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05'에 해당되는 글 25건

  1. 2004/05/30 잠자는 이등병들
  2. 2004/05/28 챙기지 말고 도와라
  3. 2004/05/28 바리케이트 복각모임 블로그
  4. 2004/05/27 편지와 답장
  5. 2004/05/25 늙은 남근들의 행진
  6. 2004/05/23 한국 록에 관한 사적인 기억들
  7. 2004/05/22 장사꾼들
  8. 2004/05/21 엽서
  9. 2004/05/20 주례
  10. 2004/05/18 임을 위한 행진곡
  11. 2004/05/16 가재
  12. 2004/05/15 여성주의 단상 1 - 강연회
  13. 2004/05/13 기타치는 아빠
  14. 2004/05/12 눈물이 난다
  15. 2004/05/10 사회화와 노동
  16. 2004/05/10 시민의신문 인터뷰
  17. 2004/05/09 하도 조용해서
  18. 2004/05/08 일기, 참으로 한가한 하루
  19. 2004/05/08 업무 메일
  20. 2004/05/06 호치민
2004/05/30 0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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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행 경의선에서 만난 이등병들.
군인들을 늘 잠이 부족하다.
부디, 무사히 제대해서 밀린 잠 실컷 잘 수 있기를.
2004/05/30 01:41 2004/05/30 01:41
2004/05/28 08:43
"아빠가 새벽에 잠자리에 들었는데 단이가 좀 챙길래?" 새벽에 잠들었다고 아이들을 챙길 수 없는 건 아니지만, 이따금 부러 그렇게 한다. "알았어 아빠." 김단은 머리통을 이불에 박고 낑낑거리는 동생을 달래서 일으키고 계란을 부치고 김치를 꺼내고 국을 데워 밥을 차린다. 김건도 제 누나를 따라 밥을 먹고 똥을 누고 옷을 챙겨 입는다. "아빠 다녀올게요." 시계를 보니 나나 제 어미가 챙길 때보다 오히려 15분쯤 빠르다. 그래서 이따금 부러 그렇게 한다.
다들 아이들을 너무나 챙겨댄다. 그래서 아이들은 바보가 된다. 누나는 동생이 되고 동생은 애기가 된다. 아이가 밥을 잘 안 먹는다 고민하는 아비 어미들이 있다. 실은 그들이 그렇게 만든다. 얼마나 챙겨댔으면 밥이 귀하고 맛있는 거라는 것조차 스스로 느끼지 못하는가. "오늘은 굶는 아이들의 고통을 생각하며 우리 식구도 함께 굶도록 하자."
그 하루로 아이는 달라지고 아비 어미 역시 그 하루로 정신이 맑아진다. 다들 아이를 한끼라도 굶기면 바로 죽기라도 하는 줄 안다. 그게 아니라는 걸 잘 알면서도 눈 딱 감고 그런 줄 안다. 한끼를 굶지 않아보고 자란 아이가 인간이 되겠는가. 매일같이 밥상머리에서 밥이 많네 적네, 농부들의 땀을 모욕하며 자란 아이가 제정신이 박힌 인간이 되겠는가.
그만들 챙겨대라. 챙기지 말고 도와라.
2004/05/28 08:43 2004/05/28 08:43
2004/05/28 00:57
여성노동자 영화 '밥꽃양' 제작팀의 홍은영 님이 전화를 했다. 영화 '바리케이트' 복각모임 블로그를 만들었는데 내 블로그의 디자인을 차용했다며 미리 양해를 구하지 못해 미안하다고 한다. “아무 문제없다”고 대답하고 바로 들어가 보았다. 비장하기 그지없는 노래 ‘5월의 노래2’와 그 노래의 원곡인 미셀 폴라레프의 ‘누가 할머니를 죽였는가’가 흘러나온다. 내 글을 인용해 놓았는데 인용의 맥락 덕에 새삼 비장하게 읽힌다.
2004/05/28 00:57 2004/05/28 00:57
2004/05/27 12:32
진보넷 게시판에서 일어난 여성주의 문제와 관련한 얼마간의 논란을 위해 쓴 '정리 글'. 나와 여성주의 문제에 대한 그간의 논란에 대한 '포괄적인 정리 글'로도 읽혀지길 바란다.



그제 밤 어느 분이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편지는 근래 이 게시판에서 불거진, ‘여성주의에 대해 저와 비슷한 견해를 가지면서 저에게 비판적인’ 분들의 생각을 저에게 사려 깊게 알리려는 것입니다. 급하게 씌어졌음에도 편지는 그런 내용들을 일목요연하게 잘 담고 있습니다.
여성주의에 대한 제 생각을 폭넓게 개진하는 것도 좋지만, 불거진 문제에 대해 정확하게 해명하는 게 ‘연대와 존경’을 위해 좀더 중요하다는 생각에서 애초 쓰려던 글을 뒤로 미루고 편지에 답을 다는 방식으로 제 생각을 적어 봅니다. 문장 앞의 이름은 ‘읽기 좋으라고’ 제가 단 것입니다.


(고유미) 안녕하세요? 저는 고유미 라고 합니다.
저는 그저 김규항 님의 독자 중 한 사람입니다.
근래 진보넷 독자게시판에서 일고 있는 소모적인 '소동'을 김규항 님이 그만 종식시켜주시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렇게 다소 뜬금없는 메일을 보냅니다.
더욱이 내일까지 입장 글을 올리겠다는 글을 보고 마음이 급해졌습니다.

(김규항) 관심과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고유미) 2년 전부터 계속된 김규항 님을 둘러싼 여성주의 관련 논란을 지켜보면서 제가 한 생각이며, 가능하면 내일 입장 글에 이에 대한 입장 혹은 해명이 실리기를 기대합니다.
저는 김규항 님이 여성주의자들의 비판 지점을 비껴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오히려 제 글이 김규항 님에게 그야말로 헛다리 긁는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는 것 또한 인정합니다. 다만 진정으로 작은 도움이나마 드리고 싶습니다.

(김규항) 저는 2년 전 ‘그 페미니즘’과 그 글을 보충하는 ‘그년들과 그놈들’을 쓰고 여성주의 문제에 대해 침묵해왔으니, “계속되었다”기 보다는 재연되었다고 하는 게 좀더 정확하겠지요. 어쨌거나 한번은 짚고 넘어갈 이야기라 생각합니다.

(고유미) 김규항 님의 여성주의 비판 내용의 타당성을 떠나서, 김규항 님은 김규항 님에 대한 여성주의자들의 비판지점이 김규항 님의 비판을 둘러싼 전제 혹은 기저에 대한 문제제기임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김규항) 제가 ‘감정적인 비난과 인격적인 재단’ 속에서 그런 섬세한 비판을 발견하는 건 쉽지 않습니다. 만일 고유미 님처럼 “제 비판의 타당성”을 별개로 인정한다면 그런 비판에 귀 기울이는 게 당연하겠지만 아예 “제 비판의 타당성”을 무시하는 상태에선 제가 귀 기울일 방법이 없습니다. 제 비판이 ‘여성주의 전체를 비난’하는 것이라 악의적으로 주장하는 사람들과 구분할 방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고유미) 즉 김규항님은 스스로를 '마초'라고 명명하는 대신 '여성주의자'로 명명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남성으로서 생물학적인 혹은 사회적인 한계 때문에 스스로를 적극적으로 '여성주의자'로 명명하는데 주저함이 있을 수 있습니다.

(김규항) 말씀 그대로 ‘자괴감’ 때문입니다. 여성주의를 지지한다고 해서 여성의 억압을 실제 갖지 않는 내가 ‘여성주의자’를 자처하는 건 염치없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고유미) 그러나 김규항님의 평소 여성주의 지지자로서 자신을 규정한 태도를 볼 때 충분히 그럴 수 있었다고 생각됩니다.

(김규항) 동감합니다. 저도 근래 그런 생각을 합니다.

(고유미) 여성주의 지지자와 여성주의자가 다른 겁니까? (사회주의 지지자와 사회주의자가 다른가요? 혹은 인종차별주의 지지자와 인종차별주의자가 다른가요?) 남성 지식인들은 노동자가 아니면서도 노동문제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발언하고 그에 대한 비판을 기꺼운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않습니까?

(김규항) 개념적으로 다르지만 우리가 말하려는 의미에서는 다를 게 없습니다. 밝혔듯이 저는 “좌파는 당연히 소수자주의자이며 여성주의자”라고 생각합니다.

(고유미) 이런 생각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 김규항님이 스스로를 '마초'라고 명명하는 것은 논쟁에 있어서 '무책임하고 비겁한' 태도를 전제하고 있습니다. 외부에서 여성주의를 비판하면서, 비판 내용에 대한 여성주의자 당사자로서의 책임은 회피하는 효과를 가져옵니다. 또한 '마초'로서 이만큼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조차 훌륭한 것이 되고 맙니다.

(김규항) 정확한 지적이고 제가 분명히 반성할 부분입니다.
그와 별개로 우리가 함께 생각할 문제가 있습니다. 첫째는 제가 비판한 게 과연 ‘여성주의의 문제’인가, 하는 것입니다. 저는 그게 ‘여성주의의 문제’가 아니라 ‘여성주의 영역에서 유발되었으나 이미 전체 사회로 비화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어느 영역의 문제가 그 영역을 넘어 사회문제로 비화하는 이유는, 그 문제가 그 영역 전체의 것이거나 적어도 그 문제가 그 영역에서 압도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상태에서 그 문제에 대한 비판의 자격을 제한하는 건 옳지 않습니다.
둘째는, 모든 여성주의가 ‘여성주의’의 이름으로 하나인가, 하는 것입니다. 90년대 이후, 말하자면 ‘절차적 민주화’ 이후 한국의 전체 사회운동은 빠른 속도로 보수화합니다. 사회운동의 주류는 ‘민중’운동에서 ‘시민’운동으로, 다시 말해서 주류 사회운동의 대상은 ‘민중’에서 ‘시민’으로 바뀌었습니다. 여성주의도 마찬가지입니다.
시민운동이 ‘시민들의 일상문제’에 천착하듯이 90년대 이후 여성주의는 여성이 갖는 두 가지 억압(계급, 여성) 가운데 ‘여성’에 좀더 집중해왔습니다. 물론 그런 경향은 여성의 억압이 계급 문제에 가려지거나 생략되는 일을 바로잡는 데 많은 기여를 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경향이 ‘계급’ 문제를 희석화하는 경향을 보인 것도 사실입니다.
한국처럼 주류 여성주의의 대상이 갈수록 중산층 지향적일 경우 중산층 이하의 여성에 좀더 집중하는 대상으로 하는 좀더 진보적인 여성주의가 주류와 분명한 긴장을 이루는 건 당연합니다. 그럴 때 두 여성주의는 ‘여성주의’의 이름으로 하나가 아닙니다. ‘하나’라는 건 대등한 두 갈래가 아니라 단지 ‘보수에 편입된 상태’를 뜻합니다.
이건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알다시피, 이런 문제는 서구에서도 페미니즘이 백인 중산층의 전유물이 되었다는 비판 속에서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현상이기도 합니다.

(고유미) 대신 김규항님이 스스로를 여성주의자로 명명했다면 여성주의자 당사자로서 비판의 내용이 훨씬 정밀했을 것이라 여겨집니다.

(김규항) 동감합니다.

(고유미) 또한 "박근혜를 지지하는 여성들은 진정한 여성주의자가 아니다." "박근혜를 지지하는 일군의 여성주의자들을 반대한다." 이렇게 주장했다면, 불필요한 '주류' '비주류'에 대한 오해는 없었을 것으로 봅니다.

(김규항) 맞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그 ‘범주 문제’에 대해 조금 부연하고 싶습니다. 저는 ‘지지하는 여성주의자들’을 비판한 게 아니라 ‘그런 여성주의에 대한 광범위한 침묵’을 비판한 것입니다. ‘주류’라는 표현도 그래서 나온 것이지요.
사실 ‘여성의 이름으로 박근혜지지’ 같은 엉뚱한 주장은 어느 소수자 운동에서나 나올 수 있습니다. 분별력이 부족한 사람에게서, 혹은 ‘소수자의 정서적 연대감을 악용하는 보수파’에 의해서, 좀더 정확하게는 그 둘의 결합에 의해서, 말입니다. 그러나 그런 의견은 대개 그 소수자 영역 내부에서 비판과 성찰을 통해 해결되기 마련입니다.
지난번 어느 분이 노들야학 박경석 교장 글을 올려주셨는데, 장애인 운동으로 가정을 해보지요. ‘파시스트의 정치적 자식’이 장애인이라 해서 ‘장애인 운동의 이름으로 지지하는 일’이 일어났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진보적 장애인운동가들이 말 그대로 난리를 냈겠지요. 의견을 담은 매체나 사회적 영향력이 한계를 갖는다면 (그들이 늘 하는 대로) 몸을 묶고라도 시위를 하겠지요.
만에 하나 ‘광범위한 침묵’을 보인다면, 역시 장애인운동의 영역을 넘어서는 사회 문제가 됩니다. 반민중적 주장은 어떤 소수자의 이름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 당연히 내 외부를 막론하고 ‘장애인운동을 위하여’ 비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럴 때 그 비판을 “장애인 운동 전체를 비난했다”고 악의적으로 해석하는 건 과연 누구이겠습니까.
제 비판이 “전체 여성주의를 비난했다”는 해석은 제 비판의 대상인 보수적 여성주의자들이 제 ‘비판의 타당성’을 흐리기 위해 해온 말입니다. 그런데 제 비판의 대상이 아닌 여성주의자들이 제 비판을 “비판의 타당성”은 제쳐둔 채 ”비판을 둘러싼 전제 혹은 기저에 대한 문제제기“만 하는 게 온당한 일일까요. 게다가 감정적인 반감에서 “전체 여성주의를 비난했다”고까지 비난하는 게 말입니다.
앞서 말했듯, 소수자 운동의 보수 부분은 언제나 소수자들의 ‘정서적 연대감’을 악용합니다. 보수적 여성주의자들은 여성주의 내부의 비판이 무시할 수 있을 만큼 미약한 수준인 데다, 사회적 비판 역시 ‘정서적 연대감’을 통해 흐려버리니, 결국 아무런 비판을 받지 않게 됩니다. 2년 전의 박근혜 지지론이 여전히 활개 치는 상황은 바로 그 결과인 셈입니다.
‘박근혜 지지론을 말하는 방식’에 대한 지적을 수용합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문제는 ‘박근혜 지지론을 말하는 방식’이 아니라, ‘박근혜 지지론’인 것입니다. 그런 보수적 주장의 확산이 가져올, 여성주의의 보수화, 즉 중산층 이하 여성들의 ‘배제’와 ‘고통’인 것입니다.

(고유미) 여성조차도 여성주의자로서 완벽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여성주의에 대한 외부의 '논평'이 필요한 게 아니라, '링' 안에서의 치열한 자기 연마와 올바른 여성주의를 위한 투쟁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김규항님은 줄곧 여성주의 비판 내용에 대한 '정치적으로 올바름'에 초점을 맞춰 해명합니다. 김규항님은 여성주의자 당사자로서 논쟁에 임했어야 했다고 생각합니다.

(김규항) 동감합니다. 다만 앞서 말한 대로 ‘사회문제’가 되었을 때는 내부 외부를 가를 수 없습니다. 진보적인 여성주의가 보수적 부분을 견제할 수 있을 만큼 성장하기 전까지는 얼마간의 연대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이를테면, 진보적 여성주의자들이 비판을 제기하고 저 같은 사람은 ‘비판의 존재’를 부각하는 방식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런 전략은 서로 간의 신뢰가 회복된 이후의 문제겠지요.

(고유미) 둘째 김규항 님 같은 여성주의에 우호적인 지식인이 스스로를 너무나 당당하게 '마초'라고 명명하는데 놀랐습니다. 그건 마치 김기덕이 여성에 대한 소름끼치는 폭력을 능청스럽게 영화로 만들어 놓고 그러게 애초에 '나쁜 남자'라고 했잖아 라고 물러서는 비열함이 연상됩니다. 여성들이 어떤 단어에 대해 감성적으로 느끼는 적대감을 남성들은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김규항) 앞서 말했듯, 그 말은 저의 자괴감을 반어법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그러나 제가 그 단어 자체가 가질 거부감을 좀더 감안하지 못한 건 사려 깊지 못했습니다. 그 단어에 상처를 받은 분들께 깊이 사과드립니다.

(고유미) 다음으로 김규항님이 반복해서 지적하는 여성주의자들의 '박근혜 지지자'들에 대한 방관 내지 침묵에 대한 것입니다. 그 문제가 불거졌을 때 여성들은 경악했으며, 여러 매체에 열심히 여성 혹은 여성주의를 팔아 박근혜를 지지하는 경향에 대한 신랄한 비판과 우려의 목소리를 냈습니다. 제가 굳이 찾아보지 않아도 수없이 접했던 그런 비판들을 김규항 님은 하나도 읽지 못했다는 것이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김규항) 당시 상황은 ‘광범위한 침묵’이라 말하는 게 좀더 보편적입니다. 물론 침묵은 ‘지지’와 다릅니다. 그러나 ‘반대’ 보다는 ‘공감’에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굳이 찾아보지 않아도 수없이 접했던 그런 비판들”이 보편적인 차원에서는 그다지 보이지 않았다는 사실이야말로 문제의 핵심입니다. 저는 그걸 빌미로 여성주의 전체를 비판한 게 아니라 그런 부당한 현실, 침묵과 공감을 표시하는 여성주의 부분만 부각되고 비판적인 여성주의 부분은 존재 자체가 철저히 배제되는 현실에 주목한 것입니다.
제 비판에 대한 일정한 ‘사회적 공감’이 여성주의 전체에 대한 반감을 확산시켰다는 주장은 옳지 않습니다. 그런 생각은 오히려 그런 생각을 하는 분들의 모호한 상태와 관련이 깊습니다. 이를테면 저는 “거의 모든 한국 교회’(‘주류 교회’도 아니고)는 교회가 아니라 교회를 빙자한 상점”이라고 공공연하게 비판해왔는데, 그런 비판에 해당하지 않는 교회나 목회자에게서 단 한번도 ‘교회 전체에 대한 비난’이라는 말을 듣지 못했습니다. 그 이유는 제 비판의 방식이나 자격 이전에 그런 비판에 해당하지 않는 교회나 목회자들이 ‘거의 모든 한국교회’를 내부는커녕 교회라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저는 여성주의자들의 반감이 고유미 님 말씀대로 “제 비판을 둘러싼 전제 혹은 기저에 대한 문제제기”라는 것을 부인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반감이 전적으로 그것에서만 나오는 건 아닙니다. 앞서 말한 대로, 그런 반감은 오히려 그런 반감을 갖는 분들의 모호한 상태와도 관련이 깊습니다. “제 비판의 타당성”을 인정하거나 제 비판을 ‘사회적 연대’라 파악하는 여성주의자들이 많다는 건 그 사실을 반증합니다.

(고유미) 물론 '한겨례' 같은 유력 일간지에 실리지 않았을 수는 있겠지요. 그리고 여성주의로 밥을 먹고 눈 떠서 잠들 때까지 여성주의를 고민하고 실천하는 여성주의자들에게 마이크를 갖다대지 않고, 김규항님처럼 가끔씩 툭툭 던지는 비판을 우선적으로 실어줄 만큼 김규항 님의 사회적 발언력이 상대적으로 크다는 것을 인정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김규항) 저에게 얼마간의 발언력이 있는 건 사실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심각한 문제는 저의 “사회적 발언력”이 아니라 “고민하고 실천하는 여성주의자들”을 압도하는 보수화한 여성주의자들의 “사회적 발언력”입니다.
내부인가 외부인가 여성인가 남성인가, “비판을 둘러싼 전제 혹은 기저”가 어떤가를 얼마나 바람직한가를 떠나서, 의견의 타당성이 어떤가를 중시해야 할 이유가 그것입니다. 어떻게든 압박하고 견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걸 부인한다면 자신의 건전성을 부인하는 것과 같습니다.

(고유미) 여성주의가 동의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는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계급해방, 인간해방과 본질적으로 연결된 부분임을 인정한다면 진정한 진보주의자임을 자처하는 김규항님이 여성주의자로 스스로를 인식하는 것은 오히려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봅니다.

(김규항) 앞서 말한 대로 “좌파는 당연히 여성주의자”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는 그런 생각을 자연스럽고 정당하게 드러내도록 하겠습니다.

(고유미) 솔직히 남성진보주의자들보다 일반 혹은 '중산층 여성들'에게 내 문제를 훨씬 공감받을 때가 있습니다. 그 때마다 자신들과 연대하지 않으면 여성주의를 진정한 진보주의로 인정해 줄 수 없다는 남성 진보주의자들의 그 몰이해와 편협함에 커다란 벽을 느끼기도 합니다.

(김규항) 여성에게 계급적 억압과 여성의 억압이 동시에 존재하고 좌파남성들의 의식이 아직은 만족스러운 상태가 아니라는 점에서 그런 ‘공감’은 당연한 데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좌파운동과 진보적 여성주의가 ‘분리’할 수는 없습니다. 모든 운동은 억압에서 해방하는 싸움이고, 운동이 가장 집중한 부분은 억압이 가장 심각한 부분입니다. 좌파는 ‘계급’에서 출발하고 여성주의는 ‘여성’에서 출발하지만 결국 가장 억압이 심한 부분은 같습니다. 가장 하층계급이면서 가장 많은 여성적 억압을 갖는 게 누구입니까. 바로 ‘가난한 여성’입니다.
여성주의가 가난한 여성만을 대상으로 하는 건 아니지만, 가난한 여성을 우선으로 하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이건 모든 소수자 운동의 원칙이기도 합니다. 건전한 장애인운동이 가난한 장애인, 특히 ‘가난한 여성 장애인’을 가장 우선으로 하는 것과 같습니다. 만일 여성주의에서 ‘진보’가 뗀다면 그 원칙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보수적 여성주의는 그 원칙에서 적대적입니다.
좌파남성과 진보적 여성주의자들이 연대와 존경을 향해 나가는 도정에 있다는 사실에 피차 더욱 진지해져야 합니다. 좌파남성들이 보이는 문제들은 그들의 의도나 입장이라기보다는 오래 시간 길러온 가부장적 관습, 말하자면 ‘못된 버릇’이 대부분입니다. 그게 자신의 이념과 관련이 있다는 걸 미처 모르는 것이지요. 관습은 고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고치기 어렵다는 건 고칠 수 없다는 것과 다릅니다. 보다 분명한 건 고쳐서 연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성주의자들이 좌파남성을 불신과 적대감으로 대하는 건 바람직한 태도가 아닙니다.
저도 소속한 단체가 있지만 현재 좌파 남성 가운데 공공연한 성차별 의식을 드러내는 경우는 찾기 어렵습니다. 이게 불과 최근 몇 해 동안의 변화입니다. 성폭력 사건처럼 뚜렷하게 불거진 문제에 대한 변화는 좀더 잠복한 문제들의 변화가 임박했음을 드러낸다고 봅니다. 여성주의자는 좌파남성의 현재 상태에 비판적이어야 합니다. 그래야 좌파남성이 더욱 변화할 테니까요. 그러나 동시에 그 변화의 어려움을 배려해야 합니다. 여성주의자에게 좌파남성은 적이 아니라 ‘미숙한 동지’입니다.

(고유미)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말씀드리자면, 내가 지지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지만 당사자로서의 심층적인 문제를 아직 인식하지 못한다고 판단되는 부분에 대한 접근 혹은 비평은 매우 조심스러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하는 비판이 당사자들에게는 뜬금없는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점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김규항) 동감합니다. 오해의 책임이 누구인가를 떠나서 오해를 충분히 예상하지 못한 것은 제 책임입니다. 아울러 어떤 사회적 의견을 제출하는 데 있어, 부정적 부분을 비판하는 방식(이 꼭 필요한 경우도 있긴 하지만)보다는, 건전한 부분을 부각하고 힘을 실어주는 방식을 사용하도록 노력할 생각입니다.

(고유미) 급한 마음에 두서없이 작성한 글에 제가 염려하는 부분이 제대로 전달됐는지 걱정됩니다. 끝까지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입장 글에서는 가려운 곳을 긁어주시기를 바랍니다.

(김규항) 2년 전이나 지금이나 앞으로도 마찬가지로, 제 의도는 여성주의에 대한 ‘연대와 존경’입니다. 결국 이 공간에서 불거진 문제는 그 의도를 표현하는 방식과 그 의도를 수용하는 방식 사이의 것이었습니다. 더 이상 그런 문제로 서로의 의도를 의심하는 일이 없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고유미 님이 권유하신 대로 제가 제 자신을 ‘여성주의자’라 명명하는 건 그런 노력의 기초가 될 것입니다.
급하게 씌어졌지만 매우 일목요연한 편지였습니다. 거듭 감사드립니다.


[모든 기자들께 : 이 글을 맥락과 관계없이, 혹은 맥락을 생략한 채 인용하거나 사용하지 말기 바랍니다.]
2004/05/27 12:32 2004/05/27 12:32
2004/05/25 2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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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5/25 23:08 2004/05/25 23:08
2004/05/23 00:00
며칠 전 컴퓨터를 정리하다 우연히 발견한 글. 2년 쯤 전에 지큐에 쓴 글인데 아직 날짜를 확인하지 못했다. 제목 그대로 기억나는 록 뮤지션들을 짤막짤막하게 메모한 글이다. 다시 읽어보니 '내가 이렇게 생각했나?' 싶은 부분도 있다. 가슴 편집장 박준흠이 "재미있게 읽었다."는 소감을 준 걸 보면 못봐줄 정도는 아닌 듯. ㅎ


하나만 짚고 넘어가자. 이른바 "록은 저항적인 음악"이라는 새빨간 거짓말에 대해 말이다. 한국에서 록은 대개 저항적이긴 커녕 저항적인 청년문화를 굳이 비껴가고 딴지 놓는 어떤 것이었다. 이를테면, 한국에서 록이 본격적으로 출발하는 70년대 말은 유신 정권의 말기다. 그 세상에서 그 록들이 내뿜는 낭만성은 참으로 한심하다. 민주화의 기대를 짓밟은 군부 파시스트들이 광주에서 양민을 도살하고 10여 년 동안 손수 한국을 통치하는 동안 대체 록이 무슨 놈의 저항을 했던가. 90년대 들어 대중문화 영역에 대거 투신한 일군의 인텔리들이 지껄여 대기 시작한 "록은 저항적인 음악"이라는 말엔, 록의 영토를 '구라'로 지배하려는 그들의 음험한 욕망과, 자신의 활동 구역에 모종의 사회적 의미를 부여하려는 그들의 비린 허세가 담겨 있다. 록은 어떤 신령한 저항성이 담겨져 있는 음악이 아니라 단지 불량한 음악이며 그 불량함은 저항일 수도 아닐 수도 있다. 모든 장르의 대중음악이 그 사회적 함의가 거세된 채 수입되는(포크에서 이 즈음의 흑인음악들까지) 한국적 문화전통은 유구하고, 한국에서 록이 어떤 정신을 확보하는가는 두고 볼 문제이자 애써 볼 문제다.

좌파라는 이가 '록을 기억'한다 해서 모종의 비장한 록담론을 기대하는 독자라면 일찌감치 다른 기사로 넘어가시는 편이 낫겠다. 이 글은 이 글의 제목 그대로 산울림에서부터 근래 발견한 몇몇 인디밴드들까지, 25년 여에 걸친 한국 록에 관한 내 사적인 기억들이다. 록의 불량함은 모든 불량한 이로 하여금 록에 대해 말하게 한다. 아유레디!

산울림 : 1977년 그들은 책이나 좋아하는 중학 3학년이던 나를 습격했다. 산울림은 내가 이른바 그룹사운드(이 시골이발소 풍의 이름은 이제 밴드로 개명되었다)에 이끌리게 된 계기였다. 카세트 테입 속 해설지엔, 그 앨범을 낸 음반사 사장인가 하는 사람이 데모 테입을 처음 들었을 때의 소감을 "AFKN에서나 들을 수 있는 사운드"라 적고 있었다. 배호 정도는 되어야 가수라 생각하는 기성 세대는 산울림을 '음치'라고 했으며 당시 기준으로 산울림은 분명히 음치였다. 하여튼 산울림은 완전한 새로움이었다. 나는 드럼이라는 악기에 본능적으로 이끌렸으며 산울림은 내게 드럼 선생이기도 했다. 두팔과 다리가 따로 노는 일은 처음엔 차력의 일종처럼 보였으나 이내 드럼 세트의 각 부분이 따로 들리기 시작했던 것이다.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의 기나긴 베이스 독주나 '불꽃놀이'의 장타령 풍 리듬이 매일 밤 나를 매혹했다. 막 배운 마스터베이션과 함께.

사랑과 평화 : 산울림과 비슷한 시기에 등장한 전혀 다른 스타일의 밴드였다. 최이철 김명곤을 중심으로 한 사랑과 평화는 요즘 말로 하면 전문 세션맨들의 밴드였다. 산울림이 캠퍼스적 아마추어리즘(제1회 대학가요제 대상을 받은 '나 어떡해' 는 산울림의 곡이다)을 바탕으로 했다면, 사랑과 평화는 원숙한 테크닉의 밴드였다. '장미'에서 보여주는 연주의 조직력과 드럼 필인은 지금 들어도 훌륭하다. 곧 도래한 디스코 시대에 그들의 펑키한 리듬감은 뇌가 없는 댄스곡처럼 밋밋해지고, 오늘 '최장수 밴드'로 지루하게 남았다. 2집(1979)의 '얘기할 수 없어요'는 김현식의 노래들과 함께 내 불변의 십팔번이다. 듣는 것보다는 불러야 맛이 나는 곡.

활주로(송골매) : 바야흐로 밴드의 시대였다. 산울림과 사랑과 평화 같은 밴드의 성공은 대학 밴드들의 활황과 맞물렸다. 그러나 밴드 체제로 유행가가 아닌 록을 하는 밴드는 항공대 밴드 활주로가 유일했다. 1978년 해변가요제에서 '세상모르고 살았노라'로 대학가요제에서 '탈춤'으로 입상한 활주로는 나원주/이응수라는 저작자와 배철수라는 텁텁한 보컬리스트의 조합으로 한국 록음악사를 통틀어 가장 한국적인 록을 구사했다. 활주로는 송골매라는 이름으로 계속되는데 구창모가 보컬로 들어올 무렵 원래의 색깔을 잃는다. 신중현과 산울림을 재조명한 인탤리들이 이 밴드를 소흘히 넘어간 건 건 그들의 한심한 안목 덕이다. <와이키키 브라더스>에서 밴드는 활주로의 '세상만사'로 출발한다.

작은거인 : 밴드의 이름은 바로 밴드의 리더 김수철이다. 1979년, 작은 체구에 지미 핸드릭스처럼 기타줄을 물어뜯는 김수철의 '일곱색깔 무지개'는 한국 최초의 하드록 사운드였다. 작은거인 역시 대학 밴드(광운대)였지만, 노인들에게서도 '잘 논다'는 동의를 얻을 만큼 음악적 설득력이 뛰어났다. 김수철의 재능에 대한 사회적 공인은 이 유니크한 로커로 하여금 록의 검약한 본성(록은 독특한 것이어서 편성이 간략할수록 강력하기도 하다. 작은 거인은 산울림처럼 3인조였다.)를 망각하고 교향악단을 사용하는 대작을 좇거나 민족음악에의 어설픈 경도를 낳게 했다. 아시안게임 음악은 김수철에게 어떤 만족을 남겼을까.

신중현 : '미인'이 실린 앨범 신중현과엽전들(1974)은 분명 한국록의 명반이지만, 70년대 말에 대마초(한국에 연성마약을 허하라!) 복용 혐의로 활동 중지 상태였던 신중현은 록의 선배라기 보다는 잘나가던 가요 작곡가로 여겨지곤 했다. 어쨌거나 그는 1980년 신중현과 뮤직파워로 복귀했다. 엽전들이 3인조였음을 생각한다면 세명의 관악 파트에 두명의 여성 보컬을 포함 자그만치 9명으로 조직된 대편성 밴드인 뮤직파워는 신중현의 달라진 음악적 지향을 드러낸다. 신중현에 대한 이런저런 찬사들은 대개 맞거나 좋은 말이지만, '아름다운 강산'이 한국록 불후의 명곡이라는 주장과 '록의 아버지'가 된 90년대 이후 신중현 음악에 대한 아첨에는 동의를 못하겠다. 내 생각에 '아름다운 강산'은 그저 '불후의 대곡'일 뿐이며, 그의 근래 음악들은 '록의 아버지'가 아니라면 봐주기 민망한 것들이다.

마그마 : 1980년, 대학가요제 생방송을 보며 대체 그룹사운드는 언제 나오나 기다릴 때 마그마가 나왔다. "어둠 속에 묻혀있는 고운 해야. 아침을 기다리는 애띤 얼굴.." 여리고 느린 앞부분에 낙심하는 순간, 귀를 의심케 할 만한 강력한 사운드가 폭발했다. 아무 것도 모르는 사회자는 "세명이서 어떻게 저런 사운드를 만들어내는지 신기하다"고 감격했다. 마그마의 사운드는 80년대 중반 시나위에 가서나 등장할 헤비메탈 사운드를 구현한 선구적인 것이었다. 충격은 오래 가지 않았다. 리더 조하문은 곱상한 얼굴을 들이민 채 '이밤을 다시 한번'을 애원하게 된다.

들국화 : 라이브만 하는 대단한 밴드가 등장했다는 풍문은 곧 사실로 드러났다. '행진' '그것만이 내세상' 같은 곡도 물론 좋지만, '아침이 밝아올 때까지'는 곡자체로나 연주면에서나 가히 명곡이었다. 한국 대중음악사를 통틀어 들국화만큼 보편적인 지지를 받은 밴드가 있었던가. 들국화는 재결합하여 새로운 히트곡이 없음에도 여전한 카리스마를 발휘하고 있다. 들국화에 대한 이런저런 피력들은 오히려 상투적일 뿐이다. 독자들이 이미 알고 있는 바로 그것이다.

시나위 : 1986년 내가 입대하던 해 시나위가 등장했다. 아버지 신중현에게서 "테크닉 면에선 나보다 한수 위"라는 평가를 받던 기타리스트 신대철의 밴드였다. '크게 라디오를 켜고'는 강한 디스토션이 걸린 기타 리프와 솔로, 무겁고 단순한 드러밍이라는 헤비메탈 사운드의 전형이다. 헤비메탈이 록의 분방함을 벗어난 지나치게 양식화된 음악으로 보는 편인 나는, 나중에 김바다가 보컬을 맡던 시절 리메이크 된 '크게 라디오를 켜고'를 더 좋아한다. 열린 하이해트 심벌이 촬촬거리는 소리는, 창문을 열어 환기하는 기분을 낳는다. 시나위는 말 그대로 한국 헤비메탈/하드록의 산 역사이며 근래 8집도 여전히 훌륭하다.

부활 : 내가 80년대의 대학생이거나 80년대의 청년이던 80년대 내내 나는 록을 제대로 들을 수 없었다. 그것은 제국주의 매판문화의 일환이었다. 나에게 3년 동안의 예외가 있었는데 그것은 원치 않던(난 평범한 군대 생활을 바랬다) 드러머 노릇을 하게 되면서다. 어느 날, 리드 기타를 치던 고참이 휴가길에 사온 테이프를 틀어놓곤 "기타가 죽이잖냐. 방위새낀데 존나게 노래 잘하지." 했다. 김태원의 둔중하면서 몽환적인 기타와 이승철의 끈적이는 보컬에 빠져드는 순간, 조인트를 세게 채였다. "개새끼가 고참 말에 대답도 안해."

한대수 : 한국 최초이자 유일한 히피 한대수는 감옥 같은 조국을 떠난다. 그가 1989년 14년의 공백을 깨고 발표한 앨범 무한대는 록이었다. 리메이크된 '하루 아침'의 가사는 한국 대중음악사에서 유일한 문명비판적 음악가의 세계관을 되새기게 한다. "좋아 좋아 기분이 좋아"하는 보컬에 이은 어쿠스틱 기타, 그 다음 "베이스 들오고" "기타 쫌 울고" "장구우 때려" 하는 한대수의 명령어에 베이스와 기타와 드럼이 차례로 들어오는 '고무신'은 한대수의 음악가로서의 위엄을 한껏 표현한다. 내 다섯 살짜리 아들 김건은 이 곡을 무척 좋아하는데, '고무신'이라고 하면 못 알아듣고 '장구때려'라 하면 얼른 알아듣는다. 그에게 한대수는 '장구때려 아저씨'다.

H2O : 내 기억으론, H2O는 재미교포 젊은이 몇몇이 만든 밴드였다. 멤버가 대부분 바뀐 H2O 3집(1993)은 음악평론 하는 후배의 '저주받은 걸작'이라는 말에 뒤늦게 들었다. 강기영 김민기 박현준의 연주야 당연히 훌륭하고 마크 코브린인가 하는 엔지니어까지 부른 사운드는 거의 완벽하다. '나를 돌아보게 해'는 가사도 깊고 반복해서 듣게 하는 묘한 힘이 있다. 이 앨범은 대중적으론 철저하게 실패했고 기억하는 사람은 아주 적다.

크래쉬 : 나는 바하를 좋아하는 이유(구성의 명료함)와 같은 이유로 스래시 메탈을 좋아한다. 크래쉬는 대개 영어로 노래한다. 영어만이 메탈적이라는 주장엔 동의하지 않지만(덜 메탈적이더라도 무슨 소린지 알아듣는 편이 낫다는 게 내 생각이다.) 크래쉬의 목표는 처음부터 끝까지 양식적 완성에 있고 나 역시 그런 차원에 한정해서 이 밴드를 존중한다.

노이즈 가든 : "저 친구 기타 정말 잘 치는군." 1996년, 노이즈 가든이 결성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우연히 그들의 라이브를 구경했다. 기타리스트 윤병주는 블루스(알다시피 블루스는 록의 뿌리다)의 필을 짙게 깔면서도 강력한 사운드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젊은 장인이었다. 레인보우의 대곡 '스타게이저'도 연주했는데 리치 블랙모어 정도는 오래 전에 구어 먹은 솜씨라 나는 얼마나 흐뭇했던가.

델리 스파이스 : 델리 스파이스의 보컬은 참으로 록답지 못하다.(물론 이런 말은 정당하지 않다) 특히 나는 장르를 불문하고 대중음악의 보컬리스트라면 일단 걸걸한 목소리여야 한다는 입장이다.(물론 이건 심각한 편견이다) 그런 내가 델리 스파이스의 연주에, 이를테면 '챠우챠우' 후반부에 어느덧 빠져드는 걸 보면 델리 스파이스는 만만치 않다.

허클베리핀 : 대중음악에서 지적 능력을 표현하는 결정적인 수단은 가사이며, 허클베리핀은 지적이다. 이 밴드의 특징은 여성 보컬리스트의 중성적 매력이다. 남상아(3호선 버터플라이으로 옮긴)가 그랬고 현재 이소영도 그렇다.얼마 전 나온 2집 '나를 닮은 사내'는 세련되었고 내가 운전할 때 가장 많이 듣고 다니는 음반이다.

풀린개 : 라이브를 한번 보고 나중에 가사를 얻어 본 풀린개는 말하자면 한국의 RATM이다. 이런 밴드가 있다는 건 단순한 문화적 다양성의 의미를 넘어 안도감을 준다. 음악이 아니라 메시지가 목표일 그들은 이렇게 외친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혁명 너희가 원하는 것은 시나리오/ 바꾸기를 원하는가 정말 원하는가/우리가 바랬는가 세상 뒤집는가/시나리오를 원하는가 개소리 떨지마라/그런 것 따윈 없어 너부터 바꿔봐라"

모든 록이 이런 식이라면 더도 덜도 아닌 스탈린의 세상이겠지만, 이런 록이 이렇게 없는 세상은 더욱 문제다. 세상이 불량하다는 사실엔 모두들 동의하면서, 불량한 음악 록은 왜 세상보다 덜 불량한 것일까.
2004/05/23 00:00 2004/05/23 00:00
2004/05/22 2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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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단과 김건이 자기네들 학교에서 벌어진 알뜰시장에 장사를 나갔다
책 몇권과 배지 따위를 갖고 갔는데
내가 사진이라도 찍어주려고 잠깐 들렀을 땐 배지만 남아 있었다.

나중에 들으니
결국 제 가슴이 붙인 배지 한개까지 모조리 팔아치웠단다.

총수입 21,150원. 제법 근사한 장사꾼들이다.
2004/05/22 20:42 2004/05/22 2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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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5/20 09:32
호찬, 화진 커플의 결혼식 주례를 맡기로 했다. 물론 처음이다. 전에 같은 부탁을 받았을 때 한 순간도 고민한 적 없는데 이번엔 3일 동안 고민했다. 두 사람의 부탁이 워낙 진지하고 완강했기 때문이고(거절하면 주례 없이 강행하겠다는 식의 공갈을 포함한), 나 또한 두 사람의 사는 모습이 예뻐 보이기 때문이다. 마지막 결심은 ‘한국의 관혼상제 형식에 비슷한 거부감을 가지면서, 이미 주례를 해본 동년배’인 강유원 형의 체험에 의탁했다.

아래는 (내 주례사의 “inspired by"가 될) 강유원의 주례사다.


이 결혼식에 참석하신 하객들은 주례를 맡은 이가 턱없이 젊은 것에 어이없어 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본래 주례는 따로 있는데 급한 사정 때문에 식장에 당도하지 못한 탓에 부랴부랴 신랑의 가까운 친지나 선배를 단상에 세운 것이라 짐작하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충분히 그럴만 합니다.

사실대로 말씀드리면 저는 일반적인 기준에 비추어 볼때 주례를 설만한 사람은 아닙니다. 신랑과 나이 차이가 많지 않으며 결혼 생활을 성공적으로 영위하기로 이름난 사람도 아닙니다. 그러니 이 자리에 서 있는 것이 조금은 쑥스럽고 어색합니다. 그러나 나름대로 이 주례를 위해 준비한 바가 없지는 않습니다. 한가지 예를 들면 10년 만에 넥타이를 하나 새로 샀습니다. 제가 지금 매고 있는 넥타이가 그것입니다.

신랑 오창엽군에게서 주례를 부탁받고 선뜻 승락을 하지 못한채 '왜 나에게 주례를 부탁했을까'를 고민하다가 나름대로 이유를 찾아 보았습니다. 아마도 제가 찾은 이유가 오늘의 주례사가 될 듯합니다.

돌이켜 보면 이른바 한국의 현대사는 극심한 혼란으로 가득차 있었고 그 혼란을 반영이라도 하듯이 많은 지식인들은 곡학아세와 변절을 일삼아 왔습니다. 모든 것이 체제내화된 90년대 이후에는 '변절'이라는 말 자체가 어이없는 형용사가 되어버린 분위기마저 생겨났습니다. 어제의 투사가 오늘은 주류가 되어 삐까번쩍함을 뽐내고 있습니다.

저는 오창엽군을 알아온 이래 적어도 그런 인간 잡종들에 속하지는 않았다고 자부합니다. 아마 그런 까닭에 신랑에게 주례로 뽑히게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저는 이 자리에 선 신랑.신부는 지식인들이 저지르는 대세와는 무관하게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더불어 주례를 하는 저 역시 꿋꿋하게 살아가겠다고 다짐을 해봅니다. 세월이 흘러 서로가 서로를 경멸하고 부끄러워 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제가 엉망으로 망가져서 훗날 신랑.신부의 입에서 '그런 인간에게 주례를 맡겼던 우리가 정말 바보였지'라는 개탄이 나오지 않도록, 또 제 입에서 '내가 왜 그렇게 형편없는 사람들 주례를 섰던 말인가'하는 한탄이 나오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 자리는 결혼식장입니다만 동시에 참석하신 하객 모두와 함께 이러한 다짐을 서로 주고받는 자리이기도 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2004/05/20 09:32 2004/05/20 09:32
2004/05/18 12:10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동지는 간 데 없고
깃발만 나부껴
새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자.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
깨어나서 외치는 뜨거운 함성
앞서서 나가니
산자여 따르라
앞서서 나가리
산자여 따르라

‘임을 위한 행진곡’은 광주민중항쟁에서 마지막까지 총을 들고 싸우다 전사한 윤상원과 그의 들불야학 동지 박기순의 영혼결혼식에 바쳐진 노래다. 노래는 그 유래에서, 그 가사와 곡조의 서정성과 비장미에서 남한 진보운동의 역사를 대표하는 노래라 할 만하다.

노래는 탄핵반대 시위(파시스트의 도발에 대한 당연한 분노였지만, 개혁 대통령을 민주주의의 순교자로 만드는 의식이기도 했던)에서 널리 불렸다. 그 사실은 노래의 유래와 윤상원의 정신을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고통을 준다.

총기 반납과 계엄군과의 타협을 거부한 채 끝까지 싸우다 죽어간 전사가 파시스트의 도발에 분노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그 전사가, 제 배를 가르고 제 몸을 불사르는 농민과 노동자들에게 “이제 분신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시절은 지났다”라고 지껄이는 더러운 입에 조금이라도 이로움을 주는 일을 상상할 수 있는가.

탄핵과 관련하여 우리가 감히 윤상원에게 할 수 있는 유일한 상상은 그가 누구보다 먼저 그리고 누구보다 끝까지 ‘민중에 의한 탄핵’을 외쳤을 것이라는 것뿐이다.

80년 5월 27일 새벽, “저승에서 만납시다.”라고 인사하며 각자의 전투 위치로 갔던 윤상원과 광주의 마지막 전사들이 지키려고 했던 건 무엇인가. 다들 말하듯, 그것은 ‘시민의 민주주의’였던가. 그랬다면 그들은 굳이 죽음을 선택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걸 지키려 했던 많은 사람들이 집으로 돌아갔듯이 말이다.

그들, 윤상원과 광주의 마지막 전사들이 지키려고 한 건 ‘민중의 나라’였다.

“당신은 윤상원을 기억하는가?”

자신이 개혁적이라 생각하는 사람들 중에 이 질문에 아니라고 대답할 사람은 없다. 그래서 질문은 좀더 정확하게 수정되어야 한다.

“당신은 총기 반납을 거부했겠는가?”
“당신은 도청에 남아 싸우다 죽었겠는가?”

이제 자신이 개혁적이라 생각하는 사람들 중에 그렇다고 대답할 사람은 없다.

언제나 그렇듯,
살아남은 현실주의자들은 죽어간 원칙주의자의 정신을 훔쳐 먹으며 연명한다.
2004/05/18 12:10 2004/05/18 12:10
2004/05/16 2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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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가재가 있을까,
개울의 돌을 들추길 수십 차례... 가재 발견!
얼떨결에 가재 달아나고
못난 아비 아이들에게, 니들이 아래쪽에서 막았어야지, 책임전가.
다시 상류로 오르며 돌을 들추고 또 들추고
드디어 한 마리 잡다.

도로 놓아주는 게 좋다, 하고선
아이들의 요구를 못 이기는 척
일주일만 집에 두기로 하다.
2004/05/16 23:51 2004/05/16 23:51
2004/05/15 23:47
오랜 만에, 강연회에 갔다. 원고나 강연 청탁에 간간히 응하기로 마음먹고 첫 강연이다. 나와 이영희, 최장집, 하종강 같은 이들이 돌아가며 한다는데 내가 맡은 주제는 “민주화와 언론운동”이었다. 나는 80년대 민주화운동은 절차적 민주화운동과 근본적인 민주화운동이 있었는데 앞의 것만 이루어졌다는 이야기, 언론운동을 제도언론 중심으로만 보는 건 잘못이며 실제 민주화운동에서 언론 역할을 한 것도 팜플렛, 전단, 소식지, 회보 같은 언론 취급도 못 받는 비제도 매체였다는 이야기, 들을 했다.

이야기를 한 시간 쯤 하고 질의응답을 두 시간 했다. 새내기들도 많고 해서 신선하게 느껴지는 질문이 많았다. (나이가 들고 아는 게 많아질수록 질문은 ‘짧은 강연’이 된다.) 간간히 싱거운 소리들도 해가면서 활기 있는 분위기였다. 맨 마지막에 한 여학생이 질문했다. “얼마 전에 남자선배하고 이야기를 하는데 그 선배가 ‘노동해방이 되면 여성해방도 된다’고 말했거든요. 저는 고개를 숙이고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선생님은 계급의식이 투철한 분인데 역시 그렇게 생각하시나요?”

“여성주의자들 사이에선 제가 그런 사람이라고 많이 알려져 있지요.” 강의실에 잔잔한 웃음이 번졌지만 나는 웃을 수 없었다. “저는 주류 여성주의의 어떤 편향을 비판한 것인데 여성주의 전체를 비난했다는 오해를 받는 건 저로서도 안타까운 일입니다. 내용보다는 말하는 태도와 방식의 문제라는 생각도 하고... 하여튼 오해를 나은 게 저이니 제가 풀어야 할 문제겠지요. 그건 그렇고...” 나는 말을 이었다.

“저는 노동해방이 된다고 해서 여성해방이 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여성의 억압은 계급 문제로 치환할 수 없는 소수자 문제입니다. 초기 맑스주의에 여성 문제가 빠져 있는 건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건 그 시대의 한계였습니다. 맑스주의는 여전히 계급 문제를 기반으로 하지만 여성 문제를 비롯해서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소수자 문제들, 사회 변화에 따라 새롭게 발견되는 억압들을 자기 요소로 받아들이면서 발전합니다. 오늘 시점에서 맑스주의자가 여성 문제를 배제하는 건 상상할 수 없습니다. 맑스주의자는 당연히 여성주의자이기도 합니다.”

강의실을 빠져나가던 한 여학생이 목례하며 말했다. “저도 선생님이 그렇게 생각하시는 줄 알았어요.” 몹시 안도하는 얼굴이다. 말없이 웃는 나에게 그가 말했다. “아까 ‘여성100인위’ 이야기 하시려다 말았는데...” 나는 돌아가야 했으므로 그의 이메일 주소를 받았다. 그날 밤 편지를 썼다.

“몇 년 전만 해도 좌파 진영에서 성폭력 사건이 일어나면 피해자 여성이 침묵을 강요당하는 일이 잦았습니다. ‘조직 보위’를 이유로 말이죠. 여성 100인위는 그래서 생겼는데 정확한 이름은 ‘진보진영 내 성폭력 근절을 위한 100인위원회’지요. 100인위는 실명공개라는 방법을 사용했습니다. 비판도 많았죠. 실제로 명단에 오른 남성 가운데는 애매한 경우도 있었고, 그래서 ‘의도는 존중하지만 방법상의 문제가 있다’는 의견이 많았습니다. 저는 100인위를 처음부터 지지했습니다. 저도 방법상의 문제가 있다고는 생각했지만 그게 100인위 활동을 가로막는 빌미가 되어선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100인위가 그 본래 의미 말고도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건 바로 좌파가 ‘왜 좌파인지’ 성찰하는 능력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억압과 싸우는 사람에게 성찰보다 중요한 건 없습니다.”

‘억압과 싸우는 사람에게 성찰보다 중요한 건 없습니다.’ 그 말이 계속 내 머리 속을 맴돌고 있다. (계속)
2004/05/15 23:47 2004/05/15 23:47
2004/05/13 2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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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 "기타치는 아빠"
2004/05/13 22:59 2004/05/13 2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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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군하는 군인들을 보면

이 같잖은 나라도 조국이랍시고

어머니도 동무도 애인도 다 두고

개처럼 끌려와

행군하는 저 청년들을 보면

눈물이 난다.
2004/05/12 22:32 2004/05/12 22:32
2004/05/10 19:53
사회화와 노동은 사회진보연대에서 펴내는 주간 팩스/메일 신문이다.
눈꼽만큼의 과장도 없이,
일주일에 한번 이 신문을 정독하는 것만으로도 세상을 훨씬 더 바로 볼 수 있다.

게다가 신청하면 누구에게나 거저 보내준다.
2004/05/10 19:53 2004/05/10 19:53
2004/05/10 19:30
시민의신문(시민단체 공동신문)과 한 여성주의 관련 인터뷰.

인터뷰 요청을 거절했다가, 다시 했다.
'성실한 논의'를 위해서.

야비한 위선 싫다, 애정어린 비판 경청을


작성날짜: 2004/05/09
장성순기자


드러내놓고 여성운동에 대한 비판을 두 번 정도 했다. 젊은 여성주의자들(이른바 영 페미니스트)과 비슷한 목소리를 냈음에도 '마초'로 낙인 찍힌 남자가 있다. 바로 김규항 씨다.

2002년 4월과 5월 시네21에 실린 <그 페미니즘>, <그놈들과 그년들> 두편의 글이다. 또한 월간 <말>지 최보은씨의 '박근혜 연대론'에 대한 비판으로 촉발된 김규항 최보은 논쟁도 유명하다. 당시는 지방선거에서 여성정치세력화를 위해 일하던 여성운동계는 굳이 김규항 최보은 논쟁에 대해 어떠한 논평을 내지 않았다.

최근 김규항씨가 한겨레신문을 통해 총선 이후 '여성운동의 보수화'를 경계하는 인터뷰를 했다. 이에 대해 김규항씨와 그를 인터뷰했던 김성재 기자까지 '마초'로 찍히는 상황이 됐다.

최근 여성주의 인터넷신문인 '일다(www.ildaro.com)'는 김규항과 한겨레의 '여성운동 물먹이기'라며 한겨레의 <일다> 1주년 인터뷰를 거절했다.

지난 4일 어린이 월간지 '고래가 그랬어' 사무실에서 만난 김규항 씨는 "2년 전 소란을 되풀이하고 싶지는 않다"는 말로 첫마디를 시작했다. 하지만 2년전 자신에 대해 반응과 동일한 반응을 보면서 자신에 대한 오해가 광범위하게 존재하고, 그 오해가 개인 차원을 넘어 여성운동을 둘러싼 광범위한 사회적 소통 장애를 드러낸다고 생각하기에 좀더 성실하게 논의에 임할 생각이라고 했다.

김씨는 일단 여성주의 저널 '일다' 조이여울 기자의 '한겨레와 김규항의 여성운동 물먹이기'라는 글에 대해 '지나친 음모론'이라고 말했다. 그 정도 비중의 기사까지 회사의 의지를 완벽하게 관철시키는 신문은 조선일보뿐이며, 자신도 한겨레에 비판적이지만 한겨레가 그런 면에서 민주적인 편이라는 건 인정해야한다는 것.


"주류 여성운동 비판일 뿐"

그는 2년전 논쟁을 김규항 최보은 논쟁이라 불리는 건 잘못이라며 "최보은씨를 비판한 게 아니라 여성주의의 특정한 경향을 비판하면서 한 예로 최보은의 박근혜 연대론을 들었을 뿐인데 최보은씨가 자신에 대한 비판으로 규정하고, 더구나 최보은씨가 그 반박글에 자신의 사적인 부분을 끄집어 내어 논의를 감상적인 차원으로 몰아간 건 부적절했다"고 말했다.

<그놈들과 그년들>에서도 일부 여성주의에 대한 비판의 수위와 동일하게 여성억압을 도외시하는 좌파남성들을 비판했다고 그는 얘기한다. 또한 모든 여성운동이 중산층 여성운동이며, 탈계급적인 운동이라는 것이 아니라, 90년대 이후 주류 여성운동의 분위기가 그렇다고 비판한 것이라는 것이다. 결국 그가 의도했던 일부 여성운동 비판이 여성운동 전부를 싸잡아 비판했다는 혐의를 받게 되었는데, 그것은 자신의 책임도 있겠지만 일부에 대한 비판에 싸잡아 반응을 하는 여성운동 진영의 문제이기도 하다는 것.

김씨는 자신이 좌파계급운동을 따르는 여성운동만 지지하겠다는 건 전혀 아니라며 모든 건전한 사회운동은 연대와 존경을 나눌 수 있으며 좌파계급운동도 분명히 여성운동에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고 했다.

유럽에서 여성운동이 좌파운동그룹과 갈등하고 결별하는 과정을 겪었듯이 한국의 여성운동 이 그런 경향을 보이고 '분리주의' 경향을 보이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며 자신이 '운동권 내 성폭력' 문제를 제기했던 100인위를 지지했던 것도 그런 이해 때문이라는 것.

하지만 여성운동이 '분리주의'단계에 머물면 안 되며, 이제는 여성들끼리의 '자매애'를 넘어서 그 동안 배제시킨 진보적 남성들과의 연대와 소통을 추구해야한다는 것.

프랑크푸르트 학파인 사회철학자 위르겐 하버마스가 지적한 것처럼, 발화내용보다 '발화자'가 의사소통 시 중요한 기제로 작동한다는 것을 이번 김규항 논쟁에서도 엿볼 수 있다.

그는 '박근혜 지지'와 '현정은 지지' 문제에 대해 젊은 여성주의자들의 비판을 넘지 않는 수준에서 비판했는데, 그 젊은 여성주의자들이 자신을 '여성주의'를 재료로 삼아 남성성을 과시하는 것이라고 비난하는 건 어이없는 일이라고 했다.

그는 여성으로서 억압만 가지는 박근혜나 현정은 같은 여성과 여성으로서 억압과 계급적 억압을 2중적으로 가지는 노동계급 여성을 구분해서 보는 건 당연한 것이며, 그런 차이를 고민하지 않는 생리적 여성 옹호는 결국 먹고사는 데는 문제가 없는 여성에게만 해당하는 여성운동을 하겠다는 이야기와 다름없다고 말했다.


"패거리문화 경계를"

90년대 초반 시민운동이 '소액주주운동'과 같은 탈계급적인 운동에 대해 좌파들은 비판을 했지만, 90년대 중반이후 시민운동이 파병반대, FTA반대, 비정규직 문제 등에 동참하는 등 점점 더 진보화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는 걸 지적했다.

그런 일반적 경향에서 이탈하여 여전히 박근혜 지지니 현정은 지지니 하는 전근대적 주장이 나오는 유일한 경우가 여성운동이며, 물론 그런 경향은 여성운동의 일부지만 그 일부에 대한 비판에 한동아리로 반발함으로써 결국 여성운동이 사회적 존경을 받지 못하고 전체 여성운동이 정체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의 눈에는 현정은 지지 모임에 동참한 여성운동가 1, 2세대들은 학연, 지연으로 연결된 또다른 '패거리'문화로 읽힌다는 것이다. 그게 패거리 문화라는 혐의를 벗으려면 보편적인 사회의식의 상식을 지켜 주어야 하는데 현정은지지모임의 경우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

박근혜 대표 역시 소수자를 대변하거나 여성적 정체성을 대변하는 사람이 아닌데도, 여성신문은 '핑크빛 리더시대'라고 극찬하고, 여성계는 침묵했다는 것에도 일침을 가한다.

현정은지지모임이 '증권거래법'을 위반한 경제민주화를 위한 여성계의 개입이었다면, 남성들을 배제할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남성들과 함께 문제를 제기했어야한다는 것이다.

그는 2년 전이나 지금이나 여성운동에 감히 충고할 생각이 없다는 것을 거듭 강조했다. 자신은 여성운동 내부를 비판하는 게 아니라 여성운동에서 시작되었지만 이미 보편적 사회 문제로 돌출된 부분에 대해 의견을 내는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여성운동에 관심을 갖거나 의견을 내는 남성들에 대해 '자격'운운하는 것 역시 남성이 여성이 될 수는 없지만 남성이 여성주의자는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그런 모호한 분리주의가 자신처럼 여성주의의 일부 경향을 비판하는 진보적이거나 개혁적인 남성이 여성주의 자체에 적대감을 표현하는 이문열 같은 인물과 똑같이 취급되는 건 온당하지 못한 일이며, 오히려 여성주의 문제를 비판할 때 결과를 잘 알면서도 여성주의의 문제를 비판한다는 건 여성 문제에 깊은 애정과 관심이 있음을 드러내는 거라 여겨져야 한다는 것.

진보적이라는 남성이 여성운동의 심각한 편향에 단지 침묵함으로써 여성운동의 호감을 유지하는 일이야말로 야비한 위선이라고 지적했다.

김씨는 이제 여성주의가 노력하는 진보적 남성들에게 '손'을 내밀어야할 때라고 말했다. 게다가 일상에서 소박하게 여성주의를 실천하려는 남성들에게 여성주의자들이 격려와 지지를 보내주길 바란다고.

사진제공: 한겨레신문
장성순 기자 newvoice@ngotimes.net
2004/05/10 19:30 2004/05/10 19:30
2004/05/09 23:45
040509_.jpg

하도 조용해서
대체 뭘 하나 했더니
'헤어 디자인' 중이다.

짝퉁 리바이스 티셔츠에
현란한 컬러 바지
그리고 대형 도끼빗.
2004/05/09 23:45 2004/05/09 23:45
2004/05/08 23:36
어제 술 먹고 사무실에서 잤다. 아내가 새벽에 나간다고 해서 아이들을 챙겨야 했다. 여섯시 조금 넘어 집으로 왔다. 평소엔 계란 프라이를 두개 만들고 냉장고에서 김치와 시금치 무침 정도를 꺼내 주는 게 고작인데, 오늘은 어제 만들어 둔 장조림이 있다. 장조림 속의 계란을 두개 꺼내 아이들에게 한 개씩 담아 주고 비벼먹는 걸 좋아하는 김건의 밥에 장조림 국물을 넣어준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초고를 써둔 여성주의에 대한 글을 열어본다. 아무래도 다시 써야겠는데 술이 덜 깼고 잠도 부족해서 머리가 맑지가 않다. 노트북을 덮고 동네 목욕탕에 갔다. 거울에 비친 몸이 그런대로 봐줄 만하다. 동네 친구들과 밤에 어울리는 습관 때문에 체중이 70킬로그램까지 불었던 걸 5킬로그램을 뺐다.

김건이 집에 아무도 없는 줄 알았다가 나를 발견하곤 찰싹 붙어 한참을 비벼댄다. 김건은 제 친구와 자전거를 타기로 했다며 나가겠다고 한다. 엘리베이터에 자전거를 끌고 타고 내리는 일도, 아직 자동차나 교통에 대한 관념이 적은 것도 걱정이다. 같이 나갈까 하다가 짧게 주의를 주고 혼자 내보내기로 한다. 약간의 위험은 아이를 성장하게 한다.

김건이 자전거를 타다 정빈이 집에 가 있다고 전화를 해왔다. 정빈이의 아비인 범수가 저녁까지 먹여 보낼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한다. 김단은 오랜 만에 치킨을 먹고 싶다고 했다. 훈제 치킨을 한 마리 시켜 딸려온 콜라도 조금 곁들여(평소엔 애나 어른이나 콜라는 안 먹는 걸로 되어 있다.) 먹었다. 훈제 치킨 상자의 아이 얼굴이 김건과 똑같다.


040509.jpg


김단이 아침부터 쌓인 설거지를 도우면서 우스개 몇 개를 들려주었다. 번개 치는 걸 사진 찍는 줄 알고 웃으며 죽은 사람 이야기, 불독의 엉덩이를 물어뜯다 이빨이 빠진 사람 이야기 등등. 그 중 하나는 이렇다.

어느 부부가 사움을 하는데 남편이 아내에게 미친년아, 하니 아이가 아비에게 미친년이 뭐냐고 물었다. 아비는 여자라는 뜻이라고 했다. 조금 있다 다시 아내가 남편에게 미친놈아, 하니 아이가 어미에게 물었다. 어미는 남자라는 뜻이라고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의 형이 친구들과 놀다가 지랄까지 마, 라고 했다. 아이가 물으니 형은 기도한다는 뜻이라고 했다. 아이가 자라서 목사가 되었다. 첫 예배시간. 자, 미친년들 미친놈들 지랄 깝시다.

범수가 김건을 데리고 오고 영식이 부부도 왔다. 지난주에 약속한 대로 영식이에게 기타를 준다. 어떤 사람에겐 별 게 아니겠지만 지난 15년 이상 먹고사는 일에만 매달려 온 영식이에게 기타는 근사할 수 있다. 음계 짚는 법과 C코드를 가르쳐주었다. 손이 큰 범수는 금세 하는데 손이 작은 영식이는 제대로 소리가 안 난다. 나는 세고비아도 손이 작았다고 말해준다. 다음주 토요일까지 무슨 곡이든 한 개를 떼기로 한다. 한 곡은 백 곡이 될 것이다.

아내는 내일 들어온다고 하고 아이들은 잠들었다.
2004/05/08 23:36 2004/05/08 23:36
2004/05/08 14:36
From: 김 규항 [mailto:gyuhang@goraeya.com]
Sent: Saturday, May 08, 2004 2:34 PM
To: '전승로'
Cc: 고래 조대연 (scatter@goraeya.com)
Subject: 계몽 문제

내가 고래에 대해 가장 찜찜하게 생각하는 부분이 계몽성.
계몽이 문제라는 게 아니라 계몽의 방식.

아래 글(특히 두번째 단락)을 참고로 읽어보고
고래8호를 기준으로 구체적 해결 방안을 정리해서 12일 쯤 미팅을 하세.

참석자 : 김규항, 조대연, 전승로

http://gyuhang.net/archives/2002/03/13@11:48PM.html


착안할 점은

1. 아이들에게 뭘 심어주려는 태도가 지나치게 드러나는 것.
2. 어른 세계의 일을 알게하여 의식을 길러주었다고 착각하는 것.

9호에선 그 문제들을 완전하게 제거한다는 각오로.


김규항
2004/05/08 14:36 2004/05/08 14:36
2004/05/06 17:25
한대수의 노래, 호치민

한대수는 호치민을 "참 재미있는 사람"이라 노래한다.
그러는 한대수야말로 볼수록 '참 재미있는 사람'이다.

호치민에 대해서 말하자면 참 재미있는 사람이에요
그 사람은 학자의 집안이고
불란서 점령 당시에 왜 서양세력이 자기 나라를
이렇게 장기간 동안 점령하느냐

거기에 대해서 고민하기 시작했죠
그리고 또 워낙 문학가 집안이니까
여러 책을 보면서 연구를 하게 되죠

호치민 호치민 호치민

그래서 적을, 적을 이기려면 적을 알아라 라는
요런 명언이 있으니까
불어를 열심히 공부를 하기 시작했어요
(아 그래요)

그런데 불란서를 가야 되겠는데 유람선의 요리사
조수로 취직하게 됩니다

불란서에서 불란서 공산주의자들과
접촉이 이루어지고
또 거기에서 맑시즘을 배웠고
드디어 어떠한 계기에서 모스크바를 방문합니다
(아 그래요)

모스크바에서 공산주의 대학교에 입학해서
과연, 제국주의, 자본주의 요런데 대해서 공부를 하게 됩니다

거기다가 러시아의 힘을 얻고 중국에 또 이사를 갑니다
여러가지 민중의 고통, 민중의 핍박, 또 프롤레타리아
거기에 대해서 배우고 다시 베트남으로 돌아옵니다

미국이 이젠 등장하는데
그 부패된 고딘디엠 정부를 지원하면서
반공산주의자라는 이유로
아주 지속된 전쟁의 끝없는 폭격
약 3200일의 끝없는 폭격을 밤낮으로 당하면서
미국의 강력한 군사력을 이겨낸 유일한 사람입니다 (아 그래요)

호치민 호치민 호치민

you are a nguyen ai quoc(구엔아이콱),
you are a phan chu trinn(판추치린)
you are a nguyen sinn cung(구엔싱쿵),
you are a nguyen tat tranh(구엔타트랑)
you're not a chung ryang lee(청량리),
you're not a chang kai shek(장개석)
you're not a jung tae choon(정태춘),
you're not a zhou en lai(주은래)
you are a van tien dung(반티엔둥),
you are a hoang quang binn(황광빈)
you're not a sun yat sun(손문),
you're not a park jung hee(박정희)
you're not a shin bal dae(신발대),
you're not a pal dae gi(팔대기)
you are a nguyen ai quoc(구엔아이콱),
you are a phan chu trinn(판추치린)
2004/05/06 17:25 2004/05/06 17: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