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7'에 해당되는 글 16건

  1. 2008/07/31 추천 음반
  2. 2008/07/31 현정과 홍여사
  3. 2008/07/29 Classics in Lego
  4. 2008/07/28 편안 (1)
  5. 2008/07/28 충만 (1)
  6. 2008/07/27 용담정
  7. 2008/07/22 잠시 알리는 말씀
  8. 2008/07/20 노무현 단상
  9. 2008/07/14 책 사세요
  10. 2008/07/11 좋은 교사
  11. 2008/07/11 노동자 엄마의 고래 추천사
  12. 2008/07/10 인디고 아이들의 견해
  13. 2008/07/09 울산 강연
  14. 2008/07/06 '요구르트'냐, '사회주의'냐?
  15. 2008/07/05 경성이
  16. 2008/07/03 팜플렛
2008/07/31 20:50

결국 기대가 지나쳤다는 말이겠지요.

냉소는 금물이지만 냉정해야 합니다.
그래야 오래 갈 수 있으니까요.

이명박이 문제지만
이명박만 문제는 아니라는 점에 대해
더 많이 고민하길 권합니다.

석 달 운동하고 실망해서야 되겠습니까.
제 주변엔 삼십년 넘게 운동한 사람들, 도 많습니다.
그것도 퇴근 후 광장에서 하는 운동이 아니라
운동이 직업인 삶인 사람들 말입니다.

함께 그런 사람들을 생각하면서
위로와 차분함을 얻길 바랍니다.

책과 음반을 추천하라고요..
여름인데 책은 좀 쉬고 ^^ 음반 하나 들어보세요.

임의진, 방랑길 (폴리폰)

고독과 상처, 그리고 연민과 위로들이 숨쉬는
음악들.. 좋습니다.


김규항 드림


(한 고꿈세 식구에게 보낸 답장)

2008/07/31 20:50 2008/07/31 20:50
2008/07/31 03:29

현정이 천주교 서울주보에 쓴 글을 읽으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3년 전 예수전 강의엔 언제나 표정이 없는 여자와 어딘가 병들어 보이는 남자가 꼭 앞줄에 않아 있었다. ‘둘이 비슷한데 꼭 옆에 앉네’ 생각하곤 했는데 알고 보니 부부였다. 현정과 홍여사. 이제 둘에게서 예전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표정이 없던 사람에겐 웃음이 병들어보이던 사람에겐 에너지가 넘친다. 교회장사꾼들이 ‘예수 믿으면 구원 받는다’는 말을 거짓말로 만들어버렸지만, 두 사람을 보면 그 말은 사실이다.

2008/07/31 03:29 2008/07/31 03:29
2008/07/29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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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고 미니피규어로 만든 이런저런 재미있는 사진들. 잘 알려진 고전 사진들을 재현한 것, 스타워즈 장면을 재현한 것 등이 있는데 모두 셋업 장면이 링크되어 있고 고전 사진엔 원래 사진까지 링크되어 있다. 스타워즈 사진들엔 유난히 스톰트루퍼가 많이 등장한다. 영화에서 스톰트루퍼는 워낙 떼로 등장해 그다지 인상적인 캐릭터는 아니지만 조형적으로 뛰어난 건 사실이다. 하긴 스타워즈 캐릭터 가운데 조형적으로 뛰어나지 않은 캐릭터가 있을까만. (브레송의 ‘생 라자르역 뒤’를 재현한 사진. 브레송의 사진엔 이 남자의 동작과 벽에 붙은 포스터의 발레리나 동작이 일치하는데 그것까지 재현하긴 어려웠던 모양이다.ㅎ)

2008/07/29 10:18 2008/07/29 10:18
2008/07/28 11:58
요즘 술을 잘 안 하는데 호남이 송별회로 예수전 식구들과 모처럼 얼큰해지도록 마셨다. 유쾌한 대화를 이어가는데 한 사람이 제 친구가 했다는 말을 꺼냈다. “선생님 글 읽을 때마다 ‘이분은 이렇게 철저하고 흔들림 없이 살려면 얼마나 힘들까’ 싶대요.” 내가 입을 떼기도 전에 몇이 입을 모아 말했다. “아닌데, 옆에서 보면 누구보다 편안하신데.” 나를 지사적 인간이라(혹은 지사연 하는 인간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실제 나는 그쪽과는 거의 관계가 없다. 나는 철저하고 흔들림 없이 살지도 않거니와, 내가 여느 사람들과 조금이라도 다르게 사는 게 사실이라면, 그건 그렇게 사는 게 ‘옳기 때문’이 아니라 ‘편안하기 때문’이다.
2008/07/28 11:58 2008/07/28 11:58
2008/07/28 07:02
인생에서 가장 충만한 순간은 아무것도 가진 게 없던 젊은 시절이지 모든 것들을 충분히 가진 시절이 아니다. 문제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그걸 늙어죽을 때가 되어서야 깨닫는다는 것이다.
2008/07/28 07:02 2008/07/28 07:02
2008/07/27 1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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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앞머리엔 예수가 하느님의 음성을 들으며 자신의 소명을 확인하는 장면이 있다. 그걸 읽을 때면 늘 최제우가 용담정에서 ‘한울님’의 음성을 들으며 득도하는 장면이 떠오른다. 용담정에 갔다. 경주를 좋아하니 갈 기회가 여러 번 있었던 셈이지만 여태 한 번도 가지 않았던 건 그곳을 신비 속에 남겨두고 싶어서였을까. 그러나 이번엔 비도 오고 해서(난 비가 잔잔히 내리는 숲길에 한없이 무력하다) 별 거리낌 없이 갔다. 역시, 기운이 예사롭지 않은 곳이었다. 용담정 입구에 앉아 물끄러미 나를 들여다보는 두꺼비.

2008/07/27 12:58 2008/07/27 12:58
2008/07/22 14:58

책을 알라딘 같은 곳에서 사면 더 편할 수도 있겠지만 이렇게 공동구매하면 훨씬 도움이 됩니다. 판매수익의 1퍼센트가 투쟁기금으로 쓰인다는 건 아실 겁니다. 그런데 후마니타스에서 노조에 책을 정가의 65%(7800원)에 공급합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공구를 통해 책을 사면 서점 마진이 될 돈을 투쟁기금으로 내는 셈이 됩니다. 권당 만원이니까 2천원 가량이 투쟁기금이네요. 근사하지요? ^^ (우소꿈 공동구매 페이지에 단 덧글)

2008/07/22 14:58 2008/07/22 14:58
2008/07/20 10:05
어떤 이가 메일에서 왜 그리 노무현을 증오하느냐 무슨 원한이라도 있느냐고 물었다. 이따금 듣는 소리기도 해서 몇 자 적는다. 증오와 원한.. 글쎄, 나는 그에게서 인간적으로는 얼마간의 호감마저 느낀다. 한국 사회에서 그 연배의 ‘성공한 아저씨’(란 사람이라기보다는 그냥 ‘잔머리가 부착된 비계덩이’들이다) 가운데 그 만한 사람이 그리 흔한가. 만일 그가 작은 기업체 사장이나 단체 대표였다면 꽤나 근사했을 것이다. 나는 그의 개인적 인격이 아니라 사회적 인격을 말하는 것이다. 그가 대통령으로서 이끈 ‘개혁의 정체가 신자유주의 자본화였다’는 건 이젠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공공연한 사실 아닌가. 그런데 내 말에서 증오와 원한이 느껴졌다면 그건, 내가 그 사실이 공공연해지기 훨씬 전부터 그 사실을 말한 것에 대한 못마땅함이거나, 그 사실이 공공연해진 지금도 여전히 그 사실을 정직하고 겸허하게 인정하고 싶지 않은 마음에서 나온 것일 게다.
2008/07/20 10:05 2008/07/20 10:05
2008/07/14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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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소박한 꿈을 응원해줘
판매 수익의 일부는 이랜드 노동자들의 투쟁기금으로 쓰인다. 많이들 사시길. 행여, 읽지도 않을 책을 좋은 뜻에서 구입하라는 걸로 오해할까 싶어 덧붙이면, 이 책은 참 재미있다. 감동적이라든가 코끝이 찡하다든가 하는 건 구태여 말할 필요가 없고. 형편이 되는 분은 열부 쯤 사서 주위에 나누어주면 두고두고 좋은 소리를 들을 게 분명하다. ^^ (고꿈세에서 공구 중이다.)

2008/07/14 11:51 2008/07/14 11:51
2008/07/11 20:51

교사 강연에서 꼭 나오는 질문은 학교 안에서 자신의 교육관을 구현하기가 막막하다, 는 것이다. 나는 대개 이렇게 말한다. “당장 세상이 변혁되지 않는 한 제도교육 안에서 활동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교사는 자기 학급에서 변화된 세상을 일부나마 선취할 수 있습니다. 가치관의 전복이지요. 다른 학급에서 별 볼일 없는 아이가 이 반에선 가장 근사한 아이가 되고 다른 학급에서 아니 세상 어디서나 대접받는 아이가 이 학급에선 한심한 녀석이 될 수도 있습니다. 물론 아이들은 학년이 바뀌면 전혀 다른 교사를 만나겠지요. 그러나 그 전복의 체험이 아이의 인생에 얼마나 소중한 양분이 될지 생각해본다면 굉장한 일이 분명합니다.” 이랜드 노동자 투쟁기 우리의 소박한 꿈을 응원해줘에는 한 여성노동자와 노동자 엄마의 싸움 덕에 전기가 끊기고 급식비를 못 내며 지내야했던 고등학생 아들의 글이 함께 실려 있다. 그런 구성이 이미 인상적이지만 더욱 인상적인 것은 아이의 담임 교사다. 교사는 아이를 불러 사정을 살피고 또 수업시간에 이랜드 투쟁에 대해 자세히 들려준다. 아이는 교사 덕에 엄마가 뭘 하고 있는지 이해하게 되고 또 엄마가 멋있다고 느끼게 된다. 아이는 이제 “우리 선생님처럼 좋은 선생님이 되고 싶다”고 말한다. 좋은 교사는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꾼다.

2008/07/11 20:51 2008/07/11 20:51
2008/07/11 18:47

초등학교 4학년 딸아이가 어느날 “엄마같은 노동자 이야기가 나오는 잡지도 있더라” 합니다. 귀가 솔깃해진 저는 “뭐? 책 제목이 뭔데?” “고래가 그랬어. 근데 꽤 재밌었어” “아~하!” 익히 들어 알고 있던 터라 다소 부담이 되었지만 당장 정기구독을 시켜주었습니다. 얼마 후 “엄마! 오늘 고래가그랬어 왔어!!” 들뜬 목소리로 전화가 왔습니다. 아이들이 기다리고 또 아이들에게 세상의 너른 시각을 보여줄 수 있는 책. 이런 책이 있다는 것이 너무 고맙습니다. 비정규직 차별과 해고가 없는 세상을 위해 늦게 들어오는 엄마에게 불만이 많은 딸아이, ‘고래’를 통해 엄마를 조금이나마 이해했으면 하는 욕심을 가져봅니다. 우리 아이들이 좀 더 행복하고, 맘껏 자기 꿈을 펼칠 수 있는 세상을 위하여 ‘고래’ 아자아자!!!      

이랜드일반노동조합 사무국장 홍윤경

2008/07/11 18:47 2008/07/11 18:47
2008/07/10 10:05

인디고서원에서 내는 인디고잉 12호엔 촛불과 광우병소 문제를 갖고 생태주의와 민주주의에 대해 되새겨보는 특집이 실렸다. 인디고 아이들의 글과 현병호 선생(민들레 발행인)의 광우병은 축복이다라는 글 그리고 우리 안의 대운하를 재수록하여 꾸몄는데, 아이들 글이 참 좋다. 그 일부.


저 역시 현 정부의 정책에 반대하고, 또 그런 촛불 문화제를 느껴보기 위해 거리로 나가 촛불을 들었습니다. 소중한 시간에 이렇게 나와서 촛불 문화제를 펼치는 시민들을 보며, 우리들의 민주정신을 훌륭하다고 생각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아쉬운 점도 있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시위는 온전한 생명의 존재로서 소와 따뜻한 정을 나누던 인간적인 삶의 회복을 위한 외침이 아닌, 우리만 안전한 먹거리를 먹으면 된다는, 인간의 이기적인 욕망에서 비롯된 시위였기 때문입니다.자연과 생명은 인간을 위한 경제적 착취의 대상이나 정치권력 획득의 도구가 아닙니다. 소를 바라보면서 따뜻한 정을 느끼고 인간과 자연이 하나됨을 느꼈던 우리의 생명 감수성은 어느새 자본이라는 거대한 힘 앞에서 사라져버리고만 듯합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필요한 건 참다운 삶의 의미와 가치를 묻는 생태적 상상력입니다. 어느새 삶과 생명에 대한 존중이라는 가장 근원적이고 본래적인 가치를 상실한 채 펼쳐지고 있는 구호나 저항들은 마치 오염된 바다를 인식하지 못한 채 그 바다 위에 일시적으로 일렁이는 파도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다들 너무 이기적인 것 같다. 촛불 시위 피켓엔 “이명박 너나 미친소 쳐먹어” ''내 인생 좀 펼쳐보려고 하니 광우병 걸렸네“ 등 내가 죽고, 내 이웃이 죽고 우리 국민이 죽는 문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조금 더 나아간다 해도 친미 정부, 자국민을 생각하지 않는 정부를 탓하는 지점에서 끊긴다. 대한민국 안에만 들어오지 않으면 된다는 생각들이다. 그러나 지구 위 어딘가에서 미친 소와 병든 닭, 그리고 오리는 여전히 아프다. 이런 병이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 누가 어떻게 끊어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하는 사람은 집회현장에는 거의 없었다. 좁은 우리에 꽉꽉 채워 넣어 면역력을 떨어트리고 지구상의 모든 인간이 충분히 먹을 만큼 많은 곡식을 소에게 먹여 소수가 먹을 고기를 만들고, 그도 모자라 소가 소를 먹어 병들게 만든 것. 이것이 가장 근본적인 문제인데 말이다.

2008/07/10 10:05 2008/07/10 10:05
2008/07/09 2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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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운동이 쇠락하고 있다고들 걱정하지만 노동자의 자식이 자본의 가치관으로 키워지는 것, 노동자가 제 아이를 노동자로 키우지 않는 걸 교육의 목표로 삼는 것, 을 생각한다면 그런 걱정은 오히려 한가한 것이다. 노동자의 아이들은 대개 노동운동을 적대하는 노동자, 혹은 노동자를 경멸하는 노동자로 키워지고 있다. 이대로라면 노동운동의 미래는커녕 사회의 미래가 없는 셈이다. 문제는 다들 현안에 매달리느라 그런 가공할 상황에 대한 인식의 공감대가 매우 적고, 설사 충분히 공감한다 하더라도 오늘 같은 신자유주의 경쟁체제에서 내 아이의 미래에 대한 불안과 공포가 어떤 의미 있는 행동도 하기 어렵게 만든다는 것이다. 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나는 좌파로서 그리고 아이들 잡지를 만드는 사람이자 두 아이의 아비로서 그에 대한 얼마간의 대답을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해왔다.

두어 달 전 울산 민노총 배문석 동지가 노동자의 자녀교육에 대한 강연회를 제안했다. 그런 이야기를 간간히 해오긴 했어도 적시해서 본격적으로 꾸려본 적은 없어서 적이 망설여졌지만 반걸음씩이라도 전진해야겠기에 수락했었다. 오늘 홍보용 이미지 두 개를 보내왔는데 분위기가 너무 대조적이라 잠깐 미소 짓는다. 하나는 온건파 하나는 강경파용인가?
2008/07/09 23:56 2008/07/09 23:56
2008/07/06 12:25

(어제 광장에 나갔다 오랜 만에 얼굴이라도 보려고 강양구에게 전화했더니 사무실에서 ‘상황 근무’중이란다. 이 광우병 문제의 원조 기자는 얼마 전 과로로 쓰러졌었다. 싸움이란 게 상대가 너무 후지면 그런데 영 싸움을 멈출 수도 없으면 내 몸과 마음도 피폐해지는 법인데 이명박과의 싸움이 딱 그렇다. 그가 보내준 서평 한 개.)


'요구르트'냐, '사회주의'냐?

때로는 온갖 통계로 무장한 책 한 권보다도 날카로운 통찰이 담긴 글 한 편이 더 인상에 남는다. <평등해야 건강하다>를 다 읽고 나서 한 5년 전 한 잡지에 실린 글을 떠올린 것도 이 때문이다. 요즘도 여전히 통찰이 담긴 칼럼으로 생각할 거리를 던지는 김규항이 쓴 '요구르트'라는 제목의 글이다. 이 글의 핵심이 담긴 대목을 같이 읽어보자.

"불가리아의 장수 마을(요구르트 먹고 장수한다는 광고에 나온 그 마을)엔 더 이상 장수 노인들이 없다. 마을 묘지엔 1990년 즈음 세 해 동안 죽음 사람들의 묘로 그득하다. 마을 사람들의 얘기는 이렇다. '사회주의 시절엔 안락하진 않았지만 적어도 먹고사는 문제를 걱정하진 않았다. 소박하나마 집과 자동차도 나왔다. 그러나 사회주의가 무너지면서 사람들은 먹고사는 문제를 스스로 감당해야 했다. 노인들은 그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했다.'"

김규항은 이 글의 결론을 불가리아 노인의 장수 비결은 '요구르트'가 아니라 '사회주의'라고 강조하며 맺는다. 과연 그런가? <평등해야 건강하다>는 이런 주장을 뒷받침하는 온갖 사례로 가득하다. 그 사례의 대부분은 한국이 열심히 좇는 유럽, 미국에서 최근 수십 년간 연구된 것이다.

우선 '요구르트'와 '사회주의' 중 무엇이 장수 비결이었는지 살펴보자. 노벨상을 수상한 경제학자 아마티야 센은 1960년과 1977년 사이에 1인당 국민총생산(GNP)이 3000달러 이하인 국가 100개를 대상으로 기대 수명이 얼마나 늘었는지 조사했다. 놀랍게도 사회주의 정부가 정권을 잡았던 10개국 가운데 9개국이 상위 25% 안에 들었다.

실제로 196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동독, 불가리아, 헝가리 같은 동유럽 국가는 기대 수명이 상당히 높았다. 이들 국가는 훨씬 잘 사는 몇몇 서유럽 국가와 비교해도 기대 수명이 오히려 더 높았다. 그러나 이들 국가의 기대 수명은 점점 감소하더니 1980년대 후반부터 서유럽 국가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낮은 수치를 기록하게 된다.

1970~80년대 동유럽 국가에서 부분적으로 시장에서의 '경쟁'을 도입한 시기였다. 1960년대까지 완만했던 사회 격차가 눈에 띄게 벌어지기 시작한 것도 바로 이때부터다. 이런 '경쟁'을 도입하는데 주저했던 알바니아의 기대 수명이 꾸준히 늘어난 것은 '평등해야 건강하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또 다른 방증이다.

이 동유럽 국가들은 1980년대 후반 갑작스럽게 몰락함으로써 '평등해야 건강하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또 다른 극적인 증거를 보탰다. 이들 국가들이 사회주의에서 자본주의로 갑작스럽게 전환해야 했던 1989년부터 1995년, 말 그대로 '끔찍한' 일이 벌어졌다. 사망률이 치솟고, 기대 수명은 급격히 감소했다. 곳곳 마을 묘지는 "죽은 사람들의 묘로 그득했다."

'평등해야 건강하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예는 이뿐만이 아니다. 미국의 282개 대도시를 비교한 연구 결과를 보면, 불평등한 도시일수록 사망률이 더 높았다. 미국과 비교했을 때 모든 면에서 복지 수준이 높은 캐나다도 이런 경향은 마찬가지였다. 캐나다의 도시를 비교해보면, 시장 소득 수준이 불평등할수록 사망률이 더 높았다. 역시 장수 비결은 '요구르트'가 아니라 '사회주의'였다.

김규항의 글에서 또 눈여겨봐야 할 키워드는 바로 '스트레스'이다. 왜 불평등할수록 기대 수명이 감소하고 사망률이 높은가? 얼른 생각하면 영양 섭취, 병원 접근 등이 열악해지면서 건강이 나빠지고, 이것이 기대 수명의 감소, 사망률 증가로 이어진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캐나다, 스웨덴처럼 복지 수준이 높은 나라를 염두에 두면 다시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바로 스트레스가 중요한 매개가 될 수 있다. 우리는 경험적으로 소득 격차가 얼마나 큰 스트레스를 주는지 잘 알 수 있다. 또 사회 지위가 낮을수록 감당해야할 스트레스가 많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평등해야 건강하다>는 그 스트레스가 바로 기대 수명을 감소하고 사망률을 높이는 핵심 요인이라고 지적한다.

일단의 과학자는 짧은꼬리원숭이의 사회 지위가 이들의 건강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알아보았다. 여러 집단에서 지위가 높은 원숭이만을 뽑아서 한 우리로 이동시켰다. 그 우리에서 위계가 생겼다. 어떤 원숭이는 계속 높은 지위를 유지했지만, 다른 원숭이는 낮은 지위로 추락했다. 영양 섭취 등 다른 조건은 똑같았다. 그러나 결과는 예상대로였다.

위계 서열이 낮아진 원숭이는 새로운 우리에서 지난 21개월 동안 동맥 경화로 죽을 확률이 5배나 높아지는 등 건강이 눈에 띄게 나빠졌다. 또 다른 원숭이를 대상으로 사회 지위에 따라 스트레스를 받을 때 발생하는 대표적인 호르몬인 코르티솔의 수치를 측정했더니, 서열이 낮을수록 코르티솔을 더 많이 분비하고 있었다. 바로 스트레스가 문제였다.

인간 사회도 다르지 않다. 예를 들어 미국 흑인 남성은 1996년 평균 소득은 2만6522달러였으나, 기대 수명은 66.1년에 불과했다. 코스타리카 남성의 평균 소득은 고작 6410달러였으나, 기대 수명은 75년이나 되었다. 이 9년간의 수명 차이는, 미국 사회에서 흑인 남성이 감수해야 할 낮은 사회 지위를 염두에 두지 않으면 설명하기 쉽지 않다.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요인은 이 뿐만이 아니다. 친구로부터 지지를 받은 이들은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심근경색을 앓은 후에도 생존할 확률이 3배나 높다. 인위적으로 감기 바이러스를 투입한 276명의 자원자 중 유독 바이러스에 저항성이 큰 사람은 바로 친구가 많은 이들이었다. 누구나 알듯이 외로운 삶은 스트레스를 부르고 결국 건강을 해친다.

이 책은 특별히 출생 전후를 포함한 생애 초기의 스트레스에 주목해 우리를 당혹스럽게 한다. 임신 중 불안감을 느꼈던 어머니를 둔 아이는 다른 아이보다 정서․행동 장애가 더 많이 나타났다. 또 어린 시절 가정불화를 경험하면서 남다른 스트레스를 받았던 이들은 질병에 더 취약했다. 이런 경고를 접하면 아득해진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해결책을 찾을 것인가?

절망할 필요는 없다. 진단이 정확하면 처방이 가능하다. 사회 지위가 문제라면 좀 더 평등한 사회를 만들면 된다. 외로움이 문제라면 우애로 맺어진 공동체를 복원하면 된다. 비교적 평등한 개인들이 서로 위하는 공동체에서 아이들이 고통을 겪을 일은 많지 않다. 지금보다 훨씬 헐벗은 그 때 그 시절에는 설사 부모 없는 아이라도 마을 공동체가 품었다.

'요구르트'냐, '사회주의'냐, 이 질문은 이렇게 바뀔 수 있다. '웰빙'이냐, '평등'이냐? <평등해야 건강하다>는 이 질문에 대한 명쾌한 답이다.

2008/07/06 12:25 2008/07/06 12:25
2008/07/05 09:31
2년 가량 연락이 없던 아내의 오랜 친구(로 나와도 가까운) 강경성이 2년 전 중국에서 교통사고로 죽었다는 걸 어제 알았다. 간간히 그를 떠올리면 느낌이 좋지 않아 “경성인 잘 있대?” 묻곤 했는데 그렇게 갔었구나. 전주에선 수재로 꽤 알려진 친구인데 대학 생활은 내내 운동으로 보냈고 90년대 중반 이후론 궁핍한 집안을 건사하느라 이리저리 참 부지런히 뛰어다녔다. 내내 고단했지만, 내가 본 그의 마지막 얼굴은 여전히 낙관의 미소가 담겨 있었다. 어쩌면 다 죽고 그만 살아있는지도 모르겠다. 살아남은 사람들에게선 낙관의 미소가 사라졌으니. 경성이, 부디 안식하길..
2008/07/05 09:31 2008/07/05 09:31
2008/07/03 23:01

작은책 강연은 여느 강연보다 좀 더 진전된 이야기를 하려 했는데 그게 도리어 좋지 않았던 것 같다. 한국사회에선 좀 더 진전된 이야기들보다는 오히려 가장 기본적인 이야기들이 갈피가 안 잡혀서 문제(이를테면 평소 유럽 지식인 못지않게 진보적인 책들을 섭렵하는 사람이 선거 때면 꼭 비판적 지지의 늪에 빠져 허우적대는)라고 늘 생각하면서도 왜 그랬을까? 며칠 전 김단이 불쑥 진보가 뭐냐고 물어 설명을 해주다 되새기게 되었다.

진보는 세상을 바꾸려는 생각이고 보수는 세상을 지키려는 생각이야. 힘세고 부자인 사람들은 진보가 좋을까 보수가 좋을까?
보수.
그래. 그럼 약하고 가난한 사람들은?
진보.
그래. 그런데 이상한 건 힘세고 부자인 사람들은 하나같이 보수인데 약하고 가난한 사람들은 진보가 아주 적다는 거야.
왜?
그건 말이야. 힘세고 부자인 사람들이 약하고 가난한 사람들의 생각을 그렇게 만들어놓기 때문이야.
어떻게?
여러 방법이 있지. 신문이나 텔레비전, 정치인들, 또 가짜 진보..
가짜 진보? 그게 뭔데?
그건 말이야..

이런 식으로 갔어야 했다. 내친 김에 잠시 중단된 팜플렛 작업을 서둘러야겠다. 이 얼크러진 현실의 기본적인 갈피를 잡을 수 있는 팜플렛. 올초부터 몇몇 후배들과 같이 작업을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진행이 잘 안되었다.(그들 스스로가 팜플렛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임이 밝혀졌다고 할까, 공부나 실천에서 상당 수준인 그들이 그 정도이니 다른 사람들이야..) 그러나 광장의 열기 속에서 순수한 열정이 소박한 의식 때문에 소모되는 걸 보면, 이를테면 “KBS를 수호”하기 위해 밤샘하는 사람들을 보면 내가 초고를 내쳐 쓰자 싶다. 대강의 구성은 이렇다. 보수와 진보, 계급과 이념, 신자유주의, 영성과 정치.. 그림도 넣고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도록 쓸 생각.

2008/07/03 23:01 2008/07/03 23: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