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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04/02/27 졸업 (12)
  3. 2004/02/26 돈 꾸러 온 사람을 대하는 방법 (16)
  4. 2004/02/26 고래 6호 (17)
  5. 2004/02/25 나사렛 사람 (10)
  6. 2004/02/25 고래 로고 (8)
  7. 2004/02/23 기차길옆 작은학교 (2)
  8. 2004/02/22 현상 공모 (62)
  9. 2004/02/22 권정생 (8)
  10. 2004/02/22 (1)
  11. 2004/02/21 마감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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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 2004/02/13 진실
  18. 2004/02/12 수를 내야겠다 (9)
  19. 2004/02/10 블로그 공개 (30)
  20. 2004/02/09 예수전 (3)
2004/02/28 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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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깊은나무는 1976년 3월 발행인 한창기, 편집장 윤구병 체제로 창간해서 1980년 신군부에 의해 폐간했다. 뿌리깊은나무는 우리나라 잡지에서 처음으로 한글전용과 가로쓰기 편집을 했다. 잡지사에도 그렇게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그보다 훌륭한 건 기획과 내용이었다. 여전히 서구의 문물을 소개하는 수준이던 70년대 지식인 사회에 뿌리깊은나무는 한국적인 것, 민중적인 것을 기조로 ‘당대의 보편적 불온성’을 구현했다.

스무살 무렵 나는 청계천을 수십 번 오가며 창간호부터 폐간호까지 모두 모았다. 한 일년은 그걸 끼고 살았을 것이다. 돌이켜 보면, 내가 뒤늦게 글쓰기를 시작했으면서도 알아먹을 수 있게 쓸 수 있었던 데는 그 일이 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80년대 말에 안산에서 운동하던 선배가 노동자 도서실을 만든다며 책을 보내라고 했다. 나는 뿌리깊은나무를 몽땅 보냈다. 선배는 이듬해 운동을 그만두고 영화판에 들어갔고 뿌리깊은나무는 사라졌다.

언젠가는 다시 구해야지 구해야지 하며 10여년이 흘렀다. 얼마 전 고래가그랬어의 개비를 위해 ‘영감을 줄 수 있는 것’을 찾다가 뿌리깊은나무를 생각했다. 인터넷 헌책방을 뒤진 끝에 고구마에서 한권에 3천 원씩 주고 스무 권 쯤 구했다. 사과 상자에 부쳐 온 뿌리깊은나무를 꺼내며 퀴퀴한 종이 냄새에 잠시 눈을 감았다. 천천히 나머지도 구해서 아귀를 맞출 생각이다.

뿌리깊은나무가 되어먹지 못한 장군들에 의해 폐간한 후 그 스타일을 차용한 잡지가 몇 개 있다. 허술(나중에 조갑제)이 편집장을 맡고 안상수가 디자인을 맡은 마당이라는 잡지가 있고, 84년에 뿌리깊은나무에서 창간한 여성지 샘이깊은물이 있다. 샘이깊은물은 뿌리깊은나무를 그대로 빼어박았지만 ‘당대의 보편적 불온성’을 구현하지는 못했다. 샘이깊은물은 2001년 말부터 휴간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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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용의 가장 딱한 형태는 2001년 초 열림원에서 사진가 이지누가 편집장을 맡아 나온 디새집이다. 디새집은 뿌리깊은나무를 추억하는 중산층에 봉사하는 잡지다. 디새집은 흙과 자연과 민중으로 빼곡하다. 그러나 디새집의 흙과 자연과 민중은 '당대의 흙과 자연과 민중'이 아니라 중산층의 찻잔에 든 흙과 자연과 민중이다. 디새집은 이지누가 빠지고 '생태잡지'로 바뀌었다고 하는데 보진 못했다.

뿌리깊은나무를 넘어설 만한 잡지가 없다는 얘기는 곧 뿌리깊은나무의 ‘보편적 불온성’을 넘어서는 잡지가 없다는 뜻이다. 보편적이면 쓰레기이고 불온하면 보편적이지 않기 십상이다. 반년 쯤 지나 고래가 뿌리깊은나무의 '보편적 불온성'을 갖길 바란다. 고래는 어린이잡지로선 이미 불온하지만 아직 보편적이진 않다.
2004/02/28 04:08 2004/02/28 04:08
2004/02/27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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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단에서 졸업장을 받고 내려오며 쑥스러워 하는 김건.(오른쪽)
하긴 단 하루도 '오늘은 어떻게 유치원 좀 빠져 보나' 하지 않는 날이 없었으니..ㅎㅎ.
2004/02/27 18:46 2004/02/27 18:46
2004/02/26 23:02
(좋은 방법에서 나쁜 방법 순)

1. 군말 없이 꿔준다.
2. 훈계를 늘어놓으며 꿔준다.
3. 군말 없이 안 꿔준다.
4. 훈계를 늘어놓으며 안 꿔준다.
2004/02/26 23:02 2004/02/26 23:02
2004/02/26 00:19
'어린이 교양지'에서 '어린이'를 대체할 말에 대해 의견을 구했고 많은 분들이 의견을 주셨습니다. 의견들 가운데 선택할 만한 말이 없었던 건 아니나, 몇몇 분들이 다시 '교양지'라는 말에 대해 지적을 해주셨습니다. 해서 이번 고래에선 '어린이 교양지'라는 문구를 일단 빼기로 했습니다. 실은 어제밤 표지를 봐주러 온 디자이너 후배가 "그렇게 고민스러우면 이번에는 일단 뺍시다"해서 '그게 좋겠군'하게 된 것입니다.

주신 의견들을 재료로 좀더 시간을 두고 고민해보겠습니다. 고래 정기구독권을 누구에게 드려야 하나 생각했는데 가장 먼저 의견을 주신 용당주님께 드릴까 합니다. 용당주님은 이메일로 주소를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귀한 시간을 쪼개어 의견주신 모든 분들께 고개숙여 감사드립니다..ㅎㅎ.
2004/02/26 00:19 2004/02/26 00:19
2004/02/25 12:34
출처 : 헨드릭 빌렘 반 룬, "인류이야기(The Story of Mankind)"


(로마 건국 815년 서기62년 가을, 로마의 의사인 아이스쿨라피우스 쿨텔루스는 시리아에 파견 나가 있던 조카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썼다.)


사랑하는 조카에게

며칠 전 나는 바울로(바울)라는 병자를 치료하러 갔다. 그는 유대인 출신의 로마 시민이었는데 교양 있고 상냥한 사람이었다. 그 사람은 카이사레아라는 동부 지중해 법정에서 고소를 당해 이곳까지 끌려왔다고 하더구나. 나는 그가 신민과 법률에 반하는 선동을 한 '야만적이고 난폭한' 사람이라는 말은 들었는데, 집적 만나 보니 매우 지적이고 정직한 인물이었다.
언젠가 소아시아의 부대에서 근무한 적이 있는 친구 한 명이 바울로에 관하여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더구나. 에페소스(에베소)에 있을 때 그가 새로운 이상한 신에 대해 설교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고 말이야.
나는 바울로 말이 사실인지, 우리의 사랑하는 제국에 대해 반역을 꾀했는지 물어보았다. 그러자 바울로는 자신이 말한 왕국은 이 세상의 것이 아니라는 둥 나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이상한 말을 하더구나. 그때 나는 이 사람이 열 때문에 그런 거겠지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인물의 됨됨이가 내게 큰 인상을 주었기에, 며칠 전 그가 오스티아 길에서 죽음을 당했다는 소리를 듣고는 기분이 언짢았다. 그래서 너에게 이런 편지를 쓰는 것이다.
네가 혹시 예수살렘에 갈 일이 있으면 내 친구 바울로가 이야기 했던 그 이상한 유대인 선지자의 대해 알아주기 바란다. 노예들은 이 소위메시아에 대해서 점점 더 흥분하고 있고, 개중에 몇몇은 새로운 왕국(이 말이 무슨 뜻인지 모르겠지만)에 대해 공공연히 말했다가 십자가에 못 박혀 목숨을 잃은 사람들도 있다. 나는 이 모든 소문의 진상을 자세히 알고 싶구나.

너를 사랑하는 아저씨 아이스쿨라피우스 쿨텔루스


(6일 후에 갈리아 제7 보병대장인 조카 글라디우스 엔사는 다음과 같은 답장을 보내왔다.)

존경하는 아저씨

아저씨의 편지를 받고 부탁하신 일을 알아보았습니다. 2주 전, 저희 부대는 예루살렘에 파견되었습니다. 그곳은 지난 1백 년 동안 몇 차례의 반란이 있었던지라 도시의 옛 보습은 그리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한 달 동안 이곳에 있다가 내일이면 몇몇 아랍족들이 골치를 썩이고 있는 페트라로 이동할 예정입니다. 제가 아저씨의 질문에 답할 시간은 노늘 저녁밖에 없는 것 같은데, 그러나 자세한 보고는 기대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저는 이 도시에 사는 여러 노인들과 얘기를 나누어 보았지만 확실한 정보는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며칠 전 막사에 들른 행상에게 올리브 몇 개를 사주면서, 젊어서 죽음을 당한 저 유명한 메시아의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냐고 물어보았습니다.
그는 자기 아버지와 함께 골고다(도시에서 막 빠져나가자마자 있는 언덕)로 처형 장면을 보러 갔기 때문에 분명히 기억한다고 말했습니다. 그 처형은 유대 민족의 율법을 어긴 자들이 어떻게 되는지 보여주는 것이었답니다. 그는 저에게 더 자세히 알고 싶으면 죽은 메시아의 친한 친구였다는 요셉이라는 사람의 주소를 가르쳐주었습니다.
오늘 아침 저는 요셉을 만나러 갔습니다. 그는 아주 늙은 사람으로, 민물 호수에서 고기를 잡고 사는 어부였습니다. 하지만 기억만은 또렷해서, 마침내 그로부터 제가 태어나기 전 소란스러운 시절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꽤 정확한 설명을 듣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위대하고 영광스러운 황제 티베리우스께서 권좌에 계실 때, 이곳 유대와 사마리아 지방에는 폰티우스 필라테(본디오 빌라도)라는 총독이 재직하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요셉은 이 필라테에 대해서는 거의 아는 바가 없었습니다.
아무튼 필라테는 지방 장관으로서 버젓한 평판을 남긴 걸 보면 퍽 정직한 관리였던 것 같습니다. 그는 어떤 젊은이(나자렛에 사는 한 목수의 아들)가 로마 정부에 대해 반란을 획책하고 있다는 소리를 들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평소에 많은 정보를 듣고 있던 정보장교들은 이상하게도 이 일에 대해서는 전혀 들어본 적이 없었답니다. 그래서 그들은 이 문제를 조사해본 끝에, 이 젊은이는 훌륭한 시민이며, 그를 고소할 아무런 혐의점도 없다고 보고했습니다.
요셉에 따르면, 당시 유대교 신앙의 완고한 지도자들은 무척 당황했다고 합니다. 그들은 가난한 히비르인인 대중의 신망을 얻고 있는 그가 몹시 싫었던 것입니다. ‘나자렛 사람’(그들은 필라테에게 그런 이름으로 보고했습니다.)은, 그리스인이든 로마인이든 심지어는 팔레스타인인이든 떳떳하고 고귀한 삶을 살고자 하는 사람이면 어느 누구나 모세의 고대 율법을 공부하면서 평생을 보내고 있는 유대인 만큼이나 선한 사람이라고 공공연히 주장했습니다.
필리터네느 이러한 주장에 별 감명을 받은 것은 아니었지만, 사원 주위에 몰린 군중들이 예수를 위협하면서 그 추종자들을 죽이려 하자, 이 젊은이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그를 구금하기로 했습니다.
어쩌면 그는 이 분쟁의 본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유대인 성직자들에게 모대체 불만의 이유가 무엇인지 물어보았습니다. 그러면 성직자들은 한결같이 ‘이단아’ ‘반역자’라 소리치며 무섭게 흥분하는 것이었습니다.
요셉의 말에 따르면 마침내 필라테는 여호수아(나자렛 사람의 본명인데 이 지방에 사는 그리스인들은 그를 항상 예수라고 불렀다고 합니다.)를 개인적으로 심문하기 위해 불러들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예수와 몇 시간 동안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필라테는 예수에게 갈릴리 해변에서 설교했다는 ‘위험한 교리’에 대해서 물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는 자신이 정치에 대해서는 결코 말한 적이 없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는 인간의 육체가 아니라 영혼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모든 사람이 이웃을 자신의 형제처럼 여기고, 모든 생물의 아버지인 유일한 신을 사랑하기를 바라고 있었습니다.
필리터는 스토아 학파와 그밖의 그리스 철학에 대해 꽤 정통한 사람이었는지 에수의 말에서 어떤 선동적인 점도 찾아내지 못했다고 합니다.
제가 알아낸 바, 그는 이 부드러운 선지자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다른 시도를 했던 모양입니다. 그는 처형을 계속 연기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성직자들의 부추김을 받은 유대인들은 격노하여 광란상태를 연출하였습니다.
에전보다 더 많은 소요가 예루살렘에서 일어났고, 가까운 가리에 있는 로마 병사들의 수는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또 필라테가 ‘나자렛 사람의 교의에 희생물이 되었다.“는 투서가 카이자레에 있는 로마 당국까지 날아왔습니다. 필라테는 제국의 반역자이기 때문에 소환되어야 한다는 탄원서가 도시 전역에 나돌았습니다.
아저씨도 잘 아시겠지만 우리는 외국인의 공공연한 분쟁에 끼어들지 말라는 엄격한 지시를 받고 있습니다. 마침내 필라테는 내란을 종식시키기 위해 기품 있고 자신을 미워한 사람들을 용서했던 그의 죄수 예수를 결국 희생시켜야만 했습니다. 예수는 예루살렘 군중의 악에 바친 욕설과 비웃음 속에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이상이 요셉이 들려준 이야기인데, 말을 하는 동안 그의 뺨엔 눈물이 쉴 새 없이 흘러내리고 있었습니다. 떠날 때 그에게 금화 몇 닢을 주었지만 그는 자기보다 가난한 사람에게 주라며 한사코 받기를 거부했습니다.
저는 그에게 아저씨의 친구 바울로에 대해서도 몇 가지 물었습니다. 하지만 요셉은 바울로에 대해서는 조금밖에 알지 못했습니다.
아무튼 그의 말에 따르면 바울로는 유대인 성직자들이 늘 말하는, 사랑과 용서라는 신의 말을 전파하기 위해 지적인 직업을 버리고 천막을 만드는 사람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나중에 그는 소아시아와 그리스 여러 곳을 다니면서 노예들을 향해 ‘너희들은 모두가 사랑하는 아버지의 자식들이다. 가난한 사람이건 부자이건 간에 정직한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며 고통받고 신음하는 자들을 위해 착한 일을 하는 사람에게는 행복이 기다리고 있다’라는 말들을 들려주었다고 합니다.
저의 답장이 아저씨의 질문에 어느 정도 흡족한 것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저의 생각으로는 이 모든 이야기들이 국가의 안위에 관한 한 아무런 해가 없다고 사료됩니다. 하지만 우리 로마인들은 이 지역 사람들을 결코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들이 아저씨의 친구 바울로를 죽였다니 유감입니다. 고향에서 다시 뵙기를 바라면서.

아저씨의 충실한 조카 글라디우스 엔사
2004/02/25 12:34 2004/02/25 12:34
2004/02/25 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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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고래가그랬어 로고입니다. '어린이 교양지' 부분만 아직 유동적이지요..ㅎㅎ.
2004/02/25 01:19 2004/02/25 01:19
2004/02/23 21:26
인천 만석동 기차길옆 작은학교가 근사한 공연을 한답니다.
2004/02/23 21:26 2004/02/23 21:26
2004/02/22 17:20
고래가그랬어는 '어린이교양지'라는 말이 붙어 있습니다. 그런데 초등학생뿐 아니라 중학생 이상이 봐도 문제없는 내용이라서 '어린이'라는 말을 바꾸려 합니다. 어린이라는 말은 초등학교 고학년만 되도 좀 어색한 느낌이 있는 모양입니다. 내부에서는 '소년'이라는 의견이 나와 있는데 '소년은 남성적인 느낌이 있다'는 지적 때문에 좀더 생각해보기로 한 상태입니다. 해서 더 좋은 말을 공모합니다. 마감은 수요일(25일)이며.. 사례는 고래 정기구독권입니다..ㅎㅎ.
2004/02/22 17:20 2004/02/22 17:20
2004/02/22 13:35
편집장이 아량을 베풀어 자정 너머 들어가 오랜 만에 동네 친구들과 술을 먹었다. 허튼 소리도 좀 하고 하면서 유쾌하게. 동네 친구들은 다 나보다 나이가 아래인데 술 먹거나 운동할 때는 내가 아래다. 건강한 몸은 내가 가진 가장 큰 재산이다. 권정생 선생을 생각하면 그 재산이 부끄럽다. 책상에 앉아 있기조차 힘든 그는 세상에서 가장 좋은 글을 쓴다. 사람들은 그를 강아지똥의 작가로만 기억하지만 성인 독자에게는 그의 산문이 좀더 치명적이다. 그의 산문은 한 치의 정치적 혼란도 없다. 사람답게 사는 법을 알고 싶다면 권정생을 읽어보시길.
2004/02/22 13:35 2004/02/22 13:35
2004/02/22 00:00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도 남아 있어야 인간의 세상이라 할 수 있다. 존경이나 사랑, 꿈 같은 것 말이다. 그러나 이젠 돈으로 살 수 없는 건 세상에 없다. 그래서 아이를 키우는 일은 단지 '상품가치'를 높이는 일이며, 그렇게 자란 아이들은 좀더 끔찍한 세상을 만든다.
2004/02/22 00:00 2004/02/22 00:00
2004/02/21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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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감에 디자인 팀에 징발되어 노트북 옆에 아이맥을 한 대 갖다 놓고 작업중. 전에 맥을 쓸 땐 피시는 컴퓨터도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오랜 만에 쓰는 맥이 불편 한 걸 보면 XP에 이르러선 윈도도 쓸 만해졌다. 윈도라는 게 본디 표절이지만 모작도 발전하면 원작에 육박하는 모양이다. 표절과 협잡으로 갑부가 된 빌 게이츠는 인류 역사상 가장 큰 도둑이다. 오늘은 오랜 만에 동네 친구네와 한잔 하고 싶은데 들어갈 수 있을까..

오른쪽은 카메라를 180도 돌려 '셀프샷'(참 여러가지 하는구나 김규항..ㅎㅎ.)
2004/02/21 20:04 2004/02/21 20:04
2004/02/19 18:40
웹 전문가인 후배가 ‘웹에서의 감정 표현’을 좀 다양하게 해보는 게 어떠냐고 충고했다. 내가 쓰는 게 ‘ㅎㅎ’ 뿐이니 그의 말은 말하자면 이모티콘을 쓰라는 말이다. 웹을 돌아다니기 시작한 건 그리 늦은 편이 아닌데, 웹에서 활동한 적이 없다 보니 글을 쓴다거나 하는 일은 여전히 익숙하지 않다. 게다가 나는 웹이 아니어도 글을 쓸 때 ‘물음표’나 ‘느낌표’도 대개 ‘마침표’로 처리할 만큼 뭐가 붙는 걸 싫어하는 편이다. 블로그를 시작한 이유가 좀더 편안한 소통을 하려는 것이라면 다들 쓰는 정도는 써야지 싶은데..누구 '필수 이모티콘' 몇개만 알려주세요ㅎㅎ.(ㅎㅎ)
2004/02/19 18:40 2004/02/19 18:40
2004/02/18 23:26
오랜 만에 점심 먹으러 온 후배가 말했다. "이념은 이기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기득권 세력은 한나라당 지지하는 게 당연하고, 시민들은 민주당이나 열린우리당 지지하고.. 자신에게 필요한 상품을 구매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맞는 얘기야. 이기적어야 하지. 그런데 이기심의 사회적 가치가 다 같은 건 아니겠지. 지배 계급이 자기 이익을 보전하려는 건 사회적으로 정당하지 않지만, 노동자나 농민이 자신의 생존권을 찾으려는 건 이기적이면서도 사회적으로도 정당하지."

후배 말마따나 이념은 이기적인 것이다. 그리고 이념이란 다름 아닌 '어떤 계급의 이해를 지지 하는가’다. 이를테면, <좌우는 있어도 위아래는 없다>라는 책 제목은 그른 것이다. 좌우는 더도 덜도 아닌 ‘위아래’다. 지배 계급의 이해를 지지한다면(오늘 체제가 유지되길 바란다면) 보수(우파)이고, 피지배 계급의 이해를 지지한다면(오늘 체제가 바뀌길 바란다면) 진보(좌파)인 것이다. 그리고 그 사이에 ‘시민’이라는 중간 계급의 이해를 기반으로 하는 개혁적 우파니 개량적 진보니 하는 다양한 이념들이 촘촘히 끼어 있다.

한국인들은 지난 3대에 걸쳐 ‘극단적인 형태의 반공주의’를 기반으로 하는 지배 계급의 이념을 강요당해 왔다. 그걸 부인하는 건 죽여 마땅한 반역자였다. 그 결과 상위 계급은 제 이념에 뻔뻔스러울 만치 익숙해진 반면, 중간 계급과 하위 계급은 ‘남의 이념’에 오히려 더 익숙하게 되었다. 90년대 들어 중간계급은 이른바 ‘개혁운동’(참여연대를 비롯한 시민운동, 강준만이 주도한 정치개혁 언론개혁 운동, 노사모를 비롯한 이런저런 인터넷 시민운동..)을 통하여 제 이념을 찾게 되었다.

그러나 하위 계급, 즉 노동자 민중들은 여전히 남의 이념에 더 익숙한 상태다. 늘 열심히 노동하지만 사는 꼴은 형편없어, 세상이 확 뒤집어지지 않고서는 도무지 희망이 없어 보이는 사람들이, "진보 정치가 진출하면 세상이 혼란스러워질 거"라 염려하고, “이라크 파병이 가져다 줄 국가적 실리”를 기대하는 슬픈 코미디가 벌어지는 것이다.

‘이념적 혼란’은 90년대 이후 한국 사회를 말할 때 가장 중요한 문제다. 특히 90년대 이후 개혁적 우파가 ‘민주화의 공’을 독식하고 ‘오늘의 진보’를 자처하기 시작한 일은 좌파에게 가장 치명적인 타격이 되었다. 오늘 한국에서 ‘이념의 명찰’은 한 칸씩 왼쪽으로 붙어 있다. 극우는 보수의 명찰을, 개혁적 우파는 천연덕스럽게 진보의 명찰을 붙이고 있다. 붙일 명찰이 없는 좌파는 그저 ‘논외의 상태’다.

오늘 노동자 민중이 이리저리 손쉽게 내몰리는 것도 그들의 이념이 그런 정처 없는 처지에 있기 때문이다. 좌파의 가장 시급한 숙제는 '논외의 상태’를 벗어나는 것이며, 진보를 자처하는 개혁적 우파야말로 오늘 좌파의 가장 주요한 적이다. 성실하고 열정적인 현장 활동가들은 ‘동지들이 죽어나가는 판에 무슨 소린가’ 싶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대체 왜 좌파가 민주화가 된 지 10여년이 지나 고작 ‘동지들이 죽어나가는 판’을 맞게 되었는가를 되새겨야 한다.

좌파가 ‘가장 좌파적인 소재’에 집중하려 드는 건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오늘의 ‘이념적 혼란’에 대한 고려 없이 오로지 ‘가장 좌파적인 소재’에만 집중한다면 운동은 자족적인 게 되기 쉽다. 80년대 이후 늘 그래왔듯, 투쟁으로 얻어지는 사회적 성과는 모조리 개혁적 우파에게 내주고 운동의 현실적 한계는 좌파 본연의 한계라 치부되어 버리는 것이다. '논외의 상태'에 있는 운동이 사회를 위협할 방법은 없다. 그리고 사회를 위협하지 않는다면 더 이상 좌파가 아니다. 개혁에서 진보로! 오늘 한국 좌파의 숙제다.

(노동자의힘 기관지)
2004/02/18 23:26 2004/02/18 23:26
2004/02/18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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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인간해방의 미소로 남다..
2004/02/18 10:56 2004/02/18 10:56
2004/02/17 00:52
songhwan.gif
2004/02/17 00:52 2004/02/17 00:52
2004/02/16 01:02
이른바 지식인 노릇 하면서 가장 힘든 게, 존경할 만한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한국이 원래 이렇지는 않았다. 10여년 전만해도 한국엔 존경할 만한 사람이 얼마나 많았던가. 민주화 이후, 말하자면 한국이 본격적으로 자본주의화한 이후 이렇게 되어버렸다. 김진균 선생은 그런 한국에서 거의 최후로 남은 존경할 만한 사람이었다.

나는 김진균 선생과 별다른 개인적 친분은 없었다. 선생을 직접 만난 것도 불과 몇 해 전이다. 충북대에선가 열린 심포지움에 토론자로 갔을 때 객 석 한 가운데에 선생이 미소 띤 얼굴로 경청하고 있었다. 끝나고 화장실에서 마주친 선생에게 목례를 하자 밝게 웃으며 그러셨다. “좋던데요.”

그 얼마 후 선생과 진보넷에 함께 칼럼을 쓰게 되었다. 어떤 매체에 글을 쓰게 되면서 ‘명예롭다’는 생각을 해본 건 처음이었다. 존경할 만한 매체에 존경할 만한 사람과 함께 글을 쓰는 건 행복한 일이다. 그 즈음 보낸 이메일에 선생은 적었다. “이젠 낮 비행도 해야지요.” 내 칼럼 코너 이름이 ‘야간비행’인 걸 두고(선생의 칼럼란은 '불나비처럼'이다) 하신 우스개였다.

그러나 나는 선생의 그 우스개에서 뜻을 찾게 되었다. 나는 내 글이나 활동이 ‘야간’에 치우쳐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나는 진보주의자들의 ‘자족성’에 늘 비판적이었는데, 야간에 치우친 비행 역시 자족적일 수밖에 없었다. 그 후 나는 그 문제를 고치려고 노력하고 있다.

김진균 선생을 존경한 사람은 참 많다. 그 존경이 다 같지는 않겠지만, 한 가지만은 분명하다. 존경은 괜스레 생기는 게 아니다. 고개 숙여 선생의 명복을 빈다..
2004/02/16 01:02 2004/02/16 01:02
2004/02/13 11:30
물론, 진실은 옳고 그름의 차원으로만 말할 수 있는 게 아닐 것이다. 그러나 옳고 그름을 따지려 하지 않는 건 아예 진실에 다가가려 하지 않는 것과 같다. 사람들은 진실에 다가가지 않기 위해, ‘진실은 옳고 그름의 차원으로만 말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주장하곤 한다. 우리가 진실에 다가가는 가장 좋은 방법은 여전히 끊임없이 옳고 그름을 따져보는 것이다. 대개의 우리는 한 세기에 한번 나올까 말까한 현인이 아니다.
2004/02/13 11:30 2004/02/13 11:30
2004/02/12 14:08
취학통지서를 받은 김건에게 홍역예방주사를 맞히러 교하보건소에 갔는데 의사가 아파서 못 나왔단다. 김건 왈 “의사도 아파?” “의사도 사람인데 아플 수도 있지.” “내가 의사라면 아파서 안 나왔다고 하지 않고 다르게 말할 거야.” “왜.” “창피하잖아.” 엉성하나마 김건도 ‘사회적 위신’을 생각하는 나이가 된 모양이다.

서둘러 금촌에 있는 파주보건소까지 갔다. 김건은 주사 반대 방향으로 머리통을 파묻긴 했으나 울진 않았다. 상으로 점심 때 자장면을 시켜주기로 약속했다. 돌아오는 길에 부러 곡릉천(옛날 박헌영이 이 하천을 건너 북으로 갔다.. 송장인 체 관 속에 누워..) 둑길로 왔는데 반쯤 얼은 곡릉천에 새들이 많다. 새들은 물위를 유유히 움직이거나 하늘을 유영하다 다시 물에 내리곤 한다.

새는 대략 너댓 가지 종류인데 이름을 제대로 아는 게 없다. 김건이 물어보지 않는 게 다행스러울 따름이다. 아이들이 자랄수록 자연에 대해 잘 모르는 게 부끄러워진다. 아이와 밤하늘을 보며 별자리 하나 제대로 설명 못하는 걸 아비라고 할 수 있을까.. 아이와 숲을 거닐며 풀 이름 꽃 이름 하나 제대로 대답 못하는 걸 아비라고 할 수 있을까..

더는 미루지 말고 무슨 수를 내야겠다.
2004/02/12 14:08 2004/02/12 14:08
2004/02/10 22:45
블로그를 공개한다. 만족스럽진 않지만, 모자라는 건 계속 고쳐나갈 생각이다. 누구에게나 편안하고 담백한 느낌을 주는 블로그가 되었으면 좋겠다. 가능하다면 아이들에게도..

('김규항의 블로그'를 권유한 김명준 형과, 블로그 틀을 짜주고 종이 편집만 아는 나에게 웹 편집의 기초를 만들어 준 최호찬 형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2004/02/10 22:45 2004/02/10 22:45
2004/02/09 20:11
출근길에 한강을 바라보다 아이들이 읽을 수 있는 '예수전'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청년들을 위한 예수전은 전부터 생각했지만 아이들을 위한 건 처음이다. 왜 진작에 생각하지 못했을까. 아이들이 읽을 수 있다는 건 모든 사람이 읽을 수 있다는 것인데.. 예수는 모든 사람이 읽을 수 있게 써야 한다.

아이들이 읽는 예수전이라 해도 '예수의 껍데기'는 벗겨내야 한다. 아니, 아이들이 읽기에 더더욱 그래야 한다. 모든 어른과 모든 교회가 아이들에게 예수의 껍데기를 가르친다. 아이들은 일생 동안 예수를 ‘머리 뒤에 광채를 두른 채 모든 사람에게 가르치듯 말하는 섬약하게 생긴 백인 남성’으로 기억하게 된다. 그리고 단지 그를 ‘믿으면’ 현세와 내세가 보장되는 되는 것으로 안다. 그게 한국인들과 예수의 거의 유일한 조우다.

예수전은 처음부터 차근차근 되짚는 게 좋겠다. 동정녀 탄생 이야기는 예수의 신령함이나 순정함을 주장하는 전근대적인 상상력이다. 그걸 생물학적으로 반박하는 건 의미가 없다. 그 이야기는 생물학을 말하려고 하는 게 아니므로. 가령 그 이야기는 이렇게 보충된다. "예수님이 동정녀에게서 낳든 창녀에게서 낳든 다를 게 없어. 사람의 가치가 엄마가 누구냐 아빠가 누구냐에 따라 정해지는 건 아니야."

오늘부터 구상에 들어가자. 가만, 그림을 누구에게 맡길까..
2004/02/09 20:11 2004/02/09 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