분들 많이 들락거리시니까 아무 때나 와서 이야기도 하고 듣고 그래라.’ 자기는 속으로 그랬다고 하더라구요. ‘우리 공부방 이모·삼촌들이 이름도 없지만 누구보다 더 훌륭한 사람들인데.’ 어느 쪽이든 현실에 대한 그런 야무진 자각이 좋다.
김규항 = 아이들에게 어떤 의식을 심어주거나 하진 않지만 공부방과 이모·삼촌들이 간직한 가치들이 아이들에게 알게 모르게 영향을 주지 않는가.
김중미 = 아이들은 대학에 가거나 진로를 정할 때 참 희한하게도 특수교육과나 사회복지학과, 유아교육과 같은 데를 선택한다. 아이들이 장래희망 같은 게 얼핏 보기엔 요즘 여느 아이들과 다르지 않아 보이는데 좀 차분하게 이야기를 나누면 ‘사람에 관한 일을 하고 싶다’고 말한다.
김규항 = ‘사람에 관한 일’이라. 아이들로선 그런 일들이 옳다, 그르다 판단하기 이전에 멋져 보인다는 건데.
김중미 = 예를 들어서 1차 희망버스 때 우리 아이들이 갔는데 그때 영도조선소 담장을 넘지 않았나. 아이들에겐 그 상황이 너무 멋있었단다. 그런 체험이나 느낌들이 쌓이면서 막연하지만 ‘사람에 관한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다.
김규항 = 25년 전 수많은 청년들이 노동현장과 ‘민중의 현장’에 투신했다. 그리고 그 대부분은 돌아갔다. 평범하게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고 새로운 기득권 세력이 된 사람들이 있다. 남은 사람으로서 그들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는가.
김중미 = 어린이 책 관련해서나 지역에 강의 같은 데 가서 비슷한 또래들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청년 시절에 가졌던 가치를 소박하고 겸손하게 자신의 삶 속에서 구체적으로 구현하려는 사람들도 많다. 그런 사람들 보면 부끄럽다는 생각도 들고 희망도 느낀다. 그러나 그런 운동의 이력을 기반으로 정치를 하거나 진보교수나 진보지식인으로 행세하면서 ‘세상이 변했다’느니 ‘계급은 철 지난 이야기’라느니 강변하는 사람들을 보면 마음이 많이 불편하다. 정치를 하든 지식인 활동을 하든 자신의 기반이 된 사람들, 민중들의 손을 놓으면 스스로 끝 아닌가. 그런 사람들을 보면 화가 나는 걸 넘어 불쌍하기만 하다.
김규항 = 이명박과 수구세력은 더 이상 우리를 현혹할 수 없으니 그들이야말로 가난한 사람들의 적인지도 모른다. 모든 책임을 이명박이나 수구세력에게 돌리며 ‘진보개혁세력’이라 불리는 또 하나의 기득권 세력. 당신과 동료들은 그런 기득권을 갖지 않았기에 진정 자유로운 게 아닐까. 25년의 선택을 반추한다면.
김중미 = 힘들고 불편한 일도 많았고 여전히 그렇기도 하지만 참 좋았다. 어릴 때 가난하게 살았지만 집이 문학적인 분위기가 있었고 학교 가기 싫을 때는 아버지가 나 데리고 휙 소풍을 가기도 하고 이웃 사람들과 잘 지내고 주인집 아줌마랑 옆집 아줌마한테 재미있는 이야기도 듣고 하는 그런 게 너무나 좋았다. 어른이 되어서도 작은 집에서 가난한 사람들끼리 모여 살아가야지 꿈꾸곤 했다. 난 어릴 적 꿈을 이룬 셈이다.(경향신문)
2011/10/19 13:14 2011/10/19 13:14
2011/10/13 12:13
"혹시 고래도 무급인턴을 쓰는가"라는 질문을 받았다. 당연히 쓰지 않으며, 설사 어떤 '운영상의 이유'가 있다 해도 쓸 수 없다. 고래동료들이 가만 있지 않을테니. 이따금 일이 많을 때(이를테면, 구독 기간이 만료되는 독자들에게 한꺼번엔 구독연장 의사를 묻는 전화를 할 때) 아르바이트는 있는데 시급 기준으로 고래 동료들(모두 정규직)보다 높은 수준이다. 정리하면, 고래는 대표가 좌파라서 이전에 성원들의 '하한선'이 높아서 안으로든 밖으로든 '노동'과 관련한 어떤 흐트러진 일도 불가능한 곳이다. "우리한테 무급 인턴하면 경력이 되고 고마워들 한다"고 말하는 사람이 '희망'의 시장후보로 추앙받는 세상이지만, 아이들의 '희망'을 고민하는 우리로선 너무나 당연한 하한선.
2011/10/13 12:13 2011/10/13 12:13
2011/10/11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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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광주 걸리버소극장 공연. 단란한 분위기에서 다들 즐거웠다. 제대로 된 블루스 기타를 코 앞에서 들을 수 있었던 건 관객들에게 특별한 체험이었을 것이다. 나는, 무대 위에서 노래하는 일이 조금씩 편안해지고 있다. 새 곡을 써야 하는데 자꾸만 미루어진다. '마감'이 없으니.ㅎ

공연실황 한곡. '괜찮아'(노래 윤병주)

2011/10/11 18:10 2011/10/11 18:10
2011/10/10 21:12

‘이명박을 반대하는 사람이 이명박을 반대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이명박을 반대한다는 사실을 종일 반복해서 확인하는 일’은 사회에 어떤 것일까? 적어도 운동은 아닐 것이다. 운동이란 이미 그 운동의 내용에 동의하는 사람들끼리 운동의 내용을 반복해서 확인하는 카타르시스가 아니라,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을 설득하고 세를 넓혀 세상을 변화시키는 일이니 말이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반이명박 운동의 주요한 흐름은 그런 ‘집단적 카타르시스’의 면모를 보인 지 오래다. 반이명박 운동은 사회 변화를 위한 운동이 아니라 그 운동에 앞장선, 그 운동으로 ‘고객’을 확보하는 사람들을 위한 운동이 되고 있다.

그 운동에 앞장선 사람들은 입버릇처럼 말한다. 이명박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 그들은 자신이 얼마나 이명박 덕을 보고 사는지 말하지 않는다. 이명박 이후 그들이 정의롭고 진보적이고 인간적인 사람 행세하기가 얼마나 수월해졌는지 말하지 않는다. 노무현 정권 때만 해도 수구세력을 욕하는 것만으로 진보 행세를 하긴 어려웠다. 수구세력이 ‘좌빨’로 대우한 노무현 정권도 노동자 인민의 관점에서는 진보를 가장한 신자유주의 세력이라는 비판이 상존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진보개혁’세력이라는 비루한 조어로 자신을 표현하곤 했는데 이젠 당당하게 ‘진보세력’이라, 자신들의 재집권을 ‘진보집권’이라 말한다. 다 ‘각하’ 덕이다.

운동의 실천은 또 얼마나 수월해졌는가. 그 운동의 이름난 논객이나 평론가들의 실천이란 이명박 패거리들이 매일같이, 아니 하루에도 수십개씩 안정적으로 공급해주는 소재들 가운데 가장 자극적인 것 몇개를 골라 ‘이랬다네요’ ‘기가 막히네요’(진중권 류) ‘○○도 아니고 씨바’(김어준 류) 따위 짜증과 비아냥의 코멘트를 다는 게 전부다. 코흘리개도 할 수 있는 그 즉자적 코멘트는 이명박에게 짜증이 날 대로 난 많은 시민들에게 ‘의미있는 진보적 담론’으로 받아들여진다. 물론 그 의미는 사회적 의미가 아니라 짜증이 날 대로 난 사람들의 심정을 잘 집어낸다는 의미겠지만. 과연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그런 즉자적 짜증과 비아냥으로 충분히 파악하고 변화시킬 수 있을 만큼 간단한가?

우리는 이명박 정권은 지배체제의 전부가 아니라 추악함이 불거진 체제의 일부임을 안다. 물론 운동이 언제나 체제의 모든 부분과 고르게 싸워야 하는 건 아니다. 불거진 일부, 더 많은 대중들이 분노하고 교감할 수 있는 일부를 간판으로 삼는 건 체제와 싸우는 좋은 방법이다. 그러나 오늘 반이명박 운동은 그 일부를 체제의 전부로 삼는, 그 일부만 사라지면 세상이 변화할 것처럼 과장하는, 그 일부에 체제에 대한 모든 분노와 에너지를 쏟아 넣어 소모하는 ‘반이명박 매트릭스’의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이쯤 되면 그 운동은 세상을 변화시키는 운동이 아니라 체제를 수호하고 세상을 수호하는 운동이라 할 만하다.

‘이명박 반대’는 진보가 아니라 ‘인간의 기본’일 뿐이다. 이명박 패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 저급함은 두뇌와 심장이 작동하는 사람이라면 수용할 수 없는 종류의 것이다. 인간의 기본이 진보로 승격된 사회, 짜증과 비아냥이 진보적 담론이자 실천인 사회, 체제를 꿰뚫어보는 냉철한 지성도 체제 속의 삶에 대한 진지한 성찰도 사라져버린 사회는 퇴행할 수밖에 없다. 안철수 같은 ‘착한 자본가’가 사회의 유일한 희망으로 여겨지는 모습은 퇴행의 한 귀결이다.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우리는 끝없이 자신을 추락시켜 우리의 진보와 정의와 인간성의 하한선을 ‘동반하락’시키는 이명박이라는 물귀신 앞에서 냉철한 지성과 진지한 성찰을 되살려내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럴 때 비로소 짜증과 비아냥도 풍자와 골계가 된다. (한겨레)

2011/10/10 21:12 2011/10/10 21:12
2011/10/06 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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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이후 40여년을 한결같이 억압받고 고통받는 사람들과 함께 해온, 한국 사회운동의 산증인이자 가장 열정적인 현역 활동가인 문정현 신부. 어떤 사람의 판단을 무작정 따르는 건 위험한 일이다. 그러나 경험이나 식견에서 그리고 진정성 면에서 이분 정도면 경우가 다르다. 이분이 아니라고 하는 건 아닐 가능성이 높다. '길 위의 신부' 문정현이 우리에게 들려주는 '불편한 이야기들'.



김규항(이하 김)=부모님께서 늘 순교자 정신을 가르치셨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문정현(이하 문)=활동하다가 사제들 중에 구속이 되었을 때 그 부모님들이 사제의 동료들을 원망하고 감옥간 아들 원망하고 하는 걸 보면서 우리 부모님이 다르다는 걸 새삼 절감했어요. 그분들은 도리어 “흔들리지 말라고 대건 순교자처럼 의연하라”고 응원하시곤 했거든요.

김규항=어릴 적 일상에서 늘 그렇게 가르치셨는지요.

문정현=‘정직하고 부끄럽지 않게 살아야 한다’ ‘가난한 이웃을 생각해야 한다’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가르치셨죠. 먹을 게 넉넉지 않은 형편이었는데도 더 못한 이웃에 쌀을 갖다주라고  ‘솥뚜껑 열고 넣어놓고 오라’고 방법까지 알려주며 시키셨어요. 돌이켜보면 그런 가르침들이 저라는 사람의 형성에 결정적 역할을 했어요. 고등학교부터 신학교 생활을 했지만 제 공부의 절반은 부모님의 가르침입니다. 일흔이 넘었지만 그분들이 그리워요.

김규항=신부님의 부모님은 좀더 특별한 경우지만, 그래도 전에는 여느 부모들도 아이에게 인간의 기본 꼴을 만드는 교육은 했던 것 같아요. 공부 잘하라고 하면서도 공부가 다는 아니라고 가르치고 지나치게 욕심 부리면 죄받는다고 동무에게 양보할 줄 알아야 사람이라고 가르치고. 이젠 좌파 부모도 그렇게 가르치길 두려워합니다.

문정현=사람을 키우는 건지 서커스단의 동물로 훈련을 시키는 건지 알 수가 없어요. 아이들을 이렇게 키워서 인간성이 형성될 리 만무하죠. 우리 사회의 미래가 정말이지 너무나 걱정이에요. 그 생각만 하면 앞이 캄캄합니다.

김규항=신자유주의 이야기를 많이들 하지만 그 가장 큰 재앙은 교육의 목표가 ‘어떤 사람이 되는가’에서 ‘얼마짜리가 되는가’로 바뀌어버린 것이라 생각합니다. 예수는 ‘하느님과 마몬을 동시에 섬길 순 없다’고 말했는데요.

문정현=그런 변화는 우리 사제들에게까지도 스며들었어요. 70년대까지만 해도 사제들이 가난하게 지냈거든요. 민주화운동 한다고 전주에서 서울 오갈 때 여비가 없어서 애를 먹곤 했어요. 80년대 지나면서부터 윤택해지더라구요. 그리고 많은 게 변해버렸죠. 모두가 더 잘살기를 바라는 한 우리 사회엔 미래가 없어요. ‘더불어 가난한 사회’만이 살길입니다.

김규항=명동성당에서 농성하실 때 형편이 좋지 않아 보였습니다.

문정현=용산에서 나와 4대강 단식농성을 하러 들어갔었는데 명동성당이 민주화의 성지, 약자의 피신처라는 건 다 옛날이야기라는 걸 절감했어요. 교구청 관리국장이라는 사람이 ‘영업방해’라는 언사를 사용하질 않나. 명동성당이 아니라 명동주식회사구나 싶더군요. 추기경은 서품 5년 선배고 본당신부는 5년 후배인데 아무리 생각이 다르더라도 천막도 없이 노숙하며 단식농성하는 사람한테 이럴 순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농성 후에 군산에 돌아왔다가 다시 명동성당에 들어갔거든요. 그 즈음부터 서각(주 -)을 시작했죠. 오전에 기도하고 묵상하며 말씀을 새겼다가 오후에 그걸 팠어요. 그러던 어느 날 내 분노가 나에게 화살이 되어 돌아오더군요. ‘내가 저 사람들 원망할 수 있는가, 나는 저 사람들 욕할 만큼 제대로 사는가, 저 사람들 욕하기 앞서서 나부터 제대로 살아보이자’ 그 뒤론 마음이 평화로워졌습니다.

김규항=그런 성찰과 용서의 영성이 예수를 따르는 사람들을 여느 활동가들과 다르게 만들어주는 지점이지 싶습니다. 그리고 강정으로 오셨죠.

문정현=강정이 자꾸 떠올랐어요. 용산에 있을 때부터 요청이 있기도 했고 명동에서 나오게 되니 자연스럽게 오게 되더군요. 처음엔 혼자 왔는데 얼굴을 못 들겠어요. 미안하기도 하고 착잡하기도 하고. 하룻밤 자고 돌아가서 괴로워하다가 평화바람 식구 중 둘이 “같이 갑시다. 뭘 할 수 있을지 가서 봅시다.”하기에 따라 나선 게 와서 살게 되었죠. 강동균 마을회장 얼굴을 보며 살았어요. 저 얼굴이 마을 사람의 얼굴이라는 마음으로요. 마을 사람 이상도 이하도 아닌 마을 사람으로 살자는 마음으로 살고 있어요.

김규항=평화상단도 신부님이 만드신 거죠.

문정현=와서 보니까 돈이 너무 없어요. ‘평화상단’이라는 이름으로 재정 사업을 시작했죠. 젖갈도 팔고 한라봉이나 야생초 효소도 팔고.

김규항=강정 싸움은 특이한 데가 있습니다. 해군기지가 들어선다고 해서 평택 대추리처럼 집도 뺏기고 땅도 뺏기고 하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그런데도 마을 사람들이 결사적으로 저항하는 모습은 요즘 같은 시류에선 보기 드문 모습인데요.

문정현=왜 이 사람들이 이렇게 결사적으로 싸우는 걸까. 저는 구럼비에 와보고 금세 알 수 있었어요. 구럼비와 그 앞바다엔 어떤 거역할 수 없는 기운이 있어요.

김규항=저 역시 처음 구럼비에 왔을 때 그런 느낌이 들었습니다.

문정현=사람을 한없이 품어요. 말로 설명하긴 힘든 그러나 누구나 잠시 머물기만 해도 이건 해쳐선 안 된다는 걸 알 수 있어요.

김규항=그런 가치가 설득력을 갖기 힘든 세상입니다.

문정현=안타까운 일이죠.

김규항=그러나 그런 가치를 접고라도 강정 해군기지의 진행과정 자체가 문제가 많지 않습니까.

문정현=헤아릴 수 없는 탈법과 부정으로 점철되어 있어요. 그걸 하나라도 제대로 따지면 공사는 즉각 중단되는 게 옳아요. 기사를 보셨겠지만 9월6일엔 이곳에서 선사시대부터 조선 유물까지 주르륵 나왔잖아요. 문화재청에서 녹색 표시를 했는데 녹색은 그 어떤 공사나 개발도 못하는 곳이거든요. 헌법보다 위라고 합니다. 유네스코가 지정한 ‘생물권 보전지역’이기도 하죠.그걸 다 무시하고 구럼비를 파괴하고 있어요.

김규항=정말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궁금해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문정현=이기고 지고는 저에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김규항=예수는 십자가에 처형당했는데 ‘십자가의 승리’라고 말하는 건 그 실패가 수많은 사람들에게 용기와 사랑으로 살아남았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사회적 싸움에서 이겼다 졌다 하는 건 긴 역사의 맥락에서 보면 무망한 일인 경우도 많죠. 이겼지만 결국 진 싸움도 있고 졌지만 이긴 싸움도 있고.

문정현=물론 당장으로야 지는 것보다 이기면 좋겠지만 이렇게 압살당하다시피 하는 사람들을 보고 어떻게 지나갈 수 있습니까. 저에겐 이기고 지고보다 그게 더 중요해요. 나중 문제는 나중에 생각하면 되고 지금은 주민들을 도와 열심히 싸우는 게 제 일이라 생각합니다.

김규항=이 역시 시장주의 세상의 반영이겠지만 요즘은 사회운동도 ‘당장의 현실적 가능성’이 없어 보이는 건 아예 생각조차 안하려고 하는 경향이 많습니다. 70년대부터 활동해온 사회운동의 산 증인이자 현역으로서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문정현=오래 전 목숨 걸고 싸웠던 사람들 가운데 남은 사람이 거의 없어요. 남았다고 해도 제대로 남은 경우가 거의 없다고 할까요. 김대중 노무현 정권을 거치면서 더 그렇게 되어버렸죠. ‘현실적 가능성’이라는 게 늘 운동의 덫이죠.

김규항=현실은 오로지 비현실적인 상상력으로만 바뀌는 법이니 ‘현실적 가능성’에만 집착하는 건 이미 운동이 아닌 셈입니다.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과도 인연이 깊으신데요.

문정현=개인적으로는 좋아하는 분들이었지만 대통령으로선 전혀 준비가 안 된 사람들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IMF 때 김대중 씨가 국민들에게 허리띠 졸라매고 갑시다, 우리 힘으로 일어서봅시다 하길 기대했는데 그렇게 안하더라구요. 있는 놈들한테 문 활짝 열어줘 버리고 무릎을 꿇더라구요. 그게 신자유주의의 시작이고 결국 이런 세상이 되어버렸죠. 노무현 씨는 허망해서 달리 말할 게 없어요. 이명박은 그 시절을 토대로 집권하고 살고 있죠.

김규항=두 분에게 투표는 하셨습니까.

문정현=하지 않았습니다. ‘비판적 지지’는 김영삼 때부터 나온 이야기인데, 좀 더 현실적인 선택이라고들 했는데 그게 우리에게 얼마나 큰 상처가 되고 뒷걸음질인지 저는 충분히 깨달았어요. 비판적 지지는 한번으로 족했어요.

김규항=지금도 이명박 정권 교체를 위한 비판적 지지 바람이 거셉니다. 20여년 째죠. 한번으로 족했다고 하셨지만 그렇게라도 희망의 끈을 찾아보려는 대중을 탓하긴 어렵지 않습니까.

문정현=대중들이 당장 눈앞의 상황에 휩쓸리고 그걸 좀더 현실적인 선택이라 여기는 건 어쩔 수 없다고 해도 저 자신은 래디컬의 하한선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제 경험으로는 대중들에게 그런 바람에 부추기고 앞장서는 사람들은 언제나 ‘기득권’ 때문에 그런 행동을 하는 겁니다. 저 역시 두 정권 때 이런저런 유혹이 많았어요.

김규항=기득권이 단지 돈이나 직접적인 이권만이 아니라 문화권력 차원까지 포함한다고 할 때 두 정권을 거치면서 옛 민주화 운동과 관련한 사업들도 관변이 되고 체제 내의 일이 되었습니다. 신부님께서 그런 데 관여했다면 하고많은 민주인사들처럼 되었을까요.

문정현=그걸로 저는 끝났을 겁니다. 제가 래디컬의 하한선을 지키는 이유는 하나예요. 예수 때문입니다. 예수가 가난한 이웃, 고통 받는 이웃들과 함께 하라고 가르쳤고 내가 동의했는데 민주화 운동이든 반이명박 운동이든 무슨 이름을 달았건 이웃과 함께하는 삶을 거스른다면 저와 구분지을 수밖에 없는 거죠.

김규항=천상 ‘길 위의 신부’일 수밖에 없다는 말씀이군요.(웃음) 참 잘 어울리는 이름인데 누가 지었는가요.

문정현=2002년엔가 MBC에서 저를 한달간 따라다니며 프로그램을 찍었거든요. 그걸 제목을 붙이는데 작가도 아니고 도와주는 젊은 친구가 편집 화면을 보다가 “길 위의 신부구만” 했대요. 저에게도 그 이름이 딱 마음에 박히더라고요. 그 후 제 스스로 그 이름을 쓰기 시작했어요. 출연료라고 받은 돈으로 프로그램 제작진들 몽땅 밥을 샀죠.(웃음)

김규항=물론 애정어린 농담이겠지만, 신부님의 삶이나 행동은 성격이나 기질의 당연한 귀결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더군요.

문정현=혈액형도 O형이고 체질도 태양이니 그럴지도 몰라요.(웃음) 어디서 무슨 사건이 벌어지면 가만있질 못해요. 현장에 안가면 못살겠는 거예요. 같이 참여해야 하고 같이 얻어터져야 하고. 그러나 그 기반은 역시 신앙이죠. 10·26 때 잡혀 들어가서 언제 끌려가 죽을지 모르는 판에 그런 기도가 나오더군요. ‘지금 죽어도 좋으나 비굴하지 않게 죽게 해주십시오.’ 예수의 삶의 흔적, 예수와의 인격적인 만남의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김규항=제 경우에 진보운동과 관련하여 예수의 삶에서 가장 큰 공부가 된 것 중에 하나가 바리새인들과의 갈등과 반목이었습니다. 지금의 수구 보수세력에 해당하는 사두개나 지배계급과의 갈등이야 당시 의식있는 사람에겐 당연한 것이지만 바리새인은 이스라엘 사회의 변화를 위해 현실적인 노력을 했던, 지금으로 말하면 개혁세력이나 시민운동 세력에 해당하는 사람들이지 않습니까.

문정현=바리새인? 우리 주변에 쌓이고 쌓였어요. 우리를 아예 둘러싸고 있다고 하는 게 정확할 겁니다. 심지어 제가 그토록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교황청에서조차 깊은 우려와 관심을 동시에 갖는 정의구현사제단에도 그런 경향들이 존재해요. 많은 경우에 우리 편이기도 하지만 래디컬의 하한선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 그들이 바리새인들이고 우리의 싸움에 초를 치는 사람들이죠. 선명해야 합니다. 선명성이라는 건 복잡할 게 하나도 없어요. 고통받고 내몰리는 사람들의 이웃이 되는 거죠. 누가 내 이웃인가만 분명히 하면 됩니다.

김규항=신부님이 사회운동에 참여하기 시작한 70년대 초반은 군사독재와 싸웠지만 이젠 자본독재의 세상이 되었습니다.

문정현=그걸 잊으면 정의를 버리고 이웃을 외면하게 됩니다.

김규항=신부님은 평화운동가입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엔 평화에 대한 오해나 왜곡된 의식이 많은 것 같습니다. 평화라고 하면 무작정 조용하고 온화하기만 한 어떤 것으로 말이죠. 평화란 흐트러지고 깨진 세상의 본디 조화를 회복하는 노력이니 때론 소란스러울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문정현=이라크 파병에 즈음해서 전국 유랑을 두 번 했는데 저는 그때 평화가 뭔지 몸으로 정리할 수 있었어요. 2004년 5월에 평택 평화대축제 연설에서 그걸 말했었죠. “공장에서 쫓겨난 노동자가 원직 복직하는 것이 평화, 두꺼비 맹꽁이 도롱뇽이 서식처를 잃지 않는 것이 평화, 장애인도 가고 싶은 곳을 갈 수 있는 것이 평화, 이 땅을 일궈온 농민들이 더 이상 빼앗기지 않는 것이 평화, 성매매 성폭력 성차별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세상이 평화, 군대와 전쟁이 없는 세상 신나게 노래 부르는 것이 평화, 배고픔이 없는 세상 서러움이 없는 세상 쫓겨나지 않는 세상 군림하지 않는 세상이 평화입니다.”

김규항=말씀 다시한번 되새깁니다. 강정에서 평화는 무엇입니까.

문정현=있는 그대로 놔두는 게 평화입니다. 그러나 저절로 오는 평화는 없습니다.(경향신문)

2011/10/06 18:57 2011/10/06 18:57
2011/10/03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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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 다락방에서 내일 광주공연 연습.
쉬는 시간.
윤병주의 60년대산 스트라토캐스터와 내 까혼, 아이팟 등등..
2011/10/03 19:36 2011/10/03 19:36
2011/10/01 17:13
아이는 지금 행복해야 합니다.
나중에 행복하기 위해 지금 행복하지 않은 아이는 나중에도 행복하지 않습니다.
행복할 줄 모르기 때문입니다.
행복도 공부입니다.

(부모강연에서 하고, 또 하는 말)
2011/10/01 17:13 2011/10/01 17: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