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10/08 22:58
변화가 시작되고 있다. 이를테면, 서준식씨의 두가지 행동(이 신문 칼럼을 통해 자신이 사회주의자임을 공식화하고, 국가인권위원회 구성 과정에 항의 인권운동사랑방 대표직을 사퇴한)은 그 변화의 전조다. 그것은 한국의 한 견결한 사회주의자가 이제 뒤섞임 없이 자신의 길을 가겠다는 선언이자, 청산과 자기모독이라는 오욕의 90년대에 던지는 고별사다.

한국의 80년대는 특별했다. 세계역사를 통틀어 그렇게 많은 인탤리 진보주의자들이 출현한 일이 있었던가. 80년 5월 광주의 깨달음 덕에, 70년대식 반독재운동은 급격히 진보적 변혁운동으로 전화했고 그 거대한 파도는 10여년 동안 한국의 인탤리들을 완전히 휘감았다. 거리에서 공장에서 세상을 갈아엎는 일에 투신하겠노라 그들은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90년대에, 그들은 일제히 청산했다. 현실 사회주의의 붕괴와 한국에서 절차적 민주주의(이게 뭐더라)의 진전이 그 이유라 했다. 그러나 좀더 정확한 이유는 그들이 가졌던 진보에 대한 유례없는 열정이란 대개 그들의 적의 포악함에 기대어 유지되는 것이었기 때문이었을 게다. 그들의 애초 목표가 고작 그만큼의 세상은 아니었을테니 말이다.

남은 사람들이 있었다. 청산한 사람들은 그들에게, 처음에 미안해 했다. 그러나 시간이 좀더 지나자 그 미안함은 기꺼이 생략되었다. 청산한 사람들은 이제 여전히 남아 암중모색하는 사람들을 “낡고 어리석은 놈들”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청산한 사람들에게, 80년대는 90년대의 원활한 처세를 위해 사용되는 ‘훈장’으로, 지독한 자기모독으로 남았다.

80년대의 ‘유례없는 열정’과 90년대의 ‘어이없는 청산’의 극단적인 대비는 한국인들에게, 특히 다음 세대 청년들에게 진보적 신념 자체를 회의하게 만들었다. 진보의 우물이라던 대학에서부터 진보는 매말라갔다. 그런 와중에, 80년대의 변혁운동의 정신을 계승한다고 주장되는 ‘새로운 운동’이 제출되었다. ‘옳은 것’이 아닌 ‘가능한 것’을 좇는다는 그 운동은 90년대 중후반 한국의 사회운동을 거의 전적으로 대표했다. 오늘, 그런 운동을 대표할 만한 단체 건물밖 대형걸개엔 이렇게 적혀 있다. “시민의 힘이 세상을 바꿉니다.”

그것은 분명 심각하게 과장된 것이고 그런 운동이 ‘변혁운동의 정신을 계승’하는 새로운 방식이 아니라 ‘변혁운동의 정신을 청산’하는 새로운 방식임을 보여준다. 생각해 보라. ‘이미 시민인 사람’이 무엇 때문에 세상을 바꾼단 말인가. 그들은 단지 좀더 편리한 세상을 바랄 뿐이다. 그들의 주식이 제값을 받기를, 그들의 핸드폰사용료가 좀더 적절하기를 말이다. 세상은 세상을 바꿀 이유가 있는 사람들, 제 정직한 노동으로 세상을 움직이면서도 여전히 억압과 경멸에 처한 사람들, 세상이 달라졌다는 주장을 도무지 실감할 수 없는 사람들이 바꾼다.

청산 이후, 10년이 지났다. 그 10년은 그 10년의 시간 속에 끼어 산 우리에게 언제나 ‘최종적인 결과’처럼 느껴졌지만, 역사 속에서 10년은 매우 짧다. 그 10년 동안 우리는 ‘좀더 선량한’ 보수 정치와 ‘좀더 악랄한’ 보수정치의 차이란 참으로 보잘것없음을 체험했고, ‘국가 차원의 협조’란 단지 한줌의 지배계급에 봉사하는 꼭두각시 놀음임음을 깨달았다. 이제 우리에겐 좀더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고, 이미 그런 변화가 시작되고 있다.

추신 : 역사가 보여주듯, 세상은 ‘꿈을 꾸는 사람들’에 의해 바뀐다. 그러나 그 꿈은 ‘실현가능한 선으로 조정된 꿈‘이 아니라 ’불가능한 꿈‘이다. 모든 크고 작은 역사적 성취들은 그것이 성취되기 직전까진 언제나 ’불가능한 꿈‘이다. 인류는 한치도 쉬지 않고 그 사회체제를 발전시켜왔다. 자본주의 역시 결국 더 나은 체제로 극복될 것이다. 믿겨지지 않는가. 그렇다면 잠시 눈을 감고 중세의 암흑 속으로 들어가 보자. 자, 근대사회가 올 거라 믿겨지는가?(한겨레 2001.10.8)
2001/10/08 22:58 2001/10/08 22:58
2001/09/12 23:13
'B급 좌파' 얼마 전, 3년 넘게 여기에 써온 칼럼들을 묶어 낸 책이다. 재생지로 만들어 ‘짚단처럼 가벼운’ 책 앞머리에 나는 주홍글씨로 적었다. “양산리 한신을 추억하며. 故 이계숙 누이에게. 서정오 유재영에게.” 이계숙, 서정오, 유재영. 정처없던 내 십대의 기착지, 한신에서 만나 20여년 동안 늘 함께한 내 소중한 벗들, 내 정신의 일부들.

이계숙 누이는 나보다 한 학번 아래에 나이는 여섯살 많았다. 3년 전 그가 내게 “늑막에서 물을 뺐는데 암 세포가 나왔대” 하고 남의 일처럼 암 발병을 알릴 때 이미 폐암 말기였음을 나는 그가 죽기 며칠 전에야 알았다. 그는 한번도 자신의 암이 치명적인 상태라고 말하지 않은 채 혼자 암과 싸우다 갔다. 그는 늘 그런 식이었다. 그는 남이 들어 즐거운 일이 아니고선 자신에 대해 거의 말하지 않았다. 그에게 대화란 남의 말을 귀기울여 들어주는 일이었다(대개의 사람들에게 대화란 ‘자기가 말할 순서를 기다리는 일’이다). 사는 게 팍팍해서 불쑥 그를 찾으면 그는 언제나 반가운 얼굴로 차와 먹을 것을 내오곤 했다. 이제 내가 그를 찾을 수 없게 되니 그가 대신 나를 찾는다. 늦은 밤 혼자 노트북을 두드리다 인기척에 뒤돌아보면 그가 내 뒤에 빙그레 웃고 서 있다. 그는 언제나처럼 말한다. “아, 우리 규항이가 애쓰는구나.”

서정오를 처음 만났을 때 나는 그가 감옥에다녀온 선배려니 했다. 얼마 뒤 나와 동갑내기라는 걸 알게 되었지만 그의 만만치 않은 지적 축적은 처음부터 머리가 빈 건달인 나를 압도했다. 이를테면, 결론을 내리기 곤란한 얘기를 맺을 때면 그는 “자궁으로 돌아가버린 거지”하며 씩 웃곤 했는데 그게 최인훈의 <광장> 이야기라는 걸 나는 2학년이 되어서야 알아챘다. 학보사 기자 노릇을 열심히 하던 그는 편집장 임명을 며칠 앞두고 말없이 학교를 떠났고 제대 뒤엔 공장에 들어갔다. 노동운동을 하던 그는 이제 노동자다. 그 시절 지적으로 나를 압도했던 그는 이제 삶의 축적으로 나를 압도한다. 몇번이나 거덜이 났지만, 여전히 그에게 사적 소유 개념이란 가소로운 것일 뿐이다. 사회주의를 주장하는 양보다 사회주의를 사는 양이 압도적인 그는, 사회주의를 사는 양보다 사회주의를 주장하는 양이 압도적인 나의 든든한 은신처다.

고등학교 시절 태극기와 성서를 안고 교실에서 자곤 했다는 ‘애국적’ 이력을 가진 유재영은 학내 언더서클에서 가장 착실하게 성장한 우리의 이론가였다. 서정오와 나는 그런 그를 ‘유교수’라는 애칭으로 부르며 그가 생산한 한국 자본주의 분석문들을 즐겁게 읽곤 했다. 서정오가 압도적인 사회주의자이듯 유재영은 압도적인 선비(였)다. 서른 즈음 어느날 같은 공간에서 일하던 우리는 딱 한번 심하게 언쟁했다. 격앙된 목소리가 최고조에 이른 어느 순간 그가 갑자기 표정을 풀며 말했다. “형이 맞네 뭐. 내가 잘못 생각했어. 사과할게.” 그뒤 누구에게서도 그런 순간을 다시 경험할 수 없었다. 나는 그 순간의 위엄을 배웠고 삶 속에서 나도 그렇게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오늘 내가 남을 욕하는 일을 업으로 삼다시피 하면서도(좋은 말로, ‘비판적 지식인 노릇’이라 하던가) 그나마 염치를 유지하고 있다면 대개 그 순간 덕일 것이다. 건강이 안 좋은 그는 오늘 미아리께서 가게를 하고 있다.

죽은 이계숙 누이, 노동자 서정오, 가게를 하는 유재영. 그들은 절대 넘어지지 않는 삼발이의 발들처럼 늘 나를 둘러 지지한다. 낸 일로 전화를 걸어온 서정오에게 내가 말했다. “정오나 재영이가 내 선생들인데, 내가 이러고 사니 뭐가 뒤바뀌었지 뭐야.” 그가 말한다. “항이가 하는 덕에 우리는 이렇게 편하게 살잖아.” 서정오는 내가 보내준 열부 값을 다음날 내 통장에 입금해 놓았다. 유재영에겐 아직 책을 전해주지 못했다. 아, 계숙 누이에게도. “누이, 어서 와 책 가져가요.”(씨네21 2001/09/12)
2001/09/12 23:13 2001/09/12 23:13
2001/08/22 23:11
100인위(운동사회 성폭력 뿌리뽑기 100인 위원회)에 대한 내 주변의 이런저런 '객관적인 논평들'에 답답함이 쌓일 무렵, 오랜 만에 만난 ㅅ선생이 물었다. "김규항씨, 100인위원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요." "물론 지지합니다." "내가 <한겨레>에 쓴 칼럼 봤어요." "못 봤는데요." "지지한다고 썼는데 얼마나 욕들을 하는지 몰라." "100인위의 방법에 문제가 있긴 하지만 비판과 토론으로 고쳐나갈 일이지 방법상의 문제로 100인위 활동 자체를 부정하는 건 바보들이죠." "그러게." "100인위뿐 아니라... 늘 그런 식인 것 같습니다."

크든 작든, 역사의 한 켠은 늘 '논평자들'의 차지다. 화사한 진보적/자유주의적 교양인인 그들은 '오늘의 가장 곤란한 문제' 앞에선 늘 '객관적'이다. 논평자들의 관심은 문제나 문제의 해결이 아니라 문제나 문제의 해결에 대한 논평이다. 논평자들의 목적은 실은 '문제에 개입하지 않는 것'이다. 논평자들의 논평은 언제나 같다. "뜻은 좋지만 방법에 문제가 있다." 그 말의 실제는 이렇다. "나는 이 문제에 개입하지 않을 핑계로 방법상의 문제를 찾았다."

논평자들은 이른바 '역사적 해석 공정'으로 말끔하게 정련된 역사에 매우 능숙하고 적극이지만(그들은 교양인인 것이다), 온갖 군더더기와 비루함이 드러나 보이는 '역사의 일부로서 오늘'엔 늘 거슬려 한다. 역사보다 역사의 미감에 집착하는 그들은 역사를 모르는 어떤 사람보다 역사에 무지하고 어리석다. 일본제국주의 시절, 논평자들은 항일무장독립운동을 논평했다. "뜻은 좋지만 방법에 문제가 있다. 일본 제국주의자들에게 탄압의 빌미를 주어 조선 독립을 더욱 어렵게 만들 수 있다." 논평의 실제는 이렇다. "일본제국주의를 이길 수 있다는 건 어리석은 꿈이다. 일본제국주의는 절대 무너지지 않는다."

강준만씨를 필두로 한 <조선일보> 반대운동(강준만씨 이전에도 민언련 등의 성실하고 조직적인 언론개혁운동이 있어왔지만 '보수상업언론'이라는 주제를 <조선일보>로 축소조정한 건 강준만씨다. '한 놈만 패는' 강준만씨의 전술은 결국 이 운동에 결정적 전기가 되었다.)이 '오늘의 가장 곤란한 문제'이던 시절, 다시 말해 <조선일보>에 분명한 반대견해를 밝힌 지식인이 홍세화 김정란 진중권 등 고작 '대여섯'에 불과할 무렵, 논평자들은 그 어느 때보다 융성했다. 논평은 역시 같았다. "뜻은 좋지만 방법에 문제가 있다."

그 운동이 '대통령도 하는 운동'이 되고 '공익 캠페인'이 되자, 논평자들은 짐짓 <조선일보>를 반대하는 편에 점잖게 앉았다. 그들은 홍세화 김정란 진중권 등 '대여섯'이 처음에 그랬듯 "이제야 이 문제에 개입한 것을 부끄럽게 생각한다. 강준만씨에게 감사한다."는 따위 촌스런 말은 절대 하지 않는다. 그들이 오늘 그 자리에 앉은 건 어떤 종류의 실존적 결단도 아닌 그저 오늘 그 자리가 더 편해서다. 강준만이 '무식한 인간'이 되고 진중권이 '성격파탄자'가 되고 급기야 김정란이 '마녀'가 되어야 했던 이유가 '논평자들의 여백'을 메우기 위해서였다는 사실 또한 그들의 관심영역 밖이다.

언제나처럼, 논평자들은'오늘의 가장 곤란한 문제'에 논평중이다.(이 문제엔 누구도, 이를테면 강준만 등 <조선일보> 문제에 가장 올바랐던 이들도 예외가 아니다. 어제의 문제에 가장 올바랐던 사람들은 '오늘의 가장 곤란한 문제'엔 논평자일 수 있다. <조선일보> 문제를 최종 도착지라 여긴다면, 반드시 그럴 것이다.) 역사의 상당 부분은, 몇몇 몽상가들의 어리석은 꿈이 주변을 둘러싼 논평자들의 훼방을 무릅쓰고 '어느새' 현실이 되는 방식으로 진행한다. 그렇게 얻어진 역사의 열매는 물론 '모두'에게 배분된다.

역사는 늘 그런 식이고, 그럼에도 역사의 한 켠은 늘 논평자들 차지이며, 역사가 계속되는 한 빌어먹을 논평도 계속된다. '오늘의 가장 곤란한 문제'는 과연 무엇인가.(2001/08/22)
2001/08/22 23:11 2001/08/22 23:11
2001/08/15 22:55
천대받는 땅 갈릴리 출신의 불한당들, 예수와 그 제자들은 유태교회 지도자들과 사사건건 갈등을 일으켰다. 결국 예수가 죽임을 당하는 계기가 된 그런 끊임없는 갈등의 핵심에 안식일 논쟁이 있다. 유태 사회의 유일한 법이자 윤리인 율법엔 안식일(말 그대로 쉬는 날)에 일하지 말라 적혀 있다. 그것은 신이 엿새 동안 세상을 만들고 하루 쉬었다는 창세기의 에피소드를 근거로 했다. 신이 쉬었으니 너희도 신처럼 쉬어라. 문제는 안식일에 쉴 수 없는 사람들이었다. 안식일이고 뭐고 하루라도 쉬면 당장 굶게 되는 사람들.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지 못하는 그들을 교회지도자들은 '죄인'이라 불렀다. 예수는 그런 현실에 분노했고 선언했다. "독사의 새끼들."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 있는 게 아니라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 있다."

예수는 그 '죄인들'을 사랑했다. 예수는 모종의 기득권을 유지한 채 그 기득권의 일부를 헐어 그들을 돕는 '양심적 행동'을 한 게 아니라 늘 그들과 지내며(알다시피, 예수는 집도 절도 없이 떠돌다 죽었다.) 그들과 '한통속'이었다. 예수는 편파적이었다. 못났다는 것, 못 배우고 가난하다는 것이야말로 예수에게 대우받는 첫째 조건이었다. 잘난 사람들, 많이 배우고 가진 사람들은 예수에게 홀대받았다. 어느 날 한 겸손한 부자가 예수를 찾는다. "선생님, 제가 영생을 얻으려면 뭘 해야 합니까." "신의 계명을 알고 있겠지요." "그건 어릴 적부터 다 지켜 왔습니다만." "그럼 재산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와서 나를 따르시오." 그는 곤혹스러운 얼굴로 돌아간다. 예수가 말한다. "보세요. 부자가 천국에 가는 건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일보다 어렵습니다."

예수 이전, 구약의 신은 유태인의 신이다.('시오니즘'이라 불리는 이스라엘인들의 배타적 민족주의는 그런 신관을 기초로 한다.) 예수는 무슨 짓을 했든 저에게 극진하다면 축복을 내리는 그런 이기적인 신을 부인한다. 예수 이후의 신은 유태인의 신도 교회의 신도 아닌 온 우주만물의 신이다. 모든 인간은 신의 아들딸이며 신 앞에서 인류는 형제자매다. 인종이 무엇이든, 종교가 무엇이든, 신분이 어떻든. 자, 저 아프리카 어느 마을에 이 순간 굶어 죽어가는 아이가 있다. 당신이 기독교인이라면, 그 아이는 바로 당신의 동생이다. 굶어죽어가는 어린 동생을 외면한 채 오늘은 무얼 먹어 이 권태로운 창자를 달랠까 고민하는 당신은, 아버지인 신 앞에 큰 죄인인 것이다.

오늘 대개의 한국 교회는 그런 예수의 메시지를 정확히 뒤집는다. 예수를 빙자하는 한국 교회는 바로 이천년 전 예수가 대결하던 유태교회와 같고 한국교회가 제시하는 신은 저에게 극진한 자식만 챙기는 이기적인 신이다. 한국교회는 예수가 대우하던 사람들을 홀대하며 예수가 홀대하던 사람들에게 늘 편파적이고 그들과 '한통속'이다. 한국교회에서 형제의 고통을 외면하고 제 안락을 좇는 일은 신의 축복이라, 그렇게 성공한 사람은 축복받은 사람이라 해석된다. 한국교회는 교회가 아니라 '교회라 주장되는 상점'이다. 한국교회에 남은 일은 예수가 성전에서 신을 빙자한 장사꾼들을 내쫓았듯 예수를 빙자한 장사꾼들이 내쫓기는 일이다.

최근 <월간조선> 사장 조갑제씨는 각종 기독교 집회에 단골 강사로 나서고 있다. 한국 교회의 탐욕을 자극하여 오늘 진행되는 일련의 사회개혁적 노력들을 사탄의 사업이라 선동하기 위해서다. "성경에 따르면 사탄은 머리가 좋고, 우상숭배를 요구하며 예술적이고 남을 속이는데 천재라고 묘사되어 있다. 김정일은 바로 그 사탄이다. 그런 사탄의 속임수에 넘어간 제자들이 한국에 많다. 이들은 민주투사, 개혁주의자, 민족주의자, 통일주의자, 양심가의 행세를 하면서 사탄의 이익을 위해 수많은 국민들을 속이고 있다." 그저 정신병적 괴변에 불과한 그의 논리는, 그것이 가장 탐욕적인 한국 교회를, 넘쳐나는 '독사의 새끼들'을 선동하려는 술책이라는 점에서 참으로 완벽해 보인다.(한겨레 2001.8.15)
2001/08/15 22:55 2001/08/15 22:55
2001/08/09 21:50
공인. 이 딱딱하고 멋대가리 없는 중국말 출신 한국말을 떠올리노라니 며칠 전 김건(다섯살짜리 내 아들)과 했던 대화가 생각난다. “김건, 한국말엔 원래는 중국말이었거나 미국말이었던 게 많이 있거든. 김건 생각에 원래 한국말인 것 하나만 말해 볼래.” “음... 햄버거.” (일동 폭소) 나는 한글 전용론 따위를 주장하는 한심한 사람은 아니지만 요즘 아이들이 중국말 출신이든 미국말 출신이든 이런저런 말들이 충분한 화학적 용해과정을 거친 상태의 한국말을 배우고 있는 것 같아 해본 장난이었다. 에상대로 김건에게 ‘원래 한국말’이란 그저 언어적 몽환이었다.

언어적 몽환은 다섯살짜리 아이에게만 존재하는 게 아니다. 다 자란 우리 역시 늘상 들어 익숙하나 곱씹어보면 대체 이게 뭐더라 하는 게 있다. 공인이라는 말이 그렇다. 한국에서 이 말처럼 대대적이고 공공연하게 언어적 몽환을 일으키는 말도 없다. 한국에서 공인이라는 말이 가장 대대적으로, 공공연하게 사용되는 경우는 이른바 유명연예인의 사적 에피소드와 관련해서다. 이를테면 한국에서 공인이라는 말은 한 유명 연예인이 음주운전하다 적발되었을 때 사용된다. 그 유명 연예인은 어떻게든 처벌을 피해나가려 하고(하루 빨리 돈 벌고 싶어하고) 바로 전 날밤까지 그 연예인에게 환호하던 사람들은 일제히 공인이 그럴 수 있냐 격분한다. 물론 그 중간엔 그 연예인을 기사거리로 삼다 사건 직후 그 연예인의 추문을 기사거리로 삼기로 작정한 황색언론과 온 세상을 도덕으로만 판단하는 사람들(무슨무슨 시청자 감시단이니 하는 장엄한 이름을 가진)의 요란스런 개탄이 있다.

흥미로운 건 이른바 공인이라는 비장한 잣대를 사용하는 그런 대대적이고 공공연한 격분이 그 유명 연예인이 다시 반성하는 얼굴(‘아뿔싸’의 공식 버전일)을 하는 순간, 언제 그랬냐는 듯 일제히 다른 이야기거리로 몰려간다는 것이다.(한국인들이 그렇게 일제히 격분하고, 또 일제히 사그라들고 하는 습성은 반세기에 걸친 파시즘 경험과 관련한 것이다. 파시즘은 대오에서 이탈한 자의 불안함을 근거로 한다.) 그건 확실히 원래의 그 비장한 잣대나 그 격분의 대대적이고 공공연한 외양에 비추어 싱겁기 짝이 없는 경과다. 한국에서 공인이라는 말은 고작 그런 대상에 그렇게 싱겁게 사용된다.

“고작 그런 대상”이란 말이 연예인을 싸잡아 무시하는 뜻은 아니다. 나는 연예인, 곧 대중예술가를 일종의 공인이라 본다. 대중예술가는 예술가의 일종이며, 예술가는 지식인(학자에서 저널리스트까지 모든 유형의)과 함께 모종의 정신적 육체적 축적물(은 사회 구성원들이 먹고사는 일과 직결되지 않는 유형의 것이다)을 사회에 제출한 대가로 생계를 보장받는다는 점에서 일정한 사회적 책임을 갖는 공인이며 예술가의 일종인 대중예술가는 공인의 일종이다. 그러나 모든 대중예술가가 예술가가 아니듯 모든 대중예술가가 공인은 아니다. 오늘 대중예술가의 상당 부분은 ‘모종의 정신적 육체적 축적물을 사회에 제출하는 사람’이 아니라 ‘모종의 엔터테인먼트 비즈니스의 콘베이어 라인에서 생산되는 순수한 공산품들’이다. 대중예술가의 외양을 한 그런 공산품들의 사적 에피소드와 관련한 공인 논란은 얼마나 우스운가.

분명히 해둘 건 우리가 대중예술가에게 공인이라는 잣대를 들이댈 구체적인 부위는 음주 운전을 했는가, 지방흡입술을 했는가, 혹은 음주운전이나 지방흡입술을 하고도 안했다 잡아뗏는가 따위 시답지 않은 사적 에피소드들이 아니라 그 대중예술가의 예술 자체라는 점이다. 그 배우의 연기는 과연 공인이라 할만큼 성실한가. 그 가수는 그에게 주어지는 사회적 대가 만큼 심금을 울리는가 등등. 그러나 그런 질문에 이를 때 우리는 대개 머쓱해진다. 그런 머쓱함은 우리가 정색을 하고 공인의 잣대를 들이댄 그 대중예술가들이 실은 예술가도 공인도 아닌 공산품임을 확인하는 머쓱함이며, 그런 공산품의 그런 사적 에피소드에 공인이라는 잣대를 들이댄 일에 대한 머쓱함이다. 우리는 마치 인형을 안고 웃었다 울었다 하는 아이와 같다.

요컨대 오늘 한국 사회에서 공인이라는 말은 공인의 가장 주변 영역(혹은 거의 공인이라 보기 어려운 영역)의, 사적 에피소드에나 사용된다. 한국에서 공인이라는 말은 햄버거가 ‘원래 한국말’이라 주장하는 다섯 살짜리 아이와 다름없는 언어적 몽환에 빠져 있다. 그런 한국인들이 분명히 아는 단 한가지 유형의 공인은 제도적 공인, 즉 공무원들이다. 한국인들은 거만하고 타락한 이런저런 공무원들, 조폭의 상대역으로서 경찰(조폭과 경찰을 그 불량함이나 막되먹음에서 도무지 구분할 방법이 있는가.), 나라를 축구공처럼 다룬 군인들 따위를 분명히 안다. 한국인들이 공무원들을 분명히 알 수 있었던 건 지난 50여년 동안, 적어도 3대에 걸쳐 그들을 철저하게 일관되고 체험했기 때문이다. 촌스러운 얘기지만, 공무원이란 사회구성원들을 괴롭히라고 있는 게 아니라 섬기고 봉사하라 있는 건데 하여튼 대한민국의 공무원들은 오늘까지 대개 그랬다. 제도적 공인들에 대한 한국인들의 그런 체험은 한국인들로 하여금 모든 공적인 것에 공포를 갖게 하고 공인이라는 말 앞에서 언어적 몽환에 빠지는 결정적인 이유가 되었다.

공인이라는 말과 관련한 언어적 몽환의 또다른 이유는 한국인들은 삶 속에서 어떤 공적 보장이나 혜택이 전무하다는 점이다. 몇년 전 나는 도심 중의 도심이라 할 종로 네거리에서 3중 추돌사고를 냈다. 내 차의 본네트가 시야를 완전히 가릴 만큼 솟아올랐고 앞의 두 차들도 크게 망가졌다. 추둘사고는 기본적으로 뒷차에 책임이 돌아간다는 걸 알았던 나는 그 순간의 ‘시각적 견적’에 낙심했는데(왜 나는 늘 돈이 없는 것일까. 열심히 사는데, 빌어먹을.) 사고를 수습하러 온 경찰의 ‘종합보험 들었으면 다 처리될 것’ 이라는 말이 어떤 축복의 음성처럼 들렸다. 서른몇 해 동안 이 나라에서 살면서 단 한번도 어떤 종류의 공적 보장이나 혜택도 받아본 경험이 없던 나는 내 돈 내고 받는 당연한 보장마저 어색했던 것이다. 좀더 구체적으로, 우리는 이른바 구제금융 시절에 직장과 가정에서 밀려난 그 많은 남자들, 일생을 국가와 자신을 일치시키며 살아온 그들이 국가로부터 아무런 공적 보장을 받지 못하고 거리에서 사그라지는 풍경을 생생히 목도한 바 있다.

지난 50여년 동안 한국인들에게 모든 공적인 것은 어떤 보장이나 도움의 손길이 아니라 통제와 억압의 그물이었고 그런 한국인들은 공인이라는 말 앞에서 언어적 몽환에 빠진다. 공인이라는 말이 그런 처지에 놓인 건 지금까지 얘기했듯 한국인들의 삶의 체험에 의한 결과지만, 뒤집어 보면 가장 충성스러운 국민을 갖되 그 국민들이 위기에 빠졌을 때의 책임은 지지 않으려는 국가의 책략이기도 했다. 말하자면 국가는 공인이라는 말의 사용처를 유명 연예인이 음주운전하다 적발되었을 때 쯤으로 한정하는 손쉬운 대중조작만으로 한국인들로 하여금 일체의 공적 기대를 포기한 일방적 신민으로 만드는 데 성공해온 것이다.

바보가 아니라면, 이쯤해서 우리는 공인이라는 말의 정당한 사용처를 발견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런 발견의 유일한 방법은 그 말이 진보적 맥락에서 사용되게 하는 것이다. 아, 진보라는 말에서 거부감을 느낄 건 없다. 진보란 현재를 더 낫게 만들려는 노력이며 따지고 보면 모든 인간은 본디 진보주의자니까. 여기 예닐곱으로 이루어진 동아리가 있다고 치자. 그런데 그 중 한명이 자꾸 엉뚱한 짓을 한다. 모두의 공을 혼자 가로채고 다른 구성원의 몫을 빼앗아 독점한다. 그의 악행이 나머지 구성원에게 확인되자 그 구성원들이 어떤 행동을 취했을지는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때 나머지 구성원들이 취하는 행동, 바로 그게 진보적 노력이다. 사회가 그 동아리와 다른 건 좀더 규모가 크다는 것일 뿐 그 얼개는 전적으로 같다. 모든 진정한 공적 노력은 그렇게 진보적이며 모든 진정한 공인은 그래서 진보적이다. 자, 를 읽는 사나이들. 오늘 내가 지껄인 얘기에 기대어 공인이라는 말의 정당한 사용처를 발견해 보는 게 어떤가. 그것은 당신의 정신에 멋진 수트 한벌이 될 것이다
2001/08/09 21:50 2001/08/09 21:50