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4'에 해당되는 글 14건
근래 내 화두는 '연민'이다. 후배가 읽어보라고 링크를 보내주었는데 '연민'이라는 단어가 반가워 얼른 읽었다.
디워와 학력위조...그리고 비주류에 대한 연민
디워와 황우석 현상, 같은 맥락에서 존재하나?
(맞은편에 앉은) 살구 이모의 지도로 재봉질을 배우는 김단. 보조가방을 두 개 만들었는데 꽤나 재미났던 모양이다. 저축을 해서 재봉틀을 사겠단다.

말하자면 스타워즈는 젊은 예술가들에게 삼국지 같은 것이다. 전위적이고 실험적인 인디음악가들이 “9만원씩 거두어 만든” ‘스타워즈 프로젝트 컴필레이션 2008’은 그 한 증빙이다. 김영진 ,아나킨 프로젝트, 사또유키에, 이한주, 하이라이츠, 타바코쥬스, 딸콩이와 황야의 마부, 아오키료타, 진주 조개잡이와 사람 낚는어부&이랑, 박병주, 장경필, 방구펑크, 푼돈들, E9, 1KA, BLOOM 등이 참여했다. 내 귀에 제일 재미있는 건 판소리 R2D2歌. “알투디투 그 깡통 안에 사람이 들어 있어 아주 쪼그만 사람 마치 커피자판기 안에서 커피를 따라주던 사람같이..” ㅎㅎ
'가짜 진보' 노무현 정권의 가장 큰 죄악은 대다수의 한국인들에게서 '가치에의 추구'를 앗아가 버렸다는 것일 게다. 이명박 씨는 5년 전만 같아도 대통령 후보로서 파멸하기 충분한 도덕적 결함들을 가졌다. 그러나 그 결함들은 노무현 정권 5년을 통해 더 이상 결함이 아니게 되었다. 2007년의 한국인들은 이명박을 도덕적으로 용서한 게 아니라 이명박의 도덕에는 별 관심이 없는 것이다. 그러니 이번 총선에서 진보신당 같은 곳의 후보가 당선되는 건 애초부터 어려운 일이었다. 이를테면 노회찬과 홍정욱을 생각해보자. 노원구의 누구도 노회찬이 홍정욱보다 못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문제는 누구도 노회찬이 홍정욱보다 경제적으로 더 유능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결국 노회찬의 승리는 애당초 어려웠던 셈이다.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까? '서민대중에게 다가갈 수 있는 매우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정책들'을 마련하는 건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그런 정책들이 서민대중에게 다가가기 위해선 먼저 현재의 프레임을 깨트려야 한다. 프레임을 깨트리지 않는 한 어떤 '서민대중에게 다가갈 수 있는 매우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정책들'도 소용이 없다. 서민대중들이 아예 귀를 기울이지 않기 때문이다.(현재의 프레임에 매몰된 가장 바보스러운 사례는 지난 대선에서 권영길 씨가 내건 '서민의 지갑을 채워드립니다'였다.) 프레임을 깨트리는 방법은 생각보다 간단하다. 오늘 한국인들이 경제적 유능함을 중요하게 여긴다면, 그걸 개탄할 게 아니라 현실로 인정하되 그놈의 경제적 유능함이 계급으로 전혀 다르게 갈린다는 사실을 되새겨주는 것이다. 부자들에겐 홍정욱이 노회찬보다 경제적으로 유능한 게 사실이지만, 서민대중들에겐 노회찬이 홍정욱보다 훨씬 더 유능하다는 사실(주장이 아니라 분명한 사실!)을 깨우쳐주는 것이다. 문제는 역시 계급의식의 빈곤이다.
미스터Roh에 진보의 기대를 한 사람들 가운데 5년 동안 많이들 옮겨갔지요. 그런데 왼쪽이 아니라 대부분 오른쪽으로 옮겨갔지요. 이건 가짜 진보구나 싶으면 진짜진보를 찾아 적어도 민노당으로는 옮겨가야할 텐데 다들 반대 방향으로 더 오른쪽으로 갔습니다. 이게 문제의 핵심인데 어떻게 풀어야 할까요?
주목할 것은 왼쪽으로 옮겨간 사람도 적지만 있다는 것이지요. 그들과 오른쪽으로 옮겨간 대다수의 사람들과의 차이가 뭔가? 그걸 파악하고 극대화하면 이번에 한나라당 찍은 사람들 가운데 상당수가 다음번엔 민주당을 건너뛰어 왼쪽으로 옮겨갈 수 있습니다. 저는 그 가장 중요한 차이가 바로 '교양'이라고 생각합니다. 사회의 좌우와 상하를 분간하는 최소한의 능력이지요. 한국인과 미국인은 없고 유럽인들은 일반적으로 있는 능력입니다. 그게 서지 않으면 대운하 반대, 명박이 욕 같은 뻔하고 당연한 이야기 백날 해봐야 소용없습니다. 우리 마음속에 이미 대운하와 명박이가 들어와 있는 셈이니까요.
개인적으로, 미스터Lee 5년은 바로 그 일, 우리의 교양을 세우는 일에 열심 하려고 합니다. 그럼 어서 하지 왜 잠자코 있느냐고 묻는다면 “미스터Roh 5년 내내 ‘개혁은 진보가 아니다’라는 말만 반복했는데 워낙 비생산적이고 소모적인 활동이라 기력이 쇠해서, 잠시 충전이 필요합니다.”라고 변명하겠습니다.^^ (방명록에 쓴 글)
방문자수가 늘어 왜 그럴까.. 생각해보니 선거 때문인 듯하다. 그러나 고민할 게 뭐 그리 있겠는가? 단순하게, 진보신당 후보가 있다면 찍고, 없다면 민노당 후보를 찍고, 둘다 없다면 공란으로 두고, 정당투표는 진보신당으로.. 나머지 시간은 아이들 혹은 애인 혹은 자전거와 재미있게 노시길. ^^
(놀면서.. 함께 하나만 더 기억하자. 제도 정치권 밖에는 진보신당보다 더 급진적인 정치세력도 존재한다는 것. 다음 선거엔 그런 정치세력들도 대중들의 시야에 들어올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 그래서 한국의 제도정치가 기형적인 우편향을 벗어나야만 우리가 정치로부터 힘과 위로를 얻을 수 있다는 것.)
풀샥을 하드테일로 바꾸고 다시 하드테일에 산악용 타이어와 로드용 타이어를 번갈아 끼우고 타다 점점 로드용 타이어만 사용하더니 결국 미니벨로로 바꾸었다. 변화의 추이대로라면 로드용 사이클로 바꾸어야 했겠지만 미니벨로의 독특한 매력을 외면하기 어려웠고 결국 드롭바 달린 미니스프린터로 절충했다. 소식을 들은 후배가 물었다.
“산에선 어떻게 하려고요?”
“산에선 걸어야지.”
내 주변에서 많은 이들이 진보신당에 입당했거나 선거일을 돕고 있다. 입당한 사람 가운데 제일 열심인 사람은 홍세화 선생이고 입당하지 않은 사람 가운데서 제일 열심인 사람은 ㅇ형이다. 두어주 전 ㅇ형이 “권해효 씨에게 도움을 청할 수 있는지” 조심스럽게 물어왔다. 해효는 중립적인 입장을 지켜야 할 청년유권자 운동 일에, 민노당 쪽 인사들과 관련한 북한 빵공장 일에, 이미 한명숙 씨를 비롯한 여러 후보들의 지원 요청을 거절한 바 있어 어려운 부탁이라는 걸 잘 알지만 부탁한 사람의 곤란을 생각해서 이야기를 전했다. 그러고는 행여 부담을 줄세라 어떻게 되었는지 확인하지 않았는데 주말에 화정에 와서 심상정 씨 유세를 도운 모양이다. 식당으로 마트로 돌며. 지난 연말 고래 송년회 때 독감으로 링거를 맞고 누워 있다가 나와선 싫은 내색 한번 안하고 사회보고 노래 부르던 모습을 보고 감탄했는데, 하여튼 좋은 사람이다.
마가 8:34 그러고서 예수께서는 당신 제자들과 군중을 가까이 부르시고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누가 내 뒤를 따르려면 자기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합니다. 35 사실 제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요, 나 때문에 또한 복음 때문에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입니다. 36 온 세상을 벌어들인다 해도 제 목숨에 손해를 본다면 사람에게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37 사실 사람이 제 목숨의 대가로 무엇을 내놓을 수 있겠습니까? 38 간음하고 죄짓는 이 세대 가운데서 누구든지 나와 내 말을 부끄럽게 여기면, 인자도 자기 아버지의 영광에 싸여 거룩한 천사들과 함께 오게 될 때에 그를 부끄럽게 여길 것입니다."
앞에서 불같이 화를 낸 예수는 제자들에게 매우 강한 어조로 자신의 생각을 밝힌다. 물로 제자들의 기대와는 정반대의 생각이다. “자기를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 영광이 아니라 수난과 죽음의 길이라는 것이다. 목숨을 살리려 하면 읽고 목숨을 잃는 사람은 살 것이라 말한 예수는 바로 뒤이어 “목숨은 온 세상과도 바꿀 수 없는” 것이라고 말한다. 얼핏 앞뒤가 안 맞는 말처럼 보이지만 예수는 사람에겐 두 가지 목숨이 있음을 말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예수는 우리가 집착하는 육체의 목숨은 진정한 목숨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오히려 육체의 목숨에 대한 집착을 버릴 때,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하느님의 나라를 만드는 일에 나설 때 진정한 목숨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한다.
몸은 살아있되 목숨은 죽은 사람도 있고 몸은 죽은 지 오래이나 목숨은 생생히 살아있는 사람도 있다. ‘한낮 세포 덩어리의 목숨을 선택할 것인가, 영원하고 진정한 목숨을 선택할 것인가?’ 2천년 전에 몸은 죽었지만 여전히 우리 곁에서 살아 숨쉬는 예수는 육체의 목숨에만 집착하는 우리에게 묻는다.
마가 12:18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두가이들이 예수께 와서는 질문하여 이렇게 말했다. 19 "선생님, 모세가 기록하여 우리에게 남긴 바에 의하면, 어떤 사람의 형제가 죽고 부인만 남아서 자식을 두지 못한 경우, 그 동기는 그 부인을 맞아 자기 형제에게 후사를 세워 주도록 해야 합니다. 20 칠 형제가 있었는데, 첫째가 아내를 맞았다가 죽고 후사를 두지 못했습니다. 21 그래서 둘째가 그 여인을 맞았지만 또 후사를 남기지 못한 채 죽었고, 셋째도 그러하였습니다. 22 그렇게 일곱이 다 후사를 두지 못했습니다. 모두 죽고 마지막으로 그 부인도 죽었습니다. 23 그들이 [다시 살아나는] 부활 때 그 여인은 그들 가운데 누구의 아내가 되겠습니까? 사실 일곱이 모두 그 여인을 아내로 삼았으니 말입니다." 24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여러분은 성경도 모르고 하느님의 능력도 모르기 때문에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25 사람들이 죽은 이들 가운데서 다시 살아날 때에는 장가들지도 않고 시집가지도 않으며,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기 때문입니다. 26 그리고 죽은 이들에 관해서, 그들이 일으켜진다는 사실을 두고 모세의 책 가시덤불 대목에서, 하느님께서 모세에게 어떻게 말씀하셨는지 읽어 보지 못했습니까? '나는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 이라 하셨습니다. 27 그분은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살아 있는 이들의 하느님이십니다. 여러분은 크게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두가이들은 부활을 믿지 않았다. 그들은 모세오경만을 하느님의 말씀이라 생각했는데 거기엔 부활이라는 게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이 부활을 믿지 않는 또 다른 이유는 그들이 지배자들이기 때문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부활이나 영생, 내세, 후천 세상 등은 피지배 계급의 가치관에 속한다. 현실적 기득권와 안락을 가진 사람들은 내세에 집착하거나 소망할 이유가 별로 없다. 고통스런 현실을 보내는 사람들은 도래할 세상이나 부활 이후의 삶에 관심을 갖게 된다. 그런 염원이 올바른 사회의식과 결합하면 미륵사상이나 동학처럼 매우 유장한 진보적 에너지로 나타난다. 그러나 그런 염원 이 지배체제에 포섭될 때 더 악랄한 억압과 착취의 도구가 되기도 한다. 현실은 죄로 물든 무상한 것이며 진정한 삶은 내세에 있다는 주장은 서양 중세의 지배 체제가 인민을 억압하고 착취하는 가장 중요한 논거였다.
예수는 부활이 단지 세포의 재생, 즉 죽은 육체가 되살아나는 게 아니라고 말한다. 만일 부활이 그러 것이라면 부활은 영생일 수 없다. 되살아난 세포는 다시 노화하고 결국 생명은 죽기 때문이다. 삼일 동안 죽었다가 부활했다면 그저 노화가 삼일 지연되었다는 것 외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예수는 부활하면 “하늘에 있는 천사들처럼 된다”고 한다. 천사는 세포 덩어리가 아니다. 그래서 천사는 수명이 없이 살아 소통한다. 사람이 부활한다는 건 세포덩어리인 몸을 떠나 영원히 살아 소통하는 것을 말한다. 그것이 예수가 말한 ‘진정한 목숨’이다.(8:34-38) 우리는 흔히 몸이 죽으면 목숨도 사라졌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몸이 죽음으로써 오히려 영원한 목숨이 시작되는 것이다. 몸의 목숨에 집착하면 진정한 목숨을 잃는다. 몸을 사용하는 목숨은 단지 목숨의 일부일 뿐이라는 걸 잊는 순간 우리는 영원히 목숨을 잃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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