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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12/15 12:21
두 달 전 여기다 쓴 <교양>을 읽은 독자들이 보내 온 이메일들. "그런데, 정말 몰라서 그러는데 '구사대'가 뭔가요.(저는 20대)" <교양>은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에서 라디오를 듣던 내가 '구사대'가 무슨 말인지조차 모르는 라디오 프로그램 진행자에 놀라 쓴 글이었다. 나는 '구사대'를 모르는 30대 여자 코미디언과 40대 남자 가수 진행자의 교양을 가련하다 했다. 그러나 독자들 가운데는 '구사대'를 모르는 이가 적지 않았다. 나는 <씨네21>의 20대 독자들이 '구사대'가 창궐하던 시대에 10대였음을 잊고 있었다.

지식인의 자족적인 글쓰기에 대해 여러 차례 폭언을 서슴지 않은 바 있는 나로선 민망한 일이었다. 나는 '구사대'에 대한 간단한 설명에다 사과의 말을 덧붙여 답장을 보냈다. 그러나 같은 내용의 메일들이 거듭되었고 모범 답장을 만들어 보내는 꾀를 내보았지만 그럴수록 마음은 불편해졌다. 그 얘기를 주변 사람 몇몇에게 했더니 다들 믿어지지 않아 했다. '편집장의 편집증'을 앓고 있는 <씨네21> 편집장은, '구사대'는 역사인데 '구사대'를 모르는 사람이 많다면 다음 번에 꼭 '구사대'가 뭔지 적어달라 했다. 그러마 했지만 내가 쓴 글에 대해 내가 얘기한다는 게 어쩐지 민망해서 미루고 말았다. 그렇게 두 달이 지났다.

구사대. 救社隊. 회사를 구하는 부대? '구사대'란 노동조합을 깨기 위해 자본가가 만든 조직이다. '구사대'라는 이름 속에는 노동조합을 회사를 망하게 하는 불순한 노력으로 보는 이 나라 자본가들의 봉건성과 무지가 담겨 있다. '구사대'라는 이름 속에는 때려잡아서라도 노동조합을 깨고 싶은, 노동자의 몫을 한푼이라도 더 자기 몫으로 돌려놓고 싶은 자본가의 파렴치와 욕심이 담겨 있다. '구사대'는 야만적이다. '구사대'는 쇠파이프와 각목으로 농성장을 습격하고 여성노동자들을 능욕하고 백주 대낮에 노동운동가들을 납치 테러한다. '구사대'는 4.19 학생혁명 때 학생데모대를 습격한 정치 깡패의 자식이고 도시 빈민들을 압살하는 철거 깡패의 언니다. 나는 '구사대'가 창궐하던 80년대에 성인이었으면서 '구사대'가 뭔지 조차 모르는 사람의 교양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사람을 정당한 사회의 성원으로 인정할 수 없다.

금강산에 유람선이 뜨면 '구사대'가 생각난다. 금강산 유람선을 그 주인인 왕회장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고 왕회장을 생각하면 그의 '구사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왕회장의 잔치, 소떼를 몰고 평양에 가서 혈육을 만나고 김정일과 사진을 박고 만찬장에서 <아침이슬>(!)을 부르고 금강산에 자기 유람선을 띄우고 금강산 어귀에 자기 주유소를 세우는 그의 행복한 잔치는 어디로부터 오는가. 그 잔치는 달랑 풍경사진 한 장만 갖고 사우디아라비아의 대공사를 따낸 그의 놀라운 패기로부터 오는가, 제임스 리라는 교포깡패까지 수입해다 만든 '구사대'로 노동자들을 테러한 그의 잔인무도한 악행으로부터 오는가. 내가 강퍅한 인간이라선가. 그의 소떼를 보면 저게 누구 손데 싶고, 그가 <아침이슬>을 부르면 저게 누구 노랜데 싶고, 그의 유람선이 뜨면 저게 누구 밴데 싶다.

나는 금강산 유람선을, 그 경사스러운 잔치를 반대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잔치는 나를 불편하게 한다. 나는 그 잔치에 대해 온 나라에 덕담만이 오간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다. 그 완벽한 대타협이 언제 어느 새 이루어졌는지 나는 알 수 없다. 현대자동차(98년 7월), 대전성모병원(98년 7월), 태광산업(98년 8월), 청구성심병원(98년 8월), 한양대병원(98년 9월)... 구사대는 계속되고, 잔치는 여전히 불편하다. | 씨네21 1998년_12월
1998/12/15 12:21 1998/12/15 1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