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9'에 해당되는 글 20건

  1. 2010/09/30 역사의식
  2. 2010/09/29 ‘착한 소비’와 진보정치
  3. 2010/09/26 레나타의 음악들
  4. 2010/09/17 땅 부자
  5. 2010/09/16 노무현 정신
  6. 2010/09/15 이글턴 기사
  7. 2010/09/14 산문집 1, 2, 3
  8. 2010/09/14 디자이너 구합니다
  9. 2010/09/14 <야성의 사랑학> 추천사
  10. 2010/09/13 논쟁을 끝내며
  11. 2010/09/12 레디앙 인터뷰
  12. 2010/09/12 지성인
  13. 2010/09/12 세번째 산문집
  14. 2010/09/10 마음
  15. 2010/09/10 국민의 명령?
  16. 2010/09/09 G20의 실체, 15문 15답
  17. 2010/09/08 피디수첩의 지정학
  18. 2010/09/07 박수를
  19. 2010/09/04 격노
  20. 2010/09/01 트위터가 세상을 바꾼다고? 2
2010/09/30 14:18
내가 늘 똑같은 소리만 반복한다고(신자유주의 반대!) 툴툴 거리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은 “일제반대!”는 30년 넘게 반복했으며 “독재반대!”도 30년 넘게 반복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 같다. 일제도 독재도 물러난 지 오래인 오늘 개나 소나 그 시절에 “일제반대!” “독재반대!” 외쳤던 것처럼 말하지만, “일제반대!” “독재반대!”를 내내 외친 사람들은 극소수였으며 대부분의 시간을 ‘비현실적’이며 ‘근본주의적’이라는 말을 들어야 했다. 역사를 보면 언제나 그렇다. 우리는 ‘현실적인 변화’와 ‘실현가능한 변화’를 말하기 전에, 일제시대와 극우독재 시절에 ‘현실적인 변화’와 ‘실현가능한 변화’를 말하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이었는지, 그런 사람들이 일제와 독재가 물러나는데 어떤 기여를 했는지 반추해볼 필요가 있다. ‘역사의식’ 없이면 '현실'도 없다.

2010/09/30 14:18 2010/09/30 14:18
2010/09/29 15:28

“소비를 이념으로 하는가”라는 정용진 씨의 방자한 말에 대해 몇몇 지식인들의 비판과 논평이 있었다. 그 가운데 조국 씨가 한겨레에 쓴 “국가와 시민이 정용진에게 답하라”라는 글이 인상적이다. 한국의 중앙일간지에서 ‘국가와 시민이 자본을 견제해야 한다’는 내용의 글을 보는 건 얼마나 귀한 일인가? 그러나 아쉽게도 글은 정용진에 대한 ‘정서적 응징’으로 그쳐버린 느낌이다. 우선, 조국 씨는 국가의 역할을 말하면서 시장 자유를 무작정 옹호하는 이명박 정권을 비판한다. 그러나 지금 그 정권과 대립하는 민주당이나 참여당 역시 시장자유 옹호자들이라는 더 중요한 사실은 생략한다.

자본주의 사회엔 두 가지 자유가 있다. 개인의 자유와 시장의 자유. 전자는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많을수록 좋다. 그러나 후자는 많을수록 정직하게 일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에겐 지옥이 되기 십상이다. 우리는 개인의 자유를 통해 대통령을 ‘쥐’라고 골려도 잡혀죽지 않게 되었지만, 무한정한 시장의 자유를 통해 자본의 천국(속칭 ‘삼성공화국’)에서 살게 되었다. ‘신자유주의’라 부르는, 무한정한 시장의 자유를 본격화하고 구조화한 건 김대중 정권과 노무현 정권이다. 이 사실을 분명히 하지 않고 ‘자본에 대한 국가의 견제’를 말하는 건 기만이 된다.

조국 씨는 또한 시민의 역할을 말하면서, ‘가격과 편리함을 유일 잣대로 삼지 않는 착한 소비’를 촉구한다. 좋은 말이고 얼마간의 실효성도 있겠지만 먼저 세 정권 내내 이어지는 신자유주의 광풍 속에 사람들이 어떤 지경에 이르렀는지에 대해 살펴야 한다. 진보적인 사람들조차도 아이를 사람이 아니라 상품으로 키우는 재난영화적 현실에서 ‘착한 소비 캠페인’은 과연 얼마나 현실성이 있을까? 노동자의 절반을 넘는 생존 자체가 숙제인 비정규노동자들이 ‘착한 소비’를 촉구받는 건 공정한 일일까?

시민에게 촉구해야 할 것은 ‘착한 소비’가 아니라 ‘시장 자유에 대한 경계심’이다. 개인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촛불을 들고 이명박과 싸우듯, 나는 물론 내 아이들이 영원히 자본의 노예로 살아가지 않게 하려면 민주당이나 참여당 같은 또 다른 시장자유 옹호자들과 싸워야 한다는 사실을 촉구하는 것이다. 정치가 우리 삶에 눈곱만큼이라도 소용이 닿으려면 이런저런 시장자유 옹호자들에 대한 헛된 기대를 접고 진보정치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사실을 강력하게 촉구하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로선 진보정치가 세력이 미미하지 않으냐고? 그게 바로 자본의 체제가 우리를 쳇바퀴 속의 다람쥐로 만들기 위해 심어준 어리석은 생각이다. 정용진의 방자한 말에 반감을 느끼면서 눈은 여전히 유시민의 ‘노무현 정신 계승’과 문성근의 ‘국민의 명령’에 가있게 만드는 어리석음 말이다. 진보정치가 세력이 미미해서 지지할 가치가 적은가, 마땅히 지지할 사람들부터 지지하지 않기 때문에 세력이 미미한가? 진보정치의 세력과 가치는 남이 가져다주는 게 아니라 바로 내가, 주권을 가진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이 만들어가는 것이다.

물론 제아무리 시민이 각성한다 해도, 지금처럼 진보정당들이 만날 이명박 반대만 외치며 ‘이명박 프레임’ 안에서 맴돈다면 다 소용없는 일일 게다. 민노당이나 진보신당은 이제라도 정신 줄 바짝 잡고 자신들이 민주당이나 참여당과 뭐가 다른지, 시장 자유에 맞서는 진보정치가 뭔지 시민들에게 들려주어야 할 것이다. ‘이마트 피자를 먹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는 착한 사람들에게, 세상엔 프랑스처럼 대형마트는 아예 시내에 못 들어오게 하는 정치도 존재한다는 사실부터 차근차근. (한겨레)

2010/09/29 15:28 2010/09/29 15:28
2010/09/26 11:06

레프트 이펙트(가명)의 기타리스트 최정우 씨가 하는 3인조 밴드 레나타수어사이드 홈피. Dossier 메뉴에서 곡들을 다운로드할 수 있다. 10여년 된 밴드인데 지금 첫 앨범을 녹음 중이다. 그렇게 활동하면서도 밴드가 유지된다는 건 그들의 인간적, 음악적 동지애를 드러낸다. 레프트 이펙트는 10월말 혹은 11월초 고래의밤에서 첫 선을 보일 계획. 실은 아직 연습을 한번도 못했고 나는 10월 내내 지방 강연이 많고 최정우는 11월 5일 유럽공연여행 출발이라 불안하긴 한데 두 사람 나름의 '관록'으로 채워지리라 믿는다.ㅎ 대중음악사, 혹은 인디음악사의 명곡들을 리메이크하는 공연도 재미있을 듯 싶은데 하여튼 본격적인 고민에 들어가야 할 시점.

2010/09/26 11:06 2010/09/26 11:06
2010/09/17 15:49

“김단, 재미있는 이야기 하나 해줄까?”
“뭔데.”
“아빠가 파주의 땅 부자라는 소문이 있대.”
“땅 부자? 아빤 월세 사는데?”
“땅 투기하려고 월세 산대.”
“누가 그런 소리를 하는데?”
“작년에 규석이 삼촌(최규석)한테 첨 듣고 웃고 넘겼는데 알고 보니 꽤 퍼진 이야기래. 사람들이 현선 이모(고래 편집팀)한테 물어보기도 하고 그런대.”
“아빠가 땅 부자면 나도 땅 부자겠네.”
“그러게. 그런데 아빠가 단이보다 나은 게 없네. 땅도 둘 다 없고. 집도 둘 다 없고. 통장잔고도 둘 다 없고.”
“정말 그러네.”
“그래도 아빠 멀쩡하게 잘 살지?”
“응. 아빠 나이 다른 아저씨들에 비하면 되게 편안해 보여.”
“그래. 너도 걱정 할 거 하나도 없다.”
“응, 아빠.”

김단은 얼마 전 학교를 그만두었다.

2010/09/17 15:49 2010/09/17 15:49
2010/09/16 11:55
(그제밤 트위터에 @lukeinssaipan 님이 올린 글. 함께 곱씹어 볼 만한 내용이라 허락을 구해 싣는다. 지난번 고교생의 편지도 그렇고 이런 게 바로 '시민 정신'이자 '최소한의 상식'이 아닐까. 유시민이나 문성근 같은 분들이 이 견해에 어떤 생각을 하는지 궁금하다.)

오늘 낮에 KTX 해고 여승무원들이 박혜진이 만난 사람이라는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했습니다. 그때 생각난 이야기들을 지금부터 좀 해보겠습니다. 이 이야기는 제 트윗 친구분들께 불편한 이야기가 될수도 있고 또 얼씨구나 하실 분도 있겠지만 판단은 철저히 개인에게 맡기겠습니다. 저는 어떤 리플이나 알티도 하지 않겠습니다. 제 글도 알티는 하지 않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강요는 아닙니다.
오늘 KTX 여승무원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가장 먼저 생각난 사람이 고 노무현 대통령이었습니다. 여기서 밝히고 가지만 저는 거의 노빠에 가까운 사람입니다. 다만 KTX 해고는 노무현 정부에서 발생한 일이고 또 끝까지 해결해 주지 못한 일입니다. 오늘 그 승무원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차안에서 한없이 눈물을 삼켰습니다. 20대 중반의 아름다운 그들이 이제는 대부분 30대가 되었고 그 과정에서 그들은 일반인이 상상할 수 없는 고통을 겪었습니다. 그 연약한 몸으로 고공농성을 하기도 했지요. 여승무원들의 이야기가 가슴 아프기도 하지만 도대체 왜 노무현 정부는 그 문제를 돌아봐 주지 않았을까요? 노무현 정부는 왜 그렇게 기업을 편을 들어 주었을까요? 저는 그것이 비극의 시작과 끝이라고 생각합니다. 길을 잘못 들었던 거죠.
여기에서 저는 한가지 다른 생각이 들더군요. 그럼 지금 노무현 정신을 외치는 사람들이 말하는 노무현의 가치는 무엇일까요? 저는 노무현 대통령의 인간 됨됨이는 조금도 의심하지 않습니다. 그는 참으로 인간적인 사람이었지만 그의 정책들은 그 반대가 많았죠. 지금 민주당 일부 그리고 국참당의 많은 사람들이 노무현의 가치 실현을 앞세우고 있습니다. 이는 또다른 KTX 여승무원을 낳을 수 있는 일이라고 하면 너무 멀리 아니면 과장하는 걸까요? 우리는 노무현의 가치를 말하기 전에 다시 재정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KTX 문제만이 아닙니다. 지난 정부 내내 특히 대기업의 사악함을 막지 못했기에 일은 걷잡을 수 없이 엉망이 되버린 것입니다. 지금 수많은 야당 의원들이 핀란드나 독일을 예를 들죠? 노무현 정부는 그곳과는 아주 멉니다. 훨씬 멀죠.
제 글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저는 정치적인 사람도 공부를 많이 한 사람도 아닙니다. 다만 항상 말씀드렸다시피 노무현 대통령을 보내드려야 한다는 겁니다. 다시 정리하고 시작하지 않으면 다음 정부도 뻔합니다. 안봐도 뻔하죠. 서민은 더욱 나락으로 떨어지고 빈부의 격차는 더욱 커질 수 밖에 없습니다. 저는 신자유주의가 뭔지 모르지만 그게 부자와 빈자의 격차가 더욱 커지는 것이라면 지금 정부나 이전 정부나 크게 차이가 없다는 겁니다. 그래도 이명박은 더 나쁜 놈이야 라는 말씀을 하시면 이야기는 다시 다른곳으로 갑니다. 이는 이명박 정부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이야기입니다. 전혀 다른 방향이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근본적인 틀을 다시 재구성하지 않으면 대부분의 서민들의 삶은 결국 나락으로 떨어질 수 밖에 없는거죠.
이야기가 이래저래 왔다갔다 하지만 분명한 건 노무현의 가치라고 하는 건 지금 내세울게 없다는 겁니다. 그렇게 노무현 대통령을 아꼈다면 그가 살아있을 때 그에게 절대적인 힘을 실어주었어야 합니다. 하지만 안했죠? 대부분 그가 너무 말을 막한다고 생각했죠? 그가 세상을 떠났을 때 그 수많은 인파가 그의 가치가 뭔지를 알고 그의 가치가 서민을 살리는 것이라는 확신이 있다면 어떤 일이든 가능한거죠. 하지만 우리는 결국 좀 더 잘 살면 좋겠다는 욕심을 선택했고 그 결과가 지금 이렇게 된거죠.
결론은 저는 지금 노무현 대통령을 말하는 정치인은 그 누구도 믿지 않습니다. 그들은 결국 노무현 대통령을 팔아먹는 사람들일 뿐입니다. 제 생각은 그렇습니다. 말도 참 더럽게 못하네 하시겠지만 제가 고 노대통령의 측근이라 칭하는 이들을 비난하는 이유죠.
저는 지금의 이 정부는 절대로 싸움이나 투쟁의 대상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상한 소리 같지만 사실입니다. 이 정부는 싸움이나 투쟁을 할만한 꺼리가 없습니다. 그러니 아예 쳐다볼 이유가 없는 거지요. 진짜 싸움은 그냥 잘사는게 아니라 진짜 다같이 잘 살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겁니다. 저야 뭐 내 한몸 벌어먹고 사는 사람이지만 우리가 다른 누군가를 함께 데리고 가야 한다는게 제 생각입니다. 단적인 예로 비정규직 문제에 관해 모두가 한목소리로 해결을 요그해야 하는거죠. 나와 내 자식만 정규직이고 내 옆에 비정규직이 일하는데 우리는 또는 저도 함께 싸울 생각을 안(못)하는거죠. 그러면 결국은 우리도 또다른 이명박일 뿐인거죠. 저도 막상 부딪히면 또다른 이명박이 안되리라는 보장은 없지만 마음은 언제나 다잡습니다.
제 글을 자주 보시는 분들은 저눔의 시키가 오늘 미쳤나 그러시겠군요. 맨날 쓰잘데 없는 농담이나 하고 바이크 이야기나 하던 놈이 가만히 있지 뭔일이래 하실지도 모르겠네요. 결론은 저는 싸움의 대상을 바로 보자는 겁니다. 안그러면 다음은 박그네입니다. 아닐거라고요? 본인 입으로 뭔 회사를 세웠다는 사람이 대통령이 됐습니다. 지금 우리가 타임라인에서 죽으라 욕하는 그를 우리가 뽑았단 말이죠. 다음에 또 그런 실수 안하리란 보장이 있습니까? 민주당이든 국참당이든 어디든 정신 차리라는 겁니다.
에효~ 말글주변이 없어서 맺음을 못하겠네요. 언젠가 다시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이 글에 대해서는 답변을 드리지 않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저는 딸 둘 데리고 즐거이 사는데 만족합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이 아프면 결국 나도 아프게 되어 있습니다.

2010/09/16 11:55 2010/09/16 11:55
2010/09/15 10:37
오래전 부르디외 선생도 그렇고, 한국에서 ‘세계적인 좌파 지식인’을 초청하는 경우는 대부분 그가 ''좌파'여서도 '지식인'이라서도 아닌 ‘세계적’이어서이기 때문에 방한 기간의 활동과 동선 심지어 콘텐츠들마저 철저히 박제화되는 경향이 있다. 말하자면, 기지촌 클럽에서 본토 뮤지션을 초청했을 때의 상황인 것이다. 해서 난 아예 이글턴 선생이 온다는 이야기를 듣고도 초청자가 누구인지만 확인하곤 안 온 걸로 치고 있었다. 그래도 약간의 인연이 있는 지라 무슨 소리를 했는지 조금은 궁금했는데, 오늘 이 기사를 본 걸로 충분. 인터뷰를 못하고 쓴 인터뷰 기사라..

2010/09/15 10:37 2010/09/15 10:37
2010/09/14 18:11
이번 책이 'B급좌파 세번째 이야기'면 두번째는 뭐냐, 묻는 이들을 위한 요약.

김규항 산문집 1  B급좌파(2001)
김규항 산문집 2  나는 왜 불온한가(2005)
김규항 산문집 3  B급좌파, 세번째 이야기(2010)

2010/09/14 18:11 2010/09/14 18:11
2010/09/14 17:24

고래가그랬어 디자이너를 구합니다.

자세한 안내 보기.

2010/09/14 17:24 2010/09/14 17:24
2010/09/14 15:59
목수정의 책 <야성의 사랑학>에 쓴 추천사.

"왜 우리는 절대빈곤이 만연하던 시절보다 오히려 더 행복하지 않을까? 왜 우리는 어디에서도 살아있음의 기쁨과 환희를 찾을 수 없을까? 왜 우리는 최고의 자살률과 최저의 출산율을 자랑하는 지상의 지옥을 만들어 놓고는 그 지옥의 심연으로 들어가는 일을 ‘생존 경쟁’이라 일컬을까? 목수정은 차근차근 들려준다. 우리의 삶이 얼마나 황폐한지, 그런 황폐가 어디에서 왔는지, 그리고 그 황폐를 벗어나 살아있음의 기쁨과 환희를 되찾으려면 무얼 해야 하는지에 대해 말이다. 행여 내가 불행해질세라 전전긍긍하는 언니의 눈빛과 직관력 넘치는 좌파적 지성이 교직된 참 쓸모 있는 책."

2010/09/14 15:59 2010/09/14 15:59
2010/09/13 13:54
진중권 씨와의 논쟁을 끝낸다. 싸움이 아니라 논쟁이 되길 기대했고, 내 나름으로는 최선을 다했으나 결국 그렇게 되지 못했다. 어제 진중권 씨 트위터에서의 상황으로 보건대, 더 한다고 해서 상황이 달라질 가능성은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적어도 편견과 아집이 아닌 최소한의 지적 개방성을 가진 분들에겐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건지 충분히 전달된 것 같다. 이 논쟁에 많은 시간을 사용한 건 아니지만,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좀 더 생산적인 일에 집중하는 게 좋겠다. 그간 경청해준 모든 분들에게 고맙다는 인사드린다. :)

2010/09/13 13:54 2010/09/13 13:54
2010/09/12 23:58

레디앙 인터뷰.

제목이 좀 부담스럽긴 한데, 전반적으로 워딩은 정확한 편이다.
진중권과 논쟁에 관심이 있는 분은 꼼꼼이 읽어주시길 바란다.

그리고, 진중권 씨 반응에 대한 편집장 코멘트

2010/09/12 23:58 2010/09/12 23:58
2010/09/12 23:56

@gyuhang "아이를 지성인으로 키운다는 건 슬퍼할 일에 슬퍼할 줄 알고 분노할 일에 분노할 줄 알며 양심을 거스르는 행동을 했을 때 잠 못 이루는 능력을 길러주는 일입니다. 지식은 그 다음입니다."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 싶어 하는 열정과 좋은 부모가 되는 일은 하나입니다.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 싶어 하는 열정이 없는 사람이 좋은 부모가 될 가능성은 없습니다." (강연에서)

2010/09/12 23:56 2010/09/12 23:56
2010/09/12 14:31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세 번째 산문집 B급좌파, 세번째 이야기가  나왔다.
지난 5년 동안의 글을 모은.. 예수전 1기인 원범이가 오랫동안 공들여 편집한..

머리말 보기.

2010/09/12 14:31 2010/09/12 14:31
2010/09/10 16:08
담배를 끊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냥 끊는 것'이듯,
우리 마음도 그렇게 비울 수 있다는 걸 정직하게 인정하는 게 좋다.

2010/09/10 16:08 2010/09/10 16:08
2010/09/10 15:24
@gyuhang "국민의 명령"이라는 표현을 하는 사람들을 언팔 했음에도, 리트윗되어 타임라인에 종종 뜬다. 대체 그들은 누구로부터 그런 표현을 쓰도록 허락받은 걸까? 지성까진 아니더라도 자의식은 있어야 성인이다. 반세기동안 수많은 사람들의 피와 희생으로 이루어진 민주화 운동의 성과를 독식하여 정권을 두 번이나 잡았지만 결국 이명박을 불러들인 사람들이 대체 무슨 염치로 '국민의 명령' 운운 하는가. 정히 국민의 명령 운운 하고 싶다면 '국민에 대한 사과'부터 하는 게 도리 아닌가. 자의식이 있다면, 이명박에 대한 국민들의 반감과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극적 죽음에 대한 국민들의 슬픔에 편승하는 것 말고, 당신들이 대체 '국민의 명령'을 말할 어떤 일을 했는지를 단 한번이라도 되새겨봐야 하는 게 아닌가. 당신들은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 편에 서는 정부일 거라는 국민의 기대를 철저히 배신하고 '현대공화국'을 '삼성공화국'을 만들었다. 양극화도 비정규도 농업포기도 FTA도 부동산투기도 살인적인 경쟁교육도 다 당신들 작품 아닌가. 지난 10여년 동안 당신들이 한 '진보적 활동'은 딱 하나다. 조중동과 불화했다는 것. 그런데 그게 국민들에게 당신들에게서 배신당한 사람들의 삶에 대체 뭘 가져다주었는가? 그런 당신들이 대체 무슨 자격으로 지금와서 우리에게 “그럼, 한라나당이 재집권해도 좋단 말인가?” 따위 공갈 협박을 하는 건가? 거듭 말한다. ‘국민의 명령’을 말하기 전에, ‘국민에 대한 사과’부터 해라. 민주화 운동의 성과를 독식하여 결국 이명박을 불러들인 일에 대해,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 편에 서는 정부일 거라는 국민의 기대를 철저히 배신하고 부자들의 지상천국을 만든 일에 대해.

2010/09/10 15:24 2010/09/10 15:24
2010/09/09 13:52
11월 11일 서울에서 열리는 G20 정상회의에 대해 사회진보연대의 문답식 해설서가 나왔다. 다운로드해서 보시고 또 널리 퍼트려주시길. 반이명박 운동도 지구적 차원에서 자본주의 전략과 공격의 맥락을 읽지 못하면 부처님 손바닥 위의 손오공 꼴일 뿐이니. G20 홈피에 아이들을 홀리는 콘텐츠가 잔뜩 있다는 걸 지금 발견했다. 악귀같은 놈들.. 이건 고래가그랬어에서 즉시 대응 작업에 들어가기로. 이모삼촌들의 관심과 도움을 요청한다.

<G20의 실체, 15문 15답> 다운로드 하기

2010/09/09 13:52 2010/09/09 13:52
2010/09/08 16:33

피디수첩은 대개의 사람들에게 공중파에서 가장 진보적인 프로그램일 것이다. 얼마 전 피디수첩 ‘4대강편’을 새로 부임한 김재철 씨가 ‘방송을 못하게 한다’고 해서 소란이 있었다. 분노한 시민들이 즉시 엠비씨 앞에 모여 시위를 벌였고 결국 일주일 후 많은 사람들의 관심 속에 방송이 되었다. 그러나 정작 그 반응은 ‘알맹이가 빠졌다’는 것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피디수첩과 김재철 씨가 모종의 타협을 했다는 음모론을 내놓기도 했다.

우리는 이 사건을 피디수첩의 피디들과 엠비씨 사장, 혹은 정권과 엠비씨의 관계를 넘어 전체 미디어의 지형에서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4대강 사업의 알맹이는 과연 뭘까? 피디수첩이 말하듯 수심이 어떻고 뭐가 어떻고 하는 ‘거짓말’인가? 거짓말만 아니면 4대강 사업은 괜찮은 건가? ‘4대강 사업의 알맹이’는 무엇보다 이 사업이 극소수 부자들에게 막대한 이윤을 주기 위해 마련되었다는 것, 그래서 대다수 서민대중들에게 고통과 재앙을 가져다준다는 것, 이다. 4대강 사업의 알맹이는 ‘윤리의 문제’가 아니라 ‘계급의 문제’인 것이다.

그런데 만일 피디수첩이 그런 계급의 관점에서 4대강 사업을 천착해나간다면, 이명박 씨가 거짓말을 했든 안 했든 그 자체로 사악한 사업이라는 점을 천착해나간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도 그건 ‘방송사고’에 해당할 것이다. 그건 피디수첩 피디들의 정치적 성향과 별개로 피디수첩이 속해있는 시스템, 즉 제도 미디어 시스템의 상한선을 넘어버리는 일이기 때문이다. 피디수첩의 피디들은 공중파 피디로서 봉급과 문화자본을 포기함으로써 그 상한선을 넘어설 수도 있겠지만, 피디수첩이라는 프로그램은 그 상한선을 넘어 존재할 수 없다.

그런 상한선이 있으니 피디수첩이 의미가 없다는 말은 아니다. 대중적 영향력만 고려하더라도 피디수첩이 갖는 사회적 의미는 분명히 인정되어야 한다. 또한 우리는 그 상한선 자체를 높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러나 그런 노력의 출발점은 현재 존재하는 상한선을 냉정하게 인정하는 일이다. 그리고 동시에 이미 그 상한선을 넘어 기사를 쓰고 프로그램을 만드는 비제도 미디어의 의미를 인정하는 일이다.(비제도 미디어라는 게 뭐지, 싶은 독자는 여길 보시길. http://media.jinbo.net/)

우리는 미디어에 의존하지 않고는 파악할 수 없는 복잡하고 요사스런 세상을 살고 있다. 이런 세상에서 바보가 되지 않는 비결은 결국 제도 미디어와 비제도 미디어를 균형 있게 접촉하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비제도 미디어엔 눈길도 주지 않는다. 진보적이라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민주화 이전엔 비제도 미디어가 금지되었지만 오늘 우리는 스스로 그걸 금지한다. 여전히 관심은 제도 미디어의 내부에만 있으며 제도 미디어의 상한선(비제도 미디어에선 매우 평범한 이야기에 불과한)에 놀라울 만큼 섬세하게 반응하며 비장한 얼굴로 ‘언론 자유’를 외친다. 이미 확보된 언론 자유를 스스로 금지하며 제도 미디어에만 집착하는 우리의 모습은 도무지 쳇바퀴를 내려올 줄 모르는 다람쥐를 닮았다. 

김재철 씨는 이른바 ‘개혁성향 사장’이던 엄기영 씨를 ‘밀어내고’ 엠비씨 사장이 된 사람이다. 그런데 밀려난 엄기영 씨는 한나라당 도지사 후보로 나가려고 주소지를 강원도로 옮겼다 하고, ‘개혁방송 엠비씨’를 말하는 사람들은 그 소식에 ‘엄기영이 그럴 수 있느냐’ 분을 내기도 한다. 엄기영 씨가 주소지를 옮긴 게 사실이든 아니든 제도 미디어에 대한 우리의 병적 집착을 드러내는 또 한 대목이다. (한겨레)

2010/09/08 16:33 2010/09/08 16:33
2010/09/07 22:58
"@sotted: 장선배 @10bosal 와 통화하다 들은 말, "니가 보내주는 '고래가 그랬어' 우리 애들이 환장한다. 그거 오는 날만 기다려" 고래삼촌으로 내가 다 뿌듯하다. 발행인 김규항 @gyuhang 님과 편집부 식구들께 박수를."

고래동무가 2천 구좌를 앞두고 있다.
고래이모 삼촌들에게 박수를. ^^

2010/09/07 22:58 2010/09/07 22:58
2010/09/04 09:38
@gyuhang 명박씨가 유명환씨 일로 '격노'했다는 걸 못믿겠다거나 비웃는 사람들이 많다. 왜들 그럴까? 명박씨는 유씨가 '딸을 특채'한 데 격노한게 아니라 그걸 '들킨 것'에 격노한 건데..

2010/09/04 09:38 2010/09/04 09:38
2010/09/01 17:03
사실 ‘세상이 바뀐다’는 말은 새로운 매체나 양식이 출현할 때마다 요란스럽게 반복되어온 말이다. 인터넷이 대중화할 때도 촛불이 한창일 때도, 음반이 발명되었을 때도 텔레비전이 대중화할 때도 금속활자가 상용화하여 대중들도 쉽게 책을 갖게 되었을 때도 말이다. 그러니 트위터의 대중화 국면에서 그 이야기가 안 나오는 게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결국 이 문제는 누가 옳고 그르고의 문제라기보다는 ‘세상이 바뀐다는 게 뭔가’에 대한 견해 차이의 문제라 할 수 있다. 고재열 씨가 세상이 바뀐다고 말하는 어떤 것에 대해 나는 그건 세상이 바뀌는 게 아니다, 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것은 세계관과 철학의 차이에서 발생하는 것이니 피차 쉽게 합의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다만 내가 바라는 건, 그런 견해 차이를 서로 인정하더라도 ‘세상이 바뀐다’는 말의 본래적 엄중함(얼마나 엄중한 말인가!)을 함께 생각하는 것이다. 고재열 씨는 주로 생활 양식의 변화에 주목하는데, 그렇게 보자면 삼성이나 엘지도 ‘디지털이 세상을 바꾼다’ ‘기술이 우리의 삶을 바꾼다’ 따위 이야기를 하지 않는가? 물론 전자들은 제 상품을 팔아먹으려는 의도고 고재열 씨는 좀더 사회적인 의도이지만, 내용보다는 양식의 측면에 주목한다는 점에선 다르지 않다. 나는 적어도 ‘세상을 바꾼다’는 말은 도구나 양식의 측면에서만 사용하진 말았으면 좋겠다. 도구나 양식에 담기는 내용에 대해 고민하길 멈추지 말았으면 한다. 이야기를 하다 보니, 몇 해 전 네이버가 한참 떠오를 때 그곳 임원 한 사람과 대화한 기억이 난다. 그는 ‘전문가나 권력에 독점되던 정보가 누구에게나 공유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인터넷이 훨씬 더 좋은 세상을 만들 거’라고 했다. 나는 그의 말에 일단 동의하면서 ‘그러나 중요한 건 정보의 양이 아니라 정보의 내용과 방향’이라고 말했다. 내용과 방향이 칼날 같다면 열 권의 책이 혁명가를 만들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다면 ‘아는 게 많은 바보’만 양산할 거라고 했다. 이미 세상은 정보와 지식을 잔뜩 짊어진 채 아무런 직관도 용기도 보이지 못하는 바보들로 차고 넘친다, 보다시피.

2010/09/01 17:03 2010/09/01 17: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