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10'에 해당되는 글 17건

  1. 2008/10/31 물론 잘 자랐지요 (1)
  2. 2008/10/30 상상동물원 (1)
  3. 2008/10/30 촌평 후기
  4. 2008/10/29 고래블로그, 고래동무 카페
  5. 2008/10/28 고래주주 참여의 말
  6. 2008/10/24 하일권 (1)
  7. 2008/10/23 돌연변이 (2)
  8. 2008/10/21 아픔이 쌓여있는 (1)
  9. 2008/10/20 촛불과 지식인들 1 - 지성, 작동을 멈추다
  10. 2008/10/19 봉투 (1)
  11. 2008/10/15 이번 주 건의 사항 (2)
  12. 2008/10/15 보헤미안 랩소디
  13. 2008/10/14 BSG (5)
  14. 2008/10/13 개성 구경
  15. 2008/10/07 지성 (1)
  16. 2008/10/04 고래 설문
  17. 2008/10/01 가난한 휴머니즘
2008/10/31 16:38

고래가 그랬어를 창간호부터,
그러니까 아들 지민이가 초등 1학년부터 읽었습니다.
지민이는 고래가그랬어가 오면 그 날 다 읽고,
좋아하는 지면부터 한 달 간 되씹고 되씹으면서 여러 번 읽습니다.
지민이 절반은 고래가그랬어가 기른 셈입니다.

물론 잘 자랐지요.
지민이는 비판이나 비평할 거리가 있을 때
매우 균형 있는 시각으로 보려 합니다.
글과 그림이 독특하고, 이타적으로 생각합니다.
모두가 고래가그랬어 덕분인 게지요.
감사합니다.

고래가그랬어의 영원한 발전을 빕니다.

지민 아빠, 박준규 드림


이런 편지 덕에 힘을 얻곤 한다. ^^

2008/10/31 16:38 2008/10/31 16:38
2008/10/30 2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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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중사가 재미있는 소설을 썼다.
이름하여 상상동물원

많이들 읽어보시길.. ㅎ

2008/10/30 20:43 2008/10/30 20:43
2008/10/30 02:31

몇 주 전 일. 최규석과 고래 부근 연탄집에서 한잔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물었다. “창비에 쓴 촌평 읽어봤어?” “예.” “혹시 기분 나빴던 건 아니고? ㅎ” “기분 나쁘긴요. 홈피에 퍼다 놓았는데요." “다행이네. 뭐랄까.. 입만 벌리면 민중 민중 하다가 이젠 시민만 말하는 놈들이 대한민국 원주민을 상찬하며 민중이 어떻고 저떻고 하는 게 영 비위가 상하더라고. 내 식구가 농락당하는 느낌이랄까. 최규석은 그 정도 자의식은 있다고 믿고 쓴 거지. 그래도 신간인데 판매에 도움을 주진 못할망정 찬물을 끼얹은 것 같아 좀 그렇더라고.” “야유라고 하셨잖아요. 실은 한해 더 연재했다면 그걸 해보려고 했어요.” 저녁에, 그의 홈피에 들어가 보니 퍼다 놓은 내 글 밑에 이렇게 적었더라. 하여튼 좌파고 예술가고 자기 판매가 미덕이 되어버린 시절에, 이 정도 자의식을 가진 만화가가 있다는 건 우리의 행복이다.

“저명한 인사의 리뷰라서 퍼 온 것은 아니고, 터뜨려볼까 하다가 여기에 담을 건 아니다 싶어 밀쳐뒀던 것을 잡아내니 목 좋은 곳에 돗자리라도 하나 깔아드릴까 싶다. 입신양명을 적극적으로 꿈꾼 적은 없다만 늘 그 꿈을 조심스레 관찰하고 있고, 국제적인 주목이라 할 만큼의 주목은 받지 못하고 있음을 밝혀둔다. 그리고 사실 뒷부분에 적은 내 가상의 아이에 대한 생각은 김규항 선생을 아버지로 둔 단이와 건이를 상상하며(아직 본 적이 없으니까) 쓴 글임을 고백한다.”

2008/10/30 02:31 2008/10/30 02:31
2008/10/29 17:58

고래 블로그와 고래동무 카페가 생겼다. 고래 블로그는 고래 기사, 교육 관련 칼럼, 부모들에게 유익한 정보, 고래 안팎의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이 실릴 것이다. 고래동무 카페는 고래이모 삼촌들의 커뮤니티다. 둘 다 아직은 썰렁한데 나도 짬나는대로 드나들면서 식구 노릇을 할 생각이다. 아, 고래동무 카페는 고래이모 삼촌만 가입할 수 있다. 고래이모 삼촌 가운데 아직 가입하지 않은 분은 지금 바로 가보시길. ㅎ

고래블로그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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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0/29 17:58 2008/10/29 17:58
2008/10/28 16:13

강풀
뭐라도 하고 싶었어요. 나도 언젠가는 아이의 아빠가 될 텐데.
만화 그리는 이로서 왠지 의무감 같은 게 들었거든요.

고왕림
조카 녀석들의 웃음이 10,20년 후에도 해맑을 수 있기를
‘짐승’같은 세상에서 이 아이들은 ‘사람’으로 커나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에서 작지만 힘차게 고래 위에 손을 올립니다.

김동일
아이들이 환하게 웃을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일에 함께 하고 싶었어요. 힘이 되고 싶었고요. 꿈을 품고 일구어 가는 사람들 곁에서 저도 힘을 얻고 싶었어요. 세상이 조금이라도 나아졌으면 좋겠다는 절실한 바람도 있고요. 무엇보다 더 힘을 내고 싶다는 <고래가 그랬어>의 목소리에 마음이 움직였어요. 전 <고래가 그랬어>를 사랑하는 독자니까요 ^^ 써 놓고 나니 마음이 흐뭇해지네요. ㅎㅎㅎ 힘내세요. 저도 힘내겠습니다. ^^

김명자  
살면서, 아이를 키우면서 ‘이 길이 맞나? 아닌가?’ 흔들리고 불안하게 가는 저 같은 사람은
믿을 만한 앞사람을 보고 따라가기도 하지요. 솔직히 고래를 잘 모릅니다만, 고래를 만드는 사람들이, 특히 발행인이 그 앞사람이라 믿어서 따라 갑니다. 따라 가는 것도 마음을 다 내려놓고 순전히 따라가면 그것이야말로 데려가는 사람이 가고자하는 곳으로 갈등 없이 기쁘게 함께 가는 방법일 텐데, 한눈팔면서 딴짓해 가면서 가니 어떨 땐 샛길로 혼자 새기도 하고 ‘어, 이 길이 아닌가벼?’ 하며 뒤쳐진 걸음을 재촉하기도 하고 앞서 가는 이를 놓친 채 ‘난 왜 만날 이 모양이야’ 하며 터덜터덜 가기도 하고 그럽니다. 그 길에서 앞서가던 이가 “숨 좀 고르고 다리 쉼 해가면서 뒷사람 모아 함께 가자” 하는 것 같아서, 저도 운 좋게 그 대열에 살짝 끼게 된 것이지요. 누구든 따라갈 앞사람을 잘 찾아 따라 가는 것도 복이고 능력이지요.^^ 되도록 한 눈 안 팔고 말입니다. 고래가 잘 되기를 바랍니다. 뭔지 잘 모르지만 지성껏 길을 개척해가는 분을 따라가 봅니다. ^^ 

김판수
곳곳에서 희망보다는 실망을 훨씬 많이 보게 되는 것이 오늘의 참담한 현실입니다. 저는, 인간이 인간을 서로 존중하고 배려하는 정의로운 사회를 꿈꾸는 지극히 평범한 생활인입니다. 김규항 선생님을 비롯한 여러분들의 뜻이 그러한 세상의 구현에 크게 기여하리라 믿습니다. 능력은 없지만 조그마한 힘이나마 보태고 싶습니다. 건투하십시오.

김형성
아이들에게, 너희가 희망이라고 말하는 것은 무책임합니다. 아이들이 희망을 꿈꿀 수 있는 세상을 주는 것이 우리가 희망을 갖는 길입니다. 나와 아이들의 내일을 위해 함께 고래를 꿈꾸는 사람들이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박희수
주주로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것에 대해 고래에서 일하시는 분들과 고래 독자들께 감사드립니다. 고래에서 일하시는 분들의 기쁨이 읽는 어린이에게 스며들기를, 그 아이들의 기쁨이 제게도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

백건칠
고래주주가 되기로 한건 정말이지 지금과 같은 고래를 계속 볼 수 있길 희망해서다. 정말 좋았던 건 ‘평생 구독자’가 된다는 것. 사실 난 고래주주로서의 경영 참여, 배당 등엔 관심 없다. 고래가 지금껏 해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잘할 것 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주주 참여에 선뜻 동의해준 아내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아직 다른 그 누구에게도 ‘고래주주’가 된다고 말하지 못하고 있다. 내가 말하면 대부분 ‘미친 놈’이라고 말할 게 빤한 일 일 테니까. “돈 없다면서 그 돈은 어디서 났어?” “머? 어떤 잡지? 너 정신 있냐?” “돈이 썩어 문드러졌지.”
유명회사 주식도 아니고 요즘 잘 나간다는 펀드도 아니니 저리 말할 게 틀림없다. 하지만 난 내가 선택한 것에 후회는 없다. 아니 왠지 뿌듯하다. 이제 송금하는 일과, 언제나 그랬듯이 고래를 기다리는 일로 일상이 즐거워 질 것이다.

손성은
우리 아이들이 진실을 알고 찾는 뜻이 채워지기를
몸과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는 깨달음과 영혼의 성장을 이루기를
세상의 작은 빛이 되어 또 다른 이웃 깨달음의 시작이 되기를
그리고 온 지구가 즐거워 웃기를
바라고 도움을 주는 <고래가 그랬어> 되세요.

송창국
연대하게 될 많은 이들과 함께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 싶습니다.
아이들의 미래에, 이윤이 아닌 희망에 투자하게 되어 참 기쁩니다.  

신준철
자식들에게 조기교육이다 뭐다 시키는 거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지만 이제 여섯 살에 접어들어 공주놀이에 흠뻑 빠진 딸아이가 어릴 적부터 적어도 하나는 배웠으면 한다.
고등학교 때 영어단어로만 배웠던 ‘Political Correctness’를 적어도 아빠가 배웠던 ‘Chariman’ 이 아니라 ‘Chairperson’이라는 단순개념이 아니라 인간에겐 남들을 평등하고 공평하게 대하고 또 스스로도 그렇게 인정받을 있는 권리가 있다는 것, 피부색과 언어의 차이로 차별받지 않고 사는 곳과 소득의 차이로 편견을 뒤집어쓰지 않을 자유가 있다는 것. 그리고 그런 권리와 자유를 얻기 위해 얼마나 오랫동안 얼마나 많은 희생이 있었는지, 그 소중한 권리와 자유를 어떻게 지켜나가야 하는 건지에 대해서도 알려주고 싶다.
박정희의 70년대가 한국을 무지몽매한 빈국에서 현재의 시대로 끌어올렸다는 여기저기의 주장에 대해 나의 자식들도 자라면서 듣고 접하겠지만, 청계천 바닥에서 그 암울한 시절을 불사른 전태일 덕에도 우리의 현재가 존재한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배울 기회가 있었으면 한다.

이경이
아이 셋 키우며 감기 몸살 걸린 주부가 컴 앞에 앉기 상당히 어렵네요.
남편 말마따나 고래이모나 할 걸 굳이 주주가 되려는 이유가 뭘까. 돈도 없으면서 왜 공고를 보자마자 덜컥 하겠노라 전화는 한 걸까. 혹시 뒤에서 조용히 후원하는 일보다 더 폼 나는 일이라 착각하고 있는 건 아닐까. 자리만 차지하고 앉아 뜻있는 사람들이 움직이는 데 걸리적거리는 존재가 되는 건 아닐까.
아이들의 미래와 교육에 대해 나름 고민하고 살지만 항상 2%가 부족했다. 너무 많은 길 앞에서 나침반을 잃은 상황이랄까. 고래는 그 부족한 2%를 채워 줄 용기 있는 잡지이다. 자유로운 잡지이다. 건강한 잡지이다. 아이들이 고래 오는 날만 손꼽아 기다리는 걸 봐도 알 수 있다. 나는 이 폼 나는 잡지의 폼 나는 주주가 될 것이다. 착각이어도 좋고 허영이라도 상관없다.
놀고 싶고 자유로워지고 싶은 아이들과 어른들에게 고래가 나침반 역할을 해 주리라 믿습니다. 사람답게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늘 고민하게 하는 잡지가 되리라 믿습니다. 그 마음들이 모여 세상을 변화 시킬 수 있음을 믿습니다. 힘내세요. 우리 집만 해도 고래 응원군이 다섯입니다요.

이명수 
인간은 누구나 어린 시절을 거쳐 어른이 됩니다. 그 말은 우리 안에 열 살 무렵의 ‘어린 나’가 있다는 의미입니다. 청장년을 거쳐 중년의 시대를 넘어 노년이 되어도 ‘어린 나’는 사라지지 않고 내 안 어딘가에 둥지를 틀고 있습니다.
<고래가 그랬어>는 ‘모든 누군가’의 어린 시절이 수몰지구가 되어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고향으로 될지 모른다는 위기감에서 출발한 잡지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아이들이 어른이 되었을 때 자신이 돌아갈 마지막 안식처가 물에 잠겨 사라지고 없다면 슬픈 일입니다.
<고래가 그랬어>는 우리 아이들의 미래의 안식처가 수몰지구가 되지 않도록 경종을 울리는 잡지입니다. 거기에 작은 힘을 보탭니다.
<고래가 그랬어>가 꿈꾸는 것이 무엇이든 결국 잘 될 것입니다. 건투 바랍니다. 

이봉렬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게 아이에게 죄가 되는 세상입니다. 그래서는 안 되잖아요.
우리 아이들은 동무끼리 나누고, 연대하고, 더불어 살 수 있었으면 합니다.
그러면 세상도 좀 살만 해 지겠지요.
고래를 키우는 일에 함께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이승리
곧 한 아이의 엄마가 됩니다.
그 아이가 자라면서 가족과 사회와 더불어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그 바람을 고래와 함께 하고 싶습니다.

이은경 (은이정)
새롭고 아름다운 아이들이
새롭고 아름다운 생각으로 만들어가는
새롭고 아름다운 세상!
<고래가 그랬어>가 도우리라 믿어요.

이재원
주주를 공모한다는 이야기를 봤을 때 꼭 해야만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성적으로나 감성적으로 가득하게 지지를 하고 있었거든요. 결정하고 나니 가슴이 펑펑 뛰었습니다. 금액이 물론 제 2개월 급여와 같아서 그렇기도 했지만, 사랑스러운 조카가 있는 삼촌으로서 지금의 모습을 잃지 않고 올바르게 자라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게 너무 기쁩니다. 고래운동을 지지합니다.

이주연
아이들이 이 땅에서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바위를 뚫는 한 방울의 물이 되고자 합니다.
단지 금전적으로만이 아닌 마음 가득한 곳까지 지지하는 마음으로 살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이진석
아이들의 맑은 미소와 고운 심성 속에 세상을 아름답게 바꿀 힘이 있다고 믿으며,
<고래가그랬어>에 작은 힘을 보탭니다. 

천대철
고래는 제 소중한 친구입니다. 길동무죠. ^^ 일자무식이라서 이것밖에 못 쓰겠어요~~

편해문

<가장 놀라운 일>

이 세상에서 무엇이 가장 놀라운 일인가
이 세상에서 무엇이 가장 무서운 일인가

아이들이 놀지 않는 것이다.
아니 아이들이 놀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마침내 아이들이 노는 것을 잊어버리는 것이다.

놀이를 오락으로 바꿔치기 하고
놀이를 게임으로 만들어 팔아먹고
그래서 마침내 놀이를 도박으로 뒤바꿔버리는
돈과 게임과 도박의 세상을 사는
어른들에게 말하고 싶다.

이 시대의 부모들이
아이들로부터 놀이를 떼어놓으려고
갖은 해코지와 훼방과 모함을 일삼았지만
놀이가 아이들 곁을 떠났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는 것을…….
놀이는 잠시도 아이들을 떠나지 않고 있었다는 것을…….
놀이와 아이들은 같은 다른 이름이라서 뗄 수 없다는 것을…….

이것이 내가 가진 놀이에 대한 긍정이다.

하창익
우리 아이들이 마주하게 될 세상의 모습이 좀 더 명징해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고래의 발걸음이 그런 세상에 대한 희망을 아이들에게 전해줄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같은 뜻을 지닌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가슴이 벅차오릅니다.

홍세화
아이들을 시장에 내던지는 현실에서 우리의 미래는 캄캄합니다.
미래를 일구는 어린이 잡지를 만드는 일에 작은 연대의 뜻으로 동참합니다.
<고래가그랬어>를 사랑하는 많은 분들이 함께 하기를 바라며..

(1차 공모 주주들이 보내 온 '참여의 말')

2008/10/28 16:13 2008/10/28 16:13
2008/10/24 00:02

나는 김단에게 소개는 많이 해도 뭘 보라고 강요하진 않는데(타인의 취향을 존중해야 한다고 가르쳐온 걸 솔선하느라 ㅎ) 녀석은 나에게 막 강요한다. 분명히 재미있는데 아빠는 왜 안 보냐는 거다. 폭력적이지만 완벽한 논리다. 얼마 전 하일권의 <삼봉이발소>를 보라고 강요하더니 엊그젠 <3단합체 김창남>을 강요했다. 도리 없이 1편을 보다가 그 자리에서 16편까지 내리 보곤 “다음 업데이트가 언제냐?” 물었다. 이야기도 재미있지만 그림이 워낙 좋아서 내내 흐뭇하다. 웹툰이지만, 그 공들인 애니메이션 <철콘근크리트>나 <파프리카>가 떠오를 만큼 데생과 색이 깔끔하다. 하일권 만화의 중심은 늘 사람 취급 못 받는 사람이다. 주성치의 만화, 아니 영화처럼. 이 젊은 작가는 어쩌다 그리 일찍 애끓는 마음까지 갖게 되었을까?

2008/10/24 00:02 2008/10/24 00:02
2008/10/23 14:23

김건이 웬일로 이번 중간고사는 열공을 해보겠다고 했다. 녀석은 1학기 중간고사에 비해 기말고사에서 평균점수가 20점이나 떨어져서, 제 아비에게서 “좀 심한 거 아니냐?”라는 핀잔을 들은 바 있다. 어쨌거나 지가 알아서 문제집도 풀고 하는데, 그저껜 틀린 문제를 살펴보는 걸 옆에서 좀 거들어 주었다. 워낙 느긋한 성격이라, 몰라서 틀리는 경우보다는 문제를 대충 읽어 틀리는 경우가 더 많았다. 전보다는 나아진 것 같아 적이 흐뭇해하면서 보아 가다 한 문제에서 뒤집어졌다. 고추잠자리가 ‘나’로 의인화되어 “걱정 마세요, 난 나뭇가지에 앉아 있으면 다들 단풍잎인 줄 알아요.” 어쩌고 하는 지문이다. 문제는 고추잠자리와 단풍잎은 어떤 공통점이 있다는 것인가? 답은 당연히 붉은 색. 그런데 김건은 답란에 “돌연변이”라고 적어놓았다.  터지는 웃음을 참지 못하며 “이 바보야. 단풍잎이 나뭇잎의 돌연변이고 고추잠자리는 잠자리의 돌연변이냐?” 손가락으로 김건의 옆구리를 찌르니 간지럼을 많이 타는 녀석은 금세 떼굴떼굴 방바닥을 구른다. 밤에 혼자 그 일에 대해 생각했다. ‘공부를 잘 한다는 건 결국 시험을 잘 본다는 것이고, 시험을 잘 본다는 건 시험 문제를 많이 맞힌다는 것이다. 그런데 시험 문제를 맞힌다는 건 그 문제가 묻는 지식을 가진 것이기도 하지만 그 문제가 어떤 답을 원하는지를 파악하는 것이기도 하다. “돌연변이”라는 답은 분명히 틀린 답이지만, 그런 답을 적는 생각까지 틀린 건 아니다. 물론 “돌연변이”라고 쓰는 아이를 “붉은색”이라고 써서 점수를 더 얻게 만드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점수를 더 얻는 대신 꼭 그만큼의 손실이 있을 것이다. 개성과 상상력이 그만큼 깎여나가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일이 반복될수록 아이는 제 나름의 개성과 상상력이 없는 사람으로 변해간다.’ 나는 김건이 공부를 아주 잘 할 수 있는 스타일은 아니라는 걸 인정하는 대신, 녀석의 “돌연변이”가 어떻게 발전해나갈지 흥미롭게 지켜보기로 했다.

2008/10/23 14:23 2008/10/23 14:23
2008/10/21 2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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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오백여명의 아이들이 보낸 설문지를 며칠 동안 아르바이트까지 동원해서 다 입력했다. 늦은 밤, 사무실에 남은 외계가 문자메시지를 보내왔다.

고래 거실에 놓인 설문지들을 보니까 뭐랄까 좀 슬픈 느낌입니다.
왜.
아픔이 쌓여있는 느낌이 들어서요.

2008/10/21 23:22 2008/10/21 23:22
2008/10/20 21:15

촛불은 아름다웠다. 어른들이 ‘세상이 다 그런 거지’ 뇌까리며 느물거릴 때 촛불을 들기 시작한 여중생들도, 아이들 손을 잡고 나온 사람들이 이룬 거대한 대열도, 그들이 보인 유쾌한 직접 민주주의의 풍경도. 제정신을 가진 누구도 그 아름다움을 부인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왜 이렇게 달라진 게 없을까?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외치고 행동했는데 이렇게 달라진 게 없을 수 있을까? 딱히 달라진 건 없더라도 사회진보의 열기가 살아나는 계기라도 되었어야 마땅한데, 오히려 다들 맥이 빠져버린 모습이니 대체 어찌된 일일까? 어디에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그렇지만 다들 너무 이기적인 것 같다. 촛불 시위 피켓엔 “이명박 너나 미친 소 쳐먹어” ''내 인생 좀 펼쳐보려고 하니 광우병 걸렸네“ 등 내가 죽고, 내 이웃이 죽고 우리 국민이 죽는 문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조금 더 나아간다 해도 친미 정부, 자국민을 생각하지 않는 정부를 탓하는 지점에서 끊긴다. 대한민국 안에만 들어오지 않으면 된다는 생각들이다. 그러나 지구 위 어딘가에서 미친 소와 병든 닭, 그리고 오리는 여전히 아프다. 이런 병이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 누가 어떻게 끊어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하는 사람은 집회현장에는 거의 없었다. 좁은 우리에 꽉꽉 채워 넣어 면역력을 떨어트리고 지구상의 모든 인간이 충분히 먹을 만큼 많은 곡식을 소에게 먹여 소수가 먹을 고기를 만들고, 그도 모자라 소가 소를 먹어 병들게 만든 것. 이것이 가장 근본적인 문제인데 말이다.”(인디고잉 12호)

촛불의 열기가 한창이던 즈음 나온 글이다. 글을 쓴 사람은 저명한 생태주의자도 논객도 아닌, 부산에 사는 한 고등학생이다. 우리는 이 ‘아이’의 견해를 통해 '광우병 소 반대' 구호는 '우리 동네에 쓰레기 소각장 반대' 구호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아프게 깨닫게 된다. 쓰레기가 처리되는 방식을 되돌아보며 생태주의적 대안을 제시하려는 게 아니라 내가 사는 동네에선 쓰레기를 처리할 수 없다는 이야기와, 광우병 소라는 현상을 통해 자본주의적 축산 산업을 근본적으로 되돌아보자는 게 아니라 나와 내 새끼는 광우병 소를 먹을 수 없다는 이야기는 말이다. 한국의 지식인들 가운데 이 ‘아이’ 앞에서 부끄럽지 않을 사람이 몇이나 될까? 정상적인 사회란 아이들이 지식인에게서 배우는 사회지 지식인이 아이들에게서 배우는 사회가 아니다.

물론 지식인들은 말한다. “촛불은 광우병 소라는 일개 사인이 아니라 이 고통스러운 현실을 만들어낸 이명박 정권을 공격하는 더 큰 의미가 있었다.” 맞는 말이다. 촛불은 그랬다. 그런데 과연 이 고통스러운 현실은 모두 이명박이 만들어낸 것인가? 노동자들은 하루가 다르게 불안정 노동층으로 전락하고 농민들은 국가에 의해 공식적으로 뿌리 뽑히며 청년들은 실업자로 사회에 진출하며, 불안감에 젖은 부모들은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아이들을 ‘경쟁의 지옥’으로 내모는 이 현실은 말이다. 나 역시도 ‘이 모든 게 쥐박이 때문’이라고 말하면 마음만은 개운하겠지만, 사실은 아니다. 이명박은 나쁜 대통령이지만, 불과 몇 달 동안 이 모든 걸 뚝딱 만들어낼 만큼 전능한 대통령은 아니다.

촛불을 음해하는 놈들은 말한다. “미국산 소고기 문제는 이미 노무현 정권 시절 다 진행이 된 것이고 이명박 대통령은 사인만 했다.” 그들이 그런 말을 하는 더러운 의도와는 별개로 그 말은 사실이다. 오늘 우리의 삶을 옥죄는 이 고통스러운 현실은 이명박이 뚝딱 만들어낸 게 아니라 꽤 긴 시간 동안 진행되어 온 어떤 거대한 흐름의 결과다. 올해 초 미국에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터지자 사람들은 의아해했다. 아니 미국 경제가 고작 하층계급의 부실 대출 문제로 흔들린단 말인가? 그러나 그 문제는 미국을 넘어 전세계로 파급되자, 사람들은 세계의 경제가 하나로 구조로 연결되어 있으며 그 구조가 근본적인 위기를 맞고 있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30여년 전, 레이건과 대처에 의해 시작되어 자라온 ‘신자유주의 세계화’라는 괴물이 말이다.

이 고통스러운 현실은 단지 이명박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그 괴물의 아가리에 들어앉아 있기 때문이다. 그 괴물의 아가리에 한국 사회를 집어넣은 건 ‘쥐박이’가 아니다. 한국이 군사 파시즘에서 빠져나와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탑승하면서 시작된 일이며, 본격적으로는 김대중 노무현 정권 10년 동안 진행된 일이다. 이명박에겐 책임이 없고 김대중 노무현 책임이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김대중에서 노무현으로 그리고 이명박으로 줄기차게 이어지고 있는 일이라는 이야기다. 김대중 노무현 정권은 민주적이고 개혁적인 정권이고 이명박 정권은 수구기득권 세력의 정권인데 무슨 소리냐고 반문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바로 그게 문제다.

우리가 사회문제를 이야기할 때 늘 미궁에 빠지는 가장 큰 이유는 ‘정권’에 지나치게 집착하기 때문이다. 마치 고대 사회에서 정치란 단지 ‘왕이 누구인가’의 문제였던 것처럼 우리는 ‘정권’과 ‘대통령’에 집착한다. 그러나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후기 자본주의 사회의 지배자는 ‘정권’이 아니라 ‘정권을 포함하는 훨씬 더 넓고 복잡한 체제‘다. 노무현 정권과 이명박 정권은 분명히 ’다른‘ 정권이지만 ’같은‘ 지배 체제의 일원일 수 있는 것이다. 한국에서 지배체제의 그런 ‘신묘한’ 정체는 지난 10여 년 동안 ‘양식 있는 사람들’에게서 입버릇처럼 뇌까려진 ‘진보개혁 세력’이라는 말에 집약되어 있다.

사실 진보개혁 세력이라는 말은 개념상으로 성립할 수 없는 말이다. 진보 세력이란 좌파를 일컫고 개혁세력이란 자유주의 우파 세력을 일컬으니, 진보개혁 세력이라는 말은 결국 ‘좌파우파’ 세력이라는 말인 것이다. 그런 ‘말이 안 되는 말’이 그토록 진지하게 사용되는 연원은 과거 군사 파시즘 체험에 닿아 있다. 군사 파시즘 시절 한국 사회문제의 본질은 물론 군사 파시즘 세력이었다. 그 시절 한국 사회는 군사파시즘 세력과 민주화 운동 세력이 대립하는 구조로 되어 있었다. 문제는, 군사 파시즘이 물러나고 절차적 민주화가 진행되기 시작한 후에도, 말하자면 한국사회의 문제의 본질이 군사 파시즘이 아니게 된 다음에도 여전히 그 구도가 이어졌다는 것이다.

한국사회는 민주화를 통해 국가 권력이 자본(재벌!)을 거느리던 체제에서 자본이 국가 권력을 거느리는 체제로 바뀌기 시작했다. 한국사회 문제의 본질은 파시즘이 아니라 ‘자본화’가 된 것이다. 자본화의 시절을 맞아 옛 군사파시즘 세력은 대중들, 특히 젊은 세대의 지지를 잃고 급기야 10년 동안 정권을 잃기도 하지만, 탐욕의 결정체들답게 자본화의 흐름 자체에는 매우 빠른 속도로 적응해나갔다. 그들은 처음엔 인민을 대놓고 누르고 밟을 수 없는 세상이 난감했지만 이내 더 자유롭고 효율적인 부의 축적이 가능한 세상임을 깨달았던 것이다. 옛 민주화운동 세력은 두 가지 세력으로 분화했다. 하나는 자본화의 흐름을 수용하는 개혁세력이다. 다른 하나는 자본화의 흐름을 거부하는 좌파 세력이다.

한국사회는 당연히 자본화, 즉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수용하는 세력과 반대하는 세력으로 나누어져야 했다. 군사파시즘 출신 세력과 민주화운동 출신의 개혁세력이 구우파와 신우파로서 우파 진영을 이루어, 좌파와 맞서는 구도로 말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군사 파시즘 시절의 구도가 그대로 이어졌다. 구우파가 우파를 맡고 신우파와 좌파가 이른바 ‘진보개혁세력’이라는 이름으로 좌파를 맡는 해괴한 구도를 이룬 것이다. 게다가 대형 시민운동단체를 비롯한 이런저런 개혁운동이 대중들의 각광을 받으면서, 좌파세력은 ‘철지난 몽상에 빠진 비현실적인 사람들’로 치부되어 버렸다. 말이 ‘진보개혁’ 세력이지 그 주도권은 거의 전적으로 개혁세력이 쥐게 된 것이다. 결국 한국사회는 자본화의 시절을 맞아 정작 자본화를 반대하는 세력은 배제된 채 자본화를 찬성하는 두 세력이 각각 우파와 좌파를 자임하며 싸우는 괴상한 상황이 되어버렸다.

그게 김대중 정권 이후 10년 동안의 상황이다. 구우파와 신우파 세력은 옛 군사 파시즘 시절에 쌓인 감정과 정치적 민주화에 대한 입장 차이로 서로 ‘수구기득권 세력’이니 ‘좌파 빨갱이들’이니 욕하며 원수처럼 으르렁거렸지만 신자유주의 자본화는 아무 문제없이 진행되었다. 자본화는 개혁세력, 즉 신우파가 집권한 10년 동안 본격적으로 진행되었다. 신우파는 한국의 거의 모든 양식 있는 사람들을 예의 ‘진보개혁세력’이라는 이름으로 묶어 구우파(수구기득권 세력이라 일컬어지는)와의 싸움에 전념하게 해놓고는, 차곡차곡 신자유주의 자본화를 진행한 것이다.

인민들은 당연히 고단해져갔다. 인민들로선 이상한 일이었다. 분명히 세상은 좋아지고 있는데, 민주화가 되고 민주화운동 출신 인사가 대통령이 되고 조선일보 따위 ‘수구꼴통들’이 젊은 세대에게서 외면 받는 형국까지 보이는데, 갈수록 삶은 고단해져만 가니 말이다. 한치 앞을 볼 수 없는 상황까지 내몰리자 인민들은 이게 다 ‘좌파정권 탓’이라고 믿게 되었다. 결국 이명박 씨가 압도적인 표차로 대통령에 당선되며 구우파 세력은 10년 만에 신우파 세력을 누르고 다시 집권한다. 상황은 좀 더 심각해져버렸다. 구우파가 집권하든 신우파가 집권하든 자본화가 지속되는 건 본질적으로 달라질 게 없지만,  구우파가 다시 전면에 부각되면서 자본화라는 지배체제의 본질은 훨씬 더 쉽게 은폐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촛불 광장에서 진보적임을 자처하는 지식인들은 “이명박이 한국사회를 20년 전으로 되돌리고 있다”고 소리쳤다. 물론 구우파들은 신우파에 비해 훨씬 더 거칠고 추악한 외양을 갖고 있다. 박정희나 전두환 시절에서 금방 도착한 듯한 꼴통들도 적잖이 있고 그들에 의해 시대를 거꾸로 흐르는 엉뚱한 일들이 일어나기도 한다. 그러나 바로 그런 꼴통들의 행태야말로 지배체제가 우리에게 던진 미끼다. 20년 전으로 되돌리고 있다면, 그렇다면 10년 전 5년 전은 괜찮았단 말인가? 이명박 정권은 부자 편만 드는 몹쓸 시장주의 정권이지만 노무현이나 김대중 정권은 노동자와 서민의 정권이었다는 말인가? “이명박이 한국 사회를 20년 전으로 되돌리려 한다”는 말은 하나의 선동적인 수사로서 유용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 그렇게 생각하여 흥분하는 건 우리 스스로 20년으로 돌아가 주겠다는 말이며, 20년 동안 한층 세련되어지고 치밀해진 지배체제에 고스란히 먹히겠다는 것이다.

우리는 개혁이 사회진보로 가는 현실적인 과정이라는 잘못된 믿음이 오늘 이 현실을 낳았다는 사실을 ‘이제라도’ 인정하고 정신을 추슬러야 한다. 정치적 민주화를 근본적으로 되돌리기는 게 불가능해진 이후, 지배체제의 목표는 한국사회를 군사파시즘 시절로 되돌리는 게 아니라, 끝없는 자본화를 진행하여 무한정 부를 축적하는 데 있다. 현재 지배체제에게 가장 중요한 건 오늘 한국 사회 문제의 본질이 자본화라는 사실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은폐하는가, 하는 것이다. 그렇게 볼 때, 지배체제 입장에서 이명박 정권은 대개의 진보 지식인들의 말하듯 ‘무능하고 쓸모없는 정권’이 아니라, 오히려 오늘 한국 사회에서 존재하는 모든 정의감과 사회의식과 사회진보의 열기를 모조리 흡수해주는 매우 ‘유능하고 기특한’ 정권이다.

촛불 광장 그 몇 달 동안 ‘모든 게 이명박 때문’이라는 논리에서라도 벗어난 예는 단 한번, 불교 집회 때 수경 스님이 낭독한 108배 참회문뿐이었다. 기막힌 일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촛불 광장에 아이 손을 잡고 나온 모든 사람들을 지배체제의 정체를 파악하지 못하고 ‘쥐박이’ 욕만 했다고 비난할 순 없다. 사회에 대해 공부하고 연구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는 지식인들도 지난 10년 동안 ‘진보개혁 세력’이라는 말이나 뇌까리며, 개혁을 사회진보로 가는 현실적인 과정이라고 철석같이 믿고 구우파와 싸우는 일을 사회진보의 충분한 실천이라고 생각한 판에, 사회 공부는커녕 먹고사는 일에 치어 정신이 없는 사람들이 어떻게 그보다 나을 수 있겠는가? 그들이 모든 분노를 ‘쥐박이’에게 집중하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지식인들은, 특히 진보 혹은 좌파를 자처하는 지식인들은 경우가 다르다. 그들은 그 소중한 분노가 이명박이라는 인물에만 집중되어 소모되어버리지 않도록 도와야 했다. 물론 그런 행동은 분노의 열기에 젖은 사람들에게서 오해를 받거나 전선을 흐트러트리는 짓으로 비난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성이란, 바로 그런 상황에서 ‘오해와 불편을 무릅쓰고’ 문제의 본질을 드러내는 것이다. 슬프게도, 촛불의 열기 속에서 지성이란 그저 거대한 분노의 대열에 편승해 깃발을 꼽아대는 것을 뜻했다. 생각이 모자라서 그렇게 한 것이든, 누구 말마따나 포퓰리즘을 통해 제 세속적 이해를 도모한 것이든, 분명한 건 그 열기 속에서 지성은 작동을 멈추었다는 것이다.(계속) (프레시안)

2008/10/20 21:15 2008/10/20 21:15
2008/10/19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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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 다락방 내 책상 옆 벽이 너무 휑해서 뭘 붙일까 하다가 고른 이오덕 선생님 소포 봉투. 모양새가 어지간한 액자보다 나은데 선생이 느껴져 더욱 좋다. 아, 선생의 글씨는 선생과 닮아 마치 나무들 같구나..

2008/10/19 15:40 2008/10/19 15:40
2008/10/15 11:57

흔쾌히 도와주기로 한 교사분들 덕에 고래 설문은 잘 진행되고 있다. 감사드린다. 한 교사의 편지.

5학년 34명 아이들과 함게 지내는 초등교사입니다.
우리반 아이들 이번 주 건의 사항.
"고래가 그랬어를 더 갖다 주세요."
제가 집에서 아이들이 보는 것 1권에서 30호까지 교실에 갖다 놓았는데
이 녀석들이 이제 어느 정도 다 보았나봅니다.
더 갖다달라는군요.
"너희들 하는 것 보고."
하고 약을 올렸죠.
설문에 우리 반 아이들과 참가하고 싶어요.

2008/10/15 11:57 2008/10/15 11:57
2008/10/15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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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의진 첫 개인전.
22일부터 28일까지 인사동 타블로(02 723 6081)

그림을 미리 좀 봤는데 참 좋더라.
임의진 그림이면서 임의진 그림을 넘어선 그림들..

2008/10/15 09:40 2008/10/15 09:40
2008/10/14 22:12

가까운 사람들(후배, 제자, 선배 등)들에게서 물건을 뺏는 습성이 있다. “꼭 필요하지 않은 물건은 필요한 사람에게 주어야 한다”는 변종 공산주의 원칙을 구현한다는 미명 아래 자행되는 갈취 행위인데, 대개 이런 대사로 시작된다. “한번 벗어볼래?” 조중사는 수년 동안 스위스아미 칼, 선글라스, 조율기 등을 얼떨결에 빼앗기더니 이젠 내가 그의 물건을 쳐다보기만 해도 “안 돼요.” 움찔하며 해당 물건을 움켜쥔다. 사람들은 내가 그렇게 입수한 모든 물건들을 한 가지 브랜드명으로 통칭한다. “BSG”(뺏은거). 어쨌거나 그런 갈취 행위가 절교나 고소고발로 비화하지 않고 지속될 수 있는 건, 예의 변종 공산주의 원칙을 내가 솔선하기 때문이다. 단과 건에게도 “꼭 필요하지 않은 물건을 가지고 있는 건 나쁜 일”이라고 늘 가르쳐왔다. 며칠 전, 내 BSG 역사에 새로운 장이 열렸다. 처음으로 초면의 사람의 물건을 빼앗는 데 성공한 것이다. 아래 개성구경 사진에서 맨 왼쪽 사람(이장길 형)이 입은 야전잠바는 지금 나에게 있다. 첫 대사가 좀 다르긴 했다. “좀 크지 않아요?”

2008/10/14 22:12 2008/10/14 22:12
2008/10/13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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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람 다닐 처지는 아니지만, 권유한 이에 대한 존중심에 기대어 개성 구경을 갔다. 종일 휴대폰을 반납하고 박연폭포, 선죽교를 구경하고 13첩 반상을 먹으러 다니는 것도 좋았지만, 버스로 시내를 지나다니며 그곳 사람들 특히 아이들을 보는 즐거움은 오길 참 잘했구나 싶을 만큼 컸다. 늘 하는 생각이지만 그들을 보며 새삼 다시 든 생각은, 남한 사람들이 북한 사람을 그토록 대놓고 우습게 보는 이유가 무엇일까 하는 것이다. 교육 문제는 생지옥이고 집을 마련하는 데 반생을 바치며 아이를 낳으면 죄 없는 친정어머니에게 떠맡기거나 제 월급을 모조리 써서 보모를 구해야 하는 사람들이, 교육과 의료가 무상이고 결혼하면 국가에서 집을 주며 동네나 직장 탁아소에 아이를 맡기고 마음 놓고 일하는 사람들을 우습게 보는 이유는 말이다. 물론 부자라면 남한만 한 낙원도 없지만. (북측 안내원과 남측 아저씨들.)

2008/10/13 18:30 2008/10/13 18:30
2008/10/07 21:31
사회적 악은 그 전모가 누구나 알아볼 수 있는 형태로 드러나기도 있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후기 자본주의라는 지랄 같은 마법적 복잡성의 사회에선 대개 그 일부만 불거져 드러난다. 그 말은 그 불거진 일부로 인해 나머지 부분이 은폐되기 십상이라는 뜻이며, 대개의 사람들은 그 불거진 부분에 집중하는 걸로 충분한 사회비판을 한다고 생각하게 된다는 뜻이다. 지성이란 바로 그때 그 불거진 부분 덕에 가리어진 사회적 악의 나머지 부분을 폭로하여 사회적 악의 전모를  드러내는 것이다. 오늘 한국사회로 말하자면 지성이란 대개의 양식 있는 사람들이 이명박이라는 불거진 악에만 집중할 때 이명박 덕에 가리어진 사회적 악의 나머지 부분을 폭로하여 사회적 악의 전모(물론, 신자유주의 지배체제)를 ‘오해와 불편을 무릅쓰고’ 드러내는 것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오늘 한국에서 지성이란 그 불거진 악에 집중하는 거대한 대열에 편승해 깃발을 꼽아대는 것을 뜻한다.
2008/10/07 21:31 2008/10/07 21:31
2008/10/04 02:24

고래 5주년호(통권 60호) 특집으로 아이들 설문조사를 싣는다. 오늘 한국 아이들의 삶과 생각을 조금이라도 세상에 드러내주려 한다. 신뢰도나 오차 면에서 조사회사에 의뢰하는 수준 이상으로 진행하기 위해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고 있다. 중요한 건 실제 아이들에게 설문을 진행하는 것인데 현직 초등학교 교사들의 도움이 필요하다. 전국의 초등 4, 5, 6학년 아이들 1천여 명(대략 30학급)을 대상으로 하며, 도움을 주실 교사분은 메일을 보내주시길 바란다. 꼭 담임을 맡고 있는 학급이어야 하는 건 아니다. gyuhang@gmail.com

2008/10/04 02:24 2008/10/04 02:24
2008/10/01 16:40

나온 지 오래 되지 않았으면서, 쉽고 짧으면서, 감동적이면서, 삶에 약이 되는 책을 권해달라는 부탁을 받으면 가난한 휴머니즘을 권한다. 장 베르트랑 아리스티드는 좌든 우든 제도정치하려는 놈들은 일단 상한선이 낮은 인간들이라는 내 오랜 편견을 상쾌하게 깨트린 사람이다.

2008/10/01 16:40 2008/10/01 16: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