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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6/05/28 나를 위해
  2. 2006/05/26 엄마질 아빠질
  3. 2006/05/25 오랜 만에
  4. 2006/05/24 종교적?
  5. 2006/05/23 분양
  6. 2006/05/22 영철이
  7. 2006/05/21 상담 아닌 상담 (2)
  8. 2006/05/20 능력과 노력?
  9. 2006/05/16 속은 새빨간
  10. 2006/05/11 반성문 3
  11. 2006/05/08 트랙백 해결
  12. 2006/05/06 반성문 2
  13. 2006/05/05 여전히, 트랙백
  14. 2006/05/04 우리가 이길 거야
  15. 2006/05/03 너 그러다 공장간다
  16. 2006/05/02 돈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
2006/05/28 23:07
나를 위해 기도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2006/05/28 23:07 2006/05/28 23:07
2006/05/26 08:46
대개 아빠들은 엄마들보다 도량이 넓은 인간이라 알려져 있다. 엄마들이 아이에게 연신 잔소리를 해대며 이런저런 자질구레한 참견을 할 때 아빠들은 그저 점잖은 얼굴로 “그만해 둬. 애가 그럴 수도 있는 거지.” 하는 것이다. 그런 모습은 자연스레 남자가 여자보다 도량이 넓은 인간이라는 흉악한 편견과 연결되곤 한다.

그게 전혀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드러낼 수 있는 간단한 방법이 있다. 더도 말고 일주일만 엄마질과 아빠질을 바꿔보는 것이다. 아빠는 종일 아이와 지지고 볶으며 아이의 변화무쌍한 일상과 구체적으로 결합하고 엄마는 아침에 나가선 “나 오늘 늦어.” 하며 늘 술에 취해 밤늦게 들어오는 생활을 일주일만 해보는 것이다.
단언컨대, 그 모든 아빠들이 제 인격의 하한선을 뼈아프게 확인할 것이며, 꽤 많은 아빠들이 신경쇠약 증상을 나타낼 것이며, 어쩌면 그 가운데 두셋은 제 아이의 목을 조르고 싶은 충동에 시달릴 것이다. 아빠들이 엄마들보다 아이에 대해 도량이 넓어 보이는 이유는 ‘도량이 넓은 인간인 남자’라서가 아니라 단지 아이와 접촉 시간이 적기 때문에, 아이의 삶에 덜 구체적이기 때문이다. 아빠의 ‘도량’이란 실은 ‘안이하고 무책임한 태도’에 불과하다.
이른바 아이들 ‘교육 문제’에서도 마찬가지다. 엄마들이 아이가 뒤쳐질 새라 조바심을 내며 어떻게든 아이 성적과 경쟁력을 유지하려고 안달을 할 때 아빠들은 “어차피 될 놈은 되고 안 될 놈은 안 되는 거지.” 하며 대범한 모습을 보인다.
그 역시 아빠들이 단 일주일만 엄마질을 해보면 영판 태도가 달라진다. 알다시피 남자들이란 아이일 때나 어른이 되어서나 참으로 졸렬한 가치(이를테면 아이일 적엔 장난감, 어른이 되어서는 페니스 사이즈 따위)로 나와 남을 견주어 허세를 부리거나 열등감에 시달리는 인간들이다. 그런 인간들이 제 새끼가 처한 이 살벌한 경쟁체제를 비로소 실감할 때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빤하다.
어쨌거나 그러저러한 상투적인 과정을 거쳐 엄마들은 아빠들의 도량이나 대범함에, 늘 악에 받친 한마디로 대꾸하게 된다. “당신이 잘 몰라서 그래!” 결국 아이들 ‘교육 문제’는 거의 전적으로 엄마들의 판단과 선택으로 가게 된다. 현실을 부대끼고 실감하는 사람이 현실에 안이하고 무책임한 그러면서 잘난 체나 하는 사람의 의견을 거스르는 건 당연한 귀결이다.
남는 문제는, 현실에 부대끼고 실감한다고 해서 반드시 현실을 제대로 보고 있거나 정당하게 대처하고 있는 건 아니라는 점이다. 아빠들이 교육문제라는 현실에 안이하고 무책임한 태도를 보인다면, 엄마들은 그에 대한 반동으로 현실에 맥없이 휘둘리는 모습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엄마들은 아이 교육의 유일한 담당자로서, 현실에 휘둘리기 십상인 처지에 놓인 사람으로서, 제 나름의 교육론이 꼭 필요하다. 교육론이라 해서 어려운 개념어로 범벅이 된 어떤 학술적인 이론을 말하는 게 아니다. 진정한 교육론은 말이나 글로 표현되든 안 되든 상관없이, ‘아이를 어떤 인간으로 키울 것인가’에 관한 일관되고 굳센 태도다.
나는 내가 아는 존중할 만한 사람들에게 그 어머니의 교육론을 묻곤 한다. 대답은 조금씩 다르지만, 흥미롭게도 두 가지는 어김없이 포함되어 있더라. “비굴하게 살아선 안된다.” “나보다 못한 사람을 생각해야 사람이다.”
2006/05/26 08:46 2006/05/26 08:46
2006/05/25 07:44
060523.jpg

오랜 만에 한대수 선생을 만났다. 밴드 복숭아와 '신보 준비' 중이고, 모노폴리에 마피아 보스로 '단역 출연'했으며, 옥사나는 유치원에서 '선생 노릇'한단다. 평화가 느껴졌다.
2006/05/25 07:44 2006/05/25 07:44
2006/05/24 09:35
예수의 활동은 얼핏 종교적인 것으로 보인다. 예수의 활동을 가득 채우는 하느님 나라, 전도, 기도라는 개념들만 보더라도 그렇다. 그렇다면 예수는 기독교인인가? 당연히 예수는 기독교인이 아니다. 예수는 당시 모든 유대인들처럼 유대교인이었다. 그런데 중요한 건 당시 유대인들에게 유대교란 일개 종교가 아니라 유일하고 전적인 정신 체계였다는 점이다. 그들에게 유대교는 윤리이자 법이자 가치관이었다. 유대인들에게 '유대교'라는 건 없었다. '유대교'는 유대사회 밖에서 유대인들의 정신체계를 가리키는 말일 뿐이다. 결국 예수의 활동은 종교적인 외양을 가지지만 실은 종교적인 차원을 넘어서는, 가장 총제적인 의미에서 사회적인 것이다. 예수가 말한 하느님의 나라는 '새로운 세상'을, 전도는 '운동'을, 기도는 '신념을 다지고 성찰하는 시간'이기도 하다는 걸 되새겨지 않는다면 우리는 예수를 다시 한번 박제로 만들게 된다.
2006/05/24 09:35 2006/05/24 09:35
2006/05/23 16:37
(목수 공부 중인, 김혜형 형과의 문자 대화)

잘 지내시나요? 지수가 키운 장수풍뎅이가 알을 깠어요. 단이 건이 애벌레 키우면 분양해드릴게요.^ ^
ㅎㅎ. 좋습니다. 김건이 늘 노래를 부르죠. "장수풍뎅이 사줘요~"
우와 잘 됐네요. 목요일에 배달 갑니다. 공방가는 날이거든요. 동호수만 알려주세요. 잊었슴다.^ ^
000동 000호입니다. 아이들만 있는데.. 아이들에게 '지수 아줌마'에게 전화드리라고 하겠습니다. 몇 시에 공방 오시나요?
아이들에게 아줌마가 3시경 가겠다고 전해주세요. 2마리 줄게 나중에 암수 안 맞으면 바꿔준다고요.
넵. ^ ^
2006/05/23 16:37 2006/05/23 16:37
2006/05/22 12:49
군대에서 만난 영철이는 네온사인 기술자(빌딩 외벽에 매달려서 일하는)였다. 그는 내가 “개냐 사람이냐”라 놀릴 만큼 성적으로 분방하면서도 이미 결혼한 첫사랑을 못 잊어 휴가 내내 그 집 앞을 서성이다 귀대해선 내 손을 잡고 꺼이꺼이 울던 순정파였다. 나이는 어리지만 아주 영민해서 나는 늘 그의 ‘인생론’을 빙그레 웃으며 경청하곤 했다. 나는 여전히 그가 늘상 하던 한마디 말을 힘든 상황에 빠진 누군가를 격려할 때 쓰곤 한다.

“똥개야 짖어라, 기차는 간다.”
2006/05/22 12:49 2006/05/22 12:49
2006/05/21 16:23
한 청년의 편지. "상담 아닌 상담"은 편지 제목.

제가 이렇게 메일을 쓰는 것은 학교에서의 말도 않되는 일 때문입니다. 저는 지금 체육대학교에 다니고 있습니다. 입학하기 전에는 몰랐지만 입학을 하고 학교에 1년을 넘게 지내보니까, 우리나라 체육대학교들의 상황이 참 암울합니다. 체육대학교의 인권상황은 마치 70,80년대 우리나라 사회와 군대의 사회와 비슷합니다. 학번이 곧 계급입니다. 나이도 없습니다. 인사는 90도로 해야하고, 각자의 자유도 없습니다. 모임이나 학과에서 무슨 일만하면 자율적으로 모이는게 아니라 강제적으로 모입니다. 그 강제적이라는 것이 더욱 어이가 없습니다. 얼마 전에도 저희 학번 학우들이 다 모이지 않았다고 저희는 옥상으로 끌려갔죠. 그리고 그곳에서 흔히 말하는 머리박기와 여러가지 얼차례, 욕설 등을 들었고 심지어는 각목으로 엉덩이도 맞았습니다. 자유의 상징인 대학이란 곳이 이렇다는 것은 정말 이해하기 힘듭니다. 그렇다고 제가 그런 곳에 가지 않으면 제 동기들은 더욱 힘든 생활을 하기 때문에 않나 갈 수도 없고 정말 미치겠습니다... 요새 학교가기가 싫어질 정도입니다.
또 다른 문제는 이제 제 동기들 중 몇명이 이제 우리 아래학번들을 "굴리자"라고 말합니다. 제가 막아보려고 노력중이지만 아직 반대하는 사람들이 몇몇 없어서 힘들 거 같아 보입니다. 벌써 이렇게 얼차례주는 것들을 당연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전에 한겨레신문에서 다른 학교 체육학과의 이런 비슷한 내용을 크게 게재했었는데요. 그 이후로는 다시 그런 소리들이 사라졌습니다. 이러한 문제가 조금 어려울 수도 있는데요. 이러한 체육대학 문화에서 제가 어떻게 해야하는 건지..
2006/05/21 16:23 2006/05/21 16:23
2006/05/20 01:06
봉건사회는 인생이 신분에 의해, 말하자면 아비가 누구인가에 의해 정해지는 사회였다. 제 아무리 무능하고 되어먹지 못한 놈도 아버지가 귀한 몸이면 귀한 몸이 되는 사회였다. 부르주아들은 그런 사회에 맞서 ‘능력과 노력으로 인생을 결정하는 사회’를 만들었다. 자본주의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능력과 노력에 의한 차이’를 말한다. 물론 모든 사람이 기계적으로 평등한 사회는 가능하지 않고 바르지도 않다. 능력과 노력에 의한 차이는 존재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차이가 수천수만 배가 넘는다면 그것은 더 이상 능력과 노력의 차이라 할 수 없다. 설사 그것이 합법적이라 해도 비인간적이며 비윤리적이다. 그런 사회는 부서져야 한다. 제아무리 능력 없는 사람도 정직하게 일한다면 최소한의 인간적 품위는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사람의 능력은 달라도 자신을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은 다르지 않다는 걸 잊어선 안 된다.
2006/05/20 01:06 2006/05/20 01:06
2006/05/16 00:25
(고려대 강연 후, 한 청년의 편지)

어찌됐건 간에 저는 그토록 혐오하던 고시생의 길에 곧 합류하게 됩니다. 지금으로선 변호사 자격을 획득하게 되면 사이버 공간을규율하는 법에 대한 전문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합니다. 재산권을 무형의 것에도 강고하게 관철시키려는 자본의 논리에 맞서최소한 정보의 공정 이용을 보장할 수 있는 제도를 입안할 수 있는 위치에 서고 싶습니다. 법률가라고 법의 해석만 하는 건 너무따분한 일이니까요. 제가 그러한 지위에 도달할 때까지 과연 지금의 생각을 견지할 수 있을까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신뢰할 만한누군가에게 희망의 말을 듣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사실 그동안 저는 스스로를 개량주의자로 여겨왔습니다. 지금의 제가 할 수 있는 실천이란 고작 제가 가진 유일한 기득권인 학벌을이용하지 않기 위해 과외를 하지 않는다는 소극적인 것 밖에 없었으니까요. 부모님께 손을 벌리는 것이 과외를 통해 경제적으로독립하는 것보다 차라리 더 건전하다고 여겼습니다. 오늘 강연을 듣고 보니 근본주의자로 살되 전술적인 선택은 얼마든지 가능하다고생각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겉으로 보기엔 어떨지 몰라도 속은 새빨간 사람이 될 수도 있다고 믿기로 했습니다. 오랜세월이 지나도 스스로 존엄을 잃지 않을만큼의 부만 취하고, 다른 이가 보았을 때 쉽게 조롱할 수 없는 삶의 궤적을 남길 수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2006/05/16 00:25 2006/05/16 00:25
2006/05/11 23:46
다들 학교나 교사에 대해 말하지만, 그렇다고 학부모들이 일방적인 피해자인 건 아니다. 아이를 인간이 아니라 상품으로 키우는 일에 미쳐있는 신자유주의 시절의 학부모들은 대체로 교사 욕을 할 처지가 못 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교사 앞에서 온갖 알랑방귀를 뀌어대다가 뭔가 수틀리면 교사는 아예 상대 안하고 곧바로 교장이나 교육청으로 달려가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모이면 저마다 열혈지사가 되어 교사와 학교를 성토하지만 남의 아이까지 포함한 문제에 연대하는 일엔 하나같이 꼬리를 빼는 사람들이다.
그런 아수라장 속에서 학과 성적이 아닌 일로 교사와 양식있게 소통한다는 건 도리없이 딱한 일이 되곤 한다. 다행히, 교사는 바로 답장을 보내왔다. 그는 대체로 내 의견에 동의하면서 일부 사실관계에 대해 조심스럽게 이견을 표시했다. 그는 듣던 대로 진지하고 반듯한 사람이었다. 나는 교사가 이견을 표시한 부분을 가지고 다시 김단과 차근차근 대화를 했다. 그리고 다시 답장을 썼다. 각자 세 번씩 쓴, 서로에 대한 감사로 마무리한 편지들은 내 노트북에 보관되어 있다. 김단이 어른이 되면 건네줄 생각이다. 내 답장과 교사의 마지막 편지.

"그러나 저는 그런 사실 관계를 가지고 다시 선생님의 의견을 반박할 생각은 없습니다. 두가지 이유에서 온당하지 못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첫째는, 그런 극도로 정밀한 조사나 규명은 단이 아비인 저에겐 가능하지만 선생님에겐 불가능한 일이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단이라는 한 아이를 상대하지만 이 선생님은 마흔 명이 넘는 아이들을 공정하게 상대할 책임이 있습니다. 만일 제가 단이의 일에 대해 그런 정밀한 조사나 규명을 요구한다면 그것은 단이에게 특권을 달라고 요구하는 일일 것입니다.
둘째는. 객관적으로 증명해내기 어려운 진실은 결국 진실로 인정받기 어렵다는 걸 단이가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아비인 저는 그런 진실도 당연히 수용해야겠지만, 선생님은 그런 진실은 수용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좀 더 교육적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야 단이가 제 진실을 지키는 능력을 배울 테니 말입니다.
단이에게 어제 그렇게 말했습니다. "아빠는 단이가 부정 행위를 하지 않았다는 걸 확인해서 기쁘다. 그러나 결국 너는 부정행위를 한 셈이라고 아빠는 생각한다. 왜냐하면 단이의 진실을 아빠는 알아주지만, 누구에게도 증명하기 어려운 것이기 때문이다. 선생님은 바로 그런 점에서 네가 부정행위를 했다고 판단하는 것이고, 아빠가 선생님이었더라도 그렇게 했을 거다."
단이는 제 말을 알아듣는 것 같았습니다. 하여튼 이번 일이 단이에게도 크게 약인 될 거라 생각합니다. 단이가 학교 일을 잘 얘긴 안 하지만 선생님의 곧은 교육관은 늘 느끼고 있습니다. 외람된 말씀이나 저는 초중고등학교 내내 단 한번도 좋은 선생님을 만난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부럽기도 하고 안심도 되고 그렇습니다. 감사드립니다."

"메일을 뒤늦게 확인하고 부랴부랴 답장 메일 보냅니다. 바쁘신 와중에도 이렇듯 저에게 좋은 말씀을 주심에 감사드리며 단이에 대한 사랑과 관심에 존경의 마음을 가집니다. 특히, 단이 아버님의 글에서 풍겨나는 성품은 뵙진 않았지만 곧음이 그대로 느껴지는 것 같더군요. 저 또한 부족하나마 바르려고 항상 노력하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 노력하며 살려고 합니다. 감사드립니다."
2006/05/11 23:46 2006/05/11 23:46
2006/05/08 12:44
앞서 말한 플러그인이 마지막 문제였던 듯.
애써주신 알록블록 운영자 이경준 님께 감사드린다.
2006/05/08 12:44 2006/05/08 12:44
2006/05/06 20:28
김단이 잠든 후, 나는 교사에게 편지를 썼다. 교사에게 자신이 이미 판단하고 행동한 일이 오류였음을 알린다는 건 물론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자칫하면, 내가 김단에게 꼬치꼬치 캐묻지 않았다면 김단의 진실은 영영 묻힐 뻔했다. 김단에게 그것은 큰 상처가 되었을 것이고 그 아이는 공정함이라는 가치에 대해 조금은 뒤틀린 의식을 갖게 되었을 것이다. 그것을 피한 것만으로도 이미 많은 것을 얻은 셈이었다. 교사에게 보낸 편지.(지면에 맞추어 줄였다.)

(...) 그러나 아직 사리분별이 모자란 열 살짜리 아이인 만큼 뜻밖의 잘못을 할 수도 있고, 보다 중요한 건 아이가 한 일을 사실 그대로 파악해서 아이가 반성할 건 분명히 반성하게 하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저녁에 단이를 불러놓고 오늘 일을 처음부터 차근차근 짚어 보았습니다. 저는 선생님이 지도한 반성문에서는 제대로 드러나지 않거나 얼마간 다른 부분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1. 단이가 동무에게 말을 건 일: 시험 시간에 대화를 못하게 하는 이유는 부정행위를 막기 위해서일 겁니다. 단이의 행동은 그런 것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답 한 개의 글씨가 좀 이상하게 적혔다고 생각한 단이는 다시 쓰려고 지우다가 시험지를 찢었습니다. 당황한 단이는 테이프로 시험지를 붙여야겠다 생각했고 동무에게 테이프가 있냐고 물은 것입니다.
2. 선생님께서 답을 안 썼으니 틀린 것이라고 하셨는데도 답을 적고 맞는 것으로 채점하여 내놓은 일: 선생님이 답을 안 적었으니 틀린 것이라고 하셨음에도 답을 적은 건, 선생님을 거역하려 한 게 아니라 자기가 아는 답을 그런 이유로 비워두는 건 옳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고 합니다. 선생님이 지도한 반성문에서 “맞은 것처럼 고쳤다”는 표현은 틀리게 적은 것을 맞게 고치는 부정한 행동의 경우에 할 수 있는 말일 것입니다. 단이의 행동을 요약하면 맞게 쓴 답의 글씨가 좀 이상해서 지우고 다시 쓰려 한 것에 불과합니다.
3. 다시 답을 적은 걸 “덤벙대다 그랬다”고 거짓말 한 일: 선생님께서 화를 낼 거라곤 미처 생각하지 못한 단이는 몹시 겁이 나고 당황했던 모양입니다. 울음이 터지고 선생님께서 거듭 야단을 치시며 머리를 쥐어박고 하자 그렇게 마음에도 없는 말을 둘러댔다고 합니다. 악의로 거짓말을 했다기보다는 겁이 나고 당황한 나머지 그 순간을 모면하고 싶었던 것이지요.
제가 지금 제 아이의 일에 대해 구구절절 되짚는 것 역시 이 불공정한 세상에서 살아가야할 아이에게 ‘공정함’을 가르치기 위해서입니다. 만일 교사와 부모에게서조차 공정함을 배울 수 없다면 과연 아이가 어떻게 사회적 공정함을 믿을 수 있겠습니까.
사람에게 명예를 지키는 일처럼 소중한 일은 없을 겁니다. 저는 아이의 명예라고 해서 어른의 것보다 덜 중요하다거나 작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이가 진실과 양심에 의거해서 제 행동을 되새기거나 반성하게 하는 일은 곧 아이가 진실과 양심에 의거해서 살아가는 인간으로 자라도록 돕는 일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기회를 어른의 부주의나 잘못된 권위의식 때문에 잃는다면 아이가 받는 상처나 손실은 참으로 클 것입니다. 아이를 좀 더 나은 인간으로 만들고자 하는 마음은 선생님과 제가 다르지 않다고 믿습니다. 반성문을 단이와 함께 고쳐보았습니다. 저는 내일 단이가 선생님의 도움으로 ‘공정함’을 배울 수 있기를 빕니다.
제 의견에 얼마든 선생님의 다른 의견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방식으로든 일러주시면 저 역시 성실하게 대화에 임하겠습니다. (시사저널)
2006/05/06 20:28 2006/05/06 20:28
2006/05/05 23:43
세상이 영 흉흉한데.. 이 블로그도 쌩쌩한 편은 아니다. 두어달 전부터 트랙백이 제대로 안 들어오고 있다. 짬짬이 원인을 찾고 수정하는 작업을 거듭하고는 있는데 생각보다 쉽지 않다. 일주일 전 쯤에 이젠 진짜 다 되었다 싶어서 트랙백이 안 된다던 여섯 사람에게 테스트 트랙백을 요청했지만 그 중 한 개만 들어왔다. 어제도 플러그인 한 개에 문제가 있다고 해서 수정했다. 트랙백이 잘 안 되는 분은 어떤 글에 걸었고 어떤 에러 메시지가 나왔는지를 이메일로 알려주시면 큰 도움이 되겠다.
2006/05/05 23:43 2006/05/05 23:43
2006/05/04 22:53
(보낸 문자메시지)

너무 슬퍼하진 말게
이게 우리의 현실인 걸
하지만
결국 우리가 이길 거야
천천히..
2006/05/04 22:53 2006/05/04 22:53
2006/05/03 00:13
무엇보다
저는 책은 종종 읽지만 공부는 썩 잘하지 못해
"너 그러다 공장간다"라는 위협을 주변에서 많이 들었고,
부끄럽게도 그런 말에 떨며 살았습니다.
학벌에 끼어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김규항님 글들을 보니 절대 떨 일이 아니네요.
정말 큰 짐을 덜어놓은 느낌입니다.

(한 고등학생이 보낸 편지에서)
2006/05/03 00:13 2006/05/03 00:13
2006/05/02 18:18
윤구병 선생. 몇 해 전 나를 불러 “작은책을 도우라”시기에 “여부가 있겠습니까” 해놓고선 몇 번 못하고 고래에 치어 슬그머니 빠져나왔었다. 교수 출신으로 주류체제를 거부하고 농사지으며 산다는 점을 놓고 선생을 스코트 니어링과 비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몇 가지 분명히 다른 점이 있다. 성분(거지 출신), 외모(민중적 마스크), 고독(헬렌이 없다).. 그러나 그 모든 다름을 뛰어넘는 다름은 다름 아닌 '귀여우심'..ㅎㅎ. 오랜 만에 선생의 글을 읽었는데 여전하시다.



“돈 없어도 살 수 있다.”
“아니, 돈이 없어야 더 잘 산다.”
“돈 없는 세상 만들어 보자.”

내가 가끔 우리 공동체 식구들한테 하는 말이다. 우리 공동체 식구들은 대체로 젊고 순수한 데다가 도시에서 돈 문제로 꼭지가 돈 적이 있는 사람들이어서 내 말을 그럴싸하게 듣는다. 그러나 정작 도시에서 떠날 엄두를 못 내고 있는 내 마누라, 내 자식들한테 같은 이야기를 할 때 씨알이 먹힐까? 어림도 없는 수작이지.

먹을 것, 입을 것, 집세, 전기세, 물세…… 돈으로 틀어막아야 할 구석이 한두 군데가 아닌데, 그러지 않으면 하루도 온전하게 살아남기 힘든데,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를 하는 거야. 이렇게 제 새끼, 제 여편네한테도 인정받지 못할 무책임한(?) 소리를 함부로 지껄이고 다닌다고 욕먹어도 싸다.

그러나 나는 이 말을 거두어들이고 싶은 생각이 없다. ‘오래된 미래’에 살았던 라다크 사람들 호주머니에 땡전 한 푼 없었어도 사람답게 사는 데 아무 문제가 없었고, 지금부터 100년 전 우리 나라 마을 공동체에 살던 사람들 거개가 고의춤에 엽전 한 냥 없었어도 사람의 모습을 잃지 않았기 때문이다.
누구 말마따나 돈은 교환가치가 지배가치가 된 상품경제 사회, 자본주의 사회가 나타나기 훨씬 전에도 있었다. 그리고 돈이 사람에게 독만 되는 게 아니라 이로운 일을 하는 때도 있다는 걸 나도 인정한다. 물물교환이 생각보다 훨씬 더 번거로운 일이라는 것도 안다. 그런데도 나는 돈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

누군가 또 이렇게 묻겠지. 그러면 원시공산제 사회로 돌아가자는 말이냐? 좋게 말해서 노자가 이상으로 여긴 ‘창과 칼을 녹여 호미와 곡괭이를 만들고, 날랜 장수, 머리 비상한 학자 아무짝에도 쓸모없어지고, 개 짖는 소리, 닭이 홰치는 소리 들리는 이웃 마을에도 오갈 일이 없는 그런 조그마한 마을 공동체’를 만들겠다는 거냐? 그건 역사의 수레바퀴를 거꾸로 돌리자는 수작이 아니냐?

아니지, 그건 아니야. 이런저런 이야기 다 늘어놓다 보면 책 한 권으로도 모자랄 지경인데, 아주 간단하게, 너무나 간단해서 정나미 떨어지게, 돈이 왜 없어야 하는지, 모두가 돈벌이에 눈이 먼 이 세상이 왜 망할 세상인지 꼽아보자.

첫째, 모든 생명체는 생명 에너지를 동력으로 살고 있다. 사람도 지난 200년 전까지는 그렇게 살아왔다. 지금은? 물질 에너지(석탄, 석유, 원자력 들)가 없으면 살 수 없는 세상이 되었고, 생명 에너지조차 물질 에너지로, 기계화한 동력으로 전환시키지 않으면 살 길이 없는 세상으로 바뀌었다. 이 반생명적인 세상은 얼마 안 되는 자본가 손아귀에 집중된 돈이 만들었다.(국가 화폐든 국제 화폐든 모든 돈은 소수의 손에 집중되어 계급사회를 키워내고 유지시키는 원동력 구실을 한다.) 물질 에너지에 의지해서 사는 현대인은 더 이상 생명체로 볼 수 없다. 생명의 관점에서 보면 반은 괴물이다. 석유 먹고, 석탄 먹고, 원자력 먹고 사는 이 이상한 짐승들을 어떻게 온전한 뜻에서 생명체로 부를 수 있겠는가?

둘째, 현대의 바벨탑인 거대도시들(중소 도시들도 마찬가지지만)은 돈이 없으면 한순간도 유지될 수 없다. 그러나 200년 전에 출현한 ‘현대인’이라는 괴물을 빼고 이 자연계에 돈 없으면 살지 못하는 생명체는 단 하나도 없다. 생명체 본디 모습을 되찾기 위해서도 돈이 없어져야 한다. 물질 에너지에 의존해서 사는 데에 길든 사람들, 특히 도시인들에게 이 말은 끔찍한 저주로 들릴 것임을 안다. 그러나 이 사람들이 모든 도시 문명은 멸망하기 마련이고, 그 까닭도 꼭 같다는 것을 알까?

셋째, 모든 생명체는 삶의 영역이 한정되어 있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사람이 두 뒷발로 몸의 균형을 유지해서 곧추서고 두 앞발을 마음먹은 대로 놀려 살 수 있게 생체가 구조화된 것은, 새처럼 하늘 높이 날거나 사슴처럼 날래게 뛰지 않고도 그 느린 발걸음으로 하루 여덟 시간 걷는 범위 안에서 살 길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수십만 년을 살아왔던 인간이 왜 갑자기 지난 200년 사이에 이리 뛰고 저리 달리고, 태평양을 날아서 건너고 인도양을 화물선에 실려 건너야 살 수 있는 존재로 바뀌고 말았는가? 그렇게 밤 새워 온 세계를 누비고 다녀도 언제 처자식들과 길거리에 나앉을지 몰라 전전긍긍하는 가련한 존재로 전락하고 말았는가? 돈을 쫓아다니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고, 돈이 생체 구조를 뛰어넘어 겨드랑이에 인공의 날개를 달고, 뒷발에 바퀴를 붙이게 부추긴 것이다.

사람이 생명체로서 제 모습을 잃어 버렸다는 것은 더는 사람답게 살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산다는 게 뭔가? 생명체로서 제 기능을 한다는 것이다. 제 힘으로, 생체 에너지만으로 살 길을 연다는 것이다. 사람이 제 모습을 되찾으려면 지금이라도 ‘편리한 물질 에너지’의 마력에서 벗어나야 한다.

불편하지. 힘들지. 끔찍하게 고통스러운 되돌림의 과정이 기다리고 있지. 그럴 거 아냐? 다시 실 잣고, 베 짜고, 미투리 삼고, 새끼 꼬고, 구들 놓고, 꼴 베고, 김 매고, 철철이 씨 뿌리고, 거두고…… 자연 속에서 자연과 더불어 생체 에너지를 교환하면서 새로운 삶의 길을 찾는다는 게 어디 보통 일이야? 안 그래?

얼마 전에 우리 공동체에 살러 들어온 사람이 하나 더 늘었는데 이 사람 직업이 교사야. 경력이 오래 되어서 한 달 급료가 3백만 원이 넘는대. 3백만 원이면 나 같은 얼치기 농사꾼이 한 해 농사지은 곡식 다 내다 팔아도 손에 쥘 수 없는 큰 돈이야. 그런데도 그 좋은 직장 마다하고 돈이 발붙이지 못하는 마을 공동체를 이루겠다는, 어찌 보면 허황한 꿈을 꾸는 노인네가 사는 곳으로 온 거야. 이 말을 처음 듣고 잠깐 공동체에 몸 붙이고 있던 어떤 애 엄마가 대뜸 얼굴빛이 바뀌면서 이렇게 외치더래. “아 유, 크레이지?” 이 말은 “아유, 그래야지요”가 그렇게 들린 게 아니라 영어인데 우리 말로 바꾸면 “당신 미쳤수?”라는 말이래. 나는 당연한 반응이라고 봐.

나한테 이렇게 손가락질할 사람도 있어. “지는 돈이 지배하는 세상에 빌붙어 잘 먹고 잘 살아 왔으면서, 그리고 지금도 그 돈에 기대 공동체를 일구어 가고 있으면서 ‘돈 없어도 살 수 있다’는 흰소리로 사람들을 현혹시키고 있어. 야바위 놀음으로 사람들 꼬이는 고등사기꾼 아냐?” 할 말이 없어. 아니 땐 굴뚝에서 나는 연기가 아니거든. 부끄럽지. 아예 학교 문턱 다시 밟지 못하게 하고 농사꾼으로 기르려고 했던 우리 노친네 소망 어기고 저 잘난 맛에 돈 없이는 사람 구실 못하는 세상 이리저리 떠돌다가 나이 쉰이 넘어서야 이게 아닌데 싶어 반거충이 농사꾼이 된 지 이제 갓 10년이 넘은 주제에 터진 입이라고 주저리주저리 함부로 이런저런 말 지껄이고 있는 내 모습이 내가 보기에도 한심한 구석이 있어.

그렇지만 이 말만은 덧붙이고 싶어. 이 세상에 사람 빼고 죄 짓고 사는 생명체가 없어. 어쩔 수 없는 경우가 아니라면 다른 생명체를 해치지 않는 게 생명계의 불문율이나 마찬가진데, 사람만이 이 불문율을 지키지 않으니, 그럴 뜻이 없을 뿐만 아니라 다른 생명체들을 못 살게 하는 짓을 진보와 발전으로 미화시키기까지 하니, 요즈음 사람으로 사는 죄 말할 수 없이 크지. 해가 갈수록 그나마 가장 죄를 덜 짓고 사는 길은 이 길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어. 옛날 우리 아버지, 그 아버지 어머니, 그 어머니들이 땅에 뿌리내리고 살았던 그 시절 그 삶의 길로 접어드는 거.

역시 짐작했던 대로라고? 역사의 수레바퀴를 중세로 되돌리는 거라고? 아니야. 잘못된 길에서 벗어나자는 거야. 바른 삶의 길을 걷자는 거지. 우리 민중들이 그동안 흘린 피가 밑거름이 되어 우리는 중세의 신분제 사회라는 야만의 굴레에서 벗어났잖아. 자본 세상, 국가 권력에서 벗어나서 새로운 세상을 열 수 있다는 꿈을 가진 이들이 먼 미래에 그리던 세상을 조금이라도 더 빨리 앞당기는 길이 돈 없는 세상을 만드는 길이라고 내가 먼저 말하지 않았어. 나보다 더 눈 밝은 이들이 싸움 속에서 자기를 던져 얻은 깨우침의 말을 젊은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마음뿐이야.
2006/05/02 18:18 2006/05/02 18: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