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12/21 16:51
사회주의는 이론이나 사상에서 태어난 게 아니라 "인간 영혼의 가장 고귀한 감정의 항거에서 태어난다. 사회주의는 비참함, 실업, 추위, 배고픔과 같은 견딜 수 없는 광경이 성실한 가슴에 타오르는 연민과 분노와 만나 태어난다. 한쪽엔 호화, 사치가 있는가 하면 다른 쪽엔 궁핍이, 또 한쪽엔 견딜 수 없는 노동이 있는가 하면 다른 쪽엔 거만한 게으름이 있는, 이 터무니없고도 서글픈 대비에서 사회주의는 태어난다."(레옹 블룸) 연민은 자선을 낳고 분노는 싸움을 낳으며 다시 그 둘은 시스템을 바꾸지 않고는 자선도 싸움도 별 소용이 없다는 깨우침을 통해 과학적 사회주의가 된다. 말하자면 사회주의란 '정서를 재료로 한 과학'이다.

현실 사회주의의 문제는 정서가 생략된 과학의 문제이기도 했다. 연민이나 분노가 사라진 이론과 사상은 강퍅하고 차갑다. 사회주의는 그 최대 수혜자여야 할 인민에게 무섭고 살벌한 얼굴로 다가가곤 했다. 이른바 사회주의 리얼리즘 예술론의 역사는 과학이 정서를 지배할 때 어떤 끔찍한 일이 벌어지는가를 보여준다. 얼마나 많은 예술가와 얼마나 소중한 창의성들이 그 앙상한 과학적 예술론의 손에 목졸려 죽어갔던가를 생각한다면 말이다.

80년대 중후반 한국의 인텔리들은 사회주의에 열광했다. 그것은 부르주아 인권운동이라는 정서적 재료가 민중민주 혁명운동이라는 과학으로 변화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인텔리들은 본 회퍼를 덮고 그람시를 읽었으며 이내 레닌을 읽기 시작했다. 그러나 한국의 인텔리들이 80년대 중후반의 불과 몇 년 동안 마치 펄펄 뛰는 연어처럼 네오맑시즘에서 맑시즘으로 사회주의 이론사를 거슬러 오를 수 있었던 건 대개 군사파시즘이라는 절대적인 억압상황 덕이었다. 군사파시즘이 완화되고 동구가 무너지자 그들의 열정은 구멍난 풍선에서 바람 빠지듯 사라져갔다. 사회주의의 길에 인생을 걸겠노라 맹세하던 수많은 한국의 인텔리들은 일제히 청산을 선택했다.

그런 어이없고 질서정연한 청산은 그들이 변명으로 삼는 상황의 변화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앙상한 사회주의 때문이었다. 믿기 힘든 일이지만 80년대 후반 한국의 과학적 사회주의는 몇몇 영재아들의 경제학 리포트의 지배하에 있었다. 80년대의 한국을 19세기말의 러시아와 같다고 보는 정도의 앙상한 과학이 세상의 변화와 그 변화에 관련한 정서의 무게를 감당할 방법은 없었다. 카드섹션의 카드들처럼 일제히 사회주의자가 되었던 인텔리들은 다시 카드가 뒤집히듯 일제히 사회주의에 침을 뱉었다. 오늘 그들은 자신들이 관여한 사회주의 편향의 문제를 사회주의 자체의 문제로, 자신들이 관여한 사회주의 실험의 실패를 사회주의 자체의 실패라고 강변하며 살아간다. 그들은 시민운동단체에 얼마간 돈을 내고 <한겨레>를 구독하며 홍세화의 강연에 귀를 기울이고 노래방에서 <아침이슬>을 부르며 한편으론 신문에 팔짱을 끼고 돼먹지 못한 얼굴로 대문짝처럼 서있는 펀드매니저들에게 정신을 판다. 그들은 지울 수 없는 그들의 사회의식의 흔적을 마스테베이션하며 삶을 위무한다.

"터무니없고도 서글픈 대비"의 전적인 생산자이자 그것을 자정할 아무런 능력이 없는 자본주의가 인류가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체제라면 인류는 이쯤 해서 지구를 (자연의 자정능력을 가진) 동물들에게 돌려주는 게 낫다. 자본주의는 그 자체로 인간의 존엄과 지성에 대한 모욕이며, 오늘 인류가 미래를 희망하는 일이란 바로 자본주의라는 괴물을 어떻게 극복하는가의 문제다. 지난 10여 년 동안 지리멸렬해온 한국의 인텔리들은 이제 그 동안 온갖 수모를 무릅쓰고 사회주의의 비전을 모색해온 옛 동료들을 다시 찾을 때가 되었다. 동구를 말할 필요는 없다. 대체 우리가 새로운 사회주의를 처음 시작할 자격을 갖지 않아야 할 어떤 이유라도 있는가. 과거의 실패가 짐스럽다면 사회주의가 '정서를 재료로 한 과학'임을 잊지 말고 느리게 안단테로 가면 된다. 안단테라면, 우리가 혁명을 회피할 이유는 정말 적어진다. 안 그런가. | 씨네21 1999년_12월
1999/12/21 16:51 1999/12/21 16:51
1999/10/26 16:48
"...그 사람에 대한 제 생각은 간단합니다. 불신감. 이 한 단어로 족할 것 같습니다... 그의 변명은 간단하겠죠. 우리는 너무 조급했다, 내 그릇이 작았다. (항상 개운치 않은 건 그는 항상 '나는 감옥에서 엄청난 도를 깨우치고 더 큰 사람이 되었다'는 분위기를 여기저기서 풍기고 다닌다는 거죠.) 다른 건 모르겠지만 최근의 그의 신작 시를 읽을 때, 저는 예전의 그의 글과 마찬가지로 그 특유의 '가쁜 호흡', 어떤 '집요한 욕망'을 느낍니다... 그가 연예인이 되기로 작정했다면, 좀 덜 짜증나는 연예인이 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올해 초, 모스크바 유학 중인 옛 사노맹 조직원이 내 글을 읽고 보내 온 편지다. 나는 글에서 박노해(출소 이후의)를 두 번 언급했고 그 글들은 박노해에 대한 분명한 경멸을 담고 있었다. 준법서약서를 쓰고 나오는 자신을 정당화하기 위해 준법서약서를 거부하고 남기로 한 동료들을 "유연하지 못하다" 하고, 진보의 기본을 저버린 자신의 '새로운 진보론'을 강변하기 위해 여전히 진보의 기본만은 놓지 않으려는 옛 동료들을 "낡았다" 하는 인간에 대한 경멸 말이다. 그러나 정작 그 글들이 책이 되어 나오자 나는 도리 없는 불편을 안았다. 어쨌거나 사회적 이유로 오랜 고생을 한 사람을 공격하는 일이었던 것이다. 편지는 그런 내 불편을 얼마간 덜어주었다.

생태니 공동체니 일상성이니 서태지니 여기저기서 짜깁기한 박노해의 '새로운 진보론'은 과거의 박노해(혹은 과거의 진보)가 갖는 정치적 강퍅함보다 달콤해 보이고 어떤 사람들에겐 호감을 주는 모양이다. 그러나 그 새로운 진보론은 조금만 살펴보면 이미 진보의 테두리를 멀찌감치 벗어난 것임을 알 수 있다. 어처구니없게도, 그 새로운 진보론엔 정치성이 송두리째 빠져 있다. 이 영리한 전직 혁명가는 '과거의 정치 편향을 철저히 반성'한다는 핑계로 슬그머니 정치성을 빼버린다.(과거의 문제는 정치편향이었는가, 정치성 자체였는가.) 대체 정치성이 빠진, 현실에 대해 정치적 긴장을 일으키지 않는 진보가 이룰 수 있는 미래는 어떤 것인가.

나는 박노해가 다시 고난에 찬 혁명가가 되라는 게 아니다. 우리 중의 누가 그에게 그런 걸 요구할 수 있겠는가. 박노해는 할만큼 했다. 우리는 그의 과거만으로도 그에게 존경을 보낼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이제 (이미 그가 그러고 있듯) 그가 안락하길 바란다. 그러나 박노해가 자신이 선택한 안락이 마치 새로운 진보의 방식인 양, 진보의 미래 비전이라도 되는 양 떠들어댐으로써, 여전히 그에게 호의를 갖는 순진한 사람들을 미혹하고 여전히 진지하게 진보의 갈 길을 모색하는 사람들에게 아픔을 주는 일은 용서받을 수 없는 악행이다.

거짓 선지자가 된 전직 혁명가는 피할 수 없는 자기 혼돈에 빠지고 그 혼돈은 더욱 깊어만 간다. 출소 직후 넘쳐나는 핸드폰을 개탄하던 그는 이제 자신의 신간 표지를 'TTL' 풍으로 만들어 달라 요구하고(이 경박한 미감), 출소 직후 하루 다섯 시간 노동하며 사는 농촌공동체를 만들겠다 약속하던 그는 이제 '세상을 배우기 위해' 주식투자를 해보겠다 말한다(이 가련한 현실감). 박노해 말마따나 세상은 변했고 진보도 변하건만, 변하지 않은 그 '가쁜 호흡'은 여전히 자신을 시대를 앞서가는 혁명가라 불리고 싶게 하고, 변하지 않은 그 '집요한 욕망'은 여전히 자신을 최고의 상품으로 만들고 싶게 한다.

추신 : <한겨레>에 실린 박노해의 신간('오늘은 다르게'라는 경쾌한 제목이 붙은) 광고엔 오늘 이 나라를 대표하는 부르주아 지성들의 주례사가 도열했다. 조혜정, 박원순, 유홍준... 박노해와 그 지성들의 계급 본능(교수나 변호사의 기득권만은 결코 포기하지 않을)은 예술처럼 교감한다. 그 지성들에게 박노해는 달콤함(분명한 현재인)에 쌉쌀함(더 이상 위험하지 않은 과거인)까지 곁들인, 달콤 쌉쌀한 초콜릿이다. 그 지성들은 천천히 그 초콜릿을 씹으며 시민계급에 의한 노동계급의 인수합병을 자축한다. 하지만 내 귀엔 벌써 그들의 새로운 대사가 들리는 듯 하다. "무슨 초콜릿이 이리 달기만 해. 싸구려란..." | 씨네21 1999년_10월
1999/10/26 16:48 1999/10/26 16:48
1999/10/05 16:47
연대 총학생회에서 마련한 '저자와의 대화'에 불려 갔다. 학생들끼리 만나고 싶은 저자를 투표했고 진중권과 내가 결과라 했다. 매일 붙어 다니는 사이인 데다 <아웃사이더>라는 잡지도 함께 준비하고 있는 둘을 불렀다는 우연도 희한했지만 아직 저자가 아닌(한 권의 책도 내지 않은) 내가 거기 낀 일은 더욱 희한했다. 얼마간의 민망함과 비슷한 양의 흐뭇함을 안고 나는 거기에 갔고 다행스럽게도 '대화'는 유쾌했다. 돌아오는 길에 나는 생각했다. 내가 어쩌다 이렇게 되었더라...

사는 게 하도 팍팍해서 시작한 일이었다. 이른바 영화전문서 출판을 시작한 이래 맺어 온 염치와 우애가 없는 인간관계를 모두 접으려 두 시간에 한번씩 버스가 들어오는 파주의 어느 마을에 들어간 지 6개월. 인간에 대한 절망감과 남들 한달 월급만큼의 한달 이자를 온갖 노동으로 때워야 하는 삶의 팍팍함을 위무할 길을 찾던 나는 불현듯 글쓰기를 떠올렸다. 글쓰기는 내가 이미 접은 과거의 인간관계를 통하지 않고 세상과 대화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씨네21> 편집장과 알지 못했다면 그나마 어려운 일이었겠지만) 어쨌거나 나는 글쓰기 이력이 전무한 건달에게 글쓰기를 하도록 배려한 세상에 감사했다. 다른 이보다 족히 십 년은 늦게 글쓰기를 시작한 내겐 그 십 년 동안 쌓였어야 할 나름의 '문장'도 이런저런 '지성'도 없었다.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건 오로지 내 생각을 가감 없이 옮겨 적는 '솔직한' 글쓰기뿐이었고, 언젠가는 그 솔직함이 정직이 되고 그것이 다시 진실이 되길 기대했다.

나는 글쓰기를 용접공이 용접을 하듯 한 사람이 사회로부터 부여받은 한 가지 노동이라 여겼다. 용접공이 모든 사회 구성원들이 건너다닐 다리를 용접하는 것처럼 지식인의 글쓰기는 모든 사회구성원이 사용할 정신의 다리를 용접하는 일이라고 말이다. 그렇게 일년 반. 어느새 글쓰기는 세상과 나의 관계에서 나를 대표하는 일이 되었고 내가 일용할 양식을 마련하는 방편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나는 이제 처음엔 어색하기만 했던 '필자'니 '지식인'이니 하는 호칭으로 불리는 일에 꽤 익숙해졌고, 심지어 내게 남은 약간의 어색함을 "나는 진보지식인입니다" 하는 너스레로 뒤집어 사람을 웃기기도 한다.

그러나 그 너스레가 완전한 농은 아니다. (어떤 사람들에겐 분노와 거부감을 안겨줄 만한 말이지만) 나는 오늘 이 나라의 글쓰기가 진보가 아닐 도리가 없다 생각한다. 알다시피 이 나라의 모든 정신적 다리는 무너진 지 오래다. 이 나라에서 사회 정의와 개인의 양심은 강물 속에 흩어진 잔해로만 남아 있다. 이런 현실을 분명히 하고 그 다리를 성실하게 다시 지으려는 당연한 태도가 바로 진보다. 보수라면 다리가 무너진 현실을 인정은 하되 그 다리를 적당히 고쳐 사용하자 할 것이고 극우라면 아예 다리가 무너지지 않았다 생떼를 쓸 것이다. 언제나 그러하듯 보수는 오늘의 안락함을 포기하지 않고 극우는 오늘의 이권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러니 안 쓴다면 모를까 이 나라의 글쓰기가 진보가 아닐 도리가 있는가.

그나저나, 밑도 끝도 없이 삶의 팍팍함을 위무하겠다는 무식한 생각으로 글쓰기에 뛰어든 나 같은 건달도 아는 그런 소박한 이치를 도저한 지식과 장구한 글쓰기 이력을 가지고도 깨치지 못한 사람들은 어찌된 사정일까. 그들이 하나같이 아둔한 걸까, 그저 나 혼자 싸가지가 없는 걸까.

추신 : '저자와의 대화'에서 만난 '그들'(오늘의 대학생들)에 대한 소감. 짐작대로 '그들'은 '우리'(80년대의 대학생들)보다 대체로 탈정치적이었다. 그러나 중요한 건 정치성의 숫자가 아니다. 알다시피 세상은 한순간에 바뀌는 게 아니며 문제는 그 정치성이 서른이 되고 마흔이 되었을 때 어떻게 되는가다. '우리'의 부끄러운 이력을 생각한다면 더욱 그렇다. '그들'과의 대화 속에서 '우리'와는 전혀 다른 부드럽고 자연스러운, 그래서 적지만 오래갈 듯한 정치성을 발견할 수 있었다. 확신할 순 없지만, 일단 나는 그것을 희망이라 부르고 싶다. | 씨네21 1999년_10월
1999/10/05 16:47 1999/10/05 16:47
1999/09/21 16:46
이른바 근대 정신의 핵심은 '개인'(나의 주인은 왕이나 신이 아니라 바로 나라는)이고 오늘날 지구상의 거의 모든 나라의 헌법에 적혀 있는 사상과 표현의 자유는 그런 근대 정신을 보장한다. 그런 점에서 나는 지난 50여 년 동안 반공주의 외의 모든 사회적 의견을 빨갱이로 몰아온 국가보안법이 여전히 건재하고, 이미 3년 전 예술 작품에 대한 사전심의가 위헌이라는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얻고도 여전히 예술작품에 대한 온갖 검열이 횡행하는 이 나라를 근대적인 국가라 생각하지 않는다.

<거짓말>은 국민의정부가 만든 '민주적 검열기구'인 영상물등급위원회로부터 3개월 등급보류 판정을 받은 영화다. 알다시피 등급보류란 지정한 기간 동안 영화를 알아서 가위질 해오게 하는 손 안대고 코푸는 검열장치다. 등급보류는 1~3개월로 나눠지는데 기간을 나누는 이유는 자를 게 많을수록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예술적 배려' 때문이다.(공윤이 공진협을 거쳐 등급위로 바뀐 과정이나 등급보류가 뭔지 조차 모르는 독자는 이쯤 해서 읽기를 중단하고 조종국 기자의 지사적 저널리즘을 되훑어 보시길)

어느 시대든 검열자들이 내세우는 두 가지 핑계는 사회 안전과 도덕이다. 우리의 경우 사회 안전은 주로 반공으로 표현되어 왔지만 이젠 그 반공이 얼마나 맹랑한 반공이었는가가 대체로 밝혀진 편이라 새삼 말하기가 욕스럽다. 도덕은 주로 청소년문제로 표현되고 있다. 나는 청소년들에게 추하고 부도덕한 현실을 보이는 일이 그들의 정서 함양에 해가 된다는 의견에 전적으로 찬성한다. 이 나라의 성인들은 그들에게 곱고 바른 것을 많이 보여줄 의무가 있다. 문제는 청소년에게 해를 주는 현실이 '예술작품 속의 현실'인가 '실제 현실'인가 하는 점이다. 청소년들이 24시간 숨쉬는 실제 현실엔 어떤 도덕의 흔적조차 남아있지 않은 판에, '청소년을 위해' 소설 한편 영화 한편 속의 도덕을 따지는 일이란 얼마나 우스운 일인가. 그것은 단지 어젯밤 술집에서 남의 딸을 희롱한 이 나라의 성인 남자가 오늘밤 제 딸이 같은 일을 당할까 노심초사하는 눈물겨운 부성애에 봉사하는 일일뿐이다.

나는 아직 <거짓말>을 보지 않았다. 유감스럽게도 나는 장정일의 소설을 좋아한 일이 없고(산문을 통해선 그가 존중할 만한 작가임을 확인했지만) <우묵배미의 사랑> 이후 장선우엔 그다지 호감이 가지 않는다.(특히 그가 <거짓말>과 검열문제를 두고 자꾸 색즉시공이니 공즉시색이니 하면서 도사연 하는 일은 마땅치 않다. 그가 선방이 아니라 세상에서 영화를 만들었고 많은 사람들이 그 영화를 보길 바라며 그 영화가 이미 사회적 의제가 되어 싸움을 벌이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최소한의 계몽적 태도를 보이는 게 예의가 아닐까.) 그러나 장정일과 장선우와 그들의 예술작품에 대한 내 입장과 장정일과 장선우와 그들의 예술작품에 가해진 검열에 대한 내 입장은 전혀 다른 차원의 것이다.

모든 검열의 목적은 한 사회의 기득권을 가진 세력이 그 기득권을 영속화하기 위해 그 사회의 정신세계를 묶어두려는 데 있다. 해서 검열은 언제나 한 사회의 정신적 생산물 가운데 가장 앞선, 가장 돌출된 부분만을 대상으로 한다. 뒤집어 말하면 한 사회에서 검열자의 먹이가 되는 정신적 생산물은 (그것이 설사 쓸모 없는 쓰레기처럼 보인다 해도) 그 사회의 정신세계의 확장을 위해 제 몸을 태우는 숭고함을 갖는 것이다. 나는 장정일(그의 소설을 좋아하지 않지만)과 장선우(그의 태도가 마땅치 않지만)가 가진 예술가로서의 용기를 존경하며 그들의 예술작품 <거짓말>(아직 보지 않았지만)을 진심으로 지지한다. 나는 <거짓말>을 시사회장이 아닌 내가 사는 곳 근처의 극장에서 내 돈 내고 볼 수 있기를 원한다.

추신 : <거짓말>은 '세계적'인 베니스영화제에 가 있고 이 글이 독자에게 읽힐 무렵엔 그 결과가 나왔을 것이다. 이 나라의 사대주의 수준으로 볼 때, 이 영화가 상을 받는다면 검열자들은 두 번 쪽팔리게 됐다. '세계적'인 예술작품을 등급보류한 일로 한번, '세계적'인 예술작품의 등급보류를 더 이상 고집하지 못할 일로 한번 말이다. 하긴 상을 받든 못 받든 그 빌어먹을 검열에 제대로 저항 한번 못한 우리도 '세계적'으로 쪽팔리긴 매한가지다. 아, 우리 쪽의 거처는. | 씨네21 1999년_9월
1999/09/21 16:46 1999/09/21 16:46
1999/09/07 16:45
(내가 가진 얼마간의 좌파 성향과 상관없이 얘기하자면) 자유민주주의의 가장 큰 미덕은 다양성이다. 자유민주주의는 자신과 다른 의견을 존중하며 여러 다른 의견간의 공정한 경쟁을 통해 최선의 사회적 합의를 얻는다. 그런 지리한 과정은 좌든 우든 좀더 ‘능률적인’ 사회 시스템을 바라는 사람들에겐 답답함을 주지만, 개인의 개성과 사회 정의를 동시에 기대할 수 있는 분명한 방법이다. 그런 점에서 <조선일보>는 자유민주주의의 적이다.

그 신문은 다양성에 반대한다. 그 신문은 자신과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을 테러한다. “사상이 의심스럽다”는 대사는 그 신문의 정수다. 이장희나 최장집을 빨갱이로 몰기 위해 그 신문이 저지른 사실 왜곡의 수준은 우리의 이성을 강간한다. 그 신문은 사회적 합의에 반대한다. 그 신문은 전쟁이 나자 국민을 버리고 도주했고 결국엔 중학생까지 가세한 저항에 의해 쫓겨난 독재자를 이 나라의 아버지라 일컫는다. 그 신문은, 일제 식민지 시절 바로 그 일본군 헌병이었고 해방공간에서는 사회주의자였다가 동료들을 밀고하는 대가로 살아남아 쿠테타로 대통령이 된 후에는 “잘 살아 보세”라는 구호 하나로 제 부끄러운 과거를 감추려 든 또 다른 독재자를 민족의 신으로 추앙한다. 지난 50년을 통틀어 그 신문이 지지해온 건 자유민주주의가 아니라 자유민주주의의 파괴자들이다.

서글픈 일은 그 신문이 이 나라에서 300만 부(그 신문의 주장대로라면)나 팔린다는 사실이다. 300만 부가 팔린다는 얘긴 천만 명 이상 읽는다는 뜻이며 천만 명 이상 읽는다는 얘긴 그 신문이 이 나라의 정신을 대체로 지배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나는 ‘근대적 외관과 봉건적 정신’(빌어먹을 박정희의 위대한 업적인) 속에 살아가는 이 나라 사람들이 그 신문을 즐겨 보는 일이 되레 당연하다 싶다. 언뜻 보기에 그 신문의 정치 사회면은 <동아>나 <한국> 같은 보수신문과 다를 바 없고 그 신문의 문화면은 <한겨레> 만큼이나 진보적이다. 전체적으로 그 신문은 한국에서 발행되는 어떤 신문보다 볼 게 많고 재미있다.

문제는 그 신문의 실체를 파악할 수 있는 분별력을 가진 사람들이다. 나는 만만치 않은(적어도 나 같은 건달보다는 훨씬 훌륭해 보이는) 지적 능력을 가진 지식인들이 그 신문이 다른 보수신문들과 다른 게 무어냐, 반문할 때 맥이 풀린다. 나는 차라리 이 나라의 전근대적인 교육 시스템을 원망한다. 그들은 또 말한다. 어떤 신문이든 글만 바르면 되는 일 아닌가. 나는 이런 순진한 사람들에게 <월간조선>과 그 신문의 문화면을 찬찬히 비교해 보기를 권한다. 그 둘 사이의 믿기 힘든 간격이야말로 ‘<조선일보>라는 극우조직’의 운영 원리다.

그 신문의 정치 사회면이 평소 다른 보수신문과 다를 바 없는 얼굴을 하다가 먹이가 나타났을 때만 기동한다면 <월간조선>은 ‘<조선일보>라는 극우 조직’의 별동대로서 상시적인 전투를 수행한다. <월간조선>은 ‘<조선일보>라는 극우조직’의 정신이 좀더 노골적으로 드러나며 심지어 사무라이 정신과 몽골기마민족론 따위의 위험천만한 파시즘 맨털리티로 무장되어 있다. 그에 반해 그 신문의 문화면은 ‘<조선일보>라는 극우조직’을 중화하는 임무를 띤다. 문화와 학술로 포장된 진보적이고 비판적인 담론들은 그 신문에 어떤 위협도 주지 않지만, 수많은 좌파나 자유주의 성향의 지식인들이 ‘자유롭게’ 기고하는 신문은 그저 건전한 보수 신문이 되는 것이다.

나는 그 신문의 소품 노릇을 마다하지 않는 지식인들이, 오늘날 근대성을 가진 나라라면 지식인이 극우 신문에 기고하는 일만으로도 사회적 스캔들이 된다는 상식쯤은 갖길 바란다. 그러나 동시에 나는 그 신문이 극우신문이라는 의견이 아직은 충분한 사회적 합의에 이르지 못한 현실을 인정한다. 게다가 그 신문에 출연하는 이들 가운데는 머지 않아 나의 미더운 벗이 될 사람이 여럿이다. 나는 그들의 이름을 파시스트의 부역자라 게시하기보다는 지루함을 무릅쓰는 논쟁이나 토론을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믿는다. 결국 우리는 함께 외칠 것이다. "벗이여, 그 신문에 침을 뱉어라." | 씨네21 1999년_8월
1999/09/07 16:45 1999/09/07 16: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