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1'에 해당되는 글 16건

  1. 2009/01/31 눈빛
  2. 2009/01/28 행복이란 무엇인가 (3)
  3. 2009/01/28
  4. 2009/01/26
  5. 2009/01/21 이야기 공부 (1)
  6. 2009/01/20 애끊는다
  7. 2009/01/20 (1)
  8. 2009/01/16 싱거운 일
  9. 2009/01/16 칡즙
  10. 2009/01/15 겸손
  11. 2009/01/13 예수목회세미나
  12. 2009/01/12 계급문제
  13. 2009/01/09 형편 되시는 대로
  14. 2009/01/07 사람의 일이란
  15. 2009/01/04 소망
  16. 2009/01/01 김단의 여행
2009/01/31 0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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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단이 만난 고르카 아이들.
"우리나라 아이들하곤 달라."
"뭐가?"
"눈빛이."

2009/01/31 00:47 2009/01/31 00:47
2009/01/28 18:14

어떤 이가 그러더란다. "김규항 씨의 교육관은 존중해요. 하지만 아빠 때문에 아이가 희생되어선 안 되잖아요?" 올해 중3이 되는 내 딸이 학원 같은 데 하나도 안 다니는 걸 두고 한 이야기였다. '희생이라...' 이야기를 처음 전해 들었을 땐 씩 웃고 말았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에 내내 걸렸다. 그가 보수적인 사람이라면 그러려니 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는 지난 해 여름 내내 촛불집회에 개근한 사람이며, 이명박이라면 아주 이를 가는 사람이라고 했다.
그런 사람이 아이를 학원에 보내지 않는 걸 아이를 희생시키는 일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그는 아이가 학원을 안 다니면 경쟁에서 뒤쳐질 것이고 경쟁에서 뒤쳐지면 결국 불행한 인생을 살게 될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명박 이름만 나와도 이를 가는, 자신이 세계관과 철학과 신앙에서 이명박과 정반대라 자부한다는 그는 이명박 씨와 적어도 한 가지는 같아 보였다. 바로 행복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행복이란 무엇인가? 얼마 전 우연히 본 텔레비전 다큐멘터리에서 나는 참 오랜만에 그 정답을 되새길 수 있었다. 제주도의 해녀할머니들을 그린 다큐멘터리였다. 평생 물질로 살아 온 여든 된 해녀할머니에게 물었다. "스킨 스쿠버 장비를 사용하면 더 많은 수확을 하실 텐데요?" "그걸로 하면 한 사람이 100명 하는 일을 할 수 있지." "그런데 왜 안 하세요?" "그렇게 하면 나머지 99명은 어떻게 살라고?"
인류가 생긴 이래, 행복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두 가지 생각이 존재해왔다. 남보다 많이 갖는 게 남보다 앞서는 게 행복이라는 생각, 그리고 그런 걸 오히려 불편해하고 나보다 못한 사람이 눈에 밟혀 더디더라도 함께 가는 게 행복이라는 생각. 앞의 것은 한줌의 지배계급에게, 뒤의 것은 대다수 정직하게 일하는 사람들에게 이어져 내려온 생각이다. 인류 역사는 행복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두 가지 생각의 대립이기도 했다.
인류가 그나마 여태껏 사람 사는 세상의 꼴을 유지할 수 있었던 건 어떤 흉악한 세상에서도, 어떤 악랄하고 탐욕스럽고 막되어먹은 놈들이 세상을 지배할 때에도 행복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대다수 일하는 사람들의 생각이 유지되어왔기 때문이다. 행복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온다는 것, 아무리 많이 가지고 아무리 앞서도, 나를 진심으로 아끼고 염려하는 사람이 없다면 나와 진심으로 사랑을 나누는 사람이 없다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하다는 것을 사회 성원의 대다수가 잊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바로 그 수천 수만년 동안 유지되어 온 생각이 오늘 사라지고 있다. 경쟁력이 행복을 가져온다는, 남보다 많이 가질수록 남보다 앞설수록 행복할 수 있다는 생각은 더 이상 한줌의 지배계급의 생각이 아니다. 대다수 노동자의 생각이며 대다수 농민의 생각이며 대다수 서민들의 생각이다. 불거지는 사회문제에선, 이를테면 언론노조 파업이나 철거민 살해 사건 따위에선 짐짓 그렇지 않은 것 같아 보인다. 그러나 오늘 한국 성인들의 사회적 리트머스 시험지라 할 아이들 교육문제에선 여지없이 정직하게 드러난다.
오늘 많은 사람들, 민주적이고 개혁적이며 진보적이라는 사람들은 한 목소리로 말한다. "이명박이 우리를 불행에 빠트리고 있다!" 백번 맞는 말이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이명박 씨가 우리를 불행에 빠트리기 전에 이미 우리 스스로 행복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잊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수천 수만년 동안 우리와 우리가 사는 세상과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지켜온 생각을. (한겨레)

2009/01/28 18:14 2009/01/28 18:14
2009/01/28 15:11
역시 난 스틱보다는 손이 나은 것 같다.
2009/01/28 15:11 2009/01/28 15:11
2009/01/26 08:57
복 많이 받으라는 문자메시지들.
미소 지으며 한개씩 받은 문자함으로 보낸다.
복이 아닌 것을 복이라 생각하다
다들 불행에 빠져버린 세상이지만
그래도 오늘은 복 많이 받으라는 말이 제격이다.
슬픈 사람도 낙심한 사람도 멸시받는 사람도 체념한 사람도
복 많이, 많이 받으시라.
2009/01/26 08:57 2009/01/26 08:57
2009/01/21 21:35
재미있든?
응.
좀 아쉬웠던 것 같은데?
응, 조금.
뭐가 아쉬웠어.
주인공이 그런 착각에 빠진 걸 누가 알려주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그런 생각이 들었어.
아, 아빤 이야기가 아쉽다는 줄 알았더니 주인공이 안타까웠다는 말이구나.
응. 쫌 그랬어.
이야기는 어땠어.
재미있었어.
그런데 김건이 원하는 대로 만들었으면 재미있었을까?
재미 없었겠지.
아예 영화를 못 만들었을 걸. 그 영화는 아쉬움이 뼈대인 거지.
그렇지.
김건은 나중에 누나하고 판타지 이야기도 만들고 그러고 싶다며?
응.
그러면 앞으론 영화 볼 때 이야기도 좀 보지 그래?
어떻게?
아쉬움을 그대로 느끼기만 하는 건 관객의 태도야. 그런데 이야기를 공부하려면 그런 아쉬움을 어떻게 느끼게 했는지 보는 거지. 이랬으면 더 좋았을 텐데, 그런 생각도 해보고.
무슨 말인지 알겠어.
강풀 삼촌도 늘 그랬다고 하더라. 그래서 이야기를 잘 만드나봐.
아빤?
아빠야 그냥 보지. 아빤 이야기 만드는 덴 관심이 없거든. 아빤 그냥 사람들과 세상 모습을 보는 게 이야기 공부지. 왜 저럴까, 이랬으면 더 좋았을 텐데, 그런 생각하면서.
그렇구나.
2009/01/21 21:35 2009/01/21 21:35
2009/01/20 23:59

사람들이 울다지쳐 죽어간다.

2009/01/20 23:59 2009/01/20 23:59
2009/01/20 12:31

어제 나와 비슷한 연배의 한 출판사 사장과 저녁을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내가 워낙에 '~계'(이를테면 나와 관련되었다고 할 수 있는 출판계, 아동도서 출판계, 아동문학계, 교육운동계, 지식인계, 언론인계 등) 인사들과 어울리는 걸 즐기지 않는 편이라 조금은 이례적인 자리였던 셈이다. 그런데 이야기를 하다 보니 그 역시 '계'를 즐기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렇다보니 일정한 공감대가 형성되어 (낮은 수준의 뒷담화를 포함한)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유쾌하게 나눌 수 있었다. 그러다 우연히 '아무개 선배' 이야기가 나오자 그가 표정을 가다듬으며 말했다. "제가 20년 출판일 해오면서 선배님들 중에 거의 유일하게 존경하는 분이세요." 고개를 끄덕이며 내가 대꾸했다. "예, 저도 오래 겪어보진 않았지만 그런 분인 것 같더군요.그런 건 돈 문제가 걸릴 때 드러나는 법인데 '역시' 하는 경험이 있었어요." 그나저나 20년에 거의 유일, 이라.. 하여튼 '계'란..

2009/01/20 12:31 2009/01/20 12:31
2009/01/16 16:21
어제 한겨레21에서 미네르바 건을 갖고 오랜 만에 쾌도난담을 한번 하자고 연락이 왔다. 안할 듯 하다가 매우 요령 있는 설득에 하겠다고 해놓고선 늦은 밤에 다시 안하겠다고 문자를 보냈다. 팩트에 어두운 것도 문제지만 지나치게 날카로운 이야기로 순진한 사람들 상처나 주지 싶었기 때문이다. 어제오늘 기자와 어준이에게서 여러 번 재고를 바라는 문자가 왔다. 여지를 주면 그들이 더 힘들어지니 미안하다는 답만 짧게 반복. 만약 아이들이 이랬다면 틀림없이 '왜 깊이 생각 안하고 행동해서 다른 사람 힘들게 하느냐."고 야단을 쳤겠지. 이런 싱거운 일이.
2009/01/16 16:21 2009/01/16 16:21
2009/01/16 13:42

은홍 형이 전화를 해선 후배와 칡을 캐다가 즙을 내렸는데 방금 택배로 두 상자 보냈다고 했다. 고마운 마음에 장난을 걸었다. "형, 만날 나 욕하지만 실은 내가 좋지." "어? 어, 그려 좋아. 그러니까 그거 먹고 오래 살어." "오래 살아야 형도 나 오래 괴롭히지." "그려. 좋지. 그런데 혼자 다 먹진 말고 한 박스는 조중사 줘." "그 새낄 뭐하러 줘. 내가 다 먹어야지." 은홍 형과 혜원 씨나 시골로 가간 지 몇년이더라. 하여튼 분명한 건 그들이 더 근사해졌다는 것이다. 사람은 역시 시골로 가야 한다.

2009/01/16 13:42 2009/01/16 13:42
2009/01/15 10:24
예수는 '신성모독을 해도 용서받을 수 있지만 성령을 모독하면 용서받을 수 없다'고 말한다. 예수는 결국 하느님에 대한 신앙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말하고 있다. 신앙은 '하느님을 대상으로 하는 인간의 종교 행위'가 아니라 성령의 활동 즉 '하느님이 진행하는 역사에 인간이 참여하는 행위'인 것이다. 다시 말해서 신앙은 인간이 만든 종교 체제와 교리의 테두리 안에서의 성실과 충성이 아니라, 지금 여기 현실 속에서 하느님이 벌이고 있는 역사, 즉 하느님 나라 운동에의 참여인 것이다. 종교 체제로서 교회와 교리의 테두리 안에 있지 않아도 심지어 종교 체제로서 교회와 교리에 부정적인 견해를 가진다 해도 하느님 나라 운동에 참여하고 있다면 진정한 신앙을 가진 사람이지만, 종교 체제와 교리의 테두리 안에서 제아무리 성실하고 충성스럽다 해도 하느님 나라 운동에 참여하고 있지 않다면 진정한 신앙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오늘 많은 교회들(대표적인 경우로, 미국과 한국의 보수 개신교 교회들)에서 보듯 아예 제 신앙을 내세워 하느님 나라 운동을 훼방하고 모독하는 행위를 예수는 '절대 용서받을 수 없는' 죄라 말한다. 신앙은 교회라는 테두리를 넘어선다. 교회에 다니지 않는 혹은 다른 종교를 가진 어떤 사람이 열심히 교회에 다니는 그 어떤 사람보다 하느님 보시기에 참신앙을 가진 사람일 수 있으며, 기독교가 전래되기 전에 죽어 하느님이 뭔지 예수가 누구인지조차 모르는 제3세계의 수많은 인민들 가운데에도 하느님 보시기에 참신앙을 가진 사람이 허다한 것이다. 보수 교회에선 이런 사실을 엄격하게 부인하는 것을 마치 하느님을 타협 없이 섬기는 일인 것처럼 말하지만, 조금만 생각해 보면 그런 주장이 오히려 하느님을 자신들의 교회 체제에 가두어 두려는 이치에 맞지 않는 수작임을 알 수 있다. 우리가 인간적으로 존경하여 모시는 사람이 있어 그의 생각을 다른 사람에게 전할 때도 내 생각이 미처 못 미침을 걱정하고 행여 잘못 전할세라 걱정하는 법이다. 하느님을 섬긴다는 건, 하느님의 뜻을 헤아리려 힘닿는 데까지 노력하면서도 미처 하느님의 뜻을 헤아리지 못한 부분이 있음을 겸손하게 인정하는 태도이지, 앙상한 교리와 신학의 언어를 내세워 자신이 하느님의 권한을 완전히 위임받은 양 권위적이고 배타적으로 구는 태도가 아니다. 겸손하지 않은 건 신앙이 아니다. '교회 밖의 구원'에 대해 개신교는 여전히 교리적으로 인정하지 않지만 가톨릭은 제2차 바티칸공의회(1962~1965)를 통해 '익명의 그리스도인'이라는 표현으로 인정한 바 있다. 교회가 인간의 입장에서는 하느님을 신앙하는 완전한 방법일 수 있다 해도 하느님의 입장에서는 부족할 수 있음을 인정한 것이다. 흔히 가톨릭을 구교라 하고 개신교를 신교라 하지만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 두 교회의 지위는 뒤바뀐 셈이다.

2009/01/15 10:24 2009/01/15 10:24
2009/01/13 2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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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기독교연구소에서 여는 예수목회세미나에 참여하기로 했다. 강의 원고를 아직 준비하진 않았지만, 아마도 ‘예수와 바리새인의 갈등 - 오늘의 바리새인들’ 그리고 ‘변혁과 영성의 통일’에 대해 주로 이야기하게 될 것 같다.

2009/01/13 23:38 2009/01/13 23:38
2009/01/12 12:20
내가 계급문제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맑스주의적 목표를 가지기 때문은 아닙니다. 계급문제가 해결된다고 해서 좋은 세상이 된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람은 훨씬 더 복잡한 존재고 또 생태 문제를 비롯해서 계급으로 포획하기 어려운 문제들이 많지요. 내가 계급문제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유는 그게 좋은 세상으로 가는 데 가장 큰 장애물이기 때문입니다. 좋은 세상이란 뭘까요? 나는 좋은 세상이란 인간의 좋은 본성, 즉 진정한 것을 좇고 다른 사람과 상호부조하며 살고 싶어 하는 본성이 잘 발현될 수 있는 세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계급적 착취가 횡행하는 세상은 인간의 나쁜 속성이 훨씬 더 잘 발현되게 되어 있지요. 이기심과 탐욕, 경쟁, 물신숭배 같은 것들 말입니다. 착취하는 소수뿐 아니라 착취 받는 다수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결국은 본질적으로 다를 게 없는 인간들이 선이네 악이네 정의네 불의네 하면서 아귀다툼을 벌이는 형국이 됩니다. 나는 지금 한국 사회가 이미 그런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계급문제는 그것을 목표로 하는 맑스주의자의 숙제일 뿐 아니라 계급문제가 해결된다고 해서 좋은 세상이 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 사람에게도 중요한 숙제입니다. (강의에서)

2009/01/12 12:20 2009/01/12 12:20
2009/01/09 17:52
2차 주주모집의 자리가 아직 남았다. 워낙 어려운 시절이라.. 먼저 신청한 분들의 동의를 얻어 49명이 다 찰 때까지 신청을 받기로 했다. 고민 중인 분들은 천천히 형편 되시는 대로 연락주시길 바란다.
2009/01/09 17:52 2009/01/09 17:52
2009/01/07 19:44

2009년 오늘 한국에서 이명박 씨를 싫어하는 사람들의 범주는 꽤 넓다. '자본주의 이후'를 소망하는 좌파에서부터 '상식의 회복'을 말하는 자유주의자들까지, 최소한의 양식을 가졌다 자부하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그의 얼굴만 봐도 진저리를 친다. 그들에게 '이명박'이라는 이미지는 악(惡)이라기보다는 추(醜)에 가까운 듯하다. 그런데 이명박 씨에게 진저리를 치는 그들은 정말 이명박과는 다른 사람들일까? 그들은 정말 이명박과 다른 가치관과 삶의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을까?
여러 사례가 있겠지만, 거창한 이야기 말고 우리 아이들 이야기를 해보자. 이명박 씨가 대통령이 되고 0교시, 우열반, 보충학습 따위를 실시하겠다고 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이명박이 우리 아이들 다 죽인다!"고 들고일어났던 걸 기억할 것이다. 그러나 그 모든 것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암묵적으로 혹은 공공연하게 해온 것들이다. 고등학교 아이들은 8시 이전에 등교하지만 1교시는 8시 40분에 시작한다. 그 4~50분이 0교시다. 영어 수학은 '수준별 수업' 따위 이름으로 우열반이 공식 운영되며 '방과 후 특기적성'이라 포장한 보충수업은 상위권반이 따로 있다. 일 년에 네 번 보는 교육청 모의고사는 바로 일제고사다.
아이를 학교에 보내는 부모 가운데 그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왜 그들은 스스로 오랫동안 용인해온 일을 이명박 씨가 하려하자 그리 정색을 하고 들고일어난 걸까? 그러나 사실 이건 우리가 '교육문제'라 부르는 일 전반의 모습이기도 하다. 이명박의 교육정책을 성토하는 사람들은 많지만 그 가운데 제 아이의 실제 교육에서 이명박의 교육과 차이를 보이는 사람은 찾기 어렵다. 차이라면, 그들은 불편한 얼굴을 하고 이명박 쪽은 흔쾌한 얼굴을 한다는 정도인데, 당사자인 아이들에게 그건 차이가 아니다.
사람이란 참 약한 존재라서 어떤 사회 체제 속에서 살아갈 때 그 체제에 조금씩 감염되는 속성이 있다. 그 체제에 거부감을 느끼거나 비판적인 사람도 완전히 그 체제를 거부하지 않는 한 다르지 않다. 민주화 이후, 혹은 김대중 정권 이후 본격화한 신자유주의 광풍이 가져온 여러 사회변화 가운데 가장 비극적인 건 거의 모든 한국인들이 자본의 가치관과 삶의 방식에 감염되었다는 것이다. 수천 년 동안 정직하게 일하며 사는 사람들에게 이어져 온 행복의 기준과 인생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들이 파괴되었다. 아이들이 사람이 아니라 경쟁력 있는 상품으로 키워지는 풍경이나 이명박 씨가 압도적인 표차로 대통령으로 뽑힌 건 그 자연스런 결과들이다.
결국 오늘 이명박과의 싸움은 두 이명박과의 싸움일 수밖에 없다. 내 밖의 이명박과 어느 새 내 안에 들어와 내 삶의 지배하고 있는 이명박. 두 이명박과 동시에 싸우지 않는 한, 아무리 뜨겁고 거대한 싸움을 벌인다 해도 진정한 변화를 만들어내기 어렵다. 내 안의 이명박이 세상을 그대로 유지하기 때문이다. 설사 이명박 씨를 대통령에서 물러나게 한다고 해도, 결국 수많은 내 안의 이명박들이 모든 걸 되돌려 놓을 것이기 때문이다.
반 이명박 전선에 선 사람들에게 이런 이야기는 적이 한가하게, 혹은 맞지만 비현실인 이야기로 들릴 지도 모르겠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이명박과의 싸움이 너무나 긴박하기 때문이다. 그 긴박함을 당연히, 전적으로 인정한다. 그러나 그 긴박함이 내안의 이명박과의 싸움을 생략해도 좋을 만큼, 그래서 이 소중한 싸움을 헛수고로 만들어도 좋을 만큼 절대적인 건 아니라는 사실 또한 우리는 당연히, 함께 인정할 필요가 있다. 사람의 일이란, 참 간단치가 않다. (한겨레)

2009/01/07 19:44 2009/01/07 19: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