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08'에 해당되는 글 2건

  1. 1999/08/24 어머니
  2. 1999/08/10 음모론
1999/08/24 16:42
'하루감옥체험'을 했다. 명동성당 앞에 지어놓은 0.75평 짜리 감방 일곱 개 가운데 하나엔 내 이름이 적혀 있고 나는 그곳에서 한나절을 보냈다. 참여해 달라는 연락이 왔을 때 나 같은 건달을 뭐에 써먹으려나 싶었지만 군말 없이 따랐다. 민가협, 그들은 우리가 알량하나마 나름의 신념을 건사하고 살수 있도록 사랑하는 가족을 담보로 제공한 사람들이다. 그들이라면 우리 가운데 누구에게든 하루쯤 감옥 체험을 하라고 권유할 자격이 있다. 또한 하루감옥체험은 한국에는 양심수가 없다고 주장하는 더러운 파시스트들로부터 우리의 명예를 확인할 소중한 기회다.

0.75평 짜리 감방은 내 짐작보다 더 좁았다. 이런 곳에서 수십 년을 지내고도 온전한 정신을 유지하는 이들은 대체 어떤 사람들일까. 체제의 요구와 일치하지 않는 신념을 가진다는 이유만으로 이런 곳에 사람을 수십 년씩 가두는 국가에 우리가 걸 수 있는 신뢰는 어떤 것일까. 허락 받지 않은 상념에 빠진 나에게 그들(비전향 장기수 영감님들)이 찾아왔다. 전향서라는 이름의 종이 한 장과 수십 년의 세월을 맞바꾼 그들의 얼굴은 수도자처럼 맑았고 그들의 몸가짐은 사위를 바로 새울 만큼 정중했다. 그들이 창에 얼굴을 대고 자신을 소개한 후 "고생 많으십니다."라고 고개를 숙였을 때 나는 일어나 머리를 조아렸다. 내가 할 수 있는 말이란 그저 "죄송합니다." "건강은 어떠십니까." 쯤이었다. 그들은 내가 있는 곳을 들여다보며 그들이 있던 곳과 모양과 크기가 비슷하다 했다. 그러나 그런 도량형 상의 유사함이란 얼마나 가소로운 것인가. 수십 년 동안 여섯 면의 벽은 하루하루 그들을 향해 다가왔을 테니 말이다.

세 살쯤 되었을까. 이른바 국민의 정부 하에서 일어난 조직사건인 '영남위 사건'으로 투옥된 양심수의 딸아이가 찾아왔다. "아빠도 이런 데 계셔, 아저씨한테 인사해야지." 엄마 팔에 앉긴 아이의 눈엔 이슬이 맺혔고, 인사를 재촉하는 엄마의 말에 아이는 자꾸만 몸을 빼면서도 눈길만은 나를 놓치려 하지 않는다. 곱고 예쁜 세상만 보여주기에도 모자랄 저 아이의 눈망울에 이 비열하고 사악한 세상을 마련한 우리의 죄를 용서받을 방법은 무엇일까.

"아저씨 힘들지 않으세요." 초등학교 일 학년 짜리 남자아이가 제 키를 넘기는 창에 간신히 얼굴을 대고 묻는다. "괜찮아, 아저씬 조금 있다 나가." "우리 아빤 광주 교도소에 있는데." "아빠가 뭘 잘못했지?" "아빤 착한 일 해서 잡혀가셨어요." 고개를 떨구는 저 아이가 익힌 세상의 이치는 '착한 일 하면 잡혀가는' 곳이다. 아이에게 양심과 정의를 가르치는 일이 아이의 인생을 망치는 일이 되는 세상에서 우리가 만들어내는 모든 정신적 성취들(학문적 예술적 문화적 혹은 종교적인)은 한낱 오물에 불과하다.

교도관들(역시 양심수 출신인 청년들)의 감시를 피해 훔쳐 본 명동거리는 텔레비전 스케치 화면처럼 낯설었다. 따가운 햇살 아래 모델 같은 몸매의 아가씨들이 잦은 집회로 길이 든 명동성당 입구를 따분한 얼굴로 흘끔거리며 지나가고, 성당으로 오르는 고급승용차들은 진입로에 주저앉은 보라색 스카프의 어머니들에게 끊임없이 비켜줄 것을 요구했다. 저 아리따운 아가씨들은 자신들이 지켜 가는 다이어트에의 신념마저 사랑하는 사람들을 만날 수 없는 갇힌 이들의 신념 덕에 가능함을 알고 있을까. 고급승용차 뒷좌석에 우아하게 들어앉은 저 귀부인은 자신이 지켜 가는 종교에의 신념마저 한여름 땡볕 아래 주저앉은 저 어머니들의 뚫린 가슴 덕에 가능함을 알고 있을까.

어머니들은 창살 사이로 내 손을 어루만지며 자기 자식인양 안타까와했다. 이곳은 공갈 감옥이고 나는 공갈 양심수지만 그들은 진짜 어머니들이었다. 불과 몇 년 전, 제 자식의 안위만을 기원하며 살던 그들은 이제 이 나라의 가장 추악한 부위를 몸으로 겪으면서 제 자식이 풀려나고도 남의 자식 걱정에 거리를 누비는 투사가 되었다. 내 손을 잡은 채 미소지으며 한 어머니가 말했다. "세상에서 제일 강한 게 엄마잖아. 엄마의 힘은 하늘도 움직일 수 있거든. 우린 무서울 게 하나도 없어." | 씨네21 1999년_8월
1999/08/24 16:42 1999/08/24 16:42
1999/08/10 16:41
지난번 '광수 생각'이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내가 <씨네21>을 공격한 일을 두고 사람들은 두 가지 반응을 보인다. 먼저 내가 <씨네21> 편집장과 격의 없는 사이라는 걸 아는 사람들은 둘이 싸웠냐고 묻는다. 그 얘긴 싸워서 그걸 쓰게 되었냐는 뜻과 그걸 쓰고 싸우지 않았느냐는 뜻을 모두 담고 있다. 반면에 나와 개인적인 친분이 없는, 이를테면 강연에 온 청중이거나 이메일을 보내오는 독자들은 음모론에 가깝다. 그들은 도저히 못 믿겠다는 듯, <씨네21>이라는 잡지의 격조를 드러내려고 둘이 짠 것 아니냐는 식으로 묻곤 한다.

아쉽게도 두 가지 추정은 진실과 멀다. 설명 대신 그 <씨네21>이 나온 직후 나와 <씨네21> 편집장 사이의 전화 통화 내용을 옮겨 본다. "조 선배, 김규항입니다."(그는 나보다 두 살 많다.) "아니, 이 배은망덕한 필자가 자기를 키워준 잡지를 씹어."(그는 늘 자기가 나를 필자로서 '머리 얹어주었다'고 유세하곤 한다.) "하하하, 나는 살모사 새낍니다." "김규항씨가 아무리 그래도 우리는 분명한 우리 입장이 있어." "아이구, 그만둡시다. 그런데 왜 전화 안 했어요."(그는 이따금씩 원고를 받고 전화를 하는데 그런 음험한 거래를 통해 내가 포기한 문장으로 '존만 새끼들', '잠지를 까고' 등이 있다.) "아 우리가 그 정도 격조는 있지." "격조가 아니라 개인적인 자존심 아닙니까. 속은 부글부글 끓지만 후배들 앞에서 그걸 드러내는 자신을 용서할 수 없는." "하하하, 하여튼 앞으로 매번 이런 식으로 나오면 우리는 자르는 방법밖에 없어." "얼마든지. 하여튼 사적으론 백배사죄 드립니다."

나와 <씨네21>이 연루된 음모론의 한 예를 꺼낸 건 내가 보기에 오늘의 한국인들이 대개 음모론자들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보통 사람들(동네 아줌마들, 복덕방 아저씨들, 포장마차의 취객들 등)은 '서해교전'이고 '신창원 체포'고 다 짜고 하는 짓이라는 의견을 큰소리로 서슴없이 내놓는다. 사실 여부를 떠나 격세지감을 느끼게 하는 일이다. 적은 수의 청년들만이 국가를 의심하던 음모론자이던 시절 보통의 한국인들은 청년들에게 말하곤 했다. “너희가 세상을 몰라서 그래.” 그러나 그 청년들이 음모론을 절제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는 오늘, 보통의 한국인들은 너나없이 음모론자다. 한국인들의 시민의식이 하루아침에 비약한 걸까.

알다시피 음모론은 두 가지다. 하나는 진실을 밝히려는, 세상은 개선할 수 있다는 희망에 봉사하는 음모론이다. 다른 하나는 세상을 불신하는, 세상은 절대 개선되지 않는다는 냉소에 봉사하는 음모론이다. 오늘 한국인들은 대개 후자에 해당한다. 그런 음모론에 빠진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세상을 선택하는 일이 아니라 세상에 적응하는 일뿐이다. 그들은 그들이 체득한 적응의 노하우를 자식에게 가르쳐 대를 잇는다.

'군부독재정권의 억압에 신음하던 국민들', 혹은'일천이백만 노동자'라는 말은 지식인들의 레토릭일 뿐이다. 생각해 보라. 한국인들이 그런 일에 신음할 만큼 근대적인 시민의식을 가질 기회가 있었던가. 한국 노동자들이 일천이백만이 나와 같은 처지에 있는 노동자라는 근대적인 계급의식을 가질 기회가 있었던가. 한국인들은 봉건사회에서 바로 식민통치, 그리고 극우 파시스트 치하에서 3대 이상을 살아왔다. 그런 한국인들이 파업하는 지하철 노동자와 자신들이 같은 노동자라는 걸 깨닫지 못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노동자인 그들은 우습게도 '노동자 새끼들 땜에 내가 못 살겠다'고 분노하곤 한다.

더욱 희한한 일은 여전히 전근대적인 한국에서 이른바 '정신 세계를 창조하고 배분하고 적용'한다는 지식인들만은 적잖이 탈근대적(포스트 모던)이라는 사실이다. 그들은 근대도 이루지 못한 나라에서 탈근대를 외치는 코미디언들이다. 그들과 관련하여 나는 얼마 전부터 작은 고민에 빠져 있다. 노숙자들을 일컬어 '한국의 하층민들이 드디어 국가를 거부하기 시작했다'고 찬미한 어느 포스트모더니스트를 한번 불러내서 패고 싶은 욕망 때문이다. 그럴 때면 나는 눈을 감고 이렇게 되내인다. "사람을 패는 일은 근대적이지 않다." | 씨네21 1999년_8월
1999/08/10 16:41 1999/08/10 16: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