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6'에 해당되는 글 24건

  1. 2009/06/30 울컥
  2. 2009/06/30 알았어
  3. 2009/06/29 방학맞이
  4. 2009/06/29 아꿈세
  5. 2009/06/28 똑똑한 사람
  6. 2009/06/27 모욕
  7. 2009/06/25 사람의 기본
  8. 2009/06/25 가장 편안하게
  9. 2009/06/24 좌파란 무엇인가
  10. 2009/06/24 수다
  11. 2009/06/21 고맙더라
  12. 2009/06/20 독일교육 이야기
  13. 2009/06/18 책상물림
  14. 2009/06/17 엄마들 서평
  15. 2009/06/16 계급에 맞으니까
  16. 2009/06/13 비위가 상한다
  17. 2009/06/13 탈자
  18. 2009/06/11 감옥
  19. 2009/06/09 잘 사시길..
  20. 2009/06/08 영성은
2009/06/30 18:36

정태춘 박은옥의 앨범 '정동진, 건너간다'를 오랜 만에, 뜬금없이 꺼내 듣는데 여기저기서 울컥해진다. 이젠 꿈을 모으고 만들어가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던 참이라 그런가보다. 이 앨범은 98년에 나왔고 나는 그 해 글쓰기를 시작했다. 난 시작한 것일까, 건너간 것일까..


건너간다

강물 위로 노을만
잿빛 연무 너머로 번지고
노을 속으로 시내버스가 그 긴긴 다리 위
아, 흐르지 않는 강을 건너
아, 지루하게 불안하게
여인들과 노인과 말 없는 사내들
그들을 모두 태우고 건넌다

아무도 서로 쳐다보지 않고,
그저 창 밖만 바라볼 뿐
흔들리는 대로 눈 감고 라디오 소리에도 귀 막고
아, 검은 물결 강을 건너
아, 환멸의 90년대를 지나간다
깊은 잠에 빠진 제복의 아이들
그들도 태우고 건넌다

다음 정거장은 어디오
이 버스는 지금 어디로 가오
저 무너지는 교각들 하나 둘 건너
천박한 한 시대를 지나간다
명랑한 노랫소리 귀에 아직 가물거리오
컬러 신문지들이 눈에 아직 어른거리오
국산 자동차들이 앞 뒤로 꼬리를 물고
아, 노쇠한 한강을 건너간다
휘청거리는 사람들 가득 태우고
이 고단한 세기를 지나간다

2009/06/30 18:36 2009/06/30 18:36
2009/06/30 14:02

아빠, 오늘부터 기말고사라 일찍 왔어.
그래.
아빠 언제 들어올 거야.
왜.
그냥.
이유를 말해야 일찍 들어가든 늦게 들어가든 하지.
시험공부 해야 하는데 아빠 일찍 들어오면 장난만 하게 될 것 같아서.
아이구, 알았어. ㅎ

(김단과의 통화)

2009/06/30 14:02 2009/06/30 14:02
2009/06/29 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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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29 21:17 2009/06/29 21:17
2009/06/29 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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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키우기 힘드시죠?" 아꿈세는 회원은 적지만 매우 알찬 교육 모임이다. 월요일 밤엔 정기채팅을 하고 외부 인사를 불러 강연도 꾸리고 그리고 종종 아이들과 나들이에 엠티도 하면서 이 지랄같은 세상에서 부모 노릇 제대로 하는 일에 대해 고민하고 또 의논한다. 갈증을 느끼는 부모라면 오아시스와 다름없는 곳일 게다. 본디 진보신당의 고래가그랬어 동호회로 만들어졌지만 진보신당 당원이 아니어도 얼마든 참여할 수 있다. (사진_아꿈세 겨울나들이)

아꿈세 가기.
2009/06/29 01:19 2009/06/29 01:19
2009/06/28 22:11

가족회의에서 고양이 키우는 일과 관련해서 김단을 조금 비판한 게 마음에 걸렸다. 녀석 방문 앞을 지나다 흘끔 보니 음악 틀어놓고 흥얼거리며 제 책상에 앉아 있다. 방에 한 발 들여놓고 말을 걸었다. “그런 말 듣고도 인상도 안 쓰고 달라졌다 너.” “뭘, 맞는 말인데.” “그래. 듣기 싫든 좋든 그 말이 맞는가 틀리는가에 집중하면 돼. 그래야 똑똑한 사람이다.” “응, 아빠.”

2009/06/28 22:11 2009/06/28 22:11
2009/06/27 13:55
어느 자리에 동석한 이가 말하길 "사립학교를 다섯 개인가 가진 부잣집 딸로 판사 출신에 미모"로 유명한 한나라당 의원이 인터넷 악플 때문에 신경쇠약 증세를 보이고 있단다. 그 까짓 걸 갖고 무슨 신경쇠약이냐고 누가 그러기에 내가 웃으며 말했다. “그럴 수도 있지요. 살면서 한 번도 모욕 당해본 적이 없을 테니.” 우리는 모욕감을 느낄 때, 살기 위해선 늘 모욕당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아주 많다는 걸 되새기는 게 좋다.

2009/06/27 13:55 2009/06/27 13:55
2009/06/25 22:10
"내가 조선일보 문제에 엄격한 이유는 조선일보 문제를 대단한 일로 생각해서가 아니라 기본이라 생각하기 때문이야. 만 명의 사람에겐 만 개의 생각이 있을 수 있어. 그러나 사람에겐 사람임을 증명하는 기본이라는 게 있고 조선일보와 상종하지 않는 건 그 가운데 하나야. 조선일보에 글 쓰는 놈은 나쁜 사람이 아니라 사람이 아니야." (후배에게 쓴 편지)

2009/06/25 22:10 2009/06/25 22:10
2009/06/25 11:43

제 이야기를 좌파는 이래야 한다는 불편한 이야기로, 좌파의 윤리 강령으로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저는 오히려 다들 좀더 편안하게 살자는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아까 제가 좌파들이 제 아이 사교육 시키는 일로 서로 티격태격하는 풍경을 말씀드렸는데, 저는 ‘좌파가 어떻게 제 자식을 사교육 시키느냐’는 말은 틀린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오히려 ‘아이 사교육 시키는 사람이 뭐하러 좌파를 하는가’ 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사람이 꼭 좌파로 살아야 합니까? 누가 우리에게 좌파로 살아야 한다고 강제한 일이 있습니까? 양심적인 자유주의자로, 이명박 비판하고 조중동 반대하고 춧불시위 참여하고 하면서 사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부끄럽지 않은 삶 아닙니까? 그런데 굳이 자신을 좌파로 규정하면서 불편하게 살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저는 오늘 한국 사회에 좌파가 지나치게 부족하다는 말에 동의합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심각한 건 자신을 좌파라 강변하는 자유주의자들이 지나치게 많다는 것입니다. 나는 내 양심을 건사하는 자유주의자로 살지만 좌파들을 존중한다, 이런 품위 있는 자유주의자가 많아야 사회가 갈피를 찾게 되고 좌파도 제 역할에 전념할 수 있는데 그런 사람들은 참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하나같이 내가 가장 현실적인 좌파다, 내가 변화한 시대의 좌파다, 억지를 부리면서 묵묵히 활동하는 좌파들을 비현실적이니 관념적이니 깎아내리지요. 그런 태도가 조갑제 같은 극우세력의 이념 공격보다 훨씬 더 좌파에게 치명적입니다. 대중들에게 매우 설득력 있게 들리거든요. 다시 말씀드리지만 좌파가 그럴 수 있느냐, 난 좌파인데 이래도 되나, 이런 불편함을 버리십시오. 편안하게 사십시오.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우리는 가장 편안하게 살 권리가 있습니다. 누구도 간섭할 수 없는 존엄한 권리입니다. 좌파로 사는 게 편안하면 좌파로 살면 되는 것이고 자유주의자로 사는 게 편안하면 자유주의자로 살면 됩니다. 그게 사회에도 본인의 정신건강에도 좋습니다. (부산 강연에서)

2009/06/25 11:43 2009/06/25 11:43
2009/06/24 14:17

확실히 좌파적 스타일은 대중적 소구력을 잃었다. 내가 스무 살 무렵 좌파운동에 입문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그 선배들에게 매료되었기 때문이었다. 역사와 현실의 무게를 혼자 짊어진 듯한 비장한 표정, 한마디 한마디가 천근만근인 지사적인 말투, 500미터 전방에서도 식별되는 무채색의 옷차림. 그러나 그런 모습은 오늘 대중들에게 부담스럽기만 하다. 좌파들은 ‘유연한 좌파’ ‘쿨한 좌파’ ‘상식적인 좌파’가 되어야 한다는 충고를 듣곤 한다.
좌파의 일원으로서 나는 그 충고를 달게 받아들인다. 그러나 동시에 나는 그런 충고가 잃어버린 대중적 소구력을 회복하기 위한 스타일의 변화를 넘어 좌파의 정체성을 흐트러트리는 일로 변질되는 일을 경계한다. 안 그래도 지난 10년 동안 극우파들이 김대중 노무현 정권으로 이어지는 자유주의 우파 세력을 좌파라고 지칭해대면서(“좌파에게 잃어버린 10년”이란다, 빌어먹을!) 좌파의 정체성은 한껏 모호해진 상태다.
게다가 이명박 정권의 탄생으로 극우파들이 귀환하면서 좌파는 자유주의 우파가 맡았어야 할 싸움, 즉 이명박과의 싸움에 몰두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이런 현실에서 좌파의 정체성은 대체 무엇인가? 우리는 어떤 현실에서도 변할 수 없는 좌파의 출발점, 즉 계급에서 그 답을 얻을 수 있다. 자유주의 우파는 먹고살만한 양식 있는 시민들을 대변하지만, 좌파는 시민이라 불리면서도 시민으로서 인간적 사회적 권리를 확보하지 못한 대다수 인민들을 대변한다.
좌파가 이명박과의 싸움은 제쳐두고 앵무새처럼 ‘신자유주의 반대’만 외쳐야 한다는 게 아니다. 이명박과 싸우되 함께 싸우는 자유주의 우파 역시 신자유주의 세력의 일부라는 걸 똑똑히 기억하자는 것이다. 신자유주의 극우분파와 싸운답시고 신자유주의 자유주의 분파의 2중대가 되어 그들의 정치에 이용당하진 말자는 것이다. 자유주의 우파에게 이명박과 싸움은 목적이지만 좌파에게 이명박과 싸움은 기본일 뿐이라는 걸 분별하자는 것이다.
그런 분별을 잃을 때 좌파는 ‘좌파 당적을 가진 자유주의자’로 추락한다. 좌파를 견제하는 제도 미디어는 반가운 얼굴로 그들을 ‘대표적인 좌파 논객’이라 호명하며, 대중성에 목마른 진보정당은 그들을 상전처럼 받들어 모신다. 그들을 따라 입당한 사람들은 아예 ‘계급을 폐기하자’고 외친다.(계급이 디지털 사회에선 걸맞지 않은 개념이라는 소리가 유행이지만, 신자유주의의 본질이 ‘계급 지배의 강화’라는 것은 오늘 국제성을 가진 학자들의 일반적인 견해다.) 그래서 좌파의 정체성은 더욱 심각하게 훼손되고 좌파가 대변해야 할 인민들의 현실은 말끔하게 배제된다.
예나 지금이나 좌파의 존재적 모순은 대개의 좌파들이 자신이 대변하는 계급 자체가 아니라는 것, 그 계급의 인민들의 현실 속에서 실제로 살지 않는다는 것이다. 좌파는 늘 그 모순에 긴장해야 한다. 먹고사는 일을 고민하지 않는 좌파 인텔리의 관념 속에서 그 현실은 잠시 미루어지거나 생략될 수 있다. 싸우다 지치면 잠시 휴가를 다녀올 수도 있다. 그러나 실제 그 현실 속에서 살아가는 인민들에게 그 현실을 미루어질 수도 생략될 수도 없다. 그 현실엔 휴가가 없다.
‘유연한 좌파’ ‘쿨한 좌파’ ‘상식적인 좌파’ 다 좌파에겐 약이 되는 말들이다. 그러나 그런 말들이 좌파를 더 이상 좌파가 아니게 하는 것이라면 그 말들은 좌파에게 독일 뿐이다. 오늘 이 ‘개념 없는’ 세상에서 여전히 자신을 좌파라 말하는 사람들은 자문해볼 필요가 있다. 좌파란 무엇인가? 대체 나는 누구인가? (한겨레)

2009/06/24 14:17 2009/06/24 14:17
2009/06/24 09:13

“작년 이후 본 가장 근사한 영화는 <멋진 하루>와 <똥파리> 였어. <멋진 하루>는 놀랍도록 세련된 영화야. 하정우 캐릭터도 참 흥미롭지. 오늘 세상이 말하는 온갖 악덕은 다 가진 캐릭터잖아. 게으르고 무책임하고 무엇보다 경제적으로 무능하고. 그런데 실은 세상에서 가장 좋은 사람이라는 게 드러나지. 인간적이고 진실하고 놀랍게도 사적 소유 개념이 없는 사람이지. 삶에 대해 되새겨보게 하는 영화야. 하정우 연기 잘한다는 건 <비스티 보이즈>에서 선수 소개 장면 보면서 알았어. 그걸 보며 저 친구는 악마구나 싶더라. <똥파리>는 너무나 사랑스러운 영화야. 그래서 너무나 안쓰러운 영화이지. 그 영화가 대변하려는 사람들은 대개 그 영화를 보지 않으니까. 오히려 그 영화가 조소하는 사람들이 그 영화를 보고 온갖 상찬을 늘어놓지. 주변부에 내몰린 사람들의 아픈 현실을 그려낸 수작, 뭐 이러면서 말이야. 대체 이런 모순은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 거지?” 어제 고래 식구들과 점심 먹다 영화 이야기가 나와 수다가 되었다. 내가 <똥파리> 여고생 역은 대단한 캐스팅이라고 했더니 인혜가 <삼거리극장>에 나왔던 친구란다. 보다 말아서 몰랐다고 하니 그 재미있는 영화를 어떻게 보다 마냐고 타박이다. 현선도 너무나 재미있었다고 거들고. 궁지에 몰린 내가 외계에게 어땠냐 물으니 역시 보다 말았단다. 내가 웃으며 결론을 내렸다. "삼거리 극장, 중년 남성이 싫어하는 영화." 졸지에 중년남성이 된 외계가 허리를 꺾고 웃고.

2009/06/24 09:13 2009/06/24 09:13
2009/06/21 14:50

금요일 부산 강연 마치고 다음날 지리산으로 넘어갔다가 오늘 올라올 계획이었는데 금요일 늦은 밤 후배 차로 지리산으로 넘어 가선 자는 남준 형을 깨워 차를 먹으며 이야기를 조금 나누다 아침 버스를 타고 올라왔다. 근래, 강연을 하고 나면 ‘무슨 소용이 있는가’ 싶은 생각이 한켠에서 밀려와 심란스러운데 부산에선 뒤풀이에 참석한 탓인지 좀더 심했다. 그래서 더 미루지 말고 차분하게 내 속을 들여다봐야겠다 싶어 올라온 것이다. 일간 남준 형 보러 다시 갈 생각이다. 형은 며칠 전 늦은 밤에 불쑥 전화해선 꿈을 잇는 사람들 이야기를 하며 "규항이가 참 세상 어렵게 사는구나 싶었어" 했다. 많이 고맙더라..

2009/06/21 14:50 2009/06/21 14:50
2009/06/20 15:09
트랙백 인연으로 알게 된 '재독 엄마'의 블로그
독일교육 이야기

글들을 읽으며 불현듯 '이 엄마가 한국에 살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했다. 한국의 엄마들은 하나같이 아이들 교육문제에 인생을 올인하지만, 그들이 올인하는 건 실은 교육문제가 아니라 성적문제다. 그들은 늘 교육문제 교육문제 하지만 교육문제는 생각할 겨를조차 없다.
2009/06/20 15:09 2009/06/20 15:09
2009/06/18 15:22
로쟈의 인문학 서재를 훑어보니 전에 읽은 양파론 말고, 내 글 희망에 대하여를 꼼꼼히 비평한 글이 있더라. 언제 그걸 정독하고 재비평해 보면 재미있겠구나 싶다. 내 글이 2001년, 로쟈의 글이 2005년 것이니 시효성이 얼마나 있을진 모르겠다. 그러나 나도 때론 여느 책상물림들처럼 ‘예민한 글 놀이’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교사들처럼 방학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나저나.. '제대로 된' 책상물림 진태원은 왜 여태 예수전 소감을 안 내는 걸까? ㅎ

2009/06/18 15:22 2009/06/18 15:22
2009/06/17 17:53

기차(고래 홍보팀장)가
인터넷 북 까페를 통해 엄마들 서평을 받았다.
그 중 인터파크 서평 블로그에 올려진 것들.

어휴.. 감사..ㅎ

2009/06/17 17:53 2009/06/17 17:53
2009/06/16 11:54
세상을 보는 눈이 열린 건 참 좋은 일인데 좀 적적해요.
왜.
내 생각을 정작 기사에 반영할 수도 없고 선배들 말하는 것 보면 한심스러워 견딜 수가 없고 회사 안에서 내 생각을 함께 나눌 사람도 없고.
노사모일 때가 제일 속은 편했지?
편했죠. 그런데 그게 왜 편한지 아세요?
왜?
계급에 맞으니까. 계급에 딱 맞는 만큼의 정의와 진보니까.
그래.
2009/06/16 11:54 2009/06/16 11:54
2009/06/13 20:59

신자유주의에 목맬 일이 없는 사람들, 말하자면 김대중 때나 노무현 때나 이명박 때나 '먹고사는 일'엔 큰 문제가 없는 사람들이 "신자유주의라는 말만 들어도 지겹다"느니 "이명박이 급한데 무슨 신자유주의 타령이냐" 따위 소릴 늘어놓는 걸 보면 비위가 상한다. 사람이 남의 고통을 다 함께 할 순 없더라도, 남의 고통을 대놓고 조롱한대서야, 그게 어디 사람인가..

2009/06/13 20:59 2009/06/13 20:59
2009/06/13 17:38

“예수전 185쪽 마지막줄과 186쪽 첫줄 사이의 연결이.. 몇 번을 아무리 되풀이 읽어도.. 영 어색합니다.”라는 후배의 편지를 받고 3쇄본을 확인해보니 정말 글자 몇 개가 빠졌다. 아래, 괄호 부분.

예수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느님의 심판을 기대했지만, 묵시문학의 융성이 보여(주듯 그 기대감은) 그들의 현실적 회의와 무력감의 역설적 반영이기도 했다.

2009/06/13 17:38 2009/06/13 17:38
2009/06/11 15:12
예수전 표지를 두고 “도대체 저자하고 봄 개나리색이 어울린다고 생각해요?” 따위로 놀려대는 녀석들이 있는데 원래 표지는 그들의 기대대로 많이 어두웠다. 안상수 선생은 당시 예수를 둘러싼 세상이 거대한 감옥처럼 느껴진다고 했다. 동감하지만 예수는 그런 감옥 속에서도 늘 이웃들과 먹고마시며 새로운 세상을 꿈꾸던 사람이니 책은 밝은 쪽이 낫겠다고 의견을 드려 표지를 새로 만들었다. 물론 봄 개나리색이 되리라곤 나도 예상 못했다.ㅎ 하여튼 그랬는데 오늘 발견한 교보 홍보페이지엔 희한하게도 원래의 표지 이미지가 들어 있다. 어떻게 된 걸까? 재미있는 일이다.

2009/06/11 15:12 2009/06/11 15:12
2009/06/09 14:45

강의 마치고, 한 여성이 다가와 사진을 찍고 싶다고 해서 사진 찍는 걸 싫어해서.. 하고 언제나처럼 거절하려 했는데 제 아기를 안은 나를 찍게 해달란다. 그걸 거절할 순 없어서 아이를 받아 안았는데 안고보니 행여 아이가 울세라 예뻐라 예뻐라 아이를 추키며 카메라에 아기와 내 얼굴을 향하려 애썼다. 실내가 어두워 초점이 잘 안 잡히는지 한참 카메라에 눈을 박고 있던 여성은 카메라를 동영상 모드로 전환하곤 "저희 남편이 꼭 오고 싶어했는데 못 왔어요. 남편에게 '대기업 그만둬도 잘 살 수 있어'라고 말해주세요" 한다. 사진 찍는 것도 힘들어하는 자에게 대사까지 하라니 참으로 난감했지만 내 품에 안긴 아기의 존재감과 그런 부탁을 하는 여성의 절절할 삶의 결에 기대어 카메라에 대고 “잘 살 수 있어요” 했다. 환한 얼굴로 인사하며 아기를 안고 돌아가는 여성의 뒷모습을 보며 속삭였다. 잘 사시길.. 잘 사시길..

2009/06/09 14:45 2009/06/09 14:45
2009/06/08 17:33

합리성의 범주를 넘어서는 것이지
합리성에조차 못 미치는 게 아니다.

2009/06/08 17:33 2009/06/08 17: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