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06'에 해당되는 글 7건
2007/06/22 10:25
트랙백을 따라갔다 발견한 파이스트의 렛잇다이. 숨이 많이 들어간 그러나 실한 목소리, 담백하고 세련된 연주, 온갖 장르가 뒤섞여 있으면서도 천하게 느껴지지 않는 구성, 좋다. 이런 듣기 편한 음악을 좋아하는 편이 아닌데 취향이 변한걸까? 션 레논의 신보도 좋게 들리는 걸 보면 그럴지도.
2007/06/19 13:58
어설프게 수련한 사람들일수록 사회 현실 문제를 외면하는 경향이 있다. 눈에 보이는 것, 즉 색(色)은 본질적인 게 아니며 그것에 집착하는 건 어리석은 태도라는 것이다. 그러나 색에 집착하지 않는다는 것은 눈에 보이는 것과 안 보이는 것을 구분하여 보이는 것은 외면하고 안 보이는 것에만 관심을 갖는 게 아니라, 눈에 보이는가 안 보이는가에 집착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색에서 초탈한 듯 폼을 잡는 그들이야말로 실은 색에 집착하고 있는 것이다. 예수나 석가가 인민 속에서 중생 속에서 부대끼며 살았던 건 수련이 부족해서가 아니었다.
2007/06/17 07:34
신문이고 방송이고 올해 따라 별스럽게 6월항쟁 6월항쟁 한다 했더니 20주년이란다. 내 또래들의 술자리에라도 끼면 늘 그 이야기들이다. “요즘 대학생들은 6월항쟁이 뭔지도 모르더라고.” “아는 애들도 있지만 그냥 그런 일이 있었다지 아무 감회가 없어.” “요즘 애들이야 지 생각만 하지 사회문제에 도통 관심들이 없잖아.” “아, 체 게바라 티셔츠 입고 다니는 애가 체 게바라가 누군지 모르더라니까.” 이야기는 어김없이 아쉬움에서 개탄으로 변해가곤 한다.
하긴 청년 시절 목숨까지 내놓고 군사파시즘과 싸웠던 사람들이 요즘 청년들을 보면 왜 아쉬움이 없을까. 사회나 이웃에 대한 관심보다는 제 개인의 문제에나 집중하는, 한없이 사소하게 살아가는 그들을 보면 말이다. 그럼에도 그런 개탄의 소리를 듣자면 적이 마음이 무거워진다. ‘그런 너희는 지금 뭐 그리 다른데’ 싶어서다. 이제 삶이 사소하기로야 요즘 청년들보다 못할 게 없는 그들의 개탄은 우습다. 역사를 추억만 하는 사람들이 역사를 모르는 사람들을 개탄하는 일은 말이다.
옛 투사들의 그런 심란스런 모습만큼이나, 민주화 20년이라는 한국 사회의 모습은 심란스럽기만 하다. 농민들은 제 나라 정부에게서 공식적으로 버림받았으며 현대판 노예 비정규 노동자는 끝없이 늘어만 가고 삶의 막장에 다다른 사람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스타를 내세운 대부업자들에게서 기어코 거덜이 난다. 박정희의 딸(이자 정치적 아들) 입에서조차 ‘양극화’라는 말이 나오니 이게 과연 현실인가 코미디인가?

왜 이렇게 된 걸까? 민주화한 지 20여년이라는데 왜 인민들의 삶은 민주화할수록 고단해져만 가는 걸까? 그 의문을 해결할 길이 없는 사람들은 민주주의고 진보고 다 필요 없고 오로지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해준다는 대통령 후보에게 몰려간다. 무지스런 시장만능주의자에다 개발주의자이기까지 한 그 후보가 대통령이 된다면 인민들의 삶은 더욱 거덜이 나겠지만 막막한 사람들은 제 막막함만큼이나 맹목적이다.
대체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민주주의란 말 그대로 인민이 주인이 되는 사회일 텐데, 인민이 주인이 된다는 건 무엇인가? 군사 파시즘이 물러가고 선거에서 자유롭게 한 표를 행사하고 언론의 자유가 생기면, 그걸로 인민이 주인인 사회인 건가? 그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라 민주주의를 위한 최소한의 준비일 뿐이다. 그럼 진짜 민주주의는 무엇인가?
이런저런 학술적이고 고상한 논설들을 넘어 가난한 나라 아이티의 한 소녀의 말이 가슴을 파고든다. “민주주의란 모든 사람들이 먹고, 학교에 가고, 병원에 갈 수 있는 것이다.”(아이티의 전 대통령 아리스티드가 지은 <가난한 휴머니즘>에서) 그렇다, 그게 민주주의다. 한국 사회는 지난 20년 동안 민주화한 게 아니라 민주주의에서 점점 멀어져온 것이다. 그래서 인민들의 삶은 ‘민주화할수록’ 고단해진 것이다.
한국인들은 수십년 동안 군사 파시즘과 싸웠다. 1987년 군사 파시즘이 물러나고 비로소 민주주의의 준비가 마련되었지만 바로 그 순간 더 큰 비극이 시작되었다. 한국인들이 벅찬 감회에 젖어 민주화가 되었다! 축제를 벌일 때 그 틈새로 자본화,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바람이 들어왔다. 그 후 20년은 아무런 망설임도 견제도 없는 극단적인 자본화의 판이었다.
자본화의 선봉에 선 개혁세력은 민주주의의 준비를 민주주의라 거짓선전하며, 군사파시즘에서 벗어난 한국사회를 차곡차곡 자본의 손아귀에 넘겨주었다. 행여 들킬세라 개혁세력은 끊임없이 조선일보니 수구기득권 세력이니 따위를 들먹이며 군사파시즘의 공포를 환기했고, “모든 사람들이 먹고, 학교에 가고, 병원에 갈 수 있는 사회”를 좇는 사람들을 “비현실적이며 80년대식 몽상에 사로잡힌 사람들”로 몰아붙여 인민들에게서 격리시켰다.
그 결과가, 민주화의 허울을 쓴 자본화 20년의 결과가 오늘 우리 눈앞에 펼쳐진 이 심란스런 현실이다. 민주화 20년? 싱거운 소리들 마라. 억울하고 슬픈 일이지만, 한국에서 민주화는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다. (한겨레21, 일러스트 김대중)
하긴 청년 시절 목숨까지 내놓고 군사파시즘과 싸웠던 사람들이 요즘 청년들을 보면 왜 아쉬움이 없을까. 사회나 이웃에 대한 관심보다는 제 개인의 문제에나 집중하는, 한없이 사소하게 살아가는 그들을 보면 말이다. 그럼에도 그런 개탄의 소리를 듣자면 적이 마음이 무거워진다. ‘그런 너희는 지금 뭐 그리 다른데’ 싶어서다. 이제 삶이 사소하기로야 요즘 청년들보다 못할 게 없는 그들의 개탄은 우습다. 역사를 추억만 하는 사람들이 역사를 모르는 사람들을 개탄하는 일은 말이다.
옛 투사들의 그런 심란스런 모습만큼이나, 민주화 20년이라는 한국 사회의 모습은 심란스럽기만 하다. 농민들은 제 나라 정부에게서 공식적으로 버림받았으며 현대판 노예 비정규 노동자는 끝없이 늘어만 가고 삶의 막장에 다다른 사람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스타를 내세운 대부업자들에게서 기어코 거덜이 난다. 박정희의 딸(이자 정치적 아들) 입에서조차 ‘양극화’라는 말이 나오니 이게 과연 현실인가 코미디인가?

왜 이렇게 된 걸까? 민주화한 지 20여년이라는데 왜 인민들의 삶은 민주화할수록 고단해져만 가는 걸까? 그 의문을 해결할 길이 없는 사람들은 민주주의고 진보고 다 필요 없고 오로지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해준다는 대통령 후보에게 몰려간다. 무지스런 시장만능주의자에다 개발주의자이기까지 한 그 후보가 대통령이 된다면 인민들의 삶은 더욱 거덜이 나겠지만 막막한 사람들은 제 막막함만큼이나 맹목적이다.
대체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민주주의란 말 그대로 인민이 주인이 되는 사회일 텐데, 인민이 주인이 된다는 건 무엇인가? 군사 파시즘이 물러가고 선거에서 자유롭게 한 표를 행사하고 언론의 자유가 생기면, 그걸로 인민이 주인인 사회인 건가? 그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라 민주주의를 위한 최소한의 준비일 뿐이다. 그럼 진짜 민주주의는 무엇인가?
이런저런 학술적이고 고상한 논설들을 넘어 가난한 나라 아이티의 한 소녀의 말이 가슴을 파고든다. “민주주의란 모든 사람들이 먹고, 학교에 가고, 병원에 갈 수 있는 것이다.”(아이티의 전 대통령 아리스티드가 지은 <가난한 휴머니즘>에서) 그렇다, 그게 민주주의다. 한국 사회는 지난 20년 동안 민주화한 게 아니라 민주주의에서 점점 멀어져온 것이다. 그래서 인민들의 삶은 ‘민주화할수록’ 고단해진 것이다.
한국인들은 수십년 동안 군사 파시즘과 싸웠다. 1987년 군사 파시즘이 물러나고 비로소 민주주의의 준비가 마련되었지만 바로 그 순간 더 큰 비극이 시작되었다. 한국인들이 벅찬 감회에 젖어 민주화가 되었다! 축제를 벌일 때 그 틈새로 자본화,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바람이 들어왔다. 그 후 20년은 아무런 망설임도 견제도 없는 극단적인 자본화의 판이었다.
자본화의 선봉에 선 개혁세력은 민주주의의 준비를 민주주의라 거짓선전하며, 군사파시즘에서 벗어난 한국사회를 차곡차곡 자본의 손아귀에 넘겨주었다. 행여 들킬세라 개혁세력은 끊임없이 조선일보니 수구기득권 세력이니 따위를 들먹이며 군사파시즘의 공포를 환기했고, “모든 사람들이 먹고, 학교에 가고, 병원에 갈 수 있는 사회”를 좇는 사람들을 “비현실적이며 80년대식 몽상에 사로잡힌 사람들”로 몰아붙여 인민들에게서 격리시켰다.
그 결과가, 민주화의 허울을 쓴 자본화 20년의 결과가 오늘 우리 눈앞에 펼쳐진 이 심란스런 현실이다. 민주화 20년? 싱거운 소리들 마라. 억울하고 슬픈 일이지만, 한국에서 민주화는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다. (한겨레21, 일러스트 김대중)
2007/06/13 12:12
내 삶의 불복종은 우리 일상에서 흔히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지나가는, 그러나 우리 사회의 골간에 닿아있는 문제들에 정색을 하고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누구든 읽다보면 자신이 얼마나 느끼하게 살고 있는지 깨닫게 된다.
2007/06/12 10:19

주말에 예수전 식구 몇이 놀러왔다. 근처 숲에서 단체사진을 박았는데, 현정이 말하길 나는 마치 이미지를 합성해 넣은 것 같단다. 생각해보면 늘 그랬던 것 같다.

누룽지탕을 준비하는 홍여사. 앞치마를 두를 때 평화를 느낀다는, 자의식과 섬세함의 결정체인 이 남자의 누룽지탕은 정말 맛있다.

공부를 많이 했다는 죄로 늘 구박받는, “나한테 따뜻한 말 한마디 해준 적 없어요”라고 익살스럽게 항의했던 호남과 따뜻하게 한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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