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11/08 16:51

지난달 말 이광호 선배와 자리에서 레디앙에 격주로 교육문제에 관한 칼럼을 쓰기로 약속했다. 가칭 ‘좌파 아빠의 좌충우돌 교육일기’. 다음주부터 쓸 생각인데, 프레시안 칼럼도 앞으론 격주 간격을 지킬 생각이라 결국 매주 한 개씩 쓰게 된 셈인데, 부담스럽긴 하지만 세상이 망해가는 판에 그 정도는 해야지 싶다. 종종 내가 교육문제의 한 견본으로 여겨지고 있음을 발견하곤 한다. 이를테면 강연 같은 데 가서 받는 질문엔 꼭 “선생님 아이는 학원 다닙니까?” “대학은 어떻게 할 생각입니까?”가 꼭 끼어 있다. 여러 사람들 앞에서 질문을 한다는 건 자의식과 연동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질문이자 작은 발표이기도 한데, 그런 소소한 질문을 한다는 건 그만큼 ‘일상에서의 교육문제’가 너나없이 절절하고 막막한 상태라는 이야기일 것이다. 고래 부설 교육연구소가 빨리 가동되어서 한 견본인 나도 다른 많은 견본들을 보고 느낄 수 있길..

2008/11/08 16:51 2008/11/08 16:51
2008/11/08 16:43

어제 저녁 김단이
아빠, 3단합체 김창남 이번 거 봤어?
아니. (줄거리 말하지 말라는 뜻으로 검지를 입술에 대며)
응. 그런데 와.. 정말..

방금 그 생각이 나서 19화 아름답다고 느낄 수 있을까를 봤다.
김단 말 그대로다.
그리고..
김단이 사랑에 대해 이미, 충분히, 알고 있음을 새삼 깨달았다.

2008/11/08 16:43 2008/11/08 16:43
2008/11/07 15:01
사용자 삽입 이미지


ㅎ 아기자기한 ㅎ
고래가그랬어 창간 5주년  잔치 가기.

2008/11/07 15:01 2008/11/07 15:01
2008/11/06 12:13

11월 9일(일) 대학로에서 열릴 전국노동자대회에 고래 부스를 설치하고 고래 홍보를 한다. 전국에서 온 수만 명의 노동자들에게 고래 전단(예쁘게 새로 만들어진)도 나누어주고, 아이한테 엽서를 쓴 엄마 아빠들에겐 고래를 한권씩 선물도 한다. 고래 사랑하는 이들이 여친 남친 데리고, 아이와 부모 손잡고 나와서 고래 전단도 나누고 김밥도 함께 먹으며 모처럼 즐거운 휴일을 보내시면 좋겠다. 함께 할 분은 11시 쯤 마로니에 공원 입구로 오면 되는데, 혹시 있을지도 모르는 장소 변경 등을 고려해서 미리 고래로 연락주시길 권한다.(02 333 4201, 3075) 심상정 대표와 권해효 배우가 12시부터 두 시간 동안 함께 하기로 했다. 고래 부스는 오후 내내 유지될 것이니 늦게라도 포기 말고 나오시길. ^^

2008/11/06 12:13 2008/11/06 12:13
2008/11/04 14:14

우리가 내내 소리치면서도 막막함을 거둘 수 없는 건 이명박이 대통령이라서가 아니라, 이명박이 물러나도 크게 달라질 게 없다는 사실을 우리가 알기 때문일 것이다. 진보적이라는 사람치고, 오늘 이 지랄 같은 현실을 만들어내는 진짜 적이 신자유주의라는 걸 부인할 사람이 있겠는가. 문제는 이놈의 신자유주의와 싸운다는 게 도무지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는 것이다. 그 첫 번째 이유는 신자유주의가 적으로 삼고 싸우기엔 지나치게 광범위하다는 점이다.

언론을 예로 들어보자. 대개 조중동을 보수 신문이라 말하고 한겨레나 경향을 진보 신문이라 말한다. 그런데 신자유주의라는 관점에서 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물론 한겨레나 경향은 조중동과 달리 신자유주의가 만들어낸 비참을 이야기하지만, 신자유주의 자체에 대해선 ‘거부할 수 없는 전지구적 현실’이라는 견해에 머문다. ‘사수해야 할 공영방송’ KBS나 이명박 정권과 긴장을 이룬다는 MBC도 나은 건 없다. 두 회사의 몇몇 피디들이 ‘준 방송사고’ 형태로 신자유주의가 만들어낸 비참에 대해 간간히 이야기하는 정도다. 이쯤 되면 신자유주의와 싸운다는 건 ‘존재하는 모든 것’과 싸우는 것처럼 느껴진다.

신자유주의와 싸운다는 게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또 다른 이유는, 그놈의 신자유주의가 어느 새 우리 안 깊이 들어와 있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교육 문제를 보자. 신자유주의 교육과의 싸움은 이명박의 시장주의 교육과 싸우는 것은 물론, 아이를 시장주의 교육에 실어 보내는 나 자신과의 싸움을 포함할 수밖에 없는데 그게 어디 쉬운가. 그래서 진보적이라는 사람들은 대개 이명박의 시장주의 교육정책은 욕하면서 내 아이의 시장 경쟁력은 알뜰하게 챙기는 ‘자못 이중적인’ 모습을 보인다. 생존 자체가 숙제인 시대에 누가 그걸 정색을 하고 비난할 수 있으랴만, 이명박 쪽에서 보면 참 꼴이 우습긴 할 것이다. 소리 높여 시장주의 교육정책을 성토하는데, 정작 제 새끼 교육시키는 모습은 저희들과 딱히 다를 게 없으니 말이다. 게다가 이 빌어먹을 사교육 사업의 주역들은 모조리 386 운동권 출신들이다.

하여튼 그런저런 추레한 사연들 속에서 진보적이라는 사람들은 신자유주의라는 진짜 적과의 싸움은 ‘비현실적인 싸움’으로 접어두고, ‘좀 더 구체적인 싸움’이라는 미명 하에 이런저런 ‘대체된 적’과의 싸움에 몰두하곤 한다. ‘조중동’이 그렇고 ‘수구반동’이 그렇고 “실현 가능한 진보” “최소한의 상식의 회복” 따위 구호가 그렇다. 그리고 이명박은 그 대체된 적의 백미다. 이명박이야말로 오늘 진보적이라는 사람들, 즉 우리가 아무런 마음의 불편 없이도 비장하고 순정한 얼굴로 마음껏 욕할 수 있는 ‘70년대(혹은 80년대) 스타일’의 적인 것이다.

물론 사회 진보를 위한 노력이란 원칙과 당위만 주장하는 게 아니라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변화를 위한 노력이 중요하다. 80년대를 돌이켜 보면 지나치게 거대담론만 강조되느라,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부분에서 결핍과 오류가 너무나 많았다. 한국의 진보 운동은 그 뼈아픈 경험을 반성하는 데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했던가. 그러나 오늘의 문제는 거대담론 편향이 아니라 정반대로 ‘거대담론의 결핍’이다.

문제의 근본과 얼개를 말하는 건 모조리 ‘거대담론 혐의’를 받는다. 신자유주의 체제를 말하는 건 모조리 비현실적인 소리로 치부되며,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은 ‘만날 똑같은 소리만 하는 관념론자’로 낙인찍힌다. 이런 상태에서 이른바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문제만 갈피없이 즉자적으로 강조되다 보니, 정작 오늘 한국의 사회 진보 운동은 무엇을 목표로 하는지 어떤 세상을 꿈꾸는 것인지가 사라져버렸다.

이를테면 “모든 게 이명박 때문” “이명박만 없으면”이라는 ‘시대의 신학’이 목표로 하는 세상은 무엇인가? 우리는 이명박 이전에 김대중 노무현이라는 훨씬 더 민주적이며 개혁적인 정권을 이미 경험한 바 있다. 사회 진보 운동의 목표는 그 시절로 돌아가는 것인가? 물론 진보적이되 먹고 사는 일에 문제가 없는 사람들이야 ‘이명박이라는 짜증나는 인간’만 사라져도 충분할지 모른다. 하지만 정직하게 일하며 살아가는 대개의 사람들은 이명박이 물러나고 김대중이나 노무현 시절로 되돌아간다 해도 크게 달라질 게 없다.

이건 좌파의 상투적 과장이 아니라 지난 10여 년 동안 우리가 함께 질리도록 체험한 ‘사실’이다. 우리가 이성을 가진 인간들이라면 이젠 그 사실을 정직하게 인정해야 한다. 우리의 목표는 이명박이 없는 세상이 아니라 적어도 ‘김대중과 노무현을 넘어선 세상’이어야 한다. 우리는 ‘조중동’이니 ‘수구반동’이니 하는 대체된 적과의 싸움이, “모든 게 이명박 때문” “이명박만 없으면”이라는 허깨비 신학이,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변화를 위한 노력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진짜 적과의 대면을 피하는 방편이기도 했음을 인정해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적이 “실현 가능한 진보”니 “최소한의 상식의 회복” 따위로는 흠집도 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우리는 진짜 적과 대면해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문제가 자본주의의 극단화한 형태로서 신자유주의에 기인하며, 결국 자본주의 자체에 닿아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제 아무리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문제를 파고든다 해도, 백만이 아니라 천만 명이 촛불을 들고 일어난다 해도, 자본주의를 문제 삼지 않는 한 결국 쳇바퀴 안의 다람쥐 꼴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우리는 '개선된 세상'이라는 몽상을 버리고 '다른 세상'을 꿈꾸기 시작해야 한다.(계속) (프레시안)

2008/11/04 14:14 2008/11/04 14:14
2008/11/03 15:10

26일 예정된 민노총 부산지역본부 강의 소개 글. 현재 내가 교육문제에 대해 갖는 문제의식의 요약이자, 고래 부설교육연구소에서 하려는 일의 요약이기도.

“노동/진보운동이 쇠락하고 있다고들 말하지만, 정작 심각한 상황은 우리 아이들이 자본의 가치관으로 키워지고 있다는 것이다. 살벌한 무한경쟁의 교육현실 속에서 진보적인 노동자/ 활동가들은 자녀 교육에 고통과 번민을 느끼고 있다. 초등학교까진 그나마 다른 교육을 해보려고 노력하다가도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고 중학생이 되면 여느 부모들과 별다를 게 없이 되어버리는 게 현실이다. 그대로 아이를 자본의 경쟁에 떠밀어 넣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딱히 다른 대안도 없는 상태인 것이다.
진보적인 노동자/ 활동가가 지금처럼 제 아이를 자본의 가치관으로 키우는 건 물론 잘못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문제를 서로 정죄하거나 비난할 게 아니라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해결해나가야 한다. 아이가 중학생 정도 되면 서로 교육 문제에 대해 말하길 불편해하는 상태를 벗어나 이 문제를 수면 위로 끌어올려서 고민을 나누며 토론해야 한다. 대안을 구매하려 하지 말고 함께 대안을 마련해가야 한다.
모든 아이들이 무작정 일류대학을 향하는 건 어리석은 일이다. 제 적성과 재능을 일찌감치 발견하여 일생을 더 풍성하고 품위있게 살아갈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가야 한다. 이 문제는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서도 중요하거니와, 우리 운동의 미래에도 사활이 걸린 문제다. 우리는 우리 아이들을 우리의 가치관에 반하며 우리의 운동을 적대하는 인간으로 키우고 있는 것이다. 곧 그렇게 키워진 아이들이 우리 사회의 주역이 된다.”

2008/11/03 15:10 2008/11/03 15:10
2008/11/02 20:18

"옳은 건 알지만 현실이..” 라는 말이 지식인들의 절대 철학으로 군림하는 한국에서 완전히 절망하지 않을 수 있는 이유는, 몇몇 근본주의자들의 존재 때문이다. 이를테면 다들 내 새끼한테 광우병 소고기 못 먹인다 아우성칠 때 “인간종이 다른 종을 대하는 자세가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는 한, 광우병은 차라리 인간종에게는 축복이 될지도 모른다.”라고 담담히 말한 현병호 형(민들레 발행인)이나, 모든 사람이 독도가 한국 것이네 일본 것이네 할 때, “독도는 괭이갈매기와 바다제비, 수많은 물고기와 파도의 것”이라고 일갈함으로써 문제의 본질을 드러낸 변홍철 형(녹색평론 편집장)이 그들이다.
며칠 전, 변홍철 형에게 고래 5주년도 되었으니 내내 미루어졌던 생태 꼭지를 제대로 한번 해보자고 전화를 해선 수락을 받아냈다. 그러나 다음날 아침 나는 그가 보내놓은, 번복의 메일을 확인해야 했다. 몹시 아쉬웠지만, 그의 생각을 열렬히 지지하지 않을 수 없다. 여럿이 읽고 곰곰이 생각해볼 만한 글이라, 허락을 받아 올린다.


다음호 잡지 편집이 한창이라 좀 분주하긴 합니다만, 아까 김 선생님과 통화한 뒤로 이것저것 생각이 많아졌습니다. 그런데 생각을 하면 할수록 왠지 자꾸 '불편한'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냥 부담스럽다는 것과는 좀 다른 느낌인데.. 곰곰이 제 마음을 들여다보니, 조금은 그 이유를 알 것도 같습니다. 두서없지만 솔직히 털어놓고 이해를 구하는 게 여러 모로 낭비를 줄이는 길일 것 같아 서둘러 편지를 올립니다.

짐작하시겠지만, 제가 올해로 11년째 종사해온 <녹색평론>의 일을 그만두고 내년부터 경북 의성 직가골이라는'오지'에서 땅에 엎드려 일하는 법을 촌로들께 배워보자고 작정한 몇가지 이유 중 하나는 그동안 <녹색평론>을 통해서 이야기해온 가치들, 특히 '땅에 뿌리박은 삶'을 내가 몸으로 부딪쳐 살아보지 않고서는 어쩐지 더 이상 살아있는 '내 말', '내 생각' 같지 않다는 나름대로 '절박한' 문제의식 때문이었습니다.

그런 문제의식이 점점 커질수록, 글 쓰고 말하는 것은 물론이고 잡지를 기획하고 편집하는 일도, 또 가끔은 독자들을 만나 '편집자'로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자꾸 불편해졌습니다. 그런 상태에서 <고래>의 일을 맡아(이것도 역시 무언가를 '기획'해야 하는 일인데) 더구나 아이들에게 무언가를 이야기하기 위해 고심해야 한다는 것은 지금 제 문제의식(이랄 것도 없고, 사실은 제 기분)에 여간 불편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해서.. 아무래도 지금 이 일을 맡아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염치없지만, 제 아이들과 함께 조금 더 그냥 <고래>의 행복하고 게으른 '독자'로 있도록 해주십시오.

제가 고된 농사일의 몇 해 사이클이라도 근근이 견뎌낼 수 있다면, 그리고 경북 의성 직가골의 땅과 마을이 저를 그럭저럭 받아주기로 너그러움을 베푸신다면, 그때 제 나름의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조금씩 들려줄 준비라도 시작해보겠습니다. 그 전에는 괜히 저도 불편하고, 아이들에게도 행복하지 못한 '공해'밖에 유발시키지 않을 거라는 불길한 생각이 강하게 들기 때문입니다.

물론 반드시 생태 이야기는 농사를 제대로 짓는 사람이라야만 할 수 있다는 '맹꽁이 같은 소리'를 하고 있는것이 아니라는 것은 김 선생님도 이해해주실 것이라 믿습니다. 그런 말은 절대로 아니고, 다만 지금은 저의 마음이 흘러가면서 외치는 거기에 제 자신이 좀 더 겸손하게 복종하고 또 '집중'해야 할 때라고 생각하는 것뿐입니다.

사족을 붙이면, 제가 생각할 때에는<고래>의 그 기획은 어떤 개념이나 정보를 아이들에게 주입하는 것이 아니라 결국은 인상적이고 재미있는 일련의 풍부한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들려주는 것이어야 하는데 (그게 '에콜로지'의 또 하나의 중요한 측면이기도 하지요) 우선 그런 일에 저는 그다지 적합한 인사가 아니라는 생각도 이런 염치없는 말씀을 서둘러 드리게 되는 또 다른 이유입니다.

죄송합니다. 제발 너그러이 이해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그래도 김 선생님과 막걸리 한잔 하고 싶은 생각은 변함이 없으니, 저도 참 뻔뻔스러운 놈이지요. <고래>와 선생님의 건강을 빕니다.

변홍철 드림

2008/11/02 20:18 2008/11/02 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