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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05/31 민들레 인터뷰
  2. 2007/05/29 주례
  3. 2007/05/21 이태원
  4. 2007/05/19 품위 전쟁
  5. 2007/05/17 부디
  6. 2007/05/16 건달
  7. 2007/05/15 스승의날
  8. 2007/05/07 광채
  9. 2007/05/02 락앤락
2007/05/31 14:57
대안교육지 민들레 인터뷰. 인터뷰어는 우리교육 편집장이었고 지금은 성미산학교 교장인 박복선 선생과 민들레 김경옥 주간. 제목은 “어느 좌파의 교육 이야기”.



박복선 / 반갑습니다. 김규항 선생님이 쓰시는 칼럼을 재미있게 읽고 있고 있습니다. 『민들레』 독자들 중에서도 팬이 많이 있을 텐데, 이분들도 이 만남을 아주 반가워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꽤 오래 전부터 쓰시는 글들을 꾸준히 읽다 보니, 아이들의 성장 과정을 어느 정도 구성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얼마 전에 쓰신 글을 보니 큰 아이가 벌써 중학생이 되었더군요. 제가 아는 분들 중에는 아이들 키우다가 교육에 대해 깊은 안목을 갖게 되는 분들이 적지 않은데, 마찬가지가 아닐까 생각합니다만.

김규항 / 저는 교육 문제에 대해서 전문적인 식견도 없었고, 보통의 부모 이상의 관심을 가질 기회도 별로 없었어요. 아이를 키우고, 학교에 보내는 것이 생활의 일부분이고 그에 대한 관심과 견해가 생긴 거겠죠. 시간이 지나면서 생각이 좀 달라진 것도 있고, 시행착오도 있었고요. 사실 아이를 학교에 보내기 전까지는 탈학교라든지, 학교 밖의 교육 이런 것에 대해 좀 도식적이고 간단하게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아이가 학교에 다니고, 아이 동무들 사는 것도 보고 주변 환경에 대해서도 알게 되면서 ‘이게 쉽게 말할 문제가 아니구나.’ 싶더라구요. 지금 제가 파주에 사는데, 강남과는 비교하기 어렵겠지만, 우리 아이 빼고는 다 학원 다녀요. 10시, 11시까지. 그런 환경에 다들 휩쓸려가는 분위기가 있어요. 아이가 없었다면 ‘이건 정상이 아니다, 미친 짓이다’ 하고, 훨씬 간명하게 생각하고 이야기할 수 있었을 것 같아요. 그런데 주변 부모들을 보면 삐뚤어진 교육관을 가졌거나, 자본의 아이로 키우고 싶어서라기보다는 세상에 휩쓸려 가다보니 그렇게 하는 거예요. 현상적으로만 보면 지금 한국의 부모들이 다 미친 게 사실이지만, 악의는 없다고 봅니다. 사회에 대한 불안감과 초조함 때문에 그러는 거라고 보는데, 거기에 대한 연민이랄까, 그런 게 생겨요. 그래서 쉽게 비판할 수 없는 것 같고요. 잘못하고 있지만 악의는 없는 사람들, 그들과 어떻게 소통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박복선 / 이건 좀 주변적인 이야기 같은데, 김규항 선생님 글을 읽다 보면 교육 문제에 대해서는, 뭐랄까, 상황의 복잡성을 섬세하게 이해하고 표현도 완곡하게 하시는 것 같은데, 정치 문제에 대해서는 상황을 아주 단순하게 보고 표현도 단호하게 하신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안에 있는 것과 밖에 있는 것의 차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는데, 만약 현실 정치에 개입하거나 참여해도 그렇게 날카로운 시각을 견지할 수 있을까요?

김규항 / 저도 생각을 해 본 적이 있어요. 유시민 씨 옆에 있으면 좀 더 그 사람을 이해할 수 있을까. 좀더 섬세하게 볼 순 있겠지요 그러나 좀 더 섬세하게 본다는 것과 시각이 두루뭉술해지는 건 다르죠. 제가 정치 문제에 대해 단순하게 생각하는 것은 현재 한국의 정치가 여전히 우파 일변도이기 때문입니다. 극우를 우파라 하고 그보다 좀 나은 우파는 좌파라고 하는 식이죠. 민노당이 있지만 대개의 사람들에게 정치라고 하면 여전히 한나라와 열우당의 문제일 뿐입니다. 공화당과 신민당으로 나뉘던 박정희 시절과 다를 게 없습니다. 좌파 정치가 없다는 건 중간이하 계급의 사람들의 이해를 대변하는 정치가 없다는 것이죠. 그게 지금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이고 이런 정치 현실 속에서는 엄격하고 단순한 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박복선 / 좌파적 시각을 선명하게 견지하는 글을 쓰는 게 일종의 특징처럼 알려져 있는데, 좌파의 입장에서 볼 때, 우리 교육 문제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야 하는 것이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김규항 / 제가 80년대 초반에 대학에 입학했는데, 우리 세대 대부분이 국가주의적 교육에 물들어 있다가, 대학에 들어가서 의식이 열리는 경험을 했을 거예요. 80년에 광주항쟁이 있었고 이를 이어 군부독재에 저항하는 민주화 운동이 일어났지요. 민주화 운동은 그 뒤에 사회변혁 운동으로 바뀌었고요. 그러다 90년대 초입에 팍 엎어집니다. 소위 ‘절차적 민주주의’가 이루어지면서 스스로 힘이 빠진 건데, 그 때 저희들이 반성한 것 중의 하나가 ‘거대 담론의 과잉’이라는 거였지요. 사회 변혁이라는 큰 문제에만 집착하고, 일상적 문제 예컨대, 문화, 여성, 환경 문제 같은 거에는 무관심했다는 거죠. 문화적 다양성을 얘기하면 계급 혁명, 민족 통일 같은 큰 문제를 해결하기도 벅찬데, 사소한 문제를 들고 나온다고 했습니다. 그것에 대한 반성이 많이 있었어요. 80년대 거대 담론의 편향에 대해서는 심지어 운동 안하던 사람도 빈정대는 상황이지요. 그러나 지금은 ‘거대 담론의 빈곤’이 문제예요. 사회 전체의 문제, 얼개를 보지 않은 상태에서 각론만 이야기하는 건 더 심각한 문제입니다.
지금 교육문제의 얼개는 ‘신자유주의 경쟁 체제’입니다. 우리 아이들은 이 체제에 갇혀서 극심한 경쟁을 하고 있고, 경쟁만 아는 인간이 되어 가고 있어요. 한 학생이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란 말을 남기고 자살하여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킨 지 벌써 20년이 넘었지만 상황은 훨씬더 심각해졌어요. 사람들은 입시지옥이라는 표현을 하면서 아이들을 그 지옥에 밀어넣습니다. 그런 거 성인기를 대비하여 지금 감수해야 하는 거다. 그런데, 그 경쟁이 지금은 초등학교까지 와 있습니다. 열세 살 이전의 아이들을 이런 식으로 교육하고 키우는 곳은 한국밖에 없어요. 독재시절에도 아이들한테는 그나마 어느 정도의 자유가 있었습니다. 부모님한테 ‘대통령 욕하면 큰일 난다’는 말을 들어야 했고, 학교에서는 반공이니, 새마을이니 떠들어댔지만, 아이들의 일상적 자유를 치명적으로 손상시키지는 않았어요. 요즘 말로 ‘느린 시간’이 있었던 거죠. 지금 초등학교 아이들을 보면 노는 것까지 프로그램화되어 있고 상품화되어 있어요. 세계화시대의 엘리트는 놀기도 잘 해야 된다면서 그것까지 과외를 한다고 해요. 강남에는 줄넘기 과외도 있다더군요. 미친 거죠.
그런데 이런 게 전부 아이의 미래를 염려하는 부모들의 마음에서 비롯된 거고, 소박하게 보자면 이해가 가기도 합니다. 문제는 그 배경에 신자유주의가 버티고 있다는 겁니다. 사회 체제의 엄청난 변화, 민주화를 거치면서 교육에서 권위적이고 폭력적인 요소는 많이 사라졌지만, 자본화, 상품화는 더욱 강화되고 있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심지어 전교조 교사들도 이십 년 전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지금 시대가 요구하는 좋은 교사는 민주적인 교사가 아닙니다. 그건 너무 소박해요. 지금 좋은 교사라면 사람의 상품화 문제에 대해 엄격한 의식을 갖고 있어야 합니다. 신자유주의의 거대한 구조에서 어떻게 하면 아이들을 상품이 아닌 인간으로 남겨둘 수 있을까를 고민해야 좋은 교사입니다. 지금 진보적이라는 전교조 교사들 중에서도 그런 교사는 적습니다. 안 때리고 권위적이지 않으면 좋은 교사라고 하는데, 그걸 넘어서야 되요. 거대 담론, 사회 전체의 얼개에 대해서 얘기하는 것이 불편하게 느껴지거나 철지난 것으로 여기니까, 모든 교육의 문제가 방식이나 기술의 문제로 갑니다.

박복선 / 말씀에 동의합니다. 다만 한 가지 보충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이건 제 경험하고도 결부되는 문젠데, 교사운동이 발전하는 과정을 보면, 80년대 전교조 결성 전후에는 교사들이 주로 ‘사회학적 상상력’을 통해 교육문제를 보았어요. 그때 교사들이 주목한 것은 계급 재생산, 이데올로기 재생산 문제였고, 교사운동은 이 틀을 깨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학교 현장에서는 ‘의식화 교육’으로 구체화되었는데, 이것은 운동을 함께 할 동지를 길러 내는 일이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제가 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있을 때 어떤 아이가 와서 대학에 안 가고 노동자가 되겠다고 해서 당혹스러웠던 적도 있습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90년대 들어서 사회 분위기가 크게 바뀌었고 운동권의 자기 성찰이 있었죠. 문화적으로는 이때에 우리 사회가 ‘소비사회’로 진입하고, 포스트 모더니즘에 대한 논의도 활발하게 이루어집니다. 소위 ‘신세대’가 등장하고 이어 ‘학교 붕괴’ 이야기가 나오게 되지요. 이런 상황에서 과거 교사운동에 대한 반성과 성찰이 이루어지는데요, 80년대의 의식화 교육이 너무 표피적인 것은 아니었는지, 신세대를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학교 위기’ 현상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졌지요. 이 과정에서 사회학적 상상력 일변도의 분위기를 바꿔야 한다, 아이들 개인의 성장을 세심하게 보아야 한다, 소통이 중요한 주제가 되어야 한다는 소리가 나왔습니다. 보기에 따라서는 ‘거대 담론 과잉’에 대한 생산적인 조정 과정으로 볼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얼마 전에 쓰신 ‘성인식’이라는 글을 아주 재미있게 보았습니다. 거기 이런 대목이 나오지요. “그에게, 실은 네 동무들뿐 아니라 네 앞에서 어른 노릇을 하려드는 대부분의 사람들도 여전히 세상이 민족이나 국가로만 나뉜다고 믿는다. 그래서 지배계급에 늘 속고 뜯어 먹히며 살아간다, 말해주려다 말았다. 그의 마음속에 사회에 대한 의구심이나 분노, 혹은 연민이 더 많이 생길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말해주려다가 마는 그런 ‘주저함’이 교육에서는 참 소중한 거라고 생각해요. 이와 비슷한 맥락이 아닐까 합니다만.

김규항 / 선생님 말씀 들으니 재미있군요. 방법에 대한 반성이나 자기 성찰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사회 운동에서도 비슷한 반성이 있었죠. 소위 민중을 의식화시킨다는, 현장에 들어가서 아직 의식이 없는 사람들에게 의식을 주어서 세상을 바꾸어보겠다는 섣부름에 대한 자기반성과 맥을 같이 하는 것 같아요. 그런 반성은 소중한 것이지만 그것이 거대 담론에 대한 거부로 이어지는 것은 잘못입니다. 지금 계급 재생산 문제는 오히려 더 심해지고 있잖아요. 아이가 대학 안 가고 노동자 된다고 했을 때, 당혹스러웠던 느낌의 이면에는 노동자가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는 거 아닐까요? 우리 사회에선 노동자들의 긍지나 자부심은 생기기도 전에 사라져 버립니다. 이런 현실이 문제라는 거지요.
덧붙이고 싶은 것은, 전교조 역사를 보면 사회 변화 속도로 볼 때도 한참 뒤떨어지는 고난의 시절이 있었습니다. 군부독재가 종식되고 절차적 민주주의가 회복된 것이 87년인데, 전교조는 89년에 1,500명의 교사가 해직되는 대탄압을 받았죠. 그러다 보니 민주화운동 시기에 중요하게 생각을 했던 의제들을 여전히 끌어안고 가야만 하는 상황이 된 거라고 봅니다. 독재와 반독재, 군사파시즘과 민주화의 구도가 신자유주의와 반자본의 구도로 넘어가야 하는데, 과거의 구도에 너무 오래 묶여 있을 수밖에 없었고, 조직적 방향을 잡기 어려운 부분이 있었어요. 경과를 이야기하다 보면 그럴 만한 이유가 있지만, 현재 교육 상황을 볼 때 전체적인 얼개, 그러니까 계급 재생산은 지금이 더 확실하죠. 또 노동과 자본의 대결도 점점 더 커지고 있는 실정이구요. 근데 실제 운동은 거꾸로 가고 있으니 이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문제는 이것을 주변 사람들에게 설득해야 하는데, 부모들을 향해 ‘당신들의 교육 방법은 훌륭하지 않습니다’ 백날 이야기해도 소용없어요. 스스로도 훌륭하지 않은 걸 알지만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하는 거니까요. 오히려 우리는 좀 현실적으로 가야 할 거 같아요. 그렇게 키우면 아이가 행복하게 살 수 없다, 대학을 가거나 점수를 따는 데서는 유리할 수 있지만 아이가 행복을 잃을 수도 있다, 그걸 현실적으로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하는 거죠. 부모들은 ‘훌륭한데 비현실적인’ 교육방법에 대해서는 갈수록 설득되지 않는 것 같아요. ‘훌륭하면서도 현실적인’ 교육방법을 제시해야 해요. 초등학교 교육 우리나라 같은 데 없다고 하면 부모들이 “어, 그런가?” 하고 뒤 돌아서면 끝이에요. 그러다 아이들 때는 놀게 하는 것이 국가경쟁력 차원에서만 보아도 더 좋다, 주지교육 위주로 가는 것은 정말 후진적이고 창피한 일이다. 이렇게 이야기를 했더니 다들 고개를 끄덕입니다. 경쟁체제에 대해서 비판하면서, 아이들 똑바로 키워야 한다, 이렇게 말하면 공감은 하지만 현실적으로 적용하기가 어렵죠.

박복선 / 현실의 얼개에 대한 인식과 구체적인 실천 방법을 교육적으로 잘 연결해 내는 것이 과제일 겁니다.

김규항 / 초등학교 때는 양식 있는 부모들은 실제로 그런 교육을 해요. 아이들 학교도 빠지고 해서는 같이 여행 다니고. 그런데 중학교 입학하면 그렇게 안 해요. 다들 똑 같아지더군요. 학원 보내고, 성적이 제일이고…. 저는 거꾸로 생각합니다. 초등학교 때는 좀 평범하게 키우는 게 좋은 것 같아요. 초등학생 때 사회의식이 있어야 하나요? 친구들과 잘 놀고, 어려운 사람 보면 도울 줄 알고, 힘든 일에서 빠지지 않는 마음 갖는 거면 훌륭하지요. 그게 초등학생의 사회의식이겠죠. 그런데 중학교 때부터는 세상과 자기를 인식하게 되는 시기라서 이때가 실은 아주 중요하다고 봐요. 책임을 질 줄 아는 인간, 세상을 제대로 읽는 인간으로 자라야 하죠. 진보적이고 의식 있는 부모들이 초등학교 때는 이것저것 좋다는 것을 하다가 중학교 때는 너무 쉽게 포기합니다. 얼개에 대한 고민이 없어서 그래요. 굳건하지가 못해서. 얼개를 봐야 교육 실천을 위한 순서나 길이 바로 잡힙니다.

박복선 / 현실적인 것을 이야기해야 한다는 말씀이 인상적입니다. 사실 ‘어떻게 살아야 행복할까’ 하는 질문에 답이 다 들어있는 데 말이에요. 그게 어쩌면 본질일 것도 같고. 그렇지만 이런 게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설득력이 있을까요?

김규항 / 근데 부모들이, 알고 있다 이거죠. 주위를 보면 아주 좋은 학벌이나 직장 갖고 있는 사람들이 다 인간적이고 좋은 사람이 아니잖아요. 행복한 삶을 사는 것도 아니고요. 누구나 행복이란 것이 외형적인 조건과 결정적인 관계없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자기 아이는 외형적인 조건을 기본적으로 갖추길 원하는 거죠.

박복선 / 사람들이 외형적인 조건 때문에 행복하지는 않다는 것은 알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그것 없이는 행복하기 어렵다고 생각하는 거 아닌가요? 말하자면, 기본적인 것을 갖추어 놓은 다음에 플러스 알파를 따진다는 거죠. 외형적인 조건을 포기하지는 못해요.

김규항 / 사람들에게 그것을 포기하라고 선동하는 건 아니고, 그것에 집착하느라 가장 중요한 걸 포기할 필요는 없다는 걸 말해야 하는 거죠. 지금 부모와 아이들 관계를 보면 인생의 선후배라기보다는 엘리트 체육에서 코치와 선수 같아요. 중고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를 둔 사람들이 제일 많이 하는 말이 ‘막막하다’예요.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아이들이 부모에 대해서 인간적인 존경을 느끼기가 어려워요. 존경은 삶의 모습에서 감동으로 생기는데 지금 부모들이 삶에 감동이 없죠. 물론 실용적인 부분에서는 부모가 역할을 하지요. 기러기 아빠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아이들은 부모들의 그런 역할이나 뒷바라지에 감사할지 모르지만 존경심을 갖지는 않습니다. 왜 전에 미스코리아 대회에서 뽑힌 친구들이 소감으로 미용실 원장님께 감사한다고 했잖아요. 아이와 부모의 관계가 그런 식으로 가고 있다고 봅니다. 부모는 아이의 미래를 위해서 고민하고 헌신하고 애를 썼다고 하지만 아이들은 점점 부모에 대한 존경심을 잃게 된다는 거죠. 초등학교 때까지는 그래도 좀 있는 것 같아요. 중고등학교 가면서 사라지는 거죠. 이게 뭐냐 면, 경제적인 문제를 제외하면 부모들과 아이들이 소통을 못하고 있다는 겁니다. 부모가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아이들이 배울 게 없다는 거예요. 아빠들 모이면 땅 이야기, 자동차 이야기, 주식 이야기나 하고, 엄마들 모이면 학원 이야기나 하잖아요. 매사가 이런 식인데, 아이가 어디 가서 행복을 배우겠어요? 학교에서? 학원에서? 아주 끔찍한 상황이죠.

김경옥 /『민들레』 독자들을 보면, 조금씩의 차이는 있겠지만 대부분 그 강을 건넌 사람들이 아닐까 해요. 깨인 부모라고 할 수 있을 텐데, 그분들도 불안함 때문에 아침저녁으로 마음이 달라지기도 하더라고요. 하루에도 열두 번 강을 왔다갔다하는 거죠. 다시는 돌아보지 않아도 되도록, 그 결심을 평화롭게 유지하고 그래서 진짜로 아이들과 사랑으로 소통할 수 있으려면 어른이나 아이들이 행복할 수 있는 현실적 조건에 대해 아주 구체적이고 사실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른바 신자유주의적 상황이나 지금과 같은 사회구도 속에서 과연 우리가 행복할 수 있는 그 조건이 뭘까요?

김규항 / 구체적 조건이 뭘까요?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것 하나는, 운동의 방식이 바뀌어야 한다는 겁니다. 이를테면 노동운동의 근본적인 목표나 지향은 인간해방이고, 사람이 상품화되는 것을 반대하는 것이죠. 그런데 너희들이 우리 몫을 빼앗았으니까 우리도 너희 거 가져가겠다고 하면 결국은 밥그릇 불리기 운동에 머물게 됩니다. 그걸 두고 인간해방운동이라 하긴 힘들죠. 자본의 가치가 더 많이 갖는 것, 가진 것을 자랑하는 것이라면 우리가 가져야할 가치는 남보다 더 많이 가진 것을 민망해하는 것, 함께 나누며 즐거워하는 것이죠. 말하자면 ‘가치관의 전복’이죠. 이것이 운동의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 지금 대기업 정규직 위주의 노동운동을 보면 그저 임금투쟁입니다. 가치관의 전복이 없어요. 자본의 가치관을 공유하면서 싸우는 것은 해방운동이라고 하기 어렵고, 존경받을 수 없습니다. 가치관 전복은 우리의 숙제인 것 같습니다. 그게 없으면 강을 건너지 못한 부모들에게 말을 걸 수 없습니다. 존경받을 수가 없으니까. 전에는 주류 사회에서 자리 잡고 소위 좋은 직업을 갖는 것에 대해 적대감이나 반감이 있었다고 생각해요. 저는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는 생각입니다. 우리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만 지키면 되는 거지, 검사가 되든지, 의사가 되든지, 기업가가 되는 건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봅니다. 그런 직업에서도 급진적인 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있어야죠. 어떤 아이는 공부 잘 해서 주류 사회에서 훌륭한 의식을 가진 사람이 되고, 어떤 아이는 대학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서 노동자가 되고, 생태운동가가 되는 거죠. 여느 사람들은 그렇게 갈라지면 소통하는 게 어려워지는데, 우리 아이들은 편견 없이 서로 존중하고 소통하는 거죠. 그게 교육의 목표가 되어야 하는 거 아닐까요? 가치관의 전복이 이루어지면 ‘반대’를 넘어설 수 있다고 봅니다. 지금 동네에서 제가 해보는 일이 이거예요. 생각보다 상당한 설득력이 있더라고요.

박복선 / 교사의 입장에서 보면 결국 ‘가치관을 전복한 사람’을 어떻게 길러내느냐가 문제가 되겠네요. 그런데 교육이라는 것은 장기 프로젝트인데, 현실은 너무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잖아요. 사람들이 불안해하는 게, 실업문제, 양극화 문제가 어느 때보다 극심하기 때문이지요. 정말 끝이 안 보이는 느낌이에요. 프랑스 같은 나라만 봐도 청소년이나 노인처럼 사회적 약자도 먹고 살 수 있잖아요. 최소한의 인간적 품위를 지킬 정도의 삶이 보장된다는 게 전제가 되면 그 다음에 대해 많은 기획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런 것이 전제가 되지 않은 현실에서 교육을 이야기하는 게 좀 허망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아이를 학원을 보내기 위해서 노래방 도우미로 나가는 어머니들이 있다고 합니다. 그렇게라도 해서 아이 성적을 올려야 하는 게 우리 교육의 현실입니다. 자기를 희생해서라도 아이를 살려보자는 거겠지만 그게 아이를 살리진 못하죠. 근본적으로 사회구도, 신자유주의적 구도를 깨야 하는데, 당장 그 구도를 깨기 쉽지는 않죠. 지식인들의 역할 중 하나가 실제로 신자유주의 구도에 맞서 싸우는 게 무엇인지를 구체적인 현실 속에서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아이를 학원에 보내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지, 저도 마트에 가지만, 마트에 간다는 것은 무슨 의미가 있는지 이런 것을 큰 얼개와 연결시켜 볼 수 있다면 조금씩은 바뀌지 않을까 해요.

김규항 / 저 같은 경우는 큰 아이에게 교육 현실을 있는 그대로 이야기해줍니다. 아이가 만화가가 되고 싶대요. 그러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게 미대에 가는 건데, 당장 ‘입시미술’과 일전을 치러야 하죠. 입시미술이라는 게 문제가 많잖아요. 예술가로서 성장하는 가장 중요한 나이에, 선생님이 하라는 대로 하고, 정형화된 틀을 그대로 반복하는 것을 몇 년을 해야 하고, 게다가 일류대학이라는 데는 성적도 잘 나와야 하고. 아이가 중학교에 들어갔는데, 친구들이 다 학원에 다녀서 통화라도 하려면 11시까지 기다려야 되는 거예요. “아빠, 왜들 이러는 거야?” 하는데, 뭐라고 말을 하기 어려운 상황이에요. 말하면 친구들 부모 욕하는 게 되니까.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현실을 다 이야기해주는 거죠. 네가 동양화가나 서양화가가 되려면 서울미대나 홍대미대를 가는 게 전적으로 유리할 것이다, 이들이 순수미술계를 꽉 잡고 있다, 화상이나 감상자들도 그런 것에 얽매인다, 그런 것을 혼자 거부하거나 뛰어넘는 게 어렵기 때문에 미대 정도는 가는 게 좋을 거다, 그런데 만화가는 안 그럴 수도 있다…. 그런데 제가 안상수 선생이나 최호철이나 스노우캣 같은 사람들하고 가까운데, 이 사람들 다 일류 미대 출신들이거든요. 아이가 혼란을 느끼는 거예요. 만화가가 되는 데도 그런 조건이 유리하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느끼는 거죠. 저는 솔직하게 이야기해줍니다. 좋은 미대를 졸업하는 것이 만화가한테도 유리하게 작용한다, 그러나 거기 들어가려면 가장 중요한 시기를 입시미술로 보내야 한다고 말입니다. 그래서 아이가 선택할 수 있게 하려고 합니다. 아이가 얼마 전에 중간고사를 봤는데 측은했어요. 요점 정리도 하고, 인터넷 강의도 듣고. 이런 공부라는 게 별로 의미가 없잖아요. 국어나 사회나 배우는 데는 다 이유가 있는데 그것은 사라지고 시험을 잘 보는 방법만 익히는 거죠. 그렇지만 제가 무책임하게 혹은 급진적으로 그걸 아예 무시하고 거부하는 것보다는 지금 그것이 얼마나 잘못되고 있는가를 그대로 알려주고, 현실 속에서 현명하게 선택하도록 하는 게 좋은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아이가 ‘이건 진짜 공부는 아니지만, 내 인생의 계획을 위해서, 현실을 준비하기 위해서 하는 거다.’ 이렇게 생각하면서 중간고사 준비를 선택하는 것을 존중하겠다는 겁니다. 물론 “아빠, 나 이런 공부, 이런 시험 싫어.” 하는 것도 존중할 거고요. 이렇게 솔직하게 이야기해야 소통이 됩니다. 그리고 아이가 아주 편안해해요.

박복선 / 화제를 ‘대안교육’ 이야기로 옮겨보겠습니다. 전에 쓰신 글에서, 아이를 대안학교에 보낼 것인가 말 것인가 고민하다 결국 일반학교에 보내기로 결정하셨는데, 대안학교에 보내지 않은 것은 ‘사회적 불편함’ 때문이었다고 하셨습니다. 지금도 그러하신가요?

김규항 / 대안학교 보내는 부모님들이 사회적 불편함을 가져야 한다고 보죠. 대안학교가 아직 우리사회에서는 부모들의 ‘자유로운 선택’이 아니라 경제적으로 안정되고 지적으로 교양을 갖춘 부모들의 ‘권리’이니까요. 대안학교에 계신 분이 그러시더라고요. 우리 학교 수업료가 비싸다고 하는데, 국가에서 지원하는 교육비와 사교육비를 합해서 비교해 보면 우리가 낮다. 그렇지만 국가 지원액이야 실제 학부모가 부담하는 게 아니니 비교가 온당하지 않고 사교육도 모든 부모들의 권리라고 생각하지는 않거든요. 동네에 있는 공립학교에 아이를 보내는 것도 어려운 사람들이 있으니까. 사회적 불편함은 그런 전제하에서 당연히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제 주변을 보면 대안학교에 아이를 보내는 사람들이 아주 많아요. 어떻게 보면 저만 빠진 거 아닌가 싶은데, 제가 감당해야 하는 불편함도 적지 않더군요.

박복선 / 그럼 대안학교 이야기도 많이 들으실 텐데요, 무엇이 화제가 되는지 궁금합니다. 아니면 선생님께서 특별히 관심을 가지시는 것이 있는지도.

김규항 / 대안학교에 대해 ‘사회적 불편함’이란 표현을 썼지만, 대안학교 내부를 들여다보면 참 힘들게 일을 하신다는 생각을 합니다. 특히 교사들이 고생을 많이 하시더라고요. 대안학교 교사들의 임금 수준을 알았을 때 활동가들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그런 점에 대해서는 존경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대안학교가 ‘사회적 불편함’의 대상이 되지 않도록 해 나가는 것이 우리의 숙제겠지요. 비싼 수업료 문제를 해결해서 문턱을 없애야 할 겁니다. 그리고 어떤 학교에서는 입학 전형할 때 학부모 면접을 하는 것 같은데, 이야기를 들어보면 의식이 있는 부모가 아니면 통과하기 어렵다고 합니다. 제 후배가 아이를 편입시키려다가 떨어졌는데, 교장 선생님께 자신이 교육에 대한 열정과 높은 사회의식을 가지고 있다는 내용의 메일을 보내고, 겨우 합격을 했다고 해요. 학교로서는 교육관에 얼마나 동참하고 힘이 될 수 있는가를 보려는 것이겠지만 소박하고 적게 배운 사람들에게는 그것 또한 문턱이 될 것 같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대안교육을 한다는 것, 대안학교에 아이를 보낸다는 것은 굉장히 힘든 운동을 하는 것이지만, 전체 사회에서 봤을 때는 어떤 사람의 접근을 제한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자부심과 불편함을 함께 느끼는 게 당연합니다. 제가 대안학교에 대해 이런 이야기를 하면 “조금만 덜 아프게 말하면 안 돼?” 하는 친구가 있어요. 자기만 아이를 대안학교에 보낸 데 대한 불편함을 갖고 있죠. 그래서 그를 친구로 생각하는 겁니다. “뭐가 문젠데?” 이렇게 나오면 존중할 수 없지요.

김경옥 / 대안학교에 아이를 보내거나 대안교육운동 현장에 있는 분들을 위해 변명 아닌 변명을 하자면, 그것이 자유로운 선택이든, 제한된 권리든 대안교육에 몸을 담는다는 건 신자유주의적 질서에서 벗어나겠다는 것이고, 출세나 성공과는 다른 삶을 살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라는 겁니다. 그것만으로도 어떤 의미에서는 격려 받아야 하는 게 아닐까 싶어요. 또 제도권 학교에서 아이를 건강하게 키우기엔 너무 지쳤다거나 능력이 없어 불가피하게 그 길을 택하는 이들도 종종 있어요. 전 어떤 의미에서는 대안학교 학부모들이야 말로 신자유주의의 최전선에서 싸우는 사람들이라는 생각도 들어요. 다만 아이에게 매몰되다 보면 처음 그 생각을 잊기도 하고, 자칫 헤매기도 하고…. 첫 마음을 어떻게 잘 잡고 가느냐가 결국 관건이라고 봅니다.

김규항 / 의도가 어떻든 그 선택이 결국 경제력과 무관하지 않죠. 앞서 말했듯 공립학교에 아이들을 보내기 빠듯한 사람이 대안학교를 선택할 수는 없어요. 거기에 대해서는 최소한의 불편함을 가져야 한다는 겁니다. 물론 그 불편함은 연대감으로 이어져야겠죠. 대안학교에 아이를 보내는 부모들이 전체 교육을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아이들을 함께 키운다는 생각을 해야 합니다. 내 아이하고 남의 아이를 구분하는 것이야말로 비교육적이고 비지성적인 행위예요. 대안교육이 사회적 인정을 받으려면 자기들만의 교육이 아닌 전체 교육에 기여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건 좀 다른 이야기지만, 저는 제 또래에서는 진보적이고 유별난 의식을 가진 사람이라 할 수 있지만, 제가 이런 의식을 갖는 데 영향을 준 초중고등학교 선생님은 진짜 한 사람도 없어요. 반대로 권위적이고 폭력적이며 보수적인 교사에게 시달리면서 이것이 얼마나 나쁜지 배웠죠. 이른바 반면교사 삼을 일은 흔했다는 말이에요. 아주 부자연스럽고 공정하지 못한 상황을 통해서 배웠습니다. 아이들은 좋은 것에서도 배우지만 나쁜 것을 이겨내는 과정에서도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너무 좋은 것만 주려고 하는 게 꼭 바람직한 것은 아닌 것 같아요. 아, 그렇다고 해서 일반학교를 선택하는 것이 더 낫다는 뜻은 아닙니다. 폭력적인 아버지를 보면서 자란 아이들이 아버지를 미워하면서도 결국 아버지를 닮는다잖아요. 현실적으로는 이런 경우가 더 많지 않을까 싶어요. 그렇지만 대안교육 하시는 분들에게는 일종의 ‘순수주의’ 같은 것이 있는 거 아닌가 싶어요.

김경옥 / 말씀처럼 스스로 불편함을 잃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사회에 대한 책임감이나 건강함을 잃지 않아야죠. 저는 그야말로 ‘가치 전복’을 꿈꾸는,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내려는 대안학교 교사나 부모들의 건강함을 믿어요. 오히려 최근에는 대안교육 운동하는 사람들 사이에 좀 자조하는 분위기가 있는데, 문제를 직시하고 드러내기도 하지만 서로 믿고 존중하고 격려하는 마음도 잃지 않았으면 하거든요. 저는 그 불편함이 결국 사회에 대한 ‘연대의식’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봅니다. 가령, ‘조승희’를 겪으면서 더 선명해졌는데, 어떤 사람의 불행을 외면하는 건 결과적으로 내 불행을 외면하는 것이잖아요. 아무리 자기 관리를 잘해도 힘들어하는 한 어린아이를 품지 않아 어느 순간 그가 쏜 총을 맞아야 하는 게 현실이니까요. 지금 같은 사회구조 속에서 누구나 그렇게 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어요. 내 아이만, 우리 가족만 섬에서 살 수 있는 게 아니라면 세상과 만나야 하고, 세상을 바꿔야만 하겠죠. 그게 결국 내 아이나 우리 가족의 행복과 평화를 보장해주는 유일한 길이니까요. 그런 점에서 불편함, 연대감은 필수조건인 셈입니다. 저는 계속 ‘어디에 있느냐’보다 ‘어떻게 있느냐’가 관건이다 싶네요.

김규항 / 제도학교 안에도 진정한 대안적 교육이 있을 수 있고, 대안학교 안에도 출세지향적인 교육이 있을 수 있어요. 만약에 그것이 선악으로 나누어지는 것이라면 저도 아이들을 대안학교 보내겠죠. 아이를 제도 학교에 보내고 있지만, 그 안에서 대안적 교육의 영향을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합니다. 역시 ‘가치관의 전복’이 핵심이라고 봅니다. 이를테면, 다른 반에서 놀림 받는 아이가 이 반에서는 칭찬받을 수 있잖아요. 집에서도 마찬가지예요. 다른 집에서 야단을 맞거나 업신여김 받거나 할 일이 이 집에서는 칭찬받을 훌륭한 일이 될 수 있어요. 그 반대일수도 있고요. 단이의 경우, 학교에서 상장을 받아 와도 보여주지 않고 처박아두기 때문에 청소하다 나오고 그래요. 글짓기 대회 최우수상 같은 거요. 글짓기 상, 이게 참 반지성적이라고 봐요. 아카데미에서 채플린에게 공로상을 주는 건 존중의 뜻이 담겨 있으니까 그럴 수 있겠지만, 무슨 예술작품에 등수를 매겨서 상을 준다는 건 말이 안 되죠. 우리나라 대가라는 작가들이 노벨상을 노린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참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 이야기를 몇 번 한 적 있어요. 그러니까 상을 우습게 여기는 거죠. 상이라는 게 꼭 나쁜 것은 아니겠지만, 경쟁을 부추기기 위해 주는 상을 받았는데 무작정 칭찬할 수는 없는 거죠. 이런 소박한 수준에서 가치의 전복은 대단한 의식이나 결의가 필요한 건 아니에요. 사회적으로는 큰 가치의 전복도 필요하지만, 일상적으로는 작은 가치의 전복을 실천할 수 있습니다.

김경옥 / 다시 뒤로 가는 질문입니다만, 아까 앞에서 '내가 다닌 학교는 반면교사였다’라고 하셨죠. 근데 대부분의 사람은 나쁜 것에 영향을 받아 그대로 보고 배우곤 하죠. 물론 어떤 사람은 그것을 반면교사 삼아 제대로 성장하기도 하지만요. 그렇게 아주 뒤틀린 환경 속에서도 ‘한 아이’를 그렇게 제대로 자라게 하는 건 과연 뭘까요? 하나도 배울 것 없는 학교에서, 폭력적이고 비교육적인 교사들을 보며 누군가는 어떻게 반면교사로 삼을 수 있었을까요? 그건 어디서 왔을까요?

김규항 / 어머님이 가르쳐주셨어요. 저에게 이래라 저래라, 이게 옳다 그르다며 사회의식이나 이념을 가르치시진 않았지만 기본적인 것들 예를 들면, 정의, 공정함, 자기 성찰 이런 것들을 생활 속에서 철저하게, 말이 아니라 몸으로 가르치셨어요. 재미있는 일화가 있어요. 제가 초등학교 5학년인가 6학년 때 한 친구가 있었는데, 형편이 어려워서 시쳇말로 2년 꿇었어요. 털도 나고, 덩치도 크고, 담배도 피고, 고등학교 여학생하고 사귀는 친구였어요. 저하고는 사이가 괜찮은 편이었는데, 누가 이간질을 했는지 하루는 “너 좀 보자.” 하더니 골목 구석으로 데리고 가서 저를 그냥 패는 거예요. 짓밟히고 피가 나고. 그때 저쪽 골목 끝에서 우리 어머니가 오시더라고요. ‘인제 살았구나.’ 했죠. 그런데 어머니가 그냥 지나가는 거예요. 애들도 너무 당황스러워하고, 저를 때리던 아이도 머쓱해져서 다들 헤어졌습니다. 제가 방에 들어가서 가만히 앉아 있는데 별 말씀도 없어요. 그냥 일상적인 얘기만 하고. 뒤에 짐작한 거지만 아이들 일에 어른이 끼어선 안 된다는 나름의 생각이 있으셨던 거죠. 거기서 어른이 개입하면 공정한 결과가 나올 수가 없지 않습니까.
또 하나가, 동네에 담이 높은 부잣집이 하나 있었는데 그 아이들이 아주 못돼먹었어요. 얼마나 안하무인인지 누가 지나가면 머리에 흙을 뿌리곤 했어요. 그렇지만 그 집 위세에 눌려 어쩌지 못했죠. 하루는 그 두 녀석을 학교 지나가는 길에 불러서 “왜 그 따위로 하냐?” 그랬죠. 그랬더니 “감히 이놈이?” 하는 거예요. 제가 몇 대 때려줬죠. 그랬더니 그 집 할머니하고 어머니하고 애들을 앞세우고 오셨어요. 그 집은 철공소도 하고 과수원도 하는 엄청 부잣집이었고, 저희 집은 단칸방 월세집이었어요. 그 사람들이 교육 똑바로 시키라고 해댔고, 어머님은 가만히 서서 그 말을 들으셨어요. 그러고는 그들이 돌아갔는데 또 말이 없으셨어요. 어머님한테 미안해서 “죄송해요, 잘못했어요.” 했더니, “네가 뭘 잘못했는데?” 이러시는 거예요. “괜히 그런 소리 하지 말고. 가서 놀아라.” 그때는 그 의미를 잘 몰랐고 의식으로 연결되진 않았던 것 같아요. 나중에 알았죠. 이게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그때 어머니가 자신이 당한 모욕을 가지고 저를 비난했다거나 화를 냈다면 저는 아무 것도 배울 수 없었을 거예요.

박복선 / 아이를 키우시면서 교육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셨는데, 아이가 어떻게 자랐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으신지요? 어떻게 성장하면 자신의 교육이 성공적이었다고 평가하실 수 있을까요?

김규항 / 앞으로는 어떻게 될지 모르죠. 궁극적으로는 그 아이의 인생이니까 스스로 만들어 가겠죠. 저는 아이를 꼭 좌파로 키운다는 목표는 없습니다. 우파라 해도 고종석 같은 분은 멋있잖아요. 사회적 의제에 던지는 의견을 보면, 준수한 민노당원처럼 보이기도 해요. 지적 양식이란 이념을 넘어서 그렇게 통하는 것이죠.
어쨌든 저는 아이가 인간적으로, 사회적으로 다른 존재들을 존중하고 다른 존재들과 소통할 수 있는 사람이 되면 좋겠어요. 그것이 최대 목표예요. 혐오하거나 경멸해야 마땅한 사람이 되지 않는 것이 최소한의 목표구요. 요즘으로 말하면 FTA를 열혈 찬성한다거나, 자본주의가 인간의 본능에 가장 충실한 제도라고 설파하거나, 재벌을 옹호하기 위해 자유주의를 주장하는 사람이 된다면 많이 슬플 것 같습니다.

박복선 / 좌파로 키운다는 목표가 없다고 하셨지만 그래도 좌파가 되기를 바라시는 것 같습니다. 절대적인 진리나 가치를 주장하는 것은 촌스러운 시대가 되었지만 그래도 제한된 범위 내에서 통용되는 진리와 가치가 없지는 않을 겁니다. 좌파의 교육학은 그런 점에서 여전히 ‘강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좌파 논객이신 선생님의 말씀이 그런 점에서 많은 울림을 주지 않을까 합니다. 긴 시간, 수고하셨습니다.
2007/05/31 14:57 2007/05/31 14:57
2007/05/29 2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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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좀 해보려는 차에, 입원하게 된 향미가 안쓰러워 작은 곰인형 한 쌍을 사주었는데 병원 침대에 내내 매달아 놓았다며 예수전연구반 카페에 사진을 올렸다. 다시 봐도 향미 상평 커플과 느낌이 참 닮았다. 둘은 시월에 춘천 어느 잔디밭에서 결혼하며 내가 주례를 본다. 다시는 안 한다 공언했었지만 둘의 부탁은 도저히 거절할 수 없더라.. ㅎ
2007/05/29 22:06 2007/05/29 22:06
2007/05/21 23:26
토요일에 김건을 데리고 약수동 한의원에 다녀오다 이태원에 잠깐 들렀다. 생각보다 재미있어 했다. 다음날 어디 가고싶은 데 있으면 말해보라고 하니 이번엔 제 누나와 함께 또 가잔다. 이집트 민속품을 파는 가게에서 본 고양이 조각 이야기를 들은 김단도 가고 싶다고 채근이다. 셋이 다시 이태원에 갔다. 예의 이집트 가게에서 이것저것 한참 구경하며 주인과 대화하다가 거리를 한바퀴 돌았다. 김건은 일심이(텔레비전에 여러 번 나왔다는 개)와 사진도 찍었다. 오래 전 이태원 거리는 미군들이 많았던 것 같은데 이젠 온갖 인종이 뒤섞여 어느 외국 거리를 걷는 듯하다. 흔한 말로 자유롭고 편안하달까. 녀석들은 그 분위기가 마음에 드는 모양이다. 돌아오는 길에 인사동보다 재미있었냐, 물어보려다 그 유치함에 혼자 픽 웃고 말았다.
2007/05/21 23:26 2007/05/21 23:26
2007/05/19 08:35
영화 만드는 박찬욱 씨가 ‘이젠 부자가 착하기까지 하다’는 글을 쓴 적이 있다. 한참 이 사람 저 사람 그 글을 화제로 올리기에 부러 찾아 읽었었다. 기억에 기대어 내용을 적어보면 이렇다. 박찬욱 씨가 젊은 상류계급 인사들의 무슨 모임에 불려갔는데 뜻밖에도 거기에 모인 사람들이 하나같이 착하더란다. 그런데 그게 겉치레로서가 아니라 너무나 자연스럽게 느껴져서 인간적인 호감을 뿌리치기가 어렵더라는 것이다. 진보적인 정치 성향을 가진 그로선 거부감이 들지도 느끼하지도 않는 ‘새로운 반동들’(이건 내 표현)이 적이 당혹스러웠던 것이다.
알다시피 한국의 부르주아 1세대는 착한 사람들은 아니었다. 그들은 본디 어느 모로 보나 착함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었다. 이를테면 그들은 제 집에서 소를 훔쳐 도망 나온 사람이었으며 동족이 죽어나가는 전장을 쫓아다니며 탄피를 팔아먹던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돈에 대한 타고난 탐욕과 하한선이 없는 듯한 인격을 한껏 발휘하여 개발독재 시기에 엄청난 부자가 되었지만 그들의 험한 외양까지 바꾸어낼 순 없었다. 그들은 돈으로 수많은 사람들을 그들 앞에 조아리게 했지만 조아린 사람들은 내심 그들에게 침을 뱉고 있었다.
양반이 되기 위해 족보를 사들이던 상놈처럼, 그들은 돈으로 제 가계를 개량하기 시작했다. 아이를 집안 좋고 머리 좋은 배우자와 짝을 지워 좀 더 우량한 아이를 만들어내고 정히 엇나가는 아이는 미국대학에 기부입학이라도 시켜 통속적인 외양을 확보하기를 수십 년, 드디어 그들은 자신들과는 전혀 다른 ‘아이들’을 얻게 되었다. 이른바 재벌 3세, 혹은 4세로 불리는 그 아이들은 대개(물론 전부는 아니다) 인물 좋고 머리도 좋으며 심지어 예의바르고 착하다.
물론 그건 어떤 삶의 상황에서도 유지되는 그들의 진짜 인격은 아니다. ‘이젠 부자가 착하기까지 하다’라는 말의 실체는 ‘이젠 부자가 착함까지 사들였다’일 뿐이다. 말하자면 그들은 부를 일구고 지키기 위해 자본주의의 시궁창을 천하게 구르던 제 할아버지와는 달리 일 년 내내 착한 얼굴을 하면서도 제 부를 충분히 유지할 수 있기 때문에 착한 것이다. 단언컨대 그들 가운데 누구도 제 부에 결정적인 위협을 받을 때 제 할아버지의 모습으로 돌아가지 않을 사람은 없다.
고래가그랬어 편집장 조중사의 아내는 오랫동안 남산 중턱에 있는 부잣집 아이들만 다닌다는 사립초등학교 교사였다. 그는 지난해 거길 그만두고 성북구의 한 가난한 동네 초등학교로 옮겼다. 그런데 그곳으로 옮기고는 퇴근만 하면 우울해하고 술이라도 한잔할라 치면 어김없이 눈물을 보인다고 했다. 조중사가 연유를 물으니 그러더란다. “아이들이 격차가 있다는 건 알았지만 이 정도인 줄은 몰랐어. 여기 학교 아이들은 한 반에서 다섯 명 정도를 빼곤 지난번 학교에서 가장 공부 못하는 축에 껴. 거기에다 왜 여기 아이들은 키도 덩치도 작고 또 왜 이리 아픈 아이들은 많은지..”
개혁파든 극우파든 신자유주의 광신도들의 지배가 지속되는 한 가난한 사람들이 더 힘겨워지는 현실 또한 지속될 것이다. 우리는 이 현실을 바꾸기 위해 연대하고 싸우고 있고 또 싸워야 한다. 그러나 가난보다 더 심각한 위기는 가난한 사람들이 가난의 품위를 잊어버리는 것이다. 가난은 수치스러운 것인가? 아니다. 가난은 불편하고 때론 참으로 고통스러운 것이지만 적어도 부유보다는 정당하고 품위 있는 삶의 방식이다.
가난은 적게 소유함으로써 다른 사람의 몫을 늘이는 보다 정당한 삶이며, 적은 땅을 사용하고 적게 소비하고 적게 태움으로써 파괴되어가는 지구에 생명의 도리를 다하는 보다 품위 있는 삶이다. 품위마저 사들인 부자들은 세상에서 가난의 품위라는 것을 도려내기 위해 갖은 애를 쓴다. 바야흐로 품위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 전쟁에서 반드시 이겨야 한다. 이 전쟁에서 질 때, 그래서 아이들이 가난하지만 정직하게 땀 흘리며 살아가는 제 아비 어미를 수치스러워하게 될 때 우리 삶도 끝장이기 때문이다. (한겨레21)
2007/05/19 08:35 2007/05/19 08:35
2007/05/17 2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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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단한 육신을 벗고 부디 오래 오래 사시길..
(권정생 선생, 2004년 7월 안동집에서 )
2007/05/17 23:31 2007/05/17 23:31
2007/05/16 12:51
"자신의 신념이나 의지를 놓고서 절대 타협하지 않는 '사로잡히지 않는 사람'이 건달이다. 우리가 3대를 건달로 살아간다면, 이 사회는 살 만한 곳이 될 것이다."

기억엔 없지만 내가 오래 전 했던 말이라는데 재미있는 그러나 아슬아슬한 말이다.
2007/05/16 12:51 2007/05/16 12:51
2007/05/15 23:39
예수전 강의는 네 번으로 일단 마무리했는데 그 가운데 좀 더 심화된 공부를 하고 싶어 하는 이들 스물 몇이 연구반을 만든 게 지난해 말이다. 그들은 이제 작은 공동체를 이루고 있다. 그들을 보며 나는 “누가 내 어머니며 내 형제들입니까?” 반문하던 예수를 떠올린다. 언제 그들을 한명씩(그들 삶에서 일어난 이적을 한 편씩) 소개할 생각이다. 스승의 날이라고 그 몇이 편지를 보내왔다. 그 가운데 '리사 엄마'의 편지.



오늘이 스승의 날이에요. 스승의 날 이렇게 선생님을 기억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제가 더 열심히 하지 못해서 여러모로 죄송스러워요. 선생님께 예수전을 듣고 이 늦은 나이에 저에게도 꿈이 생겨서 참 행복합니다.
연구반 마칠 때마다 선생님께서 “오늘 배운 이것이 각자의 삶 속에서 더욱 풍성하게 해석되고 적용되었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시곤 했는데 제 삶의 현장 속에서 그리 하려니 가슴은 두근두근 설레면서 겁도 나고 하지만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채 절망하는 것보다는 제 자신에게 그리고 우리 아이들에게 떳떳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예수전 연구반의 타이밍이 제가 리사를 공교육 시스템 안으로 들여보내기 직전이라 저에게는 더더욱 신선놀음으로 들리지 않고 당면한 현실문제의 유일한 대안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배우는 것들이 각자의 삶 속에서 현실이 되지 못한다면 모든 것이 공염불이겠지요. 다만 자기위안이 될 수도 있고... 저는 그렇게 하려고 해도 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리사가 그렇게 불행한 유년시절을 보내는 건 절대 수수방관할 수 없으니까요.
하지만 우리 리사. “엄마, 우리는 언제 이사 가?”(집이 작아서도 그렇겠지만 제 그림을 벽에 도배하겠다고 해서 그렇게 하라고 했더니 자신이 보기에도 영 지저분해 보인 모양입니다.) “엄마, 우리는 왜 까만 차 안 사?” 라고 묻는 이 아이는 도무지 뼛속부터 자본주의 소녀인지라(벌써!) 걱정입니다.
제가 사는 동작구 대방동에서도 학구열 높은 엄마들은 벌써 강남이나 목동으로 이사를 갔습니다. 그것은 계속 현재진행형이지요. 리사 친구네도 지난 가을 이곳의 아파트를 세주고 서초동에 전세를 얻어 이사를 가더군요. 그렇게까지 교육에 적극적인 엄마들은 제가 보기에 무슨 말을 해도 안(못) 들을 것 같습니다. 이미 깊숙이 발을 담갔으니.. 돌이킬 수 없다고 생각하겠지요. 그것은 결국 그들의 선택이지요.
저희 동네 엄마들은 그렇게까지 극성이어 보이진 않더군요. 그래도 남들 과외 시키는 거 다 시키는 것 같긴 하지만요. 전, 우리 동네 정도의 엄마들에게 희망이 있을 거란 생각이 들어요.(강남으로 이사 못 갈 것도 없지만 그래도 안 가기로 결정한) 비 강남지역에는 이런 분위기의 동네가 많을 것 같습니다. 그런 지역 학부모들이 두루 적용해볼만한 커리큘럼이 있다면, 여기저기서 그런 운동이 조금씩 확산되다보면, 뭔가 눈에 보이는 성과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열 가구 아이들이 학원을 안 가면.. 스무 가구 아이들이 학원을 안 간다면.. 50 가구, 100가구 아이들이 학원에 안 다니면서도 불안해하지 않는다면.. 더 이상 아이들은 저 미친 기관사가 운전하는 기차에 타지 못해 안달(불행)하지 않을 수 있겠지요. 이것이 현실이 된다고(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벅차올라, 요 근래 너무나 행복했습니다.
오늘은 스승의 날. 제 꿈에 날개를 달아준 선생님께 감사를 전합니다.
2007/05/15 23:39 2007/05/15 23:39
2007/05/07 01:13
얼핏 듣기로는 근래 노무현 씨의 지지율이 올랐다는데 그거야 그를 빨갱이라 ‘상찬하며 적대’하던 극우적인 사람들이 FTA를 통해 그의 사상 검증을 완료했기 때문일 테고, 정상적인 사고능력을 가진 사람들(극우적인 경향은 인간의 정상적인 정신 상태가 아니라는 뜻에서)로 말하자면 노무현 씨의 지지율은 그 어느 때보다 바닥으로 보인다. 이젠 마치 노무현을 욕하는 게 시민의 기본교양이라도 되는 듯 사람들을 그를 욕한다.
오늘 노무현 씨를 욕하고 경멸을 퍼붓는 사람들 가운데 상당수는 한때 노무현에 열광했던 사람들이다. 노무현의 진보성을 한껏 신뢰했고 개미떼처럼 힘을 모아 그를 대통령으로 만들었던 바로 그 사람들이다. 오래 전 열광에 열중했듯 이제 경멸에 열중하는 그들을 보면 착잡하다. 물론 그들이 이제라도 ‘노무현의 진보성’이라는 몽상에서 빠져나온 건 다행이라 생각하지만 나는 착잡한 마음을 감출 수 없다. 예나 지금이나 그들은 자신에 대해 말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두 부류로 나뉜다. 한 부류는 '노무현이 변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다. 말하자면 노무현은 본디 진보적이었는데 집권하고 나서 점점 보수화했다, 는 말이다. 아마도 그들은 노무현 씨의 민주화운동 경력과 조선일보나 수구세력과 갈등하는 모습에서 그의 진보성을 찾고, FTA와 이런저런 반민중적 정책들에서 그의 보수성을 찾는 것일 게다. 그러나 노무현 씨는 예나지금이나 민주화운동 경력을 가진 조선일보나 수구세력과 사이가 좋지 않은 정치인이며, 예나 지금이나 신자유주의 노선이다.(FTA나 이런저런 반민중적 정책들은 신자유주의의 다양한 실천방식일 뿐이다) 노무현은 변한 게 없고 역설적이지만 그의 정치는 나름의 일관성을 가지고 있다.
또 한 부류는 '노무현은 원래 그런 인간이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다. 말하자면 노무현은 처음부터 보수적인 사람인데 진보적인 체 거짓말을 해댔다는 말이다. 이를테면 수많은 사람들을 선동하여 노무현 대통령 만들기에 크게 기여했다는 한 지식인은 노무현 씨가 고등학교 때 했다는 말까지 끄집어내며 '원래 그런 인간‘이었음을 증명하려든다. 앞서 말했듯 노무현 씨의 정치는 나름의 일관성을 가진다는 점에서 나는 그의 말에 일단 동의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인간에게 속은 그의 어리석음과 그런 인간을 터무니없이 미화하여 결국 대중들로 하여금 사회진보에 환멸을 뱉으며 이명박 언저리나 배회하게 만든 그의 죄는 대체 어디로 사라진 걸까?
그들은 처음부터 그들의 열광을 만류했던 사람들, 개혁은 진보가 아니며 노무현의 진보성에 대한 기대는 결국 실망과 배신감으로 돌아올 것이라 충고했던 좌파들을 기억할 것이다. 좌파들을 '이념적 도그마에 빠진 비현실적인 몽상가들'이라 조롱했던 자신들이 몽상가였음이 밝혀진 오늘 그들은 왜 좌파에게 사과하지 않는 걸까? 사과는 않더라도 숙연한 태도는 가져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 이 슬픈 현실을 반복하지 않을 테니 말이다. 나는 그들이 이제라도 현실에 대한 좌파들의 견해를 경청하고 존중하길 기대한다. 다시 몇 년 후 오늘 현실에 대한 좌파들의 견해가 옳았음이 밝혀질 가능성을 정직하게 인정하길 기대한다.
내 주변에도 ‘사회 진보의 현실적인 차선책’으로 혹은 ‘수구세력의 집권을 막기 위해’ 노무현 씨를 지지했던 사람들이 몇은 있다. 물론 그들은 이제 더 이상 노무현 씨를 지지하지 않는다. 근래 나는 그들의 말을 노심초사 기다려야 했다. 행여 그들이 열광을 경멸로 바꾸어버린 다른 많은 사람들처럼 자신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면 어쩌나 싶어서였다. 사회적 이견을 가진 사람은 존중할 수 있지만 인격이 의심스러운 사람을 존중할 순 없다. 다행스럽게도 그 몇은 며칠 상관으로 자신이 지나치게 순진했음을 토로했다. 몹시 부끄러워하면서 말이다.
부끄러움을 잊은 시절, 정작 부끄러워해야 할 사람들이 도리어 세상의 문제를 풀 비밀열쇠라도 가진 듯 설쳐대는 기괴한 시절, 부끄러워하는 그 모습에서 광채가 났다. (한겨레21)
2007/05/07 01:13 2007/05/07 01:13
2007/05/02 00:54
"박철권의 락앤락을 보라"는 후배의 강력한 권유. 제목이 ‘락앤락’이 아니라 찾는 데 좀 애를 먹긴 했지만 이 정도 작품이라면 스무 배쯤 수고를 해도 좋다.
2007/05/02 00:54 2007/05/02 00: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