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은하 씨가 창비어린이에 쓴 고래 리뷰. 이따금 꺼내 읽으며 '아 고래가 그런 책이지' 한다. 정교한 글이다.
“아빠를 죽이고 싶어요.”고래가 그랬어라는 어린이 ‘교양만화지’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는 순간, 내 머릿속에 가장 선명하게 남았던 것은 미안하게도 ‘교양’도 ‘만화’도 아니었다. 그것은 바로 금천구 독산동에 산다는 한 5학년 소년의 절규에 가까운 고백이었다. 네 답답한 고민이 뭐야?라는, 보통 잡지들에도 의례적으로 붙어 있는 ‘고민상담 Q&A’ 코너에서 그 소년은 “술만 취하고 나면 완전히 마친 괴물이 돼요. (…) 엄마랑 동생을 때리는 걸 볼 때는 아빠를 죽이고 싶어요”라는 고민을 털어놓았다. 그리고 ‘고래’는 “지금의 상황을 참고 견디는 게 최선은 아니”며 “폭력을 그냥 눈감아주어서는 안된다”고 설득했다. “병원에서 꼭 치료를 받아보시라고 아빠에게 말하라”고도 충고했다.(2004년 1월호 243-44면)
한편 일산에 사는 한 소녀는 “밤에 오줌 누러 갔다가 엄마와 아빠가 섹스하는 것을 봤다”는 비밀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그리고 ‘고래’는 “정말 아끼고 사랑하면 안아보고도 싶고, 더 나아가 성관계를 갖고 싶어지는 것이 당연하다”고 대답했다. “‘행위’를 넘어선 ‘몸으로 표현하는 신뢰와 배려’를 보라”고 충고했다.(같은 호 246-47면)
소년, 소녀의 ‘Q’와 ‘고래’의 ‘A’는 이 잡지에 실린 어떤 획기적이고 대범한 변화들보다 더 강력하게 잡지의 성격을 단박에 드러내고 있었다. 그것은 20년전 읽던 소년중앙 같은 어린이잡지 말미에 실린 ‘짝이랑 싸웠어요. 어떻게하면 화해할 수 있을까요?나 ‘성적이 떨어져서 고민이에요’같은 지극히 학생다운 질문에 ‘먼저 손을 내밀어 보세요’나 ‘꿈을 잃지 마세요’같은 상식적인 대답을 예상했던, 서른 넘은 한 덜떨어진 독자를 잠시 멍하게 만들었다.
동시대를 살고 있는 어린이들에 대한 삐뚤어진 자세를, 그들에게 던지는 시대착오적인 언어 습관을 ‘앉은뱅이도 일으키는 기적의 장풍요법’보다 훨씬 단시간에 교정시키고야 말았던 것이다. 소위 라이썬스(licence) 패션지도 2천5백원으로 가격조정을 감행하는 초저가 시대에, 영화잡지가 천원인 판국에, 이 9천원짜리 고가의 어린이잡지를 처음부터 다시 찬찬히 살펴보리라 마음먹은 것도, 그러니까, 그 이후의 일이다
이 잡지, 간도 크다. 잡지의 ‘꽃’은 뭐니뭐니해도 부록이 아니던가. 그런데 고래가 그랬어는 ‘이효리 전신 브로마이드’나 ‘비 포토앨범’대신 ‘UN 어린이권리조약’이 적힌 종이 한 장을 떡하니 ‘이 달의 부록’이라고 끼워준다. 하지만 효리의 가슴 싸이즈를 알고 있는 조숙한 소년들도 이 전세계적인 조약 31조에 “우리에겐 쉬고 놀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장마 끝에 한줄기 햇살 같은 말이 있는지는 몰랐을 것이다.
어느 달에는 부록으로 ‘어린 왕자의 지구여행’이라는 말놀이판이 끼워져 있었다. 오리기만 하면 만들 수 있는 종이 주사위도 함께였다. ‘술꾼의 별’과 ‘허풍쟁이의 별’을 돌아 장미에게 유리상자를 씌울까 말까를 고민해야 하는 이 소박한 종이놀이는, 전세계를 돌아다니면 호텔을 짓고, 별장을 소유하던 ‘블루마블’같은 흥미진진한 도박판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어린 왕자 라는 책에 대한 호기심을 일게 해주기엔 충분했다.
또 어떤 달에는 딱지를 끼워주기도 했다. ‘충격완화요법 팁’까지 실린 이 빳빳한 고급 딱지는, 플레이스테이션의 재미를 잃어버린 아이들에게 다소 심심할지는 모르지만, ‘일등맨’과 ‘딱지맨’이라는 깜찍한 캐릭터를 내세워 이 아날로그 놀이가 주는 신선함을 전달하고 있었다. 윷놀이를 그저 한국의 전통의 민속놀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강요하던 것과 다르게, 고래가 그랬어는 아이들에게 꽤나 흥미로운 방식으로 이 건강한 놀이들을 권유한다. 이거, 좀 놀 줄 아는 잡지다
볼수록, 이 잡지 맹랑하다. 귀여운 분홍 곰돌이인형이 돌연 “너네들 모두 죽인다”고 살기 어린 눈빛으로 달려오질 않나(김재희 강철 소년 크람바), 어떤 만화는 ‘수학적 논리와 계산적 사고’로 살아가던 한 과외선생이 어떻게 공원 벤치에 벌렁 드러누운 ‘미친년’이 되었는지를 보여준다(강무선 수학의 가치와 그 효용성). 수학이라는 그 악마적인 힘을 가진 과목의 이면에 깔린 무시무시한 진실을 까발리면서 말이다. 또한 김동화나 황미나 풍의 팬시한 등장인물과 유려한 그림체는 눈 씻고 찾아보려야 찾아볼 수 없다. 누가 봐도 ‘재수 없는’ 을식이나 용식이, 흥식이 같은 아이들은 “나란 몸, 공부를 잘 해, 그렇다고 얼굴이 잘 생겼어? 잘 할 수 있는 건 단 하나뿐이야-개.인.기;”라며 개인기 연마에 며칠 밤을 끙끙댄다.(이경석 을식이는 재수 없어). 발가락으로 쓴 것 같은 삐뚤삐뚤한 글씨가 여기저기 널려 있고, ‘앤서니’나 ‘테리우스’같은 이름 대신 ‘오줌보 여사’나 ‘대문짝 콧구멍’이 주요인물로 등장한다. 하지만 이 허접한 그림과 캐릭터 ‘진짜’들이다. 복제된 로봇도 아니고, 건전사회를 꿈꾸는 어른들의 복화술 인형도 아니다. 저마다 사연을 가진 진짜 ‘사람’들인 것이다. 아름다운 모습보다는 추한 모습이 많고, 행동은 예측불허다. 하긴 원래 사람이란 게 그렇지. 이거, 사람 좀 아는 잡지다
파고들면 이 잡지 정치적이다. 발행인 김규항의 ‘아웃사이더’적인 성향은 잡지 여기저기에서 드러난다. ‘어린애들을 좌경용공화한다’는 오해를 살 만하다. 아기공룡 둘리의 파란만장한 대모험이 아니라, 전태일이라는 한 노동자의 비극적 삶을 그리고 있는 태일이(박태옥 글, 최호철 그림)를 얼굴마담으로 내세운 고래가 그랬어는 타이거 우즈의 1년 광고모델료가 파키스탄 나이키 공장에서 일하는 어린이가 33만년 동안 일해야 벌 수 있는 돈임을 알려준다(2003년 11월호 95면). 죽은 산타클로스가 무덤 속에서 “내가 언제 몸에 해로운 콜라를 마시라고 그랬어” 하며 울고 있을지도 모른다며 산타클로스의 붉은 옷과 흰 수염을 앞세운 코카콜라의 교묘한 마케팅을 고발한다(2003년 12월호 159면).
루이뷔똥 지우개를 쓰는 강남 어린이들과 침대 사이에 머리가 끼인 채 장기간 방치된 삼남매가 같은 하늘 아래 있다는 세상의 아이러니를 간과하지 않는다. 장애인을 동정하는 ‘착한 마음’을 키우라고 가르치기보다는, 그들이 처한 불공평한 현실을 바로 보는 ‘시각’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얘기한다. ‘환경을 보호하자’는 구태의연한 구호 대신 어떻게 환경이 오염되어가는지 그 ‘과정’을 보여준다. 고분고분하고 얌전한 어린이가 되라고 강요하지 않고 ‘목소리를 높여서 이야기하는 것이 너희들의 권리’임을 상기시켜준다. 그리고 아이들은 이런 이슈를 놓고, 진짜 자신들의 의견을 내세우며 토론을 벌인다. “장애인을 도와주면 애들이 착한 척하는 거 재수없다고 해서 선뜻 도와주기 힘들다"는 한 아이의 고백에, 다른 아이가 “다들 이기적이어서 그렇다”며 마음의 장애를 앓고 있는 우리들을 돌아보게 하는 의젓한 말을 내뱉는다(2004년 1월호 134-141면). 이렇게 고래가 그랬어는 그 누구도 마치 열려주지 못했던 세상의 이면을 보여주는 한편, 아이들 스스로 생각하고 말하는 법을 터득하게 만든다. 이거, 꽤 든든한 잡지다.
결국, 이 잡지 야심만만하다. 과거 많은 잡지들이 아이들의 기호를 좇다가 자멸해간 것과 달리, 이 독야청청한 ‘고래’는 결코 소년, 소녀에게 아부하지 않는다. 끈적한 설탕 냄새를 풍기며 어린 선원들을 유혹하지도 않는다. 그 콧대 높은 당당함은 ‘고래’를 잡아올리는 진짜 어부는 ‘아이’가 아니라 ‘진보적인 부모’라는 사실에서 비롯된다. 9천원이라는 상당히 높은 책값에서도 그 근거있는 당당함을 엿볼 수 있다. 아이들을 제대로 가르치고 싶은데, 그 방법을 나도 몰라 했던 부모들에게 고래가 그랬어는 어느날 동네 어귀에 생긴 ‘유기농슈퍼마켓과’과 같은 존재일 것이다.
그리고 더 깊숙이 들어가면 ‘아빠를 죽이고 싶던’ 어두운 욕망을 봉인하고 살아야 했던 소년기와 ‘봉고차 아저씨가 내 혀를 막 물고 빨았던’ 폭행의 트 라우마를 숨겨야 했던 소녀기를 거쳐온 이 시대 부모들을 위한 한풀이이자, 포경선 위에서 벌어지는 속 시원한 ‘배연신굿’인 것이다.
결국 어른들은 지갑을 열어 기꺼이 9천원을 갈취당한다. 불량식품에 길들여 있던 식탁이 어느 순간, ‘오가닉(organic)’으로 바뀐다. 아이들은 쉽사히 눈치채지 못한다. 맛이 조금 다른 것도 같지만 만화라는 익숙한 그룻에 담겨 있기 때문에 투정 없이 받아먹는다. 그렇게 고래가 그랬어는 일단 ‘초강력 빔’으로 부모들을 현혹시키고, 그들에게서 반사된 순한 빛으로 아이들을 묶어두는, 결국 자신들의 이야기에 귀기울이게 만들고야 마는 야심만만한 잡지다. 실천력에 충성도까지 갖춘 분명한 독자층을 염두에 둔 예리한 상술도 엿보인다. 하지만 그것이 밉지 않다. ‘동화’책의 환상을 갈기갈기 찢어버리는 잡지, 세상의 진짜 얼굴을 보여줘야 직성이 풀리는 잡지. 이 잡지 위험하다. 그래서 매혹적이다. 아니 그래서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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