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06'에 해당되는 글 15건
- 2006/06/30 군중
- 2006/06/28 여자의 적은 여자?
- 2006/06/26 행복한 책읽기
- 2006/06/22 반어법
- 2006/06/21 18년
- 2006/06/20 대화 한 토막
- 2006/06/19 양가감정
- 2006/06/14 축구는 축구일뿐
- 2006/06/13 영성
- 2006/06/09 책들
- 2006/06/08 영어 단상
- 2006/06/07 이종회의 FTA 강의
- 2006/06/05 대한민국이 미쳐가고 있다
- 2006/06/02 나의 예수전 3기
- 2006/06/01 엄마라는 이름의 죄인들
2006/06/30 19:03
인텔리들은 ‘군중의 대이동’에 취약하다. 유약하고 관념적인 그들은 그 엄청난 몸의 열기에 압도되어 패닉에 빠지며, 그 몸의 열기에 아첨하고 그 몸의 열기를 찬미함으로써 제 패닉 상태를 극복하곤 한다. “혁명이닷!”(80년대 말, 울산과 거제 대공장 노동자들의 행진 앞에서) “민족 갱신이닷!”(2002년 월드컵, 광장을 메운 청년들 앞에서) 물론 어떤 사회적 사건에서 숫자나 규모는 중요한 요소다. 숫자나 규모가 적은 혁명이란 없으니. 그러나 숫자나 규모가 많다고 해서 모두 혁명인 건 아니다. 역사가 보여주듯, 올바른 사회적 선택이 다수를 점하는 건 단지 ‘최후의 결정적 순간’뿐이다.
2006/06/28 14:51
“여자가 남자보다 더 해.” “여자의 적은 결국 여자야.” 여자들이 하는 말이다. 젊은 여성들일수록, 또 여성이 많은 곳에서 일하는 여성들일 수록 그런 말을 많이 한다. 그들은 적어도 철저한 가부장적 사고를 가진 시어머니나 중장년 여성들을 두고 말하는 건 아니다. 좀 더 세련된 의식을 가진 듯한, 그래서 남성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같은 여성으로서 동병상련의 정을 나누길 기대한, 여성에게서 겪은 뼈아픈 체험을 말한다.
남자인, 그런 체험을 공유할 수 없는 내가 할 말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내 생각엔 “여자의 적은 결국 여자”라는 말엔 심각한 혼란이 담겨 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여자와 남자를 가르는 기준은 무엇인가? 아마 몸, 구체적으로 성기일 것이다. 그렇다면 뒤집어 이야기해보자. 여자 성기를 가진 모든 사람은 여성인가? 여자 성기를 가진 모든 사람이 ‘생리적 여성’인 건 틀림없다. 그런데 그 생리적 여성들이 모두 ‘사회적으로도 여성’인 건 아니다.
우리가 이른바 ‘여성 문제’를 말하고 또 그 적극적인 형태로서 ‘여성주의’라는 사상이 존재하는 이유는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가 남성이 여성을 지배하고 억압하는 가부장제 사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또한 우리는 여성운동을 ‘소수자운동’이라고 한다. 여성은 남성과 생리적 숫자는 비슷하지만 사회적으로는 소수인 것이다.
우리는 종종 남성화한 여성, 생리적 여성이면서 사회적으로는 남성인 여성을 발견하게 된다. 말투가 남자 같고 겉모습이 남자 같은 여성이 아니라, 권위주의적이고 폭력적이며 성찰의 능력이 부족한 전형적인 남성성을 가진 여성 말이다. 아마도 ‘여자의 적은 여자’라 지목되는 여성들은 대개 그런 사람들일 것이다.
그런데 그런 여성들을 두고 “여자의 적은 여자”라고 말하는 건 온당하지 않다. 그 여성들은 실은 남성, 생리적 여성이되 사회적 남성이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면 그 여성의 문제가 아니라 그 여성에 스며든 남성성, 가부장성의 문제인 것이다. 우리는 이렇게 정리할 수 있다. ‘여자의 적은 남성성, 가부장성이다. 그 남성성과 가부장성은 일반적으로 생리적 남성에게 존재하지만 종종 생리적 여성에게도 존재한다.’
사회적 차원은 접고 생리적 여성을 무작정 여성이라 볼 때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혼란에만 빠지는 건 아니다. 수많은 혼란이 있다. 이를테면 우리는 매우 보수적인, 말하자면 남성성과 가부장성을 기반으로 하는 여성정치인을 여성이라는 이유로 지지하는 사람들에게서 그런 혼란을 볼 수 있다. 그들은 몹시 열렬하지만, 애석하게도 ‘여자 성기를 가진 남자’를 지지하는 중이다.
여성해방은 남성들이 누리던 권력과 기득권을 여성들이 빼앗아 누리자는 것일까? 여성해방은 단지 그런 ‘권력의 교환’이 아니라 더 나은 인간,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것이 아닐까? 남성성과 가부장성이 망가트린 세상을 여성성으로 되살려내는, 폭력과 증오의 세상을 평화와 용서와 성찰의 세상으로 바꿔내는 것이 아닐까?
(싱글즈)
남자인, 그런 체험을 공유할 수 없는 내가 할 말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내 생각엔 “여자의 적은 결국 여자”라는 말엔 심각한 혼란이 담겨 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여자와 남자를 가르는 기준은 무엇인가? 아마 몸, 구체적으로 성기일 것이다. 그렇다면 뒤집어 이야기해보자. 여자 성기를 가진 모든 사람은 여성인가? 여자 성기를 가진 모든 사람이 ‘생리적 여성’인 건 틀림없다. 그런데 그 생리적 여성들이 모두 ‘사회적으로도 여성’인 건 아니다.
우리가 이른바 ‘여성 문제’를 말하고 또 그 적극적인 형태로서 ‘여성주의’라는 사상이 존재하는 이유는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가 남성이 여성을 지배하고 억압하는 가부장제 사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또한 우리는 여성운동을 ‘소수자운동’이라고 한다. 여성은 남성과 생리적 숫자는 비슷하지만 사회적으로는 소수인 것이다.
우리는 종종 남성화한 여성, 생리적 여성이면서 사회적으로는 남성인 여성을 발견하게 된다. 말투가 남자 같고 겉모습이 남자 같은 여성이 아니라, 권위주의적이고 폭력적이며 성찰의 능력이 부족한 전형적인 남성성을 가진 여성 말이다. 아마도 ‘여자의 적은 여자’라 지목되는 여성들은 대개 그런 사람들일 것이다.
그런데 그런 여성들을 두고 “여자의 적은 여자”라고 말하는 건 온당하지 않다. 그 여성들은 실은 남성, 생리적 여성이되 사회적 남성이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면 그 여성의 문제가 아니라 그 여성에 스며든 남성성, 가부장성의 문제인 것이다. 우리는 이렇게 정리할 수 있다. ‘여자의 적은 남성성, 가부장성이다. 그 남성성과 가부장성은 일반적으로 생리적 남성에게 존재하지만 종종 생리적 여성에게도 존재한다.’
사회적 차원은 접고 생리적 여성을 무작정 여성이라 볼 때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혼란에만 빠지는 건 아니다. 수많은 혼란이 있다. 이를테면 우리는 매우 보수적인, 말하자면 남성성과 가부장성을 기반으로 하는 여성정치인을 여성이라는 이유로 지지하는 사람들에게서 그런 혼란을 볼 수 있다. 그들은 몹시 열렬하지만, 애석하게도 ‘여자 성기를 가진 남자’를 지지하는 중이다.
여성해방은 남성들이 누리던 권력과 기득권을 여성들이 빼앗아 누리자는 것일까? 여성해방은 단지 그런 ‘권력의 교환’이 아니라 더 나은 인간,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것이 아닐까? 남성성과 가부장성이 망가트린 세상을 여성성으로 되살려내는, 폭력과 증오의 세상을 평화와 용서와 성찰의 세상으로 바꿔내는 것이 아닐까?
(싱글즈)
2006/06/26 10:17
김건의 감기가 오래 간다 했더니 결국 폐렴으로 입원했다. 이틀째 밤, 아내와 교대하면서 뭘 갖고 들어갈까 하다가 책꽂이에서 '행복한 책읽기'(김현)를 골랐다. 투사들은 오래 전에 제 책들을 폐기했지만(따라서 내 책꽂이에서도 폐기되었지만) 이 자의식의 괴수가 남긴 유고는 변함없이 ‘아끼는 복제 도자기처럼’ 내 단출한 책꽂이에 꽂혀 있다. 책에 줄을 긋거나 메모하는 일이 거의 없는데(다시 읽을 때 그 밑줄과 메모가 그 책에서 가장 적절한 밑줄과 메모처럼 보이는 문제 때문에) 이 책엔 몇 군데 밑줄이 그어져 있고 끼적끼적 메모도 적혀 있다. 눅눅한 6인병실 보조침대에 비스듬히 누워 행복한 책읽기.
2006/06/22 11:06
이따금 아이들이 묻는다. “아빠는 몇 살까지 살고 싶어?” “뭐, 60살? 더 오래 살면 뭘 해.” 그럼 아이들은 짐짓 안타까운 얼굴로 “안 돼. 더 살아야지!”하고 나는 싱겁게, 속으론 적이 흐뭇해져서 웃곤 한다. 그런데 만일 그 자리에 일흔을 넘긴 내 어머니나 아버지가 있었다면 어떻게 될까? 말이란 그런 것이다. 말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실은 말의 ‘외부’에 있다. 똑같은 말도 상황과 맥락에 따라 전혀 다른 뜻이 된다.
반어법은 그런 점에서 매우 불리한 표현방식이다. 나도 몇 해 전에 “나는 노력하는 마초”라는 자괴심 어린 말을 했다가 “스스로 마초임을 인정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바 있지만, 반어법과 관련해서 가장 오해가 심한 사람은 역시 예수다. 부러 오해하는 예수 장사꾼들뿐 아니라, 자못 진지한 사람들 가운데서도 오해는 여전하다.
트로츠키주의자 크리스 하먼의 ‘민중의 세계사’는 꽤 잘 쓴 역사책이다. 관점에서나 팩트의 기술에서나 별 모자람이 없어서 통사로 읽기에 가장 적절한 책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예수의 부분만은 예외다. 이 책의 6장 ‘기독교의 등장’에서 하먼은 예수의 말(혹은 예수의 말이라 여겨지는 말)이 “도무지 일관성이 없다”고 주장하며 몇 가지 근거를 든다. 그 중 하나.
이 에피소드는 마가복음(12장 13~17절)에 나온다.
상황과 맥락을 살펴 읽어보면 예수는 하먼의 말처럼 “로마인들에게 세금을 바치라고 설교한” 게 아니라, 자신에게 올가미를 씌우려는 자들을 보기 좋게 엿을 먹이는 것이다. 번번이 예수에게 당해온 바리사이와 헤롯 똘마니들은 이미 연대하여 예수를 죽일 기회만 노리는 중이다. 그들은 예수에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질문을 (속으로 쾌재를 부르면서) 던진다. 만일 카이사르(로마 황제)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다고 하면 예수는 유대인의 배신자가 되고 그르다고 하면 예수는 로마의 반역자가 된다.
어지간한 사람 같으면 얼버무리거나 얼굴이 벌개져서 지사적 무모함이나 보일 상황이지만 예수는 참으로 천연덕스럽게 엿을 먹인다. 엿 먹이는 절차는 두 단계다. 첫단계는 황제의 얼굴이 새겨진 데나리온 한 닢을 냉큼 가져오게 함으로써 그들이 실은 로마 화폐를 소지하고 다니는 속물(혹은 위선자)들임을 드러낸다. 그리고 예수는 제 말에 걸려든 그들에게 다음 단계로 비아냥으로 마무리한다. 예수는 말하는 것이다. “황제 거라고 했나? 그럼 황제한테 바치면 되겠구먼. 하느님 건 하느님에게 바치고.”
반어법이 통하지 않는 사람이란, 반어법이 통하지 않는 사회란, 얼마나 삭만한가..
반어법은 그런 점에서 매우 불리한 표현방식이다. 나도 몇 해 전에 “나는 노력하는 마초”라는 자괴심 어린 말을 했다가 “스스로 마초임을 인정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바 있지만, 반어법과 관련해서 가장 오해가 심한 사람은 역시 예수다. 부러 오해하는 예수 장사꾼들뿐 아니라, 자못 진지한 사람들 가운데서도 오해는 여전하다.
트로츠키주의자 크리스 하먼의 ‘민중의 세계사’는 꽤 잘 쓴 역사책이다. 관점에서나 팩트의 기술에서나 별 모자람이 없어서 통사로 읽기에 가장 적절한 책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예수의 부분만은 예외다. 이 책의 6장 ‘기독교의 등장’에서 하먼은 예수의 말(혹은 예수의 말이라 여겨지는 말)이 “도무지 일관성이 없다”고 주장하며 몇 가지 근거를 든다. 그 중 하나.
그리고 기존의 지배자들에게 저항하라고 설교하는 듯한 구절이 있는가 하면 복종을 종용하는 구절도 있다. 예컨대 예수는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 돌리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에게 돌려라” 하고 말함으로써 로마인들에게 세금을 바치라고 설교한다.
이 에피소드는 마가복음(12장 13~17절)에 나온다.
그들은 예수의 말씀을 트집 잡아 올가미를 씌우려고 바리사이파와 헤로데 당원 몇 사람을 예수께 보냈다. 그 사람들은 예수께 와서 이렇게 물었다. "선생님, 선생님은 진실하시며 사람을 겉모양으로 판단하지 않으시기 때문에 아무도 꺼리시지 않고 하느님의 진리를 참되게 가르치시는 줄 압니다. 그런데 카이사르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습니까? 옳지 않습니까? 바쳐야 합니까? 바치지 말아야 합니까?" 예수께서 그들의 교활한 속셈을 알아채시고 "왜 나의 속을 떠보는 거냐? 데나리온 한 닢을 가져다 보여 다오" 하셨다. 그들이 돈을 가져 오자 "이 초상과 글자가 누구의 것이냐?" 하고 물으셨다. 그들이 "카이사르의 것입니다" 하고 대답하자 "그러면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 돌리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라" 하고 말씀하셨다. 그들은 예수의 말씀을 듣고 경탄해마지 않았다.
상황과 맥락을 살펴 읽어보면 예수는 하먼의 말처럼 “로마인들에게 세금을 바치라고 설교한” 게 아니라, 자신에게 올가미를 씌우려는 자들을 보기 좋게 엿을 먹이는 것이다. 번번이 예수에게 당해온 바리사이와 헤롯 똘마니들은 이미 연대하여 예수를 죽일 기회만 노리는 중이다. 그들은 예수에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질문을 (속으로 쾌재를 부르면서) 던진다. 만일 카이사르(로마 황제)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다고 하면 예수는 유대인의 배신자가 되고 그르다고 하면 예수는 로마의 반역자가 된다.
어지간한 사람 같으면 얼버무리거나 얼굴이 벌개져서 지사적 무모함이나 보일 상황이지만 예수는 참으로 천연덕스럽게 엿을 먹인다. 엿 먹이는 절차는 두 단계다. 첫단계는 황제의 얼굴이 새겨진 데나리온 한 닢을 냉큼 가져오게 함으로써 그들이 실은 로마 화폐를 소지하고 다니는 속물(혹은 위선자)들임을 드러낸다. 그리고 예수는 제 말에 걸려든 그들에게 다음 단계로 비아냥으로 마무리한다. 예수는 말하는 것이다. “황제 거라고 했나? 그럼 황제한테 바치면 되겠구먼. 하느님 건 하느님에게 바치고.”
반어법이 통하지 않는 사람이란, 반어법이 통하지 않는 사회란, 얼마나 삭만한가..
2006/06/21 12:09
2006/06/20 10:09
(후배와의 대화 한 토막)
“자다가 갑자기 천지가 와 하는 함성에 깼어요. 에이.”
“ㅎㅎ.. 뭘 그리 못 마땅해 해. 월드컵은 인민의 아편인데, 인민에겐 아편이 필요하다는 걸 인정해.
“알죠. 그래도 에이..”
(택시 기사와 대화 한 토막)
“월드컵 때문에 손님이 없어요.”
“다들 사는 게 힘드니까 그렇게라도 푸는 거겠죠.”
“맞아요. 뭐 희망이 있어야죠..”
“자다가 갑자기 천지가 와 하는 함성에 깼어요. 에이.”
“ㅎㅎ.. 뭘 그리 못 마땅해 해. 월드컵은 인민의 아편인데, 인민에겐 아편이 필요하다는 걸 인정해.
“알죠. 그래도 에이..”
(택시 기사와 대화 한 토막)
“월드컵 때문에 손님이 없어요.”
“다들 사는 게 힘드니까 그렇게라도 푸는 거겠죠.”
“맞아요. 뭐 희망이 있어야죠..”
2006/06/19 17:11

이따금 작업실 근처 기독교 서점에 들른다. 꽤 큰 곳이지만 사람이 많지 않아서 (예수를 부적으로 삼는 쓰레기들이 쌓인 코너만 피하면) 모처럼 차분한 시간을 가질 수 있다. 앉아서 책보는 곳도 있고 커피도 타먹을 수 있다. 이번엔 문고 두 권을 고르고 작은 액자 한 개를 샀다. 렘브란트가 죽던 해 그린 <돌아온 탕자>.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이야기다. 온갖 되어먹지 못한 짓을 하다하다 더는 갈 데가 없어 돌아온 아들을 아버지는 군소리 한마디 없이 받아들인다. 아버지는 물론 하느님을 가리킨다. 그러나 우리가 알다시피 그런 ‘받아들임’은 아버지가 아니라 엄마에게만 가능하다. 예수는 이 이야기를 통해 하느님이 아버지가 아니라 엄마 임을 말한다.(예수는 ‘하느님이 아버지에서 엄마로 변하셨다’고 말하는 것일 수도, ‘하느님은 본디 엄마다’라고 말하는 것일 수도 있다) 오른쪽에 간단치 않은 얼굴로 두 사람을 바라보는 건 큰 아들이다. 큰 아들은 아버지의 행동이 매우 부당하다고 여기지만 이 순간엔 일단 잠자코 서 있다. 큰 아들은 바로 우리다. 정의와 합리를 좇는, 그래서 하느님에게 늘 불만과 존중의 양가감정 상태를 갖는 우리 말이다. 물론 하느님 역시 그런 우리에게 불만과 존중의 양가감정을 갖는다. 그게 신과 인간의(모든 신과 모든 인간이 아닌, 괜찮은 신과 괜찮은 인간의) 최선의 관계다.
2006/06/14 12:13
(조중사가 고래에 쓴 글. 실은 내가 초고를 썼다가 핀잔 먹고 조중사가 거의 새로 쓴 것.)
“대~한민국! 짝짝짝~짝짝” 월드컵은 축구 딱 한 종목만 하는 행사지만 올림픽보다 더 인기 있는 스포츠 행사다. 4년에 한 번 월드컵에 열리면 온 세상이 들썩거린다. 우리나라는 지난번 월드컵에서 예상을 깨고 4강까지 올랐기 때문에 월드컵에 대한 관심이 더 높아졌다. 경기가 열리는 날, 거리는 온통 붉은 색 셔츠로 차고 넘친다. 수백만 명이 길거리에서 응원하다가 한국이 이기면 사람들은 밤을 새우며 “대~한민국!”을 외친다. 요즘 세계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인물은 대개 운동선수다. 야구 좋아하는 미국 사람은 거의 다 박찬호를 안다. 영국에서 이영표와 박지성은 꽤 유명한 선수다. 독일인은 가장 훌륭한 외국인 선수로 차붐(차범근)을 기억한다. 요즘 미국프로골프리그(LPGA) 우승자의 절반은 한국 여성이다. 그래서 많은 한국인은 그들을 “자랑스러운 한국인”이라고 치켜세우며 그들의 승리와 패배에 함께 웃고 운다.
월드컵에서 한국이 이기면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대한민국이 자랑스러워요!” 그런데 잠깐. 왜 축구대표팀이 아니라 대한민국이 자랑스러운 걸까? 월드컵 4강이면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나라 4강이 되는 걸까? 박찬호의 승리가 곧 한국인의 승리일까? 박지성이 존경받는 스타가 되면 한국이란 나라까지 우러러볼까? 축구 좋아하는 사람은 영국 프리미어리그 첼시의 드로그바와 에시앙, 스페인 라 리가 바르셀로나의 에토를 다 안다. 그들은 세계 최고로 존경받는 축구선수지만 그들이 태어난 아프리카 나라 코트디부아르, 가나, 카메룬을 존경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오히려 그 나라 국민들이 기아와 내전으로 비참하게 사는 모습을 보면 “한심하다.”고 말할 거다. 고래 동무들! 축구는 그저 축구일 뿐이다. 한국이 이기든 지든, 한국과 한국인에겐 별로 달라질 게 없다. 축구는 축구일 뿐, 그냥 재미있게 축구를 즐기자.
“대~한민국! 짝짝짝~짝짝” 월드컵은 축구 딱 한 종목만 하는 행사지만 올림픽보다 더 인기 있는 스포츠 행사다. 4년에 한 번 월드컵에 열리면 온 세상이 들썩거린다. 우리나라는 지난번 월드컵에서 예상을 깨고 4강까지 올랐기 때문에 월드컵에 대한 관심이 더 높아졌다. 경기가 열리는 날, 거리는 온통 붉은 색 셔츠로 차고 넘친다. 수백만 명이 길거리에서 응원하다가 한국이 이기면 사람들은 밤을 새우며 “대~한민국!”을 외친다. 요즘 세계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인물은 대개 운동선수다. 야구 좋아하는 미국 사람은 거의 다 박찬호를 안다. 영국에서 이영표와 박지성은 꽤 유명한 선수다. 독일인은 가장 훌륭한 외국인 선수로 차붐(차범근)을 기억한다. 요즘 미국프로골프리그(LPGA) 우승자의 절반은 한국 여성이다. 그래서 많은 한국인은 그들을 “자랑스러운 한국인”이라고 치켜세우며 그들의 승리와 패배에 함께 웃고 운다.
월드컵에서 한국이 이기면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대한민국이 자랑스러워요!” 그런데 잠깐. 왜 축구대표팀이 아니라 대한민국이 자랑스러운 걸까? 월드컵 4강이면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나라 4강이 되는 걸까? 박찬호의 승리가 곧 한국인의 승리일까? 박지성이 존경받는 스타가 되면 한국이란 나라까지 우러러볼까? 축구 좋아하는 사람은 영국 프리미어리그 첼시의 드로그바와 에시앙, 스페인 라 리가 바르셀로나의 에토를 다 안다. 그들은 세계 최고로 존경받는 축구선수지만 그들이 태어난 아프리카 나라 코트디부아르, 가나, 카메룬을 존경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오히려 그 나라 국민들이 기아와 내전으로 비참하게 사는 모습을 보면 “한심하다.”고 말할 거다. 고래 동무들! 축구는 그저 축구일 뿐이다. 한국이 이기든 지든, 한국과 한국인에겐 별로 달라질 게 없다. 축구는 축구일 뿐, 그냥 재미있게 축구를 즐기자.
2006/06/13 16:39
2006/06/09 13:42
2006/06/08 15:45
집 근처 언덕배기에 뚝딱뚝딱 무슨 놀이공원이나 영화 세트장 같은 걸 짓는가보다 했더니 그게 “경기영어마을 파주캠프“란다. 평일에도 노상 주차장이 빈 곳이 없고 주말엔 말 그대로 인산인해다. 집과 사거리를 두고 떨어졌기 망정이지 조금만 가까웠다면 꼼짝없이 관광지 원주민 꼴이 될 뻔했다. 경부고속도로를 달리다보면 커다란 광고판을 볼 수 있다. “대한민국의 미래, 영어마을”
내 친구 규일이는 항공사에서 비행기를 몬다. 그야말로 늘 영어만 쓰는 일이고 물론 영어를 잘 한다. 그런데 규일이는 제 딸에게 따로 영어 공부를 시키지 않는다. 규일이의 지론은 “영어는 일년이면 된다, 애 괴롭힐 것 없이 나중에 필요하면 하면 된다” 는 것이다. 그건 괜한 소리가 아니라 규일이 자신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는 학교 다닐 때 영어를 못하는 축에 속했지만 서른이 넘어 일에 필요해지자 몇 달 바짝 공부해서 필요한 실력을 만들었다.
내 경우는 한 때 번역일로 먹고산 이력이 있으니 영어를 아주 못하는 편은 아니겠지만 그렇다고 잘하는 편도 아니다. 그러나 외국에 자주 가는 것도 아니고 미국은 저희들 대사관 앞에 줄 세우는 수작을 지속하는 한 갈 일이 있어도 안 가고 살기로 했으며 글을 쓸 때 참고 문헌을 보지 않는 걸 원칙으로 하기 때문에 큰 불편은 없다. 영어공부를 좀 더 하면 좋은 점도 있겠지만 그럴 시간이면 차라리 아이와 산책을 하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유엔 같은 데서 영미권이 아닌 나라의 대표가 연설하는 풍경을 보면, 혹은 역시 영미권이 아니면서 세계적인 존경을 받는 지성이 영어로 말하는 걸 보면 공통점이 있다. 발음이 ‘안 좋’다는 것이다. 문장들은 다들 개성 있고 유려하나 발음만은 하나같이 제나라식이다. 우리처럼 아이 혀를 째서라도(실제로 일어나는 일이다) 미국인 발음을 흉내 내려는 사람들은 어디에도 없다.
후배가 제 동무들과 인도 여행을 하다가 그곳 청년들과 며칠 동행했다. 서로 영어로 의사소통을 했는데 그들의 영어 발음이 영 ‘안 좋’더란다. 후배 패거리들은 짐짓 우쭐했던 모양이다. 그런데 헤어지는 날 인도청년들이 빈정거리듯 말하더란다. “너희 나라, 아직 독립 안 했냐?”
영어공부는, 다른 모든 공부가 그렇듯 필요하다. 그러나 우리가 영어를 배우는 건 그게 미국말이라서가 아니라 오늘 실제적인 국제공용어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영어 발음이 미국사람들과 얼마니 비슷한가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오히려 문장은 제대로되 발음만은 (알아들을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제 나라식으로 하는 게 훨씬 더 온당하고 품위 있다.
요즘 한미 FTA 문제로 세상이 시끄럽다. FTA로 미국과 경제가 통합되면 삼성을 비롯한 몇 개 재벌은 낙원에 이르게 되지만(그래서 FTA를 하려고 안달이지만) 중소기업과 대다수 서민들의 삶은 끝장이다. IMF 이후 가속화한 한국의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완결되는 것이다. 그런데 세계의 모든 양식 있는 사람들에게서 인류를 지옥으로 몰고 가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유독 한국에서는 마치 인류의 빛나는 미래인양 찬미되어 왔다. “대한민국의 미래, 영어마을”이라는 구호처럼.
왜 그리 영어교육에 집착하느냐고 물으면 한국 부모들은 대답한다. “내 아이는 세계화된 세상에서 한국인이 아니라 지구인으로 살 것이기 때문이다.” 글쎄. 세계화된 세상에서 지구인으로 살 거라는 건 맞다 치자. 그러나 세계화한 세상은 대개의 사람들에게 ‘세계화한 지옥’일 것이다. 하긴, 지옥에서도 말은 통해야 하니. 발음도 ‘좋’아야 하고!
내 친구 규일이는 항공사에서 비행기를 몬다. 그야말로 늘 영어만 쓰는 일이고 물론 영어를 잘 한다. 그런데 규일이는 제 딸에게 따로 영어 공부를 시키지 않는다. 규일이의 지론은 “영어는 일년이면 된다, 애 괴롭힐 것 없이 나중에 필요하면 하면 된다” 는 것이다. 그건 괜한 소리가 아니라 규일이 자신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는 학교 다닐 때 영어를 못하는 축에 속했지만 서른이 넘어 일에 필요해지자 몇 달 바짝 공부해서 필요한 실력을 만들었다.
내 경우는 한 때 번역일로 먹고산 이력이 있으니 영어를 아주 못하는 편은 아니겠지만 그렇다고 잘하는 편도 아니다. 그러나 외국에 자주 가는 것도 아니고 미국은 저희들 대사관 앞에 줄 세우는 수작을 지속하는 한 갈 일이 있어도 안 가고 살기로 했으며 글을 쓸 때 참고 문헌을 보지 않는 걸 원칙으로 하기 때문에 큰 불편은 없다. 영어공부를 좀 더 하면 좋은 점도 있겠지만 그럴 시간이면 차라리 아이와 산책을 하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유엔 같은 데서 영미권이 아닌 나라의 대표가 연설하는 풍경을 보면, 혹은 역시 영미권이 아니면서 세계적인 존경을 받는 지성이 영어로 말하는 걸 보면 공통점이 있다. 발음이 ‘안 좋’다는 것이다. 문장들은 다들 개성 있고 유려하나 발음만은 하나같이 제나라식이다. 우리처럼 아이 혀를 째서라도(실제로 일어나는 일이다) 미국인 발음을 흉내 내려는 사람들은 어디에도 없다.
후배가 제 동무들과 인도 여행을 하다가 그곳 청년들과 며칠 동행했다. 서로 영어로 의사소통을 했는데 그들의 영어 발음이 영 ‘안 좋’더란다. 후배 패거리들은 짐짓 우쭐했던 모양이다. 그런데 헤어지는 날 인도청년들이 빈정거리듯 말하더란다. “너희 나라, 아직 독립 안 했냐?”
영어공부는, 다른 모든 공부가 그렇듯 필요하다. 그러나 우리가 영어를 배우는 건 그게 미국말이라서가 아니라 오늘 실제적인 국제공용어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영어 발음이 미국사람들과 얼마니 비슷한가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오히려 문장은 제대로되 발음만은 (알아들을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제 나라식으로 하는 게 훨씬 더 온당하고 품위 있다.
요즘 한미 FTA 문제로 세상이 시끄럽다. FTA로 미국과 경제가 통합되면 삼성을 비롯한 몇 개 재벌은 낙원에 이르게 되지만(그래서 FTA를 하려고 안달이지만) 중소기업과 대다수 서민들의 삶은 끝장이다. IMF 이후 가속화한 한국의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완결되는 것이다. 그런데 세계의 모든 양식 있는 사람들에게서 인류를 지옥으로 몰고 가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유독 한국에서는 마치 인류의 빛나는 미래인양 찬미되어 왔다. “대한민국의 미래, 영어마을”이라는 구호처럼.
왜 그리 영어교육에 집착하느냐고 물으면 한국 부모들은 대답한다. “내 아이는 세계화된 세상에서 한국인이 아니라 지구인으로 살 것이기 때문이다.” 글쎄. 세계화된 세상에서 지구인으로 살 거라는 건 맞다 치자. 그러나 세계화한 세상은 대개의 사람들에게 ‘세계화한 지옥’일 것이다. 하긴, 지옥에서도 말은 통해야 하니. 발음도 ‘좋’아야 하고!
2006/06/07 21:01

참세상 이종회 발행인의 FTA 강의. 2차 대전 이후 시계자본주의의 재편과 신자유주의 세계화, 그리고 한미 FTA에 이르는 과정이 억센 경상도 사투리와 눈웃음, 그리고 30여년 경력 활동가의 내공으로 유장하게 그려진다. 5부로 나뉘어져 있다.
(개인적인 소감 - 이 선배는 예상치 못한 새로운 재능을 발견한 듯..^ ^)
2006/06/05 21:14
2006/06/02 00:18
한나라당 압승. 그들과 출신 말고는 아무런 차이가 없으면서 '오늘의 진보'(혹은 좌파)를 자처하던 사기꾼들이 대패한 건 어쨌거나 흐뭇한 일이었다. 그러나 그 진보 사기꾼들 덕에 진보세력에 대한 대중들의 신뢰에 흠집이 난 건 참으로 서글픈 일이다. 하여튼 그 추레한 선거놀음이 공중파 텔레비전의 최첨단 그래픽에 실려 전해지던 저녁, 경희궁터 근처에서 예수전 3기 수강생들이 도란도란 '나의 예수전'을 나누었다. 그들의 예수전을 들으며 '아 이사람이 이랬구나..', '내가 그런 이야기를 했지..' 했다.
김은혜의 예수전
이상한 나라의 예수
밤은 차갑고 내일은 어둡고
내게 인생은 장마였네
죽지 못해 산다는 말, 그것은
지나가는 타인의 말이 아니었네
그때 내가 다니던
이상한 나라의 교회,
‘강함’과 ‘감사함’으로 고통을 초월하라 하네
약해 빠진 나는 잊어버리라 하네
그들의 말은 하늘나라의 말인가
도무지 모르겠네
고통과 슬픔 없애려는 하늘나라
그것도 꿈만 꾸는 교회
정말 하늘에 있는 천국엘 가려하나
그들의 천국은 무엇이란 말인가
구원이 영생인가
영생이 구원인가
그것과 상관없는 삶은 불쌍한가
예수는 대체 어디 있나
천한 자의 애끓는 가슴은 대체 어디 있나
유대의 왕, 반역자의 눈물은 대체 어디 있나
고통과 억압과 소외,
약한 자의 친구는 대체 어디 있나
‘긍정의 힘‘에 있나
‘사랑의 힘‘에 있나
아니라면 ‘기독교의 힘‘에 있나
아니라면 ‘교회의 힘’에 있나
그것도 아니라면
하늘엔 영광, 땅엔 평화 외치는
성탄절 ‘자선냄비’에 있나
예수,
그의 이름으로 사는 이들에겐
천국이 있다네, 그들만의 천국.
나름대로 누리며 기뻐한다네
예수,
그의 이름으로 신자들은 늘었다네
기독교인 많은 세상
그런데 뭐가 이래. 질문 하는 사람이 비정상인가
세상의 소금과 빛은 하늘나라 좋아해
정말 하늘로 날아가 버렸나
차라리 지친 현대인의 휴식처가 되었다고 말해줘
차라리 평안과 위로를 얻기 위해 교회를 다닌다고 말해줘
차라리 제 삶도 버거워 세상의 고통에 관심 돌릴 여유가 없다고 말해줘
그래, 핑계대고 변명하는 게 차라리 사람답고 괜찮아
이상한 나라의 교회, 이젠 더이상
세상을 사랑한다고 하지 말아줘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할 수 있다고 하지 말아줘
예수를 위해 산다고 하지 말아줘
예수의 삶은 고통이었다네
죽을때까지 눈물이었다네
기꺼이 아픈 자들이 되었다네
기꺼이 슬픈 자들이 되었다네
천대 받는 자들과 먹고 마셨다네
그런 예수가 꿈꾸던 세상은 어디에 있나
그런 예수가 우리에게 남긴 것은 무엇인가
‘의인’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자여
‘죄인’이 되어라 그러나
‘인간의 원죄’로 괴로워 하는 자여
‘인간의 야만’으로 괴로워 하라
‘가난’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자여
‘부자들의 자선’을 꿈꾸지 말고
가난한 사람들의 ‘인간다운 사회’를 꿈꿔라
아픔을 태연하게 말 할 수 있는 자여
세상을 태연하게 비판 할 수 있는 자여 또한
‘자기비판’을 언젠가 팔아먹지 말라
이 모든 것, 동시에
네 자신에게 해야 할 말임을 기억하라
그렇게 살아내려고 노력하지 않는다면
아무 소용없는 말들임을 기억하라
예수는 지금 내 안에서 그렇게 울고 있네
김광섭의 예수전
8주 동안 고생하신 선생님껜 죄송하지만,
결석하지 않고 꾸준히 제정신을 차리려고 노력하면서
(자의든 타의든) 맨 앞자리에 앉아 강의를 들었음에도
아직 "나의 예수전"은 없습니다.
'나의' 예수전이 없는건지 나의 '예수'전이 없는건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많은 것들을 듣고 보고 배웠다고 생각되는데 정작 정리되고 체화된건 없나 봅니다
수업이 시작되기 전엔 '예수에 대해 많은 것을 배워야지, 교회에선 들을 수 없는 것, 볼 수 없는 시각을 알아가야지' 했는데
수업이 마무리되고 난 후엔 예수의 삶이 투영되지 않는 나의 삶만 보이고, 신념이라는 단어를 잊고서 뻔뻔하게 살아가는 내 모습만 눈에 들어옵니다.
30년을 겨우겨우 채워가는 지금은 예수가 공생애를 시작하려는 그 즈음이 아닌가 싶습니다.
여자의 배속에서 나온 것도 같고, 30여년을 교회문화 안에서 산 것도 같은데
왜 이렇게 차이가 나는지.. 참 한심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설파할 것도 아니고 친구들에게 "이 사탄아!"라고 말할 배짱도 없는 주제라서 그런걸까요? 아직 먼 것 같습니다.
"나의 예수전"은 없습니다. 이번 기회로 "나의 (것이 될) 예수전"을 만들어가야 되겠습니다.
김혜경의 예수전
저는 재작년에 많이 아팠습니다. 몸이 아니라 마음이요. 직장에서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어려움을 겪고 결국 한 학기를 휴직했습니다. 진단은 우울증이었어요. 직장을 생각하면 공포스럽고 사람들이 제게 했던 말들 때문에 다른 일에 집중을 못했고 결국 정신과 치료를 받게 되고 약을 먹어야 잠이 들게 되었습니다. 저의 언니는 매우 독실한 신자였는데 제가 받는 어려움에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 왜 내 동생에게 이런 일이.." 그러면서 저를 교회에 데려가 끊임없이 기도를 드렸습니다. 저를 낳게 해 달라고.... 그 즈음에는 거의 매일 교회에 가서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난을 떠올리며 저를 낳게 해달라고 기도했어요. 그러다가 작년부터 다시 학교에 다니고 있는데 아직도 정신과 약을 먹어야 잠을 잡니다.
너무 서론이 길었네요. 휴직하는 기간에 다른 책을 볼 수 없었습니다. 집중이 안 돼서요. 그래서 매일 신약성경 한 장을 소리내어 읽고 그걸 공책에 옮겨 적었습니다. 그게 유일한 읽기였어요. 그러면서 예수님을 생각했습니다. 약한 자를 불쌍히 여기시고 치료해주는 예수님에 많은 위로가 된 것 같습니다. 그래서 교회에도 열심히 다녔습니다. 그러면서 작년에 다시 복직하게 되자 저는 예수님이 저를 낫게 해주셨다는 생각을 했지요. 그런데 제가 다니는 교회는 강남의 아주 큰 교회였고 신도수가 많았어요. 언제부터인가 교회가 소란스럽게 느껴졌고, 이슬람지역까지 선교를 강조하는 교회에 거부감이들었습니다. 그러다가 김선생님의 마가복음 강의를 알게 되어서 강의를 듣게 되었습니다. 이전에 선생님의 책을 인상깊게 읽어서 선생님이 어떤 사람인지 궁금하기도 했고 마침 예수전 강의라 신청했지요.
선생님의 강의를 들으면서 약한 자의 편에 서서 그들을 동정이 아니라 연민과 애정으로 보고 그들을 위해서라면 어떤 과격함도 불사하는 예수님 모습에 무척 감동받았습니다. 제가 막연히 생각해 오던 예수님 상이 구체적으로 다가왔습니다. 돈이 많은 것을 해결해 주는 이 사회에서 역시 그 돈으로 많은 것들을 누리는 제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예수님은 준엄하게 제게 묻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내가 실천할 수 있는 건 어떤 게 있을까? 우선 돈으로 무엇을 해결해 보려 하지 않기입니다. 돈 적게 쓰기. 제가 하는 일이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입니다. 제가 만나는 아이들이 어른이 되었을 때 적어도 자기만 잘 살고 잘 먹는 사람이 아니라 어려운 이웃도 돌아보는 어른이 되도록, 그런 심성을 가지도록 말을 하고 이야기 하고 글을 읽히자. 그런 생각을 했고요. 또 아이들 중에 정말 손길이 필요한 아이들을 집중해서 살펴보자. 그들에게 위안이 되고 힘이 되는 어른이 되기에 힘쓰자. 뭐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선생님의 예수 이야기를 듣고요.
선생님의 강의를 듣는 동안 무척 행복했습니다. 저를 깨우치는 차가운 샘물 같았어요.
선생님의 다음 책이 빨리 나왔으면 합니다.
그동안 좋은 강의 감사했습니다. 선생님이 강의 중에 하신 말씀들 , 예수님의 참모습 들 을 기억하며 살겠습니다.
내내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기를 ....
곽노근의 예수전
예수는 나에게 있어 하나의 강박이었다. 예수는 신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았고, 예수를 믿지 않으면 지옥에 갈 것만 같았다. 그래서 나는 예수와 하나님에 대한 여러 불신과 냉소를 가슴속에 품고 있으면서도, 끝끝내 미련을 버리지 않았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나는 죄인이었다. 초등학교 시절 처음 교회를 다닌 때부터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결코 교회를 열심히 나갔다고 할 수 없는, 그리하여 때때로 나 자신이 무교라고까지 생각하기도 한 나는, 그러나 항상 강박관념에 시달리며, 떨고 있었고, 두려워 하고 있었다.
불안해 하면서도, 그렇게 초조해 하면서도, 마음 속 깊은 곳에서 기독교의 신앙을 받아들이지 못한 것은 그놈의 기독교에서 말하는 이기적인 구원론 때문이었다. 예수의 따뜻한 이미지? 사랑? 가난한 자의 친구가 된 예수? 다 좋다. 그러나 그러한 예수의 모든 모습들은 구원론 앞에서 힘을 잃는다. 내가 아무리 나의 이웃을 사랑하고, 나보다 못한 사람을 돕고, 그 외에 온갖 선한 일을 하고 해도, 예수를 믿지 않으면 말짱 도루묵이다. 구원받지 못한다. 천국 가지 못한다. 말로는 ‘사랑’을 최고라고 하면서 실제론 ‘믿음’이 없으면 사랑이고 뭐고 없는 이런 신앙을, 나는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이도 저도 아닌 모습으로, 붕 떠버린 채 많은 시간이 흘렀다. 시간의 흐름 속에서 우연히 접한 오강남 교수의 ‘예수는 없다’는 예수에 대한 조금 다른 생각들도 가능하다는 걸 깨달게 해 주었고, 김규항 선생님의 예수전 강의는 그 생각들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할 수 있도록 도와 주었다.
지금에 와서는, 예수에 대한 강박관념들을 거의 떨쳐내버렸다. 예수가 신인가 아닌가는 이제 내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며, 예수를 믿지 않아도 구원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지금은 오히려 ‘예수는 인간이다’라고 말하고 싶어질 정도다.
좀 더 솔직히 말해서, 오강남 교수의 ‘예수는 없다’와 김규항 선생님의 ‘예수전 강의’에서 내가 인식한 예수의 모습은 인간이었다. 단순히 인간적인 모습의 예수를 말하기 위해서 끌어들인 의미의 인간이 아니라 엄밀한 의미의 신이 아닌, 우리와 똑같은 ‘인간’ 말이다. 예수가 진정, 신인지 인간인지 애써 판별해내려고 하는 노력은 결국 쓸데없는 짓이겠지만, 그것이 무의미한 작업임을 알기에 예수는 인간이어도 상관없다고 보는 것이다. 한국의 독실한 크리스찬과 이야기할 때, 타협점을 찾기 위해서나 이 부분에 있어 조금 의뭉스럽게 뭉뚱그려 말할 일이다. 물론 나는 예수의 신적인 가능성을 믿는다. 그러나 그 말은 곧, 나와 같은 보통 사람들의 신적인 가능성을 믿는다는 말과 같다.
그렇게 예수의 신성에 대한 강박을 버리고 나니, 구원에 대해서도 다르게 다가오는 것이 있었다. 구원이란 게 그냥 아무렇게나 되는 것은 아닌 것 같았다. ‘예수처럼 살면 구원받을 수 있다’, 지금의 생각은 그렇게 정리되어 있다. 예수처럼 가난한 자, 사람 취급 못 받는 자에 대해 애끓는 감정으로, 편파적으로 살면 구원이란 것도 나의 삶 속으로 찾아오지 않을까 생각한다. 마침 성경에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있다. 그 유명한 ‘부차 청년-낙타와 바늘귀’ 이야기이다.
부자 청년은 예수에게 묻는다. “선하신 선생님, 제가 무엇을 해야 영원한 생명을 얻겠습니까?” 여기서의 영원한 생명은 구원이다. 예수는 말한다. “가서 가진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어라. 그러면 하늘에서 보화를 얻게 될 것이다.”
사실 이 구절에 이미 예수의 구원에 대한 생각은 다 정리되어 있는 것은 아닌가, 편향되게 생각해 본다.
그러나 예수처럼 산다는 것은 사실상 거의 불가능하므로 이는 또하나의 강박을 낳는다. 그래서 나는 또다시 이 구원이란 것에 그렇게 집착하지 않기로 했다. 그저 예수의 모습에 조금이나마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다만 노력하고 싶다. 가난한 자, 핍박받는 자에 대해 편파적인 모습으로 남고 싶다. 아직 부르주아인 내가, 훗날 위선적인 모습으로 가난한 자에 대한 사랑을 이야기하고 다니지 않길 진정으로 바라고 바랄 뿐이다.
이성영의 예수전
1." 인류의 거의 모든 보편적 가치들이 드러난 오늘날, 우리는 예수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진 세대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온갖 물신과 탐욕에 깊이 빠져있고 예수를 팔아 장사하는 교회상점에 둘러싸여 있습니다. 영적 지도자, 메시아, 급진적혁명가, 교회비판가, 여성주의자, 인권운동가, 생태주의자, 아동주의자, 빈민해방운동가... 예수의 삶은 이 모든 것을 보여줍니다. 이것을 외면한 채 십자가에 못 박혀 3일 만에 부활한 신의 아들, 창백한 얼굴의 백인 남성만으로 생각하기엔 우리는 예수의 역동성을 온전히 담아낼 수 없습니다. '지금' ,'여기'의 삶에 예수를 비춰보지 않는 것은 그의 가르침을 배반하는 것입니다." 김규항 선생의 말이 너무 반가웠다. 나의 예수전 강의는 정말 오랜만에 '소통'을 나눌 수 있는 기회였다.
2.마음속에 든 관념들을 어설프게 밖으로 표현해 낼 줄 아는 나이가 되자, 이른바 지식인이란 사람들이 한 눈에 들어왔다. 말글이 주는 화려함에 한참동안 현혹되었다.
그들이 부려 쓰는 언어가 마냥 멋있어 보였다. 말과 글을 온전히 사용하는 사람이야말로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세상의 모든 측면은 말과 글로 나타낼 수 있다고 믿었다. 도리가 없었다. 만약 그 때 누군가가 말글의 허망함을 가르쳐주었다고 해도 알아듣지도 못했을 거다. 특별한 경험 덕에 '언어'를 잃었으며 그 때 예수를 알 게 되었다. 당시 내가 지표로 삼았던 지식인들은 하나 둘 멀어져가고 이젠 다섯 손가락 안에 꼽을 만큼도 남지 않았다. 그것이 당연한 과정임을 조금씩 깨닫는 중이다. 그래서 말글에 자신감이 가득한 사람을 보면 겁이 난다.
3.유다를 어떻게 볼 것인가 - 나또한 세상 야욕이 많은 사람이라서 유다를 보는 관점은 나를 성찰하는 기회가 될 것 같다.
예수는 유다의 고발이 아니더라도 죽을 운명이었다. 율법, 예법과 같은 형식만을 강조하던 당대의 흐름에 공공연하게 분노하고, 당시 유대의 지배세력이었던 바리새인들을 공개적으로 비난하는 예수의 언행은 허례허식에 빠진 그들의 미움을 사기에 충분했다. 늘 자신의 언행에 추호의 흔들림이 없는 예수는 자기가 죽음을 당할 것이라는 예감을 누구보다 먼저 하고 있었다. 그리고 예수는 그가 자신을 배반할 사람임을 알고 있었다. 유다는 로마의 압제에서 해방되길 바라는, 열렬한 혁명운동가인 것 같다. 예수가 보인 사회적 단호함은 유다에게 정치적 의미로만 이해됐다. 성전을 무너뜨리겠다는 예수의 말도 유다에겐 해방전쟁이라는 뜻으로만 들렸으리라. 예수의 머리에 비싼 향유를 붓는 여인에게 그 돈이면 가난한 자들을 도울 수 있지 않겠냐고 비난하는 유다는 죽음 앞에 처한 예수의 고독을 읽지 못한다. 눈에 보이는 현상과 세계만을 전부로 생각하는 유다는 생각의 여백이 없는 운동가. 사회적 감성과 연민은 사라지고 논리와 이념만 남은 운동가, 이웃의 남루한 삶보다는 단지 자신의 사상에 충실한 운동가와 닮았다. 그는 예수 일행의 돈을 관리할 만큼 , 제자들 중에서도 똑똑한 사람이었다. 자신의 죽음을 담담하게 말하고, 종종 알 수 없는 뜬구름 잡는 소리를 하는 예수에게 유다는 실망했을 것이다. 똑똑한 그답게 실망은 결별이 아니라 제거로 이어진다.
중요한 건 예수는 이 모든 수순을 훤히 알고 있다는 점이다. 처음에 유다를 제자로 받았을 때부터. 그럼에도 예수는 절대로 먼저 유다를 내치지 않는다. 최후의 저녁식사까지 유다와 함께 한다. 왜? 자신의 죽음을 통해 유다의 생각을 깨우칠 수 있었으므로. 유다는 예수가 제사장의 군대에게 붙잡힌 것을 본 후에야 자기의 행동을 반성한다. 반성은 스스로를 거듭나게 하는 기회이다. 하지만 유다는 그 기회를 버리고 죽음을 택한다. 그는 스스로의 행동을 용서할 수 없을 만큼 자의식이 지나치게 강한 혁명가였던 것이다. 신념과 사상에 지나치게 집착한 나머지 그 속에 들어있어야 할 인본적 가치를 망각한 운동가들을 보는 듯하다.
이 점에서 그는 베드로와 비교된다. 예수가 미리 예고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무려 3번이나 부인한 베드로 역시 큰 잘못을 저질렀다. 하지만 그는 이것을 결국 극복해낸다.(베드로는 적어도 예수의 죽음이 주는 가르침을 배반하지 않은 셈이다.) 스스로의 오류를 인정하고 이것을 넘어선 베드로와 스스로를 용납하지 못하고 자살을 선택한 유다는 극명히 대비된다. 만일 유다가 자살을 하지 않고 치열한 반성을 거쳤다면 예수의 가르침을 누구보다 아름답게 전파할 수 있지 않았을까.
현실을 바꾸려는 사람은 늘 철저한 자기반성이 필요하고 또 자신의 오류를 극복할 줄 아는 용기가 필요하다. 뒤집어 말하면, 예수는 이 가치를 몸소 실천한 사람이다. 그는 인류가 오늘날에도 고민하는 문제들, 대립하는 가치의 충돌을 2000여 년 전에 조화롭게 녹여낸 사람이다. 예수가 우리에게 늘 살아있는 사람인 이유가 3일 만에 부활한 이유 때문이라고만 한다면 우리는 예수를 온전히 이해한 것이 아니다. 성서에서 흔히 보이는 , 일견 모순되는 듯한 예수의 발언은 그가 일관성이 부족한 사람이라고 오해하기 쉽게 만든다. 그러나 찬찬히 들여다보면 모순되는 듯한 가치가 예수의 행동 속에 조화롭게 스며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마땅히 분노해야 할 일에 대해 분노하지 않고 마냥 관용만을 베푸는 사람이 있다. 또, 분노하되 끝까지 용서할 줄 모르는 사람도 있다. 예수는 분노하되 결국 용서하는 방식으로 해결했다. 이웃의 삶을 구체적으로 이해하지 않고 구조적으로만 접근하는 사람이 있다. 또, 동정과 연민으로만 접근하는 사람도 있다. 예수는 늘 소외된 사람들과 함께 하며 당대의 지배계급과 체제를 맹렬히 비난했다. 기준 없는 개방성으로 자신의 정체성마저 상실한 사람이 있다. 또 정체성의 유지에만 치우쳐 개방성을 갖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예수는 개방적 태도를 갖지만 자신의 노선을 분명히 보여준다. 사회적 활동에만 치우쳐 내면의 성찰에 둔감한 사람이 있다. 또, 내면의 자아를 가꾸는 일에만 매몰되어서 사회적 자아를 상실한 사람도 있다. 공적 활동을 하는 와중에서 틈만 나면 홀로 떨어져 기도하는 예수는 둘의 조화를 보여준다.
4. 예수의 균형성은 그가 처한 현실과 동떨어져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현실의 남루함 한복판에서 보이는 것이기 때문에 더 큰 의미가 있다. 불과 몇 분후면 자신의 '이적'으로 병든 자를 회복시킬 것이면서 예수는 그들의 고통을 '애가 끓도록' 같이 슬퍼했다. ‘이적’은 일방적 시혜가 아니라 ‘소통’이 된다. 병자, 소수자와 아픔을 함께하는 연민은 위선 거짓권위에 대해 분노하는 마음과 한 쌍을 이룬다. 가난하고 소외받고 병든 자에겐 편파적일 정도로 그들의 편을 드는 동시에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사람은 우리를 지지하는 사람이다."며 유연성 있는 태도도 보인다.
그렇다면 예수는 늘 신념에 가득찬 확고한 사내였는가. 아니다. 예수는 가난하고 병든 이들과 함께 하며 세리와 잔치를 벌이고 '먹고 마시길 즐긴 자'였다. 사람들이 도달하기 힘든 권위와 도덕성을 공공연히 드러내며 금식 하는 세례요한과 예수는 대조적이다. 유다가 ‘여기’만을 집착했고 요한이 '저곳‘만을 바라봤다면 예수는 둘 사이의 균형을 유지했다.
5.참된 신념은 이성과 논리의 영역이 아닌 것 같다. 거짓 신념이야말로 오히려 논리가 매끄럽다. 진짜 신념은 철저히 감성적이다. 내 이웃이 소외당하고 아파하며 사는 꼴을 가만히 지켜보지 못하는 사람들은 대개 그 이유를 설명해내지 못한다. 그러나 제 활동을 논리적(?)으로 설명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결국 세상을 조금씩 바꾸어 나간다. 한 사람의 소양이나 양식은 그가 가진 지식의 양과 아무 상관이 없다. 예수는 논리적으로 설득하지 않았다. 그러나 누구보다 깊게 약자들과 '소통'하고 있었다. 그는 결코 어려운 말을 쓰지 않았고 그의 비유는 어린아이도 이해할 만큼 쉽고 적절했다. 제자들이 예수의 말을 알아듣지 못한 건 머리가 나빠서가 아니라 그들의 욕망으로 예수의 말을 이해하려 했기 때문이다. 예수의 죽음 이후에야 제자들은 그것을 깨닫는다. 깨우침은 늘 한 발 늦다.
6.언젠가 산상수훈을 언급하면서, 혁명이 올것이라는 해석을 곁들이는 김규항 선생의 호흡이 매우 가팔랐다. 목소리가 떨렸고, 팔을 책상 위로 올렸다 내렸다하며 몸을 계속 움직였다. 눈은 한참 전에 촉촉해져 있었다. 중년의 남자가, 자기 보다 한참 나이어린 사람들이 많은 강의실 안에서 그런 모습을 보였다. 나는 무참했다. 그의 말대로 청년의 의미는 육체적 나이와 무관한 것이었다.
누구나 청년 시절을 거치지만 끝까지 청년으로 남는 사람은 거의 없다. 어제의 청년이 별안간 오늘의 노인으로 변하는 모습은 아주 흔하다. 누가 끝까지 청년으로 남을 것인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다만 '소유에 대한 저항'이 청년을 늘 긴장하게 만드는 원동력임을 이 강의를 통해 배웠다.
김소정의 예수전
첫 남자친구의 이름은 요셉이었다. 아홉 살 때의 일이다. 내 짝꿍이었던 요셉은 미술시간에 크레파스를 빌려준 나를 집으로 초대했고 그때부터 우리의 연애가 시작되었다. 그 집에는 좁은 흙 마당과 아픈 어머니와 재래식 화장실이 있었다. 뭘 하고 놀았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우리는 며칠 동안 붙어 다녔고, 나는 그를 부모님께 소개했으며, 같은 반 아이들이 우리 사이를 놀리기 시작했다. 어느 날 방과 후에 담임선생이 나를 불러 말했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말이 있어. 웃기게도 그곳은 강남이었고, 곧 짝이 바뀌었고, 요셉과 나는 헤어졌다.
두 번째 연애는 그로부터 16년이 지나서야 시작되었다. 대학을 막 졸업한 뒤였고 앞날은 막막했고, 아무것도 아닌 내가 아무것도 아닌 일에 부끄러워했다. 곧 봄인데도 스웨터 속으로 칼 같은 바람이 불어 들어오던 날, 나는 홍대 앞 버스 정류장에 서 있었다. 기다리는 버스는 오지 않고 몸이 저절로 오그라드는데 그가 다가와서 내 손을 잡았다. 버스, 정류장이라니 전혀 낭만적이지 않다고 생각하면서도 나는, 이제부터 절대로 손을 놓지 말라고 냉큼 말했다. 그가 대답했다. 너나 놓지 마.
새 남자친구의 이름은 예수이다. 그는 서른세 살이고, 가난한 목수이다. 나는 그의 어머니가 부르던 것처럼 그를 부르기로 했다. 조슈아. 철수나 영수 같은 흔하고 흔한 이름이지만, '하느님이 구원 하신다'라는 그의 이름은 내 이름 '밝은 물가'와 잘 어울린다고 나는 생각했다. 우리는 서로 손을 붙들고 성당 마당이며 종로 거리, 어떤 날은 경희궁터를 거닐며 이따금씩 이야기를 나누었다. 사람들은 저마다 우리를 신기해하거나, 이상해하거나, 수녀원에 가라는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들은 그건 절대로 안 된다고 했고 또 어떤 신부님은 수녀원 말고 한 10년 쯤 기다려서 한국 최초의 여성 사제가 되라고도 했다. 조슈아, 어떻게 생각해? 그가 말했다. 너 좋을 대로 하면 돼.
조슈아의 대답은 늘 그렇게 따뜻했다. 괜찮아, 너 좋을 대로 해. 괜찮아, 너 하고 싶은 대로 해. 그가 나의 선택을 존중하고 아무것도 강요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그를 기쁘게 하는 쪽을 고르기로 했다. 선택하기 힘든 일이 꼭 하나 있다면 그것은 가난이었다. 그는 가난했고, 가난한 이를 사랑했으며, 그를 따르려면 누구든지 가진 것을 버리고 저마다의 십자가를 져야 했다. 그러나 나는 부자 청년이었다. 내 부모는 남의 빚을 갚으면서 살면서도 나에게 못해준 일은 없을 만큼 나를 금처럼 옥처럼 키웠다. 나는 가난을 선택한 이들을 존경했지만, 내 부모가 모든 기대를 나에게 걸었으므로 나 자신은 가난했던 적이 없었고, 가난해서는 안 되었다. 가난은 내가 모르는 것이었고, 따라서 두려운 것이었다. 나는 비겁하게 물었다. 조슈아, 어떻게 하지? 그러나 나는 아무 대답도 들을 수 없었다.
연애란 게 그런 것인가 보다. 처음 얼마 동안은 세상 좋고 즐겁고 행복하다. 문제는 그 단계가 마냥 계속되지 않는다는 거지. 우리의 연애 또한 기대했던 만큼 낭만적이지 않았다. 우리는 하느님 나라를 바랐지만, 사람들은 먹고 살던 땅에서 쫓겨났고 제국은 세계를 위협했고 현대판 노예가 TV 속에서 쓰레기통을 뒤졌고 명문대 4학년생이 옛 독재자의 딸에게 존경과 감사의 편지를 보냈다. 사람들은 날마다 이 모든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지만 이 모든 일이 곧 잊혀질 것이었다. 잊혀지지 않는 것이 있다면 4년 전의 축구경기 정도였다. 사람들은 저마다 무엇 무엇이 바뀌지 않으면 해결되지 않는다고들 했지만 어떻게 해야 그것들을 바꿀 수 있는지 말해주는 이는 드물었다. 그러는 사이에 그는 몇 번을 죽었다 살아났고, 나는, 불편했다.
목요일 밤, 그가 붙잡혔다. 겁에 질린 채 나는 그가 끌려가는 것을 보고 서 있었다. 사람들은 그가 곧 죽을 거라고 했다. 그가 죽는 것은 내 탓이라고도 했다. 그는 개처럼 기둥에 묶여 매를 맞았고 사람들은 그에게 침을 뱉고 욕을 했다. 조슈아, 나는 그의 이름을 부르고 싶었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아주 잠깐, 그와 눈이 마주쳤던 것 같다. 그가 말했다. 괜찮아. 지금 저들이 저주하는 것은 내가 아니므로 내 영혼은 모욕을 당하지 않는다. 아니다. 그가 정말 그렇게 말했을까? 그 말을 들은 일은 기억이 나는데, 나에게 그렇게 말한 것이 정말로 그였을까? 지금은 모르겠다.
금요일 아침, 사람들이 그를 십자가에 매달았다. 나는 눈과 귀를 틀어막고 속으로 외쳤다. 개 같은 놈들. 천벌을 받을 놈들. 나는 천국과 지옥을 믿지 않지만, 하느님이 그놈들을 지옥에 보내시기를 빌었다. 그러나 그들이 지옥에 떨어진다면, 나는 어디로 가게 될까? 이런 나에게, 하느님의 나라는, 오는 것일까? 십자가 위에서 그가 엄마 아빠를 불렀다. 넝마 같은 몸에 넝마 같은 목소리로, 엄마, 이제 그 애가 엄마 아들이에요, 아빠, 이 사람들을 용서해주세요, 아니다, 그가 정말 그렇게 말했을까, 그가 모두를 용서했을까, 그가 모두를 사랑했을까, 지금은 모르겠다, 단 한 순간이라도, 조슈아, 당신은 행복했을까, 지금 당신은 행복할까, 조슈아,
조슈아, 당신에게 묻지 않아도 사실은 다 알고 있었어. 아무것도 내 것이 아니라는 거. 가지지도 않은 것을 잃을까봐 겁내고 있었다는 거. 그래서 당신은 죽어야 했다는 것을. 나는 그에게 물었다. 그래도 아직 나를 사랑한다고 믿어도 될까? 당신이 부를 때 금방 쫓아갈 용기는 없어도 이제부터 가난해질 나를,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해도 될까? 컴컴한 경희궁터 뒷골목을 걷고 있던 수요일 아홉 시 반. 그렇게 믿어도 될까? 그러자 저 앞에서 가로등 하나가 반짝, 켜지고 그가 조금, 웃었다. 내가 언제 뭐라 그랬어? 그렇게 말한 것이 제발 그였기를.
장윤형의 예수전
그렇다면 나는 왜불온하지 않은가? B급 우파 장윤형의 예수전
나의 작은 위선 예수전
촌스럽지만 바이오그라피로 시작해 보도록 하겠다. 나의 부모님은 젊어서 찢어지게 가난했지만 열심히 살고, 열심히 공부하고, 그러니까 아무튼 닥치는 대로 무엇이든 열심히 해서 크게 자수성가한 분들이시다. 아빠가 회상하기에도 당신들 세대인 70년대 중반에는 좋은 대학에 들어가면 으레 데모, 소위 학생 운동을 했고, 통기타를 쳤다고 한다. 엄마는 똑같이 가난한 사람에게 시집가서 고생하지 말라는 외가의 반대를 무릅쓰고 아빠의 잠재력을 보고 결혼하셨다. 그런데 내가 대학에 들어갔을 때 우리 아빠가 처음 했던 말은 "대학가서 뭐든 해도 좋은데 운동만 하지 마라" 였다. 대학생활 내내 들었던 말은 "너처럼 다 누리고 사는 애가 뭐가 불만 이니. 뭐가 그리 우울하고 힘들다는 거냐." 였다. 그리고 취업준비생이 된 지금은 "너처럼 유별난 애는 처음 본다. 너무 똑똑한 여자는 시집가기 힘들다." 이다. 왜 나와 같은 청춘, 아니 나보다 더 참혹했던청춘을 보낸 우리 부모님은 이렇게 모순되는 말들을 하게 되었을까?
학교에서는 한 선배로부터 윤형이는 중심에서 왼쪽에 있는 사람인 것 같아. 라는 말을 들었다. 나는 기가 막혔다. 이 사람은 좌 우 개념이 있는가? 단지 내가 여자애 치고기가 세보이고 고분고분 하지 않고 따지니 "좌"라는 이름을 붙이는 건가? 그것도 너무나 기존 사회에 길들여져 살아가고 있는 나 같은 애한테 붙인 좌란 무엇인가? 나는 어이없게도 어떤 사람들에게는 경계심을 불러 일으킬 만큼 도발적이고, 결단력 있고, 어른 여자처럼 보이기는 하는 모양이다만 아주 얇은 꺼풀 뒤에는 그저 늘 남에게 인정받고 칭찬받고 싶은 꼬마일 뿐인데. 땡감처럼, 발갛게 잘 익어 보이는데 한입 씹어보면, 아직 떫어서 한참은 더 삭여야 되는 빛 좋은 개살구일 뿐인데.
나는 우연인지도 모르겠지만 세상의 어두운 면으로부터 거의 완벽하게 단절되어 온 사람이었다. 우스운 비유로 길에서 바바리맨 한번 본적이 없다. 삥을 뜯기거나 범죄현장을 본 적도 없다. 온실 속의 화초중의 화초이다. 부모님이 제시해 준 밝고 걱정 없는 세상 속에서불온 할래야 불온할 수 없이 살았고 남들처럼 늘 외롭지 않기를 바랬고, 소속감을 느끼면서 모두가 가는안전한 길을 따라가기를 바랬다. 그런데 어리광은 이만하면 되었다고 생각하게 된순간 왜 이제 와서 나는 그전에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하는지 아무도 대답해 주지 않았다. 왜 길거리에서 구걸하는 사람이나 지하철에서 반쯤 정신이 나가서 무가 신문지를 모아대는 노인들을 보면 눈에 가시가 돋아난 것처럼 전에 없던 죄책감이 드는지. 분명히 죽을 만큼 노력해서 우리 부모님이 일구어냈을 강남에서 제일 욕먹는 주상복합인 집에 들어설 때마다 지하철 역의 집 없는 노숙자들과 오버랩 되는지. 그 괴리감이 무엇인지. 내가 느끼는 감정들은 분명 지금까지의 나의 세상에 대한 위선이었다.
이런 나에 대해 관심 있는 사람이 없는 것 같았다. 나를 아는 사람이 없는 것 같았다. 다른 사람들은 나에 대해 착각하거나, 혹은 내 여린 면을 보고 겉으로보여지는 강한 모습과 다르다고 조롱했다. 나는 비난을 견디기 힘들었고 나는 원래 어떤 사람인지, 나도 모르고 그 사람들은 모르는 것 같았다. 그래서 외로웠다.
이 괴리를 어찌할 바 모르던 어느날
누군가 나에게, 외로운 것은 당연하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나는 궁금해 졌다.
김규항님의 블로그를 들락날락 거리다가 예수전이라는 강좌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기독교인이라는 이름으로 20년이나 살았고, 교회도 마음이 불안할 때면열심히 다니는 척 했었다. 하지만 성경 한 두 구절을 확대 해석해서, 잘 먹고 잘 사는 게 성령 충만 은혜 받은 것이고 그 돈으로 십일조 열심히 내야 천국 간다는 목사님 설교는 머리가 너무 커버린내가 듣기에는 맹물이 포도주 된 것처럼 공허하고 허무맹랑할 뿐이었다. 건방지게도 신은 있을지 몰라도 한국 기독교에는 없는 것 같다고 비아냥거렸던 나는 예수전을 통해 내가 가진 종교가 무엇인가? 에 대한 재정의를 내리고자 했다.
또 다른 이유로는 B급 우파인 내 사회관에 대한 재정의였다. 지금까지는 수동적으로 주어진 시각으로만 살아왔던 내가 지금에 와서 조금씩 깨달아 가는 비참한 삶들에 대한 미안함. 그렇다면 죽을 만큼 열심히 일해서 성공했다는 우리 부모님이나 그 딸인 나는 잘못 살아왔다는 것인지? 도대체 점점 더 양극화 되어가는 이 세상은 어떤 모습인지? 등의 이슈에 대해 나의 시각을 객관화 하고 싶었다. 산성과 알칼리성이 만나서 중성이 되듯, 나는 B급 좌파라는 분의 이야기가 들어보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처음의 예수전 수강 목적에 대한 답 보다는, 예수의 삶으로부터 개인적인 위로와 앞으로의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한 에너지를 더 많이 받은 것 같다. 왜? 예수도 외로운 한 사람이었으니까. 그리고 옳은 생각을 시작할 때, 그리고 그것을 지켜나갈 때 외로운 것이 당연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때문에.
사실 우습게도 처음 수업을 나오면서 "나도 그 위험하다는 운동권이 되는 건가? 혹시 예수전을 듣는 것이 오히려 성경을 그릇되게 보게 되게 하지는 않을까?" 겁이 났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예수가 꼭 신이 아니어도 여전히 좋다는 생각,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계시지 않아도 상관 없다는 생각, 마리아가 동정녀가 아니면 어떠랴 그런 것들은 예수가 우리에게 꼭 전하려던 핵심이 아닌데’ 라는 생각을 처음으로 해봤다. 그리고 예수의 죽음에 대해 진심으로 슬퍼해 본 것도 처음이었다. 그것이 단순히 하늘로부터 내정된 운명이 아니라 인간 예수에게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선택이었는지에 대해서. 2000년간이나 외로웠고, 지금도 그 외로움이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숭고한 동시에 얼마나 큰 고통인가라는 생각. 이런 생각들은 분명 외롭다는 예수에 대한 이해를 통해 자기 위안을 삼으려는 목적을 초월하여 내 삶의 구도에 영향을 미칠 만큼 의미 있는 생각들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내가 예전에 성경에서 가장 좋아하던 구절은 로마서 8장의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그 시절 고3 수험생이던 나는 예수를 믿는다고 스스로를 속이고, 더 이상 정죄함이 없기를 바랬다. 나는 전지전능하신 예수가 나를 착한 아이라고 칭찬해 주고, 최소한 더 이상 힐난하지 않기를 바랬다. 나는 예수와 거래를 하듯 고3 내내 "수능 잘 봐서 좋은 대학 가면 대학가서 고3부 봉사하겠다"는 기도를 지키기 위해거짓부렁이 봉사활동을 하면서 이만하면 사회에 기여할 훌륭한 사람이 될 것이다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내가 가장 좋아하는 구절은 마가복음 14장의 "그들이 겟세마네라 하는 곳에 이르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기도할 동안에 너희는 여기 앉아 있으라하시고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가실새 심히 놀라시며 슬퍼하사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깨어 있으라 하시고" 이다. 내 안에서 변화된 것은 무엇인가? 나는 이제 예수를나에게 상 벌을 내리고 평가하는 신이 아니라, 위대한 길을 먼저 간, 똑같이 외로웠던 한 사람으로, 그렇게 내가 조금은 이해할 수 있는 외로운 자로 여기고 싶은 것이다.
그럼 나는 지금까지 잘못 살아왔는가?
이번 봄은 나에게 유난히 잔인한 것 같다. 비만 오면 안절부절 하지 못하고불안해 하는 나. 뭔가 늘 열심히 하고 있고 몸은 힘든데 과연 내가 쓸모 있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인지? 내 인생의 목표를 도대체 어떻게 바로 잡아야 하는지. 지금까지 생각했던 것처럼 좋은데 취직해서 돈 많이 벌어 잘나가고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해야 올바르게, 예수의 곁에 있던 사람들과 함께 살아 나갈 수 있을 것인가를 생각하면 도저히 전처럼 생각 없을 수가 없다. 막막함, 무지에 대한 공포가 나를 고민하게 만든다. 사춘기 때도 이러지 않았는데. 하지만 나아지기 위해서 더욱고민하고 아파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제 천국에 갈 때 잘 보이기 위해서 ‘기도’하지 않는다. 하지만 내가 나의 올바름에 대해 생각하고 또 그래서 막막할 때면 내 안에 예수에게 따뜻하게 좀 위로해 달라고, 나보다 훨씬 더 외로웠을당신 얘기를 들려달라고 말을 건다. 예수는 과연 세상을 바꾸었는가? 에 나는 회의적이다. 왜냐하면 아직 예수를 이해하고 그의 삶을 실천하려는 사람이 없는 것 같고, 그 시절 예수가 애간장을 끓이며 괴로워하던 가난한 자들은 그의 말대로 그가 우리와 항상 함께 있지 아닐지라도 여전히 존재한다고 생각하므로. 하지만 그의 삶을 접함으로써 나 자신 뿐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행복과 안위에 관심을 가지게 되는 나와 같은 사람들이 이 자리에 분명 있다는 점에서 세상은 조금씩 더 행복해 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너무 유명하지만 모두들 너무 모르는 예수. 김규항 님이 수업 중에 여러분, 우리는 예수나 체 게바라 같은 사람이 아닙니다. 라고 했던 말이 왜 그리도 마음 저리게 안타까운 가운데에서도 내 마음을 편하게 해주었는지. 하지만 그 마음 편함은 그래, 우린 원래 그런 사람이아니야, 그러니까 이대로 그냥 살아도 돼 하는 도피처는 아니었다. 오히려 비록 그리 살 수 없을지라도 나는 최선을 다해 예수의 서른 해의 짧은 삶을 이해하는 사람이 될 것이고 올바른 외로움을 지닌 사람이 되고자 노력할 것이다. 나는 무서운 현실도 똑바로 볼 수 있는 성숙한 어른이 되고 싶다. 절대로 꼭 기억할 것이다. 예수의 치열했던 삶 그리고 죽음에 대하여.
이윤경의 예수 전
Jesus is here (지금 여기에)
예수라는 이름은 5-6세 정도에 처음 들었던 것 같다.
온가족이 성당에 나갔었는데 6살에 할머니께서 성당 유치부 교리부에 데려다 주셨다.
신부님 강론을 매주 듣고 청소년기를 지나 대학입학 하기 전 까지 들었기에 예수님은
착하신분이구나 라는 걸 막연하게 생각하며 자랐다. 대학입학 후
그냥 천주교의 스타일과 매번 고백성사를 보는 게 싫었다. 특히 정기적으로 판공성사 라는것으로 억지로 죄를 고백하게 하는 것도 싫었다. 내가 왜 나의 은밀한 죄를 신부한테 얘기해야하는지 도무지 맘에 들지 않았다. 암튼 그렇다고 교회에 다니기는 싫었으나 마침 고3때부터 알았던 독실한 기독교신자인 친구와 자주 만나게 되었다. 공부하는 것도 힘들고 그냥 인생이 힘들다고 느껴졌기에 누군가가 옆에 필요했는데 그 친구가 내 곁에 언제나 있어줬다. 지금 생각해보면 주님의 섭리인 것 같다. 내가 카톨릭에 몸담고 있어서 그런것도 있었지만 또 개신교의 사회적인 온갖 안 좋은 행태들만 보아 와서 그런지 개신교 목사도 인간들도 싫었으나 그 독실한 개신교 신자인 친구가 좋아 교회에 드나들게 되었다. 그때 마침 인생의 목적과 끝이 뭔지 고민도 많았고 방황도 했던 시기였다. 또 예수님에 대해 알고 싶었던 시기였다. 그냥 힘들 때마다 그 친구를 찾아갔는데 그 친구는 늘 교회에 있었기에 내가 아쉬워서 그 친구를 보기위해 교회에 자주 찾아간 것이다. 친구는 내가 여태껏 보아온 개신교 신자들과는 다른 것 같았다. 그 친구 때문에 개신교의 부정적인 이미지가 일단 벗겨졌다. 암튼 난 이래저래 교회에 드나들고 그 친구가 소개시켜준 선교단체를 통해 어떤 훌륭한 간사님과 성경공부를 하게 되었고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다. 내 인생이 180도 바뀌게 된 더없이 소중한 순간이었다. 암튼 열심히 수련회다 집회다 다 따라다녔고 교회도 열심히 다녔다. 하나님과 순간순간 동행하는 게 참 신기했고 재밌었다. 그러나 그것도 몇 개월 가지않아 또 다른 고민에 휩싸였다. 내가 아는 예수님과(성경에서 읽은) 교회와는 많은 거리가 있는것 같았고 그걸 가르치는 사람도 없었다.
제대로 성경을 가르치고 설교하는 리더가(목사, 성경교사 등등) 정말 극소수에 불과한것같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그동안 해왔으니까 라는 생각으로 잘못된 전통과 습관들은 따라 믿는 사람들 틈에 끼여서 솔직히 나까지 이상해져 갔다. 아무도 제대로 성경을,예수를 가르쳐주는 사람이 적다는것에 대해 지금도 많이 유감이다.
어쨌든 하나님의 은혜로 좋은 성경교사(목사님)를 4년전 만나게 되었다. 그동안 열정은 있었으나 바른 신학이 내게 없었음을 깨달았다. 목사님께서 좋은 안내자가 되어주어 나는 남에게 들은 예수,많은 목사의 설교와 책에서 말하고 있는 예수가 아닌 사복음서에서 활동하신 예수님에 대해 알게 되었다. 정말 충격적이었다. 그러나 복음서를 접하면 접할수록 내가 많이 자유로와졌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 8:32)는 말씀이 어떤 의미인지 정말 알 것 같았다.
지금도 나는 복음서를 읽으며 예수님께서 정말 대단하신 분이라는 걸 새삼 느끼곤 한다.
그러나 그렇게 살기란 왜 그리 어려운지...
원수가 주리거든 마시우라는 말씀도 그렇고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씀도 그렇고 ...놀랍지만 참 실천하기 어려운 말씀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참 나에게 매력적인 분이다.
비록 내가 지키기 어려운 말씀만 하시지만 예수님은 아무런 목적도 없는 내 인생의 의미를 가르쳐주셨고 내 인생의 한 걸음 한 걸음 마다 도와주시고 관여하신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닌 정말로 예수님께서 나의 가는 길마다 함께 하셔주시기에 나는 예수님이 참 좋다. 그리고 어렵지만 예수님의 삶을 한번 따라해 보고 싶다.
예수님은 나의 삶의 목적과 의미와 이유이고 이 예수님만이 진리이고 모든 사람들이 가야할 길이라는 걸 나는 확신한다. 나는 날이 갈수록 예수님을 더 알고 싶고 만나고 싶고 예수님의 삶을 이땅에서 살아보고싶다. 예수님을 점점 만나게 될수록 예수 아닌 다른것은 정말 재미가 없다. 교회활동도 봉사도..등등 교회와 관련되어있다고 예수님과 상관있는것은 아닌것 같다. 예수님을 바로 알고 만나고 내가 실천할 때에 나는 행복감을 느낀다. 예수님은 나를 늘 격려해 주시는것 같다. 나는 성당에서 주일학교를 다녀서 흔히 부르는 이 노래를 잘 모른다. 갑자기 생각나는 노래인데...
“돈으로도 못가요, 하나님 나라 ”
이 노래는 지은 사람의 정신으로 보아 하나님이 원하시는 아버지의 나라와는 많이 무관한 노래인 것 같다. 바로 지금 여기에서의 삶이 아닌 지금 여기의 나의 삶과는 무관한 죽어서나 가는 저 머나먼 하나님 나라(천국)를 말하고 있는 것 같다.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기도가 생각난다.
~~생략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마6:9-13)
~~이하 생략
하나님 아버지, 예수님의 삶을 이 땅에서 이루는 내가 되고 싶다.
나같이 잘나지 못한 사람도 하나님 나라의 주인공으로 또 누구나 그렇게 될 수 있다는
하나님 , 예수님의 말씀은 놀라울 일이고, 나는 영원히 예수님만 따르고 싶다.^^
김은혜의 예수전
이상한 나라의 예수
밤은 차갑고 내일은 어둡고
내게 인생은 장마였네
죽지 못해 산다는 말, 그것은
지나가는 타인의 말이 아니었네
그때 내가 다니던
이상한 나라의 교회,
‘강함’과 ‘감사함’으로 고통을 초월하라 하네
약해 빠진 나는 잊어버리라 하네
그들의 말은 하늘나라의 말인가
도무지 모르겠네
고통과 슬픔 없애려는 하늘나라
그것도 꿈만 꾸는 교회
정말 하늘에 있는 천국엘 가려하나
그들의 천국은 무엇이란 말인가
구원이 영생인가
영생이 구원인가
그것과 상관없는 삶은 불쌍한가
예수는 대체 어디 있나
천한 자의 애끓는 가슴은 대체 어디 있나
유대의 왕, 반역자의 눈물은 대체 어디 있나
고통과 억압과 소외,
약한 자의 친구는 대체 어디 있나
‘긍정의 힘‘에 있나
‘사랑의 힘‘에 있나
아니라면 ‘기독교의 힘‘에 있나
아니라면 ‘교회의 힘’에 있나
그것도 아니라면
하늘엔 영광, 땅엔 평화 외치는
성탄절 ‘자선냄비’에 있나
예수,
그의 이름으로 사는 이들에겐
천국이 있다네, 그들만의 천국.
나름대로 누리며 기뻐한다네
예수,
그의 이름으로 신자들은 늘었다네
기독교인 많은 세상
그런데 뭐가 이래. 질문 하는 사람이 비정상인가
세상의 소금과 빛은 하늘나라 좋아해
정말 하늘로 날아가 버렸나
차라리 지친 현대인의 휴식처가 되었다고 말해줘
차라리 평안과 위로를 얻기 위해 교회를 다닌다고 말해줘
차라리 제 삶도 버거워 세상의 고통에 관심 돌릴 여유가 없다고 말해줘
그래, 핑계대고 변명하는 게 차라리 사람답고 괜찮아
이상한 나라의 교회, 이젠 더이상
세상을 사랑한다고 하지 말아줘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할 수 있다고 하지 말아줘
예수를 위해 산다고 하지 말아줘
예수의 삶은 고통이었다네
죽을때까지 눈물이었다네
기꺼이 아픈 자들이 되었다네
기꺼이 슬픈 자들이 되었다네
천대 받는 자들과 먹고 마셨다네
그런 예수가 꿈꾸던 세상은 어디에 있나
그런 예수가 우리에게 남긴 것은 무엇인가
‘의인’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자여
‘죄인’이 되어라 그러나
‘인간의 원죄’로 괴로워 하는 자여
‘인간의 야만’으로 괴로워 하라
‘가난’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자여
‘부자들의 자선’을 꿈꾸지 말고
가난한 사람들의 ‘인간다운 사회’를 꿈꿔라
아픔을 태연하게 말 할 수 있는 자여
세상을 태연하게 비판 할 수 있는 자여 또한
‘자기비판’을 언젠가 팔아먹지 말라
이 모든 것, 동시에
네 자신에게 해야 할 말임을 기억하라
그렇게 살아내려고 노력하지 않는다면
아무 소용없는 말들임을 기억하라
예수는 지금 내 안에서 그렇게 울고 있네
김광섭의 예수전
8주 동안 고생하신 선생님껜 죄송하지만,
결석하지 않고 꾸준히 제정신을 차리려고 노력하면서
(자의든 타의든) 맨 앞자리에 앉아 강의를 들었음에도
아직 "나의 예수전"은 없습니다.
'나의' 예수전이 없는건지 나의 '예수'전이 없는건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많은 것들을 듣고 보고 배웠다고 생각되는데 정작 정리되고 체화된건 없나 봅니다
수업이 시작되기 전엔 '예수에 대해 많은 것을 배워야지, 교회에선 들을 수 없는 것, 볼 수 없는 시각을 알아가야지' 했는데
수업이 마무리되고 난 후엔 예수의 삶이 투영되지 않는 나의 삶만 보이고, 신념이라는 단어를 잊고서 뻔뻔하게 살아가는 내 모습만 눈에 들어옵니다.
30년을 겨우겨우 채워가는 지금은 예수가 공생애를 시작하려는 그 즈음이 아닌가 싶습니다.
여자의 배속에서 나온 것도 같고, 30여년을 교회문화 안에서 산 것도 같은데
왜 이렇게 차이가 나는지.. 참 한심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설파할 것도 아니고 친구들에게 "이 사탄아!"라고 말할 배짱도 없는 주제라서 그런걸까요? 아직 먼 것 같습니다.
"나의 예수전"은 없습니다. 이번 기회로 "나의 (것이 될) 예수전"을 만들어가야 되겠습니다.
김혜경의 예수전
저는 재작년에 많이 아팠습니다. 몸이 아니라 마음이요. 직장에서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어려움을 겪고 결국 한 학기를 휴직했습니다. 진단은 우울증이었어요. 직장을 생각하면 공포스럽고 사람들이 제게 했던 말들 때문에 다른 일에 집중을 못했고 결국 정신과 치료를 받게 되고 약을 먹어야 잠이 들게 되었습니다. 저의 언니는 매우 독실한 신자였는데 제가 받는 어려움에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 왜 내 동생에게 이런 일이.." 그러면서 저를 교회에 데려가 끊임없이 기도를 드렸습니다. 저를 낳게 해 달라고.... 그 즈음에는 거의 매일 교회에 가서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난을 떠올리며 저를 낳게 해달라고 기도했어요. 그러다가 작년부터 다시 학교에 다니고 있는데 아직도 정신과 약을 먹어야 잠을 잡니다.
너무 서론이 길었네요. 휴직하는 기간에 다른 책을 볼 수 없었습니다. 집중이 안 돼서요. 그래서 매일 신약성경 한 장을 소리내어 읽고 그걸 공책에 옮겨 적었습니다. 그게 유일한 읽기였어요. 그러면서 예수님을 생각했습니다. 약한 자를 불쌍히 여기시고 치료해주는 예수님에 많은 위로가 된 것 같습니다. 그래서 교회에도 열심히 다녔습니다. 그러면서 작년에 다시 복직하게 되자 저는 예수님이 저를 낫게 해주셨다는 생각을 했지요. 그런데 제가 다니는 교회는 강남의 아주 큰 교회였고 신도수가 많았어요. 언제부터인가 교회가 소란스럽게 느껴졌고, 이슬람지역까지 선교를 강조하는 교회에 거부감이들었습니다. 그러다가 김선생님의 마가복음 강의를 알게 되어서 강의를 듣게 되었습니다. 이전에 선생님의 책을 인상깊게 읽어서 선생님이 어떤 사람인지 궁금하기도 했고 마침 예수전 강의라 신청했지요.
선생님의 강의를 들으면서 약한 자의 편에 서서 그들을 동정이 아니라 연민과 애정으로 보고 그들을 위해서라면 어떤 과격함도 불사하는 예수님 모습에 무척 감동받았습니다. 제가 막연히 생각해 오던 예수님 상이 구체적으로 다가왔습니다. 돈이 많은 것을 해결해 주는 이 사회에서 역시 그 돈으로 많은 것들을 누리는 제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예수님은 준엄하게 제게 묻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내가 실천할 수 있는 건 어떤 게 있을까? 우선 돈으로 무엇을 해결해 보려 하지 않기입니다. 돈 적게 쓰기. 제가 하는 일이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입니다. 제가 만나는 아이들이 어른이 되었을 때 적어도 자기만 잘 살고 잘 먹는 사람이 아니라 어려운 이웃도 돌아보는 어른이 되도록, 그런 심성을 가지도록 말을 하고 이야기 하고 글을 읽히자. 그런 생각을 했고요. 또 아이들 중에 정말 손길이 필요한 아이들을 집중해서 살펴보자. 그들에게 위안이 되고 힘이 되는 어른이 되기에 힘쓰자. 뭐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선생님의 예수 이야기를 듣고요.
선생님의 강의를 듣는 동안 무척 행복했습니다. 저를 깨우치는 차가운 샘물 같았어요.
선생님의 다음 책이 빨리 나왔으면 합니다.
그동안 좋은 강의 감사했습니다. 선생님이 강의 중에 하신 말씀들 , 예수님의 참모습 들 을 기억하며 살겠습니다.
내내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기를 ....
곽노근의 예수전
예수는 나에게 있어 하나의 강박이었다. 예수는 신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았고, 예수를 믿지 않으면 지옥에 갈 것만 같았다. 그래서 나는 예수와 하나님에 대한 여러 불신과 냉소를 가슴속에 품고 있으면서도, 끝끝내 미련을 버리지 않았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나는 죄인이었다. 초등학교 시절 처음 교회를 다닌 때부터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결코 교회를 열심히 나갔다고 할 수 없는, 그리하여 때때로 나 자신이 무교라고까지 생각하기도 한 나는, 그러나 항상 강박관념에 시달리며, 떨고 있었고, 두려워 하고 있었다.
불안해 하면서도, 그렇게 초조해 하면서도, 마음 속 깊은 곳에서 기독교의 신앙을 받아들이지 못한 것은 그놈의 기독교에서 말하는 이기적인 구원론 때문이었다. 예수의 따뜻한 이미지? 사랑? 가난한 자의 친구가 된 예수? 다 좋다. 그러나 그러한 예수의 모든 모습들은 구원론 앞에서 힘을 잃는다. 내가 아무리 나의 이웃을 사랑하고, 나보다 못한 사람을 돕고, 그 외에 온갖 선한 일을 하고 해도, 예수를 믿지 않으면 말짱 도루묵이다. 구원받지 못한다. 천국 가지 못한다. 말로는 ‘사랑’을 최고라고 하면서 실제론 ‘믿음’이 없으면 사랑이고 뭐고 없는 이런 신앙을, 나는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이도 저도 아닌 모습으로, 붕 떠버린 채 많은 시간이 흘렀다. 시간의 흐름 속에서 우연히 접한 오강남 교수의 ‘예수는 없다’는 예수에 대한 조금 다른 생각들도 가능하다는 걸 깨달게 해 주었고, 김규항 선생님의 예수전 강의는 그 생각들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할 수 있도록 도와 주었다.
지금에 와서는, 예수에 대한 강박관념들을 거의 떨쳐내버렸다. 예수가 신인가 아닌가는 이제 내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며, 예수를 믿지 않아도 구원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지금은 오히려 ‘예수는 인간이다’라고 말하고 싶어질 정도다.
좀 더 솔직히 말해서, 오강남 교수의 ‘예수는 없다’와 김규항 선생님의 ‘예수전 강의’에서 내가 인식한 예수의 모습은 인간이었다. 단순히 인간적인 모습의 예수를 말하기 위해서 끌어들인 의미의 인간이 아니라 엄밀한 의미의 신이 아닌, 우리와 똑같은 ‘인간’ 말이다. 예수가 진정, 신인지 인간인지 애써 판별해내려고 하는 노력은 결국 쓸데없는 짓이겠지만, 그것이 무의미한 작업임을 알기에 예수는 인간이어도 상관없다고 보는 것이다. 한국의 독실한 크리스찬과 이야기할 때, 타협점을 찾기 위해서나 이 부분에 있어 조금 의뭉스럽게 뭉뚱그려 말할 일이다. 물론 나는 예수의 신적인 가능성을 믿는다. 그러나 그 말은 곧, 나와 같은 보통 사람들의 신적인 가능성을 믿는다는 말과 같다.
그렇게 예수의 신성에 대한 강박을 버리고 나니, 구원에 대해서도 다르게 다가오는 것이 있었다. 구원이란 게 그냥 아무렇게나 되는 것은 아닌 것 같았다. ‘예수처럼 살면 구원받을 수 있다’, 지금의 생각은 그렇게 정리되어 있다. 예수처럼 가난한 자, 사람 취급 못 받는 자에 대해 애끓는 감정으로, 편파적으로 살면 구원이란 것도 나의 삶 속으로 찾아오지 않을까 생각한다. 마침 성경에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있다. 그 유명한 ‘부차 청년-낙타와 바늘귀’ 이야기이다.
부자 청년은 예수에게 묻는다. “선하신 선생님, 제가 무엇을 해야 영원한 생명을 얻겠습니까?” 여기서의 영원한 생명은 구원이다. 예수는 말한다. “가서 가진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어라. 그러면 하늘에서 보화를 얻게 될 것이다.”
사실 이 구절에 이미 예수의 구원에 대한 생각은 다 정리되어 있는 것은 아닌가, 편향되게 생각해 본다.
그러나 예수처럼 산다는 것은 사실상 거의 불가능하므로 이는 또하나의 강박을 낳는다. 그래서 나는 또다시 이 구원이란 것에 그렇게 집착하지 않기로 했다. 그저 예수의 모습에 조금이나마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다만 노력하고 싶다. 가난한 자, 핍박받는 자에 대해 편파적인 모습으로 남고 싶다. 아직 부르주아인 내가, 훗날 위선적인 모습으로 가난한 자에 대한 사랑을 이야기하고 다니지 않길 진정으로 바라고 바랄 뿐이다.
이성영의 예수전
1." 인류의 거의 모든 보편적 가치들이 드러난 오늘날, 우리는 예수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진 세대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온갖 물신과 탐욕에 깊이 빠져있고 예수를 팔아 장사하는 교회상점에 둘러싸여 있습니다. 영적 지도자, 메시아, 급진적혁명가, 교회비판가, 여성주의자, 인권운동가, 생태주의자, 아동주의자, 빈민해방운동가... 예수의 삶은 이 모든 것을 보여줍니다. 이것을 외면한 채 십자가에 못 박혀 3일 만에 부활한 신의 아들, 창백한 얼굴의 백인 남성만으로 생각하기엔 우리는 예수의 역동성을 온전히 담아낼 수 없습니다. '지금' ,'여기'의 삶에 예수를 비춰보지 않는 것은 그의 가르침을 배반하는 것입니다." 김규항 선생의 말이 너무 반가웠다. 나의 예수전 강의는 정말 오랜만에 '소통'을 나눌 수 있는 기회였다.
2.마음속에 든 관념들을 어설프게 밖으로 표현해 낼 줄 아는 나이가 되자, 이른바 지식인이란 사람들이 한 눈에 들어왔다. 말글이 주는 화려함에 한참동안 현혹되었다.
그들이 부려 쓰는 언어가 마냥 멋있어 보였다. 말과 글을 온전히 사용하는 사람이야말로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세상의 모든 측면은 말과 글로 나타낼 수 있다고 믿었다. 도리가 없었다. 만약 그 때 누군가가 말글의 허망함을 가르쳐주었다고 해도 알아듣지도 못했을 거다. 특별한 경험 덕에 '언어'를 잃었으며 그 때 예수를 알 게 되었다. 당시 내가 지표로 삼았던 지식인들은 하나 둘 멀어져가고 이젠 다섯 손가락 안에 꼽을 만큼도 남지 않았다. 그것이 당연한 과정임을 조금씩 깨닫는 중이다. 그래서 말글에 자신감이 가득한 사람을 보면 겁이 난다.
3.유다를 어떻게 볼 것인가 - 나또한 세상 야욕이 많은 사람이라서 유다를 보는 관점은 나를 성찰하는 기회가 될 것 같다.
예수는 유다의 고발이 아니더라도 죽을 운명이었다. 율법, 예법과 같은 형식만을 강조하던 당대의 흐름에 공공연하게 분노하고, 당시 유대의 지배세력이었던 바리새인들을 공개적으로 비난하는 예수의 언행은 허례허식에 빠진 그들의 미움을 사기에 충분했다. 늘 자신의 언행에 추호의 흔들림이 없는 예수는 자기가 죽음을 당할 것이라는 예감을 누구보다 먼저 하고 있었다. 그리고 예수는 그가 자신을 배반할 사람임을 알고 있었다. 유다는 로마의 압제에서 해방되길 바라는, 열렬한 혁명운동가인 것 같다. 예수가 보인 사회적 단호함은 유다에게 정치적 의미로만 이해됐다. 성전을 무너뜨리겠다는 예수의 말도 유다에겐 해방전쟁이라는 뜻으로만 들렸으리라. 예수의 머리에 비싼 향유를 붓는 여인에게 그 돈이면 가난한 자들을 도울 수 있지 않겠냐고 비난하는 유다는 죽음 앞에 처한 예수의 고독을 읽지 못한다. 눈에 보이는 현상과 세계만을 전부로 생각하는 유다는 생각의 여백이 없는 운동가. 사회적 감성과 연민은 사라지고 논리와 이념만 남은 운동가, 이웃의 남루한 삶보다는 단지 자신의 사상에 충실한 운동가와 닮았다. 그는 예수 일행의 돈을 관리할 만큼 , 제자들 중에서도 똑똑한 사람이었다. 자신의 죽음을 담담하게 말하고, 종종 알 수 없는 뜬구름 잡는 소리를 하는 예수에게 유다는 실망했을 것이다. 똑똑한 그답게 실망은 결별이 아니라 제거로 이어진다.
중요한 건 예수는 이 모든 수순을 훤히 알고 있다는 점이다. 처음에 유다를 제자로 받았을 때부터. 그럼에도 예수는 절대로 먼저 유다를 내치지 않는다. 최후의 저녁식사까지 유다와 함께 한다. 왜? 자신의 죽음을 통해 유다의 생각을 깨우칠 수 있었으므로. 유다는 예수가 제사장의 군대에게 붙잡힌 것을 본 후에야 자기의 행동을 반성한다. 반성은 스스로를 거듭나게 하는 기회이다. 하지만 유다는 그 기회를 버리고 죽음을 택한다. 그는 스스로의 행동을 용서할 수 없을 만큼 자의식이 지나치게 강한 혁명가였던 것이다. 신념과 사상에 지나치게 집착한 나머지 그 속에 들어있어야 할 인본적 가치를 망각한 운동가들을 보는 듯하다.
이 점에서 그는 베드로와 비교된다. 예수가 미리 예고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무려 3번이나 부인한 베드로 역시 큰 잘못을 저질렀다. 하지만 그는 이것을 결국 극복해낸다.(베드로는 적어도 예수의 죽음이 주는 가르침을 배반하지 않은 셈이다.) 스스로의 오류를 인정하고 이것을 넘어선 베드로와 스스로를 용납하지 못하고 자살을 선택한 유다는 극명히 대비된다. 만일 유다가 자살을 하지 않고 치열한 반성을 거쳤다면 예수의 가르침을 누구보다 아름답게 전파할 수 있지 않았을까.
현실을 바꾸려는 사람은 늘 철저한 자기반성이 필요하고 또 자신의 오류를 극복할 줄 아는 용기가 필요하다. 뒤집어 말하면, 예수는 이 가치를 몸소 실천한 사람이다. 그는 인류가 오늘날에도 고민하는 문제들, 대립하는 가치의 충돌을 2000여 년 전에 조화롭게 녹여낸 사람이다. 예수가 우리에게 늘 살아있는 사람인 이유가 3일 만에 부활한 이유 때문이라고만 한다면 우리는 예수를 온전히 이해한 것이 아니다. 성서에서 흔히 보이는 , 일견 모순되는 듯한 예수의 발언은 그가 일관성이 부족한 사람이라고 오해하기 쉽게 만든다. 그러나 찬찬히 들여다보면 모순되는 듯한 가치가 예수의 행동 속에 조화롭게 스며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마땅히 분노해야 할 일에 대해 분노하지 않고 마냥 관용만을 베푸는 사람이 있다. 또, 분노하되 끝까지 용서할 줄 모르는 사람도 있다. 예수는 분노하되 결국 용서하는 방식으로 해결했다. 이웃의 삶을 구체적으로 이해하지 않고 구조적으로만 접근하는 사람이 있다. 또, 동정과 연민으로만 접근하는 사람도 있다. 예수는 늘 소외된 사람들과 함께 하며 당대의 지배계급과 체제를 맹렬히 비난했다. 기준 없는 개방성으로 자신의 정체성마저 상실한 사람이 있다. 또 정체성의 유지에만 치우쳐 개방성을 갖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예수는 개방적 태도를 갖지만 자신의 노선을 분명히 보여준다. 사회적 활동에만 치우쳐 내면의 성찰에 둔감한 사람이 있다. 또, 내면의 자아를 가꾸는 일에만 매몰되어서 사회적 자아를 상실한 사람도 있다. 공적 활동을 하는 와중에서 틈만 나면 홀로 떨어져 기도하는 예수는 둘의 조화를 보여준다.
4. 예수의 균형성은 그가 처한 현실과 동떨어져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현실의 남루함 한복판에서 보이는 것이기 때문에 더 큰 의미가 있다. 불과 몇 분후면 자신의 '이적'으로 병든 자를 회복시킬 것이면서 예수는 그들의 고통을 '애가 끓도록' 같이 슬퍼했다. ‘이적’은 일방적 시혜가 아니라 ‘소통’이 된다. 병자, 소수자와 아픔을 함께하는 연민은 위선 거짓권위에 대해 분노하는 마음과 한 쌍을 이룬다. 가난하고 소외받고 병든 자에겐 편파적일 정도로 그들의 편을 드는 동시에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사람은 우리를 지지하는 사람이다."며 유연성 있는 태도도 보인다.
그렇다면 예수는 늘 신념에 가득찬 확고한 사내였는가. 아니다. 예수는 가난하고 병든 이들과 함께 하며 세리와 잔치를 벌이고 '먹고 마시길 즐긴 자'였다. 사람들이 도달하기 힘든 권위와 도덕성을 공공연히 드러내며 금식 하는 세례요한과 예수는 대조적이다. 유다가 ‘여기’만을 집착했고 요한이 '저곳‘만을 바라봤다면 예수는 둘 사이의 균형을 유지했다.
5.참된 신념은 이성과 논리의 영역이 아닌 것 같다. 거짓 신념이야말로 오히려 논리가 매끄럽다. 진짜 신념은 철저히 감성적이다. 내 이웃이 소외당하고 아파하며 사는 꼴을 가만히 지켜보지 못하는 사람들은 대개 그 이유를 설명해내지 못한다. 그러나 제 활동을 논리적(?)으로 설명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결국 세상을 조금씩 바꾸어 나간다. 한 사람의 소양이나 양식은 그가 가진 지식의 양과 아무 상관이 없다. 예수는 논리적으로 설득하지 않았다. 그러나 누구보다 깊게 약자들과 '소통'하고 있었다. 그는 결코 어려운 말을 쓰지 않았고 그의 비유는 어린아이도 이해할 만큼 쉽고 적절했다. 제자들이 예수의 말을 알아듣지 못한 건 머리가 나빠서가 아니라 그들의 욕망으로 예수의 말을 이해하려 했기 때문이다. 예수의 죽음 이후에야 제자들은 그것을 깨닫는다. 깨우침은 늘 한 발 늦다.
6.언젠가 산상수훈을 언급하면서, 혁명이 올것이라는 해석을 곁들이는 김규항 선생의 호흡이 매우 가팔랐다. 목소리가 떨렸고, 팔을 책상 위로 올렸다 내렸다하며 몸을 계속 움직였다. 눈은 한참 전에 촉촉해져 있었다. 중년의 남자가, 자기 보다 한참 나이어린 사람들이 많은 강의실 안에서 그런 모습을 보였다. 나는 무참했다. 그의 말대로 청년의 의미는 육체적 나이와 무관한 것이었다.
누구나 청년 시절을 거치지만 끝까지 청년으로 남는 사람은 거의 없다. 어제의 청년이 별안간 오늘의 노인으로 변하는 모습은 아주 흔하다. 누가 끝까지 청년으로 남을 것인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다만 '소유에 대한 저항'이 청년을 늘 긴장하게 만드는 원동력임을 이 강의를 통해 배웠다.
김소정의 예수전
첫 남자친구의 이름은 요셉이었다. 아홉 살 때의 일이다. 내 짝꿍이었던 요셉은 미술시간에 크레파스를 빌려준 나를 집으로 초대했고 그때부터 우리의 연애가 시작되었다. 그 집에는 좁은 흙 마당과 아픈 어머니와 재래식 화장실이 있었다. 뭘 하고 놀았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우리는 며칠 동안 붙어 다녔고, 나는 그를 부모님께 소개했으며, 같은 반 아이들이 우리 사이를 놀리기 시작했다. 어느 날 방과 후에 담임선생이 나를 불러 말했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말이 있어. 웃기게도 그곳은 강남이었고, 곧 짝이 바뀌었고, 요셉과 나는 헤어졌다.
두 번째 연애는 그로부터 16년이 지나서야 시작되었다. 대학을 막 졸업한 뒤였고 앞날은 막막했고, 아무것도 아닌 내가 아무것도 아닌 일에 부끄러워했다. 곧 봄인데도 스웨터 속으로 칼 같은 바람이 불어 들어오던 날, 나는 홍대 앞 버스 정류장에 서 있었다. 기다리는 버스는 오지 않고 몸이 저절로 오그라드는데 그가 다가와서 내 손을 잡았다. 버스, 정류장이라니 전혀 낭만적이지 않다고 생각하면서도 나는, 이제부터 절대로 손을 놓지 말라고 냉큼 말했다. 그가 대답했다. 너나 놓지 마.
새 남자친구의 이름은 예수이다. 그는 서른세 살이고, 가난한 목수이다. 나는 그의 어머니가 부르던 것처럼 그를 부르기로 했다. 조슈아. 철수나 영수 같은 흔하고 흔한 이름이지만, '하느님이 구원 하신다'라는 그의 이름은 내 이름 '밝은 물가'와 잘 어울린다고 나는 생각했다. 우리는 서로 손을 붙들고 성당 마당이며 종로 거리, 어떤 날은 경희궁터를 거닐며 이따금씩 이야기를 나누었다. 사람들은 저마다 우리를 신기해하거나, 이상해하거나, 수녀원에 가라는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들은 그건 절대로 안 된다고 했고 또 어떤 신부님은 수녀원 말고 한 10년 쯤 기다려서 한국 최초의 여성 사제가 되라고도 했다. 조슈아, 어떻게 생각해? 그가 말했다. 너 좋을 대로 하면 돼.
조슈아의 대답은 늘 그렇게 따뜻했다. 괜찮아, 너 좋을 대로 해. 괜찮아, 너 하고 싶은 대로 해. 그가 나의 선택을 존중하고 아무것도 강요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그를 기쁘게 하는 쪽을 고르기로 했다. 선택하기 힘든 일이 꼭 하나 있다면 그것은 가난이었다. 그는 가난했고, 가난한 이를 사랑했으며, 그를 따르려면 누구든지 가진 것을 버리고 저마다의 십자가를 져야 했다. 그러나 나는 부자 청년이었다. 내 부모는 남의 빚을 갚으면서 살면서도 나에게 못해준 일은 없을 만큼 나를 금처럼 옥처럼 키웠다. 나는 가난을 선택한 이들을 존경했지만, 내 부모가 모든 기대를 나에게 걸었으므로 나 자신은 가난했던 적이 없었고, 가난해서는 안 되었다. 가난은 내가 모르는 것이었고, 따라서 두려운 것이었다. 나는 비겁하게 물었다. 조슈아, 어떻게 하지? 그러나 나는 아무 대답도 들을 수 없었다.
연애란 게 그런 것인가 보다. 처음 얼마 동안은 세상 좋고 즐겁고 행복하다. 문제는 그 단계가 마냥 계속되지 않는다는 거지. 우리의 연애 또한 기대했던 만큼 낭만적이지 않았다. 우리는 하느님 나라를 바랐지만, 사람들은 먹고 살던 땅에서 쫓겨났고 제국은 세계를 위협했고 현대판 노예가 TV 속에서 쓰레기통을 뒤졌고 명문대 4학년생이 옛 독재자의 딸에게 존경과 감사의 편지를 보냈다. 사람들은 날마다 이 모든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지만 이 모든 일이 곧 잊혀질 것이었다. 잊혀지지 않는 것이 있다면 4년 전의 축구경기 정도였다. 사람들은 저마다 무엇 무엇이 바뀌지 않으면 해결되지 않는다고들 했지만 어떻게 해야 그것들을 바꿀 수 있는지 말해주는 이는 드물었다. 그러는 사이에 그는 몇 번을 죽었다 살아났고, 나는, 불편했다.
목요일 밤, 그가 붙잡혔다. 겁에 질린 채 나는 그가 끌려가는 것을 보고 서 있었다. 사람들은 그가 곧 죽을 거라고 했다. 그가 죽는 것은 내 탓이라고도 했다. 그는 개처럼 기둥에 묶여 매를 맞았고 사람들은 그에게 침을 뱉고 욕을 했다. 조슈아, 나는 그의 이름을 부르고 싶었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아주 잠깐, 그와 눈이 마주쳤던 것 같다. 그가 말했다. 괜찮아. 지금 저들이 저주하는 것은 내가 아니므로 내 영혼은 모욕을 당하지 않는다. 아니다. 그가 정말 그렇게 말했을까? 그 말을 들은 일은 기억이 나는데, 나에게 그렇게 말한 것이 정말로 그였을까? 지금은 모르겠다.
금요일 아침, 사람들이 그를 십자가에 매달았다. 나는 눈과 귀를 틀어막고 속으로 외쳤다. 개 같은 놈들. 천벌을 받을 놈들. 나는 천국과 지옥을 믿지 않지만, 하느님이 그놈들을 지옥에 보내시기를 빌었다. 그러나 그들이 지옥에 떨어진다면, 나는 어디로 가게 될까? 이런 나에게, 하느님의 나라는, 오는 것일까? 십자가 위에서 그가 엄마 아빠를 불렀다. 넝마 같은 몸에 넝마 같은 목소리로, 엄마, 이제 그 애가 엄마 아들이에요, 아빠, 이 사람들을 용서해주세요, 아니다, 그가 정말 그렇게 말했을까, 그가 모두를 용서했을까, 그가 모두를 사랑했을까, 지금은 모르겠다, 단 한 순간이라도, 조슈아, 당신은 행복했을까, 지금 당신은 행복할까, 조슈아,
조슈아, 당신에게 묻지 않아도 사실은 다 알고 있었어. 아무것도 내 것이 아니라는 거. 가지지도 않은 것을 잃을까봐 겁내고 있었다는 거. 그래서 당신은 죽어야 했다는 것을. 나는 그에게 물었다. 그래도 아직 나를 사랑한다고 믿어도 될까? 당신이 부를 때 금방 쫓아갈 용기는 없어도 이제부터 가난해질 나를,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해도 될까? 컴컴한 경희궁터 뒷골목을 걷고 있던 수요일 아홉 시 반. 그렇게 믿어도 될까? 그러자 저 앞에서 가로등 하나가 반짝, 켜지고 그가 조금, 웃었다. 내가 언제 뭐라 그랬어? 그렇게 말한 것이 제발 그였기를.
장윤형의 예수전
그렇다면 나는 왜불온하지 않은가? B급 우파 장윤형의 예수전
나의 작은 위선 예수전
촌스럽지만 바이오그라피로 시작해 보도록 하겠다. 나의 부모님은 젊어서 찢어지게 가난했지만 열심히 살고, 열심히 공부하고, 그러니까 아무튼 닥치는 대로 무엇이든 열심히 해서 크게 자수성가한 분들이시다. 아빠가 회상하기에도 당신들 세대인 70년대 중반에는 좋은 대학에 들어가면 으레 데모, 소위 학생 운동을 했고, 통기타를 쳤다고 한다. 엄마는 똑같이 가난한 사람에게 시집가서 고생하지 말라는 외가의 반대를 무릅쓰고 아빠의 잠재력을 보고 결혼하셨다. 그런데 내가 대학에 들어갔을 때 우리 아빠가 처음 했던 말은 "대학가서 뭐든 해도 좋은데 운동만 하지 마라" 였다. 대학생활 내내 들었던 말은 "너처럼 다 누리고 사는 애가 뭐가 불만 이니. 뭐가 그리 우울하고 힘들다는 거냐." 였다. 그리고 취업준비생이 된 지금은 "너처럼 유별난 애는 처음 본다. 너무 똑똑한 여자는 시집가기 힘들다." 이다. 왜 나와 같은 청춘, 아니 나보다 더 참혹했던청춘을 보낸 우리 부모님은 이렇게 모순되는 말들을 하게 되었을까?
학교에서는 한 선배로부터 윤형이는 중심에서 왼쪽에 있는 사람인 것 같아. 라는 말을 들었다. 나는 기가 막혔다. 이 사람은 좌 우 개념이 있는가? 단지 내가 여자애 치고기가 세보이고 고분고분 하지 않고 따지니 "좌"라는 이름을 붙이는 건가? 그것도 너무나 기존 사회에 길들여져 살아가고 있는 나 같은 애한테 붙인 좌란 무엇인가? 나는 어이없게도 어떤 사람들에게는 경계심을 불러 일으킬 만큼 도발적이고, 결단력 있고, 어른 여자처럼 보이기는 하는 모양이다만 아주 얇은 꺼풀 뒤에는 그저 늘 남에게 인정받고 칭찬받고 싶은 꼬마일 뿐인데. 땡감처럼, 발갛게 잘 익어 보이는데 한입 씹어보면, 아직 떫어서 한참은 더 삭여야 되는 빛 좋은 개살구일 뿐인데.
나는 우연인지도 모르겠지만 세상의 어두운 면으로부터 거의 완벽하게 단절되어 온 사람이었다. 우스운 비유로 길에서 바바리맨 한번 본적이 없다. 삥을 뜯기거나 범죄현장을 본 적도 없다. 온실 속의 화초중의 화초이다. 부모님이 제시해 준 밝고 걱정 없는 세상 속에서불온 할래야 불온할 수 없이 살았고 남들처럼 늘 외롭지 않기를 바랬고, 소속감을 느끼면서 모두가 가는안전한 길을 따라가기를 바랬다. 그런데 어리광은 이만하면 되었다고 생각하게 된순간 왜 이제 와서 나는 그전에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하는지 아무도 대답해 주지 않았다. 왜 길거리에서 구걸하는 사람이나 지하철에서 반쯤 정신이 나가서 무가 신문지를 모아대는 노인들을 보면 눈에 가시가 돋아난 것처럼 전에 없던 죄책감이 드는지. 분명히 죽을 만큼 노력해서 우리 부모님이 일구어냈을 강남에서 제일 욕먹는 주상복합인 집에 들어설 때마다 지하철 역의 집 없는 노숙자들과 오버랩 되는지. 그 괴리감이 무엇인지. 내가 느끼는 감정들은 분명 지금까지의 나의 세상에 대한 위선이었다.
이런 나에 대해 관심 있는 사람이 없는 것 같았다. 나를 아는 사람이 없는 것 같았다. 다른 사람들은 나에 대해 착각하거나, 혹은 내 여린 면을 보고 겉으로보여지는 강한 모습과 다르다고 조롱했다. 나는 비난을 견디기 힘들었고 나는 원래 어떤 사람인지, 나도 모르고 그 사람들은 모르는 것 같았다. 그래서 외로웠다.
이 괴리를 어찌할 바 모르던 어느날
누군가 나에게, 외로운 것은 당연하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나는 궁금해 졌다.
김규항님의 블로그를 들락날락 거리다가 예수전이라는 강좌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기독교인이라는 이름으로 20년이나 살았고, 교회도 마음이 불안할 때면열심히 다니는 척 했었다. 하지만 성경 한 두 구절을 확대 해석해서, 잘 먹고 잘 사는 게 성령 충만 은혜 받은 것이고 그 돈으로 십일조 열심히 내야 천국 간다는 목사님 설교는 머리가 너무 커버린내가 듣기에는 맹물이 포도주 된 것처럼 공허하고 허무맹랑할 뿐이었다. 건방지게도 신은 있을지 몰라도 한국 기독교에는 없는 것 같다고 비아냥거렸던 나는 예수전을 통해 내가 가진 종교가 무엇인가? 에 대한 재정의를 내리고자 했다.
또 다른 이유로는 B급 우파인 내 사회관에 대한 재정의였다. 지금까지는 수동적으로 주어진 시각으로만 살아왔던 내가 지금에 와서 조금씩 깨달아 가는 비참한 삶들에 대한 미안함. 그렇다면 죽을 만큼 열심히 일해서 성공했다는 우리 부모님이나 그 딸인 나는 잘못 살아왔다는 것인지? 도대체 점점 더 양극화 되어가는 이 세상은 어떤 모습인지? 등의 이슈에 대해 나의 시각을 객관화 하고 싶었다. 산성과 알칼리성이 만나서 중성이 되듯, 나는 B급 좌파라는 분의 이야기가 들어보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처음의 예수전 수강 목적에 대한 답 보다는, 예수의 삶으로부터 개인적인 위로와 앞으로의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한 에너지를 더 많이 받은 것 같다. 왜? 예수도 외로운 한 사람이었으니까. 그리고 옳은 생각을 시작할 때, 그리고 그것을 지켜나갈 때 외로운 것이 당연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때문에.
사실 우습게도 처음 수업을 나오면서 "나도 그 위험하다는 운동권이 되는 건가? 혹시 예수전을 듣는 것이 오히려 성경을 그릇되게 보게 되게 하지는 않을까?" 겁이 났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예수가 꼭 신이 아니어도 여전히 좋다는 생각,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계시지 않아도 상관 없다는 생각, 마리아가 동정녀가 아니면 어떠랴 그런 것들은 예수가 우리에게 꼭 전하려던 핵심이 아닌데’ 라는 생각을 처음으로 해봤다. 그리고 예수의 죽음에 대해 진심으로 슬퍼해 본 것도 처음이었다. 그것이 단순히 하늘로부터 내정된 운명이 아니라 인간 예수에게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선택이었는지에 대해서. 2000년간이나 외로웠고, 지금도 그 외로움이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숭고한 동시에 얼마나 큰 고통인가라는 생각. 이런 생각들은 분명 외롭다는 예수에 대한 이해를 통해 자기 위안을 삼으려는 목적을 초월하여 내 삶의 구도에 영향을 미칠 만큼 의미 있는 생각들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내가 예전에 성경에서 가장 좋아하던 구절은 로마서 8장의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그 시절 고3 수험생이던 나는 예수를 믿는다고 스스로를 속이고, 더 이상 정죄함이 없기를 바랬다. 나는 전지전능하신 예수가 나를 착한 아이라고 칭찬해 주고, 최소한 더 이상 힐난하지 않기를 바랬다. 나는 예수와 거래를 하듯 고3 내내 "수능 잘 봐서 좋은 대학 가면 대학가서 고3부 봉사하겠다"는 기도를 지키기 위해거짓부렁이 봉사활동을 하면서 이만하면 사회에 기여할 훌륭한 사람이 될 것이다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내가 가장 좋아하는 구절은 마가복음 14장의 "그들이 겟세마네라 하는 곳에 이르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기도할 동안에 너희는 여기 앉아 있으라하시고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가실새 심히 놀라시며 슬퍼하사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깨어 있으라 하시고" 이다. 내 안에서 변화된 것은 무엇인가? 나는 이제 예수를나에게 상 벌을 내리고 평가하는 신이 아니라, 위대한 길을 먼저 간, 똑같이 외로웠던 한 사람으로, 그렇게 내가 조금은 이해할 수 있는 외로운 자로 여기고 싶은 것이다.
그럼 나는 지금까지 잘못 살아왔는가?
이번 봄은 나에게 유난히 잔인한 것 같다. 비만 오면 안절부절 하지 못하고불안해 하는 나. 뭔가 늘 열심히 하고 있고 몸은 힘든데 과연 내가 쓸모 있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인지? 내 인생의 목표를 도대체 어떻게 바로 잡아야 하는지. 지금까지 생각했던 것처럼 좋은데 취직해서 돈 많이 벌어 잘나가고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해야 올바르게, 예수의 곁에 있던 사람들과 함께 살아 나갈 수 있을 것인가를 생각하면 도저히 전처럼 생각 없을 수가 없다. 막막함, 무지에 대한 공포가 나를 고민하게 만든다. 사춘기 때도 이러지 않았는데. 하지만 나아지기 위해서 더욱고민하고 아파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제 천국에 갈 때 잘 보이기 위해서 ‘기도’하지 않는다. 하지만 내가 나의 올바름에 대해 생각하고 또 그래서 막막할 때면 내 안에 예수에게 따뜻하게 좀 위로해 달라고, 나보다 훨씬 더 외로웠을당신 얘기를 들려달라고 말을 건다. 예수는 과연 세상을 바꾸었는가? 에 나는 회의적이다. 왜냐하면 아직 예수를 이해하고 그의 삶을 실천하려는 사람이 없는 것 같고, 그 시절 예수가 애간장을 끓이며 괴로워하던 가난한 자들은 그의 말대로 그가 우리와 항상 함께 있지 아닐지라도 여전히 존재한다고 생각하므로. 하지만 그의 삶을 접함으로써 나 자신 뿐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행복과 안위에 관심을 가지게 되는 나와 같은 사람들이 이 자리에 분명 있다는 점에서 세상은 조금씩 더 행복해 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너무 유명하지만 모두들 너무 모르는 예수. 김규항 님이 수업 중에 여러분, 우리는 예수나 체 게바라 같은 사람이 아닙니다. 라고 했던 말이 왜 그리도 마음 저리게 안타까운 가운데에서도 내 마음을 편하게 해주었는지. 하지만 그 마음 편함은 그래, 우린 원래 그런 사람이아니야, 그러니까 이대로 그냥 살아도 돼 하는 도피처는 아니었다. 오히려 비록 그리 살 수 없을지라도 나는 최선을 다해 예수의 서른 해의 짧은 삶을 이해하는 사람이 될 것이고 올바른 외로움을 지닌 사람이 되고자 노력할 것이다. 나는 무서운 현실도 똑바로 볼 수 있는 성숙한 어른이 되고 싶다. 절대로 꼭 기억할 것이다. 예수의 치열했던 삶 그리고 죽음에 대하여.
이윤경의 예수 전
Jesus is here (지금 여기에)
예수라는 이름은 5-6세 정도에 처음 들었던 것 같다.
온가족이 성당에 나갔었는데 6살에 할머니께서 성당 유치부 교리부에 데려다 주셨다.
신부님 강론을 매주 듣고 청소년기를 지나 대학입학 하기 전 까지 들었기에 예수님은
착하신분이구나 라는 걸 막연하게 생각하며 자랐다. 대학입학 후
그냥 천주교의 스타일과 매번 고백성사를 보는 게 싫었다. 특히 정기적으로 판공성사 라는것으로 억지로 죄를 고백하게 하는 것도 싫었다. 내가 왜 나의 은밀한 죄를 신부한테 얘기해야하는지 도무지 맘에 들지 않았다. 암튼 그렇다고 교회에 다니기는 싫었으나 마침 고3때부터 알았던 독실한 기독교신자인 친구와 자주 만나게 되었다. 공부하는 것도 힘들고 그냥 인생이 힘들다고 느껴졌기에 누군가가 옆에 필요했는데 그 친구가 내 곁에 언제나 있어줬다. 지금 생각해보면 주님의 섭리인 것 같다. 내가 카톨릭에 몸담고 있어서 그런것도 있었지만 또 개신교의 사회적인 온갖 안 좋은 행태들만 보아 와서 그런지 개신교 목사도 인간들도 싫었으나 그 독실한 개신교 신자인 친구가 좋아 교회에 드나들게 되었다. 그때 마침 인생의 목적과 끝이 뭔지 고민도 많았고 방황도 했던 시기였다. 또 예수님에 대해 알고 싶었던 시기였다. 그냥 힘들 때마다 그 친구를 찾아갔는데 그 친구는 늘 교회에 있었기에 내가 아쉬워서 그 친구를 보기위해 교회에 자주 찾아간 것이다. 친구는 내가 여태껏 보아온 개신교 신자들과는 다른 것 같았다. 그 친구 때문에 개신교의 부정적인 이미지가 일단 벗겨졌다. 암튼 난 이래저래 교회에 드나들고 그 친구가 소개시켜준 선교단체를 통해 어떤 훌륭한 간사님과 성경공부를 하게 되었고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다. 내 인생이 180도 바뀌게 된 더없이 소중한 순간이었다. 암튼 열심히 수련회다 집회다 다 따라다녔고 교회도 열심히 다녔다. 하나님과 순간순간 동행하는 게 참 신기했고 재밌었다. 그러나 그것도 몇 개월 가지않아 또 다른 고민에 휩싸였다. 내가 아는 예수님과(성경에서 읽은) 교회와는 많은 거리가 있는것 같았고 그걸 가르치는 사람도 없었다.
제대로 성경을 가르치고 설교하는 리더가(목사, 성경교사 등등) 정말 극소수에 불과한것같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그동안 해왔으니까 라는 생각으로 잘못된 전통과 습관들은 따라 믿는 사람들 틈에 끼여서 솔직히 나까지 이상해져 갔다. 아무도 제대로 성경을,예수를 가르쳐주는 사람이 적다는것에 대해 지금도 많이 유감이다.
어쨌든 하나님의 은혜로 좋은 성경교사(목사님)를 4년전 만나게 되었다. 그동안 열정은 있었으나 바른 신학이 내게 없었음을 깨달았다. 목사님께서 좋은 안내자가 되어주어 나는 남에게 들은 예수,많은 목사의 설교와 책에서 말하고 있는 예수가 아닌 사복음서에서 활동하신 예수님에 대해 알게 되었다. 정말 충격적이었다. 그러나 복음서를 접하면 접할수록 내가 많이 자유로와졌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 8:32)는 말씀이 어떤 의미인지 정말 알 것 같았다.
지금도 나는 복음서를 읽으며 예수님께서 정말 대단하신 분이라는 걸 새삼 느끼곤 한다.
그러나 그렇게 살기란 왜 그리 어려운지...
원수가 주리거든 마시우라는 말씀도 그렇고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씀도 그렇고 ...놀랍지만 참 실천하기 어려운 말씀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참 나에게 매력적인 분이다.
비록 내가 지키기 어려운 말씀만 하시지만 예수님은 아무런 목적도 없는 내 인생의 의미를 가르쳐주셨고 내 인생의 한 걸음 한 걸음 마다 도와주시고 관여하신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닌 정말로 예수님께서 나의 가는 길마다 함께 하셔주시기에 나는 예수님이 참 좋다. 그리고 어렵지만 예수님의 삶을 한번 따라해 보고 싶다.
예수님은 나의 삶의 목적과 의미와 이유이고 이 예수님만이 진리이고 모든 사람들이 가야할 길이라는 걸 나는 확신한다. 나는 날이 갈수록 예수님을 더 알고 싶고 만나고 싶고 예수님의 삶을 이땅에서 살아보고싶다. 예수님을 점점 만나게 될수록 예수 아닌 다른것은 정말 재미가 없다. 교회활동도 봉사도..등등 교회와 관련되어있다고 예수님과 상관있는것은 아닌것 같다. 예수님을 바로 알고 만나고 내가 실천할 때에 나는 행복감을 느낀다. 예수님은 나를 늘 격려해 주시는것 같다. 나는 성당에서 주일학교를 다녀서 흔히 부르는 이 노래를 잘 모른다. 갑자기 생각나는 노래인데...
“돈으로도 못가요, 하나님 나라 ”
이 노래는 지은 사람의 정신으로 보아 하나님이 원하시는 아버지의 나라와는 많이 무관한 노래인 것 같다. 바로 지금 여기에서의 삶이 아닌 지금 여기의 나의 삶과는 무관한 죽어서나 가는 저 머나먼 하나님 나라(천국)를 말하고 있는 것 같다.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기도가 생각난다.
~~생략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마6:9-13)
~~이하 생략
하나님 아버지, 예수님의 삶을 이 땅에서 이루는 내가 되고 싶다.
나같이 잘나지 못한 사람도 하나님 나라의 주인공으로 또 누구나 그렇게 될 수 있다는
하나님 , 예수님의 말씀은 놀라울 일이고, 나는 영원히 예수님만 따르고 싶다.^^
2006/06/01 17:49
마리아라는 여자와의 스캔들을 다룬 책이 전지구적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했지만, 예수는 여자들과 가까웠다. ‘여자를 밝혔다’는 말이 아니라 여자들과 대등하게 인격적으로 소통했다는 말이다. 예수의 최후를 끝까지 함께 한 이들도 여자 제자들이었다. 남자만을 사람으로 여기던 당시로선 예수의 행태는 매우 희한하게(‘저 양반이 대체 왜 저러지?’) 여겨졌다.
2천년 전 현실은 오랫동안 유지되어 왔다. 인간의 역사에서 여자가 남자와 대등한 인간이 된 건 최근의 일이다. 물론 공식적으로 그렇고 사람들의 내면이나 습속에서는 여전히 많이 안 그렇다. 한국 사회를 보더라도 중년 이상 세대에선 여자는 남자(남편 혹은 자식)를 위해 존재하는 보조적 인간이라는 생각이 여전히 대세를 이룬다.
물론 그런 생각은 매우 빠른 속도로 힘을 잃고 있다. 많은 여자들이 전통적으로 남자들의 일이라 여겨지던 영역까지 파고들어 여자가 남자보다 생리적으로 열등하지 않음을 맹렬하게 증명해내는 중이다. 여자는 남자와 대등한 인간이라는 걸 부인할 수 없는 세상이 되어가고 있고 그에 맞추어 많은 여자 아이들이 그렇게 키워지고 있다.
그러나 그런 변화에도 아랑곳없이 여자의 삶을 옥죄는, 가부장제의 비장의 무기가 있다. 그건 바로 ‘엄마’다. 가부장제는 흔히 모성의 위대함과 그 무한한 희생을 찬미하면서 그것을 다시 여자의 의무로 들씌운다. 결국 여자들은 여자의 의무를 다 하면서 남자와 다름없이 일하는 슈퍼 인간이 되어야 한다. 물론 그건 불가능하며 여자들은 불가능한 의무 덕에 모조리 죄인이 되고 만다.
아내도 그 이야기를 하더라만, 얼마 전 텔레비전에서 방영한 '밥 안 하는 엄마, 외식으로 크는 아이들'이라는 프로그램이 많은 여자들의 반발을 산 모양이다. 일하는 엄마 덕에 늘 매식하는 아이들의 문제를 다룬 모양인데 안 그래도 제 새끼 사먹는 밥으로 때우게 하는 걸 아파하는 여자들의 속을 있는 대로 찢어놓았다고 한다.
그러나 그 프로그램이 설사 엄마들의 고충을 알아주었다고 해서 달라질 건 없다. 알아주고 보듬어주면 뭐 하는가 대안이 없는 걸. 문제의 본질은 한국 사회가 여자들이 마음 편하게 일할 수 없는 사회라는 데 있다. 경제 외형이 세계10위 어쩌고 하는 나라가 사회적 탁아 장치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되어있지 않다.(흔히 북한을 우습게 여기지만 그곳은 적어도 여자가 마음 놓고 아이를 맡기고 일하는 사회다.) 결국 여자들은 죄없는 친정어머니의 여생을 징발하거나 일해서 버는 돈의 대부분을 아이 맡기는 비용으로 지불해야 한다.
‘밥 안하는 엄마’ 문제는 엄마라는 이름의 죄인과 관련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연들 가운데 작은 예일 뿐이다. 얼마 전 나는 한 소아정신과 의사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몇 가지 고개를 주억거릴 만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가 말하길 최근 정신의학계는 소아자폐증의 원인이 환경이 아니라 뇌의 병이라고 본다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들으며 나는 가슴이 서늘해졌다. 내가 아는 한 엄마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다른 병과는 달리 자폐증은 흔히 사람과의 따뜻한 소통이 부족해서 생기는 것으로 여겨지고 그런 인식은 자연스럽게 그 엄마를 죄인으로 만든다. 부모가 함께 지목되어야 하지만 실제로는 자연스럽게 엄마가 지목된다. 내가 아는 그 엄마도 씻지 못할 죄인이 되어 살아있되 살아있는 게 아닌 삶을 살고 있다.
그런데 그 엄마가 ‘최근 정신의학계의 성과’를 근거로 자기를 변론한다면 사람들이 생각을 바꿀까? 천만에. 이번엔 그 변론을 엄마답지 못하다고 욕할 것이다. 엄마의 사랑은 끝이 없다고? 엄마의 죄야말로 끝이 없어 보인다. (시사저널)
2천년 전 현실은 오랫동안 유지되어 왔다. 인간의 역사에서 여자가 남자와 대등한 인간이 된 건 최근의 일이다. 물론 공식적으로 그렇고 사람들의 내면이나 습속에서는 여전히 많이 안 그렇다. 한국 사회를 보더라도 중년 이상 세대에선 여자는 남자(남편 혹은 자식)를 위해 존재하는 보조적 인간이라는 생각이 여전히 대세를 이룬다.
물론 그런 생각은 매우 빠른 속도로 힘을 잃고 있다. 많은 여자들이 전통적으로 남자들의 일이라 여겨지던 영역까지 파고들어 여자가 남자보다 생리적으로 열등하지 않음을 맹렬하게 증명해내는 중이다. 여자는 남자와 대등한 인간이라는 걸 부인할 수 없는 세상이 되어가고 있고 그에 맞추어 많은 여자 아이들이 그렇게 키워지고 있다.
그러나 그런 변화에도 아랑곳없이 여자의 삶을 옥죄는, 가부장제의 비장의 무기가 있다. 그건 바로 ‘엄마’다. 가부장제는 흔히 모성의 위대함과 그 무한한 희생을 찬미하면서 그것을 다시 여자의 의무로 들씌운다. 결국 여자들은 여자의 의무를 다 하면서 남자와 다름없이 일하는 슈퍼 인간이 되어야 한다. 물론 그건 불가능하며 여자들은 불가능한 의무 덕에 모조리 죄인이 되고 만다.
아내도 그 이야기를 하더라만, 얼마 전 텔레비전에서 방영한 '밥 안 하는 엄마, 외식으로 크는 아이들'이라는 프로그램이 많은 여자들의 반발을 산 모양이다. 일하는 엄마 덕에 늘 매식하는 아이들의 문제를 다룬 모양인데 안 그래도 제 새끼 사먹는 밥으로 때우게 하는 걸 아파하는 여자들의 속을 있는 대로 찢어놓았다고 한다.
그러나 그 프로그램이 설사 엄마들의 고충을 알아주었다고 해서 달라질 건 없다. 알아주고 보듬어주면 뭐 하는가 대안이 없는 걸. 문제의 본질은 한국 사회가 여자들이 마음 편하게 일할 수 없는 사회라는 데 있다. 경제 외형이 세계10위 어쩌고 하는 나라가 사회적 탁아 장치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되어있지 않다.(흔히 북한을 우습게 여기지만 그곳은 적어도 여자가 마음 놓고 아이를 맡기고 일하는 사회다.) 결국 여자들은 죄없는 친정어머니의 여생을 징발하거나 일해서 버는 돈의 대부분을 아이 맡기는 비용으로 지불해야 한다.
‘밥 안하는 엄마’ 문제는 엄마라는 이름의 죄인과 관련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연들 가운데 작은 예일 뿐이다. 얼마 전 나는 한 소아정신과 의사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몇 가지 고개를 주억거릴 만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가 말하길 최근 정신의학계는 소아자폐증의 원인이 환경이 아니라 뇌의 병이라고 본다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들으며 나는 가슴이 서늘해졌다. 내가 아는 한 엄마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다른 병과는 달리 자폐증은 흔히 사람과의 따뜻한 소통이 부족해서 생기는 것으로 여겨지고 그런 인식은 자연스럽게 그 엄마를 죄인으로 만든다. 부모가 함께 지목되어야 하지만 실제로는 자연스럽게 엄마가 지목된다. 내가 아는 그 엄마도 씻지 못할 죄인이 되어 살아있되 살아있는 게 아닌 삶을 살고 있다.
그런데 그 엄마가 ‘최근 정신의학계의 성과’를 근거로 자기를 변론한다면 사람들이 생각을 바꿀까? 천만에. 이번엔 그 변론을 엄마답지 못하다고 욕할 것이다. 엄마의 사랑은 끝이 없다고? 엄마의 죄야말로 끝이 없어 보인다. (시사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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