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09/21 16:46
이른바 근대 정신의 핵심은 '개인'(나의 주인은 왕이나 신이 아니라 바로 나라는)이고 오늘날 지구상의 거의 모든 나라의 헌법에 적혀 있는 사상과 표현의 자유는 그런 근대 정신을 보장한다. 그런 점에서 나는 지난 50여 년 동안 반공주의 외의 모든 사회적 의견을 빨갱이로 몰아온 국가보안법이 여전히 건재하고, 이미 3년 전 예술 작품에 대한 사전심의가 위헌이라는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얻고도 여전히 예술작품에 대한 온갖 검열이 횡행하는 이 나라를 근대적인 국가라 생각하지 않는다.

<거짓말>은 국민의정부가 만든 '민주적 검열기구'인 영상물등급위원회로부터 3개월 등급보류 판정을 받은 영화다. 알다시피 등급보류란 지정한 기간 동안 영화를 알아서 가위질 해오게 하는 손 안대고 코푸는 검열장치다. 등급보류는 1~3개월로 나눠지는데 기간을 나누는 이유는 자를 게 많을수록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예술적 배려' 때문이다.(공윤이 공진협을 거쳐 등급위로 바뀐 과정이나 등급보류가 뭔지 조차 모르는 독자는 이쯤 해서 읽기를 중단하고 조종국 기자의 지사적 저널리즘을 되훑어 보시길)

어느 시대든 검열자들이 내세우는 두 가지 핑계는 사회 안전과 도덕이다. 우리의 경우 사회 안전은 주로 반공으로 표현되어 왔지만 이젠 그 반공이 얼마나 맹랑한 반공이었는가가 대체로 밝혀진 편이라 새삼 말하기가 욕스럽다. 도덕은 주로 청소년문제로 표현되고 있다. 나는 청소년들에게 추하고 부도덕한 현실을 보이는 일이 그들의 정서 함양에 해가 된다는 의견에 전적으로 찬성한다. 이 나라의 성인들은 그들에게 곱고 바른 것을 많이 보여줄 의무가 있다. 문제는 청소년에게 해를 주는 현실이 '예술작품 속의 현실'인가 '실제 현실'인가 하는 점이다. 청소년들이 24시간 숨쉬는 실제 현실엔 어떤 도덕의 흔적조차 남아있지 않은 판에, '청소년을 위해' 소설 한편 영화 한편 속의 도덕을 따지는 일이란 얼마나 우스운 일인가. 그것은 단지 어젯밤 술집에서 남의 딸을 희롱한 이 나라의 성인 남자가 오늘밤 제 딸이 같은 일을 당할까 노심초사하는 눈물겨운 부성애에 봉사하는 일일뿐이다.

나는 아직 <거짓말>을 보지 않았다. 유감스럽게도 나는 장정일의 소설을 좋아한 일이 없고(산문을 통해선 그가 존중할 만한 작가임을 확인했지만) <우묵배미의 사랑> 이후 장선우엔 그다지 호감이 가지 않는다.(특히 그가 <거짓말>과 검열문제를 두고 자꾸 색즉시공이니 공즉시색이니 하면서 도사연 하는 일은 마땅치 않다. 그가 선방이 아니라 세상에서 영화를 만들었고 많은 사람들이 그 영화를 보길 바라며 그 영화가 이미 사회적 의제가 되어 싸움을 벌이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최소한의 계몽적 태도를 보이는 게 예의가 아닐까.) 그러나 장정일과 장선우와 그들의 예술작품에 대한 내 입장과 장정일과 장선우와 그들의 예술작품에 가해진 검열에 대한 내 입장은 전혀 다른 차원의 것이다.

모든 검열의 목적은 한 사회의 기득권을 가진 세력이 그 기득권을 영속화하기 위해 그 사회의 정신세계를 묶어두려는 데 있다. 해서 검열은 언제나 한 사회의 정신적 생산물 가운데 가장 앞선, 가장 돌출된 부분만을 대상으로 한다. 뒤집어 말하면 한 사회에서 검열자의 먹이가 되는 정신적 생산물은 (그것이 설사 쓸모 없는 쓰레기처럼 보인다 해도) 그 사회의 정신세계의 확장을 위해 제 몸을 태우는 숭고함을 갖는 것이다. 나는 장정일(그의 소설을 좋아하지 않지만)과 장선우(그의 태도가 마땅치 않지만)가 가진 예술가로서의 용기를 존경하며 그들의 예술작품 <거짓말>(아직 보지 않았지만)을 진심으로 지지한다. 나는 <거짓말>을 시사회장이 아닌 내가 사는 곳 근처의 극장에서 내 돈 내고 볼 수 있기를 원한다.

추신 : <거짓말>은 '세계적'인 베니스영화제에 가 있고 이 글이 독자에게 읽힐 무렵엔 그 결과가 나왔을 것이다. 이 나라의 사대주의 수준으로 볼 때, 이 영화가 상을 받는다면 검열자들은 두 번 쪽팔리게 됐다. '세계적'인 예술작품을 등급보류한 일로 한번, '세계적'인 예술작품의 등급보류를 더 이상 고집하지 못할 일로 한번 말이다. 하긴 상을 받든 못 받든 그 빌어먹을 검열에 제대로 저항 한번 못한 우리도 '세계적'으로 쪽팔리긴 매한가지다. 아, 우리 쪽의 거처는. | 씨네21 1999년_9월
1999/09/21 16:46 1999/09/21 16:46
1999/09/07 16:45
(내가 가진 얼마간의 좌파 성향과 상관없이 얘기하자면) 자유민주주의의 가장 큰 미덕은 다양성이다. 자유민주주의는 자신과 다른 의견을 존중하며 여러 다른 의견간의 공정한 경쟁을 통해 최선의 사회적 합의를 얻는다. 그런 지리한 과정은 좌든 우든 좀더 ‘능률적인’ 사회 시스템을 바라는 사람들에겐 답답함을 주지만, 개인의 개성과 사회 정의를 동시에 기대할 수 있는 분명한 방법이다. 그런 점에서 <조선일보>는 자유민주주의의 적이다.

그 신문은 다양성에 반대한다. 그 신문은 자신과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을 테러한다. “사상이 의심스럽다”는 대사는 그 신문의 정수다. 이장희나 최장집을 빨갱이로 몰기 위해 그 신문이 저지른 사실 왜곡의 수준은 우리의 이성을 강간한다. 그 신문은 사회적 합의에 반대한다. 그 신문은 전쟁이 나자 국민을 버리고 도주했고 결국엔 중학생까지 가세한 저항에 의해 쫓겨난 독재자를 이 나라의 아버지라 일컫는다. 그 신문은, 일제 식민지 시절 바로 그 일본군 헌병이었고 해방공간에서는 사회주의자였다가 동료들을 밀고하는 대가로 살아남아 쿠테타로 대통령이 된 후에는 “잘 살아 보세”라는 구호 하나로 제 부끄러운 과거를 감추려 든 또 다른 독재자를 민족의 신으로 추앙한다. 지난 50년을 통틀어 그 신문이 지지해온 건 자유민주주의가 아니라 자유민주주의의 파괴자들이다.

서글픈 일은 그 신문이 이 나라에서 300만 부(그 신문의 주장대로라면)나 팔린다는 사실이다. 300만 부가 팔린다는 얘긴 천만 명 이상 읽는다는 뜻이며 천만 명 이상 읽는다는 얘긴 그 신문이 이 나라의 정신을 대체로 지배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나는 ‘근대적 외관과 봉건적 정신’(빌어먹을 박정희의 위대한 업적인) 속에 살아가는 이 나라 사람들이 그 신문을 즐겨 보는 일이 되레 당연하다 싶다. 언뜻 보기에 그 신문의 정치 사회면은 <동아>나 <한국> 같은 보수신문과 다를 바 없고 그 신문의 문화면은 <한겨레> 만큼이나 진보적이다. 전체적으로 그 신문은 한국에서 발행되는 어떤 신문보다 볼 게 많고 재미있다.

문제는 그 신문의 실체를 파악할 수 있는 분별력을 가진 사람들이다. 나는 만만치 않은(적어도 나 같은 건달보다는 훨씬 훌륭해 보이는) 지적 능력을 가진 지식인들이 그 신문이 다른 보수신문들과 다른 게 무어냐, 반문할 때 맥이 풀린다. 나는 차라리 이 나라의 전근대적인 교육 시스템을 원망한다. 그들은 또 말한다. 어떤 신문이든 글만 바르면 되는 일 아닌가. 나는 이런 순진한 사람들에게 <월간조선>과 그 신문의 문화면을 찬찬히 비교해 보기를 권한다. 그 둘 사이의 믿기 힘든 간격이야말로 ‘<조선일보>라는 극우조직’의 운영 원리다.

그 신문의 정치 사회면이 평소 다른 보수신문과 다를 바 없는 얼굴을 하다가 먹이가 나타났을 때만 기동한다면 <월간조선>은 ‘<조선일보>라는 극우 조직’의 별동대로서 상시적인 전투를 수행한다. <월간조선>은 ‘<조선일보>라는 극우조직’의 정신이 좀더 노골적으로 드러나며 심지어 사무라이 정신과 몽골기마민족론 따위의 위험천만한 파시즘 맨털리티로 무장되어 있다. 그에 반해 그 신문의 문화면은 ‘<조선일보>라는 극우조직’을 중화하는 임무를 띤다. 문화와 학술로 포장된 진보적이고 비판적인 담론들은 그 신문에 어떤 위협도 주지 않지만, 수많은 좌파나 자유주의 성향의 지식인들이 ‘자유롭게’ 기고하는 신문은 그저 건전한 보수 신문이 되는 것이다.

나는 그 신문의 소품 노릇을 마다하지 않는 지식인들이, 오늘날 근대성을 가진 나라라면 지식인이 극우 신문에 기고하는 일만으로도 사회적 스캔들이 된다는 상식쯤은 갖길 바란다. 그러나 동시에 나는 그 신문이 극우신문이라는 의견이 아직은 충분한 사회적 합의에 이르지 못한 현실을 인정한다. 게다가 그 신문에 출연하는 이들 가운데는 머지 않아 나의 미더운 벗이 될 사람이 여럿이다. 나는 그들의 이름을 파시스트의 부역자라 게시하기보다는 지루함을 무릅쓰는 논쟁이나 토론을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믿는다. 결국 우리는 함께 외칠 것이다. "벗이여, 그 신문에 침을 뱉어라." | 씨네21 1999년_8월
1999/09/07 16:45 1999/09/07 16:45
1999/08/24 16:42
'하루감옥체험'을 했다. 명동성당 앞에 지어놓은 0.75평 짜리 감방 일곱 개 가운데 하나엔 내 이름이 적혀 있고 나는 그곳에서 한나절을 보냈다. 참여해 달라는 연락이 왔을 때 나 같은 건달을 뭐에 써먹으려나 싶었지만 군말 없이 따랐다. 민가협, 그들은 우리가 알량하나마 나름의 신념을 건사하고 살수 있도록 사랑하는 가족을 담보로 제공한 사람들이다. 그들이라면 우리 가운데 누구에게든 하루쯤 감옥 체험을 하라고 권유할 자격이 있다. 또한 하루감옥체험은 한국에는 양심수가 없다고 주장하는 더러운 파시스트들로부터 우리의 명예를 확인할 소중한 기회다.

0.75평 짜리 감방은 내 짐작보다 더 좁았다. 이런 곳에서 수십 년을 지내고도 온전한 정신을 유지하는 이들은 대체 어떤 사람들일까. 체제의 요구와 일치하지 않는 신념을 가진다는 이유만으로 이런 곳에 사람을 수십 년씩 가두는 국가에 우리가 걸 수 있는 신뢰는 어떤 것일까. 허락 받지 않은 상념에 빠진 나에게 그들(비전향 장기수 영감님들)이 찾아왔다. 전향서라는 이름의 종이 한 장과 수십 년의 세월을 맞바꾼 그들의 얼굴은 수도자처럼 맑았고 그들의 몸가짐은 사위를 바로 새울 만큼 정중했다. 그들이 창에 얼굴을 대고 자신을 소개한 후 "고생 많으십니다."라고 고개를 숙였을 때 나는 일어나 머리를 조아렸다. 내가 할 수 있는 말이란 그저 "죄송합니다." "건강은 어떠십니까." 쯤이었다. 그들은 내가 있는 곳을 들여다보며 그들이 있던 곳과 모양과 크기가 비슷하다 했다. 그러나 그런 도량형 상의 유사함이란 얼마나 가소로운 것인가. 수십 년 동안 여섯 면의 벽은 하루하루 그들을 향해 다가왔을 테니 말이다.

세 살쯤 되었을까. 이른바 국민의 정부 하에서 일어난 조직사건인 '영남위 사건'으로 투옥된 양심수의 딸아이가 찾아왔다. "아빠도 이런 데 계셔, 아저씨한테 인사해야지." 엄마 팔에 앉긴 아이의 눈엔 이슬이 맺혔고, 인사를 재촉하는 엄마의 말에 아이는 자꾸만 몸을 빼면서도 눈길만은 나를 놓치려 하지 않는다. 곱고 예쁜 세상만 보여주기에도 모자랄 저 아이의 눈망울에 이 비열하고 사악한 세상을 마련한 우리의 죄를 용서받을 방법은 무엇일까.

"아저씨 힘들지 않으세요." 초등학교 일 학년 짜리 남자아이가 제 키를 넘기는 창에 간신히 얼굴을 대고 묻는다. "괜찮아, 아저씬 조금 있다 나가." "우리 아빤 광주 교도소에 있는데." "아빠가 뭘 잘못했지?" "아빤 착한 일 해서 잡혀가셨어요." 고개를 떨구는 저 아이가 익힌 세상의 이치는 '착한 일 하면 잡혀가는' 곳이다. 아이에게 양심과 정의를 가르치는 일이 아이의 인생을 망치는 일이 되는 세상에서 우리가 만들어내는 모든 정신적 성취들(학문적 예술적 문화적 혹은 종교적인)은 한낱 오물에 불과하다.

교도관들(역시 양심수 출신인 청년들)의 감시를 피해 훔쳐 본 명동거리는 텔레비전 스케치 화면처럼 낯설었다. 따가운 햇살 아래 모델 같은 몸매의 아가씨들이 잦은 집회로 길이 든 명동성당 입구를 따분한 얼굴로 흘끔거리며 지나가고, 성당으로 오르는 고급승용차들은 진입로에 주저앉은 보라색 스카프의 어머니들에게 끊임없이 비켜줄 것을 요구했다. 저 아리따운 아가씨들은 자신들이 지켜 가는 다이어트에의 신념마저 사랑하는 사람들을 만날 수 없는 갇힌 이들의 신념 덕에 가능함을 알고 있을까. 고급승용차 뒷좌석에 우아하게 들어앉은 저 귀부인은 자신이 지켜 가는 종교에의 신념마저 한여름 땡볕 아래 주저앉은 저 어머니들의 뚫린 가슴 덕에 가능함을 알고 있을까.

어머니들은 창살 사이로 내 손을 어루만지며 자기 자식인양 안타까와했다. 이곳은 공갈 감옥이고 나는 공갈 양심수지만 그들은 진짜 어머니들이었다. 불과 몇 년 전, 제 자식의 안위만을 기원하며 살던 그들은 이제 이 나라의 가장 추악한 부위를 몸으로 겪으면서 제 자식이 풀려나고도 남의 자식 걱정에 거리를 누비는 투사가 되었다. 내 손을 잡은 채 미소지으며 한 어머니가 말했다. "세상에서 제일 강한 게 엄마잖아. 엄마의 힘은 하늘도 움직일 수 있거든. 우린 무서울 게 하나도 없어." | 씨네21 1999년_8월
1999/08/24 16:42 1999/08/24 16:42
1999/08/10 16:41
지난번 '광수 생각'이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내가 <씨네21>을 공격한 일을 두고 사람들은 두 가지 반응을 보인다. 먼저 내가 <씨네21> 편집장과 격의 없는 사이라는 걸 아는 사람들은 둘이 싸웠냐고 묻는다. 그 얘긴 싸워서 그걸 쓰게 되었냐는 뜻과 그걸 쓰고 싸우지 않았느냐는 뜻을 모두 담고 있다. 반면에 나와 개인적인 친분이 없는, 이를테면 강연에 온 청중이거나 이메일을 보내오는 독자들은 음모론에 가깝다. 그들은 도저히 못 믿겠다는 듯, <씨네21>이라는 잡지의 격조를 드러내려고 둘이 짠 것 아니냐는 식으로 묻곤 한다.

아쉽게도 두 가지 추정은 진실과 멀다. 설명 대신 그 <씨네21>이 나온 직후 나와 <씨네21> 편집장 사이의 전화 통화 내용을 옮겨 본다. "조 선배, 김규항입니다."(그는 나보다 두 살 많다.) "아니, 이 배은망덕한 필자가 자기를 키워준 잡지를 씹어."(그는 늘 자기가 나를 필자로서 '머리 얹어주었다'고 유세하곤 한다.) "하하하, 나는 살모사 새낍니다." "김규항씨가 아무리 그래도 우리는 분명한 우리 입장이 있어." "아이구, 그만둡시다. 그런데 왜 전화 안 했어요."(그는 이따금씩 원고를 받고 전화를 하는데 그런 음험한 거래를 통해 내가 포기한 문장으로 '존만 새끼들', '잠지를 까고' 등이 있다.) "아 우리가 그 정도 격조는 있지." "격조가 아니라 개인적인 자존심 아닙니까. 속은 부글부글 끓지만 후배들 앞에서 그걸 드러내는 자신을 용서할 수 없는." "하하하, 하여튼 앞으로 매번 이런 식으로 나오면 우리는 자르는 방법밖에 없어." "얼마든지. 하여튼 사적으론 백배사죄 드립니다."

나와 <씨네21>이 연루된 음모론의 한 예를 꺼낸 건 내가 보기에 오늘의 한국인들이 대개 음모론자들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보통 사람들(동네 아줌마들, 복덕방 아저씨들, 포장마차의 취객들 등)은 '서해교전'이고 '신창원 체포'고 다 짜고 하는 짓이라는 의견을 큰소리로 서슴없이 내놓는다. 사실 여부를 떠나 격세지감을 느끼게 하는 일이다. 적은 수의 청년들만이 국가를 의심하던 음모론자이던 시절 보통의 한국인들은 청년들에게 말하곤 했다. “너희가 세상을 몰라서 그래.” 그러나 그 청년들이 음모론을 절제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는 오늘, 보통의 한국인들은 너나없이 음모론자다. 한국인들의 시민의식이 하루아침에 비약한 걸까.

알다시피 음모론은 두 가지다. 하나는 진실을 밝히려는, 세상은 개선할 수 있다는 희망에 봉사하는 음모론이다. 다른 하나는 세상을 불신하는, 세상은 절대 개선되지 않는다는 냉소에 봉사하는 음모론이다. 오늘 한국인들은 대개 후자에 해당한다. 그런 음모론에 빠진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세상을 선택하는 일이 아니라 세상에 적응하는 일뿐이다. 그들은 그들이 체득한 적응의 노하우를 자식에게 가르쳐 대를 잇는다.

'군부독재정권의 억압에 신음하던 국민들', 혹은'일천이백만 노동자'라는 말은 지식인들의 레토릭일 뿐이다. 생각해 보라. 한국인들이 그런 일에 신음할 만큼 근대적인 시민의식을 가질 기회가 있었던가. 한국 노동자들이 일천이백만이 나와 같은 처지에 있는 노동자라는 근대적인 계급의식을 가질 기회가 있었던가. 한국인들은 봉건사회에서 바로 식민통치, 그리고 극우 파시스트 치하에서 3대 이상을 살아왔다. 그런 한국인들이 파업하는 지하철 노동자와 자신들이 같은 노동자라는 걸 깨닫지 못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노동자인 그들은 우습게도 '노동자 새끼들 땜에 내가 못 살겠다'고 분노하곤 한다.

더욱 희한한 일은 여전히 전근대적인 한국에서 이른바 '정신 세계를 창조하고 배분하고 적용'한다는 지식인들만은 적잖이 탈근대적(포스트 모던)이라는 사실이다. 그들은 근대도 이루지 못한 나라에서 탈근대를 외치는 코미디언들이다. 그들과 관련하여 나는 얼마 전부터 작은 고민에 빠져 있다. 노숙자들을 일컬어 '한국의 하층민들이 드디어 국가를 거부하기 시작했다'고 찬미한 어느 포스트모더니스트를 한번 불러내서 패고 싶은 욕망 때문이다. 그럴 때면 나는 눈을 감고 이렇게 되내인다. "사람을 패는 일은 근대적이지 않다." | 씨네21 1999년_8월
1999/08/10 16:41 1999/08/10 16:41
1999/07/27 16:40
'출판사 영화언어 발행인'이라는 매우 영화적인 직함과는 달리 나는 영화에 대해 전문적이지 않다. 그런 내가 올해 초 한 시사월간지로부터 '김규항의 영화에세이'라는 지면을 수락한 건 극장에 가는 회수를 2년에 한번에서 한 달에 한 번으로 늘일 수 있기 때문이었다. '영화평'을 피하느라 매달 심란해지지만, 나는 이제 한 달에 한 번은 극장에 가고 있다. 그렇게 본 영화가 <쉬리>, <인생은 아름다워>, <부기나이트>, <정크메일>, <이재수의 난>, <스타워즈 에피소드1> 들이다. 나는 내 삶 속에 갑자기 늘어난 영화의 부피에 만족해했다.

그런 내 흥을 깬 건 <이재수의 난>이다.(가장 한심한 건 <에피소드1>이었지만 나는 그것을 영화라기보다는 캐릭터 사업을 위한 거대한 CF라 여긴다) 나는 <이재수의 난>이 불쾌했고 영화를 본 지 한 달이 넘은 지금 그 불쾌감은 불편함으로 남았다. 내가 <이재수의 난>에서 얻은 소득이라면 박광수가 사회파 감독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한 것이다. 사회파 감독을 가름하는 기준이 사회적 소재가 아니라 사회의식이라 할 때 나는 <이재수의난>에서 어떤 사회의식도 발견할 수 없었다. 나는 비로소 내가 눈물을 찔끔거리며 보았던 <그들도 우리처럼>을 비롯 박광수가 만든 여섯 편의 영화를 깨달을 수 있었다. 박광수는 사회파 감독이 아니라 '사회적 소재를 즐겨 채택하는' 감독이었다.

나는 <이재수의 난>이 민중영웅담이길 바라는 게 아니다. 역사에 대한 해석은 창작자의 몫이다. 내가 <이재수의 난>에 불쾌한 건 역사에 대한 박광수의 해석이 아니라 역사에 대한 박광수의 해석이 가진 무기력 때문이다. <이재수의 난>은 '구체적인 삶과 죽음이 포함된 실재'로서의 역사에 대한 예의를 갖추지 못한 영화다. 나는 <이재수의 난>이 충실한 내러티브를 갖길 바라는 것도 아니다. 얼치기 계몽주의자인 나로선 역사물엔 리얼리즘이 나아 보이지만 그렇다고 형식주의의 정당한 능력을 폄하하고 싶진 않다. 문제는 박광수가 역사에 무기력했듯이 내러티브에도 무기력했다는 점이다.

나는 <이재수의 난>이라는 영화에서 박광수가 굳이 '이재수의 난'이라는 역사를 소재로 채택한 이유를 발견할 수 없다. 박광수가 사회적 소재를 즐겨 채택하는 가장 큰 이유는 통속적인 것을 재미없어 하는 그의 고급한 취향에 있어 보인다. 그리고 그런 취향이야말로 박광수의 창작 방법의 골간인 듯 하다. 그러나 박광수의 그런 고급한 취향은 '이재수의 난'이라는 역사적 다이내미즘 앞에서 한없이 무기력하다. <이재수의 난>은 그런 무기력과 그것을 자인하지 않는 박광수의 오만의 불행한 결합물이다. 박광수의 취향대로 <이재수의 난>은 통속적이지 않지만, 잘 만들어진 고급 예술이 보편적으로 가지는 난해한 긴장감은 한 순간도 찾아볼 수 없다.

'오만한 감독의 무기력한 실패'를 더욱 심각하게 만드는 건 박광수와 <이재수의 난>에 대한 이른바 전문가들의 정치적 배려다. 사회에 대해 별다른 배려가 없어 보이는 그들의 사회파 감독에 대한 무한정한 배려는 기이하기만 하다. 특히 <씨네21>의 캠페인에 가까운 박광수 옹호는 매우 위험해 보인다. 스크린쿼터를 둘러싼 민족주의적인 분위기 속에서 중원을 평정한 영화 전문지로서의 정치적 입장(거의 유일한 작가적 감독을 밀어준다는)을 이해하지만 그런 정치적 배려가 영화와 감독에 대한 엄정한 평가에 우선할 수 있다는 태도는 파시즘이다. 문화권력이 된 <씨네21>은 '고급비평정보지'라는 독자와의 처음 약속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이재수의 난> 시사회에 몰린 인파의 질과 양에 나는 놀랐다. '불굴의 투지를 가진 사회파 감독'이라는 말은 박광수에 어울리지 않는다. 그런 수사는 '유행이 지난' 사회물을 만드느라 죽을 고생을 하는 독립영화 감독들에게나 어울린다. 빈정대자는 게 아니라, 한국이라는 나라(어떤 곳인지 다들 아는 대로)에서 지난 10여년 동안 사회적 소재만으로 여섯 편의 영화를 만들고도 파멸하지 않았다면 박광수는 특별히 행복했다 할 만하다. 나는 거꾸로 묻고 싶다. 대체 그 사회파 영화들은 어떤 것이었나? | 씨네21 1999년_7월
1999/07/27 16:40 1999/07/27 16: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