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10'에 해당되는 글 10건

  1. 2007/10/31 경솔
  2. 2007/10/29 주례
  3. 2007/10/25 비지 단상 01
  4. 2007/10/24 아이들
  5. 2007/10/15 섬뜩
  6. 2007/10/12 악령 97, 02, 07
  7. 2007/10/10 88만원 세대
  8. 2007/10/08 신앙
  9. 2007/10/05 결핍
  10. 2007/10/04 문병세트
2007/10/31 10:04
이병철, 황대권 두 분이 문국현 씨 신당의 발기인으로 나선 건 아무리 생각해도 경솔한 행동이다. 그들은 귀농운동, 생태공동체 운동, 그리고 오늘 강원도 땅을 걷고 있는 생명평화결사의 대표이거나 주요한 성원으로서 자신의 위치를 충분히 되새겨본 걸까? 생명평화운동이 정치운동의 외양을 띄지 않는 이유는 정치운동보다 온건해서가 아니라 정치운동으로 담을 수 없는 급진성을 갖기 때문이다. 생명평화운동이 ‘고상한 자유주의’일 뿐이라면 (매우 외람된 표현이나) 중산층 인텔리들의 정신적 여가나 전원 취미에 봉사할 뿐이다. 거듭 말하지만, 세상에 생명과 평화를 반대하는 사람은 단 한명도 없는데 왜 생명과 평화가 짓밟히고 죽어가는가? 그 모순과 격렬하게 싸우지 않는다면 생명평화운동은 ‘착하게 살자 운동’과 다를 게 없다.
2007/10/31 10:04 2007/10/31 10:04
2007/10/29 08:15
주례사는 몇 가지 이야기와 그에 대한 질문으로 구성했지만, 정황상 이야기는 거의 줄이고 질문으로 마무리했다. 하여튼, 결혼식에서 그렇게 크게 대답하는 신부는 본 적이 없다.ㅎㅎ


신랑은 육아가 엄마의 일이 아니라 부모의 일이라는 것에 동의합니까?
신부는 남편과 아이를 보조하는 인생이 아니라 자신의 소중한 인생을 살 것을 약속합니까?

신랑 신부는 이 결혼이 세상을 조금이라도 낫게 할 것을 약속합니까?
신랑 신부는 이 결혼으로 태어날 아이가 우리의 미래를 조금이라도 낫게 할 것을 약속합니까?

양 부모님은 두 사람이 동의하고 서약한 것이 잘 지켜질 수 있도록 도울 것을 약속합니까?
하객들은 두 사람이 동의하고 서약한 것이 잘 지켜질 수 있도록 도울 것을 약속합니까?

주례는 두 사람의 결혼을 기쁘게 알립니다.
2007/10/29 08:15 2007/10/29 08:15
2007/10/25 07:03
오랫동안 단일화한 지배체제(군사 파시즘)에 짓눌려온 경험 때문에, 한국인들은 ‘정권’과 ‘지배체제’를 동일하게 여기는 경향이 유독 강하다. 그러나 ‘민주화’한 사회에서 지배체제의 범위는 꽤 넓다. 오늘 한국 정치로 말하면 노무현 정권과 통합당, 한나라당 등 신자유주의를 수용하는 모든 정치세력이 지배체제의 구성물이다. 언론으로 말하면 조중동은 물론이려니와 체제내적 비판과 견제 역할을 하는 경향이나 한겨레까지 포함한다. 그 체제의 카테고리 안에서 진행되는 대통령 선거는 지배체제를 둘러싼 싸움이 아니라 지배체제 내부의 헤게모니를 둘러싼 싸움이다. 현재 한국의 대선정국은 지난 10여년 동안 헤게모니를 잃었던 지배체제의 극우분파가 개혁분파에게서 헤게모니를 되찾으려는 형국이라 할 수 있다. 비판적 지지는 그 헤게모니 싸움을 지배체제의 변화인 양 집착하는 병적 현상이다.
2007/10/25 07:03 2007/10/25 07:03
2007/10/24 07:34
박노자 선생과 고래 기사(폭력에 관한)를 갖고 의견을 나누다 나온 이야기 한 토막.

"박선생님, 저는 소련 말기에 ‘존경’이 사라진 사회에서 자란 사람들과 오늘 러시아 현실이 관계가 있지 않을까 짐작해 봅니다. 그렇게 볼 때 지금 아이들이 성인이 되면 한국은 더욱 어렵겠지요. 이대로라면 말입니다. 그게 저를 늘 낙심하게 합니다."

"김선생님, 앞으로도 대한민국의 아이들이 지금의 러시아의 많은 아이들처럼 스킨헤드나 극단적인 이기주의자, 철저하게 원자화돼 어떤 공동 투쟁도 못하는 ‘모래알 백성’이 되지 않도록 많은 노력을 기울여주시기 바랍니다. 지금 러시아의 상황은 그야말로 캄캄할 뿐입니다."
2007/10/24 07:34 2007/10/24 07:34
2007/10/15 2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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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단이 '컴퓨터 게임에 중독된 아이'를 그려서 보여주는데 섬뜩했다.
“좀 심하지 않니?”
“난 심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왜 그런지 말해줄래?”
“게임이 재미있다고들 하지만 사실은 게임회사들이 돈을 벌려고 중독을 시키는 거잖아. 게임에 중독되면 사람을 비참하게 만들고 심지어 죽기까지 하는데 뭐가 심해.”
“네 말이 맞구나.”

언제나 되새기는 것, 현실이 좀 더 섬뜩하다.
2007/10/15 22:17 2007/10/15 22:17
2007/10/12 21:33
“'비판적 지지'의 첫번째 대상은 김대중이었다. 밝히자면, 나도 지난 대통령선거에서 그렇게 했다. 비판적 지지론이 아닌 진보 독자 후보론을 주장하던 진영에 더 가까웠지만, 나는 망설임 끝에 그렇게 했다. 드디어 김대중은 대통령이 되었고 그에게 표를 몰아준 진보주의자들은 그의 개혁성에, 그의 개혁성을 통해 도모될 진보의 미래에 기대했다.
기대가 의구심으로 의구심이 다시 지루한 실망으로 바뀌는 데는 단지 몇 달이 필요했다. 어리석게도 진보주의자들은 보수주의자인 김대중이 진보적이기를 기대했다. 실망에 찬 그들은 말하기를 김대중이 변했다고 했다. 그러나 변한 건 아무 것도 없었다. 김대중은 예나 지금이나 보수주의자이며 그의 정치는 예나 지금이나 그의 이념에 충실하다.
노무현의 판타지에 젖은 사람들은 오늘 김대중을 잠시 접고 옛 김대중을 떠올려볼 필요가 있다. 그는 한 때 오늘 노무현과는 비교가 안 될 판타지를 가진, '선생'이라 불리는 정치인이었다. 노무현에게 남은 질문은 하나다. 노무현은 개혁적 보수주의자인가 진보주의자인가. 지역주의에 당당히 맞선 노무현은 신자유주의에도 당당히 맞서는가?” (2004년 4월, ‘네 이념대로 찍어라’에서 중간 중간 줄여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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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판적 지지에 대해 글을 쓰려고 5년 전 같은 주제로 쓴 글을 꺼내 읽다 문득 처연해졌다. “김대중”을 “노무현”으로 “노무현”을 “문국현”으로 바꾼다면 새롭게 할 이야기가 없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물론 제도 정치란 순결한 게 아니라서 현실적인 고려와 타협이 필요한 법이다. 그러나 현실적 고려와 타협에도 하한선이 있다. 우리의 하한선은 신자유주의 반대다. 지난 10년 동안 한국 인민의 삶을 궁지로 몰아넣고 너나 할 것 없이 자본의 악령에 사로잡혀 박정희 전두환 시절에도 마음껏 뛰어놀던 아이들이 감옥의 수인처럼 학원에서 시들어가는 생지옥을 만든 건 독재도 군사파시즘도 아닌 신자유주의다. 신자유주의는 인민에게 순수한 폭력이다.
비판적 지지? 당신의 아이가 교사에게 상습적으로 매를 맞고 있는데 ‘당장 구출하려는 어리석은 생각은 버리고 좀 덜 때릴 것 같은 선생에게 맡기자고, 그게 아이를 위하는 길’이라고 한다면 동의하겠는가? 그것도 5년씩 두 번 10년을 속아놓고도? 하지만 문국현 씨는 신자유주의를 반대하지 않느냐고? 과연 그런가? 그는 ‘신자유주의를 반대하면서 (신자유주의의 또 다른 이름인) FTA는 찬성한다’는데 그런 모순에 빠진 태도는 스스로를 ‘좌파 신자유주의자’라고 뇌까리는 노무현 씨와 뭐가 다른가? 노무현 씨가 대통령이 아니었어도 FTA에 그리 우악스럽게 올인했을까?
민노당을 지지하지만 아직은 세가 적어서 현실적으로 실현가능한 진보를 선택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묻는다. “세가 적어서 지지하지 않는 게 아니라 당신마저 지지하지 않아서 세가 적다고는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이명박과 문국현의 차이는 한국사회에서 유의미하다, 고 말하는 사람에게 정중하게 묻는다. “물론 차이가 있지요. 그런데 그 차이가 진보정치의 성장을 미루거나 포기할 만큼 중요한 차이일까요?”
민주주의의 경험이 짧은 우리에겐 정치가 통치력만으로 이루어진다는 오해가 있다. 정치는 통치력과 견제력의 두 가지 힘에 의해 이루어진다. 그리고 한국의 민주화를 비롯한 대개의 진정한 사회진보는 통치력이 아니라 견제력에 의해 이루어져왔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선량한 신자유주의’가 아니라 신자유주의에 대한 강력한 견제력이다.
김대중 노무현 정권을 통해 우리는 비판적 지지란 그저 그 견제력을 없애는 선택이라는 것을, 진정한 사회진보를 포기하는 선택이라는 것을 충분히 체험했다. 체험에서 배우지 못하는 사람, 역사에서 배우지 못하는 사회엔 미래가 없다. 1997년, 2002년, 그리고 2007년, 그렇게 당하고도 비판적지지의 악령을 다시 한 번 불러들이는 우리에겐, 어떤 미래가 있을까? (한겨레21, 일러스트 김대중)
2007/10/12 21:33 2007/10/12 21:33
2007/10/10 19:10
88만원세대는 좋은 책이다. 경제학을 이래서 공부하는구나, 싶을 만큼 예리한 사회분석이 많은데 특히 김대중, 노무현 정권 기간 동안의 신자유주의화와 관련한 청소년, 교육문제 분석은 특히 참고가 많이 되었다. 사회문화적인 판단을 경제학적으로 검증받는 느낌이랄까? 퇴고를 제대로 하지 않은 책, 이라고도 하지만 이 책이 일종의 팜플렛이라는 점에서 이해할 수 있는 문제고 또 오히려 그래서 술술 잘 읽히는 장점도 있다. 하나 마음에 안 드는 건, 앞에 실린 남재희 씨의 추천사다. 이런 사람과 사적으로 통하는 거야 상관할 일이 아니지만 추천사라니, 누가 누구를 추천한단 말일까?
2007/10/10 19:10 2007/10/10 19:10
2007/10/08 11:40
보수 신앙이 고집스러운 이유는 그 신앙이 실은 ‘자신이 바라는 바를 신의 이름으로 주장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유대 극우파의 야훼 신앙, 일본 극우파의 천황 신앙, 미국이나 한국 극우파의 하느님 신앙이 다 그렇다. 훌륭한 신앙은 개방적일 수밖에 없다. 신앙은 신의 뜻을 온전히 따르려하면서도 신의 뜻을 잘못 이해했을 가능성을 늘 염두에 두는, 신 앞에 겸허히 선 상태이기 때문이다.
2007/10/08 11:40 2007/10/08 11:40
2007/10/05 01:28
예수전 원고를 네 번이나 엎은 끝에 이젠 마무리 작업 중이다. 처음 원고로도 책을 낼 수 있었고, 대부분의 독자들은 그 원고와 이번 원고를 비교해서 본다고 해도 대단한 차이를 느끼지 못할지도 모르지만, 하여튼 나로선 원고를 거듭 다시 쓸 수밖에 없었던 몇 가지 결핍이 있었다. 해결된 그 중 하나는, 예수는 경제적 착취와 문화적 경멸을 하나로 봤다, 는 것이다.
2007/10/05 01:28 2007/10/05 01:28
2007/10/04 2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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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자전거 타다 다쳐서 입원했다. 우연히 안 해효가 사온 문병세트. 처음엔 아니 이 유명한 블랙매니아가 어인 금띠? 하며 웃었는데 두고 볼수록 정감이 간다. 가슴이 찢어지는 이별을 치르는 사람에게 트롯이 제격이듯 병상에 무너져 내린 사람에겐 이 근대식 데코레이션이 제격인 지도 모르겠다. 지적 세련됨이란 삶의 정수가 아니라 삶의 유한함에나 적용되는 게 아닐까. 제 아무리 지적이고 세련된 사람도 이별로 가슴이 찢어질 땐, 아프고 외로워 견딜 수 없을 땐 콧물 흘리며 징징거리는 법이고, 그래서 우린 다 같은 인간이다.
2007/10/04 20:56 2007/10/04 20: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