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03/07 16:56
종일 아이를 보는 토요일. 내 몸을 짓밟으며 공룡 놀이를 하던 김단과 김건이 잠시 다른 놀잇감을 찾아 물러간 틈을 타 텔레비전을 켠다. 연속극, 스포츠, 쇼, 미국방송, 일본방송, 중국방송... 버릇대로 이리저리 리모콘 서핑을 하다 눈에 밟히는 얻어맞는 고딩의 클로즈업. 쇼트가 바뀌고 HOT가 카메라 앞에 바짝 다가와 팔을 휘젓는다. HOT가 왕따를 노래하고 있다. 언젠가 씨랜드 아이들을 노래하는 걸 본('들은'이 아니다. 이수만은 HOT의 장르가 립싱크라 확인한 바 있다.) 기억이 살아나면서 슬며시 부아가 치밀어 오른다. 영혼까지 사고 파는 자본주의라지만 해도 너무 하는군.

한때 통기타를 치며 여린 목소리로 <모든 것 끝난 뒤> 같은 감상적인 노래를 부르던 '트로트 포크' 가수 이수만은 미국 유학에선 자본주의의 작동원리를 단단히 배워왔던 모양이다. 대중음악 상품을 만들어내는 과정이 여느 공산품을 만들어내는 과정과 전혀 다르지 않다는 걸 분명히 한 최초의 한국인일 그는 (현진영 정도를 제외하곤) 지나치게 앞선 시도가 불발에 그치곤 하다 결국 HOT라는 히트상품을 만들어냈다. 나는 HOT 공연실황 클립 속에서 천사 날개를 달고 무대에 선 HOT에 환호하는 10대들을 잊을 수 없다. 그 장면을 보며 내 머리통 속에선 HOT에게 천사 날개를 달아준 이수만의 욕망과 고작 그런 우스운 천사에게서나 안식을 얻는 한국 10대들의 가련한 처지가 대립했다.

알다시피 HOT라는 상품이 순항하는 근거는 서태지와 아이들이 남긴 공백이다. (박노해가 신영복 모델을 선택하듯) 이수만은 서태지 모델을 선택했고 그런 선택은 이미 오래 전부터 대중음악 시장을 면밀히 분석해온 이수만으로선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다. 서태지 모델을 선택했다는 것은 단지 서태지의 은퇴로 생긴 남성 댄스그룹의 빈자리를 차지한다는 것 외에 몇 가지 세부를 갖는다. 그 가운데 가장 주목할 만한 건 이른바 사회비판이다. 추측컨대 서태지 모델을 선택한 이수만이 서태지의 중요한 구성 요소라 공인된 사회비판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는 그리 쉬운 문제가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수만은 사회비판이라는 요소를 기꺼이 HOT라는 공산품의 외장재로 채택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산되는 모든 음악이 상품이 아닐 도리는 없겠지만 그 상품들이 가진 사회비판의 권한은 저마다 다르다. 이를테면 천지인이나 메이데이처럼 사회적인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상품 시스템을 사용할 뿐인 그룹이나 스스로 음악을 창작하고 집행하는 능력을 갖춘 서태지와, 순수한 공산품인 HOT에게 똑같은 사회비판의 권한이 주어진다면 대체 우리의 삶에 어떤 판단의 가치가 존재할 수 있는가. "돈 속에 썩어버린 양심 너의 그런 한심한 모습은 더 이상 꼴도 보기 싫다. (...) 이젠 제발 돈 때문에 사람 팔지 말고 주위를 둘러봐 너 혼자만 잘살잖아 한편의 허상을 향해 초라한 몸부림에 흐느끼는 영혼들의 울음이 들린다."(Korean pride)

두어 달 전 어느 시사월간지에서 이수만과 대담을 하지 않겠냐는 연락이 왔다. 우습게도, 갑자기 불어난 유사 지식인 활동에 치어 사는 나로선 선뜻 응할 형편도 못 되었지만, 허탈함에 쓴웃음이 나왔다. 대담 제목이 <문화는 돈이다>라는 것이다. 자본주의를 인생의 적이자 신앙의 적으로 여기는 내가 자본주의의 전사 이수만과 마주 앉아 무슨 얘기를 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오늘 자본주의는 현실의 법이며 내가 아무리 이수만을 마땅치 않아 한들 합법적인 사업을 하고 있는 그를 공식적으로 비난할 근거는 어디에도 없는 것이다.

나는 꿈에라도 이수만이 욕망을 기초로 한 자본주의의 전사에서 계몽주의를 신봉하는 대중음악 활동가로 탈바꿈하길 바라는 게 아니다. 내가 이수만에게 바라는 건 단지 그의 공산품에 사회비판이라는 외장재는 사용하지 말아달라는 것, 공산품의 길을 걸어달라는 것이다. | 씨네21 2000년_3월
2000/03/07 16:56 2000/03/07 16:56
2000/02/22 16:55
(당사자인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쾌도난담은 희한하다. 양심수들이 애독한다는 양식 있는 시사주간지에 지성도 교양도 함량 미달인 두 건달이 별다른 준비도 없이 두세 시간 횡설수설하는 게 매주 멀쩡하게 실려나간다. 한두 번의 해프닝으로나 어울릴 이 믿기 힘든 일은 해를 넘겨 계속되고 있다. 풍문으로는 쾌도난담 덕에 <한겨레21> 웹사이트 조회수가 몇 배 늘었다고도 하고, 이 시궁창 같은 기사를 저주하며 구독 중단을 선언하는 비장한 독자가 나타났다고도 한다. 그런 극단적인 반응은 내 머리통 속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런 대로 진지한 얘기들을 무겁지 않게 전한다는 장점(제대로 전하는가는 논외로 두고)도 있지만, 사적 톤으로 발언하고 공적 톤으로 읽히는 쾌도난담의 작동 원리는 나를 늘 불편하게 한다. 쾌도난담은 마치 내가 어느 카페에서 친구와 편하게 나눈 대화를 수많은 사람에게 생중계 하는 텔레비전 프로그램 같은 것이다. 쾌도난담을 읽는 사람들은 나를 실제보다 조금 더 경박한 인간으로, 실제보다 조금 더 방자한 인간으로 짐작하는 듯 하고, 그것은 사람들에게 나를 실제보다 조금 더 기품 있는 인간으로 실제보다 조금 더 진지한 인간으로 인상 지우고 싶은 내 욕망과 충돌한다. 처음 만난 사람들은 내게 말하곤 한다. "생각보다 점잖은 분이군요." 빌어먹을.

별의별 얘기를 다루다보니 별의별 잡음이 끊이지 않지만 나나 김어준이나 지성의 부족 분을 고집으로 채우고 사는 스타일이라 일일이 개의하진 않는다. 다만 이따금씩 제 말에 제가 후회하고 그러는데, 내가 '율려'라는 걸 들고 나온 김지하 선생을 '애처로운 왕자병 환자에 앵벌이하는 상이군인'이라고 비아냥거린 일은 바로 그런 예다. 내가 오늘의 김지하를 존중할 수 없는 게 사실이라 해도 그 비아냥은 무슨 얘기든 짧게 훑고 지나가는 쾌도난담의 형편과 결합하여 비열한 인신공격이 되었다. 다른 곳에 김지하 선생에 대한 좀더 차분한 비판문을 쓴 적이 있긴 하지만 나는 내 20대의 치명적인 선생에게 씻을 수 없는 결례를 하고 말았다.

얼마 전 매매춘을 필요악이라고 표현한 일은 쾌도난담의 형식이나 사정으로 변명할 수 없는 부끄러움을 내게 남겼다. 후배들은 그 발언으로 별 문제는 없는지 조심스레 물어왔고, 평소 내 글에 호의적이었던 한 학자는 무척 실망했다며 내 말이 고도의 반어법이기를 바란다는 편지를 보내왔다. 나는 김강자라는 여성 경찰관의 해프닝과 구성애라는 보수주의자의 맞장구에 내가 가진 이른바 '과학적 매매춘론'을 사용하는 일이 왠지 허망하게 느껴졌던 것 같다. 그러나 내 발언은 고도의 반어법은커녕 그저 반동적 매매춘론을 한번 더 강조하는 일이 되었다.

두어 달 전 나는 담당기자에게 쾌도난담을 그만두겠다 말했다. 내가 뒤늦게 글쓰기라는 걸 시작하여 체험수기류의 잡문이나마 열정을 가지고 끼적일 수 있었던 건 내 팍팍한 삶에서 빚어지는 나와 세상의 긴장감 덕이었다. 매주 한번씩 세상의 일들을 연예가 방담 하듯 주절대는 쾌도난담은 그런 내 긴장감을 느슨하게 만들고 있었다. 쾌도난담 덕에 나는 좀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졌지만, 내가 그런 허명이 한 인간을 얼마나 가련하게 만드는가 쯤을 모르진 않았다.

그만두는 과정에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목요일이 다가오면 의례껏 쾌도난담하러 갈 요량을 하는 나를 보면, 내가 쾌도난담을 정말 그만두려 하는 건지 쾌도난담으로 일어나는 내 민망함을 보상하기 위해 나 자신을 속이고 있는 건지 나도 헛갈린다. 대견하게도(가증스럽게도) 이젠 공적 톤으로 읽힐 것을 염두에 두고 사적 톤으로 발언하는 일에도 어지간히 익숙해졌다. 또한 나는 쾌도난담이 스테레오타입화된 공격 대상 이외의 대상을 공격하기엔 몹시 불리하다는 사실도 깨닫게 되었다. 한편으론, 진지한 거라면 질색을 하던 나이 어린 후배가 쾌도난담을 낄낄거리며 읽는 모습을 보며 자못 계몽주의자의 보람을 느끼기도 한다. 쾌도난담이 내게, 내가 쾌도난담에 차분해진 셈이다. | 씨네21 2000년_2월
2000/02/22 16:55 2000/02/22 16:55
2000/02/07 16:53
“만날 똑같은 소리... 강준만은 이제 지겨워.” 주변에서 이 말이 나오기 시작한 지도 꽤 오래다. 온 나라가 만날 한 가지 이슈에 휩쓸리고 또 그 이슈는 만날 변하는 사회에서 몇 년째 같은 소리를 하고 있는 강준만이 지겹게 느껴지는 게 당연하달 수도 있겠다. 그러나 강준만이 몇 년째 거듭하고 있는 바로 그 소리, 이른바 <조선일보> 문제는 별반 달라진 게 없다. <조선일보>는 여전히 건재하며 모든 형태의 사회 개혁에 '할말은 함'으로써 수구세력의 돈궤를 지키는 본연의 임무를 다하고 있다. 지겨운 건 강준만이 아니다.

강준만이 지겹다는 말은 강준만의 방법을 향한 것이기도 하다. 이른바 '조선일보 제몫 찾아주기 운동'을 둘러싼 그의 방법은 어딘가 저잣거리의 시비 같은 데가 있어 그의 공식적인 적대자들은 물론 그의 주장을 대놓고 적대하기 어려운 좌파 혹은 자유주의를 표방하는 비공식적인 적대자들의 심기를 거스른다. 강준만이 이른바 <조선일보>에 협조적인 지식인들의 명단을 <월간 인물과 사상>에 게시하자 그의 비공식적인 적대자들은 강준만이라는 불한당을 향해 동병상련의 정으로 단결한다. 21세기의 목전에 대대적인 빨갱이사냥을 당하고도 <조선일보>가 극우신문이라는 최소한의 합의조차 이루지 못한 그 못난이들이 말이다.

그들이 공동으로 개발한 논리가 “<조선일보>를 <조선일보>와 같은 방법으로 대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는 말이다. 강준만의 말은 옳지만 방법은 틀렸다는 얘기로, 강준만의 주장과 실천을 분리해 강준만을 무력화하려는 노회한 논리다. 내 기억에 그런 말을 처음 사용한 건 이른바 강단좌파들이다. 재미있지 않은가. 자본주의 이후를 모색하는 사람들이 <조선일보>라는 봉건적 신문에 보이는 무색무취한 태도와 강준만에 보이는 단호한 태도가 말이다
.
동병상련의 논리를 애용하는 또 다른 경우가 메이저 시민운동단체의 인사들이다. 최장집 사건 당시 시민운동권에서는 <조선일보> 취재 거부운동이 벌어졌지만 공교롭게도 이른바 3대 메이저 단체인 참여연대, 경실련, 환경운동연합은 빠졌다. 그 일을 두고 강준만이 그들을 강하게 비판하자 그들은 “<조선일보>를 <조선일보>와 같은 방법으로...”를 사용했다. 강준만은 그들이 언론플레이에 미쳤기 때문에 그러는 거라 했다. 그들이 <조선일보>와 어떤 내통을 하는지 알 수 없으나 강준만의 주장이 객관적인 정황인 건 분명하다.

알다시피 그들은 요즘 낙선운동에 열심이다. 나는 내가 강준만의 방법을 최선이라 생각하지 않으면서도 지지하듯 낙선운동의 방법을 최선이라 생각하지 않지만 지지한다. 민주주의란 본디 작고 많은 비합법성을 모아 큰 변화를 이루는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강준만은 <조선일보>에 기고하는 지식인들을 부역자처럼 게시하는 덜 합리적인 방법으로라도 지식인들을 <조선일보>에서 분리해내려 한다. 시민운동단체들은 낙천, 낙선되어야 할 후보들의 명단을 게시하는 덜 민주적인 방법으로라도 정치권의 인적 청산을 이루려 한다.

가상현실게임 동호인들(이른바 강단좌파들)이 그러는 거야 학술영역의 문제라 치더라도, 낙선운동을 하는 시민운동가들이 강준만의 방법을 “<조선일보>를 <조선일보>와 같은 방법으로 대하는” 것이라 폄하하는 일은 참으로 애석한 일이다. 앞서 말했듯 강준만의 운동과 낙선운동은 최선이 아니라 차선의 방법을 선택했다는 점에서 같고, 20세기의 막판까지 빨갱이사냥을 일삼은 극우신문에서 지식인들을 분리해내는 일과 감옥에나 앉아 있어야 할 사람들을 국회의사당에서 쓸어내는 일은 차선의 선택을 감수할 만큼 유익하다. 강준만의 운동은 우리 사회의 전근대성을 청소하는 일이고 낙선운동은 우리 사회의 근대성을 고양하는 일이다. 전근대와 근대가 뒤섞여 돌아가는 우리 사회에서 좃선운동과 낙선운동은 서로 존경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상식이다. | 씨네21 2000년_1월
2000/02/07 16:53 2000/02/07 16:53
2000/01/08 16:52
밀레니엄의 의미를 적어 달라는 몇몇 원고 청탁에 밀레니엄이란 밀레니엄 밀레니엄 하는 말로 한몫 잡으려는 장사꾼들이나 밀레니엄 밀레니엄 하는 말로 현실의 문제를 덮으려는 정치꾼들에게나 필요할 거라는 독설을 채워 보냈다. 21세기가 된다고 파시스트의 뇌가 갑자기 민주주의적으로 바뀌는 게 아니고 21세기가 된다고 결식아동에게 갑자기 밥이 생기는 게 아니며 21세기가 된다고 갑자기 예술에 대한 검열이 없어지는 것도 아니라면 우리가 밀레니엄이니 21세기니 하는 것에 별다른 의미를 둘 아무런 이유가 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그러나 나 역시 21세기의 도입부는 쉽게 잊지 못할 것 같다. 지난 세기말 내 몸에 침입한 독감균은 여전히 내 몸을 지배하고 있다.

기억의 범주 안에서 몸이 아파 병원에 가본 일이 한번도 없는 나로선 지난 해 독감이 두 번씩이나 내 몸을 점령했다는 사실이 영 개운치 않다. 이불을 뒤집어쓴 채 식은땀을 흘리며 나는 이제는 사라진 어린 시절의 질병 공포를 떠올린다. 그 시절 나는 아주 오랫동안 내가 필시 무슨 큰 병에 걸려있다는, 나는 이제 곧 죽고 말 거라는 공포에 시달리곤 했다. 그런 공포가 처음 생긴 건 병약했던 어머니 덕이었다. 초등학교 3학년 무렵까지 어머니는 늘 위독했다. 다른 조무래기들은 들로 산으로 몰려다니며 그저 무럭무럭 자라기만 하면 되던 시절을 나는 위독한 어머니 옆에서 꼬박 보내야 했다. 동네 아주머니들은 늘 나를 바라보며 항이 불쌍해서 어쩌나 니 엄마 얼마 못산다, 하곤 했다. 나는 서서히 질병과 죽음에 대한 공포 속으로 빠져들어갔다.

막연한 공포가 더욱 구체화된 건 4학년 때 옆자리에 앉았던 녀석이 죽고나서부터다. 한동안 자리를 비우던 녀석은 결국 죽었다는 소식으로 돌아왔으며 담임선생은 빈 책상 위에 국화 한 송이를 얹어놓고 디프테리아라는 병을 설명해주었다. 가장 뚜렷한 증세는 목구멍에 하얀 막이 생긴다는 얘기였고 그날부터 나는 틈만 나면 거울 앞에서 입을 벌려 내 목구멍의 이상을 확인하곤 했다. 매일 그 일을 거듭하던 나는 결국 대체 죽음이란 뭔가라는 의문에 빠져들었다. 죽으면 나는 어떻게 되는 걸까, 내가 이 세상에서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따위의 의문은 초등학교 4학년 짜리에게 벅찼지만 해가 바뀌도록 계속되었다.

독감에 점령당한 오늘, 나는 어린 시절의 질병 공포를 떠올리며 과연 내가 암 같은 병에 걸리더라도 현재의 정신세계를 유지할 수 있을까 생각해 본다. 이를테면 민주주의니 파시즘이니 사회주의니 혁명이니 하는 사회 개념들은 죽음에 직면한 내 머리 속에서도 여전히 긴장감을 유지할 것인가. 내 경험으론 그럴 가능성은 많지 않아 보인다. 고교 시절에 노장을 읽기 시작했다는 선배 O는 내가 아는 이들을 통틀어 독보적인 정신 세계를 가진 사람이지만 몇 년 전 교통사고로 크게 다쳤을 때 그의 지성은 대폭 생략되거나 매우 단순해졌다. 그가 끼고 살던 노장 철학은 그 기간에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한국에서 발간되는 인문분야의 교양서를 모조리 챙겨 읽는 습관 때문에 교양인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후배 S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두 번째 항암 치료를 받으러 들어가던 날 녀석은 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다 부질없어 형. 아이하고나 많이 놀아 줘."

지성이란 대체 우리에게 무엇일까. 우리가 말하는 지성이란 안온한 시절에는 사고의 축이다가 절박함 속에선 온데간데없이 사라지는 그런 것인 것 같다. 그 지성 속엔 분명 죽음을 포함한 모든 절박함이 포함되어 있는데도 말이다. 대개의 사람들, 특히 배운 사람들은 아마도 실제 필요한 양보다 터무니없이 많은 지성을 갖고 있거나 꼭 필요하지 않는 종류의 지성을 갖고 있는 게 틀림없다. 배운 사람들은 언제나 제 머리통 속에 수집해놓은 동서고금의 온갖 지성의 부스러기들을 조금씩 내비치면서 배우지 못한 사람들에게서 자신을 구별짓곤 하지만 절박함 속에서 그들은 그들의 지성과 별 관련이 없어 보인다. 우리가 말하는 지성이란 대개 우리의 안온함을 장식하는 액세서리에 불과하며, 현명한 사람이라면 죽음에 직면해서도 유지할 수 있도록 자신의 지성을 조정할 필요가 있다. | 씨네21 2000년_1월
2000/01/08 16:52 2000/01/08 16:52
1999/12/21 16:51
사회주의는 이론이나 사상에서 태어난 게 아니라 "인간 영혼의 가장 고귀한 감정의 항거에서 태어난다. 사회주의는 비참함, 실업, 추위, 배고픔과 같은 견딜 수 없는 광경이 성실한 가슴에 타오르는 연민과 분노와 만나 태어난다. 한쪽엔 호화, 사치가 있는가 하면 다른 쪽엔 궁핍이, 또 한쪽엔 견딜 수 없는 노동이 있는가 하면 다른 쪽엔 거만한 게으름이 있는, 이 터무니없고도 서글픈 대비에서 사회주의는 태어난다."(레옹 블룸) 연민은 자선을 낳고 분노는 싸움을 낳으며 다시 그 둘은 시스템을 바꾸지 않고는 자선도 싸움도 별 소용이 없다는 깨우침을 통해 과학적 사회주의가 된다. 말하자면 사회주의란 '정서를 재료로 한 과학'이다.

현실 사회주의의 문제는 정서가 생략된 과학의 문제이기도 했다. 연민이나 분노가 사라진 이론과 사상은 강퍅하고 차갑다. 사회주의는 그 최대 수혜자여야 할 인민에게 무섭고 살벌한 얼굴로 다가가곤 했다. 이른바 사회주의 리얼리즘 예술론의 역사는 과학이 정서를 지배할 때 어떤 끔찍한 일이 벌어지는가를 보여준다. 얼마나 많은 예술가와 얼마나 소중한 창의성들이 그 앙상한 과학적 예술론의 손에 목졸려 죽어갔던가를 생각한다면 말이다.

80년대 중후반 한국의 인텔리들은 사회주의에 열광했다. 그것은 부르주아 인권운동이라는 정서적 재료가 민중민주 혁명운동이라는 과학으로 변화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인텔리들은 본 회퍼를 덮고 그람시를 읽었으며 이내 레닌을 읽기 시작했다. 그러나 한국의 인텔리들이 80년대 중후반의 불과 몇 년 동안 마치 펄펄 뛰는 연어처럼 네오맑시즘에서 맑시즘으로 사회주의 이론사를 거슬러 오를 수 있었던 건 대개 군사파시즘이라는 절대적인 억압상황 덕이었다. 군사파시즘이 완화되고 동구가 무너지자 그들의 열정은 구멍난 풍선에서 바람 빠지듯 사라져갔다. 사회주의의 길에 인생을 걸겠노라 맹세하던 수많은 한국의 인텔리들은 일제히 청산을 선택했다.

그런 어이없고 질서정연한 청산은 그들이 변명으로 삼는 상황의 변화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앙상한 사회주의 때문이었다. 믿기 힘든 일이지만 80년대 후반 한국의 과학적 사회주의는 몇몇 영재아들의 경제학 리포트의 지배하에 있었다. 80년대의 한국을 19세기말의 러시아와 같다고 보는 정도의 앙상한 과학이 세상의 변화와 그 변화에 관련한 정서의 무게를 감당할 방법은 없었다. 카드섹션의 카드들처럼 일제히 사회주의자가 되었던 인텔리들은 다시 카드가 뒤집히듯 일제히 사회주의에 침을 뱉었다. 오늘 그들은 자신들이 관여한 사회주의 편향의 문제를 사회주의 자체의 문제로, 자신들이 관여한 사회주의 실험의 실패를 사회주의 자체의 실패라고 강변하며 살아간다. 그들은 시민운동단체에 얼마간 돈을 내고 <한겨레>를 구독하며 홍세화의 강연에 귀를 기울이고 노래방에서 <아침이슬>을 부르며 한편으론 신문에 팔짱을 끼고 돼먹지 못한 얼굴로 대문짝처럼 서있는 펀드매니저들에게 정신을 판다. 그들은 지울 수 없는 그들의 사회의식의 흔적을 마스테베이션하며 삶을 위무한다.

"터무니없고도 서글픈 대비"의 전적인 생산자이자 그것을 자정할 아무런 능력이 없는 자본주의가 인류가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체제라면 인류는 이쯤 해서 지구를 (자연의 자정능력을 가진) 동물들에게 돌려주는 게 낫다. 자본주의는 그 자체로 인간의 존엄과 지성에 대한 모욕이며, 오늘 인류가 미래를 희망하는 일이란 바로 자본주의라는 괴물을 어떻게 극복하는가의 문제다. 지난 10여 년 동안 지리멸렬해온 한국의 인텔리들은 이제 그 동안 온갖 수모를 무릅쓰고 사회주의의 비전을 모색해온 옛 동료들을 다시 찾을 때가 되었다. 동구를 말할 필요는 없다. 대체 우리가 새로운 사회주의를 처음 시작할 자격을 갖지 않아야 할 어떤 이유라도 있는가. 과거의 실패가 짐스럽다면 사회주의가 '정서를 재료로 한 과학'임을 잊지 말고 느리게 안단테로 가면 된다. 안단테라면, 우리가 혁명을 회피할 이유는 정말 적어진다. 안 그런가. | 씨네21 1999년_12월
1999/12/21 16:51 1999/12/21 16: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