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05/28 22:51
역사와 관련한 말은 그 역사에 대한 해석과 입장을 담기에(1980년 5월 광주에서의 사건을 광주항쟁이라 하는 경우와 광주사태라 하는 경우가 전혀 다른 해석과 입장을 담 듯) 주의 깊고 명료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친일파’라는 말은 역사에 대한 부주의와 모호함을 드러내는 대표적인 예다. ‘일본과 친한 무리’라는 이 말을 일본제국주의 부역자라는 정당한 적대 대상을 넘어 일본인(민족)에 대한 뭉뚱그린 민족주의적 적대감을 담고 있다.

알다시피, 한국인들이 그런 민족주의적 적대감을 갖게 된 직접적인 동기는 36년간의 일제 식민지 경험이다. 그 경험은 참혹했으며 그로 인한 적대감은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분명히 해둘 것은 그 참혹한 경험과 그로 인한 적대감은 한국인(민족)과 일본인(민족) 사이에서가 아닌, 일본 제국주의자들과 한국 민중 사이에서 일이라는 점이다. 대다수 일본 민중들 역시 일본제국주의의 피해자였으며 한국의 지배세력은 일본제국주의 세력과 이해를 같이 했다.

그런 분명한 역사적 구분을 모호하게 만들 최초의 필요는 해방 후 일제 부역자들이 한국 지배세력의 중심을 차지하면서다. 요컨대 그들은 한국민중의 일본제국주의에 대한 정당한 적대감을 일본인(민족) 전체에 대한 뭉뚱그린 민족주의적 적대감으로 조작함으로써 자신들의 안전을 확보했다. 그 후 50여 년 동안 한국을 장악해 온 그들은 일본 극우세력과 철저히 야합하면서도, 민족주의적 적대감을 대중조작 함으로써 손쉽게 자신들의 안전을 유지해 왔다. 이를테면 종군 위안부 문제 같은 정작 자존과 위엄을 보여야 할 문제엔 비슷한 경험을 한 어떤 나라보다 비굴한 태도를 보일 수밖에 없던 그들은, 독도 문제 같은 소재엔 온 나라에 태극기를 휘날리는 민족주의적 선동을 하곤 했다.

자칭 민족언론의 일제 부역 행적(세계사 초유의 코미디라 할)을 폭로 선전하는 등, 일제부역자 청산을 위한 여러 진지한 노력들이 진행되고 있다. 그런 노력들에서 우리가 주의할 것 역시 민족주의의 함정이다. 흔히 좋은 민족주의와 나쁜 민족주의를 구분해야 한다고들 하지만 민족주의란 인간의 모든 선의를 민족 단위로 한정한다는 점에서 본디 위험하다고 보는 게 바람직하다. 모든 파시즘이 민족주의를 기초로 한다는 사실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다만 우리처럼 식민지 경험을 가진 나라에서 민족주의는 한정된 차원의 진보성을 갖는바, 그 역시 민족을 단위로 한 전면적인 착취와 억압 상태에서 방어적인 의미의 민족주의에만 해당한다. 태극기를 휘날리는, 뭉뚱그린 민족주의는 결국 악용되기 마련이다.

지난 55년의 역사가 그래왔듯 말이다. 그런 역사적 기만의 중심에 친일파라는 말이 있다. 식민지나 피점령의 경험을 가진 나라 가운데 그런 부주의하고 모호한 말을 사용하는 경우는 없다. 프랑스인들이 나치부역자를 표현할 때 사용하는 말은 ‘콜라보’다. 콜라보는 ‘콜라보라퇴르’(협력자)에서 나온 말이지만 보통의 협력자를 표현할 땐 절대 사용하지 않는다. ‘게르마노필리’(친독파)는 단지 독일이나 독일문화를 좋아하는 사람을 뜻하는(독일어의 ‘프랑코필’과 대응하는) 가치중립적인 말이다.

근래 진행되는 일제 부역자 청산을 위한 여러 진지한 노력들은 매우 고무적이지만, 일제에서 해방된 지 55년이나 지난 우리가 어떤 역사적 혼란에 빠져 있는가를 보여주기도 한다. 친일파라는 말은 그 말의 정당한 적대 대상인 일제 부역자들의 안전을 유지하고, 그들을 청산하려는 우리를 도리어 그들의 함정에 빠트리는 데 사용되어 왔다. 친일파라는 말을 좀더 주의 깊고 명료한 말(일제 부역자? 역사전문가가 아닌 나는 자격이 없기에, 남겨둔다.)로 바꿈으로서 역사가 우리에게 좀더 주의 깊고 명료해질 것이다.(한겨레 2001. 5. 28)
2001/05/28 22:51 2001/05/28 22:51
2001/05/09 17:30
프로라는 말과 관련한 한 가지 추억. 초등학교 5학년 사회시간, 선생이 우리에게 질문했다. 프로와 아마의 차이가 뭐지? 선생은 감정 조절 능력이 부족하다는 결점이 있긴 했지만 이따금 그런 뜬금없는 질문을 던져놓곤 매우 느리고 비효율적으로 정답을 향해 접근해가는 우리를 기다리는 특별한 인내가 있었다. 별의별 답안이 다 제출되었지만 기억나는 건 한 가지다. “프로는 쇼를 하는 거고 아마는 진짜 하는 겁니다.” 당대의 스포츠, 프로레슬링에 근거한 우리의 유력한 답안이었다. 종이 치도록 프로레슬링의 세계를 빠져나오지 못하는 우리를 지켜보던 선생이 할 수 없다는 듯 입을 뗐다. “프로는 돈을 벌러 하는 거고 아마추어는 돈과 상관없이 하는 거다.” 나(우리)는 입을 벌린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돈일 줄이야.

자본주의가 일반화된 사회에서 프로라는 말은 돈을 벌기 위해 하는 일이라는 당연한 뜻보다 전문적이라는 뜻으로 쓰이곤 한다. 소수만이 대우받는 어떤 직업 영역에서 그 소수를 가리키는 말 따위로 말이다. 자본주의가 넘치기 시작한, 혹은 이미 넘치는 사회에서 프로는 전문적이라는 뜻을 넘어 어떤 강력한 찬미의 말로, 당대의 사회적 영웅에게 수여하는 작위의 말로 쓰여진다. 한국사회에서 프로라는 말이 그렇게 쓰인 첫 예는 90년대 초반 광고장이들(얕보려는 게 아니라 그들 자신이 그렇게 즐겨 부르더라)에게다. 기억하는가, 카피라이터니 AE니 하는 광고장이들이 진정한 프로의 이름으로 찬미되던 시절을. 광고장이들에게 프로의 작위가 수여된 게 90년대 초반이었다는 사실은 역사가 얼마나 고등한 생명체인가를 보여준다.

그 시점은 이른바 현실사회주의가 무너지고 더이상 왼쪽으로 당기는 힘이 존재하지 않는 세계적인 우경화가 시작된, 한국사회에서 자본주의 극복을 모색하던 사람들이 일제히 집으로 돌아간, 자본주의에 투항한 운동만이 살아남은, 자본주의에 반대하는 모든 세력이 대거 패퇴한 직후다. 한국자본주의는 자본주의의 꽃, 광고장이들에게 프로의 작위를 수여하는 일을 신호로 그 마지막 구간을 출발했다. 광고를 자본주의의 꽃이라 하던가. 자본주의의 근본 모순은 모든 생산이 사용을 위해서가 아니라 판매를 위해서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자본의 일방적인 이익보전을 위해 유지되는 그런 모순은 자연스레 과잉생산과 빈부의 격차를 낳는다. 광고는 그런 모순을 희석하고 포장하는 자본의 강력한 무기다.

광고의 목적은 생산과 소비 사이의 어떤 안내가 아니라 생산과 사용 사이의 모든 현혹이다. 그 현혹을 위해 당대의 문학예술적 성취 가운데 가장 감각적인 부분이 총동원된다. 잘 만들어진 광고는 예술작품인 듯 아름답지만 그 목적이 현혹이라는 사실 앞에서 그 아름다움만큼 추악하다. 그 추악함을 구원이라 믿으며 밤낮없이 뛰는 프로들, 그들이 바로 광고장이들이다. (그들에게 비난이 아닌 연민을. 청년기에 생명처럼 쌓은 문학예술적 재능과 정열을 고작 그런 일을 위해 쏟아부으며 살아가는, 그들을 사용하는 사악한 시스템이 던져주는 몇닢의 개평과 서푼짜리 자부에나 일희일비하며 살아가는 가련한 그들에게.)

짐짓 10년이 흘러, 한국자본주의의 열차가 구제금융이라는 세계자본주의 시스템의 마지막 터널마저 통과한 가장 최근 프로의 작위를 받은 건 그 이름도 노골적인 펀드매니저, 돈놀이 기술자들이다. 돈독 오른 사람들의 모사꾼 노릇이라는, 합법적인 직업 가운데 가장 천박한 직업이라 할, 빛나는 금테 안경에 와이셔츠 깃을 예리하게 세운 돈놀이 기술자들은 오늘 우리 앞에 거만하게 팔짱 낀 모습으로 나타났다.

돈놀이 기술자가 영웅인 세상이라니, 정말 근사하지 않은가. 90년대 초반 광고장이들에게 프로의 작위를 수여하는 일을 신호로 그 마지막 구간을 출발한 한국자본주의의 열차는, 오늘 돈놀이 기술자들에게 프로의 작위를 수여하는 일을 신호로 무사히 종착역에 도착했다. 자본주의가 무사히 도착했다. (씨네21)
2001/05/09 17:30 2001/05/09 17:30
2001/04/26 00:00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유가협) 어버이들의 긴 싸움을 그린 다큐멘터리, <민들레>의 한 장면. 전태일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가 건강도 안 좋은데 고되지 않느냐는 질문에, 최우혁(87년, 22세의 나이로 강제 징집되어 부대 쓰레기장에서 불에 탄 채 의문사)의 아버지를 가리키며 말한다.

"우리는 지가 죽였든 누가 죽였든 죽은 것은 알잖아. 의문사 엄마 아버지들을 보면 너무나 불쌍해. 너무 불쌍해 갖고 집에 가야겠다 싶었다가도 저 사람들 놔두고 어떻게 발이 떨어져 집으로 가겠나. 우혁이가 강제징집 가면 나는 죽는다고 피해 다녔어. 그 엄마가 군대 안 가면 안 된다고 세상에 온 동네 사람들 출동해 갖고 잡아다 놓았어. 우혁이가 잡혀가면서 그랬어. 어머니 오늘 못 보면 나는 못 봅니다. 어머니가 원한다면 가서 죽어주지요. 그렇게 강제징집 가서 죽었다고. 그래 그 엄마가 자기가 죽였다고 자기가 죽였다고 하다가 정신이 돌아버려 갖고 물에 빠져 죽었어."

오늘 우리는 흔히들 말한다. "군사독재의 폭압 속에 신음하던 국민들." 그러나 그 말은 낯간지런 거짓말이다. 대개의 우리는 "군부독재의 폭압 속에 신음"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오늘 대개의 우리에겐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없다는 점에서 말이다. 알다시피, 오늘 우리는 "군사독재의 폭압 속에 신음"한 몇 안 되는 사람들이 만든 역사에 편승해 살고 있다. 희한한 일은 우리가 그런 ‘편승한 삶’을 부끄러워할 줄 모른다는 사실이다. 심지어 우리 가운데 어떤 이들은 부끄러워할 줄 모를 뿐 아니라 방자하다.

며칠 전 <조선일보>(정말이지 이 신문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다만)에 실린 홍사중의 칼럼이 그런 경우다. 내용은 이렇다. 홍사중은 박정희 시절 가요에 금지 조처가 많은 걸 보고 '황성옛터'는 왜 금지하지 않느냐는 글을 썼다.(황성옛터는 박정희의 애창곡이었다.) 홍사중은 남산에 잡혀가 "공포교육"을 받고 "겉으로는 멀쩡해서" 돌아왔다. "그런 지 10년이 지나고 20년이 지나고 또 몇 해가 지났다. 돌이켜 볼 때 교묘하게 얼굴을 숨기며 불법의 폭력이 다가오는 요즘의 상황보다는 차라리 폭력이 노골적으로 제 얼굴을 보여주던 그때가 견디기 쉬웠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얼마 후에 그곳의 '아주 높은 분'으로부터 저녁대접을 받았다. 너털웃음을 짓던 그에게는 적어도 꾸밈만은 없어 보였다."

"교묘하게 얼굴을 숨기며 불법의 폭력이 다가오는 요즘의 상황"이라는 말은 몹시 구리긴 하나, 홍사중에게 스토커라도 나타났을 수 있으니 넘어가도록 하자. 그러나 "차라리 폭력이 노골적으로 제 얼굴을 보여주던 그때가 견디기 쉬웠을 것"이라는 방자한 말은 도무지 그냥 넘길 도리가 없다. 결론은 간단하다. ("겉으로는 멀쩡해서" 돌아와 "얼마 후 저녁 대접을 받는" 폭력도 홍사중 같은 귀족풍 지식인에겐 심각한 고통일 수 있음을 모르는 바 아니나) 홍사중이 오늘 그런 방자한 ‘폭력의 미학’을 내뱉을 수 있는 건 단지 홍사중이 당한 폭력이 경미했기 때문이다.

폭력에 미학은 없다. 폭력의 미학이란 폭력을 감상하거나 가상 체험할 뿐인 유한계급의 말장난일 뿐, 어떤 경우에도 폭력은 그 세기에 정비례하는 구체적인 고통일 뿐이다. 아니 할 말로 물고문이나 전기고문 같은 "노골적으로 제 얼굴을 보여주는" 폭력을 당했어도, 아니 할 말로 제 자식이 그런 몹쓸 일을 당했어도, 홍사중은 그렇게 말할 수 있었을까. 추정할 것 없이 홍사중에게 묻도록 하자. "선생, 그 얘기 최우혁이 아버지 앞에서 다시 할 수 있습니까?"

(99년 12월 28일 민주화운동 희생자 명예회복과 의문사 진상규명에 관한 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15년에 걸친 유가협의 싸움은 일단락되었지만, 여전히 어려운 문제들이 많이 남아 있다. 우리는 여전히 그들 가족들의 죽음으로 만든 역사에 편승해 살고 있다.)(한겨레 2001.4.26)
2001/04/26 00:00 2001/04/26 00:00
2001/04/17 17:32
오삼숙 때문이라는 의견도 만만치 않지만, <아줌마>가 화제의 드라마가 된 건 주로 장진구 덕이었다. 사람들은 장진구인 사람들과 장진구가 아닌 사람들로 나뉘어, 장진구인 사람들은 자신이 그 장진구와 다름을 증명하느라 내내 땀을 흘렸고, 장진구가 아닌 사람들은 그 장진구와 현실 속의 장진구의 유사함을 확인하느라 내내 재미를 봤다. <아줌마>는 막을 내렸고 <아줌마>적 논의는 막을 내리기 않았다.

장진구를 자처하는, 소설가 김영하는 '내가 <아줌마>를 싫어 하는 두세가지 이유'를 제출했다. 나는 <아줌마>가 싫다, 나는 장진구다, 지식인이란 장진구다, 지식인은 본디 노는 사람이며 사회의 잉여다, 소크라테스 만한 장진구가 있었는가, 공자도 유비도 예수도 장진구였다, 우리를 미워 해라, 그러나 우리를 씹으려면 좀더 세련되시라... 김영하의 자기모멸은 얼핏 지성적이지만, 결국 김영하는 <아줌마>를 오독하고 지식인을 모욕했다.

지식인이 먹물이라는 대체어로 즐겨 불리는 데서 보듯, 비지식인들의 지식인 혐오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비지식인들은 지식인들을 '노는 사람'이자 '사회의 잉여'라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 생각은 현실 속에서 대체로 근거 있고 사실이지만, 얼마간은 오해다. 지식인에겐 노는 사람이나 사회의 잉여로 오해받을 만한 구석이 있다.

지식인은 여느 노동들처럼 몸을 움직여 분명한 결과물을 생산하는 노동이 아닌, 세상의 정신 부문을 담당하는, 세상을 분별하여 세상에 알리는, 매우 추상적인 노동을 하는 사람이다. 지식인의 노동이 갖는 그런 추상성은 종종 비지식인들로 하여금 지식인들을 노는 사람이자 사회의 잉여라 오해하게 하며, 종종 지식인 자신으로 하여금 자신이 본디 노는 사람이자 사회의 잉여라 오해하게 하곤 한다. 김영하의 경우다.
제 노동의 결과를 아카데미즘이니 인문주의니 딱지가 붙은 궤짝 속에 쌓아두기만 하는 부류는 (우스꽝스럽긴 하지만) 게 중 나은 편이다. 훨씬 많은 지식인들은 백날 천날 놀면서 각종 실물 정치와 각종 실물 경제에만 집착하는 순수한 잉여들이다. 그런 잉여들의 유일한 노동이란 비지식인들로부터 자신을 구별지으려는 끊임 없는 노력이다. "오삼숙의 모델이 된 친구가 그랬다. 자기 남편은 아내가 저 하는 말 절대로 알아 듣기를 바라지 않는 것 같다고. 또 알아듣지 못하게 하는 말도 유행이 있는 것 같다고..."(<아줌마>의 작가 정성주)

김영하는 소크라테스에 공자에 유비에, 급기야 예수까지 끌어들여 <아줌마>를 공격한다. 그 논리적 해괴함(장진구가 십자가에 달린 까닭은?)은 덮어두고라도, 그런 시공 초월적 지식인론은 <아줌마>라는 과녁과는 거리가 멀다. <아줌마>는 섬뜩할 만치 구체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다. "80년대를 밑천 삼아 90년대에 백가쟁명을 과시하였으되 세상을 바꾸기는 커녕 2천년대 정신적 공황기를 도래케 한 사람들이다."(정성주)

<아줌마>의 그런 분명한 설정은 그런 설정 바깥 또한 분명히 한다. 세상은 분명히 장진구들로 차고 넘치지만 자신의 노동을 기억하고 성실하게 노동하는 지식인들 또한 분명히 존재한다. (김영하는 장진구 같은 지식인은 현실 속에 존재하지 않는다 했는데, 김영하는 장진구에 가미된 코미디 장치를 착각했다. 현실 속에 존재하지 않는 건 장진구가 아니라 장진구에 가미된 코미디 장치다. 그 장치를 걷고라면, 세상은 분명히 장진구들로 차고 넘치지 않는가.) 그들이 바로 2천년대의 정신적 공황기를 지탱하는 버팀목이며, 그들의 성실한 노동 덕에 세상에 차고 넘치는 장진구들의 죄가 사함 받는다.

추신 : 김영하는 '오삼숙과 그의 일당들 같은 순결한 민중들'은 1930년대 소비에트 선동극에나 존재한다고 했다. 2천년대의 소설가는 평균 이하의 교양을 요건으로 하는가. 소비에트 선동극 속의 민중들은 생으로 지어낸 인물들이 아니다. 억압의 상태에서 자신의 정당한 권리를 위해 싸우는 순간, 사람은 누구나 순결해진다. 어떤 졸렬한 인간도, 억압의 상태에서 자신의 정당한 권리를 위해 싸우는 순간 가장 순결해지는 것. 우리가 사람인 이유이자 역사에 절망하지 않는 이유다.(씨네21)
2001/04/17 17:32 2001/04/17 17:32
2001/04/16 21:55
오늘 우리가 누리고 있는 것들의 9할은 80년대가 준 것이다. 젊은이들의 알록달록한 머리색, 대통령을 내 손으로 뽑을 권리, 그 대통령을 욕할 자유, 북한군을 인간으로 그린 영화, 민주적인 노동조합... 오늘 우리가 누리고 있어 오히려 대수롭지 않은, 것들의 9할은 80년대, 그 불의 시대가 준 선물이다. 한국의 80년대는 특별했다. 인류 역사에서 그렇게 많은 인텔리 청년들이 일신의 안위를 뒤로 한 채 세상을 바꾸는 일에 투신하고 스러져간 시대가 있었던가.

80년대 청년들의 땀과 피가 땅에 베어 파시스트들이 권력의 전면에서 물러나고 절차적 민주주의가 진전될 무렵, 현실 사회주의 체제가 붕괴하고(물론 그것은 사회주의의 붕괴가 아니라 사회주의의 한 졸렬한 시도의 붕괴였지만) 더 이상 왼쪽으로 당기는 힘이 존재하지 않는 세계적인 우경화가 시작되었다. 이 모순된 상황은 일견, 한국은 살 만한 나라가 되었고 사회주의적 가치는 시효를 다 한 것처럼 보였다. 10여 년을 극악한 군사 파시즘과 싸우던 청년들의 긴장은 그 변화한 상황 속에서 혼란에 빠졌고, 정처 없이 흐트러져갔다.

10년이 지났다. 오늘 그들은 대략 셋으로 나뉜 것으로 보인다. (80년대의 내용은 폐기하고 이력만을 팔아 장사에 나선 부류는 접고 가자. 그런 천박함까지 80년대의 이름으로 언급할 순 없으니.)

첫째, 세상이 달라졌다는 의견에 명백하게 반대하며 80년대의 연속성을 유지하며 근본적인 변화를 모색하는 사람들이다. 손에 꼽을 만치 적은 그들은 곤란한 처지에 있다. 그들을 제외한 거의 모든 사람들이 세상이 변했다고 합의했고, 그런 합의를 기반으로 하는 방식의 운동이 각광을 받는 상황에서, 그들이 지키는 신념은 낡은 것으로 비쳐지기 일쑤다. 그러나 (세상이 변했다는 의견에 찬성하고 안 하고를 떠나) 그들은 ‘여전히 남은 문제들’과 싸우는 유일한 세력이다. 그들은 낡은 것처럼 보이지만 가장 새로운 세상에 접근한 사람들이다.

둘째, 이른바 90년대 이후의 변화한 상황을 근본적인 변화로 규정하고 적응한 사람들이다. 이를테면 90년대 중반 이후 급부상한 부르주아적 시민운동이다. 그런 새로운 방식의 운동은 80년대의 전체운동 중심 운동의 그물에 담지 못했던 중산층의 이런저런 문제들을 챙기며, 준 정당에 가까운 세력을 형성하고 있다. 그 성과야 지나칠 만큼 충분한 평가를 받고 있기도 하지만, 문제는 그런 운동이 오늘의 유일한 운동인 양 주장되는 일이다. 그런 주장들은 바로 근본적인 변화를 모색하는 운동을 어리석고 낡았다고 비난하는 일이 된다.

(그들은 여전히 ‘80년대의 연속성’이나 ‘변혁의 전망’이라는 말을 사용하지만 그들의 실제 활동 속에서 그런 흔적은 찾아보기 어렵다. 무엇보다 그들은 그들 자신의 유지를 위해 많은 것을 타협할 수밖에 없어 보인다. 언론에 의지하다 보니 언론문제에 불분명한 입장을 보인다든가, 언론에서 다뤄줄 만한 주제에 편중한다든가, 그 번듯한 살림을 꾸리기 위해선 과격해 보이지 않아야 한다든가 하는 문제들은 그들의 족쇄다.)

셌째, 이력을 팔아 장사에 나설 만큼 간교하지도 변화한 상황에 적응할 만큼 재빠르지도 못했지만, 여전히 신념을 지키며 살기엔 변화한 상황의 혼란과 피로를 이길 수 없었던 사람들이다. 80년대의 청년들의 가장 많은 부분일 그들은 말 그대로 청년 시절의 노고가 허망해져버린 사람들이다. 남들이 일신의 안위를 준비하느라 열심일 때 거리와 현장을 내달려야 했던 그들은, 꼭 그 만큼 경쟁에 뒤진 삶을 어색하게 꾸려간다. <한겨레>를 구독하고 남들보다 진지한 책을 읽고 선거 때면 조금이라도 진보적인 정당에 투표하기도 하지만, 그런 작은 노력들은 이미 천민자본주의의 정신에 사로잡힌 그들의 주변으로부터 은근한 경멸의 대상일 뿐이다.

오늘 80년대의 청년들은 (변화한 세상에 적응한 사람들을 빼고는) 대개 세상의 경멸에 처해 있다. 희한한 일은, 사람들은 그 청년들이 오늘 우리가 누리고 있는 것들의 9할을 주었다는 의견에 동의하면서도 그 청년들을 마치 어리석은 과거를 가진 사람처럼 경멸하곤 한다는 것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그런 동의는 그런 경멸을 위한 준비일 뿐이다. 그 청년들이 ‘그 80년대에 데모 한번 안 해본 놈들’에게서까지 받는 그런 경멸은 과연 온당한 것일까.

하는 말대로, 그들이 80년대의 후반기에 그렇게 열심하던 사상 투쟁이나 사회구성체 논쟁은 분명 과열된 부분이 있었고 그들의 운동엔 편중된 부분이 잇었다. 그들이 90년대의 혼란에 그렇게 무력하게 흐트러진 일 또한 그런 부분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새로운 전망을 찾기 위해선 그런 오류에 대한 비판은 필요하다. 오히려 80년대가 종료한 지 10여년이 지났지만 그런 오류에 대한 정확한 비판과 토론이 진행되지 않은 일은 아쉬운 일이다.

문제는, 80년대의 오류에 대한 그런 비판들이 새로운 전망을 찾기 위한 생산적인 목적이 아닌 엉뚱한 목적, 이른바 신자유주의적 질서를 주장하기 위해 사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확실히 80년대의 정신은 ‘지나친 자본주의’로서 신자유주의 정신과 적대적이며, 80년대의 정신이 아무 구분없이 경멸되어야 할 필요가 바로 거기 있다. 오늘의 정신, 신자유주의의 정신은 어떤 것인가. 그것은 하루가 다르게 벌어지는 빈부의 격차를 당연시하는, 모든 경제적 실패를 노동자의 책임으로 넘겨지는, 아이들이 아파트 평수대로 신분을 나누는, 일류대학이 부자의 자식들로 채워지는, 오로지 돈이 사람의 가치를 결정하는, 부모가 자식에게 선생이 제자에게 올바로 살라고 가르치는 일이 자식과 제자의 인생을 망치는 일이 되는, 정신이다. 과연 우리에게 희망이 있는가.

희망은 부당한 경멸을 돌려주는 일에서만 출발할 것이다. 80년대, 그 위엄을 되찾아야 할 때다.

(우리교육)
2001/04/16 21:55 2001/04/16 21: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