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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04/12 무터킨더 강연회
29일 독자와의만남 역시
강의가 아니라 질의응답 위주로 진행할 생각이다.
(그리고..
당첨이 안 되어도 오고싶으면 오시는 거다.
오셨는데 설사 못 들어오게야 하겠는가.
당첨된 분들이 다 오는 게 아니기 때문에
약간의 자리는 늘 여유가 있기 마련이고
모자라면 조금씩 불편하게 앉으면 된다.)

경북 상주의 다솜공부방(지역아동센터)의 나현빈이 3월에 보낸 편지. 워낙 인상적이어서 내 서랍에 보관하고 있다. 그는 "고래가 오면 가슴이 설레고 심장이 벌컥 뛰어요"라고 적었는데 나는 이 편지만 보면 기분이 밝아진다. ^^
“2010년 1월부터 고래동무 후원을 하고 있는 권용철 님이 계신데 권용철 님께서는 생태운동가 최성각 선생님의 친구이시고 김규항 선생님의 지지자랍니다. 일산 TS의 대표인 권승용 님은 권용철 님의 친동생분인데 권용철 님께서 김규항 선생님 책도 선물해서 지금 읽고 있고, 고래동무 후원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후원자 열 분은 모두 회사의 직원이시구요. 일산 TS는 광진구 구의동에 있는 원단 수출 회사라고 합니다.”
신청서를 보니 명의는 직원들로 되어 있지만 후원금 인출 계좌는 회사 것이다. 좋은 회사.^^
(정정을 요청했고 19일 한겨레21 측에서 제목을 수정했다.)
내가 좋아하는 벗들이 있어 행복했으나
먼저 취한 무뢰배들(물론 정치하는 놈들) 잠시 불편했고
죽은 수병들과 관련한 진중하지 못한 언사가 잠시 불편했다.
아침에 제일 먼저 깨어
그 불편들을 숨기지 않은 게 잘 한 걸까
섬진강을 내려다보며 한참 생각했다.
다음에 보니 강연 동영상이 하나 떠 있다. 1월말에 열린 보건의료진보포럼 강연인데 칼라티비에서 중계를 하더니 올려놓은 모양이다. 공간에 비해 사람도 적고 조금은 썰렁한 분위기이다가 90분께 질의응답하면서부터 우스개소리도 좀 하고 분위기가 부드러워지는 듯.
요즘 몇 해 전 이맘때 한 고등학생에게서 받은 편지가 자주 떠오른다. 중학생 때부터 내 글을 읽었다는 그는 아버지가 진보진영에서 활동하는 잘 알려진 교수라고 했다. 그는 특별한 아버지를 둔 덕에 자라면서 다른 아이들처럼 공부에 시달리지도 않았고 사회와 역사를 보는 나름의 안목을 가질 수 있었고 삭막한 아파트 단지가 아니라 숲이 가까운 교외에서 어린 시절을 보낼 수 있었던 것도 아이들은 자연과 함께 자라야 한다는 아버지의 생각 때문이었다고 했다. 중학생이 되어 아버지의 사회 활동을 좀 더 자세히 알게 되면서 아버지를 존경하게 되었다고 했다.
그런데 고등학생이 되고 얼마 안 된 어느 날 밤 아버지가 적이 무거운 얼굴로 그러더란다. “이제 고등학생이 되었으니 대학입시 준비를 본격적으로 해야지. 엄마하고 의논했는데 아무래도 이 동네에선 어려울 것 같아서 강남으로 이사하기로 했다.” 그는 진보적인 사람들이 교육문제에 그런다는 이야기는 듣긴 했지만 제 아버지가 그럴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했다. 그는 대부분 ‘인 서울’ 대학에 들어갈 가능성이 없는 친구들을 두고 혼자 강남으로 간다고 생각하니 살고 싶지 않은 기분이라 했다. “아버지는 저를 위해 그러셨다는 걸 압니다. 하지만 저는 더 이상 아버지를 존경할 수 없게 되었다는 걸 느낍니다.”
그는 나에게도 두 아이가 있는 걸로 안다며 대학은 어떻게 할 생각인지 물었다. 난감했다. 나는 아이들과 이미 대학엔 꼭 가지 않아도 좋다는 합의를 한 바 있긴 하지만, 그걸 밝히자니 ‘나는 네 아버지와는 다른 사람이야’라고 유세하는 꼴 아닌가. 나는 그의 아버지가 이중적이라기보다는 어리석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도 그런 선택을 하기까지 고민이 많았을 것이다. 아이가 고등학생이 되고서야 그런 선택을 했다면 진보진영의 근래 형편으로 보건대 오히려 ‘최후까지 버틴’ 편이라 할 수도 있을 테고, 그런 선택을 하게 된 ‘현실적인’ 이유 또한 모르는 바 아니었다. 하지만 그 이유가 제아무리 대단한 것이라 해도 아이의 아버지에 대한 존경을 한순간에 부수어도 좋을 만큼 대단한 것일까? 내가 알기론 인간의 삶에 그런 건 존재하지 않는다.
아마도 그 아버지는 아이가 스펙을 쌓아 자본의 시장에서 비싼 가격으로 팔리길 기대하는 게 아니라 진보적 엘리트로 성장하여 자신처럼 사회에 기여하길 기대할 것이다. 하지만 사람이 어떤 삶의 방식을 좇는 건 그 삶이 옳아서 뿐만은 아니다. 그런 삶이 멋지게 느껴지고 존경심이 들 때 비로소 그 삶을 좇게 된다. 그런데 그는 이제 아버지를 비롯한 진보 지식인들의 말을 ‘입으로만 저러지’ 냉소부터 하게 되어버렸으니 어떻게 그게 가능하겠는가. 아니 할 말로, 차라리 그 아버지가 막돼먹은 극우 꼴통이었다면 그는 반항심에서라도 힘을 얻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몇 번을 고쳐가며 힘들게 답장을 썼다. “무엇보다 나 또한 한 아버지로서 아버지를 존경할 수 없다는 말이 참 아프네요. 그러나 그보다 더 슬픈 일은 님이 이 일을 통해 고작 아버지를 비롯한 진보 지식인들에 대해 냉소적인 태도만 얻게 되는 걸 거예요. 나는 이 일이 님으로 하여금 우리를 지배하는 시스템, 즉 자본주의라는 괴물이 대체 얼마나 강력한 것이기에 아버지 같은 분도 흔들리는 걸까, 질문하는 계기가 되길 더 깊이 공부하는 계기가 되길 바래요. 괴물이 강력한 만큼 괴물의 정체를 밝히고 그 괴물을 넘어서는 행로 또한 길겠죠. 그 긴 행로에서 아버지에 대한 존경도 회복되길 기도할게요.” (한겨레)
좋아하는 음악하고는 다른 거야?
같을 수도 있지만 다를 수도 있지. 아빠가 잘 맞는 음악이라 말하는 건 오래 들어도 피곤하지 않고, 크게 틀어놓고 일해도 별 문제가 없는 그런 음악이지. 기운이 맞는다고 할까. 사람도 그런 사람이 있잖아. 좋은데 같이 있으면 힘든 사람도 있고.
아빠한테 잘 맞는 음악은 뭔데?
몇 개 있지. 아빠 고등학생 때부터 듣던 것도 있고.. 요즘 밴드로는 서울전자음악단. 좋아하기도 하고 잘 맞기도 하고 그렇지.
내가 들어봤나?
글쎄. 아, <고고70>에서 휘닉스라는 밴드 기억나지? 선그라스 끼고 엄청 무게 잡는 밴드 말이야. 그 삼촌들이야. 거기에서 종소리라는 노래를 부르지.
아항.
양식있는 부모들은 대개 아이가 무기 장난감을 갖고 노는 걸 싫어한다. 아이에게 폭력성이 길러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생각은 사실과는 거리가 있다. 폭력성은 폭력적인 물건을 갖고 놀거나 익숙해져서 생기는 게 아니라 남보다 더 가지려는 욕심에서 생겨난다. 총을 잘 다루는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게 아니라 누군가를 죽여서라도 더 가지려는 사람이 총을 사용하는 것이다.
전쟁은 인간 폭력성의 가장 대대적인 형태다. 전쟁은 한줌의 지배세력의 더 가지려는 욕심이 국경마저 넘어서는 현상이다. 물론 지배세력은 위험을 무릅쓰고 직접 전쟁을 치르진 않는다. 그 나라의 보통 사람들(서민대중, 민중, 인민이라 불리는 사람들)을 애국심, 조국 수호, 자유 수호 따위 달콤한 말로 꼬드겨서 전쟁을 치르게 한다.
전쟁은 직접 군인으로 동원되는 보통사람들뿐 아니라 여자와 아이들까지 죽인다. 20세기에 벌어진 두 번의 세계대전과 베트남전, 한국전쟁 등을 되새겨본다면 인류가 정신적으로 진보해왔다는 말은 거짓말임에 틀림없다. 인류는 내용적으로는 오히려 야만으로 퇴보하고 있으며 단지 그 퇴보를 포장하는 수법만 발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오늘 전쟁으로 생태계의 파괴로 끝없이 펼쳐지는 폭력을 포장하는 수법은 이른바 ‘자유로운 시장’이다.
전쟁은 인간이라는 종이 지구에 존재해야 할 이유를 회의하게 한다. 지구의 차원에서 인간은 멸종하는 게 최선이겠지만, 문제는 이 탐욕스럽고 영악한 종을 처리할 수 있는 다른 종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남는 방법은 딱 한 가지다. 그나마 나은 인간들이 인간이 저지른 가공할 악행들을 끊임없이 되새기고 성찰함으로써 그런 악행이 가능한 한 적게 일어나도록 노력하는 것.
‘노근리 사건’을 다룬 영화 <작은 연못>은 바로 그런 노력의 예술적 성취다. 한국전쟁 당시 미군의 무차별 공격으로 민간인 3백여 명이 희생된 노근리 사건은 베트남 밀라이 사건과 더불어 20세기 최대 규모의 민간인 학살 사건이다. 노근리사건 생존자와 유가족들이 적지않게 있지만 ‘자유의 수호자’ 미군에 의해 벌어진 사건이라 60년이 되도록 제대로 부각되지 못하고 있다.
노근리 사건이 그나마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한 건 2001년 AP통신 기자가 이 사건을 취재하여 퓰리처상을 받으면서부터다. 그 소식은 곧 한국의 영화인들에게 ‘당신들은 뭐하는 건가?’라는 야유성 질책으로 받아들여졌다. 故 박광정, 문성근, 송강호, 문소리, 강신일, 이대연, 김뢰하, 전혜진, 유해진, 박원상 등의 주류영화계 배우들이 무료 출연으로 연대함으로써 영화제작이 시작되었다. 영화제작의 동기와 과정 자체가 남보다 더 가지려고 하는 욕심을 거스르는 ‘반폭력 연대’였던 것이다.
극장에 영화를 보러가는 사람이 사회적 의미를 가진 영화를 우선시해야할 의무는 없다. 그러나 영화 제작의 동기와 과정과 함께 이 영화가 가진 특별한 미덕은 우리를 돌아보게 한다. 그 첫 번째는 정직함이다. 실재한 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는 많다. 그러나 그 영화가 그 사건의 실제 인물들에게서 지지받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극적 가공을 하는 과정에서 크고작은 사실왜곡이 일어나는 것이다. 그러나 노근리 사건 생존자들과 유족들은 이 영화의 제작자와 감독에게 감사패를 주었다.
"거짓말하지 않는 영화, 카메라 장난을 치지 않는 영화, 그냥 정직하게 찍어서 정직한 무게감이 느껴지는 영화를 찍고 싶었다"(이상우 감독) <작은 연못>은 정직한 영화다.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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