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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1/06/22 마초의 꿈 (1)
  2. 2001/06/20 청년들, 영화로 도망하다
2001/06/22 22:52
나는 마초다. 졸렬하나마 진보주의자 노릇을 하고 사는 내가 마초인 게 자랑일 순 없겠으나 문제는 내 현실적 처지다. 나는 10대 후반 한 시절을 ‘남자의 세계’에 사로잡혀 보냈고 그 체험은 오늘 여전히 내 정신의 말단을 지배하고 있다. 나는 도리 없는 마초다. 다만 나는 내가 ‘남자의 세계’를 좇는 일이 ‘여성의 세계’를 억압하는 일이 되지 않도록 늘 긴장한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긴장을 유지한다면 좋은 마초란 좋은 인간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게 내 생각이다.

긴장을 생략한 마초란 그저 쓰레기와 같다. 우울하게도 한국은 그런 쓰레기들, 악성 마초들로 그득하다. 악성 마초들은 얼핏 마초보다 더욱 마초답지만(거칠고 뚝뚝한, ‘의리’를 남발하는 말투 따위) 나보다 강한 사람 앞에서 한없이 당당하고 나보다 약한 사람 앞에서 한없이 부드럽다는 마초의 기본을 전적으로 거스른다. 악성 마초들은 저보다 약한 사람 앞에서 한없이 당당하고 저보다 강한 사람 앞에서 한없이 부드럽다. 요컨대 악성 마초들은 여성, 아이, 후배, 부하 앞에서 강해지며, 대개 폭력적이다. 가정폭력을 포함, 가장 야비한 유형의 이런저런 폭력들이 악성 마초들의 전유물인 건 그래서다.

‘여자의 도리’에 관한 남성일반의 ‘공감대’는 악성 마초의 여성에 대한 폭력을 더욱 공공연하게 만든다. 후배 여성을 성추행한 남성 시인 P씨가 그 일을 비판한 여성시인 K씨를 한 저명한 문학지 홈페이지에서 갖은 추악한 언어로 보복한 일은 그 예다. 한 낯 대로에서 성폭력과 다름없는 그 일이 진행되는 몇 날 동안 모든 남성문인들은 침묵으로 일관했다. P씨는 줄곧 K씨의 확인되지 않은 사생활을 들먹였고 ‘여자의 도리’(여자는 절대 정숙해야 한다는)에 관한 남성일반의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그 음험하고 강력한 공감대에, K씨의 사생활은 P씨의 성추행 사건과 전혀 관련지을 수 없는 문제라는 상식이 끼어들 틈은 없었다. 그 사건은 이른바 한국 남성문인들(보수적인, 심지어 진보적인)이 하나같이 악성마초이거나 악성마초를 옹호하는 자들이라는 혐의를 갖게 했다.

악성마초들은 야비하기에, 집단을 이룰 때 더욱 폭력적이다. 부산대 페미니즘 웹진 ‘월장’의 이른바 ‘대학 내 예비역(한국 군대에서 막 빠져나온 청년들. 나 역시 예비역 육군 병장이지만, 독립군이 아닌 일제부역자들을 중심으로 출발한 한국 군대는 지난 반세기 동안 악성마초의 국가적 양성소 노릇을 해왔다.) 비판’으로 시작된 ‘월장 사태’는 그 예다. 악성 마초들은 월장 회원들의 전화번호를 인터넷 성인사이트에 올려 폰섹스 요구 전화에 시달리게 했고 강간하겠다 협박했다. 무기가 있었다면 양민학살이라도 재현되었을까. 악성 마초들은 줄곧 월장의 처음 비판 글에 나타난 부분적인 실수를 들먹였고 예의 ‘여자의 도리’(여자는 절대 실수해선 안 된다는)에 대한 남성일반의 음험하고 강력한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그런 부분적인 실수가 그 사안 전체의 진실을 덮을 순 없다는 상식은 역시 끼어들 틈이 없었다. ‘여성 100인위원회’ 이후, 아직은 그런 상황의 반복이다.

추신: 그람시가 감옥에서 아들에게 보낸 편지엔 “계집애처럼 칭얼거리지 말고...”라는 구절이 있다. 나는 그 구절에 거부감을 느끼는 내가 적이 대견했다. 나는 인류가 낳은 가장 완전한 인간 가운데 하나인 그람시보다 (단지 수십년 늦게 난 덕에) 좀더 개선된 마초인 것이다. 역사 진보의 엄연한 한 줄기로(혹은, 거의 별개의 줄기로) 여성해방의 역사가 쉼 없이 흐르고 있다. 내 딸과 아들은 여자다운 여자나 남자다운 남자를 넘어 인간다운 인간에 좀더 접근할 것이다. 도리 없는 마초의 ‘과도적 꿈’이다.(한겨레 2001.6.22)
2001/06/22 22:52 2001/06/22 22:52
2001/06/20 17:37
“어떤 이유에서인지, 빤질빤질하고 좌충우돌하는, 거의 만능에 가까운 조숙한 ‘아이-어른/어른-아이’들이 90년대 소설의 전형적인 주인공상이 되었다. 그런 허장성세형의 인물들이 90년대 초입에 대거 등장한 까닭을 나름으로 풀이하자면 이런 것이 될 것이다: ‘기존의 가치는 폐기되었고, 새로운 질서는 도래하지 않았다.’ 신세대 소설에 등장하는 만능인은, 베를린 장벽과 크레믈린이 일시에 녹아버린 어느날 갑자기 태어났다. 8•15를 예견하지 못했던 일제시대의 지식인과 비유될 수 있을 정도로 그들은 자기 시대의 맹인들이었으나, 그들을 관통한 세월은 그들로 하여금 그들이 실제 경험한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아는 체하게 해주었다. 문화형성이니 모조현실과 같은 거품의 사유가 아니라 진지하게 실존에 대해 사고할 절호의 기회가 90년대 신세대에게 주어졌으나, 한번도 실존의 삶을 교습받아 본 적이 없는 신세대식 실존주의는 치기어린 ‘육백만불의 사나이’들을 그들이 쓴 소설나부랭이 곳곳에 게워 내 놓았다.”(장정일, 독서일기 3)

장정일(소설가지만, 나는 그의 산문에서 문학이 정신세계의 꼭대기에 있던 시절에나 볼 수 있던 통찰을 발견하곤 한다)의 의견에 공감한다. 덧붙이자면 바로 그 90년대 이후 한국에서 영화가 유례없이 번창하게 된 사연 또한 별반 다르지 않다. “베를린 장벽과 크레믈린이 일시에 녹아버린 어느날 갑자기” 한국 청년들은 대거 현실을 떠나 영화로 도망했다.

그것은 전적으로 80년대 청년들 덕이었다. 한국사회 특유의 현실비판적 청년정신은 80년대에 폭발했다. 80년대 청년들에게 세상을 바꾸는 일은 곧 실존의 확인이었다. 인류가 축적한 현실변혁에 관한 모든 아이디어가 빠짐없이 동원되었고 수많은 청년들이 거침없이 현실 속으로 투신했다. 그러나 그들은 허약했다. 90년대가 되어 동구가 무너지고 절차적 민주주의가 진전되자 그들은 순식간에 청산을 택했다. 거침없이 현실 속으로 투신하던 그들은 자신을 모욕하는 일에도 거침없었다. 80년대 청년들의 졸렬한 청산은 90년대 청년들에게 생생히 목격되었다.

세대간의 존경으로 이어져온 청년정신은 80년대와 90년대 사이에 완전히 단절되었다. 90년대 청년들은 80년대 청년들을 존경하지 않았다.(자신을 존경하지 않는 사람들을 누가 존경할 수 있었겠는가.) 90년대 청년들은 80년대 청년들의 가장 큰 특징이라 여겨진 ‘현실에 대한 관심’을 거부했다. 90년대 청년들은 비정상적일 만치 현실에 무관심한 특징을 갖게 되었다. 그들이 신실한 자본의 신도(이기심을 구현하는 일이 구원의 길이라 믿는)이자 반동의 신도(인간은 본디 이기적이며 세상은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는다 믿는)로 살게 된 건 오히려 당연한 일이다.

비정상적일 만치 현실에 무관심한 90년대 청년들은 ‘현실과 가장 닮은 가상현실’, 영화로 도망했다. 말하자면 90년대 청년들에게 영화는 실종된 현실의 대체물이다. 80년대 청년들이 현실에 정열을 발산했듯 90년대 청년들은 영화 속의 현실에 정열을 발산한다. 현실에 비정상적일 만치 무관심한 그들은 영화 속의 현실엔 더할 나위 없이 구체적이고 적극적으로 개입한다. 그러나 극장을 나서는 순간 그런 개입의 경험은 그들에게서 흔적없이 증발한다. 그들은 다시 신실한 자본의 신도이자 반동의 신도의 삶으로 돌아간다.

이상이 90년대 이후 한국에서 영화가 유례없이 번창하게 된 사연이다. 오늘 한국영화는 번창할 뿐 아니라 진보하고 있다. 알다시피 그런 진보는 거의 전적으로 10여년 전 영화에 대거 투신한 80년대 청년들의 성과다. 그들이 이제라도 그들 손으로 이룬 영화의 진보가 90년대 청년들이 현실에서 도망하는 수단의 진보이기도 했다는 사실을 되새기길 바란다. 그들이 잃어버린 존경을 되찾을 수 있는 영화를 만들기를 바란다. 그것은 80년대 청년들이 90년대 청년들에게 할 수 있는 가장 유익한 사과가 될 것이다.(씨네21)
2001/06/20 17:37 2001/06/20 17: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