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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1998/07/14 나의 월드컵 관전기
1998/07/14 16:14
몇 주 전 여기에다 금 모으기 운동이 우리 사회에 뿌리 박힌 파시즘의 반영이라고 써놓곤 내내 편치 않았다. 이름 없는 수많은 사람들의 선의를 차갑게 재단하는 일은 불행했다. 게다가 "한국인들은 누구든 앞장만 서면 무턱대고 따라가는 들쥐"라는 20여 년 전 주한미군 사령관의 말까지 인용한 것은 평소 나라 걱정보다는 일신의 안위만을 위해 살아가는 '집쥐'인 나로선 당치 않은 짓이었다. 설사 내가 지껄인 그 말들이 말로선 옳다고 해도 말이다. 나는 내가 일종의 파시즘 노이로제에 빠진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을 하기 시작했다. 때마침 시작된 월드컵은 내 마음을 무겁게 만들었다. 월드컵은 이 나라 사람들을 집단적으로 미치게 만들고 있었다.

본선 진출이 확정될 무렵만 해도 이 나라 사람들은 그저 16강 진입이나 1승 가운데 하나가 이루어지길 차분하게 소망할 뿐이었다. 이때만 해도 아무도 미치지 않았다. 이 나라 사람들이 갑자기 미치기 시작한 시점은 조 배정이 되고 멕시코가 가장 승산 있는 상대로 지목된 다음부터였다. 사람들의 생각은 아무 개연성도 없이 그러나 매우 빠른 속도로 변해갔는데 '이길 가능성'은 "이길 수 있다"는 구호로 변하고 다시 "이길 수 있다"는 구호는 "이긴다"는 신념으로 변했다. 사람들은 '패기와 정신력'이라는 실체 없는 전력에 기대를 걸고 있었다.

멕시코와의 경기가 있던 날, 평소 축구엔 아무 관심이 없을 뿐더러 그날 따라 유난스러웠던 돌배기와의 전쟁을 방금 끝낸(재운) 아내가 지친 몸에도 아랑곳없이 텔레비전 앞에 버티고 앉더니 '2:1'이라는 예상 점수를 제시했다. 이 여자까지 미친 건가. 나는 아무래도 한국팀이 이기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하석주가 프리킥을 골로 만들었을 땐 나도 환호성을 질렀다. 하지만 아직 시간은 많이 남았고 그만큼 질 가망성도 남았다. 나는 연막을 치기 시작했다. "꼭 우리 팀이 이겨야만 하는 건 아니잖아. 최선을 다해 싸우는 모습을 보여주면 그게 스포츠 정신 아냐." 한 골을 먹자 나는 초조해졌다. "우리 나라처럼 축구 기반이 안 된 나라에서 16강을 바라는 건 말도 안 돼. 본선 올라간 것만 해도 업어 줄 일이지. 일본은 월드컵 경기장을 벌써 일곱 개나 지었대. 우리 나라는 설계도 못했잖아." 드디어 역전골을 먹었지만 나는 끝까지 최선을 다할 뿐이었다. "멕시코 독재가 얼마나 무식했게. 물론 우리가 이기면 좋지만 멕시코가 이기는 것도 나쁠 건 없지. 오랫동안 고생한 멕시코 민중들한테 얼마나 위로가 되겠어. 동병상련이잖아." 한 골을 더 먹고서야 후반전 종료 호각 소리가 났다. 온 나라가 침울하고 나는 잠자코 아내의 말을 기다린다. "당신이 재수 없는 소리만 해서 진 거예요." 아내는 애써 웃고 있지만 그 웃음 뒤엔 '재수 없는 인간'에 대한 적의가 숨어 있었다. 나는 평화를 원했다. "그래 나 땜에 졌어."

내가 앞서 말한 파시즘 노이로제를 해명하려는 나름의 노력을 시작할 수 있었던 건 한국팀이 네덜란드에 대패하고 감독이 잘리고 마지막 경기 벨기에전까지 끝났을 때, 그러니까 이 나라와 이번 월드컵과의 모든 결론이 내려지고 나서였다. 그 동안 월드컵에서 일어난 이런저런 사실들을 떠올려가며 생각을 정리해가던 나는 문득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패기와 정신력'이라는 실체가 없는 전력에 기대를 걸고 미쳐 간 이 나라 사람들은 얼마나 순박한가 하는 생각이었다. 월드컵은 분명 이 나라 사람들을 미치게 만들었지만 알고 보면 오늘날의 월드컵이란 4년에 한번씩 온 나라가 '짜고 미치는' 축제가 아니던가. 축제가 전무한 이 나라 사람들이 거기에 껴서 며칠 동안 살짝 미치는 '순박함'에 파시즘의 혐의를 둘 순 없는 일이었다. 요컨대 내가 집착하는 '우리 안의, 이면의 파시즘' 가운데 일부는 어쩌면 '우리의 순박함'일 가능성이 있었다. 그것은 당연히 보수반동 세력 따위의 '고전적인, 드러난 파시즘'에 뿌리를 두고 있는 부분과는 '구분'될 수 있는 것이었다. 비로소 나는 파시즘 노이로제에서 탈출할 수 있는 구멍을 찾은 것이다. 어떤 경우에도 파시즘은 절대악이지만 '구분'만 분명하다면 이제 나는 얼마든지 파시즘 노이로제에 빠져도 좋은 것이다. | 씨네21 1998년_7월
1998/07/14 16:14 1998/07/14 16: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