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01'에 해당되는 글 20건

  1. 2006/01/31 믿음
  2. 2006/01/27 고양이 2
  3. 2006/01/26 사과
  4. 2006/01/25 토론
  5. 2006/01/23 웃게 될 것이다
  6. 2006/01/22 빌리
  7. 2006/01/21 고래 세트
  8. 2006/01/20 모심
  9. 2006/01/19 제도 미디어
  10. 2006/01/18 팽이
  11. 2006/01/11 페르세폴리스
  12. 2006/01/10 성장
  13. 2006/01/09 착한 새가슴들에게
  14. 2006/01/07 고양이
  15. 2006/01/06 느낀 대로
  16. 2006/01/05 세상을 바꾸는 학교
  17. 2006/01/04 말았다
  18. 2006/01/03 토끼 질문
  19. 2006/01/02 불화
  20. 2006/01/01 새해
2006/01/31 17:28
설날 아침, 마침 일요일이라 어머니를 따라 교회에 갔다. 신도가 육십 명 남짓인 교회는 보수교단에 속하지만 속을 뒤집지 않으면서 예배를 마칠 수 있는 곳이다. 그건 그곳 목사 덕이다. 목사는 지난해 초 신장암 3기 진달을 받았다. 그는 몇몇 병원을 전전하며 이런저런 치료를 받아 왔지만 별 진전이 없다. 그는 "열한시 예배엔 제 딸애가 참석해서 이런 이야기하기가 불편하다"며 자기 이야기를 했다. "병원에선 좀 더 강한 항암치료를 해보자고 하지만 저는 더 이상의 병원치료는 의미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저도 사람이라 암 진단을 받고 처음엔 하루하루 죽음이 저를 조여들어오는 느낌을 견디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저는 지금 아주 평안합니다. 저에게 믿음이 없었다면 마음의 평안함을 지키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제가 할 일이 남아있다면 하느님이 낫게 해주실 테고 아니라 해도 저는 이미 하느님의 나라에 있습니다." 나는 그의 말이 공포와 불안을 없애기 위한 자기 위안이 아니라는 걸 그의 손에서 알 수 있었다. 예배를 마치고 악수를 나눌 때 상대를 위로하는 건 내가 아니라 그의 손이었다. 그의 말대로, 그의 믿음이 그를 평안하게 한다. 기독교에서 믿음은 회개 후의 삶, 그 상태를 말한다. 회개란 교회에 안 가가던 사람이 교회에 나가는 개 아니라, '지금까지의 삶의 방식을 뒤집는 것'이다. 돈이나 명예, 이런저런 세속적인 욕망에 찌들어 살던 사람이 전혀 다른 것을 좇게 되는 것, '하느님의 형상대로 만들어진' 인간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 이 회개다. 그리고 그 상태를 기쁜 마음으로 지속하는 게 믿음이다. 믿음을 가진 사람은 여느 사람들과는 전혀 다른 가치관을 가진 사람이기에 세속적인 고난에도 절망할 이유가 없고 심지어 죽음마저 이겨내게 된다. 회개하고 믿음을 가진 사람을 일컬어 구원을 얻었다, 영원한 목숨을 얻었다고 하는 건 바로 그래서다. 예수는 제자들에게 목숨이 뭔지 설명했다. 예수는 ‘믿음을 위해 목숨을 버려야 한다’고 말하고는 곧이어 ‘사람이 온천하를 얻어도 목숨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냐’고 말한다.(마가 8:34~8) 얼핏 앞뒤가 안 맞는 그 말을 통해 예수는 진정한 목숨이 무엇인지 설명한다. 진정한 목숨은 육체의 목숨이 아니다. 설사 수백 번 부활한다 해도 세포덩어리로서 육체는 결국 늙고 병들어 죽게 된다. 진정한 목숨은 육체가 죽은 이후에도 (단지 기억되는 게 아니라) 사람들과 소통하며 시간을 초월하여 영원히 사는 것, 이다. 예수의 육체는 이천년 전에 개처럼 달려 죽었지만 예수는 그를 닮아가려는 사람들 속에서 누구보다 더 생생히 살아있다. 예수는 그들과 대화하며 살을 비빈다. 물론 진정한 목숨은 어떤 종교적 절차를 통해서만 존재하는 건 아니다. 육체는 죽었지만 여전히 우리와 소통하는 수많은 정신들에서 보듯, 신념의 가장 높은 형태는 종교적 믿음과 다를 바 없다.
2006/01/31 17:28 2006/01/31 17:28
2006/01/27 14:23
060127.jpg


김단이 그날 그린 고양이 그림 다른 것. 설명을 부탁했더니 이렇게 적어보내왔다.

지난번 건 동네 주인있는 고양이들이 모여서 밤풍경을 보고있는 거고, 이건 버려진 고양이들이 어두워지기 전에 먹이를 찾는 모습. 흰고양이는 아직 어린 터키쉬앙고라인데 버려지고, 갈색은 아비니시안 거의 다 큰 고양이인데 버려지고, 샴도 다 큰 고양이. 그리고 위의 큰 고양이는 코리안숏헤어(토종고양이). 4명중 대장노릇을 하면서 망을 보고 새끼도 있으니까 지켜주고 하는 중.
2006/01/27 14:23 2006/01/27 14:23
2006/01/26 00:02
항 “김단, 아빠가 야단칠 때 옛날 일 들춘다고 말했다며?”
단 “엄마가 그래? 응..”
항 “언제 그랬다는 거지?”
단 “지난번 서울 갔다 오던 날, 차에서.”
항 “옛날 일 뭘 이야기했지? 아빤 기억이 잘 안 나는데..”
단 “나도 기억이 잘 안 나. 그런데 그랬어.”
항 “아빠가 그러나?”
건 “아빠, 나한테도 옛날에 택배차에 가서 받은 이야기 자꾸 하고 그랬잖아.”
항 “그건 아빠가 건이한테 사과했었고, 요즘도 아빠가 그래?”
건 “요즘은 안 그러는데.”
항 “단이가 볼땐?”
단 “안 그래.”
항 “그러니까 아빠가 요즘은 안 그러는데 이번에 그랬다는 거지?”
단 “응.”
항 “아빠가 잘못했네. 앞으로 주의할게.”
단 “응.”
2006/01/26 00:02 2006/01/26 00:02
2006/01/25 16:31
지난 16일, 이후곤이라는 청년이 ‘도서정가제’에 내 의견을 묻는 메일을 보내왔다. 간단한 답을 하려다 전문가인 변정수에게 이후곤의 메일을 보이며 의견을 물었다. 변정수는 제 견해를 나에게 보내왔다. 나는 두 사람에게 “공공의 이익을 위해 두 메일을 블로그에 올리면 어떻겠냐”고 제의했는데 두 사람은 좀 더 의견을 교환했다. 결과적으로 도서정가제에 대한 진지한 토론이 되었다.



이후곤이 김규항에게

김규항님 안녕하세요.
저는 올해 26세의 대졸 백수 이후곤이라고 합니다.
종종규항넷에 들어와 글만 읽고 사라지던 제가 처음으로 규항님에게 메일을 보냅니다.

이유는 다름아닌 페르세폴리스의 알라딘 링크 때문인데요, 도서정가제에 대한 규항님의 생각을 듣고싶어서 이렇게 메일을 쓰게 되었습니다. 규항넷에서 검색을 해도 도서정가제에 대한 글은 없더라고요.

다른 모든 자본시장과 마찬가지로 출판가나 서점계에서도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 벌어지고 있는 현실은 규항님도 잘 아실 것입니다. 거대 자본과 거대 서점이 지역의 작고 소박한 뜻있는 서점들을 몰락시키고 출판사들을 쥐락펴락하여, 결국 우리들이 영혼의 먹거리로 삼아야 할 책들이 자본의 통제 아래에서 급조되고 있다는 사실은 정말 큰 문제가 아닐 수 없겠지요.

그런데 그러한 현실에는 우리들 소비자의 책임도 큰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우리가 몇 퍼센트의 할인에 골몰해 있는 동안 정말 알차고 좋은 책을 내는 출판사와 출판인들은 심각한 경영난에 허덕이게 되고, 값싸고 해악이 되는 조악한 책들이 서점에 깔리게 되면서 우리와 아이들의 영혼은 병들게 되는 현실....

인터넷 서점들이 책값을 할인하고도 이윤을 남기기 위해 출판사들을 압박하고, 출판사들은 출판사대로 살아남기 위해 책값을 올리고 작가료를 깎고, 서 푼 남짓한 작가료에 글만쓰고있을 수 없는 작가들은 집필에 전념하지 못하게돼 글의 수준은 갈수록 떨어지고, 비싸지는 가격에 반비례하여 글의 수준은 떨어지는 책에 실망한 소비자들은 책을 외면하고, 책이 팔리지 않아 서점들은 할인율을 더 올리게 되는 이 악순환의 고리.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데 도움이 될 수 있는 제도가 바로 도서정가제가 아닌가 싶습니다. 몇몇 다른선진국의 경우에는 이미 도서정가세를 실시하여 책 읽는 나라를 만들어가고 있지요. 특히나 책은 다른 상품들과는 달리 한사람의 영혼과 한공동체의 미래를 결정할 수 있다는 점에서 다른 상품들과는 구분되어 그 수준과 보급이 보장되고 보호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제가, 페르세폴리스가 책을 정가보다 할인하여 팔고있는 인터넷 서점에 링크되어 있는 것을 보고 규항님의 생각을 궁금해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지요.

도서정가제를 포함한 책과 관련된 우리나라의 현실에 대한 규항님의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귀를 열고 기다리겠으니 답장 부탁드립니다.

건강하세요.

변정수가 김규항에게

따지고 들면 좀 복잡한 문제이긴 합니다만,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현재 진행되는 '도서정가제' 논의에 대해 저는 별다른 관심도 의견도 없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출판산업의 구조적인 병폐에서 '본질적인' 문제라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좀더 자세히 설명드리자면, 책이라는 상품의 본질을 먼저따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책'을 살 때, 실제로 사는 것은 '책'이 아니라 그 안에 들어있는 내용을 '읽을 권리'입니다. (컴퓨터 프로그램을 사면... 항상 '사용권'을 허락받는다는 동의를 하지요? 그와 같습니다. 컴퓨터 프로그램이 담겨 있는 시디를 사는 게 아니라 그 프로그램을 자기 컴퓨터에서 돌릴 '권리'를 사는 것이지요.) 그리고 그권리는 ('자본주의적 권리'일 뿐이라고 본질적인 문제를 추궁하지는 마십시오. 우리는 사회주의를 지향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고 있습니다. 저작자의 저작 노동의 대가는 물론 사회적으로 지불되어야 하지만 현실적으로 그것을 실구매자들로부터밖에는 받아낼 길이 현재로선 막연합니다.) 저작자의 고유 권한이며, 정당한 저작재산권(출판권은 저작재산권의 일종입니다.)이 있어야만 독자에게 판매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책의 판매가 위탁판매의 형태를 취하는 것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책은 그것이 출판사의 창고에 있든 도매상에 나가있든 소매상에 진열되어 있든 출판사의 재산이며, 심지어 독자의 손에 넘어간뒤에도 그 내용은출판사의 재산이기 때문에 그것을 함부로 복제해서는 안됩니다. 구매자는 오로지 개인적인 목적으로 그것을 읽을 권리만을 구매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전제로 할 때, 유통업자가 정당한 저작재산권자(출판권은 단지 찍어낼 권리가 아니라 복제해서 이익을 얻을 권리입니다.)의 동의업이 임의로 책값을 할인하는 것은 출판권자의 재산권을 침해하는 행위입니다. 일반적인 상품을 사다가 되파는 것과는 경우가 다릅니다. 이것이 '도서 정가제'의 본질입니다. 즉 단지 위탁판매업자에 불과한 유통업자가 출판권자의 고유 권리를 침해해서는 안 된다는 취지입니다.
그런데 고유 권리로서의 재산권이란 '자유로운 처분권'까지를 의미합니다. 즉 정당한 출판권자가 특정한 판매영업 정책에 의해 일정한 범위에서 스스로 할인 판매를 기획한다면 그것이 공공복리를 저해하지 않는 한정당한 영업권의 행사에 속합니다. 가령 아래아 한글의 경우 똑같은 프로그램인데도 '아카데미 버전'이라고 해서 학생이나 교사들에게는 정가의 반액에 판매를 하고 있지만, 값이 싸다고 해서기능이 다르거나 모자라는 것은 아닙니다. 왜 똑같은프로그램인데 사람에 따라 할인하느냐고 묻는다면 넌센스겠지요. 그렇다면 마찬가지로 출판사가 자신의 영업정책에 의해(가령 반품의 부담이 상존하는 오프라인 서점보다는 선주문 후출고가 이루어지는 인터넷 서점의 유통망으로 독자들을 유도하기 위한 적극적인 영업행위로서) 할인판매를 허용하는 조건으로 위탁판매 계약을 맺었다면 그역시 출판사의 고유 권리로서 보호받아야 합니다. 따라서 도서 정가제를 법으로 정해 영업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물론 과도한 경품제공 이벤트 따위로 출판 시장의 꼴이 우스워지는 것은 다른 측면에서 충분히 개탄할 일이지만, 본질적으로 비슷한 성격의 책은 있어도똑같은 책은 없다는 점에서 이것을 말 그대로의 의미에서 시장 질서를 어지럽히는 '과당경쟁'으로 보는 것은 무리가 있습니다. 내게 꼭 필요한 책이 있는데, 그보다 값이싸고 경품이 왕창걸려 있는 다른 내용의 책을 사지는않지요.(물론 현실적으로 그런 독자들이 있고 그러니까 문제가 되는 것이겠지만.. 그에 대한 비판은 별개 문제입니다.)

저는 그러한 이유로도서정가제 입법화 당시.. 도서정가제의 근본 취지는 당연히 옹호하면서도(일반 상품처럼 유통업체끼리의 가격경쟁을 완전히 허용해야 한다는 알라딘 조유식 사장 같은 이들의 주장에 저는절대 동의하지 않습니다.) 돌 맞을 각오를 하고 입법화에 반대하고 인터넷 서점들의 편을 들었던 것입니다. 그 이유는 1천부 정도의 판매가 예상되는 책임에도 2천부 이상을 찍어내야 전국 서점을 커버할 수 있는 구조에서는 결코 '소수의 독자'를 대상으로 하는 책이 출판되지 못하거나 출판사가 출혈을 감수할 수밖에 없으며 그것이야말로 '문화 다양성'을 해치는 일이기 때문에 인터넷 서점의 활성화가 문화 다양성을 보장할 수 있는 보완적 시장의 개척이라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상황이 묘하게 돌아가서 그싸움의 와중에 출판사들의 담합이 일어났고 인터넷 서점이 출판사들과 직거래가 차단된 상태에서 도매상과 독점 공급게약을 맺으면서 (규모만 큰) 일개 소매상으로 전락해 버렸습니다. 그러니 더이상 인터넷 서점들의 편을 들어줄 이유 자체가기각된 셈입니다. 그리고 절묘한 타협으로 도서정가제가 입법이되었고.. 도서정가제가 무슨 도깨비방망이라도 되는 듯 거기에 목숨걸고매달리는 출판계의 '기득권 세력'들은(사실 도서정가제는 인터넷 서점 죽이기입니다.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는 '조폭적' 카르텔이 아무리 그럴싸한 명분을 들이댄다 해도 그건 다 헛말일 뿐입니다. 유통 질서의 확립을 진정으로 원한다면, 도서정가제에 목숨걸 일이 아니라.. 당장 판매시점관리(POS)부터 도입할 일입니다.. 도대체 출판사는 '자기 재산'이 팔렸는지 안 팔렸는지 도매상 창고에서 자고 있는지 소매상 서가에 꽂혀있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 이게 출판유통의 복마전이 '조폭' 구조를 유지하는 핵심 열쇠입니다.) '완전 정가제'를 관철하겠다며 압박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이건 폭력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이제는 '일개 소매상'의 지위밖에는 안 되는 인터넷 서점들의 할인 판매를 두둔해주고 싶은 생각도 전혀 없습니다만(왜냐하면 그건 '타협'의 산물인 제도가 보장하고 있는 것이지, 출판사의 고유 권리가 행사된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현행 제도에서 허용하고 있는 것인 한, 비난할 일도 아니라고 봅니다. '완전 정가제'가 아니라 출판사가 자신의 영업정책에 의해가격 차등을꾀할 수 있게 보장해야 하고, 출판사의 명시적 허용이 없는 상태에서의 '임의 할인'은 저작권 침해 행위로서 철저하게 단속해야 한다는 게제 일관된 입장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도서정가제를 둘러싼 여러가지 논란은 순전히 '조폭적' 기득권 세력들의 밥그릇 싸움이므로 거기에 말려들 이유도 없고, 어느 한 편을 들 이유도 없습니다. 독자들의 문화 향유권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공정한 시장 경쟁'이 아니라... '출판 산업의 공공화'가 필요할 뿐입니다. 도서 정가제 따위에관심을 가질 여력이 있다면 공공 도서관을 하나라도 더 짓는데로 집중하는 것이 옳습니다. (만일 제 주장대로, 서점으로 출고되는 책과 도서관으로 출고되는 책의 가격을 차등화하는 도서관 정책이 가시화된다면.. 도서정가제 주장 세력들이 어떻게 나올지 정말 궁금합니다. 서점 망한다고 출판을 죽이자는 것이냐고 난리 부르스를 추지않으면 정말 다행이겠습니다만... 어차피 도서정가제가 밥그릇 싸움에 불과하다는 실체를 스스로 폭로하며 나자빠질 가능성이 훨씬 더 크다는 쪽에 걸겠습니다....유감스럽게도 이건 오프라인 서점들만의 사활이 걸린 문제가 아닙니다. 그들은 '마름'에 불과합니다. 이 '조폭' 조직의 두목들은 현재의 불합리한 유통 구조 속에서 가난한 군소 출판사의 판매이익을 중간에서 합법적으로 가로채고 있는 '메이저'급 출판사들입니다... 게거품 물며.. 차마 대놓고 도서관에 공급되는 책은 할인가로 내보낼 수 있는 것이 유통 질서 교란이라고까지는 못하더라도.. 무슨 궁색한 명분이라도 다 끌어다 대며 저지하려 들겠지요... )

거칠게 정리는 해 봤는데... 워낙 중간에 사족들이 많아서.. 제대로 이해가 되셨을지 모르겠습니다만, '독도'에 아무 의견이 없다...라고 말씀하셨던 전례를 상기하시면 되지 싶습니다...


이후곤이 변정수에게

안녕하세요?

규항넷에서 페르세폴리스의 알라딘링크를 보고 김규항님께 메일을 보냈던 청년 백수 이후곤이라고 합니다.

변정수님의 홈피를 가 보니 도서정가제의 문제는 이미 여러번 언급하셨던 내용이더군요. 재차 얘기하기가 번거로우셨을텐데 정성껏 답장을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메일 잘 보았습니다. 덕분에 제가 그동안 잘 알지 못했던 우리 출판 문화의 현실에 대해 좀 더 눈을 뜨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번 기회에 이 주제에 대해 잘 알아보자는 마음에 변정수님의 홈피에서 글을여러 개 읽기도 하였구요, 판매시점관리등 잘 모르는 용어에 대해서도 나름대로 찾아 공부하기도 했습니다.(커피숍 알바할 때쓰던 포스 찍는다는 얘기가 그 얘기였더군요) 특히 오픈 포럼에서 이뤄진 '착한 자본가'님과의 문답은 제게 많은 도움이 되었는데요, [출판가쟁점]을 읽으며 생겼던 대부분의 궁금증들이 그 문답으로 해소가 되었지요.

그럼에도 풀리지 않은 약간의 질문이 있어 이렇게 메일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대게,귀하게 읽은 글들이지만 쓰여진 시점이 거의 2004년인 글들이어서 현재의 실상은 어떤가 하는 문제에서 비롯된 질문인데요, 인터넷에서 관련 기사들을 찾아보아도 대부분 크게 관계가 없거나 양비론적으로 무난하게 끝을 맺고 있는 기사일 뿐 별로 속 시원한 기사는 찾지를 못하겠더라구요.

1. 독립 출판인들의 '브랜드의 독자성을 유지한 조합 형태의 컨소시엄' 문제는 현재 어떻게 되었는지요? 독립 출판인들의 경영 여건은 2004년 이후로 조금이나마 나아졌습니까 아니면 더 어려워졌습니까?

2. '조폭 두목'과 그 '마름'들의 행태는 요즘도 여전한지, 그래서 우리의 왜곡된 출판 현실은 지금도 여전한 것인지, 해외 자본의 영입으로 인한 변화는 어떠한지 알고 싶습니다.

3. 도서정가제와 관련된 법을 보면 인터넷 서점에서는출간된지 1년 이상 지난 책에 한해 10% 할인을 허용한다고 되어있는데 실제로는 모든 책들을 10% 할인해서 팔고있지요. 어떻게 그것이 가능한가요?

4. 출판 산업의 공공화를 위한 움직임이 현재 일어나고 있는지, 있다면 어떻게 일어나고 있는지, 변정수님께서는 공공화를 위해 현재 어떤 일을 하고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마지막으로 논외적인 한 가지 청을 드리자면, 메일을 비롯한 여러 글을 쓰실 때 문단과 문단 사이에 한 줄을 띄우는 것이 어떨른지요? 그런다면 읽는이가 한결 편할 듯 싶습니다. 사실 처음 메일을 받았을 때 하나의 크게 덩어리 진 그 글이 읽기에 불편했던 것이 사실이거든요. 그래도 메일은 드래그 한 후 한글에 붙여넣기 하여 임의로 문단을 띄워 쉽게 읽었지만, 변정수님 홈피의 글은 그렇게할 수 없어 조금 어렵게 읽었더랬습니다.

그것이 제가 책 읽는 깜냥이 부족해서 생긴 문제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책 읽은 나이가 어린 사람들도 쉽게 읽을 수 있는 글이라면 세상에 보다 넓게 퍼져 나갈 수 있겠지요. 변정수님 글의 내용이 귀하기에 더욱 많은 이들이 함께 하기를 바라는 마음에 드리는 얘기였습니다.

다시 한 번 바쁘실텐데도 답장 보내주셔서 감사하단 말씀드리며, 보내주실 답장 기쁘게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건강하세요.


변정수가 이후곤에게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보내주신 질문에 대한 답변만 간략히 드리겠습니다.

1. 어떻게 되고 말고 할 것은 없습니다. 저는 그저 이런 방식이라면 거대 자본에 맞설 수 있는 힘이 조금은 생기지 않겠느냐고 제안을 던진 것뿐이고.. 그 다음은 '그들'이 알아서 할 문제입니다. 현재로서는 아무 움직임도 없습니다. 독립출판인들의 경영여건은 날로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작년 다르고 올해 다른 정도가 아니라 그야말로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른 형편입니다. 누군가가 출판을 하겠다고 나서면... '도시락 싸들고 다니며 말리는' 제 입장도 변화가 없습니다.

2. 하루아침에 해결될 문제였으면 제가 그렇게 목터져라 짖지도 않았겠지요. 일년 사이에 달리자면 뭐가 달라졌겠습니까.. 출판계의 양극화는 점점 더 심해지고 있고, 조폭 카르텔 구조는 여전히 견고합니다. 해외 자본이 들어왔지만, 영화에서 유아이피 직배가 들어온 것과는 다릅니다. 앞으로는 어찌될지 모르지만, 그들은 독자적인 유통망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랜덤이 굳이 중앙이라는 국내 파트너와 합작을 한 것 자체가 국내의 '후진적'인 유통 현실에 대한 경험이 전혀 없는 그들이 안전하게 기존의 유통망을 활용하기 위한 것이지요. 거래 규모가 '힘'이 되는 유통 현실에서 자본의 힘이 있는 그들이 굳이 유통 개선을 하겠다고 나설 이유는 전혀 없습니다. 어떤 자본이 혹시 유통망을 장악한다면, 독점이윤의 최대화를 위해 유통을 합리화할지도 모르고 그 과정에서 작은 출판사들이 조금은 덕을 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그 독점은 언제든 횡포를 부려.. 마음에 들지 않는 출판사의 책은 유통을 차단할 수 있다는 무시무시한 힘을 가지게 될 겁니다.

3. 제가 정확히 찾아보지는 않았습니다만.. 뭔가 착오가 있으신 듯합니다. 현행법에서는 제가 '절묘한 타협'이라고 말씀드렸듯, 인터넷 서점에 한해 신간이라도 일정 범위 안에서 현금할인과 마일리지부여가 가능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몇 년 전의 도서정가제 입법화 싸움은 결국 그 제한 범위의 조정을 둘러싼 줄다리기일 뿐이었죠.. 지금 인터넷 서점의 할인은 합법 테두리에 있고... 그래서 가령 '업계 최저가 보장' 따위의 광고는 실소를 머금게 하는 일종의 과장 광고입니다. 어차피 할인율의 한계가 법령으로 정해져 있기 때문에 거의 모든 업체들이 그 한도안에서 최대한 할인을 할 것이므로... 별 의미가 없다는 것이지요.. 아마도 말씀하신 내용은, '완전 정가제'를 주장하는 측에서 '개정안'으로 제시한 내용일 것으로 짐작됩니다. 즉 현행법이 아니라 법을 그렇게 개정해야 한다는 주장을 오해하신 듯합니다.

4. 재거 어눈 한도 안에서는 전혀 없습니다. 미동이나 싹조차 없습니다. 있다면 제가 모를 리가 없을 정도는 제 위치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출판 산업 공공화 테제를 출판계의 공론에 의제화한 것은 제가 유일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물론 전혀 움직임이 없다는 것은 제 의제화가 적어도 아직은 완전히 실패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저야..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기회 있을 때마다 이 문제를 의제화하려고 애를 쓰지요... 그러나 아직은 힘이 없군요.. 그와는 별개로 그것을 의제화해낼 힘을 기르기 위해 젊은 편집자들의 네트워크를 만드는 우회적이지만 근본적인 방식에 가장 힘을 쏟고 있습니다.

질문에 대답이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혹 찾아보셨는지는 모르겟지만.. 도서정가제 입법화 당시의 토론 내용이 제 홈피의 전신인 '라이브'(제 홈피에 링크되어 있습니다.)의 자유게시판과 일상나누기에 있습니다. '도서정가제'라는 키워드로 검색하시면 관련글을 찾으실 수 있으실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이후곤이 변정수에게

수고로우실텐데 정성껏 답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번 기회를 통해 한국 출판 현실의 문제점을 어느 정도 알게된 것 같아 기쁩니다. 그러나 한 편으로는 작금의 어두운 현실에 마음이 우울해 지기도 하는군요. 제가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주변의 출판 관련 지인들을 좀 더 신경써서 대하는 것 뿐이겠지만 그래도 관심의 끈은 계속 이어가야겠습니다.

그런데 변정수님 홈피 전신 LIVE의 일상나누기와 자유토론실, 거기에 동인 포럼까지 찾아보았습니다만 도서정가제와 관련된 글은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혹시 검색에 걸리지 않는 것인가 하여 게시판을 처음부터 끝까지 찬찬히 넘겨보았습니만 보이지 않더군요. 생생한 얘기를 읽을 수 없어서 아쉬웠습니만 그 와중에 다른 여러 재미있는 글들을 많이 읽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특히 대선과 탄핵/총선 기간의 글들이 치열하니 재밌더군요)

저는 사회주의자도 아니고 B급이라도 좌파가 될 엄두는 내지 못하는 사람입니다만 동시에 천민자본주의에 대한 혐오 또한 넉넉한지라 출판 산업의 공공화는 참 관심이 가는 주제였습니다. 언제 여유가 되신다면 변정수님께 그에 대한 자세한 얘기를 듣고 싶군요. 공공화에 대한 책을 쓰시는 것은 어떨런지요? 제가 너무 제 생각만 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지만요.

마지막으로, 변정수님과 제가 주고 받은 메일을 김규항님께도 보내드리는 것이 어떨까요? 처음에 제가 김규항님께 메일을 보내면서 시작된 대화이기도 하고, 변정수님과 제가 주고받은 얘기 중에 김규항님이 보시고 규항넷에 함께 추려 실을 만한 얘기가 있지 않을까 해서 말이지요. 동의해주신다면 변정수님의 답장과 함께 김규항님께 보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만 줄이겠습니다. 건강하세요.


변정수가 이후곤에게

김규항님께 전해 드리는 걸 제가 꺼릴 이유는 없을 듯합니다. 판단대로 하시구요..
라이브의 '옛 자유토론실'과 '옛 일상나누기'였는데.. 제가 말씀을 잘못드리는 바람에... 공연히 번거롭게 해 드린 모양입니다.
2000년으로 기억하는데... 정혁님, 그리고 지금은 착한자본가라는 아이디를 쓰시는 전정완님과.. 매우 재미있고 유익한 토론이 있었습니다.
출판 문화나 출판 산업과 관련하여... 현상의 이면에 있는 이야기들이 궁금하실 때는 언제든 메일 또는 제 홈피에 올려 주시면 저로서도 제 생각을 찬찬히 정리해볼 수 있는 큰 공부가 될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2006/01/25 16:31 2006/01/25 16:31
2006/01/23 08:49
예수가 제자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가난한 사람들아, 너희는 행복하다.
하느님 나라가 너희의 것이다.
지금 굶주린 사람들아, 너희는 행복하다.
너희가 배부르게 될 것이다.
지금 우는 사람들아, 너희는 행복하다.
너희가 웃게 될 것이다.


(누가복음 6장 20~1절. 월요일 혹은 모든 '시작일'에 즐겨 되새기는 구절.)
2006/01/23 08:49 2006/01/23 08:49
2006/01/22 15:59
푸바가 점점 덩치가 커지면서 그 간결함을 잃어가는 와중에 훨씬 더 간결한 것을 발견했다.
이름 하여 빌리.

간결함의 극치다.
2006/01/22 15:59 2006/01/22 15:59
2006/01/21 12:49
고래가그랬어 1-24호 세트 판매행사

25-27호를 덤으로 드린다니
별렀던 분들에겐 좋은 기회일 듯..
2006/01/21 12:49 2006/01/21 12:49
2006/01/20 10:46
며칠 전 우연히 들은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의 강산에 버전(김광석 Anthology 앨범에 실린)에 ‘꽂혀서’ 되풀이해서 듣고 있다. 김광석의 목소리를 컴퓨터로 따다 붙인, 마치 두 사람이 함께 부르는 것처럼 만든 곡인데 묘한 매력이 있다. 무엇보다 두 가수의 결함이 사라지는 느낌이다. 김광석의 보컬은 너무나 절절해서 때론 절절함의 정도를 차별화해야 할 때 평범해지는 문제가 있다. 강산에의 내지르는 목소리는 어딘가 여운이 결핍된 느낌이 있다. 적어도 비슷한 창법이라 할 수 있는 김태화나 김현식과 비교하면 뚜렷하게. 그런데 이 곡에서 두 가수의 결함은 거의 완전하게 사라진다. 강산에가 김광석을 모시는데 김광석 또한 강산에를 모신다. 둘은 서로 모심으로써 제 결함을 씻어낸다. 마치 삶의 이치를 보여주듯.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그대 보내고 멀리 가을새와 작별하듯
그대 떠나보내고 돌아와
술잔 앞에 앉으면 눈물 나누나
그대 보내고 아주 지는 별빛 바라볼
눈물 흘러내리는 못다 한 말들
그 아픈 사랑 지울 수 있을까

어느 하루 비라도 추억처럼
흩날리는 거리에서
쓸쓸한 사람 되어 고개 숙이면 그대목소리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어느 하루 바람이 젖은 어깨 스치며 지나가고
내 지친 시간들이 창에 어리면 그대 미워져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이제 우리 다시는 사랑으로 세상에 오지말기
그립던 말들도 묻어버리기 못 다한 사랑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2006/01/20 10:46 2006/01/20 10:46
2006/01/19 13:34
제도신문이나 공중파 뉴스 따위 제도미디어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사람들에게 세상의 일부를 보여주면서 사람들로 하여금 그게 세상의 전부처럼 착각하고 믿게 만드는 것, 이다. 그 해악을 피하는 방법은 생각보다 간단하다. 제도 미디어가 제공하는 세상 소식이 실은 세상 소식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 지배 체제가 보여주고 싶은 일부라는 것, 을 잊지 않는 것이다.
2006/01/19 13:34 2006/01/19 13:34
2006/01/18 14:20
060118.jpg


김건이 팽이를 사달라고 한 게 꽤 되었는데 어제야 인사동에 들러 사다주었다. 아침에 거실에서 치고 있으니 어제 놀러와 잔 아내 후배가 그런다. “형, 팽이 형이 갖고 놀려고 샀죠?” “응.” 팽이는 치는 각도나 세기에 따라 아주 세밀한 변화가 일어난다. 한참 집중을 하노라니 팽이의 중심이 내 의식의 중심이 되면서 ‘꽤 근사한 정신 수련법이 될 수도 있겠구나’ 싶다. 팽이수련법이라.. 대단한 격조가 느껴지지 않지만..^^
2006/01/18 14:20 2006/01/18 14:20
2006/01/11 22:07
060111.jpg


흑과 백의 강렬한 대조,
재치와 통찰력 넘치는 이야기..
페르세폴리스.
2006/01/11 22:07 2006/01/11 22:07
2006/01/10 16:37
남자의 성장은 인간화가 결여된 사회화 과정이고
여자의 그것은 사회화가 결여된 인간화 과정인 경향이 있다.

그런 성장 법칙이야말로 가부장제 사회의 골간이 된다.
요컨대 가부장제 사회란
인간적인 차원에서 유아가 성인을 지배하는 사회인 것이다.
2006/01/10 16:37 2006/01/10 16:37
2006/01/09 05:28
블로그의 새 트랙백이 약간 문제를 가진듯 합니다.. 저같은 새가슴을 위해 어서 삭제해주시기를..


지난밤 어떤이가 보낸 편지. 착한 새가슴을 가진이들이 종종 전해오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하루에 적을 땐 두세개, 많을 땐 새 트랙백 리스트 전체를 체울 만큼 스팸 트랙백이 들어온다. 대개 포르노나 도박 사이트들이다. 되도록 자주 그걸 지우고 블랙리스트에 넣어 다시 못들어오게 만들곤 하지만 어차피 실시간으로 처리할 순 없는 노릇이라 한계가 있다. 그래서 착한 새가슴을 가진 이들에게 아예 '많이 놀라진 마시라‘ 공지한다. 죄송스런 말이나, 새 트랙백 리스트 상단에 영어로 된 항목은 아예 누르지 않기를 권한다.

(1월 11일 추가 내용)

몇몇분들의 도움으로 스팸 트랙백을 막기 위한 장치를 했다. 제대로 하려면 이 블로그의 툴(무버블타입)을 업그레이드해야 하는데 간단치 않은 일이라 일단 이 정도로..
2006/01/09 05:28 2006/01/09 05:28
2006/01/07 10:42
김단이 휴가다. 김건이 그저께 제 어미를 따라 며칠 전라도에 갔다. 그래서 큰딸 노릇, 누나 노릇 안 해도 되는 거다. 김단을 데리고 나가 아즈마 키요히코의 만화 몇 권을 빌리고 컵라면과 하겐다즈 녹차컵(!)을 사온 다음 “평소에 꼭 하고 싶었던 걸 해봐” 했다. 김단은 “밤을 새고 싶다”고 했다. 김단은 밤새 포토샵으로 고양이를 그렸다. 나는 식탁에 앉아 메신저도 하고 책도 읽고 했다. 어젯밤도 마찬가지였다. 새벽 다섯시 쯤 “해 뜨겠다” 하며 씩 웃던 김단은 지금은 자고 있다. 고양이 그림 중 한 개. 쓸쓸한 게.. 마음에 든다. 특히 오른쪽 녀석.

060106.jpg
2006/01/07 10:42 2006/01/07 10:42
2006/01/06 00:42
060105.jpg


“생각하고 그리지 말고 느낀 대로 그려보는 거야.”
“네..”

김단은 제가 그린 걸 몇 개 가지고 최호철 삼촌의 작업실을 방문했다. 고대하던 방문이었다. 오밀조밀 온갖 것들로 빼곡한 작업실에서 머리를 맞댄 선생과 어린 제자.
2006/01/06 00:42 2006/01/06 00:42
2006/01/05 01:59
“세상을 바꾸는 학교” 노들장애인야학이 교육공간 마련을 위한 노들인의 밤과 하루주점을 연단다. 많이 들 가서 힘을 보태고 또 얻고 하시길. 정히 갈 형편이 안 되는 분은 온라인 십시일반을 하는 것도 방법이다. 노들 사이트에 적힌 박경석 교장의 학교 소개. ‘한국인의 자부심’은 축구나 삼성, 황우석 따위가 아니라 이런 학교가 있다는 사실에서 나와야..

'노들'은 노란들판의 준말입니다. 농부의 노동이 녹아난 들판에 넘실대는 결실들을 뜻하는 것입니다. 저는 노들인들이 들판을 일구는 농부라 생각합니다. 시퍼런 '경쟁'의 도구로 차별과 억압의 들판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상호 협력과 연대'로 '인간 존엄성과 평등'이 넘쳐나는 노란들판을, 그 대안적 세계를 꿈꾸는 농부들 말입니다. 노들은 93년도에 시작하여 지금까지 투쟁하고 있습니다. 쉬운 일은 아닙니다. 추수가 끝나 가진 자들에게 다 빼앗겨 버리고 겨울바람이 부는 텅 빈 들판을 낮술에 취해 바라보는 농부의 마음을 하나하나 느끼면서 지켜온 세월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같은 내일을 남기지 않기 위해 노들의 공간을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로 교육조차도 받지 못했던 설움과 차별을 메우기 위해 노들은 존재하고 있습니다. 노들이란 공간을 지켜왔던 동문들과 지금을 지키는 노들인 모두가 치열하게 노들을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단순히 도우기 위해 노들에 있다면 시간낭비였을 것입니다. 그것은 오히려 '시혜와 동정'으로 일관된 장애인에 대한 차별적인 사회적 모순의 재생산에 기여만 할 뿐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투쟁은 해방을 향한 연대의 몸짓입니다. 노들을 '희망을 일구는 사람들의 터'라 합니다. 희망을 일구는 실천은 노들이 '기능'으로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가치'를 남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우리의 교육이 장애인을 차별하는 세상을 바꾸는 집단적인 실천과 분리되어 진다면, '보다 나은 대안적 세상'을 향한 우리의 가치는 사라지고 '시혜'와 '기능'의 껍질로 남겨질 것입니다. 우리는 앞으로도 쉽지 않은 길을 갈 것입니다. 하지만, 가치로 남는 다는 것은 인생을 걸어볼만한 일입니다. 노들과 함께 세상을 바꿉시다!
2006/01/05 01:59 2006/01/05 01:59
2006/01/04 17:13
아무개 방송국의 아무개 피디입니다.
안녕하세요.
저희가 올해의 시사 전망을 살펴보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습니다.
예..
김선생님의 인터뷰를 중심으로 가려고 합니다.
그런데.. 제가 작년쯤부터 뉴스나 신문 같은 걸 안 보고 삽니다.
특별한 이유라도 있으신가요?
글쎄요.. 하여튼 그러고 있습니다.

"경박함을 덜어내는 중"이라고 말하려다, 말았다.
2006/01/04 17:13 2006/01/04 17:13
2006/01/03 09:48
짐승 싫어하는 아이들이 있겠냐만 김단과 김건은 유별나게 짐승을 좋아한다. 김건의 소원은 마당 있는 집에서 사는 건데, 순전히 큰 개를 키우고 싶어서다. 아파트에 살고 있고 어미아비가 늘 바쁜 현재로선 선뜻 짐승을 들이기가 어렵다. 둘이 그 짐승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다면 참으로 난감한 상황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측은해서 소형견이나 고양이라도 들여 볼까 몇 번 고려했지만 번번이 접은 터였다. 아쉬운 대로 구피 몇 마리와 거북 두 마리를 키우던 둘은 얼마 전 시장에서 본 애완용 토끼에 깊이 고무되었다. 너무나 예쁜데다(토끼!) 한 마리에 만오천원인가 하고 손도 많이 가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며칠 전 나는 김단에게 말했다.

“키우고 싶다는 것과 키울 수 있다는 건 달라. 건이야 아직 어리니까 키우고 싶다는 말만 하지만 너는 너희들이 토끼를 키울 수 있다는 걸 엄마 아빠에게 설득해내야 해. 인터넷도 찾아보고 해서 정리를 해봐.”

그저께 저녁 애완용 토끼 사이트들을 섭렵하며 이것저것 스크랩을 하던 김단이 그랬다. “아빠. 많이 알아보고 있는데 내가 원래 정리하는 거 잘 못하잖아. 그래서..” “원래 못하다니. 단인 얼마든 잘 할 수 있어. 해봐.” “알았어..” 그래놓고 영 안쓰러운 마음이 들어 어제 아침 몇 가지 ‘질문’을 적어 주었다. 내 생각엔 김단이 제 어미 아비를 이번에 설득해낼 가능성은 그리 많지 않다. 짐승을 들이기가 부담스러운 어미 아비 역시 ‘그래도 키우기 어려운 이유들’을 준비할 테니. 그래서 조금은 실망하겠지만 다시 보완해가면서 머지않아 어미 아비를 설득해낼 수 있으리라. 나는 그 과정이 매우 흥미롭다.

내가 적어 준 '토끼 질문'. 김단은 질문을 보충하고 답을 채우는 중이다.

1. 돈이 얼마나 드는가? 처음 살 때, 그리고 평소에.
2. 매일 할 일은?
3. 매일은 아니더라도 정기적으로 할 일은?
4. 2와 3에서 단이와 건이가 할 일은?
5. 2와 3에서 엄마와 아빠가 할 일은?
6. 4가 5가 될 가능성과 그렇게 되었을 때 해결방법은?
6. 토끼를 키워서 식구(혹은 일부 식구)에게 좋은 점은?
7. 토끼를 키워서 식구(혹은 일부 식구)에게 나쁜 점은?
8. ..
2006/01/03 09:48 2006/01/03 09:48
2006/01/02 05:05
종종 젤롯당(예수 당시 폭력적인 방법으로 반로마 해방운동을 하던 그룹)은 예수의 정치성을 판단하는 근거가 되곤 한다. 보수적인 학자들은 예수가 젤롯당과 구체적으로 접촉한 흔적이 없음을 근거로 예수는 정치적인 인물이 아니었다고 주장한다. 반면에 급진적인 학자들은 젤롯당과 예수의 관계를 끊임없이 부각시키려는(예수의 제자 가운데 ‘젤롯당원 시몬’이 있다거나, 성전의 장사꾼들을 내쫓는 '성전정화' 사건이 상당한 규모의 무력을 동원하지 않았다면 불가능했을 거라는 것 등)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런 논란은 예수의 정치성이 갖는 특별한 지점을 비껴가는 것이다. 젤롯당의 목표는 로마와 그 괴뢰 세력을 몰아내고 야훼를 섬기는 왕정을 만드는 것이었다. 그러나 예수의 관심은 오로지 못나고 보잘것없는 사람들이었다. 예수는 시쳇말로 못나고 보잘것없는 게 벼슬인 양, 그들에게 집중했고 그들에게 복이 있고 그들이 하느님의 나라의 주인이라 선언했다. 그런 예수가 젤롯당의 일원일 이유는 없었다. 로마가 아니라 야훼를 섬기는 왕정이라 해도 못나고 보잘것없는 사람들에겐 매한가지이니 말이다. 예수의 정치성은 계급이라는 개념조차 없던 당시의 의식 수준으로선 이해받기 어려운 것이었다. 게다가 예수는 제 생각을 이해시키는 일보다는 실천하는 데만 열중했기 때문에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 “대체 저 자가 뭘 하려는 걸까?”하는 의문을 품게 했다. 3년 동안 동고동락한 제자들마저 스승이 대체 뭘 하려는 건지 끝내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데도 예수가 정치범으로 사형을 당했다는 건, 지배 체제란 정치적 급진성을 논리가 아니라 생리적으로 파악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지배 체제는 늘 그렇고 오늘의 지배 체제 역시 그렇다. 신앙은 무엇보다 지배 체제와의 관계로 증명된다. 물론 지배 체제와 불화하는 모든 사람이 예수를 따르는 건 아니며 예수를 따르는 모든 사람이 반드시 예수처럼 체제에 의해 죽임을 당해야 하는 건 아니다. 그러나 예수를 따르는 모든 사람은 지배체제와 불화할 수밖에 없다. 지배체제와 불화하지도 않으면서 예수를 말하는 건 가소로운 일이다. 그런 자들은 실은 예수의 명성을 빌어 제 말을 할 뿐이다.
2006/01/02 05:05 2006/01/02 05:05
2006/01/01 23:07
060101.jpg

"새해엔 정직하게 일하며 사는 사람들의 눈물이 적어지길.."

임진각 평화누리. 버려진 초를 주워 켠 김단, 김건.
2006/01/01 23:07 2006/01/01 23: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