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08'에 해당되는 글 24건

  1. 2004/08/31 고래 가격
  2. 2004/08/30 아이들은 자란다
  3. 2004/08/29 농부와 마라토너
  4. 2004/08/29 후아유
  5. 2004/08/28 김규항 사전?
  6. 2004/08/27 일주기
  7. 2004/08/26 화가의 책상
  8. 2004/08/20 세상에..
  9. 2004/08/17 마녀의 말
  10. 2004/08/17 남도불패
  11. 2004/08/14 사투리
  12. 2004/08/13 병영
  13. 2004/08/12 풍문
  14. 2004/08/11 유연해지려고
  15. 2004/08/10 홉스봄
  16. 2004/08/09 그 여자와 함께 한 10년
  17. 2004/08/08 9와 1/2 승강장
  18. 2004/08/07 도대체
  19. 2004/08/07 300년은 더
  20. 2004/08/06 결정적 순간
2004/08/31 00:25
9천원인 고래 가격을 다음달 말에 나올 창간 1주년 호부터 ‘6천원 이하’로 내리기로 했다. 생태부록이 끝나는 게 가격을 내릴 요인이 되긴 하지만 3천원 이상 내릴 요인은 아니다. 고래 가격이 9천원이 된 건 사볼 만한 사람은 제값을 주고 사보고 어려운 사람은 힘닿는 데까지 무료로 보게 한다, 는 특이한 정책 때문이었다. 그래서 현직 교사들에게서 ‘책을 좋아하지만 사보기 어려운 아이’를 추천받아 1년 동안 무료로 보내주고 있는데, 요즘 아름다운 재단 같은 곳에서 하는 미국식 나눔 운동(먹고 남는 걸 적선하는 걸 나눔이라 부르는 이상한 운동)에서처럼 아이를 ‘불쌍한 어린이’로 만들지 않으려다 보니, 종종 아이의 부모에게서 ‘무슨 목적으로 책을 보내는 거냐’라는 항의를 받기도 한다. 몇 달 전 무료구독 숫자가 ‘힘닿는 데’를 넘어버린 상태지만, 가장 근본적인 방법은 역시 책값을 최대한 내리는 것이라고 생각해왔다. 그 첫 시도를 하게 되어 기쁘다. 꼭 필요하지 않은 꼭지들을 정리하고 컬러도 줄이고 해서 더 예쁘고 소박한 책으로 갈 생각이다. 2주년 호 때는 더 많이 내릴 수 있기를.
2004/08/31 00:25 2004/08/31 00:25
2004/08/30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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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할머니집, 고창농악 전수관, 할머니집 등으로 방학 내내 돌던 김단과 김건이 개학을 하루 앞두고 돌아왔다. 아이들은 그새 부쩍 자랐다. 세상은 추레해도 아이들은 자란다.
2004/08/30 15:03 2004/08/30 15:03
2004/08/29 16:13
이번 올림픽에선 장미란 선수의 역도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그러나 미리 작정을 하고 볼만한 경기는 없었다. 오늘 밤에 그럴 만한 경기가 있다. 남자 마라톤. 우리의 호프, 봉달 씨의 훈련 과정이 전에 없이 정교했다는데 과연 봉달 씨가 1등을 할 수 있을까? 부디 그렇게 되기를. 그러나 마라톤에 나서는 모든 선수에게 경의를. 수확량에 관계없이 모든 농부에게 경의를 표하듯.
2004/08/29 16:13 2004/08/29 16:13
2004/08/29 04:27
요즘 세상에서 가장 게으른 자세로 영화를 감상하는 게 일종의 취미가 되었다. '세상에서 가장 게으른 감상 자세'란 이렇다. 1. 베개 두개를 베고 눕는다. 2. 무릎을 구부리고 허벅지 위에 베개를 하나 놓는다. 3. 베게 위에 노트북을 얹는다. 4. 헤드폰을 꼽고 플레이. 5. 다리가 저리면 한 짝씩 번갈아 뻗어준다. 방금 그 자세로 후아유를 봤다. 재상영을 추진한다는 신문기사를 보고 그 정돈가 싶어 부러 본 것이다. 깔끔한 영화다. 이나영은 네 멋대로 해라에서도 그렇고, 쓸쓸함이 베인 영악하지 못한 20대 도회 여성을 연기할 때 누구도 따를 수 없는 연기력을 보인다. 입을 조금 벌린채 눈을 약간 아래로 깔며 뒤를 돌아보는 표정은 소리 없는 시를 듣는 듯하다. 조승우는 영화 전반부에선 별 매력이 없지만, '투명친구의 라이브' 장면 후론 사람이 달라 보인다. 조승우는 기타를 치며 윤종신의 환생, 긱스의 짝사랑, 나미의 유혹하지 말아요, 세곡을 이어 부르는데 곡 사이엔 깊은 한숨 소리가 끼어있다. 이런 장면에선 내가 남자인 게 아쉽다.
2004/08/29 04:27 2004/08/29 04:27
2004/08/28 12:51
왜 책을 안 내냐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비급좌파 이후에 쓴 칼럼들을 묶는 건 여전히 보류 중이지만, 아예 책을 쓰는 건 늘 고려 중이다. 대략 세 가지다.

1. 예수전
2. 딸 키우기
3. 사전

1은 내 인생과 신앙의 숙제이고, 2는 오래 전부터 몇몇 곳에서 제의를 받아온 일종의 육아일기, 3은 전에 강준만 선생이 공개적으로 권유한 게 계기가 되었다.(아래) 강선생의 권유는 과한 표현이 많아서 그대로 수용하기 어려웠는데, 그걸 걷고 보면 재미있을 것도 같다.
전 같으면 이 책들을 그냥 비급좌파처럼 야간비행에서 내고 살 사람이나 사보게 했겠지만 이젠 좀 '적극적'인 생각을 하게 된다. 고래가 고비를 넘기는 데 기여하고 싶기 때문이다. 고래를 위해서라면 비급좌파2는 못 낼까만..

‘김규항 사전’을 아십니까?

위선에 대한 혐오가 김규항의 글이 갖는 마력을 다 말해주진 못한다. 김규항에겐 타고난 그 무엇인가가 있다. 형안이라고나 할까? 서양의 일부 똑똑한 지식인들은 자기 사전을 만든다. 어떤 단어에 대해 자기 생각을 마음껏 펼치는 그런 사전 말이다. 국내 지식인들 가운데 그런 시도를 한 분이 없지는 않다. 나는 한국에서 그 일을 가장 잘 할 수 있는 사람은 김규항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김규항이 지금부터 본격적으로 그 작업에 착수하기 바란다. 한국 지성사에 한 획을 긋는 사건이 일어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내 안목과 판단 능력을 믿으시라. 내가 얼른 보기엔 X도 아닌 것 같지만, 사람 너무 깔보면 안 된다. 내가 왜 그런 요청을 하는지 몇 가지 증거를 보여드리겠다.
‘교양’이란 무엇인가? ‘김규항 사전’에 의하면 그건 “그지없는 진보”다. ‘김규항 사전’은 “보수적인 교양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사실 보수란 사상이 아니라 그저 ‘욕망’이다. 남보다 더 가진 걸 내놓지 않으려는 노력이 ‘사상’인가”라고 말한다. 그리고 추가 해설은 다음과 같다. (이하생략) (강준만, 인물과사상 16호)
2004/08/28 12:51 2004/08/28 12:51
2004/08/27 14:08
25일이 이오덕 선생의 일주기였다는 걸, 오늘 아침 아들 정우 씨에게서 전화를 받고서야 깨달았다. 하여튼 사는 꼬락서니가 이 모양이다. 말년에 세상 돌아가는 꼴을 보며 그리 근심하던 선생은 점점 더 미쳐돌아가는 세상을 보며 얼마나 더 근심하고 계실까. 부디 ‘할 만큼 했다’ 여기시고 편안히 쉬시길 빈다. 선생 같은 사람이 더 이상 존재할 수 없는 세상이라는 게 우리의 비극이다.
2004/08/27 14:08 2004/08/27 14:08
2004/08/26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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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상이 놓인 방은 컨테이너다. 한쪽에 오디오도 놓고 책꽂이도 놓고 근사하게 꾸몄는데 어느 추운 겨울날 “물감을 찍다 붓이 뚝 꺾인” 다음부턴 한여름과 한겨울엔 비워둔다. 테레비를 안 보고 사는 화가는 건너 마을 동무네 집에나 놀러가야 "세상 소식도 듣고 올림픽 이야기도 듣고" 한다. 9.11사건 장면도 사흘 후에야 봤는데 “꼭 영화인 줄 알”았다. 그래도 화가는 인터넷 커뮤니티 활동도 하고 선거 때는 민노당을 찍었다. 박기범 동생이 그러라고도 했지만 “비판적 지지를 하는 사람들은 도무지 상상력이 부족해 보이"기 때문이다. “왜 함께 그리면 되는 걸, 나만 그려봐야 소용없다고 생각하”는지 화가는 알 수 없다. 화가는 요즘 공책에 풀을 그리느라 열심이다. 40여일 여행을 하고 돌아오니 텃밭에 풀들이 아이 키만큼 자랐다. “풀을 뽑을 수밖에 없게 만든 풀들이 미워서” 하나하나 그리는데 그리고 나면 한결 마음이 편해진다. 그러나 지금 화가는 그 어떤 일보다, 25년 만에 찾아온 사랑에 “정신이 하나도 없”는 중이다.
2004/08/26 11:39 2004/08/26 11:39
2004/08/20 05:12
거름.. 꽤 근사한 사회과학 출판사였는데.. 오늘 우연히 월급쟁이 부부의 타워팰리스 입성기라는 기괴하기 짝이 없는 책이 그곳에서 나왔다는 걸 알고.. 이젠 그런 책도 내나 싶어 검색해보니.. 이런 세상에.. 그럴 거면 출판사 이름이라도 바꾸든가..
2004/08/20 05:12 2004/08/20 05:12
2004/08/17 12:31
제 책에서 밝혔듯, 이건 꼭 여자와 남자 사이의 갈등이 아닙니다. 남자는 나쁘고 여자는 불쌍하다는 도식으로 설명할 문제가 아니라, 권력의 남용이 갖는 문제를 말하는 것입니다. 남자가 여자, 특정 남자들이 나머지 남자, 백인이 유색인종, 부자가 가난한 자, 인간이 자연에게 군림하며 휘두르는 권력, 지배와 복종에 관한 문제지요. 가부장제는 내 아버지나 할아버지 혹은 남자 교수와 같은 개별 남자들이 이끌어 가는 게 아닙니다. 가부장제는 참으로 오랜 세월 누적된 고질병으로, 사회의 모든 억압과 불의와 모순, 그리고 폭력과 분노가 뒤엉켜 있는 문화적 시스템의 이름입니다. 모든 상극의 요소가 서로에게 기댄 채 뒤얽혀 있는 복합적 문제임을 명확히 읽어내고 이 전체 시스템을 바꾸지 않는 한, 아무 것도 변화시킬 수 없다는 뜻입니다.

(마녀, 혹은 여신운동가 스토옥 인터뷰에서)
2004/08/17 12:31 2004/08/17 12:31
2004/08/17 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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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불패는 남원을 근거지로 활동하는 풍물굿패다. 풍물굿은 다른 민속연희들과 함께 진보적 인텔리들에 의해서 ‘민족적이고 민중적인 예술’로 채택되었다가 80년대 후반 ‘러시아적인 예술’에 그 자리를 내주었고 90년대 들어 인텔리들이 집으로 돌아가면서 버려졌다. 내 또래 근처로 운동 좀 했다는 사람치고 풍물 좀 안 해 본 사람이 드물고, 여전히 풍물 하는 사람은 더욱 드물다. 남도불패는 참 별스런 패거리인 셈이다. 그들은 이런저런 노동으로 일용할 양식을 구하며 오리정(춘향과 몽룡이 애절하게 이별한) 부근 그들의 근거지에 모여 쉼 없이 공부하고 또 연습한다. 지난 주말, 눈동자에 화폐의 무늬가 새겨진 인간들을 잠시라도 떠나고 싶어 그들에게 갔다. 그들과 소리하고 춤추고 연주하는 그들의 동무들과 나, 도합 열명이 밤새 놀았다. 돌아가며 즉흥 공연을 벌이고 그들 가운데 둘은 별렀던 약혼식을 치렀다. 아무리 마셔도 취하지 않는 흔쾌한 밤이었다. 그들과 놀던 소리가 아직 귓전에 생생하다. 화폐의 자리를 사람이 채우는 소리가.
2004/08/17 02:13 2004/08/17 02:13
2004/08/14 01:14
전라도와 경상도에서 모두 5년 이상 살며 자란 나는 사투리에 능하다. 잘 쓰진 않지만 변별력은 여전해서 영화나 텔레비전 같은 데서 엉성한 사투리가 나오면 바로 감정이입이 중단된다. 영화 황산벌(은 참으로 한심한 영화다. 김선아가 아이들 감싸며 제 남편 계백에게 항의하는 장면만 빼고..)처럼 감정이입 중단을 넘어 폭발할 지경에 이르는 경우도 있다. 흉내 내기 어려운 건 역시 경상도 사투리다. 황산벌에서도 신라 쪽을 맡은 배우 가운데 제대로 된 사투리를 찾아볼 수 없다. 반면에 전라도 사투리는 흉내 내기 쉬운데 그건 전라도 사투리가 그 자체로 음악이기 때문이다.(판소리 아니리가 경상도 사투리인 걸 상상할 수 있는가?) 그 만큼 재미가 있고 흉내도 보편화되어 있다. 영화 목포는 항구다에는 꽤 전문적인 수준의 전라도 사투리가 등장한다. 물론 이건 흉내에 국한한 이야기일 뿐, 전라도 사투리를 상용하는 건 여전히 주류 사회의 정회원이 되길 포기하는 태도가 된다.
2004/08/14 01:14 2004/08/14 01:14
2004/08/13 14:07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는 바로 내 고등학교 시절 이야기다. 78년에 고등학생이 되었고 2학년 말 박정희가 죽었고 3학년 초에 광주항쟁이 있었다. 우리는 매일 아침 “구국의 유신으로 새 역사를 창조하자”라고 붙은 정문으로 등교했다. 선생은 학생에게 폭력적이고 학생은 학생끼리 폭력적이었다. 고등학교는 다름 아닌 병영이었다. 매일처럼 패고 찍고 밟아댔다. 그러나 고등학교가 특별히 더 그랬던 건 아니다.

그 시절을 그리워하며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을 그 시절로 되돌려 보내주면 행복하게 살까? 천만에. 모르긴 해도 절반쯤은 진지하게 자살을 생각할 것이다. 그들은 그 시절이 끔찍한 폭력의 세상이었다는 사실과 자신이 그런 끔찍한 세상에서 빠져나왔다는 사실을 잊고 있다. 그걸 깨닫는 순간 그들은 죽고만 싶을 것이다.
2004/08/13 14:07 2004/08/13 14:07
2004/08/12 03:13
김규항이가 직원들 월급은 잘 안주면서 제 건 꼬박꼬박 챙겨간다, 는 풍문이 있단다. 나야 풍문을 벗 삼은 지 오래라 그저 그러려니 하는데, 아내에겐 몹시 민망한 이야기다. 8개월째 땡전 한 푼 안 가져오는 남편을 둔 여자에겐 말이다. 그래서 그런 풍문을 전파하는 사람에게 한마디 한다. 그러지 마라.
2004/08/12 03:13 2004/08/12 03:13
2004/08/11 13:03
"체제의 안팎 경계를 줄타기를 하며 안위를 도모하는
처세의 달인들과 함께 놀기 싫어서
제도매체에 글 안 쓰고 아이들 잡지나 만들며 산다고 다짐했었는데
요즘은 내가 뭐 그리 혼자 잘났나 싶어
좋은 말로 좀 유연해지려고 하는 그런 즈음입니다."

(지난밤 어떤 이에게 보낸 답장에서)
2004/08/11 13:03 2004/08/11 13:03
2004/08/10 21:18
에릭 홉스봄은 누구나 인정하는 ‘20세기를 대표하는 맑스주의 역사학자’지만, 나는 그의 본격적인 저작들보다 짤막한 산문들이 더욱 흥미롭다. 대역사가의 안목과 통찰이 재즈나 이런저런 자질구레한 문화적 사건들과 조우하는 풍경은 의외로 아기자기하다. 그는 록이 재즈를 죽였다고 늘 투덜거린다. 결국 록의 팔자가 재즈보다 나을 게 없다는 걸(록은 자본과 방송에서 재즈를 압도했지만 동시에 그 정신적 죽음을 맞았다.) 알면서 재즈에 대한 애정을 그렇게 ‘무식하게’ 드러내는 그는 참 멋스럽다. 그러나 그의 모든 것을 꿰뚫는 건 세계의 진보에 대한 굴하지 않는 신념이다.

“공산주의를 비롯해서 대의를 주장하는 모든 이데올로기가 갖는 최악의 문제는, 너무나 고결한 나머지 자신만이 아니라 타인의 희생까지도 정당하게 여기는 것이라는 자유주의자들의 지적은 그르지 않다. 또한 세상에 대해 적당한 기대감을 갖는 사람만이 끔찍한 해악을 자신과 타인에게 강요하는 어리석음을 피할 수 있다는 지적도 그르지 않다. 그러나 나는 원대한 희망과 절대적인 열정이 없다면 인간이 인간 본래의 구실을 할 수 없다는 생각을 버릴 수 없다. 비록 그런 시도가 실패하더라도 말이다.” (1999년 인터뷰)
2004/08/10 21:18 2004/08/10 21:18
2004/08/09 11:48
“김단. 먹고 자는 시간을 뺀 하루의 대부분을 그리기와 종이접기 따위로 보내는 내 딸이다. 김단이 태어나자 아내와 난 김단에게 결혼을 권유하지 않을 것을 약속했다. 갓난아일 두고 좀 싱거운 짓이었고 얼마간 관념적이었지만 여자가 자존을 지키며 살기 힘든 세상에 또 하나의 여자를 내놓은 장본인들은 긴장했고 그렇게라도 미래를 대비하고 싶었다.”(딸 키우기, 98년 8월)

나를 아는 사람들은 대개 김단의 이름도 기억한다. 그는 98년에 쓴 ‘딸 키우기’라는 글에 처음 등장한 이래 여러 번 내 글에 등장했다. 한 사람이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은 그가 접촉하는 모든 대상에 반영되는 것이지만 누구에게나 다른 모든 대상들을 가늠할 만한 기준 대상 같은 게 있다. 내 경우는 아이들, 특히 김단이다. '특히 김단'인 건 물론 그가 여성(이라는 소수자)이기 때문이다. 김단은 이제 초등학교 4학년, 우리 나이로 열한 살이 되었다.

“메신저 창에 ‘조폭소녀’가 접속을 해왔다. 김단이다. ‘이 녀석은 제 별명을 만족해하는군.’ 나는 혼자 조용히 웃었다. 몇 달 전 김단이 제 동무들, 특히 남자 동무들 사이에서 ‘조폭소녀’라 불린다는 걸 알았다. 겉모습에서부터 하고 노는 짓까지 여느 여자아이들과 다를 게 없는 김단은 유독 ‘남자의 폭력’ 앞에선 자못 전사로 변한다고 했다. ‘잘 가고 있군.’ 나는 그때도 혼자 조용히 웃었었다.”(딸 키우기 2, 2003년 4월)

지난 해 어느 날, 언제나처럼 아내와 식탁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데 아내가 뭔가 생각났다는 듯 말했다. “형, 단이가 욕을 좀 하나봐.” “욕?” “응, 병수 엄마가 그러는데 엄마들끼리 그런 이야기가 있대.” “김단이 여자라서 더 그렇게 말하는 거겠지.” “그 엄마들이 ‘여자애는 욕을 하면 안 된다’는 편견이 있는 건 사실이야. 그렇다고 하더라도 욕을 많이 하는 게 좋은 일은 아니잖아.” “그야 그렇지.”

그날 밤 나는 김단의 방문을 두드렸다. “단아, 아빠가 궁금한 게 있는데.” “뭔데, 아빠?” “김단이 욕을 많이 한다고 이야기가 있어서.” “누가 그래?” “그냥 들은 얘긴데, 욕을 좀 하긴 하지?” “응.” “어떤 욕인지 아빠한테 말해 줄래?” “말하기 싫은데.” “아빠가 욕을 해야 할 때 못하는 건 바보라고 했었잖아. 괜찮으니까 말해 봐.” “음... 씨팔” “씨팔, 그리고?” “좆같이.” “아빠가 하는 것 보고 배운 거니?” “영화 같은 데서도 나오잖아.” “그런 욕을 누구한테 하지?” “남자애들한테.” “여자애들한테는?” “한번도 한 적 없어.” “남자애들이 어쩔 때 하는데?” “여자애들 이유 없이 때리고 괴롭히고 그럴 때.” “자주 하니?” “아니, 몇 번 한 적 없어.” “그래, 말해줘서 고맙구나. 나중에 또 이야기하자.”

서둘러 이야기를 마친 건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이유 없이 사람을 괴롭히는 놈들에게 욕을 해주었다니 잘못은커녕 오히려 대견스럽기만 했다. 초등학교 남자 아이들이라는 게 좀 보태서 말하면 앞뒤 없이 날뛰는 원숭이 새끼들과 다를 바 없는데(더 지난다고 반드시 나아지는 것도 아니지만) ‘씨바’나 ‘졸라’ 따위 체제내화 한 욕으로 제압하기란 쉽지 않으리라. 아내 역시 “그 엄마들이 그런 욕을 들었으니 얼마나 놀랬겠어.”하며 웃고 말았다.

그러나 그 일은 그렇게 끝나지 않았다. 몇 달 전 어느 날 아내가 다시 말했다. “단이가 남자아이들에게 너무 반감을 갖는 것 같아.” “김단은 여자애들 괴롭히는 놈들한테 그런다잖아.” “그건 좋은데 남자애들한테는 전반적으로 좀 거칠게 행동하는 게 보여.” “거칠게 안 하면 안 되니까 그렇겠지.” “우리가 단이가 욕하는 걸 알고도 가만 두었던 건 여자 남자를 떠나서 단이가 이유 없이 약한 사람을 괴롭히는 일과 싸웠기 때문이잖아.” “동감이야.” “그런데 내가 요즘 관찰해보니까 남자애들한테는 무작정 거칠게 대하는 경향이 있어.” “그래...” “단이네 반 홈피에 들어가 봤는데 단이 게시물에 남자아이들의 뭐라고 해놓은 줄 알아?” “뭐라고?” “‘사람이나 패지 마라!’ ‘조폭소녀는 지구를 떠나라!’ 그런 식이야.” “재미있군.” “그런데 그걸 올린 게 여자애들을 이유 없이 괴롭히는 아이가 아닐 수도 있겠구나 싶었어.” “그래, 그건 좋은 게 아니지.”

말하자면 김단은 ‘분리주의’적 경향을 보인다는 얘기였다. 아내와 나는 김단에게 어릴 적부터 여성의식을 심어 주고 주체적인 여성으로 키우는 데만 집중하느라 그런 과정에서 나타나는 또 다른 편향에 대해선 많이 생각하지 않았다는 걸 비로소 깨달았다. 간단히 끝날 문제가 아닐 수도 있었다. 김단은 나름대로 ‘체험’에 기반하여 그런 것일 테니 말이다. 그러나 이 문제를 잘 해결하면 김단의 의식이 한층 성숙해진다는 것도 분명했다. 나는 김단의 행동도 좀 살펴볼 겸 며칠 묵혀두었다가 김단과 대화했다.

“단이는 남자애들이 싫어?” “응, 조금.” “남자애들이 다 여자애들 괴롭히는 건 아니잖아?” “그렇지는 않지만 바보 같은 짓하는 건 거의 다 그래.” “아빠가 보기에도 남자애들이 좀 그렇긴 해.” “ 얼마나 짜증나는데.” “그래.” “아빠가 남자애들한테 지면 안 된다고 했잖아.” “아빠가 그랬지. 그런데 아빠가 남자애들을 전부 미워하라고 한 건 아니야.” “그런데 남자애들이 거의 다 그렇다니까.” “그래 아빠도 알아. 그런데 거의 다 그렇다는 게 전부가 그렇다는 건 아니야.” “그건 그래.” “김단이 그렇게 보여서 아빠가 좀 걱정이 돼.” “...” “김단, 진짜 강한 사람은 겉으로 거칠지 않다고 아빠가 그랬지?” “응.” “평소엔 거친 사람들은 꼭 필요할 땐 겁쟁이들이야. 아빠는 단이가 누구에게나 편안하고 부드럽지만 꼭 필요할 땐 용감하고 그랬으면 좋겠어.” “아빠는?” “김단이 보기에는 어때?” “좀 그런 것 같아.” “솔직히 말하면 아빠도 그렇지 않아. 하지만 그렇게 되려고 노력을 하지. 단이도 조금만 노력하면 어때?” “알겠어요, 아빠.”

김단은 부러 존댓말로 대화를 마무리하고는 환하게 웃어보였다. 코끝이 찡해졌다. 그와 함께 한 10년의 시간들이 내 가슴 속에서 환등기 소리를 내며 돌아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추신
어느 존경받는 진보적 인사가 정작 제 식구들, 특히 제 딸에게서 전혀 존경받지 못하는 걸 보고 놀란 적이 있다. ‘저렇게 훌륭한 아버지를 왜 존경하지 않는 걸까?’ 얼마가 지나서야 나는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흔히 짐작하듯(그리고 그런 인사들의 가장 편리한 면죄부인) ‘세상에 헌신하느라 가족에게 소홀해서’가 아니었다. 그는 실은 매우 가부장적인 사람이었던 것이다.
딸은 단지 딸, 아들 하는 자식 중의 하나가 아니다. 딸은 한 남자가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가장 정교하게 알아낼 수 있는(폭로하는), ‘삶의 시험지’이다. 한 남자가 ‘딸에게서 존경받는 인간’이 되려고 애쓴다면 그의 삶은 좀더 근사해질 것이다.

(한겨레21 ‘딸 키우기’ 특집에 쓴 글.)
2004/08/09 11:48 2004/08/09 11:48
2004/08/08 11:39
누가 그러는데..
서울역 9와 1/2승강장에서 열차를 타면 호그와트 학교로 갈 수 있단다.

근사한 농담.
2004/08/08 11:39 2004/08/08 11:39
2004/08/07 15:09
지난번 쓴 편지와 답장말 지에서 퍼다 실었던 모양이다. 거기 달린 코멘트인데 “김규항의 대단히 시의적절하고 올바른 비판”이라는 평가만 각자의 몫으로 돌린다면 누구라도 되새겨 볼 만한 글이다.(애석하게도 여전히 논의는 "너 지금 우리한테 뭐라고 했어!"를 맴돌고 있다.) “홍기빈”이라 적혀 있는데 칼럼 쓰는 홍기빈 씨인지는 잘 모르겠다.



저는 질문자인 고유미 님이라는 분의 의도와 진심에 대해 공감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여성주의"냐 "마초"냐 하는 말의 문제로 인하여 김규항님의 대단히 시의적절하고 올바른 비판의 논점이 흐려지는 사태는 막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두 말 모두가 아주 모호하고 애매하기 짝이 없습니다.

첫째, 도대체 "여성주의자"의 정의가 무엇입니까? 하나의 "경향적 흐름"이라는 것 이외에, 여성주의자와 비여성주의자를 가르는 어떤 이념적 기준이라 할 것이 있습니까? 내가 알고 있는 어떤 정치적 이념도 이토록 피와 아를 애매하게 한 상태에서 공격적 배타적 방법으로 개념을 쓰지 않습니다. 제가 보기엔 이 애매함은 소위 gender와 sex를 분리하고 이를 편의에 따라 마구 적용하고 있는 현재의 페미니즘 이론에 도사리고 있으며, 또 그러한 애매함과 무원칙을 정치적인 타협과 이익에 따라 이용하는 페미니스트들에게 책임이 있습니다. 도대체 일반 여성들이 당하는 불이익이 혹시나 여성운동의 보수화로 커지지 않을까가 걱정이 되어 온갖 욕을 무릅쓰고 뛰어드는 김규항씨는 "여성주의의 적"이고, Herstory같은 잡지에다가 한 달에 한 번씩 음담패설 적어내는(저 이거 나쁜 뜻으로 말하는 것 아닙니다) 여성학 전공자들은 여성주의자입니까?

둘째, 이 Macho라는 말의 애매함입니다. 도대체 무슨 뜻입니까? 제가 보기엔 그 애매한 "여성주의"가 적으로 규정한 것들은 모조리 마초입니다. 그래서 마초의 정의는 여성주의의 적이며 또 여성주의의 정의는 마초의 적이라는 어처구니없는 순환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김규항씨가 "여성주의"를 공격했다는 이유로 "마초"가 되고, 그 바람에 그가 무슨 말을 하려했고 무슨 주장을 했는지는 묻혀지고 편 갈라 싸움이 벌어지는 꼴은 그야말로 시장판 싸움이상이 될 수 없습니다.

참고로, 이 마초라는 말 쓰는 분들은, 원래 이 말이 스페인 말로 무슨 뜻이고, 어째서 이것이 백인 중산층 여성들에 의해 전혀 다른 현재 우리나라에서 쓰이는 의미로 바뀌었는지 좀 알아보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이 말을 쓰면서 자기들이 백인 중산층 여성주의의 입장에 서는 것 같은 어처구니없는 "서구 중심주의"에 빠지는 일이 없도록 주의하기를 빕니다. 현재의 여성주의 논쟁에는 "여성이냐 계급이냐"는 구도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서구의 소위 "진보" 지식계에 대한 정신적 노예 상태로 인한 3세계 민중들의 소외라는 또다른 모순 축이 존재한다는 것을 꼭 의식해야 한다고 봅니다.
2004/08/07 15:09 2004/08/07 15:09
2004/08/07 02:20
강유원 사이트 에 적힌 재미있는 말.
"앞으로 300년은 더 싸워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니 절망할 게 무어란 말인가?"
2004/08/07 02:20 2004/08/07 02:20
2004/08/06 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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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정적 순간(The Decisive Moment)은 1952년에 펴낸 브레송의 사진집 제목이자 브레송의 사진 세계를 대표하는 말이기도 하다. 브레송은 대상의 기하학적 구도의 면에서, 그 대상에 담긴 진실의 면에서, 가장 결정적인 순간을 잡는 걸 사진이라고 생각했다.
알려진 대로, 브레송은 스스로 “내 눈의 연장”이라 부르던 라이카 소형카메라만을 사용했고 일체의 연출이나 트리밍을 용납하지 않았다. 심지어 플래시도 사용하지 않았다. 카메라에 세계를 담아 넣으려는 욕심보다는 세계를 카메라로 포착하려는 그의 담백한 태도는, 온갖 첨단 장비들을 주렁주렁 매달고 다니는 프로 사진가들과 카메라보다 포토샵을 더 중요한 장비로 여기는 만인의 사진가들로 넘쳐나는 오늘을 되돌아보게 한다.
문학이든 예술이든 모든 거장의 말년은 시든 재능을 옛 명성으로 포장하며 보내는 것이다. 그러나 브레송은 70년대 중반 이후엔 사진은 접고 데생에만 전념했다. 셔텨만 누르면 ‘거장의 작품’이 되는 시절이 오자 스스로 셔터 누르기를 그만 둔 셈이다. (그러나 그의 데생은 그의 재능이 시들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내가 브레송을 주문하던 바로 그날, 브레송이 세상을 떠났다는 걸 오늘 알았다. 결정적 순간은 누구에게나 존재한다.
2004/08/06 12:19 2004/08/06 12: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