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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3/09/23 국익
  2. 2003/09/03 추모
2003/09/23 00:15
결국 놈들은 전투병 파병을 요구해왔다. 놈들이 순수한 장사 놀음으로 시작한 침략전쟁에 우리 죄 없는 청년들을 총알받이로 보내라는 요구다. 워낙 더러운 요구다 보니 광화문에서 성조기를 흔드는 영감들과 미국을 하느님이 축복한 나라라 믿는 목사들 정도를 빼고는 다들 전투병 파병을 반대하는 분위기다. 심지어 함부로 말하는 버릇 때문에 늘 욕을 얻어먹는 노무현씨조차 이번엔 꽤나 신중해 보인다. “먼저 보내는 것도 국익이 아니고 먼저 거부하는 것도 국익이 아니다.”

그러나 매우 신중한 태도를 드러내는 것으로만 보이는 그 말 속엔 실은 매우 강한 파병 의지가 들어있다. 바로 ‘국익’이라는 말 속에 말이다. 한국에서 ‘국익’이라는 말은 주술에 가깝다. 노동자들의 싸움이든 농민의 싸움이든 전쟁을 반대하는 싸움이든 한국에서 일어나는 모든 정당한 싸움들은 언제나 국익이라는 주술 앞에 힘을 잃는다. 국익을 위해서라면 노동자는 시키는 대로 일하고 주는 대로 받아야 하고 농민은 모두 배를 가르거나 몸을 불살라도 어쩔 수 없으며 청년들은 기꺼이 더러운 전쟁에 총알받이로 나가야 한다.

우리가 그 주술에 대적하는 무기는 이른바 ‘명분’이었다. ‘노동자의 정당한 권리’, ‘농민을 죽이는 개방’, ‘명분 없는 전쟁’ 그러나 사랑이나 존경 같은 고상한 가치마저 돈으로 사고 팔리는 세상에서 명분으로 실리를 이기는 건 애당초 불가능한 일이다. 냉정하게 말해서 오늘 한국에서 명분으로 실리를 이기려는 노력은 한국에도 명분을 좇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리는 것 외에는 의미가 없어 보인다.

‘국익’이란 주술과 싸우는 유일한 방법은 그 주술 자체를 부수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명분’이 옳지만 어딘가 국익에는 배치되는 데가 있다는 노예의 생각을 버려야 한다. 우리는 정색을 하고 이렇게 물어야 한다. ‘그런데 그놈의 국익은 대체 누구의 국익이지?’

국익이란 ‘나라의 이익’이란 말이다. 그러나 세상의 어떤 나라에도 ‘나라의 (단일한) 이익’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나라는 층층한 여러 계급들로 이루어진다. 계급들의 이익은 몹시 다르거나 심지어 적대적이다. (이경해씨 추모집회에서 제 몸을 불사른 박동호 씨와 제 아비의 막대한 재산을 모조리 물려받는 이재용 씨는 서른넷 동갑내기 한국인이다.)

‘국익’이란 실은 지배계급의 이익을 속여 이르는 말이다. 지배계급은 언제나 자기들의 이익을 국익이라 주장한다.(그게 자기들만의 이익이라는 게 밝혀지는 순간 더 이상 지배할 수 없다.) 노동자의 정당한 싸움도 농민들이 제 배를 가르고 제 몸을 불사르는 일도 죄 없는 청년들이 더러운 침략 전쟁에 총알받이로 가는 일도 단지 자기들의 이익을 보전하기 위한 일이지만 국익이라 주장한다. 그리고 그걸 거스르는 사람은 애국심이 부족한 사람이거나 반역자라는 오명을 들씌운다.

주술을 깨트려야 한다. 진정한 국익은 한줌도 안 되는 지배계급의 이익이 아니라 정직하게 땀 흘려 일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이익을 드러내는 것이어야 한다. 그럴 때 비로소 우리는 모든 뒤엉킨 것들을 바르게 할 수 있다. 노동자들의 정당한 싸움을 존중하는 게 국익이며 농민의 아픔을 함께 하는 게 국익이며 더러운 침략전쟁에 절대 전투병을 보내지 않는 게 바로 국익이라면 누군들 애국자가 되려 하지 않겠는가.(씨네21 2003/09/27)
2003/09/23 00:15 2003/09/23 00:15
2003/09/03 00:14
“이오덕 선생님, 김규항입니다.” “예. 조금 아까도 김선생이 전화하셨습니까.” “예. 30분쯤 전에 제가 했습니다.” “누워서 주사를 맞고 있어서 일어나기가 어려웠습니다.” “많이 편찮으십니까.” “좀 그렇습니다.” “잡지가 이제 거의 짜여져서 한번 찾아뵈려고 연락드렸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안 그래도 제가 몸이 많이 안 좋아져서 드릴 이야기도 있고 하니 한번 와주시겠습니까.” “다음주에 언제가 편하십니까.” “화요일은 서울 병원에 가고 다른 날은 아무 때나 괜찮습니다.” “그럼 월요일에 찾아뵙는 걸로 하고 시간은 그날 아침에 다시 전화 드리겠습니다.”

나는 월요일 아침에 전화 드린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전날 폭우를 무릅쓰고 산에 올랐다가 전화기에 물이 들어가 버렸다. 전화번호야 달리 알아볼 수도 있었지만 그날은 종일 이래저래 경황이 없었다. 전화 드려야 하는데, 드려야 하는데 속으로만 생각하다 하루가 다 지났다. 새벽녘에 사무실에서 깜박 잠이 들 즈음에야 나는 선생이 이미 월요일 새벽에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바로 찾아뵈었어야 했다는 소용없는 후회가 밀려왔다.

‘거의 짜여진 잡지’란 내가 한해 전부터 준비해온 ‘어린이 교양 월간지’다. 내 글을 읽는 사람들이 대개 삶에 대한 태도를 바꾸기에는 이미 늦어버린 사람들이라는 사실과 그들이 내 글을 제 얼마간의 사회의식을 배설하는 도구로 사용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나는 두 가지 결심을 했었다. 하나는 그들을 불편하게 만들 만큼 급진적인 글을 쓰는 것. 다른 하나는 삶에 대한 태도를 바꿀 가능성이 남은 사람들을 위해 뭔가를 만드는 것.

첫 번째 결심은 얼기설기 진행 중이고 두 번째 결심은 ‘어린이 교양 월간지’로 이어졌다. ‘만화라는 그릇’을 사용한다는 내 생각을 선생은 손뼉을 치며 반겼다. 선생은 한글 교열을 자청하기도 했다. 그리고 선생은 당부했다. “아이들에게 어떤 생각을 심어주겠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아이들은 어른들이 잃어버린 것들을 아직 가지고 있다는 걸 믿어야 합니다. 우리가 할 일은 그게 잘 열매 맺도록 도와주는 겁니다.” 선생의 당부는 내내 기획 작업의 기조가 되었다.

문상은 물론 부조, 화환도 받지 말라는 유언에 따라 문상객들은 마당에 자리를 깔고 앉아 담소나 하고 있었다. 어느 거들먹거리는 인사들이 보냈을 몇 개의 화환은 돌려 세워져 있다. 엉덩이를 옮기며 여기 앉아 좀 드시라 부르는 어떤 이의 호의를 나는 목례로 거절했다. 나는 자리에 앉아 음식을 먹을 수 있을 만큼 편안한 상가라면 굳이 안 가도 된다고 생각해왔다. 나는 동행한 후배와 감나무에 파란 감이 주렁주렁 달린 선생의 작업실 둘레를 한바퀴 돌아보고 바로 길을 나섰다.

그날 밤 선생의 사진들을 노트북 화면에 띄웠다. 나는 두해 동안 반년 간격으로 선생을 인터뷰하고 사진을 찍었다. 선생은 지난해 초순으로 접어들면서 눈에 띄게 쇠잔해지고 있다. 그 무렵 선생은 당신을 존경하고 따른다는 사람들이 정작 당신의 생각을 잘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낙심했다. 선생보다 육체적으로 젊은 누구도 선생보다 정신적으로 젊지 않았다. 그들은 선생의 낙심을 노인의 강퍅함으로 해석하는 듯 했다. 선생은 절대 고독에 침잠해갔다. 제 신념에 제 삶을 완전하게 일치시키는 사람들이 겪곤 하는 숙명적인 절대고독에.

노트북 화면에 뜬 선생의 커다란 눈을 보며 나는 말했다. “선생님을 온전히 이어받을 사람은 애초부터 없었습니다. 대신 선생님은 여러 사람들의 정신 속에 나누어 살아 계십니다. 이제 편히 쉬십시오."(씨네21 2003/09/03)
2003/09/03 00:14 2003/09/03 0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