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08/24 16:42
'하루감옥체험'을 했다. 명동성당 앞에 지어놓은 0.75평 짜리 감방 일곱 개 가운데 하나엔 내 이름이 적혀 있고 나는 그곳에서 한나절을 보냈다. 참여해 달라는 연락이 왔을 때 나 같은 건달을 뭐에 써먹으려나 싶었지만 군말 없이 따랐다. 민가협, 그들은 우리가 알량하나마 나름의 신념을 건사하고 살수 있도록 사랑하는 가족을 담보로 제공한 사람들이다. 그들이라면 우리 가운데 누구에게든 하루쯤 감옥 체험을 하라고 권유할 자격이 있다. 또한 하루감옥체험은 한국에는 양심수가 없다고 주장하는 더러운 파시스트들로부터 우리의 명예를 확인할 소중한 기회다.

0.75평 짜리 감방은 내 짐작보다 더 좁았다. 이런 곳에서 수십 년을 지내고도 온전한 정신을 유지하는 이들은 대체 어떤 사람들일까. 체제의 요구와 일치하지 않는 신념을 가진다는 이유만으로 이런 곳에 사람을 수십 년씩 가두는 국가에 우리가 걸 수 있는 신뢰는 어떤 것일까. 허락 받지 않은 상념에 빠진 나에게 그들(비전향 장기수 영감님들)이 찾아왔다. 전향서라는 이름의 종이 한 장과 수십 년의 세월을 맞바꾼 그들의 얼굴은 수도자처럼 맑았고 그들의 몸가짐은 사위를 바로 새울 만큼 정중했다. 그들이 창에 얼굴을 대고 자신을 소개한 후 "고생 많으십니다."라고 고개를 숙였을 때 나는 일어나 머리를 조아렸다. 내가 할 수 있는 말이란 그저 "죄송합니다." "건강은 어떠십니까." 쯤이었다. 그들은 내가 있는 곳을 들여다보며 그들이 있던 곳과 모양과 크기가 비슷하다 했다. 그러나 그런 도량형 상의 유사함이란 얼마나 가소로운 것인가. 수십 년 동안 여섯 면의 벽은 하루하루 그들을 향해 다가왔을 테니 말이다.

세 살쯤 되었을까. 이른바 국민의 정부 하에서 일어난 조직사건인 '영남위 사건'으로 투옥된 양심수의 딸아이가 찾아왔다. "아빠도 이런 데 계셔, 아저씨한테 인사해야지." 엄마 팔에 앉긴 아이의 눈엔 이슬이 맺혔고, 인사를 재촉하는 엄마의 말에 아이는 자꾸만 몸을 빼면서도 눈길만은 나를 놓치려 하지 않는다. 곱고 예쁜 세상만 보여주기에도 모자랄 저 아이의 눈망울에 이 비열하고 사악한 세상을 마련한 우리의 죄를 용서받을 방법은 무엇일까.

"아저씨 힘들지 않으세요." 초등학교 일 학년 짜리 남자아이가 제 키를 넘기는 창에 간신히 얼굴을 대고 묻는다. "괜찮아, 아저씬 조금 있다 나가." "우리 아빤 광주 교도소에 있는데." "아빠가 뭘 잘못했지?" "아빤 착한 일 해서 잡혀가셨어요." 고개를 떨구는 저 아이가 익힌 세상의 이치는 '착한 일 하면 잡혀가는' 곳이다. 아이에게 양심과 정의를 가르치는 일이 아이의 인생을 망치는 일이 되는 세상에서 우리가 만들어내는 모든 정신적 성취들(학문적 예술적 문화적 혹은 종교적인)은 한낱 오물에 불과하다.

교도관들(역시 양심수 출신인 청년들)의 감시를 피해 훔쳐 본 명동거리는 텔레비전 스케치 화면처럼 낯설었다. 따가운 햇살 아래 모델 같은 몸매의 아가씨들이 잦은 집회로 길이 든 명동성당 입구를 따분한 얼굴로 흘끔거리며 지나가고, 성당으로 오르는 고급승용차들은 진입로에 주저앉은 보라색 스카프의 어머니들에게 끊임없이 비켜줄 것을 요구했다. 저 아리따운 아가씨들은 자신들이 지켜 가는 다이어트에의 신념마저 사랑하는 사람들을 만날 수 없는 갇힌 이들의 신념 덕에 가능함을 알고 있을까. 고급승용차 뒷좌석에 우아하게 들어앉은 저 귀부인은 자신이 지켜 가는 종교에의 신념마저 한여름 땡볕 아래 주저앉은 저 어머니들의 뚫린 가슴 덕에 가능함을 알고 있을까.

어머니들은 창살 사이로 내 손을 어루만지며 자기 자식인양 안타까와했다. 이곳은 공갈 감옥이고 나는 공갈 양심수지만 그들은 진짜 어머니들이었다. 불과 몇 년 전, 제 자식의 안위만을 기원하며 살던 그들은 이제 이 나라의 가장 추악한 부위를 몸으로 겪으면서 제 자식이 풀려나고도 남의 자식 걱정에 거리를 누비는 투사가 되었다. 내 손을 잡은 채 미소지으며 한 어머니가 말했다. "세상에서 제일 강한 게 엄마잖아. 엄마의 힘은 하늘도 움직일 수 있거든. 우린 무서울 게 하나도 없어." | 씨네21 1999년_8월
1999/08/24 16:42 1999/08/24 16:42
1999/08/10 16:41
지난번 '광수 생각'이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내가 <씨네21>을 공격한 일을 두고 사람들은 두 가지 반응을 보인다. 먼저 내가 <씨네21> 편집장과 격의 없는 사이라는 걸 아는 사람들은 둘이 싸웠냐고 묻는다. 그 얘긴 싸워서 그걸 쓰게 되었냐는 뜻과 그걸 쓰고 싸우지 않았느냐는 뜻을 모두 담고 있다. 반면에 나와 개인적인 친분이 없는, 이를테면 강연에 온 청중이거나 이메일을 보내오는 독자들은 음모론에 가깝다. 그들은 도저히 못 믿겠다는 듯, <씨네21>이라는 잡지의 격조를 드러내려고 둘이 짠 것 아니냐는 식으로 묻곤 한다.

아쉽게도 두 가지 추정은 진실과 멀다. 설명 대신 그 <씨네21>이 나온 직후 나와 <씨네21> 편집장 사이의 전화 통화 내용을 옮겨 본다. "조 선배, 김규항입니다."(그는 나보다 두 살 많다.) "아니, 이 배은망덕한 필자가 자기를 키워준 잡지를 씹어."(그는 늘 자기가 나를 필자로서 '머리 얹어주었다'고 유세하곤 한다.) "하하하, 나는 살모사 새낍니다." "김규항씨가 아무리 그래도 우리는 분명한 우리 입장이 있어." "아이구, 그만둡시다. 그런데 왜 전화 안 했어요."(그는 이따금씩 원고를 받고 전화를 하는데 그런 음험한 거래를 통해 내가 포기한 문장으로 '존만 새끼들', '잠지를 까고' 등이 있다.) "아 우리가 그 정도 격조는 있지." "격조가 아니라 개인적인 자존심 아닙니까. 속은 부글부글 끓지만 후배들 앞에서 그걸 드러내는 자신을 용서할 수 없는." "하하하, 하여튼 앞으로 매번 이런 식으로 나오면 우리는 자르는 방법밖에 없어." "얼마든지. 하여튼 사적으론 백배사죄 드립니다."

나와 <씨네21>이 연루된 음모론의 한 예를 꺼낸 건 내가 보기에 오늘의 한국인들이 대개 음모론자들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보통 사람들(동네 아줌마들, 복덕방 아저씨들, 포장마차의 취객들 등)은 '서해교전'이고 '신창원 체포'고 다 짜고 하는 짓이라는 의견을 큰소리로 서슴없이 내놓는다. 사실 여부를 떠나 격세지감을 느끼게 하는 일이다. 적은 수의 청년들만이 국가를 의심하던 음모론자이던 시절 보통의 한국인들은 청년들에게 말하곤 했다. “너희가 세상을 몰라서 그래.” 그러나 그 청년들이 음모론을 절제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는 오늘, 보통의 한국인들은 너나없이 음모론자다. 한국인들의 시민의식이 하루아침에 비약한 걸까.

알다시피 음모론은 두 가지다. 하나는 진실을 밝히려는, 세상은 개선할 수 있다는 희망에 봉사하는 음모론이다. 다른 하나는 세상을 불신하는, 세상은 절대 개선되지 않는다는 냉소에 봉사하는 음모론이다. 오늘 한국인들은 대개 후자에 해당한다. 그런 음모론에 빠진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세상을 선택하는 일이 아니라 세상에 적응하는 일뿐이다. 그들은 그들이 체득한 적응의 노하우를 자식에게 가르쳐 대를 잇는다.

'군부독재정권의 억압에 신음하던 국민들', 혹은'일천이백만 노동자'라는 말은 지식인들의 레토릭일 뿐이다. 생각해 보라. 한국인들이 그런 일에 신음할 만큼 근대적인 시민의식을 가질 기회가 있었던가. 한국 노동자들이 일천이백만이 나와 같은 처지에 있는 노동자라는 근대적인 계급의식을 가질 기회가 있었던가. 한국인들은 봉건사회에서 바로 식민통치, 그리고 극우 파시스트 치하에서 3대 이상을 살아왔다. 그런 한국인들이 파업하는 지하철 노동자와 자신들이 같은 노동자라는 걸 깨닫지 못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노동자인 그들은 우습게도 '노동자 새끼들 땜에 내가 못 살겠다'고 분노하곤 한다.

더욱 희한한 일은 여전히 전근대적인 한국에서 이른바 '정신 세계를 창조하고 배분하고 적용'한다는 지식인들만은 적잖이 탈근대적(포스트 모던)이라는 사실이다. 그들은 근대도 이루지 못한 나라에서 탈근대를 외치는 코미디언들이다. 그들과 관련하여 나는 얼마 전부터 작은 고민에 빠져 있다. 노숙자들을 일컬어 '한국의 하층민들이 드디어 국가를 거부하기 시작했다'고 찬미한 어느 포스트모더니스트를 한번 불러내서 패고 싶은 욕망 때문이다. 그럴 때면 나는 눈을 감고 이렇게 되내인다. "사람을 패는 일은 근대적이지 않다." | 씨네21 1999년_8월
1999/08/10 16:41 1999/08/10 16:41
1999/07/27 16:40
'출판사 영화언어 발행인'이라는 매우 영화적인 직함과는 달리 나는 영화에 대해 전문적이지 않다. 그런 내가 올해 초 한 시사월간지로부터 '김규항의 영화에세이'라는 지면을 수락한 건 극장에 가는 회수를 2년에 한번에서 한 달에 한 번으로 늘일 수 있기 때문이었다. '영화평'을 피하느라 매달 심란해지지만, 나는 이제 한 달에 한 번은 극장에 가고 있다. 그렇게 본 영화가 <쉬리>, <인생은 아름다워>, <부기나이트>, <정크메일>, <이재수의 난>, <스타워즈 에피소드1> 들이다. 나는 내 삶 속에 갑자기 늘어난 영화의 부피에 만족해했다.

그런 내 흥을 깬 건 <이재수의 난>이다.(가장 한심한 건 <에피소드1>이었지만 나는 그것을 영화라기보다는 캐릭터 사업을 위한 거대한 CF라 여긴다) 나는 <이재수의 난>이 불쾌했고 영화를 본 지 한 달이 넘은 지금 그 불쾌감은 불편함으로 남았다. 내가 <이재수의 난>에서 얻은 소득이라면 박광수가 사회파 감독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한 것이다. 사회파 감독을 가름하는 기준이 사회적 소재가 아니라 사회의식이라 할 때 나는 <이재수의난>에서 어떤 사회의식도 발견할 수 없었다. 나는 비로소 내가 눈물을 찔끔거리며 보았던 <그들도 우리처럼>을 비롯 박광수가 만든 여섯 편의 영화를 깨달을 수 있었다. 박광수는 사회파 감독이 아니라 '사회적 소재를 즐겨 채택하는' 감독이었다.

나는 <이재수의 난>이 민중영웅담이길 바라는 게 아니다. 역사에 대한 해석은 창작자의 몫이다. 내가 <이재수의 난>에 불쾌한 건 역사에 대한 박광수의 해석이 아니라 역사에 대한 박광수의 해석이 가진 무기력 때문이다. <이재수의 난>은 '구체적인 삶과 죽음이 포함된 실재'로서의 역사에 대한 예의를 갖추지 못한 영화다. 나는 <이재수의 난>이 충실한 내러티브를 갖길 바라는 것도 아니다. 얼치기 계몽주의자인 나로선 역사물엔 리얼리즘이 나아 보이지만 그렇다고 형식주의의 정당한 능력을 폄하하고 싶진 않다. 문제는 박광수가 역사에 무기력했듯이 내러티브에도 무기력했다는 점이다.

나는 <이재수의 난>이라는 영화에서 박광수가 굳이 '이재수의 난'이라는 역사를 소재로 채택한 이유를 발견할 수 없다. 박광수가 사회적 소재를 즐겨 채택하는 가장 큰 이유는 통속적인 것을 재미없어 하는 그의 고급한 취향에 있어 보인다. 그리고 그런 취향이야말로 박광수의 창작 방법의 골간인 듯 하다. 그러나 박광수의 그런 고급한 취향은 '이재수의 난'이라는 역사적 다이내미즘 앞에서 한없이 무기력하다. <이재수의 난>은 그런 무기력과 그것을 자인하지 않는 박광수의 오만의 불행한 결합물이다. 박광수의 취향대로 <이재수의 난>은 통속적이지 않지만, 잘 만들어진 고급 예술이 보편적으로 가지는 난해한 긴장감은 한 순간도 찾아볼 수 없다.

'오만한 감독의 무기력한 실패'를 더욱 심각하게 만드는 건 박광수와 <이재수의 난>에 대한 이른바 전문가들의 정치적 배려다. 사회에 대해 별다른 배려가 없어 보이는 그들의 사회파 감독에 대한 무한정한 배려는 기이하기만 하다. 특히 <씨네21>의 캠페인에 가까운 박광수 옹호는 매우 위험해 보인다. 스크린쿼터를 둘러싼 민족주의적인 분위기 속에서 중원을 평정한 영화 전문지로서의 정치적 입장(거의 유일한 작가적 감독을 밀어준다는)을 이해하지만 그런 정치적 배려가 영화와 감독에 대한 엄정한 평가에 우선할 수 있다는 태도는 파시즘이다. 문화권력이 된 <씨네21>은 '고급비평정보지'라는 독자와의 처음 약속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이재수의 난> 시사회에 몰린 인파의 질과 양에 나는 놀랐다. '불굴의 투지를 가진 사회파 감독'이라는 말은 박광수에 어울리지 않는다. 그런 수사는 '유행이 지난' 사회물을 만드느라 죽을 고생을 하는 독립영화 감독들에게나 어울린다. 빈정대자는 게 아니라, 한국이라는 나라(어떤 곳인지 다들 아는 대로)에서 지난 10여년 동안 사회적 소재만으로 여섯 편의 영화를 만들고도 파멸하지 않았다면 박광수는 특별히 행복했다 할 만하다. 나는 거꾸로 묻고 싶다. 대체 그 사회파 영화들은 어떤 것이었나? | 씨네21 1999년_7월
1999/07/27 16:40 1999/07/27 16:40
1999/07/13 16:39
둥글고 환하게 뜬 달을 보며 김단이 묻는다. "아빠, 달은 가까이 가서 보면 더 커?" 아이의 질문에 공을 들이는 편인 내가 대답한다. "응, 달에 가까이 갈수록 달이 더 크게 보이지. 하지만 너무 가까이 가면 얼마나 큰 지 알 수 없지." "그게 무슨 말이야 아빠." "응, 단아 지구가 어떻게 생겼지?" "공같이." "그래. 그런데 단이가 지금 어디에 있지?" "지구에." "그래, 그런데 지구가 공처럼 보여?" "아니 똑바루 보여." "그래. 단이는 지구에 있으니까 지구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알 수 없고 얼마나 큰 지도 알 수 없는 거야." "아, 그렇구나."

내가 하고도 내게 이로운 말이었다. 지구에 있기 때문에 지구를 제대로 볼 수 없는 이치는 당대와 지식인과의 관계와 닮았다. 당대를 올바로 보기란 정말 어렵다. 너무 가까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가까이 있기 때문에 더 잘 볼 수 있는 것도 많다. 달 위에 선 사람은 달 표면이 어떻게 생겼는지 달에 무엇이 사는지를 한눈에 알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정보는 달 위에 선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는 것이다. 달에서 멀리 떨어져보지 않는다면 달이 공처럼 둥글다는 사실을 알기 어렵다. 지식인의 역할이 바로 거기에 있다. 세상 사람들이 눈에 보이는 정보만으로 당대 현실을 파악할 때, 혹은 그게 모두라고 단정할 때 그 정확한 실체를 파악하고 알리는 일 말이다. 지식인은 그런 역할을 해내기 위해 특별히 선택되고 교육받은 사람들이다. 그들은 1999년의 한국을 파악하는 통찰을 얻기 위해 1999년 한국 이외의 모든 것을 공부한다. 여느 사람들이 사도세자나 장희빈의 사생활을 역사라 여길 때 지식인들은 프랑스 혁명사나 러시아 혁명사를 배우고, 여느 사람들이 이문열이나 김진명을 독서라 여길 때 지식인들은 구태여 촘스키니 부르디외니 하는 사람들을 읽는 데는 그런 이유가 있다.

당대를 파악하는 지식인의 노동은 용접을 하는 용접공의 노동이나 물고기를 잡는 어부의 노동처럼 사회적으로 분담된 하나의 역할일 뿐이다. 지식인의 노동이 원래부터 다른 모든 노동보다 존귀한 건 아니다. 인간이 만든 것 가운데 원래부터 존귀한 것은 없다. 사회가 지식인에게 육체노동의 의무를 면해주고 존경과 명예를 준 것은 지식인이 원래 존귀해서가 아니라 당대를 파악하는 그들의 역할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사회는 지식인에게 등대의 역할, 이정표의 역할을 맡긴 것이다. 그러나 이런 사실을 기억하는 지식인은 그리 많지 않다. 지식인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고상한 삶과 세상의 존경과 명예가 제가 나면서부터 똑똑하고 잘나서 얻은 당연한 보상이라고 생각한다. 심지어 그들은 '지식인 세계'를 형성하고 그들끼리만 소통 가능한 암호 언어(그들이 '지적 대화'라고 부르는)로 그들의 서푼짜리 허영심을 충족시킨다. 그들은 또한 그 서푼짜리 허영심의 냄새나는 퇴적물을 지성이니 교양이니 인문주의니 하는 이름으로 몸에 두른 채 당대 현실로부터 대중들로부터 자신들을 구별짓는다.

이 나라의 정신 세계는 여전히 전근대적이고 이 나라의 백성들은 온갖 집단주의, 온갖 파시즘의 멍에에 사로잡혀 있지만 겸허한 계몽주의자의 길을 걷고자 하는 지식인은 어디에도 찾기 힘들다. 오늘도 이 나라의 보수 지식인들은 극우와의 경계를 넘나들고, 이 나라의 진보 지식인들은 가상현실을 오르내릴 뿐이다. 당대의 현실에 아랑곳하지 않는 그들이 책상에 앉아 '고유한 지식'을 탐구하는 모습은 머리가 텅 빈 미인이 거울을 들여다보고 있는 것과 같다. 그것은 영혼이 아니라 고기와 관련한 것이다. 한국 지식인들은 천민자본주의라는 푸줏간에 걸린 썩은 고기들이다. | 씨네21 1999년_7월
1999/07/13 16:39 1999/07/13 16:39
1999/06/15 16:38
기독교인임을 자처하는 내가 나라가 시끄러울 만큼 못된 짓을 한 인물이 나오기만 하면 "또 교인이군"하는 게 버릇이 되고 말았으니 정말이지 하느님께 민망할 따름이다. 좌우간 저 옛날 부천서에서 여대생 취조하는 데 희한한 도구를 사용한 문귀동 집사로부터 빨갱이 대통령을 막는답시고 바람을 일으키다 잡혀 들어가 오늘도 성전에 성전을 거듭하고 있는 권영해 장로라든가 소싯적부터 오로지 대통령이 되기만을 간구한 끝에 진짜로 대통령이 되어 끝내 나라를 부도 낸 김영삼 장로를 비롯, 국가적인 규모로 사고치는 인간 치고 교회 안 다니는 인물이 드무니 낸들 어쩌겠는가.

사정이 그러한데 그 아줌마들, 이른바 낮은 울타리 아줌마들이 교인인 건 되레 당연했다. 낮은 울타리의 모태는 '수요 봉사회'라 하며, '수요 봉사회'란 박정희 시절 만들어진 장관집 아줌마들의 사회봉사모임으로 매주 수요일에 모여 "주머니를 만들고 그 안에 치약이나 칫솔을 넣어 일선 장병한테 보내는"(한겨레) 식의 활동을 해왔다고 했다. 고매한 장관집 아줌마들이 하잘것없는 군바리에게 보낼 치약 칫솔을 주머니에 담는 일을 주마다 해왔다니 건국 이래 이런 갸륵한 미담이 어디 있단 말인가. 그 아줌마들이 라스포사니 앙드레 김이니 하는 옷가게에서 50% 할인 혜택을 받았다거나 그마저 다른 돈 많은 이들이 내주곤 했다는 건 그런 노고에 대한 당연한 사회적 보상이라 할 만하다. 하여튼 낮은 울타리는 '수요 봉사회' 아줌마들 가운데서도 독실한 기독교 신앙을 가진 아줌마들의 모임이라 했다.

어리석은 사람들은 말하길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어찌 그럴 수 있냐지만 그 말씀은 교회가 어떤 곳인지를 몰라서 하는 말씀일 뿐이다. 예수는 부자가 천국에 가기란 낙타가 바늘구멍을 지나가는 일보다 어렵다고 했지만, 교회는 물질축복은 성실한 신앙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이라고 가르치지 않는가. 예수는 가난한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나 언제나 세상에서 천대받는 사람들과 어울려 살았지만, 교회는 세상에서 머리가 될지언정 꼬리가 되어선 안 된다고 가르치지 않는가. 예수는 세상으로 나가 세상을 섬기는 빛과 소금이 되라 했지만, 교회는 세상의 더러운 죄를 들어와서 씻어라 하지 않는가. 예수는 집도 절도 없이 동산과 벌판에서 하느님 말씀을 전했지만, 교회는 성전을 짓고 찬란하게 치장하는 일이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일이라 가르치지 않는가. 그 아줌마들, 이른바 낮은 울타리 아줌마들은 결단코 교회에서 가르치는 대로 지키고 실천한 참 신자들인 것이다.

어리석은 사람들은 또 말하길 교회의 가르침이 세상의 욕망과 다를 게 무어냐 하고 심지어는 예수와 가르침과 교회의 가르침이 온통 거꾸로라고도 하지만, 그 말씀 역시 참 신앙의 경지가 무언지 몰라 하는 말씀일 뿐이다. 2천년 전 이스라엘의 가르침은 오늘 대한민국의 생활 형편에 맞추어 살아 숨쉬는 가르침으로 재해석되는 게 당연하며, 백 번을 양보하여 대개의 한국 교회가 수천만을 상대로 하는 거대한 사기조직일 가능성이 있다손 치더라도 하더라도, 진실을 밝히는 게 언제나 은혜가 되는 건 아니다. 만일 기독교인의 삶, 예수를 따르는 삶이 돈과 명예 권력 따위를 얻는 일과는 애당초 거리가 먼 삶이라는 사실,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삶이 세상 사람들로부터 조롱 당하며 빛도 없이 이름도 없이 죽기 십상인 삶이라는 사실이 밝혀질 때의 대혼란을 어떻게 막을 것인가. 하느님을 경배 드리는 거룩한 성전에 날품팔이 거지 양아치 장애자 매춘부 따위들이 예수의 동무랍시고 몰려들고, 대를 이어 뜨겁게 믿고 정확히 바쳐 온 집사 권사 장로 목사들의 신앙적 프리미엄이 하루아침에 깡통주가 된다면 그 억울함을 무슨 수로 보상할 것인가. 근대 이후 교회를 핍박한 건 언제나 빨갱이들이었고, 성도들은 순교자의 본을 받아 죽음으로 교회를 지키고 또 지켜낼 뿐이다. 할렐루야. | 씨네21 1999년_6월
1999/06/15 16:38 1999/06/15 16: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