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06'에 해당되는 글 20건

  1. 2004/06/24 우리의 전쟁
  2. 2004/06/21 자전거 도둑 2
  3. 2004/06/21 어쩔 수 없잖아요 별
  4. 2004/06/18 자전거 도둑
  5. 2004/06/17 슬프다
  6. 2004/06/16 유시민, 아비투스, 김태촌
  7. 2004/06/15 한국에서 가장 보수적인 정치인?
  8. 2004/06/13 무간도 2
  9. 2004/06/11 넥타이
  10. 2004/06/11 주례사
  11. 2004/06/09 100만인, 어서 채웁시다
  12. 2004/06/08 인권과 생태
  13. 2004/06/08 최대한 행복한 모습으로
  14. 2004/06/07 이성욱 형
  15. 2004/06/05 신체적 접촉에 관한 짧은 회상
  16. 2004/06/04 희한한 기억
  17. 2004/06/03 엠씨 스나이퍼의 입대
  18. 2004/06/02 부탁이야
  19. 2004/06/02 이를테면
  20. 2004/06/01 딱지
2004/06/24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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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 사악한 것은 단지 대규모의 폭력이라서가 아니라, 인간이 만든 가장 공공연한 착취극이기 때문이다. 전쟁은 언제나 ‘조국의 이익’을 빌미로 벌어진다. 그러나 전쟁이야말로 조국은 하나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전쟁은 언제나 벌이는 놈과 치루는 놈이 따로 있는 것이다. ‘조국의 이익’은 언제나 전쟁을 벌이는 놈들의 이익이다.

말하자면, 전쟁이란 가진 놈들이 좀더 갖기 위해 제 나라의 없는 집 자식들의 목숨을 팔아 벌이는 장사놀음이다. 그리고 제국주의에 빌붙어 사는 나라의 괴뢰정권은 다시 제 나라의 없는 집 자식들의 목숨을 판다. 이 일사불란한 동원 체제에서 전투병인가 비전투병인가, 군인인가 민간인 신분인가를 따지는 건 우스운 일이다. 침략전쟁의 저항 세력에게 그런 차이를 인정하라고 말하는 건 더욱 우스운 일이다.

김선일은 그 일사불란한 동원 체제의 첫 제물이다. 제국주의에 빌붙어 사는 나라에서, 없는 집 자식으로 태어난 게 그의 죄다. 그래서 그의 죽음은 그와 같은 죄를 가진 모든 우리의 죽음이다. 민주고 반민주고 이념이고 정치고 다 떠나서, 김선일의 죽음 이후에도 파병을 말하는 모든 세력은 우리의 적이다. 우리는 기꺼이 그들과 싸워야 한다. 그게 우리가 치러야 할, 우리의 전쟁이다.
2004/06/24 10:06 2004/06/24 10:06
2004/06/21 21:13
블로그 글을 본 아내 “자전거를 돌려받지 않더라도 범인이 아이라면 주의는 주자.”
영식(동네 친구) “어떻게 하든 일단 테입을 보자. 내가 보겠다.”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호찬 “주례 보답으로 건이 자전거를 사주고 싶다.”
김건 “호찬이 삼촌이 사준다면 도둑을 잡길 바라지 않는다.”
2004/06/21 21:13 2004/06/21 21:13
2004/06/21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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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쩔 수 없잖아요 별
우리가 지구라고 부르는 이 별의 진짜 이름이다.
2004/06/21 17:51 2004/06/21 17:51
2004/06/18 12:43
며칠 전, 문 앞 계단에 묶어 둔 김건의 자전거를 누가 가져갔다. 이 아파트는 경비업체가 상주하는 데다 1층 현관문이 카드식이라 외부인 출입이 어렵다. 자연히 옆집을 출입하는 아이들 중 하나일 가능성을 생각하게 된다. 옆집 부부는 아이들을 가르치며 사는데 밤늦게까지 수십 명의 아이들이 드나든다.

자전거를 묶어둔 곳은 아이들이 출입하며 하드도 까먹고 컵라면도 먹고 하는 곳이다. 관리실에 물어보니 자전거라면 1층 현관에 달린 카메라를 피할 수가 없다고 한다. 넉넉잡아 하루치 테입만 돌려보면 자전거를 가져간 게 누군지 알아낼 수 있다.

김건과 대화했다. “건이 자전거 누가 가져갔을까?” “어떤 형이.” “왜 가져갔을까?” “자전거를 타고 싶은데 집이 가난해서 자전거 살 수 없으니까.” “잡아야겠지?” “응.” “잡아서 혼내줄까?” “아니.” “잡아야 한다며.” “혼내주진 말고 그냥 자전거는 돌려받고 싶어.”

아내에게 그 얘기를 했더니 “다시 사주긴 어렵다”고 말했기 때문일 거라고 했다. 이제 막 자전거(는 인간이 만든 가장 근사한 물건이다)의 세계에 빠져든 아이의 실망이 오죽하랴. 그런데 테입을 확인하러 가는 게 내키지가 않아 차일피일이다. 돌려받으면 다시 한 아이가 다시 자전거를 잃게 되니...
2004/06/18 12:43 2004/06/18 12:43
2004/06/17 07:22
착한 사람들이 끝없이 지쳐간다.
2004/06/17 07:22 2004/06/17 07:22
2004/06/16 09:27
유시민은 매우 나쁜, 이젠 극우 진영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아비투스를 가진 사람이다. 그의 대중적 이미지(대표적인 개혁 정치인이라는)와 그의 나쁜 아비투스의 부조화는 역설적으로 그를 한국 사회의 재앙으로 만들어낸다.

이를테면, 그는 토론에서 “학자로서 양식을 가진 분인 줄 알았는데 실망스럽다.” “격조 높은 토론을 기대하고 왔는데 실망했다.” 따위의 말들은 개연성 없이, 별다른 근거를 제시하지 않고, 습관적으로 사용한다. 대중들은 텔레비전의 속도감 속에서 그런 말들이 개연성이나 근거를 갖지 않는다는 것을 되새기기 어렵기 때문에 순식간에 유시민의 상대를 “학자로서 양식을 가지 못한 사람”이거나 “토론의 격조를 망치는 사람”으로 인식하게 된다.

유시민은 또한 자신에게 불리한 질문엔 절대로 답하지 않으면서, 역시 개연성이나 근거를 제시하지 않은 채 그런 질문 자체를 ‘쓸모없는 것’처럼 깍아 내린다. 대중들은 애초의 질문보다는 그 질문을 배제한 유시민의 답변에 휩쓸리면서 오히려 유시민의 그런 대응을 우문현답으로 인식하게 된다.

수많은 사람들이 콧구멍 생김새까지 들여다보는 텔레비전 토론에서도 그런 식이니 좀더 작전이 가능한 부분에서야 더 말할 것도 없다. 유시민은 건달로 말하자면 김태촌에 해당한다. 언제나 자유주의적 양심과 게임의 룰을 말하지만, 실은 ‘주먹 싸움에 회칼을, 그것도 등 뒤에서’ 사용하는 것이다.
2004/06/16 09:27 2004/06/16 09:27
2004/06/15 02:39
(이해찬이 나대던 시절도 심란했고 유시민이 나대는 시절도 심란한데 둘이 함께 나대니 참으로 심란한 시절이다.)

유시민은 이해찬의 보좌관이었고 이해찬은 유시민의 의원님이었는데 하여튼 둘은 많이 닮았다. 기만적인 판타지를 사용하는 대중 정치인이라는 점에서 특히 그렇다.

이해찬은 민주주의 이행기에 반독재투쟁기의 판타지를 사용하면서 제 입지를 구축했는데, 유시민은 근본적 민주화가 숙제인 오늘 민주주의 이행기의 판타지를 사용하며 제 입지를 구축한다. 말하자면 둘은 이미 지난 시간을 오늘에 불러들여 보수화한 자신을 은폐한다.

유시민은 거기에 덧붙여 ‘지식인 판타지’까지 사용한다.

“나는 자유주의자의 양심상 진보주의가 탄압받는 건 볼 수가 없다.”
“진보정당을 찍는 건 사표다.”

같은 시점에 두 가지 말을 동시에 했다면 미친놈이거나 나쁜 놈일 것이다. 그러나 유시민은 오묘하게도 두 말을 재료로 ‘지식인의 양식을 가진 정치인’이라는 최종적인 판타지를 만들어낸다.

유시민은 현재 시점에서 한국에서 가장 보수적 영향력을 가진 정치인이다. 물론 ‘개혁적 보수’ 정치인인 그보다 더 보수적인 정치인들이 많지만 정치적 영향력 면에서 유시민 만큼 보수적인 정치인은 없다.

유시민의 개혁성은 대개 이미 개혁적인 대중들에게만 영향을 미치는 반면(결국 실제로 사회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는 반면), 유시민의 보수성은 진보적일 소지를 가진 대중들에게까지 강력한 영향을 미친다.

정형근이라든가 한나라당의 떠올리기만 해도 비위가 상하는 인물들도 진보적일 소지를 가진 대중들에게 유시민만큼 보수적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가장 심각한 악은 ‘은폐된 악’인 것이다.
2004/06/15 02:39 2004/06/15 02:39
2004/06/13 11:23
“가슴이 아파야 진짜 예술이지. 가슴도 아프게 못 한다면 그게 무슨 예술이야. 차라리 현실 세계를 보는 게 낫지.”

가장 편안하게 대답할 수 있는 사람에게서, ‘어떤 예술이 좋은가’ 라는 질문을 받는다면 그렇게 대답할 것이다. 무간도2는 그런 내 취향의 범주에 들어온다. 이 영화가 좀더 가슴아픈 이유는, 2편이 1편의 배경일 때 2편은 1편의 내면을 들여다보기 때문이다.
2004/06/13 11:23 2004/06/13 11:23
2004/06/11 23:55
주례를 수락하면서 유일하게 내세운 조건은 "넥타이는 안 맨다"였다. 그런데 며칠 지나면서 결혼식이라는 게 두 사람만 하는 것도 아니고 나 편한대로 하면 안 된다 싶어 "매보겠다"로 번복했다.

그걸 사려면 어디 백화점에라도 가야 하는데 요 며칠 그 만한 경황이 없었다. 어젯밤엔 결혼식 때 썼던 와이셔츠와 넥타이가 있나 싶어 아내와 뒤져보았지만 십몇 년 전 한번 걸치고 만 게 남아 있을 턱이 없었다.

예식장에 조금 일찍 가서 근처 백화점에 갔다. 와이셔츠부터. 한번 입고 말 것이니 비싼 걸 살 이유도 없고 해서 행사 매대로 갔다. 그런데 참 난감하다. 민무늬 흰색은 아예 없는데, 주례가 스트라이프 들어간 걸 입어도 되는 건지, 회색이나 파랑 색을 입어도 되는 건지...

10년 이상 옷이라곤 라운드 티, 점퍼, 모자의 조합으로만 때우며, 넥타이 맨 인간들과 상종 안하며 살아왔으니 그럴밖에. 몇 가지 들었다 놨다 하다가 넥타이는 시작도 못 하고 백화점을 나왔다. ‘주례가 넥타이 안 맨다고 결혼식이 깨지랴.’ 유한함이 철철 넘치는 강남의 백화점 풍경에 진작부터 비위가 상하기도 했다.

주례 대기실 들어온 만난 신랑이 그런다. “결국 안 하셨네요.” “백화점에 갔었어. 그런데...” “끔찍하시죠.” 신랑이 킥킥 웃는다. 이젠 됐구나 싶다.
2004/06/11 23:55 2004/06/11 23:55
2004/06/11 23:31
열한 살 먹은 제 딸에게 제가 주례를 선다고 했더니, “아빠는 안 어울리는데.” 그랬습니다. 그 아이가 생각하는 주례 선생님의 이미지와 그 아이의 아빠는 많은 거리가 있는 모양입니다. 사실 저는 신랑 최호찬 군보다 고작 열 살 쯤 많고, 주류 사회 혹은 제도권 사회에서 내세울 만한 지위를 갖고 있는 사람도 아니니, 일반적인 의미에서 주례의 자격은 갖추지 못한 셈입니다.

그런 제가 두 사람의 주례 부탁을 받아들인 이유는, 두 사람이 사는 모습이 예뻐 보여서이기도 하지만, 두 사람이 저에게 주례를 부탁하는 이유라고 말한 ‘주례의 세 가지 조건’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그것은 이렇습니다.

첫째, 신랑과 신부 둘 모두 존경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둘째, 본받을 수 있는 부부 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셋째, 본받을 수 있는 자녀교육을 하고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두 사람은 참 욕심이 많은 사람들입니다. 물론 저는 그 세 가지 조건을 만족시킬 만큼 훌륭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러나 저는 두 사람이 저를 그렇게 생각했다는 게 고맙고, 두 사람의 부탁을 들어줌으로써 그 고마움을 제 삶에서 책임지는 계기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는 두 사람에 대한 고마움을 담아 두 사람에게 다시 세 가지 당부를 합니다.

첫째, 두 사람은 대화를 지속하길 바랍니다. 결혼을 하고 살다보면 연애 시절의 열정은 시들해지고 대화가 적어지기 마련입니다. 그러면 어느 새 서로에 대한 이해와 신뢰를 잃게 됩니다. 모든 인간관계가 그렇지만 대화는 특히 부부 생활의 기초입니다. 그리고 대화는 민주적이어야 합니다. 민주적이지 않다면 대화가 아닙니다. 특히 신랑은 우리 사회가 여전히 남성 위주의 사회이고, 자신이 그런 사회에서 오랫동안 길들어져 있다는 걸 늘 생각하기 바랍니다.

둘째, 두 사람은 존경을 지속하길 바랍니다. 서로 존경하려면 바로 살아야 합니다. 오랜 권위주의 시절에서 빠져나온 우리는, 어느 새 모든 가치를 돈으로 환산하는, 경쟁력이 있으면 살아남고 경쟁력이 없으면 죽어나가는 세상에 살게 되었습니다. 두 사람은 두 사람이 가진 경쟁력을 두 사람의 삶을 안락하게 하는 일보다는, 이 불공정한 세상에서 고통 받는 사람들과 연대하는 데 사용하길 바랍니다. 그렇게 살 때 두 사람은 비로소 내 아내 내 남편을 넘어 한 인간으로서 서로 존경할 수 있습니다.

셋째, 아이를 세상에 이로운 사람으로 키우길 바랍니다. 그래서 세상에 한 인간을 추가한 장본인들로서 최소한의 책임을 다하길 바랍니다. 부모가 자식에게 하는 교육은 말로 하는 게 아닙니다. 부모가 서로 존경하며 민주적인 삶을 살아가는 게 바로 교육인 것입니다. 그렇게 살아갈 때 비로소 아이도 제 부모를 제 부모라서가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존경할 수 있습니다.

제가 드린 세 가지 당부의 말은 제 자신에게 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여기 모이신 모든 분들이 한번쯤 되새겨보는 말이길 기대합니다.

오늘은 정말 기쁜 날입니다. 사람이 모여서 하는 일 가운데 혼인 잔치처럼 기쁜 일이 또 있겠습니까. 이 세상의 모든 선한 사람들이, 오래도록 두 사람의 출발을 기쁘게 기억할 수 있도록 두 사람이 살아가길 빕니다.
2004/06/11 23:31 2004/06/11 23:31
2004/06/09 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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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이동권 확보를 위한 100만인 서명운동

파병 대통령 탄핵엔 하룻밤에도 100만이 모이는데, 장애인 이동권 서명운동은 3년째인데도 100만을 못 채우다니 참 민망한 일입니다. 그깟 백만인, 어서 채웁시다.
2004/06/09 00:30 2004/06/09 00:30
2004/06/08 19:03
인권생태를 두 축으로 고래 개편 시작.
2004/06/08 19:03 2004/06/08 19:03
2004/06/08 14:52
만약 우리가 햄버거를 먹고, 다이아몬드를 사고, 롤스로이스를 타야만 행복해질 수 있다고 말하는 그런 세상에서 살고 있다면, 우리는 이것이 완전히 틀린 생각이라고, 최대한 행복한 모습으로 말하는 것입니다.

아룬다티 로이
2004/06/08 14:52 2004/06/08 14:52
2004/06/07 23:50
고 이성욱 형은 나보다 두 살 많은 과동기다. 그나 나나 출석일이 부족한 학생들이라 자주는 못 봤지만 친했다. 내가 제대하자 그는 광주 망월동으로 해서 남도를 도는 여행을 제의했다. 보길도에서 동네 청년 넷과 달빛 한점 없는 해변에서 난투를 벌일 때, 함께 바다에 빠져죽자 매달리는 두 놈을 간신히 뉘어놓고 그를 찾으니 웬 걸, 그는 다른 두 놈에게 설교 중이었다. 그는 참 언변이 좋았다.

나를 서울영상집단에 소개해 준 것도 성욱 형이었다. 나에게 다도를 가르치려 애쓴 것도 한국에 처음 들어온 볼쇼이 발레 구경을 시켜 준 것도 그였다. 90년대 들어 그나 나나 어느 새 운동판을 벗어나 살게 되었다. 그는 문학평론과 문화평론을 겸하면서도 일정 수준을 잃지 않는 평론가였고, 이런저런 돈 안 되는 책만 골라서 내던 나도 어쩌다 글이랍시고 쓰게 되었다.

살다보니 조금씩 덜 보게 되었지만 연초엔 꼭 그가 전화를 했다. “규항아, 내 올해는 꼭 장가가야겠다.” “그래야지, 형.” 재작년엔 전화가 없었다. 그리고 그해 11월 13일 그의 죽음을 신문에서 보고 알았다. 와세다 대에 유학 중이던 그는 한국에 잠깐 들어왔다가 간암3기 진단을 받았다고 했다. 그는 조용히, 심지어 <문화과학> 동료들에게도 알리지 않고 한달 쯤 투병하다 죽었다.

그는 글을 적게 쓰는 편이 아니었는데 책은 한권밖에 내지 않았다. 지식인입네 하는 사람들이 책 한권 분량만 되면 제 얼굴 표지에 크게 박아 동작 빠르게 팔아먹는 시류에 비하면 특이한 행동이었다. 그가 죽은 지 한해 반이 지났고 그의 책 네 권이 한꺼번에 나온단다. 돌이켜보면 그에게 고맙다는 말을 한번도 못했다. 나중에 만나면 그 말부터 해야겠다.
2004/06/07 23:50 2004/06/07 23:50
2004/06/05 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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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송희의 만화는 현실에 대한 현미경적 관찰로 가득 찬 산문을 읽는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대개 현실에 대한 현미경적 관찰은 현실은 변하지 않는다는 허무주의에 봉사한다. 그러나 정송희는 그런 관찰이야말로 현실을 ‘야금야금’ 변화시키는 방법임을 알려준다. 정송희에게 현실은 거대한 신체이며, 신체적 접촉에 생략이란 없다."

정송희의 신체적 접촉에 관한 짧은 회상 표지에 쓴 추천글. 교정지만 보고 작가가 어떤 사람인지 상관없이 추천글을 쓴 건 처음이다.
2004/06/05 00:07 2004/06/05 00:07
2004/06/04 13:22
가지 않아야 할 곳에 가지 않고 만나지 말아야 할 사람을 만나지 않고 살려고 늘 애쓰지만 이따금은 엉뚱한 곳에서 엉뚱한 사람을 만나게 된다. 이어령 씨를 만난 일도 그런 경우다. “나는 대담을 하러 왔지 강의를 들으러 온 게 아니다.” 넓디넓은 중앙일보 고문실에서의 대담은 시작한 지 5분이 채 못 되어 대담자 중 하나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는 소동으로 변했다. 어찌어찌 대담을 마치긴 했지만 3년이 지난 지금 생각해도 현실감이 적은 희한한 기억이다. 김수영이 그리 싫어하던 이어령을, 그것도 김수영이 싫어할 때보다 훨씬 더 낡은 이어령을 내가 만나다니!





20~21세기 '문지방 대담' 이어령교수 · 김규항씨

이어령 이화여대 석좌교수가 7일 오후 3시 이화여대 국제교육관 대회의실에서 42년의 강단생활을 마감하는 은퇴강연을 갖는다.
'이제 나의 시대는 끝났다. 일 할 수 있을 때 은퇴한다. 그럼으로써 새로운 은퇴문화를 만들려한다' 는 게 우리사회에 문화적 상상력을 불어넣어온 대표적인 지성의 간명하면서도 단호한 변이다.

이를 계기로 20세기에 살면서 21세기를 얘기해온 이교수와 21세기 새로운 세대를 대변하고 글을 써온 김규항씨가 20세기와 21세기의 '문지방' 에서 만났다.

이어령=한 개인을 통해 한 시대가 끝나가는 것을 조망하려 이 대담을 마련한 것으로 이해한다. 20세기와 21세기의 문지방에서 두사람이 공통점과 비판점을 찾아 이야기해 보면 은퇴하는 자리에 의미가 있지 않을까 싶다. 오늘은 내가 주로 질문을 해보겠다. 우선 소유의 관념이 세대간의 긴장을 설명하는 중요한 요점이다. 젊은 사람들의 소유에 대한 의식은 어떠한가.

◇ 소유와 존재

김규항〓이중적이다. 우선 근대성을 확보했다는 면이 있다. 나의 주인은 나이지 국가나 민족, 혹은 어떤 집단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면에는 자본주의적 이기심이 극도로 강화됐다. 결국 주체적 의식이 강한 한편 구체적인 소유에서는 이기적인 면이 확장됐다.

이〓인터넷에서 무형의 정보를 공유하고자 하는 열망이 유형의 소유 욕망보다 더 큰가.

김〓자신의 이해와 관련된 부분에서는 철저히 구분된다. 이해가 걸리면 전 세대보다 더 이기적이다.

이〓아파트를 '장만했다' 고 말하는 과거 세대는 축적 가치를 사용 가치보다 우선시했다. 평생직장이 없는 새 세대에 그런 소유는 거추장스러운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21세기의 사람들이 본능적으로 그런가.

김〓소유에 대한 문화가 근본적으로 바뀐 것은 아니다. 다만 좋은 컴퓨터, 여가의 소유 등 그 대상이 바뀌었을 뿐이다.

*** 유형의 소유 대상 바뀌어

◇ 한국, 20세기와 21세기

김〓지난 세대 대부분의 사람은 가문.국가.집단과 자신을 동일시 했다. 21세기는 이에서 벗어난 이들이 주인공이다. 그런데 이들이 심각한 이기심을 보이며, 과거 세대의 장점이 철저히 무너졌다. 인터넷상의 문화도 구체적인 자기 이해관계에 따르고 있다.

이〓카피 레프트 의식이 강한가.

김〓의식을 갖고 실천하는 건 아니다. 하고 싶으면 할 뿐, 전세대처럼 자신의 가치와 목적을 갖고 하는 건 아니다.

이〓그런면에서 접속이란 말이 이해된다. 예전에는 한 대의 전화로 가족 모두가 이용해 누가 누구에게 전화왔는지 모두가 알 수 있었지만 핸드폰 시대에는 그렇지 않다. 그런 점에서 젊은 사람들에서 가장 기본 단위인 가족 공동체가 무너지고 있다고 보인다. 이혼도 급격히 늘고.

김〓가족구성원으로서의 가치가 무너진 것은 사실이며 아쉬운 일이다. 이혼 자체는 좋지 않지만 이혼 자체에 대한 두려움과 금기 때문에 사랑하지 않는 사람과 살아야만 하는 습속이 깨지는 것은 바람직하다.

이〓가족은 기본적으로 시장제도에 대한 반발이다. 아버지가 가족에게 구조조정과 퇴출을 명하지는 않는다. 가족이 시장을 보완하는 것이다. 문화.예술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내가 가장 염려하는 것은 21세기에서는 가족.문화.예술도 시장화되지 않을까 하는 공포다. 또 예전에는 대학도 총장은 어머니고 학생은 딸.사위라 했다. 요즘은 총장은 CEO, 교수는 사원, 학생은 소비자가 됐다. 모르는 사이에 가족패러다임이 시장패러다임이 됐다.

김〓가족 단위의 이기심이 극단화하는 것도 문제다. 내 새끼, 내 가족만 챙기는 자본주의적 이기심 말이다. 대학이 이제는 말을 꺼내기조차도 민망한 단어인 진리 탐구보다는 사회 진출의 도구, 효율.돈 등 자본주의 질서에서 유능한 인재 만들기의 무한 경쟁터로 변했다.

◇ 21세기의 코리안 드림

이〓지금까지 코리안 드림은 좋은 대학과 유학, 넓은 아파트였다. 새로운 의미의 코리안 드림은 없을까.

김〓이전의 코리안 드림은 사회가 요구하는 가치와 병행하는 것이었다. 참고 졸라매고 저축하면 밝은 미래가 열린다는. 지금 세대는 현재의 욕망에 충실하다. 물론 어떤 것이 옳고 그르다고 말할 수는 없다.

이〓해리 포터 시리즈가 많이 읽히고, 마리오 게임 등 비현실적인 환상 게임이 유행한다. 혹시 대신할 만한 가치가 없는 현실이 그런 원인이 되지는 않나.

김〓역시 탈현실에 근본 원인이 있다. 소위 386세대까지만 해도 어떤 책을 읽고 감동하면 현실에서 그걸 실천하는 게 당연했다. 그러나 새 세대의 문화는 철저히 탈현실적이어서 실제 삶에 연결되는 일이 매우 적다. 우려할 만한 일이다.

이〓인터넷상의 인격과 현실 세계의 인격 분화를 심각하게 느끼지 않는 연극적 인간들이 양산되고 있다. 젊은이들은 온라인의 삶과 오프라인의 삶 가운데 어느 쪽에 더 무게를 두는가.

김〓아직 혼재된 상태다. 인터넷 게임을 즐기는 아주 어린 사람들이 현실의 고스톱을 즐겁게 하는 것을 본다. 지금 젊은 세대는 온라인의 가치가 우월하다고 믿기 때문에 집착하는 게 아니라 그걸 즐기는 것이다.

이〓내가 20대에 등단할 당시 본질보다 실존이 우선한다는 명제가 가장 중요했다.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태어났다' 는 식의 존재규정에 대한 반발이 나의 글쓰기의 주요 모티브였다. 그런데 21세기의 젊은이들은 그런 문제를 관념이 아니라 일상 생활에서 체험적으로 파악하는 듯 하다. 내 손자가 하루는 "어떤 미친 놈이 매일 가야하는 학교라는 악마의 성을 만들었느냐" 고 하더라. 나는 학교가 있으니 당연히 간다고 생각했다. 그런 일상적 충격이 관념의 소산이었던 나의 과거 글쓰기를 되돌아보게 한다.

*** 문화.예술도 시장화 우려

◇ 이타적 인간, 이기적 인간

이〓인간의 유전자 속에는 이타적 요소도 있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많다. 이타성에 기반한 공유의 세계는 없을까. 우리의 공동체는 구성원들을 앞으로 무엇으로 엮을 것인가.

김〓요즘 젊은 이들에게는 이미 정해진 것, 당연한 것은 없다. 국가도 의문의 대상이 된다. 가족과 학교는 물론이다. 그 과정에서 우려할 만한 일이 벌어질 수도 있지만, 적절한 조화가 있을 것으로 본다. 이기심과 이기심이 계속 부딪칠 때, 결국 이타적 필요성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런 면에서 한국의 80년대는 세계사에서도 독특한 것이다. 진보적 인텔리들이 그렇게 대규모로 출현한 적이 없었다. 문제는 그들이 90년대들어 돌변해 그 다음 세대가 최소한의 사회의식을 갖기 힘들게 됐다. 그러나 역사에서 10년은 매우 짧다. 조금 더 두고 볼 일이다.

이〓한국의 80년대는 확실한 자기 언급의 시대였다. 반면 90년대 이후 많은 이들이 분명하게 자기 주장을 하지 않다. 채팅할 때 의문문을 많이 쓴다. 모든 말의 끝을 올린다. 이런 현상은 불확실한 자아를 계속 확인하려 하는 것이다.

김〓그런 문투는 한국적 특징이라고 본다. 한국에서 특히 인터넷 게시판 문화가 발달한 이유는 공적 커뮤니케이션이 부실하기 때문이다. 단언과 주장을 싫어하는 게 요즘 세대다.

이〓80년대 대자보 문화와 달리 인터넷 게시판 문화는 공적이지만 동시에 개인적이다. 큰 흐름이 자잘한 논쟁에 묻혀간다. 소크라테스는 아테네에 안온한 삶에 딴지를 거는 등에와 같은 존재였다.

김〓인터넷 게시판에서 보여지는 열정에 비해 질이 상대적으로 낮은 것으로 보인다. 익명성은 민주적 가능성과 폭력적 가능성을 동시에 가진다. 인터넷의 열기는 높지만 결국 헤게모니는 그 매체를 통제하는 오프라인의 집단에 있다.

이〓옛날의 사발통문은 주동자를 알 수 없게 해 집단 속의 익명성이 보장됐다. 그런 봉건적인 오랜 습관이 자아와 근대성이 구현됐다는 인터넷 게시판 등에 저변으로 작용한 것 아닌가. 한국인의 스타일이 흘러가고 있다. 시대의 변화가 원초적으로 보여지는 게 성과 섹스의 문제다. 트랜스 젠더가 그 극단적 표현이다.

*** 온.오프라인 삶 조화 필요

◇ 21세기의 성(性), 사적인 공간과 공적인 공간

김〓젊은 세대는 계율에 자기를 복속시키기지 않는다. 싫으면 안하고 좋으면 한다는 행동 양식은 위선적이지 않다. 언제나 현 세대의 성의식은 지난 세대보다 진보적이게 마련이다.

이〓신라 시대 박제상의 부인을 보라. 일본으로 가려는 남편을 말을 타고 달려가 붙잡는다. 한동안 유교적 가부장제에 짓눌려왔던 이런 적극적인 여성상이 이제 다시 나타나는 것 아닐까. 어떤 면에서 여성들의 힘은 인류가 꺼내들 수 있는 비장의 카드다. 한국은 특히 그렇다.

김〓성 스타일의 변화는 실은 여성의 문제다. 여성의 성적 자유가 진전되고 있다. 그런 면에서 예컨대 연예인의 사생활 비디오를 보는 시각도 짧은 시간 안에 급격히 변하는 것을 본다.

이〓개인의 공간에서 벌어지는 일이 공적인 공간으로 튀어나오는 문제를 어떻게 봐야하나. 지하철에서 휴대폰을 사용하거나 화장을 고치는 사람으로 인해 지하철은 사적인 공간으로 변한다.

김〓공적 공간이 무시되는 것은 사적 공간이 보장되지 못하는 우리 사회의 특징에 크게 기인한다. 대표적인 공간이 러브 호텔이다. 엄청난 수의 여성이 직간접적으로 매매춘에 종사하지만 공식적으로는 지나칠 정도로 엄숙한 게 우리 성문화의 모순이다.

◇ 글과 말, 21세기의 매체

이〓조지오웰의 『1984』가 역으로 적용되고 있다. 백악관의 정보를 모든 국민이 보고, 기업의 회계정보가 투명화된다. 문맹이 없어짐으로써 권력의 전횡을 막을 수 있었듯, 미디어의 확산이 특권을 해체시킬 수 있다면 미디어를 이용해 빅브라더의 전횡을 막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일이다.

김〓TV와 달리 인터넷은 쌍방향적이며 민주적 속성을 가지지만 그 자체가 진보적인 건 아니다. 자본과 권력에게 역시 전례없는 무기이며 누구에게 사용될 것인가는 남겨진 숙제다. 이어령 선생의 특징은 문명적 통찰에 있다. 그러나 문명비판이 늘 중립적이었다는 점에 대해선 비판적이다. 우리사회에 원로가 부족하다고 한다. 혼탁한 현실속의 젊은이들에게 분명한 분별을 제시하는 분들이 없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권위있는 어른이 분명한 말을 해줄 수 있기를 바란다.

이〓만약 내가 역사를 소유의 언어로 봤다면 법률가나 정치가가 됐을 것이다. 그러나 존재의 언어를 우선시했기에 문학을 했다. 나는 소유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급변의 역사적 현장에서 솔로보다 에머슨에 가까운 사람으로 살고 있다. 21세기의 많은 젊은 지성들이 소유와 존재의 갈등을 잘 설명해주길 바란다. 특히 오프라인과 온라인의 결합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중앙일보 2001-09-05]
2004/06/04 13:22 2004/06/04 13:22
2004/06/03 00:05
엠씨 스나이퍼를 좀더 전문적인 견지에서(말하자면 2002년 앨범 발매 전 언더그라운드 힙합 씬에서 활동부터) 본다면 의견이 다를 수도 있겠지만, 일반적인 견지에서(말하자면 나처럼 정식 첫 앨범이 나오고서야 그를 알게 된 대개의 사람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그의 첫 앨범은 매우 근사했고 여전히 그는 근사하다. 그 근사한 청년이 입대한단다. 개새끼가 되지 않으려? "하늘은 언제나 나의 편, 하늘은 언제나 나의 편!"

솔아솔아 푸르른 솔아(2002)

Gloomy Sunday(2004)

솔아솔아 푸르른 솔아(2002)

솔아솔아 푸르른솔아 샛바람에 떨지 마라
창살아래 내가 묶인 곳 살아서 만나리라

나의 영혼 물어다줄 평화시장 비둘기 위로
떨어지는 투명한 소나기/ 다음날엔 햇빛 쏟아지
길 바라며 참아왔던 고통이 찢겨져 버린 가지
될 때까지 묵묵히 지켜만 보던 벙어리 몰아치는
회오리 속에 지친 모습이 말해주는 가슴에 맺힌
응어리 여전히 가슴속에 쏟아지는 빗줄기

1.아름다운 서울 청계천 어느 공장 허리하나
제대로 펴기 힘든 먼지로 찬 닭장/ 같은 곳에서
바쁘게 일하며 사는 아이들 재봉틀에 손가락
찔려 울고있는 아이는 배우지 못해 배고픔을
참으며 졸린 눈 비벼 밖이 보이지 않는 숨막히는
공장에 갇혀/ 이틀 밤을 꼬박 세워 밤새 일하면
가슴에 쌓인 먼지로 인해 목에선 검은 피가
올라와 여길 봐 먼지의 참 맛을 아는 아이들
피를 토해 손과 옷이 내 검은 피에 물들 때/
손에 묻은 옷깃에 묻은 현실의 모든 피를 씻어낼
곧 조차 없는 열악한 환경 속에 노동자만을 위한
노동법은 사라진지 오래 먼지를 먹고 폐병이 들어
비참히 쫒겨 날 때/ 여전히 부패한 이들은 술 마
시며 숨통 조이는 닭장에서 버는 한 두 달 봉급
을 여자의 가슴에 꽂아 주겠지...

2.비에 젖은 70년대 서울의 밤거리 무너지고 찢겨
져 버린 민족의 얼룩진 피를/ 유산으로 받은 나는
진정한 민중의 지팡이 모든 상황은 나의 눈으로
보고 판단! 결단! 살기 위해 허리띠를 조인 작업
장 안의 꼬마는 너무나도 훌쩍 커버린 지금 우리
내 아버지/ 무엇이 이들의 영혼을 분노하게 했는
지 알 수는 없지만 나는 그저 홀로 속상할 뿐이지
인간으로써 요구 할 수 있는 최소의 요구 자식 부
모 남편이길 버리고 죽음으로 맞선/ 이들에겐 너
무도 절실했던 바램 하지만 무자비한 구타와 연행
으로 사태를 수습한 나라에 대한 집단 비판 현실
에 대한 혼란으로 이어져 몸에 불지른 전태일의
추락,/ 나는 말하네 늙은 지식인들이 하지 못한
많은 것들을 이들은 몸으로 실천했음을...

3.이제는 모든 것을 우리 스스로 판단할 차례
7.80년대 빈곤한 내 부모/ 살아온 시대 그때의 저
항과 투쟁 모든 게 나와 비례 할 순 없지만 길바
닥에 자빠져 누운 시대가 되가는 2000년대 마지막
꼬리를 잡고/ 억압된 모든 자유와 속박의 고리를
끊고 표현의 자유를 누릴 수 있는 나는 예술인으
로 태어날 수 있는 진짜 한국인! 솔아솔아 푸르른
솔아 샛바람에 떨지 말아/ 창살아래 내가 묶인 곳
살아서 만나리라


Gloomy Sunday(2004)

우울한 오후 사랑의 질투는 실수를 연발해
참희 부서진 그대의 눈물 세상을 차게 적시네
숨이 막힐 듯 벅차 오르던 달콤함을 잊은 채
영문도 모르는 시린 사랑에 오열의 찬가를 부르네
천사의 눈물에 내 눈물 감추게 태풍을 내게로 부
를 땐
하늘을 여네 마음의 상처를 달빛에 모조리 녹이게
어둠이 선율에 젖어 우네 작별의 흔적을 남긴채
돌이킬 수 없는 사랑에 이별을 반가이 맞이해

저 하늘이 나의 영혼을 괴로움에 빠져도
어차피 내겐 삶의 시련. 하늘은 언제나 나의 편
하늘은 언제나 나의 편
구름 뒤의 절망의 빛이 내 등뒤에 모두 숨어도 하
늘은 언제나 나의 편
아무리 가르고 갈라도 피할 수 없는 우리 내 운명

내가 믿는 신의 선택 하늘은 언제나 나의 편
들려라 나의 목소리 너의 귓가에 들리게
울분이 터지는 오열 속에도 하늘은 언제나 나의


하늘은 언제나 나의 편
저기 길 잃은 별들과 함께 삶의 희망을 모두 잃어

하늘은 언제나 나의 편
하늘은 언제나 나의 편
신에게 그대를 빼앗긴 내가 영혼을 팔아 곁으로
가기에
하늘은 언제나 나의 편
하늘은 언제나 나의 편 하늘은 언제나 나의 편
그대를 잃어도 사랑을 하기에 하늘은 언제나 나
의 편
노래를 멈춘 슬픈 새들과 나는 침묵을 지키네
돌이킬 수가 없기에 그래도 하늘은 나의 편

우울한 오후 두려움과 외로움에 밤을 새
그대가 버려둔 나의 영혼이 어둠과 나란히 잠들

찾기 힘든 여유와 자유를 끊임없이 갈망하던
나의 욕망이 절망 속에서 남은 사랑을 전해
가슴속의 멍에와 비애 생각의 장애를 남긴 채
알수 없는 고독의 향기도 나의 몸을 감싸네
오선지에 그려진 슬픔 영혼을 찾는 노래가
같은 눈물을 흘리는 이 밤 나를 부를까 걱정돼

서울 땅은 내 것이 아닌 설 자리를 주지 않아
어머님의 눈물을 통해 날개를 잃은 나를 발견
그래도 하늘은 나의 편 상처뿐인 날개 짓에
꿈과 희망을 모두 잃어도 그래도 하늘은 나의 편
아무리 울고불고 내가 발버둥쳐도 떠나가
잃지 않으려 바랬던 것들 나의 곁을 달아나
날개 짓을 멈추지 않는 저기 새들과 함께 날아가
떠날 것들은 떠나가 아무리 끌어 안아도 가....

하늘은 언제나 나의 편
저기 길 잃은 별들과 함께 삶의 희망을 모두 잃어
도 하늘은 언제나 나의 편
하늘은 언제나 나의 편
신에게 그대를 빼앗긴 내가 영혼을 팔아 곁으로
가기에 하늘은 언제나 나의 편
하늘은 언제나 나의 편
하늘은 언제나 나의 편
그대를 잃어도 사랑을 하기에 하늘은 언제나 나
의 편
노래를 멈춘 슬픈 새들과 나는 침묵을 지키네
돌이킬 수가 없기에 그래도 하늘은 나의 편

하늘은 언제나 나의 편
저기 길 잃은 별들과 함께 삶의 희망을 모두 잃어
도 하늘은 언제나 나의 편
하늘은 언제나 나의 편
신에게 그대를 빼앗긴 내가 영혼을 팔아 곁으로
가기에
하늘은 언제나 나의 편
하늘은 언제나 나의 편 하늘은 언제나 나의 편
그대를 잃어도 사랑을 하기에 하늘은 언제나 나
의 편
노래를 멈춘 슬픈 새들과 나는 침묵을 지키네
돌이킬 수가 없기에 그래도 하늘은 나의 편
2004/06/03 00:05 2004/06/03 00:05
2004/06/02 23:48
"부탁이야... 나를 길들여 줄래?"

(여우가 어린왕자에게)
2004/06/02 23:48 2004/06/02 23:48
2004/06/02 23:26
"이를테면, 네가 오후 네 시에 온다면 난 세 시부터 행복해지기 시작할 거야."

(여우가 어린왕자에게)
2004/06/02 23:26 2004/06/02 23:26
2004/06/01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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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이 고래를 받아들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고래 딱지’를 떼어 접는 것이다. 한 권에 한 장뿐이라는 게 그는 늘 아쉽다. 그렇다고 멀쩡한 책을 하나 더 망가트리게 할 순 없고, 이번엔 인쇄소에 부탁해서 제본하고 남은 딱지를 갖다 주었다. 백여 장의 딱지를 접는 환희에 찬 손놀림!
2004/06/01 20:23 2004/06/01 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